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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9월 7일, 페이지와 브린은 캘리포니아주 먼로 파크에 있는 친구집 차고에서 그들의 회사인 “Google Inc.”를 공식 창립을 한다. “구글”이라는 명칭은 “구골”이라는 단어의 철자를 잘못 쓴 것이다. 여기서 구골은 10100(1 뒤에 0이 100개 붙는다.) 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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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 나무위키
구글. 최근 수정 시각: 2022-08-11 07:30:38 … 구글 검색에 대한 내용은 구글링 문서 … 1. 개요2. 유래 및 표어3. 역사4. Google I/O5. IT 기업으로서의 입지.
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10/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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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역사, 기술, 대표 산업, 한국에서의 상황 – 네이버 블로그
1998년 9월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컴퓨터과학 대학원에 재학중이던 래리 페이지(Larry Page)와 세르게이브린(Sergey Brin)이 공동으로 설립한 포털사이트.
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9/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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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42) – 구글의 탄생 – 벤처스퀘어
구글 서비스는 스탠포드 대학교의 도메인을 이용하여, http://google.stanford.edu 를 통해 접속하도록 하였는데, 하루 접속횟수가 1만 건을 넘어가면서 …
Source: www.venturesquare.net
Date Published: 5/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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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검색엔진의 역사 – 브런치
원래 구글의 이름은 “구골”이었지만 단어의 철자를 잘못 쓴 결과로 현재의 “구글(Google)”이 되었다. 구글은 1997년 9월 15일 “google.com”으로 도메인이 …
Source: brunch.co.kr
Date Published: 1/1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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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 해시넷 위키
연혁편집 · 1998년 9월 스탠퍼드 대학교 박사과정 학생인 래리 페이지(Larry Page)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이 구글을 공동 창업했다. · 2004년 지메일 …
Source: wiki.hash.kr
Date Published: 9/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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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년 된 구글, 인터넷 역사를 새로 쓰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1997년 스탠포드 대학 24살 청년인 래리 페이지(Larry Page)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은 인터넷 홈페이지 도메인 ‘구글 …
Source: biz.chosun.com
Date Published: 3/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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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역사 2부 – 성공비밀
구글의 역사 2부 > 1999년 3월, 회사는 실리콘 밸리의 몇몇 유명 기술 신생 기업이 있는 캘리포니아의 팔로 알토로 사무실을 이전했다.
Source: sucessecret.tistory.com
Date Published: 3/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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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슈퍼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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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19.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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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구글의 역사에 대해 다룬다.
구글의 시작 [ 편집 ]
1996년 1월, 스탠퍼드 대학의 박사과정 대학원생이었던 래리 페이지가 연구 프로젝트로서 구글을 시작하였다.[1] 곧, 래리 페이지의 가까운 친구이자 같은 과 박사과정 대학원생이었던 세르게이 브린이 프로젝트에 합류했다. 래리 페이지는 기존 방법에 비해 웹사이트 간의 관계를 분석하는 검색 엔진이 더 나은 결과를 산출해 낼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보통 기존의 검색 엔진들은 특정 키워드가 웹페이지 내에 얼마나 많이 출현하는가에 따라 웹페이지의 순위를 매겼다.)[2] 이 프로젝트의 원래이름은 백럽(BackRub)이었다. 웹사이트의 중요도를 그 사이트로 연결되는 백링크를 따져 결정했기 때문이다.[3] 당시 리얀홍이라는 사람의 랭크덱스(RankDex)라는 작은 검색 엔진이 이미 같은 기법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말이다.[4]
다른 관련 있는 웹페이지로부터 가장 많은 링크가 들어오는 페이지가 검색과 가장 관련 있는 페이지일 것이라는 가정하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이 가설을 그들의 연구를 수행하면서 시험해보았다. 이 가설은 훗날 그들이 만든 검색 엔진의 기초가 되었다. 초창기에 이 검색 엔진은 스탠퍼드 대학교 웹사이트를 이용하였는데, 도메인 이름은 “google.stanford.edu”였다. 이후, 도메인 “google.com”은 1997년 9월 15일 등록되었다. 1998년 9월 7일, 페이지와 브린은 캘리포니아주 먼로 파크에 있는 친구집 차고에서 그들의 회사인 “Google Inc.”를 공식 창립을 한다.
“구글”이라는 명칭은 “구골”이라는 단어의 철자를 잘못 쓴 것이다.[5][6] 여기서 구골은 10100(1 뒤에 0이 100개 붙는다.)을 의미한다. 2006년, 일상 생활에서의 사용이 늘어나자, “구글하다 (동사)”(google)가 메리엄 웹스터 사전 및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등재되었다. “구글하다 (동사)”는 “구글을 이용하여 인터넷의 정보를 검색하다”라는 뜻이다.[7][8]
1999년 3월, 이 회사는 팰러앨토 유니버시티 애비뉴 165번지로 사무실을 옮겼다. 이 주소는 다른 실리콘 밸리 벤처기업들의 요람이라 말할 수 있을 만한 곳이었다.[9] 두어 군데를 옮겨다니며 성장한 후, 1999년 구글은 마운틴 뷰 앰피시어터 파크웨이 1600번지에 있는 건물을 실리콘 그래픽스(SGI)로부터 임대하였다.[10] 이 회사는 이후로 여기에 계속 머물렀다. 이 복합단지에는 구글플렉스(Googleplex)라는 이름이 붙었다. (구골플렉스라는 단어를 가지고 장난친 것이다. 1 뒤에 구골 개의 0이 붙는 수이다.) 2006년, 구글은 이 곳을 실리콘 그래픽스로부터 3억 1900만 달러에 사들였다.[11]
초창기 투자 및 IPO [ 편집 ]
회사로서의 구글에 대한 최초의 펀딩은 앤디 벡톨샤임이 하였다. 1998년 8월 하순, 스탠퍼드 대학의 박사 과정 학생이었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당시 구글이 가지고 있던 인덱스보다 더 큰 인덱스를 확보하려고 노력 중이었다. 그들에겐 하드웨어가 필요했고, 그들은 투자를 갈망하고 있었다. 그들은 스탠퍼드 대학 교수인 데이비드 채리턴(David Cheriton)의 소개로 선 마이크로시스템즈의 공동 창업자 중 한 사람이었던 앤디 벡톨샤임을 만나게 됐다. 이 자리에서 앤디 벡톨샤임은 10만 달러의 투자를 하였다.[12]
6개월 뒤, 구글은 더 큰 규모의 펀딩(라운드 오브 펀딩)을 받게 됐다. 당시 벤처 캐피털 업계에서 선두 자리에 있던 두 업체인 클라이너 퍼킨스 코필드 & 바이어스 및 세쿼이아 캐피털로부터였다.[12] 1999년 7월 7일 브린과 페이지는 클라이너 퍼킨스 코필드 & 바이어스와 세쿼이아 캐피털이 구글에 25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는 보도자료를 내보냈다. [13]
2003년 10월, IPO가 논의되고 있었다. 이때 마이크로소프트가 구글에 접근하여 제휴 관계나 합병을 제안하였다. 하지만 아무런 거래도 구체화되지는 않았다. 2004년 1월 구글은 모건 스탠리와 골드만 삭스 그룹을 통해 IPO를 준비 중이라고 발표하였다. IPO를 통해 40억 달러를 끌어모을 계획이었다.
