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우 일모 | 구우일모 九牛一毛 / #036 길앤미 고사성어 이야기 모든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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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뜻[편집] 소 한 마리도 털이 수천만인데 그런 소가 아홉 마리이니, 그 엄청난 숫자의 털 가운데 하나에 불과함으로 아주 사소하고 하찮은 것을 일컫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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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우일모(九牛一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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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들으면서 공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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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九牛一毛 구우일모 | 생글생글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九牛一毛 (구우일모). ▷ 한자풀이 九: 아홉 구, 모을 규 牛: 소 우 一: 한 일 毛: 터럭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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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gsg.hankyung.com

Date Published: 6/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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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우일모 뜻과 유래 – 고사성어 이야기 – 아기뼝아리의 소소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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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gibbyeongari.tistory.com

Date Published: 8/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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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구우일모(九牛一毛)의미 뜻과 유래 – Study불빛

[고사성어] 구우일모(九牛一毛)의미 뜻과 유래. by 불빛_ 2020. … by 불빛_ 2020. 8. 10. … 극히 적은 것, 아무것도 아닌 대단히 … [구우일모 유래]. 구우일모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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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forever1.tistory.com

Date Published: 12/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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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우일모 – 위키낱말사전

구우일모. 언어 · 주시 · 편집. 한국어편집. 명사편집. 어원: 한자 九牛一毛. IPA/kuuiɭmo̞/. 발음[구우일모]. 국어의 로마자 표기. Revised Romanization, guu-il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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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tionary.org

Date Published: 9/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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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우일모(九牛一毛): 아홉 마리 소에서 터럭 한 개 – 광양뉴스

아무것도 아닌 아주 하찮은 일을 말한다. 획수가 적은 쉬운 글자로 이루어진 고사다. 그러나 속뜻은 너무 아픈 뜻이 담겨있는 말이다. 한(漢)나라 무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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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3/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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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우일모 < 법제 < 지식창고 - 법제처

구우일모. 구분고전명구(형옥야화/고사성어)(저자 : 홍혁기); 등록일 2009-01-01; 조회수 898; 담당 부서 대변인실. 九 牛 一 毛 하찮은 존재, 많은 수 가운데 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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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9/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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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우일모 九牛一毛 / #036 길앤미 고사성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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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구우 일모

  • Author: 길앤미 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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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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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九牛一毛 (구우일모)

▶ 한자풀이

한경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작가/시인

한나라 7대 황제인 무제 때 장군 이릉(李陵)은 흉노를 정벌하러 5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출전했다. 열 배가 넘는 적의 군사를 맞아 10여 일간 치열하게 싸웠으나 패하고 말았다.이듬해 뜻밖의 사실이 밝혀졌다. 전쟁 중 죽은 줄 알았던 이릉이 흉노에 투항해 후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분노한 무제는 이릉 일족을 참형하라고 명했으나 중신들은 무제의 얼굴만 살필 뿐 누구 하나 옹호하는 자가 없었다. 사마천이 그를 변호하고 나섰다. “소수의 보병으로 수만의 오랑캐와 싸우다 흉노에 투항한 것은 훗날 황제의 은혜에 보답할 기회를 얻기 위함일 것입니다.” 사마천은 흉노들이 가장 무서워한 이광 장군의 손자 이릉이 목숨을 걸고서라도 나라를 구할 용장으로 믿었기 때문이다.이에 진노한 무제는 사마천을 옥에 가두고 궁형(생식기를 잘라 없애는 형벌)을 내렸다. 남자로서 너무나 수치스러운 형벌이었다. 후세 사람들은 이때의 일을 ‘이릉의 화(李陵之禍)’라고 부른다. 사마천은 옥중에서 친구 임안에게 자신의 참담한 심경을 밝힌 편지를 썼다. “내가 법에 의해 사형을 받아도 아홉 마리의 소 중 터럭 하나 없어지는 것뿐이니, 나와 같은 자가 땅강아지나 개미 같은 미물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내가 이런 수치스러운 일을 당하고도 죽지 않았으니 졸장부라고 여길걸세.”아홉 마리 소 가운데서 뽑은 한 개의 털을 뜻하는 구우일모(九牛一毛)는 아주 많은 것 중에서 가장 적은 것을 비유하며, 친구에게 보낸 사마천의 편지가 출처다. 나 등에 나온다.사마천이 이런 치욕을 견딘 것은 아버지의 뜻을 받들고자 함이었다. 당시 그는 태사령(조정의 사서)이던 아버지 사마담이 통사(通史)를 쓰라고 유언을 남김에 따라 를 집필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2년 후 중국 최초의 역사서로, 불후의 명저로 꼽히는 130권이 완성돼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email protected]

