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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세대를 위한 박현주 회장의 투자조언
\”나도 한때는 주린이였다\”
[요약]00:00 오프닝
00:36 젊은세대를 위한 조언
04:39 지금의 머니무브는 장기적일 것인가? 증권업은 성장산업인가?
08:22 미래에셋 주가는 언제 오를까?
10:47 주린이 대선배의 성장 스토리
13:40 좋은 조언자에 관하여
20:04 젊은층의 주식시장 참여 현상과 투자원칙에 대한 조언
25:30 금융에 관한 실용적인 지식은 어떻게 얻어야 하나?
26:59 투자에 있어 아쉬웠던 경험
30:42 인적자산의 중요성
38:56 기업이나 사람은 성장을 해야한다.
40:29 어떤 트렌드에 투자해야 하나?
45:52 정리
49:52 박현주 회장이 보내온 영상편지
[▼지난영상 보기▼][박현주 회장과 함께 하는 투자미팅] Part 1. 반도체/클라우드/전기차
https://youtu.be/7Wg5M66W1D8
[박현주 회장과 함께 하는 투자미팅] Part 2. 그린에너지/이커머스·게임/바이오
https://youtu.be/NPovSkW3hOc

#미래에셋 #박현주 #투자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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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12년 연속 배당금 전액 기부 – 뉴데일리경제

미래에셋은 박현주 회장이 2021년도 미래에셋자산운용 배당금을 전액 기부한다고 31일 밝혔다. 박현주 회장은 지난 2010년부터 미래에셋에서 받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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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iz.newdaily.co.kr

Date Published: 8/19/2021

View: 7298

박현주 회장, 배당금 16억원 미래에셋박현주재단에 기부

(서울=연합뉴스) 박원희 기자 =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미래에셋자산운용의 2021년도 배당금 16억원 전액을 미래에셋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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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yna.co.kr

Date Published: 12/23/2021

View: 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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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세대를 위한 박현주 회장의 투자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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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박현주 회장

  • Author: 미래에셋 스마트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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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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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박현주(朴炫柱, 1958년 10월 17일 ~ )는 미래에셋금융그룹을 창업한 대한민국의 금융인이다.

1958년 10월 17일,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났고, 광주제일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교육학을 전공했다. 1997년 미래에셋자산운용과 미래에셋캐피탈을 설립하고 1999년 미래에셋증권을 설립해 미래에셋을 투자전문 금융그룹인 미래에셋금융그룹으로 성장시켰다. 대한민국 최초로 주식형 및 채권형 뮤츄얼펀드를 설립하고, 부동산펀드와 PEF 또한 대한민국 최초로 설정하였다.

2018년 5월 미래에셋증권 회장직에서 물러나, 미래에셋증권홍콩 회장과 미래에셋증권 글로벌투자전략최고책임자(GISO)로 부임하였다.

박현주 회장이 이끄는 미래에셋의 혁신 사례는 2017.09 세계적 학술기관인 더케이스센터(thecasecentre)에 등재된 바 있다.

생애 [ 편집 ]

1958년 10월 17일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박현주가 고등학교 합격 통지를 받던 날 돌아가셨고, 이로 인해 방황하던 그는 신뢰, 성실, 정직을 강조하는 어머니의 가르침 덕에 바로 설 수 있었다고 한다.

고려대학교 재학 시절 “ 자본시장의 발전 없이 자본주의는 발전할 수 없다”는 말을 들은 이후, 증권 시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대학 2학년부터 어머니가 보내준 생활비로 주식 투자를 시작해 당시의 대한민국 증권 1번지인 명동에서 주식투자를 잘하는 청년으로 이름을 알렸다고 한다. 이때의 투자경험은 이후 박현주의 투자 철학을 형성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때의 경험을 통해 박현주는 우량주에 장기투자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낳는 다는 믿음 갖게 되었고, 가치투자에 대한 기본 개념을 정리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대학시절부터 경영자가 돼야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에, 리더십 관련 공부를 열심히 했다. 경영학 이외의 책도 많이 읽었는데, ‘제3의 물결’이 가장 마음에 들어 무려 19번을 읽었다고 한다.

경력 [ 편집 ]

증권회사 근무 [ 편집 ]

스물일곱의 나이에 투자회사를 설립해 운영하다가, 1986년에 동양증권에 입사하였다. 1988년부터 한신증권에서 금융상품 운용을 담당했고, 이후 32세에 전국 최연소 지점장으로 부임하게 되었다. 이듬해 대한민국 증권사 지점 중 1위의 영업실적을 달성하였고, 곧이어 임원으로 승진하며 샐러리맨으로서의 성공가도를 달렸다. 이때의 조직관리 경험은 그에게 조직 구성원 개개인의 역량을 믿고 지지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했고, 이는 훗날 미래에셋 경영의 토대가 되었다. 그가 지점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지점훈은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를 돌리는 방법은 앞으로 달려가는 것이다.”였다.

미래에셋 창업 [ 편집 ]

1997년 6월 회사를 나와 미래에셋벤처캐피탈과 국내최초 전문 자산운용회사 미래에셋투자자문을 설립했다. 창업 후 6개월 만에 외환위기를 겪었으나, 소수의 시각에서 투자를 바라보고자 하는 그의 남다른 인사이트와 한국 경제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투자 성과를 이끌었다.

1998년 12월 대한민국 1호 자산운용사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을 설립하고, 국내 최초의 뮤츄얼펀드인 ‘박현주1호’를 출시하며 대한민국 간접 투자시장의 본격적인 문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박현주는 최초의 적립식펀드를 출시하고 이의 활성화를 통해 펀드 투자의 대중화 바람을 일으킨 주역이기도 하다. [박현주 미래에셋회장, 증권업계 1위로 도약]

1999년 미래에셋증권을 설립하고 2000년에는 기업이익의 사회환원과 나눔의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사재 75억원을 출연하여 미래에셋박현주재단을 설립했다. (사재 출연 설립한 ‘박현주재단’ 정식출범)

사업가로서의 박현주에게는 늘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녔는데, 이는 “소수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걷겠다’는 그의 평소 철학에서 비롯되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그는 창업과 동시에 오랜 고민을 바탕으로 미래에셋의 경영이념과 핵심가치를 직접 작성했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임직원들에게 보낸 편지]

경영이념 – 열린 마음으로 미래를 내다보고 인재를 중시하자

핵심가치 – 미래에셋은 고객을 위해 존재합니다. 투자전문그룹으로서 독립성과 경쟁우위를 가집니다. 개인을 존중하며 팀플레이에 대한 믿음이 있습니다.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고 실천합니다.

