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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사이드 – 나무위키:대문

에드워드 사이드는 1935년 영국 위임령인 팔레스타인, 예루살렘의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부유한 레바논계 혈통의 기독교인이었던 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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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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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 – YES24 작가파일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영문학자, 비교문학자. 1935년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에서 태어났다. 이스라엘의 건국과 함께 이집트 카이로로 이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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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yes24.com

Date Published: 7/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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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에드워드 사이드의 삶과 사상 – 시사저널

20세기 최대의 사상가인 에드워드 사이드가 죽었다. 물론 일각에서는 그를 20세기 최대의 사상가는커녕 ‘103인의 현대 사상'(민음사, 1996년)에도 넣지 않는 경우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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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isajournal.com

Date Published: 3/1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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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사이드 작가 정보 출생 1935년 11월 1일 ( 1935-11-01 )

영국 위임통치령 팔레스타인, 예루살렘 사망 2003년 9월 24일 ( ) (67세)

미국, 뉴욕 학파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식민주의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 1935년 11월 1일~ 2003년 9월 24일)는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난 미국의 영문학자·비교문학가·문학평론가·문명비판론자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현대 중동학에서 가장 인정 받고 있는 학자 중 하나로, 대표적인 저서 《오리엔탈리즘》으로 제국주의에 근거한 서양 위주의 사고방식을 비판하였다. 또한, 평생 조국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였다.

생애 [ 편집 ]

에드워드 사이드는 1935년 11월 1일 당시 영국령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에서 태어났다. 1947년 이집트 카이로로 이주해 공부했다. 1950년대 말 미국으로 건너가 박사학위를 받았고 1963년부터 콜롬비아 대학교의 영문학, 비문학 교수를 역임하며 문학평론가이자 문명평론가로 활동하였다. 1978년 《오리엔탈리즘》을 출간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1992년부터 백혈병으로 투병해온 사이드는 2003년 9월 미국 뉴욕에서 68세를 일기로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

영문학자, 비교문학자. 1935년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에서 태어났다. 이스라엘의 건국과 함께 이집트 카이로로 이주했다. 1950년대 말에 미국으로 건너가 프린스턴대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컬럼비아대학교 영문학, 비교문학 교수와 하버드대학교 비교문학 객원교수로 지내며 이론가, 문학비평가로 활동했다. 서구인이 말하는 동양의 이미지가 서구의 편견과 왜곡에서 비롯된 허상임을 체계적으로 비판한 『오리엔탈리즘』을 1978년 출간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밖에 『문화와 제국주의』를 비롯해 『팔레스타인 문제』, 『지식인의 표상』, 『저항의 인문학』 등 여러 저술을 남겼다. 1994년부터 백혈병으로 투병하다 2003년 9월 24일 뉴욕에서 생을 마쳤다.

[허연의 책과 지성] 에드워드 사이드 (1935~2003)

