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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희팔괘의 동서남북 방향에는 천문사괘가, 대각선 방향에는 지리사괘가 자리를 잡게 됐습니다. 위아래를 뒤집으면 천문사괘는 모양이 바뀌지 않지만 지리사괘는 모양이 바뀝니다. 무릇 ‘천문지리 무불통달’이란 바로 이 팔괘의 이치를 깨닫는 것을 의미합니다. 태극의 형상은 복희팔괘에서 자연스럽게 태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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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太極旗)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러한 태극·팔괘도식의 국기제정문제가 조선정부에서 논의되었다는 것은 1882년 8월 9일 특명전권대신 겸 수신사 박영효(朴泳孝)가 메이지환(明治丸) 편으로 출항한 …
Source: encykorea.aks.ac.kr
Date Published: 7/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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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팔괘도 – 다음블로그
이렇게 생성된 팔괘는 천지(天地)인 건곤괘와 천지의 자녀인 여섯 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부모의 음양기운을 하나씩 받아 생장성의 원리에 의해 양괘인 …
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8/2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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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태극기 누가 만들었나?… 뜻밖의 인물이 있었다 – 뉴데일리
태극기 도안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는 조선시대 군사 지휘기인 좌둑기(左纛旗)와 옛부터 군주를 상징해왔던 태극팔괘도에서 …
Source: www.newdaily.co.kr
Date Published: 7/3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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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주역상징물 태극기 폐기 마땅” – 경향신문
이태진 서울대 교수의 경우 “정조의 위민정치 이념이 담긴 어기(태극팔괘도)가 태극기의 저본(底本)으로 사용됐다”고 주장했으나 태극팔괘도는 위민 …
Source: m.khan.co.kr
Date Published: 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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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천은 하도의 이상이 실현된 상생의 세상 – 팔괘도八卦圖
이번 호에서는 팔괘도를 통해 우주 변화의 목적을 탐구해 보겠습니다. … 복희팔괘도를 태극팔괘도라고도 하는데 1태극의 씨앗 속에서 생명이 탄생하기 때문입니다.
Source: www.greatopen.net
Date Published: 5/2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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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박석재의 천문\u0026역사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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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0.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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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국기는 태극기(太極旗)로 흰 바탕의 기 위에 짙은 적색과 남색의 태극 문양을 가운데에 두고 검은색의 건·곤·감·리 4괘가 네 귀에 둘러싼 모양이다. 태극기의 최초 도안자는 대한제국의 박건영이다.[1] 태극기는 조선, 대한제국,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공식 국기로 사용되었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계속 대한민국의 정식 국기로서 사용되고 있다.
최초의 태극기 [ 편집 ]
조선 [ 편집 ]
조선 군주의 어기 ‘태극팔괘도’
조선은 현대적인 의미의 국기가 없었으나, 국가를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하는 조선 임금의 어기가 있었다. 태극기는 조선군주의 어기인 ‘태극팔괘도’를 일부 변형하여 고종이 직접 도안하여 제작하였다.
나라를 상징하는 국기를 만들게 된 계기는 청나라의 황준헌이 쓴 《조선책략》에서 “조선이 독립국이면 국기를 가져야 한다”라는 글과 함께 4개의 발을 가진 용 모양을 제시해 놓은 데에서 비롯된다.
미국 전권특사 슈펠트 제독은 만약 조선이 청나라의 ‘황룡기’와 유사한 깃발을 게양한다면 조선을 독립국으로 인정하려는 자신의 정책에 위배되는 처사라고 생각해, 조선 대표인 신헌과 김홍집에게 “국기를 제정해 조인식에 사용할 것”을 요구했다.
1882년 박영효가 고종의 명을 받아 일본에 가면서 ‘태극·4괘 도안’의 기를 만들어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종은 1883년 3월 6일 왕명으로 이 ‘태극·4괘 도안’의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공포했지만 국기 만드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은 탓에 이후 다양한 형태의 국기가 사용되어 오다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태극기의 제작법을 통일할 필요성이 커짐에 따라, 정부는 1949년 10월 15일 「국기제작법고시」를 통해 국기 제작 방법을 확정·발표했다.[2]
1882년 고종은 태극기 제작 과정에 직접 참여하여, 백성을 뜻하는 흰색과 관원을 뜻하는 푸른색과 임금을 뜻하는 붉은 색을 화합시킨 동그라미를 그려넣은 기를 제작하게 하였다.[a] 이는 고종이 계승하고자 했던 정조의 군민일체(君民一體) 사상을 표현한 것이었다.[3][4][5] 그러나 이 깃발은 다소 일본 제국의 국기와 비슷하다고 하여, 김홍집은 “반홍반청(半紅半靑)의 태극 무늬로 하고 그 둘레에 조선 8도를 뜻하는 팔괘를 그리면 일본 국기와 구분이 될 것”이라 하여, 태극기 문양이 정해졌다.
이에 1882년 5월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당시 김홍집은 고종의 명을 받들어 역관 이응준에게 지시하여 직접 배 안에서 태극기를 그려서 사용하도록 하였고,[6] 9월 박영효 등 수신사 일행이 일본에 파견되어 갈 때에도 일본의 증기선 메이지마루 배 안에서 직접 태극기를 그려서 사용하였다.[7][8] 1882년에 고종의 명을 받아 처음 제작되고 사용되었던 태극기는 1883년 3월 6일(고종 20년 음력 1월 27일) 정식으로 ‘조선국기’로 채택되었다.
대한제국 [ 편집 ]
1897년(광무 원년) 10월 12일 고종 황제는 ‘대한제국’의 수립을 선포하고, 기존의 태극기를 그대로 대한제국의 국기로 사용하였다.[출처 필요]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 편집 ]
일제 강점기 1919년 3월 1일 3·1 운동이 발발하며 전국적인 만세 시위에 태극기가 사용되자 태극기는 항일 운동의 상징으로 각인되었다. 1919년 4월 11일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도 태극기를 사용하였으나 임정 수립 초기에는 태극기를 국기라 칭하지는 않고 단체의 깃발로 사용하다가 1942년부터 한국의 국기를 ‘태극기’라고 표현하기 시작하였다.[5]
군정기 [ 편집 ]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 선언과 함께 태극기 사용이 자유로워졌고, 태극기는 광복 해방된 한국의 당연한 국기로 인식되어 1946년 1월 14일 태극기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정권 수립 선포를 앞둔 1948년 7월 8일 최고인민회의 제5차 회의에서 사용하던 태극기를 폐지하고 인공기로 교체하였다.
현대 [ 편집 ]
1948년 7월 12일 대한민국 제헌국회에서 태극기가 국기로 공식 제정되었다.[5] 이 때까지만 해도 태극기는 흰 바탕에 태극과 4괘로 구성한다는 원칙만 있을 뿐, 통일된 작도법이 없어 다양한 규격의 태극기가 통용되어 통일의 필요성이 커졌다. 이를 위해 정부가 국기시정위원회를 구성하여 여러 안이 수렴되었으며, 여러 토론 끝에 ‘우리국기보양회’의 안이 채택되었다.[9] 최종적으로 1949년 10월 15일 문교부 고시로서 현행과 같은 태극기 규격이 정해졌다.[10] 1984년 2월 21일 대통령령으로 기존의 ‘국기제작법’과 ‘국기게양방법에 관한 건’으로 이원화된 것을 통합한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이 제정되었고[11][12], 2007년 7월 27일부터 새로운 ‘대한민국 국기법’이 시행되어[13] 태극기의 제작, 게양, 취급의 지침이 되고 있다.
도안과 상징 [ 편집 ]
세로로 늘여서 게양한 태극기
태극기는 《주역》의 계사상전(繫辭上傳)에서 나와 있는 태극→양의(兩儀)→사상(四象)→팔괘(八卦)라는 우주 생성론을 나타내는 태극도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조선의 태극 팔괘도는 복희 선천 팔괘(伏羲先天八卦)가 아닌 문왕 후천 팔괘(文王後天八卦)이다.[14]
원이 나타나는 태극은 만물을 생성시키는 근원을 의미하며 도교에서는 태소(太素), 탄드라밀지에서는 카르마무드라라고 하며 사고의 개입이 없는 순수하고 완전한 행위를 의미하는 무아전위(無我全爲)의 우주일체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상징한다.
원 안의 모양은 음양 양의를 나타나고 4괘는 팔괘(八卦)를 대표하는 사정괘(四正卦)를 나타내는 것과 동시에 그 하효(下爻)와 중효(中爻)로 태양(太陽)·소음(少陰)·소양(少陽)·태음(太陰)이라는 사상(四象)도 나타낸다.
흰색 바탕에 가운데 태극문양과 네모서리의 건곤감리(乾坤坎離) 4괘(四卦)로 구성되어 있다.
흰색 바탕은 밝음과 순수, 그리고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한국(우리)의 민족성을 나타낸다.