미래에셋은 2017년 창립 20주년을 맞이했다. [미래에셋 창립 20주년 기념사]

최초의 기록 [ 편집 ]

1997.08 대한민국 최초 전문 자산운용회사 미래에셋투자자문 설립

1998.12 대한민국 최초 뮤츄얼펀드 박현주1호 출시

2001.02 대한민국 최초 개방형 뮤츄얼펀드 출시

2001.02 미래에셋증권 대한민국 최초 랩어카운트 상품 판매

2003.12 대한민국 최초 해외 운용 법인 미래에셋자산운용(홍콩) 설립

2004.03 미래에셋증권 대한민국 최초 적립식펀드 출시

2004.06 미래에셋증권 대한민국 최초 부동산펀드 출시

2004.12 미래에셋자산운용 국내 최초 사모투자펀드(PEF) 출시

2006.05 대한민국 최초 중국 본토 빌딩 투자_미래에셋상해타워

2008.07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한민국 최초 중국 증권감독위원회로부터 적격외국인투자자(QFII)인증

2010.04 미래에셋자산운용 국내 최초 SICAV 펀드 국내 출시

2011.01 미래에셋자산운용(홍콩), 국내 최초 홍콩증권거래소에 ETF 직접 상장

2012.07 대한민국 최초 중국 합작운용사 (미래에셋화신자산운용) 출범

2013.06 호라이즌 ETFs 국내 계열 운용사 첫 미국시장 ETF 상장

2014.03 호라이즌 ETFs 아시아 자산운용사 최초 미국시장 KOSPI200ETF 상장

2014.09 TIGER ETF, 세계 최초 중국 본토 레버리지 ETF 상장

2014.10 미래에셋자산운용(홍콩), 국내 최초 첫 RQFII 활용 ETF 상장

2016.12 미래에셋생명, 국내 최초 모바일 금융오픈마켓 iAll(아이올) 오픈

2018.01 미래에셋증권, 국내 증권사 최초 인도시장 진출

2018.11 미래에셋자산운용 국내 최초 중국 사모펀드 자격 획득

2019.11 미래에셋증권, 국내 증권사 최초 미국 나스닥 상장 주관사 참여 (바이오엔텍)

M&A 관련 [ 편집 ]

박현주는 그의 확고한 투자철학과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다수의 M&A를 성공시키며 미래에셋을 국내 굴지의 금융투자전문그룹으로 성장 시켰다.

[주요 M&A 이력]

2004.02 SK그룹 계열 SK투자신탁 인수 2005.06 SK그룹 계열 SK생명보험 인수 2011.11 캐나다 선두 ETF 운용사 호라이즌 ETFs 인수 [미래에셋, 캐나다 운용사 ‘호라이즌ETFs’인수완료] 2011.11 호주 선두 ETF 운용사 BetaShares 인수 2016.12 대우증권 인수 후 미래에셋증권 합병 2016.12 산업은행 계열 KDB자산운용사 인수 2017.07 베트남 프레보아 생명 인수 [https://www.yna.co.kr/view/AKR20170704133700002?input=1195m] 2017.12 PCA 생명(한국) 인수 [https://www.hankyung.com/news/article/2016111083521?nv=o] 2018.07 미국 ETF 운용사 글로벌X 인수 [미래에셋, 세계최대 美 ETF시장 승부수, 글로벌X 전격인수]

글로벌 진출 [ 편집 ]

박현주는 미래에셋 창업초기부터 해외진출을 염두에 두고 시장조사를 진행했고 현재 대한민국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해외진출의 선두주자로 평가받고 있다.

2003.12 미래에셋자산운용(홍콩) 설립 2006.09 미래에셋자산운용 베트남 하노이사무소 설립 2006.11 미래에셋자산운용(인도) 설립 2007.01 미래에셋증권(홍콩) 설립 2007.03 미래에셋자산운용(영국) 설립 2007.07 미래에셋증권(북경) 설립 2007.12 미래에셋증권(베트남) 설립 2008.02 미래에셋익재투자자문(중국) 설립 2008.04 미래에셋자산운용(미국) 설립 2008.04 미래에셋자산운용(브라질) 설립 2008.08 미래에셋증권(미국) 설립 2008.08 미래에셋명승투자자문(중국) 설립 2010.08 미래에셋증권(브라질) 설립 2012.10 호라이즌ETFs (LatAM) 설립 2016.01 미래에셋자산운용(호주) 설립 2017.10 미래에셋증권(인도) 설립 2019.09 미래에셋글로벌X(일본) 합작회사 설립[1][2]

글로벌 주요 투자 현황 [ 편집 ]

2009.08 호주 담수화시설물 투자 2011.08 세계1위 골프용품 브랜드 타이틀리스트 인수 2011.10 호주 빅토리아주 이스트링크 사업 투자 2013.09 세계적인 호텔 브랜드 “포시즌스 호텔 시드니” 인수 2014.12 미국 워싱턴Dc 오피스빌딩 1801k 인수 (미국 연방준비위원회 입주) 2015.05 하와이 리조트 호텔 ‘페어몬트 오키드’인수 2015.12 미국 샌프란시스코 랜드마크호텔 ‘페어몬트 샌프란시스코’ 인수 2016.07 미국 아마존 본사 Phase VIII 빌딩 인수 2016.08 서부간선지하도로 사업투자 2016.09 하얏트 리젠시 와이키키 비치 리조트 & 스파 인수

사회공헌 [ 편집 ]

“최고의 부자가 되기보다 최고의 기부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 라고 말하는 그는, 해마다 자신의 배당금 전액을 기부하며 사회 공헌을 실천하고 있다. 지난 2000년도에 그가 사재를 출연하여 설립한 미래에셋박현주재단은 지금까지 대한민국 청소년 27만 여명에게 인재육성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 왔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9년째 배당금 전액 기부”_[http://www.fnnews.com/news/201904011019110440]

미래에셋박현주재단 [ 편집 ]

그는 해마다 미래에셋에서 받는 배당금 전액을 미래에셋박현주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미래에셋 박현주재단 홈페이지)

박현주는 ‘배려가 있는 자본주의’라는 사회공헌 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1998년 미래에셋육영재단을 세우고 2000년에 미래에셋박현주재단을 설립했다. 박현주는 평소에도 “한국 최고의 부자가 되기보다 최고의 기부자가 되는 것이 꿈이다” 라며 “미래의 인재에게 투자하는 것이 미래에셋이 고객과 사회로부터 얻은 것을 환원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바 있다.

미래에셋박현주 재단은 설립 이후 18년 동안 269,476명의 젊은이들에게 장학금과 해외체험 및 경제교육의 기회를 제공해 왔으며 2019년 2월말 기준, 세부사항은 다음과 같다.

– 미래에셋 국내장학생 연간 대학학비 전액지원 : 3,391명 – 미래에셋 해외교환장학생 학업장려비 지원 : 5,117명 – 미래에셋 글로벌투자전문가 학사/석사과정 학비지원 / 인턴십프로그램참여 : 122명 – 미래에셋 우리아이글로벌리더 대장정 어린이펀드가입자중 상해캠프지원 : 12,700명 – 미래에셋 글로벌문화체험단 해외체험의 기회가 적은 아동, 청소년에게 상해캠프지원 : 1,839명 – 미래에셋 경제/진로교육 우리아이 경제교실, 스쿨투어, 금융캠퍼스, 청소년 금융진로교육 등 : 246,307명 (2019년 2월말 기준)

배당금 전액기부 [ 편집 ]

2000년 그가 75억 원의 사재를 털어 설립한 비영리 사회복지재단 미래에셋박현주재단의 장학프로그램은 국내 최대 규모로 성장했다.