이름을 보면 그 사람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정보들이 드러난다. 집안이나 성별이 읽히기도 하고, 태어난 시기가 짐작되기도 한다.사실 외국인의 이름은 더하다. 성별은 물론 언어권이나 국가가 드러나고, 조상들 내력이나 종교까지 짐작 가능하다. 따라서 이름은 한 사람의 개인사를 상징하는 하나의 기호체계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에드워드 사이드의 이름을 생각해보자.에드워드(Edward)는 너무나 전통적인 영국식 이름이다. 반면 사이드(Said)는 아랍식 이름이다. 왜 이런 이름이 작명될 수 있었을까.에드워드 사이드는 1935년 예루살렘에서 태어났다. 부유한 사업가였던 아버지는 팔레스타인 사람이지만 미국 국적자였고, 기독교도였다. 전형적인 경계인이었던 아버지는 당시 영국 왕세자였던 에드워드의 이름과 집안 이름인 사이드를 조합해 이름을 지었다.그러나 얼마 후 이스라엘이 건국되자 사이드 가족은 난민 신세가 돼 이집트로 이주한다. 영어식 이름에 미국 여권을 가지고 기독교를 믿는 소년 사이드는 이집트에서 늘 왕따 신세였다. 10대 후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다음에도 마찬가지였다. 앵글로색슨이 주류인 학교에서 사이드는 동료들의 적대감에 시달리면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하지만 총명했던 소년은 공부에 두각을 나타냈다. 프린스턴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으면서 문명비평가로 활동하기 시작한다.사이드는 지식인의 공적 참여를 중시했다. 그는 “지식인은 손쉬운 공식이나 미리 만들어진 진부한 생각들 혹은 권력이나 관습을 거부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곤 했다. 학문의 길에 들어서면서 그는 고민에 빠진다. 에드워드로 살 것인가 아니면 사이드로 살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는 일단 ‘사이드’를 선택한다. ‘사이드의 눈’으로 동서양의 왜곡된 관계를 분석한 개념이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다.”오리엔탈리즘 속에 나타나는 동양은 서양의 학문, 서양인의 인식, 서양의 지배영역 속에 동양을 집어넣은 것이다.”동양의 개성이나 취향을 뜻하는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개념이 사실은 철저히 서구인의 우월의식 속에서 만들어지고 왜곡된 것이라는 사이드 주장은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이끌어낸다. 사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단어 속에 녹아 있는 정적인 이미지, 여성성, 나약함, 수동성 등은 서양의 역동성, 남성성, 능동성과 대척점에 있는 것들이다.그는 궁극적으로는 지식인이 전문성의 함정에 빠지는 것을 경계했다. “이윤에 흔들리지 않으며 전문성에 묶이지 말고 경계와 장벽을 가로지르는 연결점을 만들어 더 큰 그림을 그리려는 욕구”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그렇다. 그는 경계를 넘어서고 싶어했다. 노년에 그는 ‘사이드’라는 장벽을 허물어버린다.그는 1999년 유대인 출신인 세계적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서동 시집 오케스트라(West Eastern Divan Orchestra)’를 창설한다. 아랍과 이스라엘 젊은이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통해 평화와 화합을 이루고 싶었던 것이다.사이드는 2003년 사망했지만 오케스트라의 정신은 지금도 계승되고 있다. 화염병과 총탄이 날아다니는 팔레스타인 라말라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고, 2011년에는 지구상 마지막 분단국가인 한국 임진각에서도 콘서트가 열렸다.에드워드 사이드는 주어진 운명을 지성으로 치환한 인물이었다.[허연 문화전문기자·시인][ⓒ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의 삶과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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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대의 사상가인 에드워드 사이드가 죽었다. 물론 일각에서는 그를 20세기 최대의 사상가는커녕 ‘103인의 현대 사상’(민음사, 1996년)에도 넣지 않는 경우가 있다.사실 우리 나라에서 사이드는 무시되었다. 민족·민중·제3 세계·제국주의·반미 구호가 그렇게도 요란했던 1980∼1990년대에, 20세기를 살았던 어떤 누구보다도 그 이념들을 철저히 사색하고 온몸으로 실천했던 사이드가 그토록 무시된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한국 밖에서는 사이드가 그 누구보다도 중요한 인물이었는데도 우리 나라에서는 왜 그토록 무시되었을까?우리 나라에서 그런 구호들은 주로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회자되었기에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는 이유에서 그가 무시되었을까? 사이드가 마르크스주의자기이기는커녕 마르크스주의조차 동양을 경멸한 서양주의라고 비판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가 아시아인이 아닌 팔레스타인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을까? 그가 주로 중동에서 벌어진 제국주의를 비판해서였을까? 국내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비판한 제국주의는 일본과 미국이고, 마르크스가 태어난 유럽은 제국주의가 아니라고 보는 기막힌 마르크스주의 내지 유럽주의 세계사관 때문이었을까?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사이드가 1978년에 써서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가 된 이 국내에 소개되기를 기다리다가, 그 책과는 전혀 무관한 법학도였던 내가 직접 번역에 나섰지만, 출판사를 구하지 못해 그렇게 고생했던 1980년대 말의 일을. 그래서 몇 년 만에 겨우 출판되었으나 여전히 실천과는 동떨어진 채 회자되던 일을.