태극 문양은 음(파랑)과 양(빨강)의 조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우주 만물이 음양의 조화로 인해 생명을 얻고 발전한다는 대자연의 진리를 표현해낸 것이다.
이와 같이,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이 생활 속에서 즐겨 사용하던 태극 문양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태극기는 우주와 더불어 끝없이 창조와 번영을 희구하는 한민족(韓民族)의 이상을 담고 있다.[2][15]
사괘 [ 편집 ]
구분 이름(卦名) 자연(卦象) 계절(季節) 방위(方位) 사덕(四德) 가정(家庭) 성정(性情) 건(乾) ☰ 하늘(天, 천) 봄(春, 춘) 동(東) 인(仁) 아버지(父. 부) 강건(健, 건) 곤(坤) ☷ 땅(地, 지) 가을(추) 서(西) 의(義) 어머니(母, 모) 유순(順, 순) 감(坎) ☵ 물(水, 수) 겨울(冬, 동) 북(北) 지(智) 중남(子, 자) 함몰(陷, 함) 리(離) ☲ 불(火, 화) 여름(하) 남(南) 례(禮) 중녀(女, 녀) 화려(麗, 려)
사괘는 본래 팔괘 중에서 넷을 선택한 것인데, 팔괘는 중국에서 삼황으로 떠받들고 있는 태호 복희가 만든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복희는 동이족으로 서술되고 있으며, 그가 팔괘를 처음 만든 사람이라고 밝힌 것은 《주역》 계사전이 최초이다. 다만 조선에 복희 선천 팔괘가 아닌 그것을 고쳐서 만든 문왕 후천 팔괘를 따르는 까닭은 복희가 팔괘를 만든 까닭이 우주 생성 원리를 설명하려 함인 반면 문왕은 우주 생성 원리를 인간의 치세 원리에 반영(“선천 변위 후천도”에서 이르는 〈“자연조화의 체”를 “인사의 용”에 적용〉한다는 사상)하려고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종래 주장에서는 팔괘에서 “넷을 제하여” 만들었다고 하였으나, 근래에는 “선천 변위 후천도”에서 선천 팔괘와 후천 팔괘의 관계를 밝히어 팔괘 가운데 “넷을 선택하였다”고 밝히고 있다.[14]
건곤감리 [ 편집 ]
건곤감리는 태극기 네 모서리에 그려진 4괘(四卦)로, 각각 하늘(건·乾)과 땅(곤·坤), 물(감·坎), 불(리·離)을 상징한다.
가운데 그려진 태극 문양이 음과 양의 조화를 상징하는데, 4괘는 태극을 중심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표현했다.
태극기의 바탕인 흰색은 백의 민족으로 불리던 우리의 민족성을 의미한다. 밝음과 순수,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성향을 나타내고 있다.
한편, 태극기는 1882년 9월 박영효가 고종의 명을 받아 특명전권대신 겸 수신사로 일본으로 향하는 선상에서 태극 문양과 그 둘레에 건곤감리 4괘를 그려 넣은 이후 점차 공식화된 것으로 알려졌다.[16]
각 괘를 살펴보면 건괘는 태극기의 왼쪽 윗부분에 위치하고 세 줄의 양효로 구성되었고, 오른쪽 아랫부분에 위치한 곤괘는 음효만 세 줄로 표현된다. 기면의 오른쪽 윗부분에 위치한 감괘는 맨 위와 아래가 음효이고 가운데가 양효로 나타나고, 왼쪽 아랫부분에 위치한 이괘는 감괘와 반대로 맨 위와 아래가 양효이고 가운데가 음효로 구성되어 있다.[17]
건곤감리는 나누어지지 않은 선(-)으로 표현되는 양효(陽爻)와 나누어진 선(–)으로 표현되는 음효(陰爻)의 조합으로 구성된다(Lim, 1998). 각 괘를 살펴보면 건괘는 태극기의 왼쪽 윗부분에 위치하고 세 줄의 양효로 구성되었고, 오른쪽 아랫부분에 위치한 곤괘는 음효만 세 줄로 표현된다. 기면의 오른쪽 윗부분에 위치한 감괘는 맨 위와 아래가 음효이고 가운데가 양효로 나타나고, 왼쪽 아랫부분에 위치한 이괘는 감괘와 반대로 맨 위와 아래가 양효이고 가운데가 음효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듯 태극기 안에서 건곤감리는 양효나 음효가 셋을 이루거나 1대2 또는 2대1의 비율로 짝을 이루어 표현되고 있으며, 태극문양과 함께 음과 양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건곤감리는‘주역’의 기본 괘이자, 우리나라의 국기인 태극기의 모서리에 표현되어 하늘과 땅, 물과 불을 상징하는 4개의 괘(卦)이다. ‘乾 건괘 건, 坤 곤괘 곤, 坎 감괘 감, 離 이괘 리’가 합쳐진 말로 태극기는 흰색 바탕 가운데 태극 문양과 네 모서리의 건곤감리로 돼 있다.
태극기를 달 때는 건곤감리의 위치를 기억하면 된다. 왼쪽 위 괘가 ‘건’, 오른쪽 아래가 ‘곤’, 오른쪽 위가 ‘감’, 왼쪽 아래가 ‘리’이다.
‘주역’에서는 건(乾)·태(兌)·이(離)·진(震)·손(巽)·감(坎)·간(艮)·곤(坤)의 팔괘를 기본으로 하여, 천지만물을 상징하는 육십사괘를 설정했다. 건괘(乾卦)는 하늘을 상징하며, 오행(五行)의 금(金)을 뜻한다. 곤괘(坤卦)는 땅을 의미하며, 오행의 토(土)를 뜻한다. 기본 괘 가운데서도 건괘와 곤괘는 모든 괘의 중심이며,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감괘(坎卦)는 달과 물을 상징하며, 오행의 수(水)를 뜻한다. 이괘(離卦)는 해와 불을 상징하며, 오행의 화(火)를 뜻한다.
각각의 괘의 형상은 효(爻)로 표현되는데, 효는 끊어지지 않은 선(―)으로 표현되는 양효(陽爻)와 끊어진 선(–)으로 표현되는 음효(陰爻)로 나뉜다. 괘의 형상은 이 양효와 음효가 홀로 셋을 이루거나 1 대 2 또는 2 대 1 등의 비율로 짝을 이루어 표현되는 것이다. 건괘는 양효만 세 줄로 표현되고, 곤괘는 음효만 세 줄로 표현된다. 감괘는 맨 위와 아래가 음효이고 가운데가 양효로 표현되며, 이괘는 감괘와 반대로 맨 위와 아래가 양효이고 가운데가 음효로 표현된다.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태극기에서 가운데 그려진 태극 문양은 음(파랑)과 양(빨강)의 조화를 상징한다. 네 모서리에 그려진 건곤감리의 4괘는 음과 양이 서로 변화하고 발전하는 모습을 양효와 음효의 조합을 통해 구체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4괘는 각각 하늘·땅·물·불을 상징하며, 태극을 중심으로 통일의 조화를 이룬다. 건괘는 기면(旗面)의 왼쪽 윗부분에, 곤괘는 오른쪽아랫부분에 위치하여 무궁한 정신을 나타낸다. 감괘는 기면의 오른쪽 윗부분에, 이괘는 왼쪽아랫부분에 위치하여 광명의 정신을 나타낸다.[18]
규격 [ 편집 ]
태극기의 규격은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의 국기 규격
색상 [ 편집 ]
태극기의 공식 색상은 대한민국국기법 시행령에 지정되어 있다.[19] 현재의 공식 색상은 1997년 10월 25일에 정해졌다.[20]
올리는 날 [ 편집 ]
국경일과 그밖의 지정하는 날에 게양한다.[24]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단체의 청사, 학교, 공항·호텔 등의 국제적인 교류 장소 등에는 연중 국기를 게양하도록 되어 있다.
국기 게양 시간 [ 편집 ]
국기는 24시간 게양할 수 있으며, 야간 게양 시에는 적절한 조명을 해야 한다. 강우, 강설, 강풍 등으로 인해 국기의 훼손이 우려될 경우에는 하기 해야한다.
국기 게양과 강하시각 [ 편집 ]
국기를 해가 뜬 동안에만 게양하고자 하는 경우, 다음 시각에 맞추어 게양하고 강하한다.
기 간 게양 시각 강하 시각 3월 ~ 10월 07:00 18:00 11월 ~ 이듬해 2월 07:00 16:00
국기의 변화 [ 편집 ]
공식 국기 [ 편집 ]
기타 [ 편집 ]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태극기 [ 편집 ]
같이 보기 [ 편집 ]
각주 [ 편집 ]
인용 [ 편집 ]
국기문제가 최초로 거론된 것은 1880년(고종 17) 8월 일본에서 귀국한 수신사(修信使) 김홍집(金弘集)이 가져온 주일청국참찬관(駐日淸國參贊官) 황쥰셴[黃遵憲]의 『조선책략(朝鮮策略)』에서이다.