캡션
외부 링크 [ 편집 ]
구글의 역사, 기술, 대표 산업, 한국에서의 상황
1) 한국에서 구글 검색이 부진했던 이유
네이버 등 토종업체들이 외부 검색 엔진의 크롤링(검색 엔진 노출을 위하 내용 수집)을 거부했던 것이 제일 컸다.
그리고 네이버캐스트, 웹툰, 부동산정보, 자동차 정보, 영화정보, 인물정보 등 각종 콘텐츠의 생산 및 큐레이션의 성과이다.
상대적으로 한국어로 된 온라인 콘텐츠 자체가 빈약한 상황에서 국내 포털 업체들은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어가며 인터넷의 유용성을 입증 (어학사전, 국내 지도 등) 했다.
2) 스마트폰의 등장과 앞으로의 상황
스마트폰 시대가 오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한국의 스마트폰 사용자 대부분이 안드로이드 계열 스마트폰이 되면서 한국에서 구글의 부진이란 말은 사실상 옛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더욱이 구글의 플레이 스토어와 동영상 서비스 등이 한국 시장을 잠식해가면서 독주를 방치한 정부에 대한 비판을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국내 포털 업체들이 토종기업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에는 정부의 강한 인터넷 통제 욕구를 국내 업체만이 받고 있다.(역차별)
또한 구글은 웬만한 규제 이슈에서 빠져나가기 일쑤지만 국내 업체는 그렇지 못한 실상이다.
안드로이드 OS가 많이 팔릴수록 구글 검색엔진 점유율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 이고
유튜브 점유율 역시 가파를 상승세인데 유튜브가 성장할 수 록 국내포털업체 점유율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포털업체 측에서도 구글 규제를 외치고, 내부적으로는 검색엔진 부문을 독립 (네이버)하는 등 1위 사업자를 뺏기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위 내용을 유튜브에 업데이트 하였습니다.
참고해주세요. 🙂
https://youtu.be/cPki8VlUUCc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42) – 구글의 탄생
넷스케이프와 야후!로 대별되는 인터넷 업계에서 닷컴 버블이 몰락하면서 어려움을 겪게 되는 와중에도 새롭게 세상을 바꿀 기업은 인터넷 상에서 새롭게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현재까지 그 빛을 잃지 않고 있는 기업인 구글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매릴랜드 대학에서 컴퓨터 과학과 수학을 전공하며 수석으로 졸업을 한 세르게이 브린은 1993년 미국 NSF(National Science Foundation)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스탠포드 대학의 컴퓨터 과학 대학원으로 진학을 하였다. 활달한 성격과 천재적인 두뇌로 많은 친구들에게 인정을 받는 리더로 자리잡고 있었던 세르게이 브린에게 1995년 미시건 대학의 또 다른 천재가 스탠포드 대학에 나타나게 되는데, 그가 바로 래리 페이지이다.
언제나 남들 앞에 나서서 리딩을 하는 외향적인 세르게이 브린에 비해, 래리 페이지는 내성적이고 조용하지만 매우 치열하고 토론을 할 때에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런 래리 페이지에게 세르게이 브린은 다른 친구들이나 선후배와는 다른 라이벌 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들은 거의 모든 주제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었고, 전공과목 뿐만 아니라 사회와 정치, 철학과 문화 등에 이르는 다방면의 지식에 대한 토론을 날을 지새기 일쑤였다. 둘이서 격론을 시작하면, 주위의 동료들은 이들을 피해다닐 정도로 강렬한 열기를 뿜어내었고, 이런 토론과 다툼을 지속하면서 두 사람은 어느 새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영혼의 동반자(soul-mate)로 느껴질 정도의 관계로 발전하였다.
많은 대학원들과 마찬가지로 스탠포드 대학에도 조를 짜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목들이 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서로 다른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래리 페이지는 지구상에 있는 모든 웹 사이트를 서버에 긁어모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였고, 세르게이 브린은 영화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평가를 하는 알고리즘과 관련한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그런데, 래리 페이지의 프로젝트는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예상보다 인터넷의 크기가 급속도로 확장되면서 금방 끝날 줄 알았던 프로젝트가 1년이 넘게 진행되었다. 래리 페이지는 좋은 논문은 인용이 많이 되는 논문이라는 학계의 일반적인 정설을 웹 페이지의 랭킹을 매기는 데 이용하고자 하였는데, 이를 위해서 특정 사이트가 다른 사이트로 연결되는 백링크(BackLinks)를 조사하여, 각각의 웹 페이지가 얼마나 많은 사이트에 링크되었는지를 알아내고, 이것을 기본으로 랭킹을 매기자는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시작했다.
래리 페이지는 이 프로젝트를 웹 사이트의 링크를 역으로 추적한다는 의미의 백럽(BackRub)이라고 명명하였는데, 이 아이디어에 대해 세르게이 브린도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래리 페이지가 구현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세르게이 브린이 도움을 주면서 프로젝트에 조금씩 관여를 하다보니, 어느 덧 둘이서 공동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되었던 것이다. 이들의 가능성을 알아본 테리 위노그래드 교수와 라지브 모트와니 교수 등의 지원으로 프로젝트는 순탄하게 진행되었고, 1996년부터는 스탠포드 대학교 네트워크를 통해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고, 금새 이 서비스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대학원의 학생으로서 많은 비용을 들일 수 없었던 그들은 효율적인 분산처리를 위해 CPU와 메인보드 등을 구해서 간단히 인터넷 서버를 구축하고, 운영체제도 무료인 리눅스를 선택하는 등의 고육지책을 선택하였다.
초창기 백럽(BackRub) 검색엔진 기술 중에서 가장 중요한 페이지랭크(PageRank) 알고리즘은 이들이 논문을 내기로 합의한 1998년 1월 이전까지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BackRub 이라는 다소 촌스러운 이름 대신에 새로운 이름을 이용하기로 결심하는데, 동료 중의 하나가 10의 100제곱을 뜻하는 구골(GooGol) 이라는 이름으로 방대한 데이터 검색을 한다는 이미지를 주자는 제안을 하였는데, 아쉽게도 이 이름은 도메인이 선점된 상태였다. 그래서, 대신 구글(Google)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했는데, 구골보다 발음하기도 쉽고, 창조적인 느낌도 나는 이름이었기에 모두들 구글이라는 이름을 좋아하였고, 서비스도 점점 인기를 끌기 시작하였다.