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점은, 그의 책이 번역되어 나온 지 10여 년이 지났으나 아직도 그의 사상이 국내에서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얼마 전에도 나는 어느 외국 문학 전공 교수가 을 동양중심주의의 책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이드가 비판한 서양에서의 오리엔탈리즘이다.19세기 서양은 동양을 침략하면서 동양 취향이나 동양학을 연구한다는 뜻으로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것이 1978년 사이드에 의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곧 서양이 만든 동양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예술과 학문으로 제도화해 서양의 동양 지배를 정당화하는 권력 장치로 기능하는 과정이라고 오리엔탈리즘을 분석한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서양과 동양이라는 구별 자체가 서양에서 만든 학문과 권력의 기초였다고 하는 점이다. 그것은 문명과 야만, 선진과 후진이라는 구별과 마찬가지이다. 그런 구별 밑에 학문과 권력의 야합이 있음을 사이드는 비판한다.사이드의 이러한 사상은 그의 기묘한 생애와 결부된다. 사실 그의 이름부터 그렇다. 에드워드 사이드라는 그의 이름은 그가 태어났을 때 대영 제국의 왕세자 에드워드(심프슨 부인과 사랑해 왕관을 던진 사람)를 딴 것과 아랍인 성으로 되어 있다. 이 기묘한 합성 이름은 그의 68년 생애를 상징한다. 왜냐하면 그는 동서양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그 언저리에서 둘 사이의 진정한 통합을 모색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게다가 그는 1935년 이스라엘이 건국되기 전 영국이 지배한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에서 태어나 1947년 열두 살 때 이집트에 망명했다. 또한 사이드는 아랍인이면서 기독교도, 그것도 극소수인 영국 성공회 출신이고, 미국 국적을 가졌으며, 예루살렘과 카이로의 일류 영어학교를 다녔다. 당시 이집트도 영국의 지배 아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영국 식민지 두 군데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다.사춘기 시절 겪은 현실과 학교에서 영어를 배운 경험은, 뒤에 그로 하여금 평생 오리엔탈리즘을 연구하고 그것과 투쟁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그 자신이 오리엔탈리즘이 초래한, 철저히 구조화한 식민주의적 억압을 피부로 느꼈음을 뜻했다. 그가 열두 살 때 그의 조국은 없어졌다. 이어 열다섯 살 때인 1950년 미국에 건너가 프린스턴 대학과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하고, 영국의 제국주의 소설가 콘라드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고 컬럼비아 대학 교수가 되었다. 그 무렵 그는 팔레스타인인이라는 자각을 한다. 그 계기는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으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아랍통일운동과 구분되어 독자 노선을 걷게 되면서였다.그 후 사이드도 변했다. 그는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팔레스타인인이 나라 없는 ‘난민’이자 테러리스트로 불리고, 자신을 주장하기는커녕 언제나 비난받는 존재로 왜곡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런 운명이 팔레스타인만이 아니라 동양 전체의 것임도 알게 되었다. 왜냐하면 19세기에 서양 제국주의 침략으로 식민지가 된 동양은 자신을 주장하기는커녕 서양에 의해 자신이 표현된다는 점에서 팔레스타인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서양인에 의해 동양에 대한 이야기가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을 보았다. 그것이 오리엔탈리즘이고, 그 학자나 예술가가 오리엔탈리스트들이라는 것이다.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이 갖는 인식론적 폭력성에 전혀 무감각한 오리엔탈리스트들을 식민주의자라고 규탄했다.사이드는 1977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국회 격인 PNC의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1978년 을 발표했다. 서양이 동양을 지배하고 억압하기 위해 조작한 스타일인 오리엔탈리즘의 역사·정치·학문·예술·문학 등 서양 문화 전반을 비판한 이 책은, 그때나 지금이나 20세기 최대의 사상서이다. 이어 팔레스타인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활동하면서 그는 1988년 알제리에서 열린 PNC에서 팔레스타인 국가 독립이 선언될 때 영어판 독립선언문을 기초했다. 그러나 그 후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테러 노선을 걷게 되자 그는 그것을 철저히 비판하고 돌아섰다. 민족주의가 지나쳐 인종적 특성을 강조하고 민족의 본질을 추구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어 1993년 의 속편인 를 발표한 데 이어 등 20여 권에 달하는 저서를 냈다.1992년부터 그는 백혈병에 걸려 고통을 받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2001년 9·11 테러 이후 최근 부시가 발표한 팔레스타인 평화안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제국주의를 비판하다가 과로로 죽었다. 그의 평생은 오리엔탈리즘에 대항한 투쟁의 삶이었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도 사상가였다. 그는 평생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었다. 그 자신이 지식인의 본분이라고 주장한 다양한 분야의 아마추어로서 망명자·고향상실자·아웃사이더로 자기 사회를 냉정하게 관찰하는 비판적인 소수자로 살았다. 그리고 그는 모든 인간과 민족, 그리고 문화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는 다문화주의에 의한 인류 통합과 공존, 유연과 관용을 주장했다. 21세기는 과연 사이드가 꿈꾼 그러한 시대가 될 것인가?