중국용기(中國龍旗)를 청나라에 주청(奏請)하여 군기(軍旗)와 국기로 사용하도록 권고한 이 제안에 따라 조선정부에서는 그 해 12월 1일에 입북(入北)한 진하겸동지사은사(進賀兼冬至謝恩使) 일행에 사역원부사직(司譯院副司直) 이용숙(李容肅)을 수행시켜 북양대신(北洋大臣) 이홍장(李鴻章)을 통하여 진전시켰던바, 조선순문(朝鮮詢問) 8조 중 제7조가 그것이다.
그 내용은 황쥰셴의 제안을 듣고 우리나라의 선박에 사용할 기표(旗標)를 제정함에 있어서 참고로 중국선박에 사용하고 있는 기표와 우리나라의 기표에 사용할 도식과 색상에 관하여 물은 것이다.
이에 대하여 이홍장은 1881년 2월 2일 올린 상주문에서 중국용기와 같은 화룡방기(畫龍方旗)를 국기와 선박기표로 사용하는 데 동의하고, 다만 제정과 사용의 절차상 문제에 대하여 용기의 척촌(尺寸)·회구(繪具)·안색(顔色)·도식(圖式) 등은 북양대신에게 자문을 구하여 처리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에 대하여 2월 4일 청나라 덕종(德宗)은 조선정부에 회자(回咨)할 것을 명하였고, 이 회자문은 3월 16일 성경예부(盛京禮部)의 자문으로 조선정부에 전달되었다. 그러나 그 뒤 조선정부에서 어느 정도 구체화시켰는지는 불명하다.
국기문제가 재론된 것은 조미조약이 체결되던 1882년 4월 6일의 일로, 조선측의 전권부관(全權副官) 김홍집과 청사(淸使) 마젠충[馬建忠] 사이에서 대두되었다. 재론의 계기가 된 것은 양국 사신의 업무연락을 담당하였던 홍로시(鴻臚寺) 사품(四品) 이응준(李應俊)이 독창적으로 제작한 조선측 국기도안을 마젠충에게 제시한 데서 비롯되었다.
이 논의에서 마젠충은 황쥰셴이 제안한 중국용기의 사용을 반대하면서 조선국왕의 복색·문양 및 조야복색 등을 기초로 하여 백저청운홍룡기(白底靑雲紅龍旗)의 도식을 제안하였으며, 다만 용조(龍爪)를 4자로 하여 중국용기와 구별되도록 하였다. 그 뒤 4월 11일 김홍집은 이응준이 제시한 도식의 수정안으로 홍색을 청·백색으로 바꾸어 권자(圈子)하는 안을 제시하였다.
이 때 마젠충은 백저(白底)에 중앙에 반홍반흑(半紅半黑)의 태극도(太極圖)와 그 둘레에 팔도(八道)를 뜻하는 흑색의 팔괘(八卦) 및 홍색의 주연(周緣)이 있는 도식을 제안하였다.
이러한 태극·팔괘도식의 국기제정문제가 조선정부에서 논의되었다는 것은 1882년 8월 9일 특명전권대신 겸 수신사 박영효(朴泳孝)가 메이지환(明治丸) 편으로 출항한 다음 영국인 선장과 상의하여 태극기 대·중·소 3본(本)을 만들었다는 것과, 태극도에 반홍반흑을 사용하자는 마젠충의 제안이 반홍반청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알 수 있다.
박영효는 8월 22일 태극기 소본(小本)과 함께 국기제정사실을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에 보고하였으며, 1883년 1월 27일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의 장계에 따라 팔도사도(八道四都)에 행회(行會)함으로써 태극기가 정식으로 국기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현행 태극기를 대한민국 국기로 정식 공포한 것은 1949년 10월 15일이다.
태극 도형의 문양(文樣)과 이념은 고대로부터 우리 민족에게 전통적으로 쓰여왔다. ‘태극’이라는 용어는 『주역』 계사(繫辭) 상(上)에 나오지만 그림은 그려져 있지 않다. 중국에서 태극의 문양이 보이기는 송나라 때로, 주돈이(周敦頤, 1017∼1073)가 처음으로 『태극도설(太極圖說)』을 지었는데, 그 연대는 11세기 이상을 올라가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태극도설』보다 약 400년 전인 628년(신라 진평왕 50) 건립된 감은사(感恩寺)의 석각(石刻) 가운데 이미 태극도형이 새겨져 있었으며, 1144년(인종 22)에 죽은 검교대위(檢校大尉) 허재(許載)의 석관(石棺) 천판(天板)에도 태극문양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태극이나 태극에 내포된 음양사상은 우리나라 고대의 문화유적이나 생활습속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는데, 예를 들어 고구려 고분의 벽화나 민속설화 또는 의학에 있어서 병리·생리 등을 음성·양성으로 분류하는 사상의학(四象醫學)이 그것이다.
고구려 고분내의 사신도(四神圖)라든지, 특히 현무도(玄武圖)는 음양상화(陰陽相和)의 이치를 나타낸 것으로, 우리나라의 고대민속에서 액(厄)막이하는 부적(符籍)으로 사용되어 왔다.
이렇게 볼 때 중국의 태극도형 등이 전래되기 이전부터 우리나라는 태극도형 또는 그것이 머금고 있는 음양사상을 일찍부터 이해하고 활용해 왔음을 알 수 있다.
태극기는 백색을 바탕으로 하여 중앙에 음(陰, 靑)·양(陽, 紅)의 양의(兩儀)가 포함된 일원상(一圓相)의 태극이 있고, 네 귀〔四維〕에는 건(乾)·곤(坤)·감(坎)·이(离)의 사괘(四卦)가 배치되어 있다.
① 흰 바탕: 바탕이 흰 빛으로 되어 있는 것은 순일무잡(純一無雜)한 한민족의 동질성과 결백성을 상징한 것이며, 평화를 애호하는 정신이 우리 민족의 기질과 이상임을 드러내 보인 것이라 하겠다.
고대 동부의 여러 족속들이 백의(白衣)를 숭상한 것은 공통된 문화적 특징이라 하겠지만, 특히 『삼국지』 동이전(東夷傳)에 보면 “나라 사람들이 흰 옷을 숭상해 입었다.”고 하였으며, “상중(喪中)에는 남녀 모두가 순백(純白)으로 입었다.”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백색을 숭상한 것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② 일원상의 태극: 유교철학에서 태극은 우주만상의 근원이며 인간생명의 원천으로서 진리를 표현한 것이므로 사멸(死滅)이 있을 수 없는 구원(久遠)의 상(相)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황(李滉)은 “태극은 지극히 존귀한 것으로 만물을 명령하는 자리이며, 어떠한 것에도 명령을 받지 않는 것”이라 하였다.
천상(天上)의 달이 천강(千江)에 비칠 때 강마다 둥근 달이 있는 것처럼 천지로 말하면 천지가 한 태극이라 할 수 있으며, 만물로 말하면 만물 하나하나가 모두 태극의 원만성을 구비한 것이라 하겠다.
이처럼 만유(萬有)가 모두 태극의 원리를 내포하고 있다고 하겠으나, 그 원리는 인간 주체로부터 인식되는 것이므로, 인도(人道)의 극치가 곧 태극이며, 태극이 다름아닌 인극(人極)인 것이다.
김장생(金長生)은 만물의 태극보다 인심(人心) 중의 태극, 즉 진리의 주체적인 인극을 강조하였다. 인극으로서의 주체는 남을 해(害)하지 않고 자기완성과 타인의 완성을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공동주체이다. 여기에 각 개인의 인격이 존중되고 자유와 평등의 도리(道理)가 성립되며, 국가 사회의 안녕과 질서가 유지된다 하겠다.
한민족은 역사적으로 천(天)·지(地)·인(人) 삼재(三才) 중에서 천·지의 요소를 인간으로 집약하여 인도주의 정신을 고취하여왔다. 단군설화에서 단군(檀君)이 하늘을 상징하는 환웅(桓雄)과 땅을 상징하는 웅녀(熊女) 사이에서 탄생하였다고 한 것이라든지, “무릇 도는 인간에게서 멀리 있지 않으니, 사람은 누구나 이방(異邦)이 따로 없다(道不遠人人無異國).”고 한 최치원(崔致遠)의 진감국사(眞鑑國師) 비문, 그리고 천도교의 인내천사상(人乃天思想) 등에서 그 실례를 찾아볼 수 있다.
태극의 진리가 원융무애(圓融無碍)하여 더할 나위 없는 것을 일컬은 것이지만, 그러나 이 같은 추상적 원리는 구체적 현실을 떠나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음양상대(陰陽相對)의 구체적 상황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③ 태극과 음양과의 관계: 태극이 곧 음양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음양을 떠나서 태극은 존재할 수도 설명될 수도 없다. 그러므로 태극기의 도형을 실제로 고찰하면 홍색의 양과 청색의 음이 상하로 상대화합(相對和合)되어 있는 음양의 도상(圖象)만 보일 뿐이지 태극의 원리는 내재한 까닭에 보이지 않는다.