박현주 회장은 해마다 미래에셋에서 받는 배당금 전액을 기부하고 있다. [파이낸셜뉴스_사설_미래에셋 박현주 회장의 기부]

2015년에는 청년 일자리 해결을 위한 ‘청년희망펀드’ 조성 사업에 사재 20억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박현주 미래에셋회장_기부_매일경제]

박현주 회장은 `바르게 벌어야 바르게 쓴다`는 원칙의 소유자다. 최고의 부자가 되기보다는 최고의 기부자가 되는 게 꿈이다. 돈에 대한 철학도 확고하다. 2007년 펴낸 자서전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에서 박 회장은 “꽃이 진정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꽃이 진 뒤 씨앗을 만들고 다시 수많은 꽃을 피우는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이라며 “돈도 꽃처럼 돌고 돌아 씨를 만들고 열매를 맺어 이 땅의 젊은이들을 위해, 건강한 사회를 위해 아름다운 꽃이 되어야 한다”고 썼다.

Mirae Asset Foundation (인도) [ 편집 ]

2018년 1월 3일에 인도 뭄바이 지역에 설립된 미래에셋재단으로, 인도 젊은이들에게 양질의 교육 환경과 더 나은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더 나은 교육시스템 구축과 개발에 기여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다.[3] 주요 활동계획은 장학프로그램을 통한 인도현지 학생들의 개인에 대한 배움의 기회를 확대하고, 교육 기관 인프라 개발지원을 통한 양질의 교육기회와 교육 기회를 제공하며, 이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 및 교육 리서치, 혁신센터를 지원이다. 설립이후부터 현재까지 IIM 하이데라바드, IIM 벵갈루루 등 인도 내 최고 경영대학들과 협력을 통한 장학 프로그램 지원 및 미래인재 육성 (2019년 3개의 대학에서 19명의 장학생 선출), 세이브더칠드런 및 2개 현지 교육기관에 교육기금을 기부하며, 2019년 67명의 현지 학생에게 총 8,7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였다. 이는 약 일인당평균 40만원 (초/중등교육) ~ 350만원 (대학 및 석박사과정)의 수혜금을 지원받은 격이다.

수상 실적 [ 편집 ]

– 2006년 매경 증권인 대상을 수상했다. – 2008년 제40회 한국능률협회 한국의 경영자상을 수상했다. – 2009년 언스트앤영 최우수 기업가상 마스터상을 수상했다. – 2011년 제1회 한국금융투자협회 금융투자인상 대상을 수상했다. – 2013년 10월 제1회 매일경제 기업인상을 수상했다. – 2015년 제17회 경영관련학회 통합학술대회 최우량기업상을 수상했다. [한국경영학회 특별강연] – 2017년 제26회 다산금융상 대상을 수상했다. [제26회 다산금융상 대상수상]

참고 [ 편집 ]

하버드비즈니스스쿨 등재 [ 편집 ]

2010년 3월 박현주 회장은 한국기업인 최초, 아시아 금융권 최초로 하버드 비지니스스쿨 기업가정신 연구사례로 선정되었고, 창립 10여년 만에 국내 자본시장의 리더로 부상한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의 성공 스토리(Mirae Asset: Korea’s Mutual Fund Pioneer)를 다루고 있다. [하버드비즈니스스쿨 기업가정신 연구사례선정_미래에셋]

더케이스센터 등재 [ 편집 ]

2017년 7월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김수욱 교수 주도로 미래에셋의 혁신을 통한 성공과정을 분석한 Mirae Asset: A Disruptive Innovator in the Korean Financial Industry 연구결과보고서가 세계적인 학술기관인 ‘더 케이스센터(The Case Centre)’에 등재되었다. [[https://web.archive.org/web/20190326233255/https://www.thecasecentre.org/educators/products/view?id=145054 Archived 2019년 3월 26일 – 웨이백 머신 더케이스센터_서울대_미래에셋]]

미래에셋은 대기업 계열 금융사가 대부분인 한국 금융 시장에서 뮤추얼펀드를 도입하는 등 새로운 투자 문화를 창조했다.

또한 국내 최초의 해외투자펀드, 부동산펀드, PEF 등을 소개하는 등 고객에게 다양한 투자 기회를 제공해왔다.

무엇보다 고객 우선정신으로 새로운 상품, 새로운 시장, 새로운 사업모델을 끊임없이 만들어가는 Permanent Innovator로서의 행보를 보였고 사례연구에서는 이를 높이 평가했다.

저서 [ 편집 ]

–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 박현주 지음, 김영사 출판사, ISBN 978-89-349-2580-4

– 박현주 미래를 창조하다, 홍찬선 외 지음, 올림 출판사, ISBN 978-89-958839-8-3

인터뷰 [ 편집 ]

– 신동아 : 박현주 미래에셋회장의 증권인생 24년_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의 증권인생 24년

– 한국경제 :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 일문일답_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 일문일답

– The Wall Street Journal : For Asset Manager, a Future Beyond Korea_The Wall Street Journal : For Asset Manager, a Future Beyond Korea

참고 문헌 [ 편집 ]

1. Forbes (profile), retrieved 31 March 2019_[https://www.forbes.com/profile/park-hyeon-joo/#971c4d9740ad]

2. “Mirae Asset’s Park Hyeon-joo donates dividends for 8th straight year”_[http://www.theinvestor.co.kr/view.php?ud=20180403000303] Archived 2019년 3월 27일 – 웨이백 머신

3. “Mirae Asset’s focus on global emerging markets – Asia Asset Management – The Journal of Investments & Pensions”_[https://web.archive.org/web/20190327101136/https://www.asiaasset.com/15th2010_mirae.aspx]

4. 저서_돈은 아름다운 꽃이다_ISBN 978-89-349-2580-4_[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3041952]

5. 미래에셋,SK생명 1600억에 인수_[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9&aid=0000439808]

6. 미래에셋 `금융을 수출한다`_[https://news.naver.com/main/read.nhn?oid=018&aid=0000540721]

7. 미래에셋, 캐나다 ETF운용사 인수한다_[https://www.mk.co.kr/news/stock/view/2011/07/421969/]

8. 미래에셋증권, 대우증권품고 한국판 골드만삭스 만든다_[http://biz.newdaily.co.kr/site/data/html/2015/12/24/2015122410028.html] Archived 2019년 4월 4일 – 웨이백 머신

9. 미래에셋, 하와이 리조트 인수_[http://www.fnnews.com/news/201505191706120227]

10.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9년째 배당금 전액 기부_[http://www.fnnews.com/news/201904011019110440]

11. [대한민국 100대 CEO]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 | GISO(글로벌투자전략최고책임자) 맡아 세계시장 개척 ‘올인_[http://news.mk.co.kr/v2/economy/view.php?year=2019&no=203408]