‘서구정신’ 위선 폭로한 반권력 지식인

[토요판] 박홍규의 이단아 읽기

①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

스포츠카 즐긴 부잣집 도련님

차별 알곤 출판

PLO 테러노선도 가차 없이 비판

에드워드 사이드. 자료사진

▶ 영남대 명예교수(법학). 노동법 전공자지만, 철학에서부터 정치학, 문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관심의 폭이 넓다. 민주주의, 생태주의, 평화주의의 관점에서 150여권의 책을 쓰거나 번역했다. 주류와 다른 길을 걷고, 기성 질서를 거부했던 이단아들에 대한 얘기를 격주로 싣는다. ▶ 영남대 명예교수(법학). 노동법 전공자지만, 철학에서부터 정치학, 문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관심의 폭이 넓다. 민주주의, 생태주의, 평화주의의 관점에서 150여권의 책을 쓰거나 번역했다. 주류와 다른 길을 걷고, 기성 질서를 거부했던 이단아들에 대한 얘기를 격주로 싣는다.

지난달 중순 ‘오만해 유조선 피격’ 사건으로 중동은 1990년 걸프전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이란의 소행이라고 단정하는 미국 언론을 그대로 따르는 듯한 국내 보도도 많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의 자작극, 특히 미국이 베트남전쟁에 개입하는 빌미로 삼았던 ‘통킹만 사건’의 재판이라고 주장하는 이란 쪽 주장도 전해졌다. 1964년 통킹만 사태 때는 물론 1990년 걸프전 때도 우리는 미국의 일방적인 주장만을 들어야 했다. 1991년 내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을 번역한 것은 그런 편견을 바꾸어보자는 하나의 시도였다.

책 제목을 ‘동양주의’나 ‘동양제일주의’로 오해한 사람들도 있고, ‘동양론’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꾸중한 영문학자도 있지만, 굳이 번역한다면 ‘동양에 대한 서양의 차별과 편견’이었을 것이다. 1980년대 말 2년쯤 하버드대학에 근무하면서 인종차별과 같은 오리엔탈리즘을 자주 경험했지만, 미국에는 그런 것이 없다고 하면서 나를 마조히스트로 보는 한국인도 많았다. 에드워드 사이드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했다. 그런 사람들이 한국에 돌아와 차별금지법에 반대하고 미국이나 유럽이나 일본을 무조건 찬양하는지도 모른다.

팔레스타인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난 사이드는 미국으로 유학해 하버드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부분의 부잣집 자녀들처럼 그 역시 엘리트주의에 젖어 비싼 스포츠카를 타고 다녔다. 1963년 스물여덟살에 미 컬럼비아대학교의 영문학 교수가 될 때까지 그는 정치에 무관심한 채 오로지 문학 연구에 전념했다. 그러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생기면서 변했다. 열세살이던 1948년 조국인 팔레스타인이 없어진 이후,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도 팔레스타인인이 나라 없는 ‘난민’이자 ‘테러리스트’로 불리고 자신을 정당하게 주장하기는커녕 언제나 비난받고 차별당해 왔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2천년 넘게 살아온 고향에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강제로 쫓겨난 자민족이 <300> 같은 영화에서 보듯이 고대 이래 악당이나 변태로 왜곡되어 왔음을 안 것이다.

1977년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국회 격인 팔레스타인민족평의회(PNC)의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1978~1979년의 레바논 내전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고자 진력하는 가운데 1978년 을 발표했다. 그 책에서 동양이란 우리가 보통 동양이라고 하는 한·중·일이나 아시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로 중동을 말한다. 즉 중동을 침략하고 지배하면서 서양이 중동의 이미지를 열등하고 사악한 것으로 조작한 것이 오리엔탈리즘이다. 자신의 처지는 물론이고 나라를 잃고 방랑하는 팔레스타인의 처지, 미국을 비롯한 서양으로부터 항상 멸시와 압박을 당하는 이슬람의 처지를 생각하면서 그 원인이 된 오리엔탈리즘을 분노로 분석했으니 그 책은 단순히 학문적인 연구서가 아니라 차별받는 민족의 분노에서 나온 책이다.