구우일모 뜻과 유래 – 고사성어 이야기

구우일모 뜻과 유래 – 고사성어 이야기

구우일모(九牛一毛) 한자

구(九): 아홉 구

우(牛): 소 우

일(一): 한 일

모(毛): 털 모

구우일모 뜻

아홉 마리 소 중의 털 하나

구우일모 풀이

작고 보잘 것 없거나 매우 하찮음

구우일모 출전

한서(漢書) 사마천전(司馬遷傳) 보임안서(報任安書)

구우일모 유래

중국 한나라 무제 때, 황제는 『이릉』에게 흉노를 공격하는 부대를 위해 보급을 담당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러나 이릉은 자신이 직접 부대를 이끌고 전장에 나가 흉노족의 전력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맡고 싶다고 말했다. 황제는 기병이 주력인 흉노에게 대적할 기병 전력이 부족하다며 난색을 표했으나 그는 기병이 없이도 소수의 병력으로 다수의 적을 충분히 격파할 수 있다고 했다. 결국, 황제가 이를 허락하여 이릉은 보병 5천 명을 이끌고 흉노족을 토벌하러 나섰다.

그러나 흉노족의 전력을 분산시키려던 이릉의 예상과 달리 그는 적의 주력부대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는 첫 전투에서 흉노족의 기병 3만 기를 상대로 수천 명의 적을 죽이며 대승을 거두었으나, 이에 놀란 흉노족의 우두머리는 모든 전력을 끌어 모아 기병 8만 기로 이릉의 부대를 공격했다.

이후, 흉노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릉을 공격했고, 그는 숫적 열세와 보병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물러나면서 맞서 싸웠다. 그러나 이릉의 부대는 갈수록 사상자가 늘어나고, 화살도 떨어져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내가 폐하를 볼 면목이 없구나!” 결국, 이릉은 흉노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한편, 황제는 이릉이 흉노에게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진노했다. 모든 신하들도 이릉에게 죄를 주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사마천』만이 이릉을 적극적으로 변호했다.

“이릉은 자신을 돌보지 않고 나라를 위해 싸웠으나 운이 따르지 않아 패배했을 뿐입니다. 자신과 처자식을 지키기에 급급한 신하들이 그의 결점을 부풀려 죄를 주라하니 실로 통탄할 노릇입니다. 이릉은 5천의 보병으로 흉노족의 땅에 들어가 수만 명의 군사와 맞서 싸웠습니다. 흉노족이 전력을 다해 그를 공격하였으나 그의 군사들은 열악한 상황에서도 죽기로 싸웠으니, 그것은 그가 부하들로 하여금 사력을 다하게 한 것입니다. 이는 옛날의 명장들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는 비록 패배했으나 그의 용맹함은 천하에 떨치고도 남을 일입니다. 그가 죽지 않고 흉노에게 항복한 것은 나중에라도 다시 나라에 보답하여 죄를 씻으려고 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황제는 이릉을 감싸는 사마천에게 크게 분노하여, 그를 옥에 가두고, 허리를 잘려 죽는 형벌에 처했다. 이 경우, 사마천은 ①허리를 잘려 죽거나 ②50만 전을 바치고 사면을 받거나 ③생식기를 잘라 없애는 형벌인 ‘궁형’을 받는 것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 때, 사마천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사기》라는 역사서를 집필 중이었다. 그래서 그는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죽음보다 더한 치욕을 감수하고 궁형을 선택하여 결국 생식기가 잘리는 신세가 되었다. 사마천은 친구인 『임안』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 그 당시의 참담한 심경을 전했다. 『구우일모(九牛一毛)』는 그 편지의 내용 중에 등장하는 고사성어이다.