12. 관광업에서 미래 봤다, 여수에 1조 투자_[https://www.hankyung.com/finance/article/2019051917481]

13. ‘박현주 1호’ 펀드 7개월 만에 수익률 100%…미래에셋 신화의 시작_[https://www.hankyung.com/finance/article/2019070547911]

같이 보기 [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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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두 딸 자신의 삶 개척해야

과감한 세대교체로 샐러리맨 신화 만들 것

고려대 경영학과에 다니던 1970년대 후반 대학생 박현주는 서울 명동 거리를 자주 드나들었다. 대학교 경영학과 강의실 수업은 따분하고 지루했다. 대신 어머니가 준 용돈으로 주식투자를 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명동 증권사 객장을 찾아다니면서 실전 투자를 하는 게 강의실에서 듣는 교수님 수업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눈앞에서 돈이 왔다 갔다 하는 짜릿한 게임이었다. 투자한 기업에 대해서도 공부할 수 있었다.어느 하루 대학생 박현주는 ‘사자’ ‘팔자’로 정신이 없는 명동 객장을 뒤로 한채 하숙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뒤에서 누군가가 “학생! 거기 똑바로 서 봐”라며 박현주를 불러 세웠다.“네? 저요?”회색 승려 옷을 입은 스님은 박현주를 명동 한복판에 세워놓고 한참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러곤 다음과 같은 말을 내뱉곤 홀연히 사라졌다.“너는 앞으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 하도록 해라.”대학생 박현주가 강의실 대신 증권사 객장에서 주식 투자에 열 올리고 있을 때였다. ‘이름도 모르는 스님의 한마디가 그의 인생을 결정짓는 순간이 아니었나’ 하며 박현주는 당시를 기억한다.대학생 박현주의 꿈은 공인회계사(CPA)였다. 당시만 해도 경영학과에 다니면 CPA를 목표로 하는 학생이 적지 않았다. 사회적 지위도 괜찮고, 수입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3년 동안 CPA 공부를 했지만 낙방하고 말았다. 회계학은 할 만했는데 상법 등 법 관련 과목은 영 적성에 맞지 않았다. 회계학 외에 통계학 재무관리 인사관리 조직론 등에 더 흥미가 많았다. 요즘도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통계를 눈여겨본다. 통계청의 인구센서스 발표 자료를 보면서 한국의 미래상을 그려보곤 한다. 많은 것이 통계, 그러니까 수치로 나타나기 때문이다.CPA 시험에는 낙방했지만 당시에 배운 회계학은 박현주가 증권사에 다니고, 이어 창업을 결심하고, 나아가 기업을 확장하는 데 큰 보탬이 됐다. 대차대조표와 손익계산서 같은 재무제표(財務諸表)를 볼 줄 모르는 사람이 좋은 경영인이 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고려대 재학 시절 하숙을 하던 박현주에게 하숙집 선배가 어느 날 툭 던진 말을 그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현주야, 너 관상(觀相)을 봐줄 테니까 나중에 돈 벌면 나한테 10분의 1만 줘라. 너 얼굴 자세히 보니까 돈 아주 많이 벌겠는데?”선배는 당시 주역(周易)에 푹 빠져 있던 사람이었다.“네? 아이고, 무슨 말씀이세요? 나중에 취직해서 저 먹고살기 바쁠 텐데요 뭘.”그러곤 웃어넘겼다. 박 회장은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청년 시절 이 두 장면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명동에서 스친 그 스님은 박현주의 직업을 정해준 셈이고, 하숙집 선배는 그가 백만장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미리 알았을까.박 회장은 “돌이켜보면 내가 증권사에 취직하고 나아가 사업을 하면서 돈을 많이 벌게 될 것이라고 예언이라도 한 것 같은 생각이 들곤 한다”고 회고했다.박현주에겐 ‘투자의 귀재(鬼才)’라는 표현이 늘 따라붙는다.“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잘 맡는다”는 얘기도 박현주에겐 수식어나 다름없다.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에 입사한지 5년 만에 전국 최연소 지점장을 달았고, 입사 10년 만에 강남본부장으로 전국 최연소 이사가 됐다. 여의도 증권가에서 아직도 이 기록을 깬 증권맨은 없다. 주식을 사고파는 매매 실적인 주식약정은 전국 1위에 항상 박현주라는 이름을 올릴 1990년대 중반 그는 잘나가던 증권사에 돌연 사표를 던졌다.39세 때였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은 지극히 아끼던 박현주의 사표를 한사코 만류했지만 그의 사표를 말릴 수 없었다.“회장님, 지금 회사를 나가지 않으면 영영 봉급쟁이로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마흔이 되기 전에 창업해서 제 회사를 갖고 싶습니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평생 후회하면서 산다면 행복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박현주는 당시 동원증권 압구정지점장 구재상(현 케이클라비스 대표)과 서초지점장이던 최현만(현 미래에셋증권 회장)과 함께 동반 사표를 냈다. 이들은 창업 동지이자 ‘박현주사단(師團)’으로 불렸다. 구재상은 운용의 베테랑이었고, 최현만은 관리의 달인(達人)이었다. 이렇게 3인방은 잘나가던 직장을 뿌리치고 힘을 합쳐 창업이라는 미지의 길로 들어섰다. 샐러리맨으로선 최고의 전성기에 창업을 택한 역(逆)발상이었다. 동원증권은 이들의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1년 이상 퇴직금도 지급을 미루는 등 한동안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출발은 단출했다. 서울 강남 한복판인 압구정동에 조그만 투자자문 회사를 차렸다. 직원은 달랑 7명이었고, 자본금 100억 원짜리 회사였다. 자본금은 박 회장의 퇴직금과 사재(私財)를 털었고, 박현주라는 이름을 믿고 외부에서 투자한 돈도 들어 있었다. 회사를 창업한 뒤 행운인지 불행인지 외환위기라는 유래 없는 IMF(국제통화기금) 사태가 터졌다. 원화가치가 곤두박질치고 금리는 하늘 높은 줄 모른 채 치솟았다. 부도나는 회사가 잇따르고 공장들이 문을 닫았다.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잘린 샐러리맨들이 넘쳐났다.가장이 직장을 잃으면서 무너지는 가정도 잇따랐다. 주가가 폭락하고 아파트 값도 폭락했다. 부도난 대한민국의 현주소였다.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상징이던 대우그룹이 마침내 무너졌다. 당시만 해도 고금리 수익증권을 팔던 투자신탁회사의 부실은 곪을 대로 곪은 상황이었다. 모두 내 돈이 어떤지, 안정적인 투자처를 찾아야 했다.이 모든 위기가 박현주에겐 오히려 기회였다. 투자의 패러다임을 바꿀 절호의 찬스를 그는 놓치지 않았다. 투자신탁회사에 대한 불신이 고조되는 무렵 ‘투명한 자산운용’을 내걸고 뮤추얼펀드 돌풍을 일으켰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박현주펀드’를 선보였다.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증권사 객장에서 개미군단을 상대하던 그가 이제는 직접 투자가 아니라 간접 투자로 돌아설 때라고 역설했다.박현주는 서울 조선호텔을 시작으로 부산 서면의 롯데호텔, 광주 파크호텔, 대전 유성호텔 등 전국 주요 도시를 돌면서 투자설명회에 직접 나가 마이크를 잡았다. 왜 지금 뮤추얼펀드인지, 내 돈을 누가 운용하는지 투자자들이 알아야 하는 펀드매니저 실명제 바람이 이때부터 불기 시작했다. 당시 그의 회고를 들어보자.“길거리를 가다보면 돈이 발길에 툭 차일 정도로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투자의 패러다임이 급속히 바뀌고 있는 상황이어서 그만큼 기회가 많았을 때였지요.”