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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살바도르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엘살바도르 공화국(스페인어: República de El Salvador, 영어: Republic of El Salvador, 문화어: 엘쌀바도르)은 중앙아메리카에 있는 공화국이며 수도는 산살바도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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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5/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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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살바도르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엘살바도르는 전통적으로 중미 중심의 대외정책기조에 따라 중미제국과의 국제적 협동관계증진에 노력 및 중미통합을 외교정책의 기조로 삼고 있으며, 북미시장에 치중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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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encykorea.aks.ac.kr

Date Published: 11/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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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살바도르 – 국가/지역별 정보 > 외교부 해외안전여행

대사관 연락처. ㅇ 주소 : Calle El Mirador y 87 Av. Norte, Torre Futura, Nivel 14, Local 05, Col. Escalón, San Salvador, El Salvad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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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0404.go.kr

Date Published: 12/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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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도 못 들어가는 엘살바도르 슬럼가 여행기 🇸🇻 [6] 세계여행 엘살바도르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엘 살바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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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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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살바도르 공화국(스페인어: República de El Salvador, 영어: Republic of El Salvador, 문화어: 엘쌀바도르)은 중앙아메리카에 있는 공화국이며 수도는 산살바도르이다. 면적은 2만 1,041km2로 대한민국 경상북도 정도의 크기이며, 인구는 651만 5,000명(2003년)이며, 인구밀도는 309.6명/km2(2003)이다. 공용어는 스페인어이다. 스페인어권 나라 중 유일하게 나라 이름에 정관사(el)를 붙인다.

역사 [ 편집 ]

스페인 식민지와 독립 [ 편집 ]

마야 문명권에 속하였지만, 화산 분화 이후 기존의 주민이 피난하고, 남은 자들은 작은 부족 국가를 이루었으나, 1524년에 에르난 코르테스의 침략으로 정복되었다. 엘살바도르(El Salvador)는 스페인어로 ‘구세주’라는 뜻으로 페드로 데 알바라도 장군이 산맥을 넘어 이 땅에 도달한 뒤 구세주께 감사하라고 하여 명명하였다. 스페인의 지배 이후 과테말라 총독의 관할하에 놓였으나, 19세기 중·남미에 자유주의의 바람이 불면서 독립운동의 기운이 높아졌다. 1821년에 과테말라가 독립하자, 엘살바도르 지역도 스페인의 지배에서 해방되었다. 과테말라와 온두라스, 니카라과, 코스타리카 등과 함께 중앙아메리카 연방 공화국을 결성하였으나, 각자의 입장 차이와 이권 다툼으로 연방은 와해되고, 엘살바도르 공화국으로 독립한다. 그러나 이후 내전과 군인들이 국민들을 박해하는 군사 독재가 이어지면서 정국이 줄곧 혼미한 상태가 된다.

군사독재정권 [ 편집 ]

20세기에 들어서도 쿠데타가 빈번하여 세계 경제 대공황기에 집권한 마르니테스 군사독재정권 기간에는 3만 명에 달하는 국민이 국가폭력으로 학살당했다. 1944년 다시 쿠데타로 마르니테스 정권은 붕괴하였으나, 이후에도 쿠데타로 정권 교체가 계속되었다. 혼란의 와중에서 많은 사람이 주변 각국 및 미국으로 경제 이민이 되어 떠나가 엘살바도르인의 해외 인구 비율은 세계적으로 높은 편에 속한다. 1969년에는 국경 분쟁 및 온두라스로 유입된 엘살바도르인들의 지위 문제 등 알력이 있었던, 온두라스와 축구 시합을 계기로 축구 전쟁이 벌어졌다.

1980년대에는 좌파 계열의 인민 해방 전선과 소수의 군인정치가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지주들이 폭력으로 국민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우파 군사 독재 정권[1] 간에 내전이 발생한다. 당시 레이건 행정부의 미국은 엘살바도르 군사 독재 정권을 지원하였는데, 전투 및 우파 정부군에 의한 민간인 살상 등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또한 사회 구원을 강조하는 설교[2]로 기독교인의 민주화 운동 참여를 격려해 온 로메로 대주교도 군사 독재 정권에 의해 암살당한다.[3][4] 이 시기의 엘살바도르와 대주교 암살 사건은 올리버 스톤 감독의 《살바도르》로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1970년쯤에는 온두라스와 축구 전쟁이 벌어지고 이 전쟁에서 이긴 엘살바도르가 본선에 진출했다.

정치적 안정 [ 편집 ]

이후에도 휴전과 내전의 지리한 공방전이 계속되다가 1992년 유엔의 중재로 양측의 평화조약이 체결된다. 이후 한동안 평화 유지군이 파견되었다. 그 후 군사 투쟁을 벌이던 인민 전선도 정규 정당으로 편입되는 등, 1990년대 이후의 정치는 겨우 안정세로 돌아섰다.

지리 [ 편집 ]

서쪽으로 과테말라, 북·동쪽으로 온두라스에 접하며, 남쪽으로 태평양에 면한다. 중미에서 유일하게 대서양(카리브해)과 맞닿아 있지 않은 국가이며, 중미에서 가장 좁은 면적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멕시코를 제외한 중미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한 국가이다. 인구 조밀도도 중미 최고여서, 엘살바도르인의 근면한 이미지와 아울러 중미의 일본이라 부르기도 한다. 좁은 국토에 산악 지형으로 이용 가능한 토지자원, 혹은 지하자원이 거의 없어, 이용 가능한 토지 전부와 산까지 농업용으로 개간하고 있기 때문에, 환경 파괴가 심각한 국가이다. 지진 및 화산활동이 활발한 곳으로 심각한 자연재해도 종종 입는다. 그러나 화산 인근의 화산재 토양이 농업에 적합한 비옥한 토지이기에 인구가 모여살 수밖에 없어, 주민의 불안한 생활이 계속되고 있다.