“만일, 내가 법에 따라 처형을 당해도, 『아홉 마리 소 중에서 털 하나』 없어지는 것과 같으니, 땅강아지나 개미 같은 미물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내가 절개를 위해 죽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가 다하고 죄가 극에 달해서 어쩔 수 없이 죽었다고 여길 것이네.”

그로부터 2년 후, 사마천은 130권에 이르는 사기 집필을 모두 마쳤고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다.

구우일모 원문

보임안서(報任安書) 중에서

假令僕伏法受誅(가령복복법수주)

만약, 내가 법에 따라 처형을 당해도

※假令(설령): 설령, 만일

若九牛亡一毛(약구우망일모)

아홉 마리 소에서 털 하나가 없어지는 것과 같으니

與螻蟻何以異(여루의하이리)

땅강아지나 개미같은 미물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螻蟻(누의): 땅강아지와 개미. 보잘것 없음

而世又不與能死節者(이세우불여능사절자)

그리고 세상은 또 내가 절개를 위해 죽은 사람이 아니라

※死節(사절): 절개를 위해 죽음

特以爲智窮罪極(특이위지궁죄극)

단지, 지혜가 다하고 죄가 극에 달해서

不能自免卒就死耳(불능자면졸취사이)

어쩔 수 없이 결국 죽게 되었다고 여길 것이네.

구우일모와 비슷한 사자성어(동의어, 유의어)

★ 작고 보잘 것 없거나 매우 하찮은 것을 이르는 단어

창해일속(滄海一粟)

창해일속 한자

滄(큰바다 창), 海(바다 해), 一(한 일), 粟(조 속)

창해일속 뜻: 바다 속의 좁쌀 한 알

= 대해일속(大海一粟)

창해일적(滄海一滴)

창해일적 한자

滄(큰바다 창), 海(바다 해), 一(한 일), 滴(물방울 적)

창해일적 뜻: 바다 속의 물방울 하나

= 대해일적(大海一滴)

조족지혈(鳥足之血)

조족지혈 한자

鳥(새 조), 足(발 족), 之(갈 지), 血(피 혈)

뜻: 새발의 피

제잠(蹄涔)

제잠 한자

蹄(굽 제), 涔(괸물 잠)

뜻: 소나 말의 발자국에 괸 물

구우일모 뜻과 유래

[고사성어] 구우일모(九牛一毛)의미 뜻과 유래

구우일모(九牛一毛)의미 뜻과 유래

九 : 아홉 구

牛 : 소 우

一 : 한 일

毛 : 털 모

[구우일모 뜻]

아홉 마리의 소 중에서 뽑은 한 개의 털이라는 뜻으로

극히 적은 것, 아무것도 아닌 대단히 하찮은 것을 의미합니다.

[구우일모 유래]

구우일모는 역사서 ‘사기’를 집필한 사마천의 이야기에서 유래되었습니다.

한나라의 가장 큰 걱정 중에 하나는 흉노족의 침입을 막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흉노족을 정벌하기 위해 군사를 자주 일으키고는 했습니다.

한번은 이릉이 군사를 이끌고 흉노족을 정벌하러 갔습니다.

이릉은 자신의 군사보다 더 많은 흉노족을 맞아 대등하게 싸웠지만 결국 패했고

죽음을 택하기보다는 훗날에 복수를 생각하며 항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흉노의 왕은 이릉의 능력을 높이 사 후하게 대접했습니다.