구글 서비스는 스탠포드 대학교의 도메인을 이용하여, http://google.stanford.edu 를 통해 접속하도록 하였는데, 하루 접속횟수가 1만 건을 넘어가면서 학교의 네트워크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학교 네트워크 전체를 마비시키는 일까지 발생하자, 더 이상 학교에서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한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이 검색 서비스를 외부에 팔아넘기기로 합의하고 원매자를 찾아 나선다.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에 따르면, 당시만 하더라도 100만 달러 정도면 구글 서비스를 팔려고 했었다고 한다. 당시 검색엔진 부분에서 최고의 명성을 가졌던 알타비스타(altavista)와 야후도 접촉했지만, 이들이 개발한 서비스를 인수하려는 기업은 없었다. 그 밖에도 검색에 관심을 가질만한 많은 인터넷 기업들을 접촉했으나 번번히 거절의 쓴 맛을 보았다. 그렇지만,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들의 지도교수인 데이비드 체리턴(David Cheriton)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였다. 이들이 만든 서비스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데이비드 체리턴은 이들의 창업을 도와주기로 하고,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자금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하였다.
데이비드 체리턴이 소개한 사람 중에서 앤디 벡톨샤임(Andy Bechtolsheim)은 한 눈에 이들의 서비스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것을 알고, 아직 설립도 되지 않은 회사인 구글에게 10만 달러짜리 수표를 즉석에서 끊어 주었다. 그리고, 그의 선택은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게는 자신감을 불러넣어 주었고, 자신에게도 엄청난 부를 가져오게 만든다.
벡톨샤임은 썬 마이크로시스템스를 공동창업한 인물로 이미 대단한 성공을 이룬 사람이었고, 구글에 투자할 당시에는 세계 최고의 네트워크 장비회사인 시스코(Cisco)의 부사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그의 뛰어난 직관은 검색이란 서비스를 하고 있으면서 자신들이 전문가라고 자처했던 야후나 알타비스타의 전문가들이나 경영진들보다 훨씬 나았다. 앤디의 10만 달러 수표를 받아든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스탠포드 대학교 인근의 한 차고를 사무실로 빌려서 사업을 시작한다. 세계 최고의 인터넷 기업, 구글은 이렇게 세상에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렇지만 10만 달러라는 돈은 사실 이들이 사업을 전개하기에 턱없이 부족하였기에 얼마 지나지않아 바닥을 드러낼 수 밖에 없었고, 이들에게는 또다른 투자자가 필요하였다. 이 때 도움을 준 사람이 역시 스탠포드 대학의 교수인 제프리 울만의 소개로 만난 엔젤투자자 람 슈리람(Ram Shriram)이다.
그는 넷스케이프에 투자를 해서 상당한 돈을 벌었고, 구글의 두 창업자를 만나 검색엔진을 시험해 보고난 뒤에 자신이 당시 최고의 검색엔진 회사인 야후, 인포시크, 익사이트 등에 매각을 해보겠다고 제안을 한다. 그들이 자신의 회사를 사지 않을 것이라고 두 명의 창업자들은 알고 있었지만, 람 슈리람에게 한 번 시도를 해보라고 맡기고 몇 개월을 기다렸다.
람 슈리람은 구글의 검색엔진을 당시 최고로 잘 나가는 인터넷 기업인 야후의 제리 양과 데이빗 파일로에게 소개를 하였는데, 이들은 구글의 검색엔진의 성능에 탄복을 하였지만 생각과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검색엔진의 성능이 너무 좋아서, 검색결과의 연관성이 높기 때문에 이런 검색엔진을 채용할 경우 야후 사이트에서 너무 빨리 벗어날 수 있어서 되려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당시로서는 여러 페이지를 보면서 사이트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많아야 페이지 뷰가 올라가게 되고, 이렇게 올라간 페이지 뷰가 사이트에 달린 광고단가를 올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이들의 판단은 당시 기준으로는 틀리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야후의 두 창업자의 반응을 듣고서 람 슈리람은 되려 구글이라는 회사가 진정한 투자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고 한다.
이 미팅에서 돌아온 슈리람은 구글의 회사설립 작업에 관여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직접 25만 달러의 자금을 투자하여 앤디 벡톨샤임에 이은 두 번째 구글의 투자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처럼 어떤 경우에는 현재의 수익모델 때문에 진정으로 중요한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커다란 기회를 날려버리는 사례는 너무나 많다. 구글의 세 번째 투자자는 앤디 벡톨샤임을 두 창업자에게 소개한 데이비드 체리턴 교수이다. 그리고, 네 번째 투자자는 바로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Jeff Bezos)이다.
람 슈리람과 아마존의 일로 잘 알고 지내던 제프 베조스는 구글의 두 창업자의 이야기를 전해듣고, 바로 소개를 해 달라고 해서 만난 뒤에 즉시 수표에 서명을 하고 구글의 투자자가 되었다. 제프 베조스에 따르면 구글의 두 창업자들의 고객에 초점을 둔 비전에 반했고, 이들의 비전을 믿고 주저없이 투자를 한 것이라고 한다. 제프 베조스에게도 이런 무모한 도전을 하는 젊은이들의 비전을 알아보는 눈이 있었던 것이다.
참고자료:
거의 모든 IT의 역사, 정지훈저, 메디치미디어, 2010
글 : 하이컨셉
원문 : http://health20.kr/3101
구글 검색엔진의 역사
불과 15 전만 해도, 구글이 이렇게 파워풀한 검색엔진이 될 줄은 누구도 상상을 하지 못했다. 국내는 네이버의 선점으로 초반에는 구글의 진입이 어려웠지만, 수익을 위한 광고에만 치우친 네이버의 특성상, 많은 사용자들이 정보를 얻기를 위해 구글 검색엔진으로 이동을 하고 있는 추세다. 참, 재미있는 것은, 지금이야 구글 검색엔진을 자유자재로 이용을 하고, 원하는 자료를 필요할 때 언제든지 찾을 수 있지만, 불과 15년 전만 하더라도, 구글이라는 검색엔진이 익숙지 않을 때라, 해외 어학연수 커리큘럼 속에 구글 검색엔진을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수업이 존재했다. 지금과 달리, 그 당시에는 한글로 작성이 된 포스팅의 노출이 잘 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누가 구글을 만들었을까?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어떤 이유로 만들어졌을까? 구글을 사용해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궁금했을 “구글의 역사”. 간략하게, 구글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
구글 창시자 래리 페이지 (Larry Page)와 세르게이 브린 (Brin Sergey)
구글은 스탠퍼드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하던 대학생 래리 페이지가 1996년의 연구 프로젝트 “백럽 (BackRub) 위해 구글을 시작하였다. 그는 가까운 친구이자 같은 박사 과정의 대학원생이었던, 세르게이 브린을 그의 프로젝트에 합류를 시켰다. 래리 페이지의 가설은 “웹사이트 간의 관계를 분석하는 검색 엔진이 더 나은 결과를 산출해낸다” 였는데, 웹사이트의 중요도는 웹사이트들 간의 백링크(Backlink)를 통해 결정이 된다는 것이었다.