기후 [ 편집 ]

적도와 가까워 아열대 기후에 속해 있다.

행정 구역 [ 편집 ]

엘살바도르의 지도

헌법에 따라 14개 주(departamentos)로 나뉘어 있다. 14개 각 주는 다시 262개 지구(municipios)로 나뉜다. 각 주와 주도는 다음과 같다.

정치 [ 편집 ]

엘살바도르는 다당제(실질적으로는 양당 중심 체제)의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다. 2019년 6월 1일에 취임하여 현재까지 나이브 부켈레가 대통령이다. 주요 정당은 내전 기간 중 우파 정부를 향해 무장 투쟁을 전개했던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fmln)등이다. 오랫동안의 독재와 내전을 거쳤기 때문에, 정국이 불안정한 국가의 이미지가 강하다. 엘살바도르 정치의 근본적인 문제는 식민지 시대의 지배 계층인 스페인계 소수 백인의 후손인 지주 계층이 토지를 절대 독점하고 있기 때문인데, 특히 “14가문”이라 부르는 이들이 나라의 부와 권력을 사실상 틀어쥐고 있다.

인구와 주민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엘살바도르의 인구 입니다.

대다수의 주민(90%)이 메스티소(백인과 인디오의 혼혈)이며, 나머지는 백인(대부분이 스페인 출신, 나머지는 포르투갈, 이탈리아, 프랑스 출신) 9%와 인디오 1%이다. 인구 밀도는 과밀의 정도가 아니라 포화 상태에 이르고 있어, 국외로의 인구 유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인구 증가율도 3%를 넘는다. 내전 기간 중에 많은 엘살바도르인이 미국으로 이주하였고, 내전이 종식된 현재도 국외 유출 인구는 꾸준히 늘고 있다. 노동 인구의 약 30%가 농업에 종사한다(1999년).

경제 [ 편집 ]

엘살바도르는 중미에서는 공업이 가장 발달하였으나, 농업이 여전히 국가 경제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주요 재배 작물은 커피, 사탕수수, 면화 등이며 미국계 거대 곡물 자본도 진출해 있다. 농업 생산량은 국내의 과밀한 인구의 수요를 충족하지 못하여, 부족분을 수입하고 있다. 해외 거주 엘살바도르인이 국내에 보내오는 송금도 국가 경제의 중요한 바탕이 되고 있다. 산업 시설은 수도인 산살바도르에 집중되어 있어 산살바도르 지역은 공해 및 지방에서 밀려드는 빈민 계층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고, 지방은 저개발 농업 지역으로서 지역 불균형 발전도 심각하다. 1인당 국민 소득은 4,700달러 정도이다. 독자 화폐 단위인 콜론을 1919년부터 2001년까지 사용하였으나, 그 후 미국 달러를 자국의 기축통화로 도입하였다.

언어 [ 편집 ]

공용어는 스페인어이다. 다수의 아메리카어는 식민 통치 이후 소멸했고, 소수의 원주민은 나후아틀어를 사용하나, 이웃의 과테말라에 비하여 그 숫자가 많지 않으며, 전 인구의 1% 미만에 불과하다. 교육받은 사람은 영어를 할 줄 아나, 관광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방문객이 자주 찾는 산살바도르의 큰 호텔을 제외하고는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으므로, 방문 시에는 기본적인 스페인어가 필수이다. 엘살바도르에서 사용되는 스페인어는 중앙 아메리카 스페인어의 일부로서, 지리상의 근접에도 불구하고 멕시코보다는 콜롬비아쪽에 더 가깝다. 소통에는 문제가 없으나, 사용하는 특정 어휘에 나라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으며, 너(tu)를 vos라고 하는 등, 기본 어휘에 차이가 있는 경우도 있다. 다른 중앙아메리카 국가와 달리 엘살바도르에서만 사용되는 칼리체라는 슬랭이 유명하다.

대외 관계 [ 편집 ]

유엔과 미주기구연합, 중미공동시장, 중미의회, 중미안보위원회, 세계무역기구 등의 회원국이다. 과거에는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을 승인한 적이 있었다. 이웃나라 온두라스와는 축구 경기로 전쟁을 치렀고 국경 분쟁도 잦았으나, 국제사법재판소로 넘어가기 전에 평화조약을 채결하였다. 미국과는 국방 및 경제 분야에서 강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 1962년에 대한민국과 수교하여, 대략 300명가량이 체류해 있으며, 순수 교민은 30명 정도이다.

문화와 스포츠 [ 편집 ]

종교는 가톨릭 45%, 개신교 35%이고 엘살바도르인들은 축구를 매우 좋아하며, 이외 배구와 야구 등을 널리 즐긴다.

교육 [ 편집 ]

국민의 문해율이 84%에 달하는 등, 문맹율이 낮고, 높은 교육열을 자랑하며, 고등교육까지 학비를 면제한다.