양상음하(陽上陰下)로 배치된 이유는 하늘은 위에 있고 땅은 아래에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하늘과 땅 사이에 인간이 있고 따라서 사회와 민족국가가 형성된다. 음양의 순환과 조화 속에서 만물이 성장하고 번영한다. 음과 양은 본래 성질을 달리하여 각립(各立)하면서도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것으로, 머리와 뿌리를 맞댄 대립관계 속에서 상호 의존하여 생성, 발전하는 것이다.
주 01)과 일원적 주 02)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면서 상호 화합성을 구현하고 있거니와, 이를 조종하고 통일하는 것이 곧 태극인 것이다. 즉, 이원적 부잡성(不雜性) 과 일원적 불리성(不離性) 을 동시에 지니고 있으면서 상호 화합성을 구현하고 있거니와, 이를 조종하고 통일하는 것이 곧 태극인 것이다.
불교철학에 있어서 성(聖)과 속(俗)을 이원적으로 분리하지 않고, 고매한 화엄(華嚴)의 도리를 대중 속에 생활화시킨 것이라든지, 원효(元曉)의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에 있어서 공(空)과 유(有)를 원융하여 일승불교(一乘佛敎)를 이룬 것이라든지, 율곡철학(栗谷哲學)에 있어서 이(理)와 기(氣)가 묘합(妙合)하여 일원화한 ‘이기지묘(理氣之妙)’의 사상 등은 모두 음양양의(陰陽兩儀)의 중화작용(中和作用)을 진리로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④ 사괘(四卦): 건·곤·감·이의 사괘는 태극도형의 음양 양의와 뗄 수 없는 관계에서 배열된 것으로, 음양이 생성, 발전된 양상을 나타낸 것이다. 중국의 태극도형은 좌에서 우로 회전하지만, 태극기에서의 도형은 우에서 좌로 회전하고 있다. 건(☰)은 태양(太陽)으로서 양이 가장 성한 방위에 배치되고, 곤(☷)은 태음(太陰)으로서 음이 가장 성한 방위에 배치되어 있다.
또한, 감(☵)은 소양(少陽)으로 음 속에서 음에 뿌리를 박고 자라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며, 이(☲)는 소음(少陰)으로 양 속에서 양에 뿌리를 박고 자라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즉, 태양인 건에서 소음인 이로 바뀌고, 이에서 태음인 곤으로 성장하며, 또 곤에서 소양인 감으로 바뀌고, 감에서 태양인 건으로 성장하여 무궁한 순환 발전을 수행한다.
건은 천도(天道)로서 지선(至善)·지공(至公)의 정의(正義)를 의미하고, 곤은 지도(地道)로서 후덕(厚德)과 풍요의 공리(共利)를 상징하며, 감은 수성(水性)으로서 지혜와 활력을 나타내고, 이는 화성(火性)으로서 광명과 정열을 뜻하는 것이며, 백색 바탕은 평화의 정신을 상징한다. 정의와 풍요, 광명과 지혜, 이 네 가지는 우리 국기의 사괘가 상징하는 특징이며, 백색의 바탕인 평화의 정신을 성취하는 길이다.
이것은 곧 산업과 도의를 균형있게 발전시키며, 정열과 지성을 겸비한 온전한 인간과 사회를 이룩하려는 이상을 포함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산업과 도의, 정열과 지성을 원만하게 조화함으로써 사회의 안정과 질서를 유지하며, 개개인의 인권이 존중되고 자유가 보장되는 복지사회를 건설하는 바탕이 되는 것이다. 문화의 창조와 인류의 평화를 상징하는 태극기는 대한민국이 희구하는 좌표인 동시에 홍익인간의 국시(國是)를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1) 제작방법
깃면은 흰빛으로 하고 길이와 너비는 3과 2의 비례로 한다. 깃면은 태극과 4괘로 구성된다. 태극은 깃면의 두 대각선이 서로 교차하는 점을 중심으로 깃면너비의 2분의 1을 지름으로 하는 원을 그린 다음, 두 대각선 중 왼쪽 윗모서리에서 오른쪽 아래 모서리로 그어진 대각선상의 원의 지름을 2등분하여 왼쪽 부분에 원의 지름의 2분의 1(깃면너비의 4분의 1)을 지름으로 하는 반원을 대각선의 아랫부분에 그린다.
그 오른쪽 부분에 원의 지름의 2분의 1(깃면너비의 4분의 1)을 지름으로 하는 반원을 대각선의 윗부분에 그리고, 반원으로 연결된 원의 윗부분은 빨강색(진홍색)으로, 그 아랫부분은 파랑색(아청색)으로 한다. 그 다음 4괘는 깃면의 왼쪽 윗부분에 건을, 오른쪽 아랫부분에 곤을, 오른쪽 윗부분에 감을, 왼쪽 아랫부분에 이를 각각 배열한다.
괘의 길이는 태극지름의 2분의 1(깃면너비의 4분의 1)로 하고, 괘의 너비는 태극지름의 3분의 1(깃면너비의 6분의 1)로 하며, 괘와 태극 사이는 태극지름의 4분의 1(깃면너비의 8분의 1)을 띄운다. 괘의 길이 중심을 깃면의 두 대각선상에 두되 그 길이는 두 대각선과 각각 직각을 이루도록 한다.
괘의 구성은 효(爻)로 하되, 그 효의 너비는 괘너비의 4분의 1(깃면의 너비 24분의 1)로 하고, 효와 효 사이 및 끊어진 효의 사이는 효너비의 2분의 1(깃면너비의 48분의 1)로 한다. 괘는 검정색이다.
깃봉은 아랫부분에 꽃받침이 5편(片) 있는 둥근 모양에 가까운 무궁화봉오리 모양으로 하며, 색은 황금색으로 한다. 깃대는 대나무 또는 쇠 등의 견고한 재질로 만들고, 색은 대나무색 또는 이와 유사한 색으로 한다.
(2) 게양방법
국기는 비 또는 눈이 내리지 않는 날의 낮에 게양함을 원칙으로 하며, 하절기(3∼10월)에는 오전 7시에 달고 오후 6시에 내리며, 동절기(11∼2월)에는 오전 7시에 달고 오후 5시에 내린다.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에는 그 행사 때에만 달기도 한다. 경축할 때는 깃봉과 깃 사이를 떼지 않고 단다. 일반 가정의 대문에는 집 밖에서 보아 왼쪽에 곧게 세우며, 건물의 옥상에는 그 중앙에 국기를 게양한다.
국장·국민장 등 조의를 표할 때는 깃봉에서 깃면의 너비만큼 떼어서 단다. 외국기와 같이 달 때는 최우선의 위치에 단다. 태극기와 외국기 하나를 같이 세울 때는 태극기를 왼쪽에 세우고, 서로 엇갈리게 할 때는 태극기의 깃면이 단상을 향하여 왼쪽에 오게 하고 깃대는 밖으로 가게 한다.
세 나라 이상의 외국기와 함께 세울 때는 홀수인 경우에는 태극기를 중앙에 달고 외국기는 국명의 알파벳순에 따라 향해서 왼편이 둘째, 오른편이 셋째순으로 하며, 짝수인 경우에는 태극기를 왼편 첫째로 하고, 외국기는 국명의 알파벳순에 따라 오른쪽으로 차례차례 단다.
황혼을 어떻게
도통(道通)은 건감간진손이곤태(乾坎艮震巽離坤兌)에 있느니라. (道典 10:35:1)
음괘와 양괘
우주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 변화의 과정과 목적을 파악하여 이에 동참하고자 하는 것이 음양오행을 공부하는 목표입니다. 우주가 변화하는 실상을 객관적으로 알려주기 위해서는 누구에게나 통용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기호이며 문자입니다. 음양오행학에서 대표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바로 수(數)와 괘(卦)입니다.
변화의 상을 수로 파악할 때는 양을 홀수로, 음을 짝수로 대응시켜서 파악했습니다. 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양은 홀수의 대표인 1과 같이 ‘1’로 표현하며, 음은 짝수의 대표인 2와 같이 ‘0’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음양이 변화하는 모습을 나타낼 때는 나무가 땅에 뿌리를 박고 자라듯이 아래에서 위로 쌓으면서 그려주게 됩니다. 괘에는 기본괘로서 팔괘가 있고 이 팔괘를 중첩한 64괘가 있습니다.
팔괘의 생성
이제 팔괘의 생성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易有太極(역유태극)하니 是生兩儀(시생양의)하고 兩儀(양의)가 生四象(생사상)하고 四象(사상)이 生八卦(생팔괘)하니라.