조그만 자문사로 출발해 인터넷증권사로 시작한 미래에셋증권은 출범 17년 만인 2016년 여의도 자본시장의 부동(不動)의 1위이던 대우증권을 인수해 자본시장의 ‘메기’가 됐다.자본시장에서 박현주는 주식과 펀드의 대명사였다. 주식브로커로 출발한 그는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주식 투자의 달인이었다. 개별 종목 투자의 위험이 커지면서 개인투자자들이 펀드로 갈아타야 한다면서 내놓은 것이 뮤추얼펀드 1호인 ‘박현주펀드’였다. 자산운용사 설립에 이어 SK생명 인수로 미래에셋생명을 만들고, 이어 대우증권을 인수했다. 미래에셋금융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보면 증권 보험 자산운용 등 3대축으로 짜여 있다.하지만 박현주가 부동산을 보는 눈은 매의 눈처럼 매섭다. 지금은 해외 부동산과 호텔에까지 투자하면서 포트폴리오 범위를 넓히고 있다.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박현주 회장의 부동산 투자는 풍수(風水)학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는 풍수지리라는 것은 땅의 이치에 기반한다고 믿는다. 좋은 땅의 기운이 좋은 자리를 만들며, 같은 땅이라도 나무가 잘 자라지 않는 곳은 좋은 터가 아니라고 한다.“잘 모르는 사람들은 풍수를 주술과 연관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사업가의 관점에서 보면 풍수는 과학에 가까운 개념입니다. 사옥 터를 잘못 정하는 바람에 낭패를 본 기업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죠. 비즈니스를 하면서 제 자신도 풍수에 대한 공부를 꽤 했습니다. 미래에셋 부동산의 역사도 여기서 비켜가지 않았습니다.”뮤추얼펀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2000년 초반 박 회장은 미래에셋 사옥을 서울 여의도 옛 주택은행 본점 건너편의 한국유리 빌딩으로 정했다. 한국의 맨해튼 격인 여의도는 지기(地氣)가 센 탓에 대로변에 위치한 사옥들은 풍파가 심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여의도 국회를 바라보는 쪽에 들어선, 대로변에 위치한 많은 금융회사들이 부도가 나거나 문 닫는 사례가 비일비재(非一非再)했다. 미래에셋의 첫 사옥인 한국유리 건물은 대로변에서 떨어진 곳에 있었다.앞서 미래에셋은 서울 강남의 삼성동에 있는 빌딩을 샀다가 서둘러 매각한 전력이 있었다. 박 회장이 보기엔 건물은 좋았지만 사무실용으로 쓰기엔 적합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한다.지금 본사가 있는 서울 을지로의 미래에셋 센터원 빌딩은 청계천을 바라보는 입지로 과거 주전소(鑄錢所) 터였다. 청계천 공사가 진행될 무렵 매입한 이곳에 빌딩을 세우고 비즈니스를 한 이후 미래에셋의 사업은 번창 일로를 걸었다. 동전을 찍어내는, 다시 말해 돈을 만들어 내는 곳이었던 만큼 돈 벌기엔 딱 좋은 부지라고 한다. 물론 이 결정은 박 회장이 직접 내렸다. 박 회장은 당초 센터원 빌딩 36층에 있는 회장 사무실의 책상이 청와대를 마주 보는 쪽으로 배치된 것을 보고 청와대를 비껴 옆으로 좌석 배치를 바꾸었다고 한다. 권력의 상징인 청와대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은 전망으로선 좋을지 모르지만 강한 기운에 압도될 수 있어 피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서울 광화문 포시즌호텔은 처음에 사옥 부지로 활용하려 했지만 박 회장이 호텔 부지로 바꾸었다. 입지상 오피스로 사용하기엔 적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래에셋의 사옥 입지를 결정할 때는 이처럼 창업주인 박 회장이 직접 현장을 둘러보고 난 후 여러 조언을 받아 최종적으로 이뤄졌다.요즘 박 회장은 틈날 때마다 강원 홍천과 전남 여수 경도, 남해안과 동해안 등지를 둘러보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탐색하고 있다. 해안을 낀 곳에 새로운 해양 도시를 설계하는 꿈을 꾸곤 한다. 서울이 아닌 동해안이나 남해안 등지에 외국인학교나 국제학교를 설립하면서 교육 인프라를 지방으로 분산하면 자연스레 수도권 중심에서 벗어나 지방과의 균형 발전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여수에서 거제까지 남해안을 자동차로 드라이브하면 유럽의 어느 해변 못지않게 아름답습니다. 마치 나폴리 같은 곳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질 때도 있죠. 이런 아름다운 천혜 관광자원을 잘만 개발하면 지역 주민들이 수혜를 보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나가는 관광 수요도 대체할 수 있을 것이고요. 정부가 균형발전 지방분권 얘기만 할 게 아니라 잘 개발될 수 있도록 발상의 전환을 획기적으로 해야 합니다.”미래에셋은 올해 창립 사반세기를 맞았다. 1997년 미래에셋캐피탈로 창업한 지 어느덧 25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것이다. 창업 당시 39세던 박 회장은 이젠 60대 중반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하는 대규모 기업집단 서열에 미래에셋그룹은 20위다. 재벌로 출발하지 않은 회사로 이처럼 고속 성장을 한 전례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박 회장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미래에셋을 100년 기업으로 키워야 할 토대를 만들어놔야 하기 때문이다.슬하에 두 딸과 아들 등 3남매를 둔 박 회장은 세습경영을 하지 않는다고 일찌감치 선언한 상태다. 비즈니스를 하면서 세습을 하는 한국 재벌 오너 2세와 3세 등 후세를 보면서 이들 모두가 행복한 삶을 누리진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목격해 왔던 것이다. 두 딸과 아들에게는 주식을 물려주지만 경영에는 직접 간여하지 않도록 할 방침이다. 대신 1년에 두어 차례 열리는 이사회에 참석해 대주주로서 경영권 참여에 국한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재벌 경영과 전문경영인 체제의 장점을 딴 ‘미래에셋식 경영’이다.많은 인재들이 서로 경쟁해 회사의 전문경영인이 되는 문호를 활짝 열어놓으면서도 전문경영인이 오래하는 폐단을 줄이기 위해 대표이사 정년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재벌 체제는 지양하면서도 재벌 총수가 물러나면 그를 보좌하던 중역들도 자연스레 물러나는 한국 재벌의 과감한 세대교체의 장점을 본받겠는다는 생각이다. 박 회장은 대표이사에 대해 정년제도를 도입해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는다는 생각이다. 대표이사에 정년제를 도입하면 임원들도 자연스레 정년제에 해당할 것이라고 여기는 분위기가 정착될 것이라는 기대다.지난해 말 박 회장은 과감한 세대교체 인사를 단행했다. 젊은 피가 자연스레 조직에 수혈됨으로써 미래에셋을 보다 젊게 가져가야 할 적기로 판단한 것이다. 미래에셋을 100년 기업으로 만들기 위해 유능한 샐러리맨 출신들이 그룹의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기회를 대외적으로 공표한 셈이다. 젊은 피들이 꾸준히 미래에셋을 노쇠하게 하지 않고 역동적으로 이끌어 나가야 100년 기업의 역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박 회장의 경영철학이다. 이를 위해 박 회장을 비롯한 창업 세대들은 뒤로 서서히 물러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한국 기업과 금융회사에서 전문경영인 체제가 오히려 조직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역동성을 저해하는 경우가 적잖았습니다. 재벌 체제의 좋은 점은 따오고 전문경영인 시스템의 장점도 배합해 미래에셋만의 새로운 지배구조를 만들어 나갈 생각입니다.”최영해 기자 [email protected]