각주 [ 편집 ]

↑ 미국의 후터라이트 엘살바도르 목사 이자 부르더호프(형제)공동체 장로인 한스 크리스토프 아놀드가 쓴 《시련을 넘어 천국을 본다》(미션툴)에는 엘살바도르 군사 독재 정권과 로마 가톨릭교회 의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나와 있는데, 당시 엘살바도르 군사 독재 정권은 소수의 군인정치가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지주들이 권력과 부를 독점한 과두 정부였고, 대부분 지주 계급으로 구성된 과두 정부에 의해 많은 농민이 학살당하거나 난민이 되었다.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 지도자인 오스카르 아르눌포 로메로 대주교 는 그를 지지한 사제 들과 함께 군사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였다. ↑ 엘살바도르 로메로 대주교는 기독교인 에게 “구원은 죽어서 피안의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닌,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키는 것이다.”라고 설교하며 기독교인들의 민주화 운동 참여를 독려하였다. 또한 미사중에 강론할 때마다 군사 독재 정권을 비판했다. ↑ 이강혁 <라틴아메리카역사 다이제스트100> 가람기획 2008 p421 ↑ [네이버 지식백과] 오스카 아르눌포 로메로 [Oscar Arnulfo Romero] (두산백과)

정식 명칭은 엘살바도르공화국(Republic of El Salvador)이며, 중앙아메리카 5개국 중 카리브해에 면해 있지 않고 태평양에만 면해 있는 유일한 나라로, 해안선의 길이는 307㎞이다.

면적은 2만 1041㎢, 인구는 614만 1350명(2015년 현재), 수도는 산살바도르(San Salvador)이다. 종족구성은 메스티조 91%, 백인 25%, 인디언 3%이며, 공용어는 스페인어이다. 종교는 가톨릭교가 70%, 개신교 25%, 기타 5%이다.

기후는 온화한 열대성기후이며, 국토의 90% 이상이 화산활동으로 생성되었다. 산업은 전형적인 농업국이었으나 1960년대부터 공업국으로 성장하여 중미에서 세 번째의 경제선진국으로 발전하였다.

엘살바도르는 전통적으로 중미 중심의 대외정책기조에 따라 중미제국과의 국제적 협동관계증진에 노력 및 중미통합을 외교정책의 기조로 삼고 있으며, 북미시장에 치중된 수출구조의 다변화를 위해 대유럽시장 개척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

2015년 현재 국민총생산은 215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3,958달러이다.

이 나라의 정체는 임기 5년의 대통령 중심제의 공화제이며, 의회는 임기 3년의 단원제(84석)이다. 주요 정당은 민족공화동맹(ARENA), 민족해방전선(FMLN), 기민당(PDC), 민족화해당(PCN) 등이다.

엘살바도르(El Salvador)

통계 자료

국명 : 엘살바도르 공화국(Republic of 띠 Salvador)

면적 : 20,752 sq km

인구 : 5,900,000 (인구 성장률 1.8%)

수도 : 산 살바도르 (San Salvador 인구 493,000)

인종 : 메스티조 94%, 인디언 5%, 유럽인 후손 1%

언어 : 스페인어, 몇몇 나우아(Nahua)어

종교 : 로마 카톨릭 75%, 개신교 20%

정체 : 공화제 지리 및 기후

엘살바도르는 중미의 태평양 연안에 위치한 작은 나라로 미국의 매사추세츠 주 정도의 크기이다. 서쪽으로는 과테말라, 북쪽과 동쪽으로는 온두라스 그리고 남쪽으로는 태평양에 면해 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엘살바도르는 녹색 수풀이 우거지고 구름에 가리워진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다. 25개 넘는 사화산은 국토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고 가장 큰 것은 산 살바도르(San Salvador)와 산 빈센테(San Vincente), 산타 아나(Santa Ana), 산 미구엘(San Miguel)에 있다. 대부분의 국토가 경작지로 활용되어 오직 6%만이 숲으로 남아있으며 커피는 고산지대, 설탕은 저지대, 목화는 연안 평원을 덮고 있다. 미 대륙 내에서 환경파괴 정도가 가장 심한 엘살바도르는 특히 중남미 국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환경 보호 법률이 제정되지 않은 나라라는 점에서 아름다운 자연을 잃을 위험이 높은 나라이다. 이 나라의 많은 강들은 오염으로 고통 받고 있으며 이런 속도로 가면 10년에서 15년 사이에 식수가 고갈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비록 산업 개발이나 호텔 개발이 주요한 환경파괴 요인이지만 눈에 보이는 가장 큰 문제는 쓰레기이다. 높게 원을 그리며 날고 있는 독수리는 도로 옆 어디에 새롭게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싸였는지를 말해주는 표시이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살고 있은 동물들로는 케찰, 투칸, 원숭이, 흰꼬리 사슴, 그리고 수많은 나비들이 있다. 그러나 엘살바도르에는 90종의 멸종위기 동물이 있으며 그 중에는 바다 거북이와 아르마딜로가 포함된다. 엘살바도르의 기후는 우기와 건기로 크게 나뉜다. 우기(5월에서 10월)에는 일반적으로 매일 저녁에 소나기가 쏟아진다. 11월에서 4월까지는 건조하고 먼지가 많다. 낮 동안의 기온은 거의 변하지 않으며 11월에는 대략 30도, 3월과 4월에는 34도까지 오른다. 연안 저지대는 다른 지역보다 더 덥다. 산 살바도르는 해발 680m 높이에 있어서 다른 지역보다 적당한 기후를 가지고 있지만 역시 꽤 습기가 많은 편이다. 역사