易에는 太極이 있으니 이것이 兩儀를 낳고 兩儀는 四象을 낳으며 四象은 八卦를 낳는다. (『주역』 「계사전」)
易有太極 : 태극의 太는 ‘콩 태’라고도 합니다. 그러므로 태극은 콩(씨앗)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는데 콩은 두 쪽으로 나눠져 있습니다. 음양으로 나눠져 있으면서도 하나로 공존하는 모습이 태극의 모습입니다.
是生兩儀 : 콩에서 싹이 나는 것을 살펴보면 먼저 음인 뿌리가 아래쪽으로 나고 양인 싹이 위쪽으로 나오게 됩니다.
兩儀生四象 : 지하로 뻗는 뿌리와 지상으로 나온 싹은 각각 재차 음양으로 분화를 하게 됩니다. 이렇게 나온 것을 사상이라고 합니다. 이 사상은 오행에서 목화금수에 해당합니다.
四象生八卦 : 이렇게 생성된 사상이 다시 변화를 거듭하면 팔괘가 됩니다.
괘상(卦象)과 사물
팔괘는 사물의 상을 양괘와 음괘로 표시한 것입니다. 물을 예로 들어보면 물(水)은 씨앗과 같은 상으로 음이 양을 싸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감괘는 바깥은 음괘이고 안은 양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반면 불(火)은 분열하는 양을 음이 잡아당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리괘는 바깥이 양괘이고 안이 음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복희팔괘차서와 문왕팔괘차서
위와 같이 팔괘가 생성되는 과정을 ‘복희팔괘차서(伏羲八卦次序)’라고 합니다. 이렇게 생성된 팔괘는 천지(天地)인 건곤괘와 천지의 자녀인 여섯 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부모의 음양기운을 하나씩 받아 생장성의 원리에 의해 양괘인 진(震) 감(坎) 간(艮)이 장남·중남·소남이 되고, 음괘인 손(巽) 리(離) 태(兌)가 장녀·중녀·소녀가 되어 한 가정을 이루게 됩니다. 이를 ‘문왕팔괘차서’라고 합니다. 이를 통해 현실 속에서 천지 부모(건곤)의 이상은 진손에서 시작하여 간태가 합덕(合德)함으로써 완성됨을 알 수 있습니다.
팔괘의 성정(性情)
문왕팔괘도와 방위
天地大八門(천지대팔문)이요 日月大御命(일월대어명)이라. (道典 5:196:6)
방위는 크게 동서남북 사정위(四正位)와 사상위(四相位), 즉 팔방위를 논하게 되는데 이것은 문왕팔괘와 대응됩니다. 문왕팔괘는 주(周)나라 문왕이 획하신 것이므로 중국을 중심으로 한반도는 동북 간방, 일본은 손방, 중국의 남방인 동남아시아는 리방, 서양은 태방에 해당합니다. 방위와의 연관성을 통해 팔괘의 성정을 간략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건(乾2)
乾(건)은 天也(천야)라 故(고)로 稱乎父(칭호부)라
건괘는 하늘이므로 ‘아버지’라 일컫는다. (『주역』 「설괘전」)
건괘는 모두 양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천생지성(天生地成)이라 하듯이 양인 하늘은 끊임없이 낳고 변화를 주도합니다. 그러므로 건괘는 가정에서는 변화를 주도하는 아버지가 되며 전 우주에서는 우주를 통치하시는 통치자 하나님이 되십니다.
곤(坤3)
坤(곤)은 地也(지야)라 故(고)로 稱乎母(칭호모)라
곤괘는 땅이므로 ‘어머니’라 일컫는다. (『주역』 「설괘전」)
곤괘는 모두 음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음인 땅은 하늘의 기운을 받아들여 만물을 키우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곤괘는 가정에서는 가정의 살림을 보살피는 어머니가 되며 전 우주에서는 통치자 하느님의 뜻을 이어 우주의 꿈을 실현하시는 어머니 하나님이 되십니다.
진(震6)
帝出乎震(제출호진)…震(진)은 東方也(동방야)라
상제가 진방에서 나오느니라. 진은 동방이다. (『주역』 「설괘전」)
여기에서 제(帝)는 우주의 통치자 하느님이신 상제(上帝)님을 뜻하기도 하고 상제님을 대행하여 세상을 통치하시는 황제(皇帝)를 뜻하기도 합니다. 진방은 동방으로 우리 동이족이 살던 곳을 통칭하여 부르는 말입니다. 고구려의 후예들은 나라를 세우면서 국호를 대진(大震)이라고 하여 천자국의 종주임을 천명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동방은 천자(황제)가 계신 천자문화의 시원처입니다. 다시 말해서 동방 동이족에서 다시 후천을 여는 천자가 나와 천자문화를 부활케 한다는 뜻입니다.
손(巽7)
巽(손)은 入也(입야)라
손괘은 들어가는 것이다. (『주역』 「설괘전」)
손괘는 바람(風)이라고 하며 동물로는 닭에 비유하는데 바람은 스며드는 성질이 있으며 닭은 겁을 먹으면 머리를 땅에 박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손괘의 성질을 입야(入也)라고 합니다. ‘일본은 이번 개벽기에 반드시 바다 속으로 들어간다’고 한 에드가 케이시나 탄허스님의 예언을 다시 한 번 상기해 보게 됩니다.
감리(坎離54)
坎(감)은 爲水(위수)라 (『주역』 「설괘전」)
離(리)는 爲火(위화)라 (『주역』 「설괘전」)
하늘과 땅(건곤)은 양과 음을 대표합니다. 음양이 자연계에서 실제 만물을 기르고 열매 맺을 때는 水와 火로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감리는 천지를 대행하여 실제 만물을 기르는 역할을 합니다.
간(艮8)
艮(간)은 東北之卦也(동북지괘야)니 萬物之所成終而所成始也(만물지소성종이소성시야)일새 故(고)로 曰成言乎艮(왈성언호간)이라
동북 간방은 만물의 끝남과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지는 곳이라. 고로 말씀이 간방에서 이루어지느니라. (『주역』 「설괘전」)
간은 열매(씨앗)의 뜻이 있습니다. 복희팔괘에서는 서북방으로 늦가을에 열매(씨앗)을 맺어 한해 농사를 결실한 때이며, 문왕팔괘에서는 동북방으로 새벽에 해당하며 씨앗이 싹을 내기 직전의 모습입니다. 즉, 봄의 목기(木氣)가 터지기 바로 직전의 상황입니다. 그래서 간은 일년농사의 시작과 종결이 이루어지는 때와 장소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팔괘의 원리로 볼 때, 모든 우주의 뜻이 결실을 맺고 다시 시작하는 곳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 한반도인 것입니다.
태(兌9)
兌(태)는 正秋也(정추야)니 萬物之所說也(만물지소열야)일새라.
태는 바로 가을이니, 만물이 기뻐하는 것이다. (『주역』 「설괘전」)
봄에 뿌려진 씨(문왕팔괘의 艮)는 여름을 거쳐 가을바람(西風, 金風)을 맞으며 씨앗(복희팔괘의 艮)을 맺게 됩니다. 가을(兌)은 농부가 한해의 농사를 추수하고 이를 감사하며 천지에 보은(報恩)의 제사(한가위, 추수감사절)를 올리는 때입니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태방인 미국(서양)의 근대화 바람(金風)이 불면(미국이 한국에 들어오면) 후천 가을의 새 세상이 열리게 된다(道典 5:336:6)고 하셨습니다. 간소남인 남편을 그리워하여 태소녀인 부인이 시집오는 것을 간태합덕(艮兌合德)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부부의 도가 완성되면서 음양이 화합하여 만국(萬國)이 함녕(咸寧)하는 후천 대동(大同)세계가 항구히 열리리라(『주역』 건괘 「단전」)는 것이 주역의 가르침입니다.
팔괘도의 상호관계
선천팔괘와 후천팔괘
흔히 복희팔괘를 선천팔괘라고 하고 문왕팔괘를 후천팔괘라고 합니다. 이때의 선천은 어머니 뱃속에서 자라면서 규정되어진 것을 말하며 후천은 태어나 자라면서 형성되어진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태어난 이후를 놓고 보면 생장의 전반기는 선천, 성숙의 후반기는 후천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이때는 문왕팔괘가 선천팔괘이며 정역팔괘는 후천팔괘에 해당합니다.
팔괘와 팔괘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대역사가 마무리되어 열매를 맺는 곳이 바로 동방 한민족이 살고 있는 바로 이 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땅에 태어나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우주의 대이상향인 정역의 가을세상에 주역이 되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인간에게 최고의 가치있는 삶입니다.