이릉이 항복한 것도 모자라 후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한나라 무제는

당장 이릉의 일족을 모두 잡아다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자리 있던 이릉의 친구들이나 중신들은 이릉을 감싸기 위한 어떤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때 사마천이 이릉을 변호하며 나섰습니다.

“이릉은 적은 군사로 몇 배에 달하는 흉노족과 대등하게 싸웠습니다.

원군이 오지 않고 배반자가 나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항복하게 된 것입니다.

분명히 훗날 한나라를 위해 공을 세우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러나 한무제는 오히려 사마천에게 반역자라고 하며 옥에 가둔 후 궁형에 처했습니다.

궁형은 생식기를 자르는 형벌로 보통 궁형을 받지 않고 죽음을 택하고는 했습니다.

그러나 사마천은 죽음을 택하지 않고 궁형의 처벌을 받았습니다.

그 후 사마천은 친구에게 글을 적어 보냈습니다.

‘내가 죽는다고 해도 그것은 한낱 아홉 마리의 소 중에 털 하나 없어지는 것과 같을 뿐이네.

그러니 나와 같은 존재는 땅강아지나 개미 같은 미물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또한 세상 사람들은 내가 죽는다 하더라도 절개를 위해 죽는 것이 아니라

나쁜 말을 하다가 큰 죄를 지어서 어리석게 죽었다고 생각할 것이네.’

사마천이 이렇게까지 힘든 일을 겪으면서도 계속 살아가는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의 유언인 역사서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몇 년 후 사마천은 역사서인 사기를 완성하였고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구우일모는 자신의 목숨이 보잘것없다고 생각한 사마천의 말에서 유래되었으며

현재는 아무것도 아닌 것, 하찮은 것을 뜻할 때 사용합니다.

끝.

구우일모(九牛一毛): 아홉 마리 소에서 터럭 한 개

이경일 연관단지 대한시멘트 1공장

▲ 이경일 연관단지 대한시멘트 1공장

아무것도 아닌 아주 하찮은 일을 말한다. 획수가 적은 쉬운 글자로 이루어진 고사다. 그러나 속뜻은 너무 아픈 뜻이 담겨있는 말이다.

한(漢)나라 무제(武帝) 때 태사령이란 직책을 가진 대대로 사관집안이었던 사마천(司馬遷)이란 역사가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 사마담(司馬譚)도 무제를 모시고 유학의 법통과 역사를 바로세우기 위해서 중국 고대부터 당시까지의 역사를 기록하고자 많은 자료를 수집하였다. 하지만 역사서를 완성하지 못한 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억울한 죽음을 당하면서 아들 사마천 에게 자기가 이루지 못한 사기(史記)의 완성을 간곡히 부탁하는 유언을 내리고 눈을 감았다. 사마천은 그때부터 선친의 유지(維持)를 받들기 위하여 저술에 착수 했다.

그 후 많은 사료들을 모으고 일이 잘 진행되는 가운데 7년 즈음 큰 재앙이 찾아온다. 당시 무제는 가장 총애하는 이부인의 오빠인 이광리(李廣利)에게 흉노 정벌의 전공을 세워주기 위해 명장인 이릉(李陵)에게 보급을 맡아 이광리의 후방을 돕도록 명했다.

그런데 이릉은 명령을 따르지 않고 흉노 깊숙이 들어가 별동대 5천의 기병을 통솔하면서 독자적으로 흉노와 싸웠다. 이릉은 겨우 5천의 군사였지만 흉노 선우의 군대 3만과 접전을 벌여 수천의 군사를 사살하고 큰 승리를 거두었다.

흉노 선우는 현왕의 군사 8만을 지원받아 도합 11만의 군사와 싸우는데 처음에는 20배의 군사에게도 밀리지 않고 용감하게 싸웠다. 흉노의 선우는 공격을 멈춘 뒤 가망이 없다고 생각해 철군을 명령했다.

그런 가운데 이릉의 부하하나가 잘못을 저질러 벌을 면치 못하게 되자 배반하고 흉노로 도망해서 현재 이릉 병사들의 약점을 알려준다.