이 가설은 구글의 검색 엔진에서의 상위 노출을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척도가 되어, 현재에도 백링크의 중요성은 그 어떤 최적화의 요소보다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백링크의 수(Quantity)에 집중을 했다면, 지금은 백링크의 질(Quality)에 더 많은 비중은 두고 있다. 백링크에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차후 다시 다룰 예정이니, 지금은 궁금하더라도 참아주시길 바란다.
구글의 탄생에도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다. 원래 구글의 이름은 “구골”이었지만 단어의 철자를 잘못 쓴 결과로 현재의 “구글(Google)”이 되었다. 구글은 1997년 9월 15일 “google.com”으로 도메인이 등록이 되었으며, 1998년 9월 7일에 Google.Inc로 정식으로 창립이 되었다.
하지만, 초기에 자본이 부족했던 그들은, 스탠퍼드 대학 교수인 데이비드 채리턴 (David Cheriton)의 소개로 선 마이크로 시스템의 공동 창업자였던 엔디 백톨샤임을 만나게 되어, 10만 달러를 투자를 받게 된다. 그리고 그로부터 6개월 뒤, 구글은 클라이너 퍼킨스 코필드 & 바이어스와 세쿼이아 캐피탈로부터 더 큰 규모의 투자를 받게 되어 본격적으로 하드웨어 제작에 들어갔다.
구글의 사용이 일상생활에서 대중화가 되면서 2006년에는 “구글하다 (google)” 라는 동사가 옥스퍼드 영어 사전을 비롯하여 메리엄 웹스터 사전에도 등재가 되었으며, “구글하다”의 뜻은 “구글을 이용하여 인터넷 정보를 검색하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글로벌 창업을 준비 중인 창업자라면 네이버가 아닌, 구글을 잘 그리고 반드시 활용해야 한다. 구글은 전 세계의 유저가 2 billion(20억)이며, 매 시간 2.28 million의 검색이, 매일 5.6 billion의 검색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구글 검색엔진의 최적화 작업을 통해 구글 검색엔진에 상위 노출이 된다는 말은 곧, 비즈니스 수입과 연결이 되는 것이니, 언택트 온라인 창업을 결심하였다면, 그전에 구글의 디지털 마케팅의 생태계를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구글(Google) (Google)
구글(Google) (Google)
구글(Google)은 세계 최대의 검색 포털 사이트 또는 그 사이트를 운영하는 회사를 말한다. 구글이라는 말은 10의 100승(=10100)을 뜻하는 구골(googol)이라는 말에서 나왔다. 본사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실리콘밸리에 있다.
개요 [ 편집 ]
구글은 1998년 9월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박사과정 학생인 래리 페이지(Larry Page)와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이 공동 창업한 미국의 인터넷 회사이다. 구글이라는 말은 10의 100승(=10100)을 뜻하는 구골(googol)이라는 말에서 나왔다. 세계 최대의 검색 포털 사이트인 구글닷컴(google.com)을 운영하고 있다. 2004년 지메일(Gmail) 서비스를 시작했고, 2005년 안드로이드(Android) 사를 인수했다. 2006년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YouTube)를 인수했다. 2008년 구글 크롬(Chrome) 웹브라우저를 개발했고, 모바일 앱 쇼핑몰인 안드로이드 마켓(Android Market)을 오픈했다. 2009년 인공지능(AI)을 탑재한 무인 자율주행 자동차 시스템인 구글카(Google Car)를 개발했다. 2010년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백과(Wikipedia)를 후원했다. 2012년 지능형 개인 비서 서비스인 구글 나우(Google Now)를 개발했고, 스마트 안경인 구글 글래스(Google Glass)를 개발했다. 2014년 가상현실(VR) 체험용 기기인 구글 카드보드(Cardboard)를 개발했다. 2015년 인공지능 개발을 위한 소프트웨어인 텐서플로(TensorFlow)를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2015년 구글의 지주회사로 알파벳(Alphabet)을 설립하고, 구글이 알파벳의 자회사로 편입되었다. 본사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실리콘밸리에 있다.
등장배경 [ 편집 ]
세르게이 브린은 메릴랜드 대학교에서 컴퓨터과학과 수학을 전공하며 수석으로 졸업을 한 후, 1993년 미국 NSF(National Science Foundation)의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스탠퍼드 대학교의 컴퓨터과학 대학원으로 진학을 하였다. 활달한 성격과 천재적인 두뇌로 많은 친구들에게 인정을 받는 리더로 자리잡고 있었던 세르게이 브린에게 1995년 미시건 대학교 출신의 또 다른 천재가 스탠퍼드 대학교에 나타나게 되는데, 그가 바로 래리 페이지이다. 언제나 남들 앞에 나서서 리딩을 하는 외향적인 세르게이 브린에 비해, 래리 페이지는 내성적이고 조용하지만 매우 치열하고 토론을 할 때에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사람이었고, 그런 래리 페이지에게 세르게이 브린은 다른 친구들이나 선후배와는 다른 라이벌 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들은 거의 모든 주제에 대해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었고, 전공과목뿐만 아니라 사회와 정치, 철학과 문화 등에 이르는 다방면의 지식에 대한 토론을 날을 지새기 일쑤였다. 둘이서 격론을 시작하면, 주위의 동료들은 이들을 피해다닐 정도로 강렬한 열기를 뿜어내었고, 이런 토론과 다툼을 지속하면서 두 사람은 어느 새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영혼의 동반자(soul-mate)로 느껴질 정도의 관계로 발전하였다.