다음 호에서는 우주의 본체인 무극·태극·황극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추적]태극기 누가 만들었나?… 뜻밖의 인물이 있었다
▲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최근 미국 워싱턴 국회도서관 소장‘슈펠트 문서 박스’에서 발견한 태극기 도안. 1882년 5월 22일 제물포에서 열린 조·미수호 통상조약 조인식에 성조기와 함께 걸렸던 조선 국기다. ⓒ 이태진 명예교수/조선일보
2018년 8월 14일자 <조선일보>에 재미있는 기사가 하나 실렸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워싱턴 국회도서관에서 최초의 태극기 도안을 발견해 공개했다는 보도다. 기사에 따르면 이태진 교수는 최근 미국 워싱턴 국회도서관에 소장된 ‘슈펠트 문서’ 박스 속에서 ‘한국 조약 항목’에 들어 있는 태극기 도안을 발견하고 이를 언론에 공개했다.
이태진 교수는 “태극기 그림엔 작성 날짜가 없지만 이 도안이 들어 있는 항목이 1882년 조·미 수호통상조약이며 바로 뒤에 있는 문서는 같은 해 6월 11일 작성된 것으로 그 이전 자료가 분명하다”고 했다.
태극기는 그동안 1882년 9월 수신사 박영효가 일본에 가는 메이지마루호 선상에서 즉석에서 만든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일국의 상징인 국기를 대신(大臣)이 즉석에서 만들어 내걸었다는 비상식적인 이야기가 마치 정설처럼 퍼져 있는 것이다.
박영효가 국기를 만들어 처음 내걸었다는 주장은 조선시대 관료 조직을 아프리카 부족국가 수준 정도로 보지 않는 이상 애당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 학계에서는 이에 대한 이의를 적극적으로 제기하지 않았다.
▲ 고종황제 행렬이 종로를 지나고 있다. 1885년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신부가 촬영한 것으로, 어가 앞에 대형 태극기가 보인다. 신식 군대와 전통 군대가 섞여서 어가를 호위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태극기의 기원
태극기 도안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는 조선시대 군사 지휘기인 좌둑기(左纛旗)와 옛부터 군주를 상징해왔던 태극팔괘도에서 연유한다. 둑(纛)은 임금의 가마나 군대의 대장 앞에 세우는 군기(軍旗)를 말한다.
2016년 3월 광복회 광주ㆍ전남 지부는 3.1 절을 맞아 ‘태극기 특별기획전’을 열고, 미공개 태극기 사진을 다수 공개했다. 이 가운데 눈길을 끈 것은 1885년 고종 황제의 어가 행렬을 이끄는 대형 태극기의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이 깃발이 ‘국가 행사’에 등장한 가장 오래된 태극기라고 한다.
바로 이 사진에 등장하는 고종황제 행차 행렬 앞에 있는 ‘태극 깃발’이 바로 ‘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엄격하게 말하면 애초부터 태극기 창안자를 특정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태극 문양은 우리가 이미 오래전부터 즐겨 사용해오던 상징물이었다.
설사 태극기의 도안이 전통적인 좌둑기나 기존의 태극 8괘에서 유래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런 상징 또는 도안과 근대 국가에서 한 나라를 상징하는 정식 국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 광복회 광주전남연합지부가 공개한 1907년 순종황제즉위식 기념엽서에 나온 평양의 모습. 거리마다 온통 태극기 물결이다.
국기로 제정된 태극기
최초의 국기 제정 과정에 대해서는 현재 명확하게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다만 고종실록 1883년 1월 27일(고종 20년) 기사에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에서 아뢰기를 ‘국기를 이미 제정했으니 팔도와 사도(四都)에 행회(行會)하여 다 알고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윤허했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이미 국기가 결정되어 있던 상태에서 이 때에 이르러 공식적으로 선포하고 전국적으로 사용을 확대하도록 한 것이다.
박영효가 일본에 수신사로 간 것이 1882년 9월이다. 한동안은 박영효가 일본으로 가는 배 위에서 국기를 최초로 만들었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가 국가 공식 업무에 태극기를 최초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2004년 미국 해군부가 발간한 <해양국가들의 깃발>이란 자료에서 박영효가 태극기를 만들었다는 시점보다 앞선 1882년 5월 조미수호통상조약 때 사용된 태극기 도안이 발견되었다. 이로써 박영효가 최초로 태극기를 만들었다는 것은 고사하고, 공식 업무에 태극기를 처음 사용했다는 것도 사실과 맞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에 이태진 교수가 발견한 태극기 그림은 바로 <해양국가들의 깃발>에 싣기 위해 그린 ‘원도안’인 셈이다.
▲ 소위 ‘이응준 태극기’로 알려진 1882년 5월 조미수호조약 체결 당시 사용된 태극기. 2004년 미국 해군부 해상국의 자료에서 그 실체가 발견됐다. 이태진 교수가 발견한 태극기 그림은 이 태극기의 원도안이다.
누가 태극기를 만들었나?
2004년 발견된 조미수호통시조약 체결시 사용된 태극기를 세간에서는 ‘이응준 태극기’라고 부른다. <태극기의 탄생>이라는 책을 쓴 소설가 박충훈씨는 “당시 역관이던 이응준이 고종의 명을 받아 현재와 같은 태극 4괘(卦)의 도안을 처음 그렸다”고 주장했다.
현재 학자들도 김홍집의 명을 받은 이응준이 현재와 같은 4괘 태극기 도안을 그렸고, 이후 박영효가 일부 수정한 것을 사용했다는 것을 정설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응준이 상관의 명을 받아 국기를 그린 것과 국기의 도안을 창안한 것은 분명 다른 문제다.
1948년 2월 8일 <경향신문>에 태극기의 유래에 관해 ‘국기고증변(辨)’이라는 한 편의 글이 실렸다. 이 글의 필자는 유자후(柳子厚ㆍ1895~ 납북)라는 분으로 경사(經史)에 해박하며 신학문(新學文)에도 능통하였다. 유자후의 국기고증 글에서는 이응준이라는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전략) 국기의 ㅇ處(ㅇ처)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주설이 구구한 모양이니, 혹자는 병자강화조약 때에 제정된 것이라 하고, 혹자는 임오 한미 통상조약 때 선정된 것이라 하고, 또 혹자는 임오군란 후 일본 수신사 박영효씨가 작(作)하였다하기도 한다. 이 세 가지 주장 가운데 최후의 설이 근시(近是)한 것이다. 지금까지 참고된 결과를 보면 본래 김옥균씨의 創ㅇ(창ㅇ)로써 김홍집씨와 상의하고 어윤중씨의 찬성을 받은 후에 박영효씨의 동의를 얻어 고종황제께 품달하여 어재가를 받았다는 것이 사실에 가까운 듯하다. 그리고 보면 우리 태극기의 창안자는 김옥균씨요. 그 제정자는 고종황제였던 것이다. (중략)우리 태극 8괘의 국기가 이와 같은 경위와 이와 같은 뜻을 갖고 탄생하기는 실로 대조선개국 491년 임오년 7월 25일 고종 19년 서력 1882년이니, 지금으로부터 67년 전에 특명전권대사 수신사 박영효씨가 국서를 받들고 일본으로 향하였던 날이다. 그리고 고종황제께서 각국의 기호와 비교하여 만약 고칠 점이 있거든 고치라는 품허까지 내리셨다. (후략)>
▲ 고종황제가 미국인 외교 고문을 지낸 데니(1838~1900)에게 하사한 태극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다. 가로가 263, 세로가 180cm인 대형 태극기 인데 기사 상단의 고종황제 행렬에 사용된 태극기와 비슷한 크기와 형태로 보인다. 태극기 제정 당시의 태극 소용돌이는 지금보다 매우 깊어 전통 태극 문양에 가깝다.ⓒ뉴시스
“中 주역상징물 태극기 폐기 마땅”
“태극기는 우리 민족과 전혀 상관이 없는 주역의 상징물로 폐기돼야 마땅하다”
국립대만대학 철학연구소에서 주역연구로 박사학위를 딴 김상섭씨(부경대 강사)가 태극기에 대해 도발적인 주장을 내놓았다. 그는 ‘태극기의 정체’(동아시아)란 책을 통해 태극기에 담긴 주역원리가 우리 전통과 무관함을 밝히는 동시에, 구한말 청나라 사신과 영국인 함장 등에 의해 태극기가 국기로 확정되는 과정을 그렸다.
김박사는 “중국 도서역(圖書易)의 선천도(先天圖) 계통 그림이 북송시대에 ‘복희팔괘방위도’(伏羲八卦方位圖)가 됐다가 명대에 ‘고태극도’(古太極圖)로 발전했으며 이것이 구한말 태극기로 변형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태극기를 구성하는 태극과 음양, 괘가 중국 고대철학사에서는 나름대로 의미있는 개념이지만 우리 민족의 정서나 정체성과 무슨 상관이냐”고 반문했다.
더욱 부끄러운 것은 태극기의 제정과정이다. 국기에 대한 실질적 논의는 조미수호통상조약(1882년) 당시 전권부관 김홍집과 청의 사신 마건충 사이에 이뤄졌다. 마건충이 먼저 “흰 바탕에 푸른 구름과 붉은 용을 사용하는 것이 좋겠고, 용의 발톱을 4개로 하면 5개인 청의 용기(龍旗)와 구분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에 김홍집은 홍·청·백이 어우러진 원을 사용한 도식을 건의하고, 마건충은 고태극도를 국기로 할 것을 명했다는 것.