엘살바도르 서부의 챨츄아빠(Chalchuapa) 근처에서 발견된 거대한 석조 두상인 올멕 두상은 대략 BC 2000년경부터 이 지역에 올멕의 영향이 미쳤다는 증거를 보여준다. 또한 타수말(Tazumal)과 산안드레스(San Andres)에서 발견된 계단식 피라미드 유적을 통해 엘살바도르 서부에 천년 이상 마야 문명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나라 동부에서 살던 부족들로는 쵸르티(Chorti),렌카(Lenca), 포코마메(Pok’omame)등이 있다.스페인인들이 16세기에 이곳에 도착했을 때 이곳은 멕시코 부족인 나후아어족 똘떽(Toltec)과 아스떽(Aztec)인들의 후손인 피필인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피필은 마야 왕조가 무너지고 곧바로 11세기에 엘살바도르 중앙으로 이주해왔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들의 문화는 아스떽 문명과 흡사하였고 마야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며 옥수수를 기반으로 한 농경 경제를 통해 여러 도시와 상형문자나 천문학, 수학 등을 포함한 복잡한 문명을 유지하였다.스페인은 1525년 이 지역에 도착한 페드로 데 알바라도(Pedro de Alvarado)를 통해 영유권을 주장했다. 스페인인들은 이 지역에 목화, 발삼, 인디고 농장을 발전시켰다. 1700년대를 통해 농업이 성행하였으나 토지 대부분은 14개의 유럽 엘리트 가문에 의해 지배되었고 토착민과 아프리카로부터 수입된 노예를 부려 경작케하였다.국부인 호세 마티아스 델가도(Jose Matias Delgado)는 1811년 스페인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지만 곧 진압되었다. 이듬해 나폴레옹의 스페인 침입은 개혁을 촉진시켰고 엘살바도르는 결국 1821년 독립을 쟁취했다. 그러나 독립도 토지 소유의 구조를 바꾸지는 못했으며 이 문제는 아나스타시오 아끼노(Anastasio Aquino)가 이끈 1833년 실패한 인디언 반란의 주요 쟁점이었다. 1841년 중앙 아메리카 연방(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온두라스, 니카라과 사이에 형성된 연합)이 해체되면서 엘살바도르는 주권 독립 국가가되었다. 19세기의 후반에 합성 염료가 인디고 시장을 위협하자 커피가 경제의 핵심이 되었다.20세기까지 엘살바도르 수입의 95%는 커피에서 나왔지만 겨우 2%의 인구만이 이런 부를 누릴 수 있었다. 간간이 엘살바도르의 사회, 경제적 불공평을 바로 잡으려는 대다수 빈민층의 노력은 심한 탄압을 받았다. 변화를 위한 최초의 대중적인 움직임은 1929년 주식시장의 급락과 뒤따른 커피 가격의 급락에 의해 일어났다. 1932년 1월 중미 사회당의 창설자인 아우구스틴 파라분도 마르티(Augustin Farabundo Marti)는 농민과 인디언의 봉기를 이끌었다. 군부는 계획적으로 인디언으로 보이는 사람이나 봉기를 지원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사살하였다. 전부 30,000명이 살해되었다. 마르티는 체포되어 총살되었고 그의 이름은 FMLN(Frente Marti Liberacion Nacional)에 남게 되었다.1960년대 엘살바도르의 경제실패와 심각한 인구문제는 수많은 국민이 국경을 넘어 이웃 온두라스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게 만들었다. 1969년 온두라스의 살바도르 이민자들에 대한 학대가 때마침 양국 간의 월드컵 축구 경기가 열리는 동안 문제가 되었다. 국가적인 경쟁심과 감정이 격앙되면서 웃기게도 엘살바도르가 온두라스 영토를 침입해 공항을 폭파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 문제는 100시간도 안되어 끝났지만 양국 간의 관계는 수십 년동안 적대적인 상태로 남았다.1970년 동안 국민들은 부족한 토지와 가난, 실업, 인구 문제로 고통을 받았다. 정당들은 양극화되어 대체로 쿠데타와 부정 선거를 통해 정치판을 이끌었다. 1972년 군부는 당선된 대통령을 체포해 유배시키고 스스로 내세운 후보자를 취임시켰다. 이로 인해 게릴라 활동이 증가해지자 정부는 수많은 국민들을 죽이고 고문하며 유괴하는 짓을 자행한 ‘암살대’를 만들었다.1979년 군사 정권과 국민들은 대통령을 전복시키고 개혁을 약속했다. 이 개혁이 실행되지 않자 야당들은 민주개혁 연합(FDR)이라는 이름으로 뭉쳤고 이 가운데 FMLN은 가장 큰 정당이었다. 1979년 니카라과에서 일어난 성공적인 혁명은 살바도르인들로 하여금 무장 투쟁만이 개혁을 약속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게 만들었다. 신망이 두텁던 오스카 로메로(Oscar Romero) 대주교는 1980년 미사 집전 중에 암살되었고 그의 죽음은 무장 반란으로 이어졌다.FMLN 게릴라는 북부와 동부에서 지배권을 차지하였고 다리를 폭파시키고 전선을 파괴하고 경제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 커피 농장을 불태웠다.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는 니카라과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하자 몹시 안달이 난 터라 엘살바도르 정부에 엄청난 돈을 지원하였고 군부는 마을을 전멸시켜 보복하였으며 이로 인해 300,000명에 이르는 국민들이 탈출하기에 이르렀다.1990년 4월 UN의 중재 하에 정부와 FMLN 간의 협상이 시작되었고 1992년 1월 16일 협상이 체결되어 정전이 발효되었다. FMLN은 야당이 되었고 정부는 암살대의 해체와 국가 경찰로 이를 대신하는 등 여러 가지 개혁을 약속하였다. 토지는 국민에 분배되고 인권 침해도 조사되도록 계획되었다. 12년 동안의 전쟁으로 75000명으로 추산되는 국민이 죽었으며 군부에 의해 자행되는 폭압을 알면서도 미국 정부는 60억불을 엘살바도르 정부의 전쟁 지원에 쏟아 부었다. 1994년 3월 부정 선거의 주장 가운데서 ARENA의 칼데론 솔(Calderon Sol)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비록 몇몇 개혁들이 평화로운 가운데 실시되었지만(주로 토지 이전 계획) 많은 살바도르 국민은 현재의 상태가 내전 이전보다 나아진 것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실업, 가난, 불만스런 전직 전투원들, 총기 확산 등은 살인율을 높였고 살바도르인의 대략 20%가 해외에서 사는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 1997년 3월 FMLN은 14개 주 가운데 여섯 도시의 선거에서 승리했으며 현재 ARENA 보다 더 많은 인구를 통치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는 1999년으로 계획되어있다. 경제