많은 대학원들과 마찬가지로 스탠퍼드 대학교에도 조를 짜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목들이 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서로 다른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래리 페이지는 지구상에 있는 모든 웹사이트를 서버에 긁어모으는 프로젝트를 시작하였고, 세르게이 브린은 영화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평가를 하는 알고리즘과 관련한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그런데, 래리 페이지의 프로젝트는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예상보다 인터넷의 크기가 급속도로 확장되면서 금방 끝날 줄 알았던 프로젝트가 1년이 넘게 진행되었다. 래리 페이지는 좋은 논문은 인용이 많이 되는 논문이라는 학계의 일반적인 정설을 웹페이지의 랭킹을 매기는 데 이용하고자 하였는데, 이를 위해서 특정 사이트가 다른 사이트로 연결되는 백링크(backlinks)를 조사하여, 각각의 웹페이지가 얼마나 많은 사이트에 링크되었는지를 알아내고, 이것을 기본으로 랭킹을 매기자는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시작했다. 래리 페이지는 이 프로젝트를 웹사이트의 링크를 역으로 추적한다는 의미의 백럽(BackRub)이라고 명명하였는데, 이 아이디어에 대해 세르게이 브린도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래리 페이지가 구현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세르게이 브린이 도움을 주면서 프로젝트에 조금씩 관여를 하다보니, 어느덧 둘이서 공동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되어 있었다.
이들의 가능성을 알아본 테리 위노그래드 교수와 라지브 모트와니 교수 등의 지원으로 프로젝트는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1996년부터는 스탠퍼드 대학교 네트워크를 통해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는데, 이 서비스는 금새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대학원의 학생으로서 많은 비용을 들일 수 없었던 그들은 효율적인 분산처리를 위해 CPU와 메인보드 등을 구해서 간단히 인터넷 서버를 구축하고, 운영체제도 무료인 리눅스를 선택하는 등의 고육지책을 선택하였다. 초창기 백럽(BackRub) 검색엔진 기술 중에서 가장 중요한 페이지랭크(PageRank) 알고리즘은 이들이 논문을 내기로 합의한 1998년 1월 이전까지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백럽이라는 다소 촌스러운 이름 대신에 새로운 이름을 이용하기로 결심하는데, 동료 중의 하나가 10의 100제곱을 뜻하는 구골(GooGol)이라는 이름으로 방대한 데이터 검색을 한다는 이미지를 주자는 제안을 하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이름은 도메인이 다른 사람에 의해 선점된 상태였다. 그래서, 대신 구글(Google)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로 했는데, 구골보다 발음하기도 쉽고, 창조적인 느낌도 나는 이름이었기에 모두들 구글이라는 이름을 좋아하였고, 서비스도 점점 인기를 끌기 시작하였다.
구글 서비스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도메인을 이용하여, http://google.stanford.edu 를 통해 접속하도록 하였는데, 하루 접속횟수가 1만 건을 넘어가면서 학교의 네트워크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학교 네트워크 전체를 마비시키는 일까지 발생하자, 더 이상 학교에서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자각한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이 검색 서비스를 외부에 팔아넘기기로 합의하고 구매자를 찾아 나섰다.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에 따르면, 당시만 하더라도 100만 달러 정도면 구글 서비스를 팔려고 했었다고 한다. 당시 검색엔진 부분에서 최고의 명성을 가졌던 알타비스타(altavista)와 야후도 접촉했지만, 이들이 개발한 서비스를 인수하려는 기업은 없었다. 그 밖에도 검색에 관심을 가질만한 많은 인터넷 기업들을 접촉했으나 번번히 거절의 쓴 맛을 보았다. 그렇지만,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자신들의 지도교수인 데이비드 체리턴(David Cheriton)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였다. 이들이 만든 서비스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데이비드 체리턴은 이들의 창업을 도와주기로 하고,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자금 문제를 해결하기 시작하였다.
데이비드 체리턴이 소개한 사람 중에서 앤디 벡톨샤임(Andy Bechtolsheim)은 한 눈에 이들의 서비스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것을 알고, 아직 설립도 되지 않은 회사인 구글에게 10만 달러짜리 수표를 즉석에서 끊어 주었다. 그리고, 그의 선택은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게는 자신감을 불러넣어 주었고, 자신에게도 엄청난 부를 가져오게 만들었다. 앤디 벡톨샤임은 썬 마이크로시스템스를 공동창업한 인물로 이미 대단한 성공을 이룬 사람이었고, 구글에 투자할 당시에는 세계 최고의 네트워크 장비회사인 시스코(Cisco)의 부사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그의 뛰어난 직관은 검색이란 서비스를 하고 있으면서 자신들이 전문가라고 자처했던 야후나 알타비스타의 전문가들이나 경영진들보다 훨씬 나았다. 앤디의 10만 달러 수표를 받아든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스탠퍼드 대학교 인근의 한 차고를 사무실로 빌려서 사업을 시작했다. 세계 최고의 인터넷 기업, 구글은 이렇게 세상에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1]
연혁 [ 편집 ]
주요인물 [ 편집 ]
래리 페이지 [ 편집 ]
래리 페이지(Larry Page)는 1973년 3월 26일 미국 미시건주 이스트랜싱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칼 페이지는 미시건주립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였고, 마찬가지로 엄마 글로리아도 컴퓨터 교수였다. 컴퓨터를 전공한 부모 슬하에서 페이지 역시 컴퓨터 신동으로 자라났다. 6살부터 컴퓨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초등학교 숙제를 워드 프로세서로 작성해 제출하기도 했다. 그 학교에서 워드 프로세서를 사용한 첫 번째 학생이었다. 12살 페이지는 ‘니콜라 테슬라’에 대한 전기를 읽고, 그처럼 세상을 바꿀 혁신적인 발명가가 되길 꿈꾸게 된다. 고등학교 졸업 후 미시건 대학교에 진학해 컴퓨터 엔지니어링을 공부했다. 부모와 마찬가지로 교수가 되고 싶었던 그는 스탠퍼드 대학원에 진학해 컴퓨터 사이언스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스탠퍼드 대학원에 진학한 페이지는 평생을 함께할 친구 세르게이 브린을 만나게 된다. 동갑내기인 브린과 페이지는 처음엔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웹 페이지에 관한 연구를 함께 진행하며 친분을 쌓게 된다.[2] 구글의 공동창업자이며 현 최고경영자이며, 알파벳의 CEO이다.