얼마뒤 박영효 등 수신사 일행이 임오군란에 대해 사죄하기 위해 일본으로 가는 배 안에서 태극기의 문양이 확정된다. 박영효와 영국 영사 애스턴, 영국인 선장 제임스 등이 국기의 모양을 상의하던 중 제임스 선장이 “고태극도는 팔괘의 모양이 조잡하고 그리기 어려우니 사괘만 남겨서 모퉁이에 그리자”고 제안했다.
김박사는 “태극기의 거론, 제안, 결정, 사용에 이르는 과정에서 우리 민족의 자주성, 정체성, 상징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태극기의 역사적 근거를 밝힌 기성학계에 대해서도 공격을 늦추지 않았다. 이태진 서울대 교수의 경우 “정조의 위민정치 이념이 담긴 어기(태극팔괘도)가 태극기의 저본(底本)으로 사용됐다”고 주장했으나 태극팔괘도는 위민사상과 관련이 없을 뿐더러 정조때가 아니라 고종때 제작됐다는 것이다.
또 청 사신이 1725년쯤 그린 ‘봉사도’(奉仕圖)의 태극그림이 태극기의 원조라는 김원모 단국대 교수의 주장이나 통일신라시대 감은사의 기단석(682년쯤)에 태극도형을 사용했다는 사단법인 대한민국 국기선양회의 주장에 대해서도 일일이 논박했다. 심지어 국기선양회가 고려말 제작됐다고 주장한 태극사괘 범종은 위조품이라고 반박했다.
〈한윤정기자 [email protected]〉
후천은 하도의 이상이 실현된 상생의 세상 – 팔괘도八卦圖
[한문화] 예화로 배우는 우주변화의 원리 | 후천은 하도의 이상이 실현된 상생의 세상 – 팔괘도八卦圖우주 만유는 순환하면서 변화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순환은 일정한 주기를 반복하는 것으로 둥근 원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행과 팔괘, 십간·십이지를 나타낼 때는 원형으로 배치하여 만물 순환의 법칙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팔괘가 다른 법칙과 다른 점은 변화의 진행 과정에 따라 배속되는 위치가 바뀐다는 것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팔괘도를 통해 우주 변화의 목적을 탐구해 보겠습니다.
구궁팔풍운동九宮八風運動
*1))
*1) 본지 4월호, 연재 17회 ‘만물은 수數로 구성되어 있다(하도·낙서와 자연수)’ 참고
김덕기 / STB상생방송 작가우주는 분열과 통일을 반복하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주의 변화를 수상數象으로 드러낸 계시 문서가 천지창조의 설계도인 하도河圖와 천지변화의 운행도인 낙서洛書입니다.하도는 내부와 외부에서 겉에 있는 성수成數(음)가 속에 있는 생수生數(양)를 감싸고 있습니다. 자연계에서 이러한 형태는 열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내부에서 성수(10)가 생수(5)를 감싼 것은 씨앗의 형태와 같으며, 외부에서 성수(6, 7, 8, 9)가 생수(1, 2, 3, 4)를 감싼 것은 과육의 형태와 같습니다.낙서는 중앙에서 5토土가 분열을 주도하고 있으며, 사정방四正方과 사간방四間方에 양수(1, 3, 9, 7)와 음수(6, 8, 4, 2)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자연계에서 이런 형태는 나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뿌리에서 줄기를 통해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해 주면 가지와 잎이 무성하게 뻗어 나가면서 분열하는 모습과 같습니다.
토土는 중앙에만 위位가 있고 주위에는 위位가 없다. 다만 중앙의 위位에서 주위의 목화금수木火金水의 위位에 나와서 작용만 하는 것인즉 우주 운동의 방위는 팔개소八個所뿐이다. 그런즉 중앙 상위까지 합하여서 구궁九宮인 것이나 실지로 운동하는 궁宮은 팔궁八宮인 것이다. 그러므로 구궁팔풍九宮八風 작용이라고 한다. 그런즉 우리는 여기에서 우주 운동의 본질은 아무리 부연한다고 할지라도 이상에서 말한바, 팔족군八族群 이외에는 더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복희가 우주 운동의 상을 괘로써 그릴 때에 그 기본을 팔괘로서 표시했던 것이다. – 『우주변화의 원리』 164~165쪽
천지대팔문天地大八門
天地大八門(천지대팔문) 日月大御命(일월대어명) (도전 5:196:6)
*2))
*2) 토궁에서 팔방위로 뻗어 나가는 생명 기운을 성령이라고 한 이유는 기氣의 속성이 신神이기 때문이다.
프뉴마πνεύμα는 바람(Wind)인 동시에 생명의 특징인 숨(Breath)이다. 숨이 출입하지 아니하는 몸은 죽은 몸이다. 숨은 곧 생명(anima)이다. 생명은 신비로운 것이며 구극적究極的인 것이다. 그것은 신령스러운 것이다. 신령은 곧 성령(Spirit)이다. – 『노자가 옳았다』, 김용옥
중풍손괘重風巽卦 대상사의 ‘신명행사申命行事’란 신도神道에 의해 목도木道를 펴고 왕도정치를 행함이다. – 『주역 소통의 인문학』, 김재홍
삼역팔괘도三易八卦圖
팔괘의 개념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고 그 위치에 따라서 개념이 변한다는 사실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괘는 그 배속되는 방위 여하에 의하여서 작용하는 성질이 달라진다. – 『우주변화의 원리』 183쪽
하도와 낙서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중앙에 자리한 토가 변화의 원동력을 제공하면, 외곽에 자리한 사상四象(목화금수)으로 변화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토土는 체體로서 보이지 않는 손길로 작용하고, 사상四象은 용用으로서 현상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상을 토용土用이라고 합니다.사상이 다시 음양으로 분화하면 팔괘八卦가 됩니다. 공간상에서 사상은 사방四方, 팔괘는 팔방八方에 배속합니다. 팔괘를 팔방위에 배속한 것을 팔괘도八卦圖라고 합니다. 그리고 각각의 방위는 일정한 공간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궁宮이라고 합니다. 중앙과 팔방위를 합하면 구궁九宮이 됩니다. 그러나 중앙의 토는 변화의 원동력이 되고, 현상적인 변화는 팔방위에서만 일어나므로 팔풍八風이라고 합니다.하도와 낙서는 우주의 변화원리와 구조를 그린 것으로 우주와 사물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도와 낙서의 중앙(팔괘도의 중앙)인 토궁土宮은 우주와 각 사물의 중심과 같습니다. 이곳에서 생성된 원기元氣는 천지 팔방위를 통해 우주 전역으로 퍼져 나가 만물이 운동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합니다.그런데 변화가 일어나는 팔궁八宮을 팔풍八風이라고 명명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풍風의 의미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풍風에는 바람이라는 뜻 외에도 생명, 성령聖靈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팔풍은 자연의 바람뿐만 아니라 우주를 운동하게 하는 생명의 바람, 성령의 바람을 의미합니다.그리고 주역에서는 풍風을 목木에 배속하여 목도木道, 신도神道, 하늘의 섭리, 천도, 성인지도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최치원 선생이 난랑비서문에서 인류의 뿌리종교인 신교神敎를 풍류風流라고 칭한 이유도 이를 통해 유추할 수 있습니다.대지에 부는 생명의 바람은 만물을 고동시켜 성장시키고 있습니다. 겨우내 얼었던 산과 들이 따뜻한 봄바람에 사르르 녹아내리면 파릇파릇한 새싹이 앳된 모습을 드러내고, 더운 여름바람을 맞으며 푸르름을 더합니다. 서늘한 가을바람은 열매 맺기를 재촉하고, 추운 겨울바람은 생명 활동을 잠시 멈추게 합니다. 이는 시간에 따라 생명의 바람이 방향과 질을 달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지 성령의 바람을 괘상으로 펼쳐 놓은 팔괘도도 시간에 따라 형상을 달리하고 있습니다.만물은 봄의 생生하는 기운을 받아 탄생하고, 여름의 장長하는 기운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가을의 염斂하는 기운을 받아 생명을 수렴하고, 겨울의 장藏하는 기운을 받아 씨앗을 저장합니다. 그런데 겨울에는 생명을 갈무리하고 휴식을 취하므로 실제 현상적인 변화는 봄·여름·가을에만 일어납니다. 이를 일체삼용一體三用이라고 하며, 봄·여름·가을의 삼단계 변화 과정을 생장성生長成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연유로 팔괘도는 생역生易(봄), 장역長易(여름), 성역成易(가을)의 삼역팔괘도가 있습니다. 팔괘도를 천수상天受象하여 처음으로 그린 분들의 이름을 붙여 생역도는 복희팔괘도伏羲八卦圖, 장역도는 문왕팔괘도文王八卦圖, 성역도는 김일부 대성사의 정역팔괘도正易八卦圖라고 합니다.