화살도 떨어지고 군량도 다 되어가는 사실을 안 흉노는 철군하려던 말머리를 돌려 대대적인 기습작전을 감행한다. 이릉군은 퇴로도 없고 원병도 오지 않아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고 할 수 없이 항복하기에 이른다.

부하들은 대부분 전사하고 400여명만 살아서 한나라로 돌아갔으며 이릉을 흉노에 붙잡혀 항복한다.

흉노 선우는 이릉을 적이라도 용감했던 것을 칭찬하며 자기의 딸을 아내로 주며 후대 하였다. 한편 무제는 이 일로인하여 이릉의 노모를 주살했으며, 이릉의 죄를 묻는 어전회의를 소집하여 성토하기에 이른다. 어느 누구도 이릉에 대해 변호해 주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릉과 친분도 별로 없는 사마천이 무제의 화를 누그러뜨려 주기위해 이릉의 과거 전공과 인품을 들어 그의 투항에 대해 변호를 하고 나섰다. 그러나 무제의 분노를 부채질 하는 꼴이 되어 투옥되고 말았다. 죄목은 없는 사실을 꾸며 황제를 모독한 다는 죄로 사형에 해당되는 중죄였다.

사마천은 사형(死刑)을 당하는 것, 다음에 속전 50만 냥을 내고 풀려나는 것, 다음에 궁형(宮刑)을 당하는 방법 이 셋 중에서 선택해야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사마천은 고심 끝에 궁형을 선택했다. 이런 상황이면 대부분 사형을 택한다. 궁형을 선택해도 형 집행 뒤 살아남을 확률이 4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마천은 아버지 사마담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치욕적인 궁형을 선택 했던 것이다. 이 당시 47세였던 사마천은 같은 처지의 친구인 임안에게 유명한 명문의 편지를 쓴다.

「저의 선치께서는 부부나 단서를 가질만한 공로가 없었습니다. 천문, 태사, 율력과 같은 일을 담당 하였는데 점치는 일에 불과합니다. 이러한 일은 본래 천자께서 장난삼아 노시던 것으로 광대를 양성하시는 것 같아 본래 세상 사람들이 가볍게 봅니다. 만약 내가 형벌에 복종하여 죽음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아홉 마리의 소에서 털 하나를 잃어버리는 것(九牛一毛)과 같으니 땅강아지나 개미에 죽음과 무엇이 다를 바 있겠습니까? 게다가 사람들은 저에게 절개를 지켜 죽은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지혜가 모자라 죄가 극에 달해 마침내 스스로 죽음에 나가 면 할 수 없게 되었다고 여길 것입니다.」

사마천은 그로부터 더욱 발분하여 큰 뜻을 이루기 위해 치욕을 참고 몸을 굽힌 자신의 삶과 영혼이 투영된 글을 써 내려갔다. 무제도 나중에는 사마천의 충성심을 인정하고 다시 중서령에 임명하였다.

그 후 55세 되던 해에 저술에 착수한지 18년 만에 불후(不朽)의 명작 사기를 완성하는데 526,500자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었다. 사기의 두드러진 특징은 역사상 처음으로 인물중심으로 사건을 망라한 기전체(紀傳體)를 선택했다. 쉬운 글자로 이루어진 고사이지만 얼마나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가. 다시 한번 더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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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우일모 < 법제 < 지식창고 : 법제처

구우일모

구분 고전명구(형옥야화/고사성어)(저자 : 홍혁기)