1998년 구글 공동설립
1998년 9월 ~ 2002년 7월 : 구글 CEO
2001년 7월 ~ 2011년 4월 : 구글 제품구문 사장
2011년 1월 ~ 2015년 10월 : 구글 CEO
2015년 10월 ~ 현재 : 알파벳 CEO
1995년까지 스탠퍼드 대학교 대학원 컴퓨터공학 석사, 미시간대학교 컴퓨터공학 학사, 인터로컨예술대학교에 다녔으며, 2002년에 세계경제포럼 내일을 위한 글로벌 리더를 수상한 경력이 있다.[3]
세르게이 브린 [ 편집 ]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은 1973년 8월 21일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모스크바 대학을 졸업한 유대인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6살 때 미국에 온 그는 후에 메릴랜드 대학교에서 수학과 교수로 재직하게 된 아버지 덕분에 수학에 많은 흥미를 보였으며, 이를 계기로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메릴랜드 대학에 입학하여 수학과 컴퓨터 과학 전공으로 학부를 마쳤다. 이후 그는 스탠포드 대학교 대학원으로 진학하여 컴퓨터 과학을 전공하였다. 컴퓨터과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박사과정을 밟았으나, 도중에 래리 페이지를 만나 박사과정을 그만두었다.[4] 구글의 공동 창업자이며,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으나 박사 과정 중에 래리 페이지를 만나 학위를 그만두고 구글을 설립하였다. 수학의 천재였던 그는 구글의 기술력을 높이는데 주력하여 기술 부문 사장으로 일해오고 있고[5] 알파벳의 사장이다.
1998년 : 구글 공동설립
1998년 ~ 2001년 : 구글 사장
2001년 ~ 2011년 : 구글 기술부문 사장
2015년 10월 ~ 현재 : 알파벳 사장
1993년에 메릴랜드 대학교 컴퓨터과학, 수학 학사였으며 1995년에는 스탠퍼드 대학교 대학원 컴퓨터과학을 석사하였다.[6]
구글의 문화 [ 편집 ]
구글(Google)은 세계 최대의 인터넷 검색 서비스 기업으로, 고대부터 형성되어온 인류의 모든 지식과 사상의 집합체인 도서의 내용을 전부 담아내겠다는 야심찬 구상을 하게 되었다. 2004년 12월 14일 구글은 마침내 1500만 권의 도서관 장서들을 디지털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말하자면, 전자도서관 사업인데, 2009년 그 이름을 구글 북스(Google Books)라고 지었다. 현재 구글 북스는 영어, 일본어, 체코어 및 핀란드어에 이르기까지 40개가 넘는 언어로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한국도 2012년 9월 ‘구글 도서’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를 시작했다. 구글 북스에서는 선택한 책을 온라인에서 읽을 수 있고, 연계된 서점에서 책을 구입할 수 있으며, 구글과 제휴된 도서관에서 사본을 대여할 수도 있다.[7]웹 검색, 포털 사이트, 또는 관련 사이트를 운영하고 광고를 주 사업 영역으로 하는 미국의 다국적 IT 회사 또는 구글이 서비스하는 검색 엔진을 가리킨다. 전 세계에서 1위인 검색 엔진이며, 2018년부로 20주년을 맞는 다국적 기업이자 현존하는 가장 큰 인터넷 기업이다. 2015년 8월 11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기업 알파벳이 새로 세워지고 그 자회사가 되었다. 실리콘밸리 마운틴뷰에 본사가 위치하고 있다. 구글이라는 이름은 래리 페이지가 많은 정보를 모아서 체계화하자는 의미에서 구골을 제안했고, 숀이 회사의 이름으로 구골플렉스를 제안하였는데, 이미 구골이라는 사이트가 존재했기 때문에 구글이라는 이름이 되었다.[8]
구글의 철학은 “You can make money without doing evil.”(악해지지 않고도 돈을 벌 수 있다.)와, “You can be serious without a suit.”(정장없이도 진지해질 수 있다.) 그리고 “Work should be challenging and the challenge should be fun.”(일은 도전이어야 하고 도전은 재미가 있어야 한다)[9]이다. ‘Don’t Be Evil'(나쁜 짓을 하지 말자)이라는 철학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사용자 컴퓨터 내에 살아 있는 쿠키에 대한 비난으로, 미국의 인권단체 ‘Public Information Research’에 의해, 구글은 빅브라더 상(Big Brother Awards)의 후보가 되기도 했다. 구글은 형식을 따지지 않는 자유롭고 재미있는 기업 문화로 잘 알려져 있다. 2007, 2008 구글은 가장 일하기 좋은 장소로 뽑혔다. 구글 엔지니어들은 ‘직감’으로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인간관계나 판단력 같은 것은 정량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경험보다는 효율을 중시한다. 그들은 사실과 베타 테스트와 수학적 논리를 추구한다. 구글은 지구 온난화 문제에도 관심을 보인다. 구글은 사옥 지붕에 미국 기업 캠퍼스 가운데 가장 큰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여 1천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만한 전기를 생산한다. 외부 주차장에 태양발전소를 두어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충전할 수 있게 했고, 연비가 좋은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구매하는 직원에게는 장려금(처음에는 5천 달러, 현재는 3천 달러)을 제공한다. 구글은 수익의 1%를 때어내 자선사업 부문인 구글 파운데이션에 보낸다. 넓은 캠퍼스 부지 내에서의 건물 간 이동을 위해 신청에 의해 차량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하고 직원들의 건강에도 이바지하기 위해 구글이 제공하는 자전거가 도처에 배치되어 있다. 구글이 1999년 8월 처음 구글플렉스로 이주했을때, 거기에는 ‘직원들이 내부 일에만 집중하게 하겠다’는 결의가 반영되어 있었다. 구글플렉스에는 2~3층짜리 나지막한 건물이 모여있고, 건물 밖에는 야외테이블과 벤치, 울창한 나무들, 채소 정원, 사람과 자전거로 활기 넘치는 산책로가 있다. 직원들은 무료 식사와 다과를 즐기고(매년 구글은 여기에만 7천만 달러 정도를 쓴다), 트레이너가 대기하는 체육관과 마사지실이 붙어 있는 건물들 사이로 이동할 자전거를 지급받는다. 직원들은 커다란 카페테리아 탁자에서 식사하고, 당구대와 에스프레소 기계가 있는 라운지에서 쉰다. 세차나 오일 교환 때문에 캠퍼스를 떠날 필요도 없다. 목요일이면 검진 차량이 찾아오고 뿐만 아니라 이발사, 세탁업자, 보모, 애완동물 도우미, 치과의사, 그리고 무료 검진 담당의도 5명이나 있다. 편안한 좌석에 무선인터넷이 완비된 바이오 디젤 통근 버스가 직원들을 멀게는 샌프란시스코까지 늦은 밤까지 실어 나른다. 노트북 컴퓨터도 살 필요가 없다. 그저 마음에 드는 모델을 고르기만 하면 된다. 여성은 출산 휴가를 5개월간 유급으로 낼 수 있고, 신생아 아빠는 마찬가지로 유급으로 7주 휴가를 낼 수 있다.[10]