글로벌 약세장에…박현주 회장이 던진 화두는

25년간 투자 외길…’금융의 삼성전자’ 꿈 이룬 승부사

박현주 회장은 업계에서 ‘은둔의 구루’로 불린다. 해외 출장이 잦고, 국내에 머무는 동안에도 언론 인터뷰 등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본인 스스로도 ‘무명(無名)하게 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하지만 그의 눈은 늘 사회로 향해 있다. 한국 사회가 어떻게 새로운 성장 스토리를 쓸 수 있을지 고민한다.그룹 관계자들 이야기를 종합하면 최근 박 회장이 붙잡고 있는 화두는 크게 두 가지다. 대내적으로는 지역 불균형 해소, 대외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촉발한 세계 경제 블록화다. 지나친 서울 집중을 완화하지 않는 한 한국 경제의 미래는 밝지 않다는 게 박 회장 생각이다.’미국·유럽’ 대 ‘중국·러시아’라는 큰 축을 중심으로 경제 블록화가 진행되고 있는 현재 상황은 또 다른 고민거리다. 박 회장이 생각하는 대응 방안은 국내 기업들이 더 많이 투자하고 성장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특히 중국과 관련해 그는 “제조업과 벤처가 강하고 반도체를 제외한 나머지 분야에서 글로벌 톱티어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절대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 것으로 전해졌다.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6개월 전인 1997년 7월 1일, 박현주 전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 강남본부장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자그마한 사무실을 빌려 벤처캐피털 회사를 차렸다. 회사 규모는 단출했다. 함께한 직원은 달랑 7명이었고, 회사 자본금은 100억원이었다. 박 전 본부장은 본인 퇴직금과 사재를 털고 투자자의 돈도 보태 자본금을 마련했다. 거기에는 그의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사뒀던 땅을 판 돈도 포함돼 있었다.가진 것은 많지 않았지만, 든든한 창업 동지들과 함께였기에 자신감은 충만했다. 그와 함께한 구재상 압구정지점장은 내로라하는 운용 전문가였고, 최현만 서초지점장은 관리의 달인이었다. 무엇보다 박 전 본부장 본인이 투자의 귀재였다. 그를 두고 사람들은 “돈 냄새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맡는다” “늘 돈이 따라붙는다”며 혀를 내둘렀다.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대학생 시절부터 명동 증권사 객장을 누비며 주식 투자를 하는 것을 즐겼다. 명동에서 청년 주식 투자 전문가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다. 동양증권(현 유안타증권)에 입사한 지 3개월 만에 대리로 승진하고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으로 자리를 옮긴 뒤 서른두 살 때 서울 중앙지점 지점장으로 승진하며 전국 최연소 지점장 타이틀을 거머쥐는 등 일찍부터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승승장구하던 그는 ‘마흔이 되기 전에 내 회사를 가지고 싶다’며 돌연 사표를 던졌다.이렇게 탄생한 미래에셋은 사반세기 만에 자기자본 17조3000억원을 갖춘 거대 금융그룹으로 성장했다. 7명이었던 직원 수는 미국, 영국, 홍콩, 중국 등 해외 법인과 사무소를 포함해 지난해 말 기준 1만2451명으로 늘었다. 25년 만에 자기자본은 1730배, 직원 수는 1778배가 됐다. 미래에셋증권 등 계열사 고객 자산 합계는 770조원이 넘는다.박 회장은 동물적인 투자 감각으로 미래에셋그룹을 글로벌 투자금융회사로 키웠다. 업계 최초의 기록도 숱하게 세웠다. 1998년 국내 최초의 뮤추얼 펀드 ‘박현주1호’를 출시했고, 2001년에는 국내 최초의 개방형 뮤추얼 펀드를 선보였다.회사 성장 과정에서 위기도 많았지만 박 회장은 특유의 승부사 기질로 극복해냈다. “기회는 늘 위기의 얼굴로 찾아온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창업 반년 만에 외환위기를 맞이하자 우량 주식을 사고 채권에 투자해 큰 수익을 올렸고, 투자신탁회사들이 부실에 빠지며 투자자의 불신이 고조되자 ‘투명한 자산운용’을 내걸고 뮤추얼 펀드 돌풍을 일으켰다.2000년대 초 정보기술(IT) 버블 붕괴로 증시가 급락하면서 다시 한번 시련을 맞았지만 이를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았다. 선진 금융시장 연구를 위해 떠난 미국 유학에서 글로벌 금융그룹으로서의 미래에셋 청사진을 완성한 것. ‘금융의 삼성전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도 이 시절이었다. 박 회장은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이듬해인 2003년 미래에셋자산운용 홍콩법인을 설립하며 글로벌 진출의 꿈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미래에셋그룹 성장사의 하이라이트는 대우증권 인수였다. 당시 미래에셋증권은 경쟁자들보다 2000억원 이상 많은 2조4000억원을 인수가로 제시했다. 2015년 말 대우증권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뒤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박 회장은 “이병철·정주영처럼 불가능에 도전하겠다. 한국 금융산업과 자본시장의 DNA를 바꿔보겠다. 미래에셋그룹을 세계적인 금융회사로 도약시키겠다”고 했다. 당시 박 회장의 다짐은 하나씩 현실화되고 있다. 특히 해외 경영 성과가 두드러진다.미래에셋은 국내 금융그룹 중 해외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의 경우 지난해 해외 법인에서 거둔 순이익이 2432억원으로 우리·하나·KB국민은행보다 많고 시중은행 1위인 신한은행(2568억원)과 맞먹는다. 지난해 국내 증권사가 거둬들인 해외 현지법인의 당기순이익(3627억원) 중 67%를 미래에셋증권이 차지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지난해 1분기 국내 금융사 최초로 해외 법인의 순이익이 국내 법인을 넘어서는 기록을 세웠다.해외 금융영토 확장에서도 두드러진 성과를 내고 있다. 미국, 영국 등 세계 경제의 중심인 영미권은 물론 중국, 홍콩 등 중화권과 브라질, 인도, 베트남 등 이머징 국가에도 진출하는 등 전 세계 15개 지역에 34개 법인과 사무소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했다.글로벌 인수·합병(M&A)에서도 잇달아 성과를 내고 있다. 2011년 액티브 상장지수펀드(ETF) 강자인 캐나다 운용사 ‘호라이즌스(Horizons) ETFs’를 인수했으며 2018년에는 미국 ETF 시장의 신흥 강자로 주목받고 있는 ETF 운용사 ‘글로벌엑스(Global X)’를 인수했다. 당시 10조원에 불과했던 글로벌엑스의 운용자산 규모는 얼마 전에 50조원을 돌파했다. 또 최근에는 호주 ETF 운용사 ‘시큐리티스(Securities)’를 인수했다. 이는 국내 금융사가 해외에서 번 돈을 해외에 재투자한 첫 M&A 사례다.”해외로 나가 돈을 벌어오는 것이 미래에셋의 존재 의의”라고 강조하는 박 회장은 매년 300개 이상의 딜을 검토한다. 현재 국내 경영 일선에서는 한발 물러나 있지만 수시로 해외 곳곳을 방문해 투자 대상을 살피고, 현지 전문가들과 만난다. 박 회장은 “비행기를 타는 게 싫어 제주도도 가기 싫다”고 말할 정도로 해외 출장이 잦다. 박 회장의 해외 출장이 마무리되면 굵직한 M&A 소식이 들려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글로벌엑스와 시큐리티스 인수 모두 박 회장의 해외 출장으로 얻은 선물이었다는 게 업계 얘기다.▶▶1958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광주일고와 고려대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경영학 강의를 수강하던 중 ‘자본시장 발전 없이 자본주의는 발전할 수 없다’는 말을 들은 것을 계기로 일찍부터 증권업과 투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동양증권과 동원증권을 거쳐 1997년 미래에셋을 창업했다.2016년 대우증권을 인수해 미래에셋증권과 합병했다. 현재 미래에셋증권 홍콩법인 글로벌 회장 겸 글로벌경영전략고문(GISO)을 맡으며 인수·합병(M&A) 등 해외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노현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천자 칼럼] 박현주 회장의 글로벌 질주