등록일 2009-01-01

조회수 908

담당 부서 대변인실

九 牛 一 毛 하찮은 존재, 많은 수 가운데 가장 적은 수에 비유해서 이르는 말. 李陵은 漢武帝 때 사람으로, 飛將軍이라 일컬어지던 李廣의 손자이다. 어려서부터 활쏘기와 말달리기를 잘했으며 대인 관계가 원만했고 사졸들을 내몸과 같이 아꼈다. 天漢 2년(무제의 연호. B.C.99) 가을, 貳師將軍 李廣利가 3만기를 거느리고 匈奴(흉노:북방의 몽고족) 정벌에 나섰을 때 李陵은 보졸 5천을 거느리고 居延을 지나 흉노의 땅으로 1천여리나 깊숙이 쳐들어 갔다. 李陵의 군졸은 5천에 불과했으나 그의 용명은 흉노의 간담을 서늘케하여 이르는 곳에 대항하려는 적이 없었다. 이럴즈음 李陵의 軍候로 있던 管敢이란 자가 군령을 어겨 문책받은 일이 있었는데 이에 불만을 품은 관감은 흉노에게로 도망, 투항했다. 관감은 “李陵이 비록 용맹스럽긴 하지만 병력은 불과 5천, 주력부대와의 거리가 멀어 그 지원이 어려우므로 많은 병력을 투입하여 압박하여 들어간다면 李陵을 꺾을 수 있다”라고 單于(선우:흉노의 추장)에게 말했다. 선우는 관감의 제보에 용기를 얻어 8만 병력을 동원하여 李陵을 포위했다. 李陵의 5천 보졸은 한덩어리가 되어 포위망을 뚫고 달아나며 싸웠다. 사졸은 반 이상이 꺾이고 보급품은 바닥이 드러났다. 일면 전투, 일면 후퇴를 거듭하기 8일만에 居延 땅을 불과 1백여리를 남겨두고 협곡에서 흉노에게 퇴로를 차단당했다. 군량은 떨어지고 지원병은 오지 않았다. 李陵은 기진맥진,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설령 벗어난다 하더라도 5천의 군졸을 꺾인 敗軍之將이 漢나라로 돌아갈 면목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선우에게 무릎을 꿇고 항복했다. 이때 李陵의 군졸로서 흩어져 달아나 한나라로 돌아갈 수 있었던 사람은 겨우 4백명이었다. 선우는 李陵을 얻고 크게 기뻐하여 자기 딸을 아내로 내어주고 지위를 높이어 주었다. 漢武帝는 李陵의 소식을 접해 듣자 펄펄 뛰었다. 그 처벌 문제를 군신들과 논의했다. 군신들은 격노한 帝의 비위를 거스르면 화를 입을까 하는 위구심에서 눈치만 살피다가 李陵에게 벌을 내림이 옳다고 아뢰었다. 그러나 太史令으로 있던 司馬遷(史記의 저자)은 감연이 李陵을 변호하여 “5천 병력으로 흉노 땅 깊숙이 쳐들어가 그들로 하여금 간담이 서늘케 하는 전과를 거두었고, 그가 困境에 처하자 죽지 않고 흉노에게 항복한 것은 기회를 보아 漢祖國에 보답할 계기를 마련하기 위함일 것이며, 기민하게 지원해 주지 않은 책임도 있으니 관대하게 처분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武帝는 司馬遷의 말을 듣고 더욱 화를 내어 “조국을 배반한 李陵을 보호하러 든다”라고 하고 司馬遷을 獄에 내려 마침내 腐刑(男性을 제거하는 형벌)을 시키고 말았다. 따라서 李陵의 어머니·아우·처자 등 일족도 모두 斬刑에 처했다. 司馬遷이 부형 당하기전 獄에 있을 때 任安에게 보낸 글에서 「가령 내가 법에 의하여 형을 받는다 하더라도 이는 아홉 마리의 소에게서 터럭 하나 없어지는 것과 같은(若九牛亡一毛), 세상에는 하찮은 일」이라고 하였다. 司馬遷은 폐인이 되자 비분강개한 마음을 억제할 길이 없었다. 죽을까도 마음을 먹었으나 “通史를 기록하여 바른 역사를 전하도록 하라”라는 아버지의 유언이 그를 죽음에서 붙들어 앉혀 붓을 들게 하였다.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하여 20여년, 마침내 그는 1백 30권이란 방대한 《史記》를 저술해 냈던 것이다[前漢書 六十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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