검색 원리 [ 편집 ]
크롤링 [ 편집 ]
웹 크롤러는 사용자가 검색하기 전에 수천억 개에 달하는 웹페이지에서 정보를 모아 이를 검색 색인에 정리한다.크롤러는 과거 크롤링으로 만들어진 웹 주소 목록과 웹사이트 소유자가 제공한 사이트맵에서 크롤링을 시작한다. 웹사이트를 방문한 크롤러는 사이트에 있는 링크를 사용하여 다른 페이지를 찾는다. 크롤링하는 동안 새로운 사이트, 기존 사이트의 변경사항, 깨진 링크를 주의 깊게 살핀다. 크롤링할 사이트, 크롤링 횟수 및 각 사이트에서 가져올 페이지 수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결정한다. 구글에서는 사이트 소유자에게 웹마스터 도구를 제공하여 사이트 소유자가 구글에서 사이트를 크롤링하는 방법의 세부 사항까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한다. 사이트 소유자는 페이지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관해 자세한 지침을 제공할 수 있으며, 재크롤링을 요청하거나 ‘robots.txt’라는 파일을 사용하여 아예 페이지가 크롤링되지 않도록 할 수도 있다. 구글은 비용을 받고 특정 사이트를 더 자주 크롤링하지 않으며 사용자에게 최고의 검색결과를 보장하기 위하여 모든 웹사이트에 동일한 도구를 제공한다.[11]
검색 알고리즘 [ 편집 ]
사용자에게 수십억 개의 웹페이지가 아닌 질문에 대한 답을 제공하기 위해, 구글의 검색 알고리즘은 크게 다섯 가지 방법을 활용한다. 검색어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단어를 분석하기, 검색어와 일치하는 정보가 포함된 웹페이지를 검색하기, 페이지의 유용성을 평가하여 순위를 매기기, 사용자의 위치나 이전 검색 기록과 같은 맥락을 고려하여 사용자에게 알맞은 검색 결과를 제공하기, 검색 결과가 사용자의 검색 유형에 유용한지 고려하여 최상의 결과를 제공하기.[12]
주요사업 [ 편집 ]
구글 스토어 [ 편집 ]
구글 스토어(Google Store)는 구글 넥서스와 구글 픽셀 장치, 크롬캐스트, 안드로이드 웨어 스마트워치, 네스트 랩스, 크롬북 및 액세서리(자판, 충전기, 전화 커버 등)를 판매하는, 구글이 운영하는 온라인 하드웨어 리테일러이다. 구글 스토어는 구글이 개발하거나 구글과 협업하여 만든 제품을 판매한다. 2015년 3월 11일에 선보였으며 구글의 하드웨어 리테일러로서 구글 플레이의 디바이스 부분을 대체하였다. 구글은 온라인 외에 오프라인으로도 구글 스토어를 실험하였다. 2016년 10월, 팝업 숍을 뉴욕에서 개장하여 당시 최근에 발표한 하드웨어 제품을 전시하였고 그 다음 달에는 캐나다의 선별된 베스트 바이 스토어에서 구글 숍(Google Shops)을 열었다.[13]
구글 앱 엔진 [ 편집 ]
구글 앱 엔진(Google App Engine, GAE)은 구글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중 하나이며, 웹 응용 프로그램을 PHP · Python · Java · Go 언어를 사용하여 개발하고 구글의 인프라에서 실행하고 버전 관리할 수 있다. 구글 클라우드 플랫폼의 일부이다.[14]
유튜브 [ 편집 ]
유튜브(YouTube)는 전 세계 최대 무료 동영상 공유 사이트로, 사용자가 영상을 시청· 업로드 · 공유할 수 있다. 본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브루노에 위치해 있다. 유튜브의 콘텐츠는 개인이 제작한 비디오 영상을 비롯한 영화와 텔레비전 클립, 뮤직비디오 등이 올라온다. 구글은 2006년 10월 9일 주식 교환을 통해 16억 5천만 달러에 유튜브를 인수하기로 발표했다. 이후 2007년 6월 20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구글 프레스데이 2007’ 행사에서 국가별 현지화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발표하고 먼저 네덜란드, 브라질, 프랑스, 폴란드, 아일랜드, 이탈리아, 일본, 스페인, 영국 등 총 9개 국가에서 사용자를 위한 페이지를 공개했다. 한국어 서비스는 2008년 1월 23일에 시작했다.
구글 인수 4년 차인 2009년 약 4억7천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듬해인 2010년부터 흑자로 돌아섰고, 이용자가 갈수록 더 불어나는 ‘스노우볼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현재는 구글 자체로 독립해도 대기업을 능가할 정도의 가치가 되기에 유튜브의 몸값 상승은 구글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다.[15]
구글 지도 [ 편집 ]
구글 지도(Google Maps)는 구글에서 제공하는 지도 서비스이다. 구글 지도는 위성 사진, 스트리트 뷰, 360° 거리 파노라마 뷰, 실시간 교통 상황 (구글 트래픽), 그리고 도보, 자동차, 자전거(베타), 대중 교통의 경로를 제공한다. 구글 지도로 장소 검색, 장소에 대한 정보, 도보(대한민국 제외), 자동차(대한민국 제외), 대중교통 길찾기, 호텔 예약 등의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또한 사용자들이 직접 누락된 장소 추가, 잘못된 장소 수정 등의 참여를 할 수 있다.[16]
로드맵 [ 편집 ]
전 세계의 모든 위치를 검색할 수 있다.
특징 [ 편집 ]
ATM, 커피, 은행 등 (앱에서 선택할 수있는 장소를 표시한다) 지도에 현재 위치를 표시하고, 이미지 또는 주소로 위치를 사회적 소셜 네트워크에 공유한다.
경로 플래너, 라우터 찾기 : 현재 위치에서 원하는 위치로 경로 찾기를 가져 오거나 앱이 전 세계 어디에서나 위치 A에서 B까지 찾을 수 있다. 인터넷이 꺼지면 GPS 추적기 위치 (지도 및 추적자의 위치에 현재 위치 표시)
지도보기 : Hybrid, Normal, Satellite, TERRAIN 근처에있을 때 생각 나게하는 모든 장소에 대한 알림을 알림. 각 장소의 연락처 세부 정보, 주소, 시간, 거리, 평점, 이미지 및 위치를 본다.
기타 세부 정보 : 웹 사이트, 전화, 공유 링크, 영업 시간, 이미지 목록, 의견, 제안, 라우터 -> 제품을 주문할 수 있다.
내비게이션지도 : 경로 찾기를위한 앱 음성 안내. 도보 안내는 모든 단계를 안내한다.