미국이 인권을 외교 정책의 중심에 두기 시작한 것은 베트남 전쟁과 워터게이트 사건 등으로 정치적·도덕적 이미지가 추락한 1970년대 초중반부터다. 1973년 민주당 주도로 대외원조와 수혜국의 인권을 연계하는 ‘해외원조법안’을 만들었고, 이 법에 근거해 미국 국무부가 1977년부터 매년 발간하고 있는 유엔 회원국 대상의 인권 실태 평가서가 바로 ‘연례 국가별 인권보고서’다. 각국 미국대사관 직원들이 현지에서 얻은 정보를 토대로 작성해 미 의회에 보고하고, 외부에도 공개한다.인권보고서는 미국 정부의 외교, 대외 경제 정책의 중요한 근거 자료로 활용된다. 언급된 국가들은 상당한 압박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 중요성은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 더욱 커졌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반작용으로 바이든 대통령이 인권을 외교의 핵심으로 재소환해서다.작년 보고서는 미국 역대 정부에서 작성한 인권보고서 중에서 가장 신랄하다는 평가다. 특히 한국은 동맹국임에도 불구하고 전례 없이 인권과 사회 부패에 대해 조모조목 가시 돋친 지적을 받았다. ‘표현의 자유 제약’을 언급하며 대북 전단 금지법을 적시했다. 또 ‘조국 일가 입시비리’와 윤미향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위안부 기금 유용’ 사건을 대표적 부패로 꼽았다. 성희롱도 중요한 사회문제였다고 하면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 사례를 들었다. 이른바 진보정권이라고 하면서 북한 인권결의안 공동 제안국에는 3년 연속(올해로 4년째) 불참하고, 여권 인사들의 인권 침해에 대해선 ‘내로남불’로 일관한 문재인 정부를 바라보는 워싱턴의 시각이 그대로 투영됐다는 해석이다.작년 상황을 다룬 올해 보고서에는 ‘조국 사례’가 3년 연속 단골 메뉴로 올랐고, 급기야 대장동 사건까지 대표 부패 사건으로 지목됐다. 보고서는 “화천대유가 (성남)시 당국자들과 공모하고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제공했다는 혐의가 제기되고 있다”며 “화천대유와 관련 업체는 초기 투자의 1000배가 넘는 이익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고 했다.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에서 1000배 이익을 보장하는 대형 뇌물 사건이 터졌으니, 국제적으로도 망신살이 뻗쳤다. 내년 보고서에도 대장동 사건은 포함될 것이 확실시된다. 그나마 철저한 수사로 진상 규명과 관련자 처벌이 제대로 이뤄졌다는 내용이라도 포함되면 오명을 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윤성민 논설위원 [email protected]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12년 연속 배당금 전액 기부

미래에셋은 박현주 회장이 2021년도 미래에셋자산운용 배당금을 전액 기부한다고 31일 밝혔다.

박현주 회장은 지난 2010년부터 미래에셋에서 받은 배당금을 전액 기부하고 있다. 올해 기부하는 배당금은 16억원이다. 12년간 누적기부액은 총 282억원에 달한다.

기부금은 미래에셋박현주재단을 통해 장학생 육성 및 사회복지 사업에 사용된다. 박현주 회장은 2008년 직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2010년부터 배당금 전액을 이 땅의 젊은이들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대표적으로 ‘미래에셋 해외 교환 장학생’ 프로그램은 한국 인재들이 넓은 세계에서 지식 함양 및 문화적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학비와 체재비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교환학생 장학사업이다. 지난 2007년부터 현재까지 총 6017명의 대학생을 전세계 50개국으로 파견했다. 장학사업 프로그램 전체 참가자는 1만명이 넘는다.

또한 미래에셋박현주재단과 계열사는 ‘글로벌리더 대장정’, ‘글로벌 문화체험단 등 인재육성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전체 참가자는 36만명이 넘는다.

한편 미래에셋박현주재단은 2000년 박현주 회장이 사재 75억원을 출연해 설립했다. 설립부터 현재까지 꾸준하게 인재육성 중심의 사회공헌사업을 전개하며 ‘배려가 있는 자본주의 실천’을 위한 나눔문화를 확산하고 있다.

박현주 회장, 배당금 16억원 미래에셋박현주재단에 기부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미래에셋자산운용의 2021년도 배당금 16억원 전액을 미래에셋박현주재단에 기부했다고 31일 밝혔다.

박 회장은 2010년부터 미래에셋자산운용 등에서 받은 배당금을 전액 기부해왔다.

기부금은 미래에셋박현주재단을 통해 장학생 육성, 사회복지 사업 등에 쓰인다.