국내 총생산GDP: US$ 221 억

1인당 국민 총생산 GNO : US$ 2,857

인플레이션: 11%

주요 산업: 직물, 커피, 설탕, 목화

주요 교역국: 미국, 과테말라, 멕시코, 베네수엘라, 독일 문화

엘살바도르는 압도적으로 카톨릭 국가이다. 전쟁 중 카톨릭 성당은 가난한 자에게 동정적이었기 때문에 정부는 카톨릭 성당이 공산주의를 지원한다고 믿었고 이 때문에 폭력의 대상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목숨의 위협을 느끼거나 또는 성당과 반대파의 연합에 불만을 품고 카톨릭에서 이탈했다. 개신교, 특히 복음주의는 종교적 대안이 되었다. 다른 교회로는 침례교와 성령 강림교 등이 있다. 공식어는 스페인어이다. 주로 20세에서 40세 가량의 많은 남자들은 전쟁 중에 미국에서 영어를 약간 배운 적이 있다. 토착민들의 언어는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찾기 힘들지만 피필인들의 나우아 언어를 보존하려는 학문적인 노력이 있다.살바도르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들은 대체로 미국, 멕시코, 또는 다른 중남미 국가들의 대중가요이지만 엘살바도르의 현재 문제에서 영감을 얻은 대중 가요들도 언더그라운드에서 조그만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시문학이 대중적이며 잘 알려진 작가로는 만리오 아르게타(Manlio Argueta)와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Francisco Rodriguez)가 있다.라 팔마(La Palma) 마을은 페르난도 죠르트(Fernado Llort)에 의해 시작된 유명한 예술 학교가 있다. 그의 어린아이 같고 거의 만화 같은 산촌 마을 풍경이나 농부, 예수의 그림 등은 씨앗에서부터 교회 벽까지 여러 대상에 밝은 색으로 그려져있다. 일로바스코(Ilobasco)는 도기로 산 세바스티안(San Sebastian)은 직물로 잘 알려져 있다. 엘살바도르는 쌀과 콩을 혼합한 카사미엔또를 매일 같이 먹는다. 다른 주요 음식으로는 옥수수가루 반죽에 치즈, 기름에 튀긴 콩이나 치챠론(튀긴 돼지 비계)를 넣은 푸푸사스가 있다. 리콰도스(과일 주스), 커피, 가세오사스(가벼운 음료) 등은 어디서나 볼 수 있다. 틱택과 토리토는 보드카 같은 술로 사탕수수로 만들며 뱃속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적당치 않은 술이다. 축제 및 행사

엘살바도르의 수호 성인을 기리는 엘살바도르 델 문도(El Salvador del Mundo)의 축제는 8월 6일에 열린다. 산살바도르에서 열리는 축제는 며칠 전부터 계속되며 장터와 커다란 행진이 함께 열린다. 다른 축제는 세마나 산타 (부활절 전주)와 12월 12일의 과달루페 성모의 날 등이 있다. 매년 마을마다 각각 수호성인을 기리는 축제가 열린다 여행자 정보

비자: 미국과 캐나다 국민은 비자가 필요 없지만 도착 시 US$10을 내고 여행자 카드를 만들어야 한다. 카드는 90일간 유효하다. 호주, 뉴질랜드 국민은 비자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서유럽 국가들은 비자나 여행자 카드가 필요 없다.

보건 위생: 콜레라, 간염, 말라리아, 광견병, 장티푸스

시간: 한국보다 15시간 늦다.

전압: 110V, 60Hz

도량형: 미터법 (도량형 환산표 참조) 경비 및 환전

통화: 살바도르 콜론(colon)

일반경비

저렴한 숙소: US$5-10

중급 호텔: US$10-15

고급 호텔: US$15 이상

저렴한 식사: US$3-8

중급 식당: US$8-15

고급 식당: US$15 이상 이웃 나라들 보다 엘살바도르는 숙소와 음식값이 비싸지만 적어도 버스만큼은 싸다. 검소한 여행자들은 하루에 US$10 정도면 살수 있으며 좀더 편안한 숙소와 편리하게 앉아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는다면 하루 US$20-25 정도를 기대해야 할 것이다. 엘살바도르의 좋은 곳만 찾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하루 US$30은 써야한다. 확실히 환전이 가능한 유일한 통화는 미국 달러이다. 소수의 은행들만이 여행자 수표를 금새 쉽게 바꾸어주며 은행간 뿐만 아니라 지점간에도 환전 기준이 다르다. 엘살바도르를 떠나기 전에 남은 콜론을 다 바꾸는 것을 잊지 말자. 부가가치세(IVA)는 모든 재화나 서비스에 10% 적용되며 제시된 가격에 이미 포함되어 있는지를 확실하게 해두도록 하자. 여행 시기