GPS지도 물질 디자인 기술을 사용하여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아주 좋다. 이 앱은 다른 도시로 여행 할 때 사람들을 돕기 위해 설계된 탐색 도구이다. 선택한 카테고리에 따라 사용자의 현재 위치 근처에 장소를 표시한다.
각주 [ 편집 ]
참고자료 [ 편집 ]
같이 보기 [ 편집 ]
구글의 역사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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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글의 역사 2부 >
1999년 3월, 회사는 실리콘 밸리의 몇몇 유명 기술 신생 기업이 있는 캘리포니아의 팔로 알토로 사무실을 이전했다.
그다음 해에 Google은 초기 Page와 Brin의 검색 엔진 광고 자금 지원에 대한 반대의 반대하여 검색 키워드와 관련된 광고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깔끔한 페이지 디자인을 유지하기 위해 광고는 전적으로 텍스트 기반이었다.
2000년 6월 Google은 당시 가장 인기 있는 웹 사이트 중 하나였던 Yahoo! 의 기본 검색 엔진 공급자가 되어 Inktomi를 대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01년에 Google의 투자자들은 강력한 내부 관리가 필요하다고 느꼈고 Eric Schmidt를 Google의 회장 겸 CEO로 고용하기로 동의했다.
2003년에 Google은 캘리포니아 주 마운틴 뷰에 있는 1600 Amphitheatre Parkway에 있는 Silicon Graphics의 사무실 단지를 임대했다.
3년 후 Google은 SGI로부터 3억 1900만 달러에 이 부동산을 매입했다.
그 무렵, “Google”이라는 이름이 일상적인 언어로 사용되어 “google”이라는 동사가 Merriam-Webster Collegiate Dictionary 및 Oxford English Dictionary에 “인터넷의 정보를 얻기 위해 구글 검색 엔진을 이용하는 것”이라는 뜻으로 추가되었다.
출처 – Youtube channel “ENDEVR”
2004년 8월 19일 Google은 기업 공개를 통해 상장 기업이 되었다.
당시 Larry Page, Sergey Brin, Eric Schmidt는 2024년까지 Google에서 20년 동안 함께 일하기로 합의했다.
회사는 주당 85달러의 가격에 19,605,052주를 제공했다.
17억 7천만 달러의 판매로 Google의 시가 총액은 230억 달러가 넘었다.
2006년 11월 13일 Google은 YouTube를 구글 주식 16억 5천만 달러에 인수했다.
같은 해 11월, 유튜브의 하루 방문자는 2,500만 명으로 추정되었다.
2008년 3월 11일 Google은 DoubleClick이 웹 게시자 및 광고 대행사와 맺은 소중한 관계를 Google로 이전하기 위해 31억 달러에 DoubleClick을 인수했다.
같은 해 더블클릭은 하루 170억 개의 광고를 집행했다.
그리하여 Google은 2008년, 증권거래위원회에 보낸 공개문서에서 “우리는 기술회사로 시작해서 소프트웨어, 기술, 인터넷, 광고, 미디어 회사가 모두 하나로 합해진 기업으로 진화했다” 고 말했다.
Google은 230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 온라인 광고 시장과 540억 달러에 달하는 전 세계 온라인 광고 시장의 40%를 독식했다.
2010년 세계 포털 사이트에 야후(Yahoo)로 제쳤고
2011년 5월 Google 월간 방문자 수가 처음으로 10억을 돌파했다.
2011년까지 Google은 하루에 약 30억 개의 검색을 처리했다.
이 작업량을 처리하기 위해 Google은 각각 수천 대의 서버가 있는 전 세계 11개의 데이터 센터를 구축했다.
이러한 데이터 센터를 통해 Google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작업량을 보다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었다.
2012년 5월 Google은 125억 달러에 Motorola Mobility를 인수했다.
이 인수는 Google이 휴대전화 및 무선 기술에 대한 모토로라의 상당한 특허 포트폴리오를 확보하고, 주로 Apple 및 Microsoft와 같은 다른 회사와의 지속적인 특허 분쟁에서 Google을 보호하고 Android를 계속 무료로 제공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이루어졌다.
2014년, 구글은 모토로라의 분리된 사업부 중 ‘스마트폰 제조분야’를 매각하기로 결정하였고 레노버에게 총 29억 1천만 달러(당시 한화 약 3조 100억 원)에 매각하기로 결정하였다.
출처 – Youtube channel “ENDEVR”
2013년 6월 Google은 9억 6600만 달러 계약인 Waze를 인수했다.
Google은 2013년 9월 19일에 Apple Inc. 회장 Arthur Levinson이 이끌고 있는 Calico라는 새로운 회사의 출범을 발표했다.
Page는 공식 공개 성명에서 이 회사는 “건강 및 웰빙” 회사는 “노화 및 관련 질병의 도전”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4년 1월 26일 Google은 런던에서 비상장 인공 지능 회사인 DeepMind Technologies를 인수하는데 동의했다고 발표했다.
기술 뉴스 웹 사이트 인 Recode는 정보 출처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회사를 4억 달러에 매입했다고 보도했다.
구글 대변인은 가격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DeepMind의 인수는 인공 지능 및 로봇 커뮤니티에서 Google의 최근 성장에 도움이 되고 있다.
Interbrand의 연례 Best Global Brands 보고서에 따르면 Google은 2013년, 2014년, 2015년 및 2016년에 1,330억 달러의 가치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치 있는 브랜드였다 (Apple Inc. 에 이어).
2015년 8월 10일 Google은 Alphabet Inc.라는 모기업으로 다양한 이해관계를 재편할 계획을 발표했다.
구조 조정이 완료되자 Sundar Pichai는 Google의 CEO가 되었고, Alphabet의 CEO가 된 Larry Page를 대신했다.
2019년 3월 19일 구글은 구글 스타 디아라는 클라우드 게임 플랫폼을 출시하며 비디오 게임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발표했다.
2019년 6월 3일 미국 법무부는 독점 금지 위반에 대해 Google을 조사할 것이라고 보고 했다.
이로 인해 회사가 검색 및 검색 광고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남용했다는 이유로 2020년 10월 독점 금지 소송이 제기되었다.
2019년 12월 전 PayPal 최고 운영 책임자 인 Bill Ready가 Google의 새로운 상거래 최고 책임자가 되었다.
Ready의 역할은 Google Pay와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았다.
2020년 4월, COVID-19 전염병으로 인해 Google은 몇 가지 비용 절감 조치를 발표했다.
이러한 조치에는 적은 수의 전략적 영역을 제외한 나머지 2020년 남은 기간 동안 채용 속도를 늦추고 데이터 센터 및 기계와 같은 영역에 대한 투자의 초점과 속도를 재조정하고 비업무적 마케팅 및 여행이 포함됐다.
출처-url.kr/xywiv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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