[Who Is ?]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 박현주 미래에셋자산운용 사장(앞줄 오른쪽)과 홍인기 증권거래소 이사장(앞줄 왼쪽)이 1999년 2월8일 증권거래소 신관대회의실에서 ‘미래에셋 코스피 200 인덱스펀드’의 상장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는 뮤추얼펀드 최초 상장이다. <연합뉴스>

권오용의 재계춘추(財界春秋)(32)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도전을 통한 성장

– ‘앞으로 달려가면 바람 없어도 바람개비는 돌아간다’

– 금수저 아닌 자수성가형…‘배려가 있는 자본주의’ 지향

– 한국 금융산업의 글로벌 강자 도약 선봉역할 기대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증권회사의 잘나가는 임원으로서의 순탄한 앞날이 보장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창업의 길을 택해 끝없는 도전으로 오늘날 국내 최대를 넘어 아시아 톱3 금융투자회사를 일궈냈다. (사진=미래에셋)

미래에셋그룹 창업자 박현주 회장은 대학시절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 1980’을 열번이상 통독했다고 한다. 이 책을 통해 그는 미래라는 말에 매료됐다. 또 대학 2학년 때부터 주식투자를 했다. 큰 돈은 아니었지만 자신만의 판단으로 투자의 매력을 체험했다. 그리고 자본시장의 발달없이 자본주의의 발전도 없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미래와 자본, 평생의 명제가 된 두가지의 믿음을 실현하기 위해 박 회장은 끊임없이 도전했다. 중견 증권사 임원으로서 순탄한 앞날이 보장된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 1997년 미래에셋 캐피털과 미래에셋 투자자문을 설립했다. 박 회장은 당시 심경을 “첫 눈에 첫 발을 내딛는 마음과 같았다”고 했다. 그리고 역경에 굴하지 않는 방법은 초심을 다지며 미래를 향해 나아갈 뿐 이라는 의지로 도전하며 성장했다.

1998년 국내최초의 뮤추얼펀드인 ‘미래에셋 박현주 1호’를 출시했다. 이 펀드는 주식형으로 최대 1년만기의 폐쇄형 펀드였다. 박현주의 명성을 기대한 투자자들은 500억원 한도의 이 금융상품을 2시간만에 완판시켰다. 박 회장은 1년뒤 80%라는 높은 수익률로 투자자들의 믿음에 보답했다.

1999년에는 미래에셋증권을 설립했고 2005년 SK생명을 인수한 미래에셋생명으로 퇴직연금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2017년에는 PCA생명을 인수, 대형 생보사로 키웠다.

미래에셋은 지난 2011년 캐나다 최대 ETF(상장지수펀드) 운용사 호라이즌 베타프로를 인수, 북미시장 진출을 본격화했다. 사진은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토론토증권거래소(TSX)에서 인수계약을 체결한후 호라이즌 베타프로 회장 등 관계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미래에셋)

“2020년까지 자기자본 10조원, 세전이익 1조원, 자기자본이익률(ROE) 10%를 달성하겠다.” 2015년 KDB대우증권 인수전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박회장은 이렇게 당찬 포부를 밝혔다. 그리고 자신의 구상을 2021년 상반기에 모두 달성했다.

박 회장은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2021년 미래에셋그룹 전체 자기자본은 17조원을 돌파하고 세전이익은 2조3000억원 가량이라며 앞으로 자기자본 30조원을 돌파하는 시점은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했다. 멈추지 않는 도전이 만들어낸 성과였다.

대우증권 인수이후 미래에셋증권은 국내 1위를 넘어 아시아 톱3 IB(투자은행)로 발돋움했다. 자기자본 기준으로 일본 1위 노무라증권은 30조원, 2위 다이와 증권은 14조원에 이른다. 다이와증권은 1920년에, 노무라증권은 1925년에 설립됐다. 미래에셋증권은 100년 역사를 보유한 아시아 유수의 증권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반열에 올랐다.

이제 미래에셋은 아시아를 넘어 글로벌 투자그룹으로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무엇보다 덩치가 커진 만큼 자기자본이익율(ROE) 제고를 통해 은행과 차별성을 키우는 초대형 금융회사로 커 나가야 한다. 미국의 대형IB인 JP모건, 모건스탠리 등은 100조원이 넘는 자기자본에도 ROE가 10%를 상회하고 있다.

미래에셋은 2020년 8.94%로 비교적 양호한 ROE를 달성했지만 자본이 늘어날수록 수익률 제고 부담도 커진다. 미국에서 주식 소수점 거래 등 혁신에 앞장선 찰스슈와브는 미래에셋증권과 비슷한 연매출 100억달러(약 11조원)를 올리면서도 14.2%에 달하는 높은 ROE를 기록했다.

또한 인수합병(M&A)이나 기업공개(IPO)시장에서 전문서비스를 제공하고 높은 수익을 올리는 기업투자 비즈니스 모델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박 회장은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은 금수저 출신이 아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맨손으로 기업을 일군 자수성가형이다. 그가 ‘배려가 있는 자본주의’를 사회공헌의 테마로 잡은 배경이다.

이를 위해 1998년 미래에셋 육영재단을 세우고 2000년에는 사재 75억원을 출연해 미래에셋 박현주 재단을 출범시켰다. 2021년 기준 해외 교환 장학생 5939명, 국내 장학생 3578명, 글로벌 투자전문가 장학생 등 총 9641명의 학생이 미래에셋의 지원을 받았다. 또 재단의 장학사업과 글로벌 문화체험, 경제 및 진로교육 등 인재육성 프로그램에 32만명이 넘는 학생이 참가했다.

샐러리맨의 신화, 스타 주식브로커, 한국 자본시장의 개척자, 최고의 금융전문가 등등…. 박현주 회장의 앞에는 그동안 수많은 수식어가 붙어왔다. 그는 ‘도전을 통한 성장’을 자신의 경영 철학으로 정하고 끊임없이 부딪혔다.

박 회장은 “바람이 불지 않는데 바람개비를 돌리는 방법은 앞으로 달려가는 길 뿐”이라고 했다. 국내 최고의 지점을 만든 영업감각, 최연소 증권사 임원으로서의 현장 안목, 자기 이름을 딴 국내 최초의 금융상품 출시라는 책임의식, 명실상부한 국내 최초의 글로벌 금융기업이라는 비전. 박현주 회장의 도전을 통해 우리는 미래 한국 금융산업의 글로벌 강자 도약이라는 청사진을 그려본다.

권오용은

고려대를 졸업했으며 전국경제인연합회 국제경제실장•기획홍보본부장, 금호그룹 상무, KTB네트워크 전무를 거쳐 SK그룹 사장(브랜드관리부문), 효성그룹 상임고문을 지낸 실물경제와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다. 현재 공익법인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로 기부문화 확산과 더불어 사는 사회 분위기 조성에 힘쓰고 있다. 저서로는 대한혁신민국(2015), 권오용의 행복한 경영이야기(2012),가나다라ABC(2012년), 한국병(2001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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