내가 번역서 출판에 애를 먹은 것처럼 미국에서도 저자는 출판사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고, 어렵게 책이 나온 뒤에도 상당 기간 학계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 이유 역시 오리엔탈리즘 탓이었다. 1978년은 물론 그 뒤 지금까지도 미국은 중동의 석유를 중심으로 한 경제적 지배를 위해, 또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싸우는 이슬람 사람들을 “유대인을 학살하는 호전적, 폭력적, 광신적, 야만적 무리”라고 비난해왔기 때문이다. 사이드 역시 항상 살해 위협 속에 살아야 했다. 그가 평생 살면서 사랑한 코즈모폴리턴의 도시 뉴욕 사람들도 그를 보고 “테러범”이라고 욕했다. 그런 현상은 지금까지도 전혀 변하지 않았다. 도리어 9·11 사태 이후 더욱 심해졌다.

은 여전히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따라서 그것을 비판한 사이드는 여전히 유효하고 유용하며 유의미하다. 서양이 동양을 지배하고 억압하기 위해 조작한 오리엔탈리즘의 역사, 정치, 학문, 예술, 문학 등 서양 문화 전반을 비판한 이 책은 어떻게 동양에 대한 서양의 우월주의가 문학과 학문 또는 예술과 종교 등의 이름으로 조작되고, 제국주의적 권력지배와 결탁하여 식민지 민중을 착취하고 열등감에 사로잡히게 하고 있는지를 해부한 책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서구 정신의 허구와 위선에 대한 분노의 발로였으나, 기본적으로는 참된 ‘정신적 행동인’의 추구다.

그 책은 중동에 대한 서구 제국주의의 침투를 분석한 것이었으나, 우리의 경우 과거의 일제강점기나 오늘의 근대화(=서양화=미국화=국제화=세계화)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일제는 서양을 모방하여 우리를 착취하고 조작한 것에 불과했다.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이 서양보다 우월하다는 식의 옥시덴탈리즘이 되기도 한다. 가령 개인주의나 물질주의의 서양에 대해 공동체주의와 정신주의의 동양이 우월하므로 동양이 서양을 구원하고 대체해야 한다는 식의 ‘동양주의’나 ‘동양제일주의’ 주장이다.

노엄 촘스키가 평한 대로 은 우리가 ‘권력의 노예’가 아니라 ‘정신적 행동인’이 되기를 열망한다면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일제나 서양 같은 침략과 편견의 권력 주체에 대한 비난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권력의 노예’였던 서양과 일제의 지식인이니 문화인이니 하는 자들과 달리 ‘정신적 행동인’, ‘정신적 자유인’인 지식인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이드는 평생을 반권력의 휴머니스트로 살았다. 그래서 팔레스타인해방기구가 테러 노선을 걷게 되자 그것을 철저히 비판하고 돌아섰다. 민족주의가 자기목적화하여 인종적 특성을 강조하고 민족의 본질을 추구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9·11 사태가 터지자 죄 없는 사람들을 상대로 극악무도한 테러를 저지른 점에 누구보다도 분노했고 규탄했다. 그러나 동시에 미국이 황당한 추론을 통해 가공의 이슬람을 배후로 낙인찍고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이슬람을 제물로 삼는 점에 대해서는 더욱 분노했다. 그는 9·11 사태가 미국이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원유 생산지인 아랍에 이율배반적으로 개입한 점에서 기인한다고 보았다. 이것이야말로 미국의 중동정책을 움직이는 핵심 원리다.

사이드가 말했듯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이스라엘이라는 ‘희생자의 희생자’가 되었지만 세상은 모른체하고 있다. 특히 우리에게 팔레스타인은 너무나 멀다. 지리적으로도 멀지만 마음으로나 머리로는 더욱더 멀다. 책방에 가거나 도서관에 가면 이스라엘 관련 책이 넘쳐나는 반면 팔레스타인 책은 그야말로 극소수고 대부분 이스라엘 편에서 팔레스타인을 비난하는 책들뿐이다. 사이드가 쓴 , , 등 팔레스타인과 중동에 대한 책들은 우리말로 전혀 번역되어 있지 않고, 그에 대한 논의는 아직도 기껏 문화비평 수준에 그치고 있다.