건기(11월에서 4월)는 여행에 가장 좋은 시기로 도로 사정도 더 나으며 매일 저녁 흠뻑 젖는 일도 없고 문화행사도 많이 열린다. 가장 큰 휴가 기간은 크리스마스에서 1월 중순까지와 부활절 전주인 세마나 산타, 그리고 산 살바도르가 매년 축제를 여는 8월의 첫 주 등이 있다. 많은 서비스들이 이 기간 동안 문을 닫으며 호텔은 50%까지 오른다. 우기(5월-10월)에는 가격도 낮아지며 해변도 덜 밀리고 저녁에 소나기가 지나간 후에는 조금 더 선선해진다. 주요 여행지

산 살바도르(San Salvador)

엘살바도르의 수도이며 가장 큰 도시인 산 살바도르는 커다란 산 살바도르 화산의 기슭에 있는 계곡에 위치해 있다. 계곡이 오염을 가두는 역할을 하여 이 도시의 끔찍한 매연을 꼼짝못하게 막아두면서부터 이 곳은 세계에서 가장 예쁜 도시가 아니게되었다. 시골 이주자들과 전쟁 중의 경제 불황으로 도시 빈민층이 확대되었고 실업자는 50%에 육박하였다. 판자촌이 여기 저기 생기고 거리는 멍든 과일에서 벨크로가 달린 총집까지 뭐든지 팔아서 생계를 이어가려는 사람들로 가득하게 되었다.산 살바도르는 1546년에 현재의 위치에 세워졌으며 1839년부터 엘살바도르의 수도가 되었다. 오랜 역사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의 재해 – 1854년과 1873년의 지진, 1917년의 산 살바도르 화산의 분화, 1934년의 홍수 등 – 때문에 볼만한 유서 깊은 건물이 남아있지 않다. 1986년의 지진은 엄청난 피해를 가져왔으며 아직도 재건축이 진행되고 있다. 이 도시의 특이한 건조물로는 돔이 씌여진 메트로폴리타나 성당으로 오스카 로메로 주교가 묻혀있다. 성당은 주요 광장인 바리오스(Barrios) 광장에 면해 있다. 가까이에는 1917년에 세워졌으며 빨간 벨벳으로 치장한 국립 극장이 있다. 감각적인 천장 무랄은 근처의 카페 극장까지 계속되어 이어진다. 이 도시에는 두 곳의 시장이 있는데 엑스 콰르텔(Ex-Cuartel)은 공예품, 손으로 짠 직물, 도기 등을 팔며, 센뜨랄(Central) 시장은 일용품을 판다. 국립 다비드 J 구스만(David J Guzman) 박물관에는 아 나라의 중요한 고고학 유물들이 소장되어 있으며 라 라구나(La Laguna) 식물원은 화산 분화구 바닥에 있는 한때 습지였던 곳에 세워진 매력적인 정원이다.숙소들은 버스 터미널의 동부와 서부에 모여있지만 이 근처는 특히 밤에 안전하지 않다. 좀더 나은 서비스와 안전한 장소들을 시 중심가에서 찾을 수 있으며 수많은 게스트 하우스들을 시의 서쪽 가장자리에서 볼 수 있다. 소나 로사(Zona Rosa)는 가장 근사한 곳으로 비싼 레스토랑들과 유흥가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라 리베르타드(La Libertad)

이곳은 태평양에서 가장 멋지게 몰려오는 파도를 볼 수 있는 곳 중 하나로 어디든 멋진 도를 찾아 떠나는 서퍼들이 모이는 곳이다. 서핑을 즐기지 않는다면 말린 생선이나 조각난 생선 아니면 그저 죽어 있는 평범한 생선으로 가득하고 코끝을 찌르는 짭짜름한 냄새를 내는 이 작은 어촌마을이 매력적이지 않을 것이다. 수도에서 가장 가까운 해변인 라 리베르타드는 주말이 되면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혼잡함이 더해지면 라 리베르타드에서 아카후틀라(Acajutla)까지 서쪽으로 뻗어 있으며 서핑을 즐길 수 있는 75km 길이의 라 코스타 델 발사모(La Costa del Balsamo)를 따라 여러 해변 중 하나로 떠나는 것도 좋다. 라 리베르타드는 산 살바도르의 남쪽으로 37km 위치에 있으며 버스로 한시간 정도 걸린다.

몬테크리스토(Montecristo) 운무림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 과테말라의 국경이 모이는 이 지역은 매년 200cm에 달하는 비가 쏟아지며 100% 습도를 경험하기도 하며 해발 2400m 위로 솟아 있어서 운무림으로서의 이상적인 조건을 가지고 있다. 몬테크리스토 운무림에는 떡갈나무, 월계수가 30m나 솟아있고 그들의 잎은 햇빛이 스며들 수 없는 천장을 만들고 있다. 양치류, 난초, 버섯, 이끼는 산림의 바닥을 덮고 있으며 현지의 야생동물에는 드물고 보호되는 거미 원숭이, 두손가락 개미핱기, 푸마, 중남미 들쥐, 투칸, 줄무늬 부엉이 등이 살고 있다.운무림은 한가로운 메타판(Metapan) 북동쪽에 있는 몬테크리스토-엘 트리피니오(El Trifinio) 국립 공원 안에 있고 산살바도르 북쪽으로 버스를 타고 네시간 간 거리에 있다.