사이드의 모든 책은 본질적으로 정치권력과 결탁한 문화권력, 즉 학문권력, 언론권력, 문학권력, 예술권력 등등에 대한 비판의 책이다. 그는 지식인이란 모름지기 권력에 맞서서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실제로 평생 그렇게 살았다. 죽기까지 40년을 오로지 교수로 살면서 평생 부동산을 전혀 소유하지 않고 방랑자처럼 살았다. 삶과 학문이 그처럼 일치하는 경우를 좀처럼 보기 어렵다.

에드워드 사이드 <오리엔탈리즘>

에드워드 사이드 <오리엔탈리즘>

Edward W. Said지음 박홍규 옮김.

읽은 책은 “교보문고. 2013/01/30 개정증보판6쇄 736쪽”으로 리뷰에 인용된 문장들은 이 책의 쪽수와 같다.

리뷰에 앞서 부끄러운 고백을 하고 시작한다.

책을 구매하기 전에는 <오리엔탈리즘>을 단순히 “동양적”으로 생각했었다. 구매하려고 여러 책 소개 글들을 살펴보며 “동양적”이라는 단편적인 해석만 알고 있는 내 자신에 많은 부끄러움을 안고 읽기 시작한 책이다.

이제 널리 알려진 책이니 지금 나의 <오리엔탈리즘> 리뷰를 읽는 독자들은 제목에 대한 오해는 없을 것이다.

작고한 작가의 책, 출간된 지 오래된 책, 읽은 지 여러 해 지난 책을 다시 봄은 많은 젊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어서다. 특히 중등교육 고등교육을 유럽에서 마친 나의 아들들에게 이 책을 다시 읽도록 권하고 싶은 마음이다.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가 말한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적’인 것이 아닌 ‘서양의 동양에 대한 인식’을 말한다.

오리엔탈리즘이란 서양이 동양에 관계하는 방식으로서, 유럽서양인의 경험 속에 동양이 차지하는 특별한 지위에 근거하는 것이다. 동양은 유럽에 단지 인접되어 있다는점만이 아니라, 유럽의 식민지 중에서도 가장 광대하고 풍요하며 오래된 식민지였던 토지였고, ~~~ 또 유럽인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반복되어 나타난 타자 이미지이기도 했다. 15쪽.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시각을 중심으로 동양을 이야기했고, 그것이 “동양학”으로 굳어져 정당성을 획득했다.

유럽인들에게 “타자”인 동양을 사이드는 이렇게 논한다.

동양이 동양화되었다는 것은, 19세기의 평균적인 유럽인들에의해서, 동양이 모든 상식에 비추어 ‘동양적’이라고 인지되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동양이 동양적인 것으로 날조될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거기에는합의라고 하는 것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23쪽.

텍스트에 더 깊이 들어가기 전에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와 그의 저서인 이 책의 관계를 먼저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사이드는 팔레스타인 국가평의회 의원을 지내기도 했고, 많은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여했기 때문에 저서 <오리엔탈리즘>에 나오는 많은 사례들이 아랍인 , 이슬람교도들을 중심으로 한다.

에드워드라는 영국식 이름과 사이드라는 아랍식 성으로 조합된 그의 이름은 그가 어느 세계에도 온전하게 속하지 못한 경계인이자 망명자임을 알려준다. 사이드는 이슬람 문화권에 대한 서구 중심적인 폭력과서구 지식체계와 담론의 관계를 <오리엔탈리즘>에서 날카롭게 파헤친다.

이제 본문을 읽어보자.

소위제3세계의 독자들에 대해서는, 서양의 정치와 그 정치 속에서 비서양세계의 지위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으로서가 아니라, 도리어 서양의 문화적 담론의 힘, 곧 단순히 장식적인 강대함이나 ‘상부구조’의 강대함이라고 자주 오해되고 있는 담론의 힘을 이해하기 위한 방책을 제공하고자 했다. 57쪽

아랍 팔레스타인인의 존재가 허용된다고해도 그것은 문제아인 동양으로서 이다. 아랍내지 이슬람교도를 억누르는 인종차별주의, 문화적 고정관념, 정치적 제국주의,반(反)인간적인 이데올로기의 그물망은 참으로 강력하다. 이러한 그물망이야말로 모든 팔레스타인인에게 특별히 가혹한 운명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60쪽

우리는사실 이슬람인들과 접해보지도 못한 채, 중동의 오랜 역사관에 대한 이해도 없이 이슬람과 아랍계 국가들을 판단한다. 단편적인 편견은 표면화된 테러 그 이면의 폭력이다.

기독교가 지은 반이슬람적인 저술들, <엘 시드의 노래> <롤랑의 노래> 세익스피어가 지은 <오셀로> 가운데 동양과 이슬람은 언제나 국외자로 표상되었고, 유럽의 내부에서는 특별한 역할만을 수행했다. 134쪽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으로 시작한 제국주의적 침략을 기반으로 서양의 우월감과 동양의 열등감이라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동양은 오리엔탈리스트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졌다. 오리엔탈리스트들은 텍스트를 통하여 동양의 열등한 점들을 왜곡되게 편집했다. 동양은 단순한 신비나 공포를 넘어, 장악되고 지배되고 경영되어야 할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텍스트가 단지 지식만이 아니라, 그 텍스트가 서술하고 있는듯이 보이는 그 현실 자체도 창조할 수 있다는 점이다.174쪽

쇄국정책을 편 동양의 왕들은 전체주의적 독재군주 이미지로 표면화됐고, 서양과의 불평등한 교역의 거부라는 이유는그 이면에 숨겨졌다.

오리엔탈리즘이 지금까지 옹호하여 온것은, 지적 및 예술적인 성공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 뒤에 발휘된 유효성, 유용성, 권위에 대한 것이었다.222쪽

1802년, 프랑스 학술원이 1789년이래의 인문, 자연과학의 현상과 발전에 관한 ‘일람표’의 작성을 나폴레옹으로부터 위탁받았을 때 사시도 그 집필자중에 한 사람이 되었다. 227쪽

1822년에 아시아협회가 창설됐고 살베르트 드 사시가 초대 회장이 되었다.

실베르트 드 사시는 오리엔탈리즘에 관한 논문 속에서-다른 곳에서와 마찬가지로-자신의 작업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방대한 양의 자료를 밝혀내고, 조명하여, 구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 때문인가? 학생 앞에 보이기 위해서였다. 229쪽

오리엔탈리즘의 학문적 체계화를 이룬 인물은 살베르트 드 사시와 에르네스트 르낭이었다.

한편 에르네스트 르낭은 오리엔탈리즘의 제2세대 출신이다. 르낭의 작업은 오리엔탈리즘의 공적인 담론을 확고히 하고 그 통찰력을 체계화하여, 그 지적 및 세속적인 여러 제도들이 확립한 것이었다.234쪽

사시와 르낭, 유럽인들의 오리엔탈리즘적 동양관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고, 국민교육이나 대학교육을 통해서 끊임없이 재생산되었다.

르낭과 사시가 노력한 것은 동양을 일종의 인간적인 평범함으로 환원시키는 것이었고, 그것으로 인하여 동양의 여러 특징은 쉽게 조사되었으며, 동양이 갖는 복잡한 인간성은 박탈되었다. 265쪽

여기서 말하는 “동양의 여러 특징”이란 동양인들은 가부장적이고 노예근성이 있는 수동적인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동양은 유럽의 오리엔탈리스트들이 만들어낸 ‘동양인’이 되었고, 그것이 그들에겐 지식이 되었고, 그 지식은 고착화되었다.

지식의 발달이란, 지식이 단순히 양적으로 부가되고 누적되는 과정이 아니라, 연구상의 합의라고 불려온 것의 내부에서 지식의 선택적인 누적, 배척, 말소, 재배치, 강조가 행해지는 과정이다. 309쪽

처음엔 동양에 대해 소수여행자 또는 거주자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왜곡된 증언들이 유럽에 소개됐다. 지금 우리 여행자들도 자신이 접한 방문지의 좁은 단면을 마치 전체인 것처럼 전하고 있지 않은가? 문제는 이런것들이 모여서 텍스트가 되면 그 텍스트가 담론이 되는 것이다.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에서 지적한 오리엔탈리스트들이 만들어낸 ‘동양인’이 바로 그렇게 인식된 것이다.

왜곡된 오리엔탈리즘은 꾸준히 증식하고, ‘우리’와 ‘그들’이라는 대립적인 이원론으로 극대화된다.