타수말(Tazumal) 유적

챨츄아파(Chalchuapa)에 있는 타수말의 마야 유적은 엘살바도르에서 가장 중요하고 잘 보존되는 유적으로 여겨진다. 키체 언어로 타수말은 ‘희생자가 묻혀있는 피라미드’ 라는 뜻이다. 발굴되어 전시된 유물들은 10sq km 정도의 지역에서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대부분은 마을 밑에 묻혀 있다. 고고학자들은 최초로 이곳에 사람들이 정착한 것은 BC 5000년 정도 전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발굴된 구조물들은 1000년이 넘는 기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타수말에서 발견된 공예품들은 타수말과 파나마나 멕시코까지 떨어진 먼 지역 간에 고대의 활발한 무역이 존재했음을 알려준다. 챨츄아파는 산 살바도르에서 북서쪽으로 76km 떨어져 있으며 버스로 두 시간 거리 정도로 보통 산타 아나를 거쳐간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세로 베르데(Cerro Verde)

세로 베르데 국립 공원에서 두 가지 놀라운 광경을 볼 수 있다. 하나는 아직도 증기를 내뿜고 있는 인상적인 이살코(Izalco) 화산이며 다른 하나는 엘살바도르에서 가장 높은 화산인 산타 아나 화산의 동쪽 경사면에 있는 파란 화산 분화구 호수, 라고 데 코아테페케(Lago de Coatepeque)이다. 이살코 화산은 200년전에 검은 유황 연기를 내뿜는 지구상의 단순한 구멍에 불과했다. 그러더니 원뿔형의 화산이 형성되어 금새 현재의 높이인 (1910m)까지 이르렀다. 이살코는 이번 세기에 들어 계속 분화를 거듭하면서 연기를 내뿜고 있으며 둥근 돌과 연기는 밤이나 낮에 장관을 연출하여 태평양의 등대라는 명성을 얻기까지 이르렀다. 아직도 활화산으로 분류되지만 이살코는 1966년 이후로는 분화하지 않고 있다. 표시가 되어 있는 길로 정상까지 가면 세시간 정도 걸린다.세로 베르데는 산타 아나에서 차로 두시간 거리이며 버스로 가장 쉽게 갈 수 있다. 산 살바도르에서 갈 경우 산타 아나는 북서쪽으로 63km에 있으며 버스로는 대략 90분 정도 걸린다.

일로바스코(Ilobasco)

일로바스코라는 이름은 나우아 어로 ‘많은 옥수수밭이 있는 장소’ 라는 뜻이지만 현재는 곡물보다 도기로 더 잘 알려진 마을이 되었다. 특히 놀랍고, 작으며 세밀한 풍경이나 모습을 호두 크기 계란 모양의 조개 껍질에 담은 공예품으로 유명하다. 풍경으로 종종 마을의 일상생활을 순수하게 담아 표현하기도 하지만 어떤 화가는 한참 사랑을 나누고 있는 남녀의 나체를 담는 새롭고 낯뜨거운 시도를 하기도 한다. 현지의 신부는 죄많은 이 작품들을 모두 몰수하려고 시도했지만 아직도 종이에 꼭꼭 묵어서 팔고 있다. 주요 거리에 늘어서 있는 공예품 가게들은 현지의 도기도 판다. 일로바스코는 산 살바도르에서 북동쪽으로 54km 떨어져 있으며 버스로 쉽게 갈 수 있다.

몬테크리스토(Montecristo) 섬

렘파(Lempa)강과 태평양이 만나는 곳에 망그로브가 무성하고 해오라기가 서성이며 때때로 강 위로 물고기가 뛰어오르는 곳에 이 섬이 있다. 엘살바도르의 열악한 환경 보존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은 아직도 미개발에 순수하게 남아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곳으로 가려면 좀 복잡하게 이동해야 하지만 자연적인 풍경과 야생 동물들 그리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조그만 이곳 마을을 보면 충분히 보상받았다고 느낄 것이다. 현지 가정에서는 그들 집안에서 음식과 숙소를 제공하고 강이나 망그로브로 보트 투어를 제공한다. 숙소에는 거의 아무것도 없으므로 나누어 먹을 약간의 음식을 가져가는 것이 좋은 생각이다. 돼지나 닭, 개, 그리고 떼거지로 몰려다니는 아이들도 분위기에 한몫 한다.몬테크리스토 섬은 산살바도르이 남동쪽으로 80km 정도에 있다. 버스로는 몇 번 갈아타야 한다(주로 사카테콜루카(Zacatecoluca)나 산 니콜라스 렘파(San Nicolas Lempa)에서 갈아탄다). 연안에 도착하면 섬까지 가는 마상이 배에서 노 젓는 법을 익힐 필요가 있다.

엘살바도르 북부

챨라테낭고(Chalatenango)와 모라산(Morazan) 구역은 정부군과 FMLN 게릴라 사이의 주요 전투지였다. 군부에 의해 주로 이용된 전술 중 하나는 띠에라 아라사다로 불리는 것으로 모든 농작물을 태우고 가축을 도살하는 작전이었다. 전쟁 기간동안 이 곳을 떠났던 사람들은 현재 되돌아오고 있으므로 이곳을 방문하면 재건되는 광경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건축물들(그리고 주민들)은 전쟁의 상처를 안고 있으며 지뢰는 이 나라에서 가장 온화한 풍경을 방해하는 유일한 것이다. 라 팔마(La Palma) 마을은 전쟁 기간 동안 FMLN이 주둔했는데 목공예품이나 아름답게 꽃핀 나무, 세차게 흐르는 강들과 아름다운 산의 풍경으로 유명하다. 산살바도르에서 84km 북쪽에 있으며 버스로는 4시간 걸린다. 페르킨(Perquin)은 FMLN의 본부였으며 현재는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살바도르 혁명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은 전쟁의 원인과 경과를 설명하는 사진과, 포스터, 무기, 그리고 작전 중 죽은 이들의 역사 등에 대해 전시해 놓고 있다. 무기들은 최첨단 장비에서 집에서 만든 폭탄까지 다양하다. 페르킨은 산 미구엘에서 버스로 북쪽을 향해 세시간 걸린다. 비록 근처를 돌아다니며 부탁하면 재워주는 가정집이 있지만 이 작은 마을에는 숙소를 발견하기 힘들다. 만약 서양인 자원봉사자들이 있으며 이들에게 부탁하는 것이 좋다. 음식은 기본적인 것뿐이며 공공 교통도 드물다. 레저스포츠

엘 살바도르에서 자원 봉사 활동을 하는 여러 방법이 있으며 많은 기관들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CIS(Centro Internacional de Solidaridad)는 산 살바도르에서 영어 교사 자원 봉사자를 받는 어학교를 운영한다. CIS는 또 정치, 문화적인 단체에서의 자원 봉사 활동을 주선하기도 한다. 코스타리카에 본부를 두고 있는 Green Arrow’s Conservation Connection Placement Program은 중미 전역에 걸쳐 자원봉사 활동 자리를 마련하고 있다. CISPES(엘살바도르 국민 연대 위원회)는 주로 노동자 인권과 관계한 프로그램의 자원봉사자를 구하는 FMLN과 제휴관계에 있는 단체로 다년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또 심장에 좋은 활동으로는 엘살바도르 화산 지형에서 많은 하이킹 기회를 찾을 수 있다. 산 살바도르의 보케론(Boqueron) 화산의 가장자리를 트레킹으로 돌아보거나 분화구 자체를 내려갈 수도 있다. 다른 멋진 하이킹 장소로는 세로 베르데 국립 공원과 몬테크리스토 운무림, 그리고 라 팔마와 페르킨 주위를 들 수 있다. 코스타(Costa) 해변, 라 리베르타드, 그리고 라 코스타 데 발사모를 따라 난 서쪽 곶들에서 서핑에 적합한 멋진 파도를 찾을 수 있다. 폰세카(Fonseca)만의 섬들은 보트에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으며 때로는 만의 검은 모래사장을 따라 돌고래나 바다 거북이를 만날 수도 있다. 렘파(Lempa), 파스(Paz), 토롤라(Torola) 강들을 따라 흐르는 거친 물살은 급류타기나 카약에 좋다. 이 나라의 14개 투리센트로스(Turicentros)는 인기 있는 휴양지, 캠프장소이며 보통 해변이나 호수, 자연 온천 등에 위치해 있다. 엘살바도르로 가는 길

엘살바도르는 중미 항공 교통의 중심으로 이 지역의 모든 주요 도시들과 연계되어 있으며 아틀란다, 달라스, 휴스턴, 로스앤젤레스, 마이애미,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의 미국 도시로도 비행기가 운항된다. 타카(Taca)는 엘살바도르의 국영 항공사이며 아메리칸, 콘티넨탈, 델타, 유나이티드 에어라인 등도 이 나라에서 활동한다. 국제 항공편은 코말라파(Comalapa) 국제 공항으로 도착하며 이공항은 산 살바도르 남쪽 44km 지점의 태평양 연안에 위치해 있다. 국제선의 경우 출국세는 US$23이다.산 살바도르, 산타 아나, 산 미구엘 등은 테구시갈파(Tegucigalpa, 온두라스)와 과테말라시티까지 버스로 갈 수 있다. 엘살바도르와 과테말라 사이는 안귀아뚜(Anguiatu), 라스 치나마스(Las Chinamas), 라 아챠두라(La Hachadura), 산 크리스토발(San Cristobal)을 통해 건널 수 있다. 온두라스와의 주요 국경 통과소는 엘 아마띠이요(El Amatillo)와 엘 포이(El Poy)에 있다. 국경 출국세는 국경 경비대에 지불한다. 코스타리카, 니카라과, 파나마로도 버스가 운행된다. 국내 교통편

엘살바도르는 작은 나라이므로 수도에서 국내 어느 지역으로 가든지 버스나 차로 몇 시간이면 갈 수 있다. 전국의 버스 체계는 훌륭하며 차량은 혼잡하지만 싸고 자주 운행된다. 엘살바도르의 대부분 마을은 택시가 있으며 가격은 흥정에 따라 달라진다. 공항과 산 살바도르에서는 렌터카 사무소가 있다. 오른편 주행이며 이 나라에서 포장된 도로는 적다는 것을 명심하도록 하자. 차량도난이나 차량 납치도 드문 일이 아니지만 현지 주민들의 변덕스러운 운전 습관과 고속도로를 풀밭으로 착각하는 동물들로부터 더 많은 문제를 겪게 될 것이다. 코말라파 국제 공항에서는 북쪽 산 살바도르까지 잘 유지되는 고속도로를 통해 45분 정도면 갈 수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택시나 콜렉티보를 잡아타는 것이다. 엘살바도르에도 몇몇 국내선이 운행되지만 금새 내릴만한 단거리를 위해 엄청난 돈을 쓰는 것은 비합리적인 일이다. 국내선 항공사는 수도에서 동쪽으로 13km 떨어진 일로팡고(Ilopango) 공항을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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