자기동일성과 모순회피라는 원리가 오리엔탈리스트를 구속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오리엔탈리스트의 전문지식은 그러한 원리를 유린하고 있다. 그러한 전문지식의 근저에는 오리엔탈리스트가 철학적·수식적으로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는, 논박이 불가능한 집합적인 진리가 존재한다. 406쪽.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오리엔탈리즘의 학문적 담론은 우리들의 인식구조를 유럽중심주의로 돌려놓았다.

‘니그로 정신’이라든가 ‘유대인의인격’에 관하여 학술적인(또는 대중적인) 논문을 쓰는 것이 더이상 불가능한 상황에 있는 반면, ‘이슬람 정신’이라든가 ‘아랍인의 성격’이라는 연구에 종사하는것은 완벽하게 가능하다. 450쪽

예컨대 미국에는 아랍과 이슬람 동양을 연구하기 위한 기관이 수없이 존재하나, 동양에는 그 지역에 대하여 최대의 경제적 및 정치적 영향력을 갖는 미국을 연구하는 기관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면 우리는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555쪽

사이드는 이런 현상을 ‘도그마’로 설명한다.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도그마인 것이다.

(참고. 도그마 ; 교의, 교조, 교리. 카톨릭교회에서 초자연적인 계시를 근거로 신앙의 진리를 정리한것. 도그마는 이성의 비판이 허용되지 않고, 신자는 무조건 믿어야 함. 비이성적이고 맹목적인 신봉.)

이렇듯 오리엔탈리즘은 어떤 실증과는 거리가 멀다. 반복 재생되는 도그마에 가깝다. 우리가 잘 아는 마르크스도 이 도그마적인 발언을 했는데, 그는 “동양인은 스스로 자신을 대변할 수 없고, 다른 누군가에 의해 대변되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은 새로운 제국주의에 멋지게 적응하여 온 것이 실정이고, 그 중요한 패러다임은 아시아를 지배하고자 하는 제국적 기도에 항의하기는커녕도리어 그것을 강화하는 역할조차 수행하여 왔다. 552쪽

564 ~ 603쪽에는 1995년 후기, 603 쪽 ~ 621쪽에는 2003년 후기가 수록되어있다.

622 ~ 691쪽에는 역자의 <옮기면서>가 수록되어있다.

692 ~ 724쪽에 이르는 원주는 사이드가 이 책 <오리엔탈리즘> 저술에 얼마나 많은 자료들을 참고했는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제 에드워드 사이드 <오리엔탈리즘> 리뷰의 결론에 이르렀다. 결론을 위하여 책 515쪽에 기술된 도그마를 정리한다.

1) 합리적으로 발전해온, 인도적이고 우월한 서양과, 탈선적이고 정체되어 있으며 열등한 동양사이에 절대적·체계적인 차이가 있다.

2) 동양에 관한 추상개념, 특히 ‘고전적’ 동양문명을 표상하는 여러 문헌에 근거한 추상개념이, 현대동양의 여러 현실로부터 직접 나오는 증거보다도 언제나 더욱 바람직한 것이다.

3) 동양이 영원히 획일적이고 자기를 정의할 수 없다고 하는 것, 따라서 서양의 관점에서 동양을 서술하기 위해서는 고도로 일반적이고 체계적인 어휘가 불가결하며, 학문적으로 ‘객관적’이라는 주장이 생겨나게 된다.

4) 동양이 본질적으로 두려운것이라고 하는 것 또는 통제되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사고방식.

유럽인들에게 정의된 ‘동양인’이 아닌 동양인으로서, 동양에 속한 한국인으로서 안타깝게도 빨간펜으로밑줄 근 인용문을 옮긴다.

동양인 학생들(그리고 동양인 교수들)은 지금 미국의 오리엔탈리스트에게 와서 그 무릎 아래에서 배우기를 희망하며, 그 뒤에는, 내가 오리엔탈리즘의 도그마라고 특징지어온 상투문자를 자국의 청중을 향하여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555쪽

오리엔탈리즘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 <오리엔탈리즘> 밖, 우리생활 속에서 지속적으로 재생산되고 있다. 이것에 대해 한번쯤은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갖도록 권유하기 위해 나는 <오리엔탈리즘>의 리뷰를 썼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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