선천팔괘도와 후천팔괘도
소옹邵雍(소강절, 1011~1077)의 역도 역시 진단陳摶(약 871~989)에게서 나왔다. 주진에 의하면 진단의 는 충방, 목수, 이지재를 거쳐 소옹에게 전수되었다고 한다. …… 소옹은 이 네 가지 괘의 그림 형식은 복희가 그린 것이라고 여겼으므로 이런 종류의 그림 형식을 라고 하였다. …… 문왕의 역이며 복희역이 발전된 것이라고 여겼으며 라고 칭하였다. – 『태극기의 정체』, 김상섭
시간을 구분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생장염장生長斂藏은 사상四象에 따른 것이고, 생장성生長成은 삼원三元에 따른 것입니다. 생성生成은 음양陰陽에 따른 방식으로 선천과 후천이 이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삼역팔괘도를 선천과 후천으로 다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을 선천과 후천으로 구분하는 기준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선천적과 후천적으로 구분하는 것입니다. 선천적은 태어나기 이전(미생지전未生之前)을 뜻하며, 후천적은 태어난 후(이생지후已生之後)를 말합니다. 선천적으로 성격을 타고났다거나, 후천적인 환경에 의해 성격이 형성됐다고 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소강절 선생이 팔괘도에 적용한 시간의 구분 방법은 이를 따르고 있습니다. 즉 만물이 탄생하기 전을 선천先天, 만물이 탄생한 후를 후천後天이라고 하여 복희팔괘도를 선천도, 문왕팔괘도를 후천도라고 규정한 것입니다.
선천과 후천을 구분하는 또 다른 방법은 하나의 시간 단위를 선과 후로 나누어 보는 것입니다. 하루 중 오전은 선천, 오후는 후천에 배속합니다. 일 년 중 봄·여름 양의 시간대는 선천, 가을·겨울 음의 시간대는 후천입니다. 이는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구분법으로 정역에서는 이를 따릅니다. 이에 의하면 송대의 선유先儒들이 말한 선천(적)과 후천(적)은 양의 시간대인 선천에 해당하며, 그 후에 도래하는 음의 시간대는 후천에 해당합니다.
하도·낙서와 삼역팔괘도
– 복희팔괘도
그런데 문제는 지금까지도 많은 학자가 소강절 선생의 선후천 구분법만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희팔괘도와 문왕팔괘도를 선천도, 정역팔괘도를 후천도라고 한 정역의 구분법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나아가 정역의 출현 자체도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선천과 후천을 나누는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팔괘도를 구분할 때는 선후천의 분류 기준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팔괘도는 하도와 낙서를 바탕으로 출현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유들은 선천도인 복희팔괘도는 하도, 후천도인 문왕팔괘도는 낙서에서 유래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정역에서는 복희팔괘도를 선천의 선천도, 문왕팔괘도를 선천의 후천도, 정역팔괘도를 후천도라고 합니다. 하도와 낙서는 두 개인데 어떻게 정역팔괘도가 출현하여 삼역팔괘도가 된 것일까요? 이는 하도가 형상화한 씨앗의 변화를 통해 이해할 수 있습니다.봄철의 씨앗은 분열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씨앗 내부에서 새싹이 생겨나는 때이며, 어머니의 자궁에서 아기가 자라는 때입니다. 복희팔괘도는 봄에 분열하는 씨앗(하도)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생역도生易圖라고 합니다. 복희팔괘도의 1(자수子水)은 씨앗의 핵이며 5(축토丑土)의 화생化生 작용에 의해 8(묘목卯木)에 이르러 새싹의 형체를 온전히 갖추게 됩니다. 9와 10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 이유는 만물이 생生하는 시간대로 9금의 견렴작용과 10토의 통일로의 전환작용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그리고 음양이 만나 생명을 낳는 때이므로 건곤乾坤·진손震巽·감리坎離·간태艮兌가 정음정양正陰正陽의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숫자도 음수와 양수가 마주 보며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시간상으로는 동쪽에서 리화離火의 태양이 떠오른 모습으로 아침의 생生하는 때입니다. 그리고 건괘(天)가 위에서 기운을 내려 주고 곤괘(地)는 아래에서 기운을 받아 생명을 키우는 모습으로 천지비괘天地否卦의 상을 이루고 있습니다. 복희팔괘도를 태극팔괘도라고도 하는데 1태극의 씨앗 속에서 생명이 탄생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복희팔괘도의 음양 구조가 태극의 형상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를 나타낸 그림이 조중전의 ‘고태극도’입니다.
– 문왕팔괘도
문왕팔괘도는 낙서와 숫자의 배치가 똑같습니다. 새싹이 씨앗을 뚫고 나와 분열 성장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장역도長易圖라고 합니다. 그런데 만물이 분열할 때는 과도한 분열작용으로 인해 양기가 소진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자연은 이를 방지하고자 음형으로서 양신의 분열을 제어하고 있습니다. 문왕팔괘도가 ‘6음·1양 → 8음·3양 → 4음·9양 → 2음·7양’으로 음수와 양수가 교대하며 구성된 것은 이 때문입니다. 또한 남방과 서방에서 금(4·9)과 화(2·7)가 자리를 바꿔서 금화교역金火交易을 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5와 10이 표시되어 있지 않은 이유는 만물이 장長하는 시간대로 5토는 중앙에서 만물을 분열시키는 보이지 않는 손길로 작용하고, 10토의 통일로의 전환작용은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그리고 중앙에서 5황극이 분열을 주도하고 있어서 감리坎離를 제외한 나머지 괘들이 혼잡하게 섞여 있습니다. 숫자도 음수가 음수, 양수가 양수를 마주 보고 있습니다. 이를 난음난양亂陰亂陽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과도한 분열을 제어하기 위해 마주 보는 괘들이 음양을 달리하고 있습니다(음괘–곤손리태坤巽離兌, 양괘–건진감간乾震坎艮). 또한 양괘는 북동쪽에 자리하고 음괘는 남서쪽에 자리하여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시간상으로는 남쪽에서 리화離火의 태양이 중천에 떠오른 모습으로 점심의 장長하는 때입니다. 리괘(火)의 양기는 위로 올라가고 감괘(水)의 음기는 아래로 내려가는 모습으로 화수미제괘火水未濟卦의 상을 이루고 있습니다. 문왕팔괘도는 5황극이 중앙에서 분열작용을 주도하므로 황극팔괘도라고 합니다.
– 정역팔괘도
*3))
*3) 복희팔괘도와 문왕팔괘도는 만물이 분열 운동을 하는 봄·여름 양의 시간대를 형상화한 것이므로 괘를 그릴 때 안에서 밖을 향하여 그린다. 정역팔괘도는 만물이 통일하는 가을·겨울 음의 시간대를 형상화한 것이므로 괘를 그릴 때 밖에서 안을 향하여 그린다.
가을철은 생명의 진액이 통일되어 씨앗이 형성되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이때의 씨앗은 통일운동을 하는 상태입니다. 금金의 견렴작용과 수水의 응고작용이 더해져 씨앗의 껍질이 단단해지고 내부에서는 씨핵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정역팔괘도는 가을에 통일하는 씨앗(하도)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성역도成易圖라고 합니다.또한 하도처럼 1부터 10의 모든 자연수를 갖추고 있으므로 10수의 완성도라고 합니다. 10무극의 조화작용으로 꽃이 피어 열매와 씨앗이 맺힌 것입니다. 하도의 중앙에 있던 10토와 5토는 정역팔괘도의 북방과 남방에 자리하여 변화를 주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씨핵(核 = 木 + 亥)의 주인공인 3목과 8목은 동방과 서방에 자리하여 실질적인 변화를 담당하고 있습니다.그리고 정역팔괘도는 가을·겨울의 씨앗으로 정음정양正陰正陽을 온전히 이루며 통일되어 있습니다. 건곤乾坤·진손震巽·감리坎離·간태艮兌가 서로 마주 보며 정음정양의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또한 양괘는 북동쪽에 자리하고 음괘는 남서쪽에 자리하여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숫자도 양수와 음수가 마주 보며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문왕팔괘도가 금화교역의 상을 잉태하였다면 완성은 정역팔괘도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시간상으로는 남서쪽에서 리화離火의 태양이 지고 있는 모습으로 저녁의 성成하는 때입니다. 위에 있는 곤괘(地)가 아래에 있는 건괘(天)의 생명력을 통일하는 모습으로 지천태괘地天泰卦의 상을 이루고 있습니다. 정역팔괘도는 10무극의 변성變成 작용에 의해 열매와 씨가 형성되므로 무극팔괘도라고 합니다.
새로이 정역팔괘(正易八卦)를 그리니, 이는 억음존양(抑陰尊陽)의 선천 복희팔괘(伏羲八卦)와 문왕팔괘(文王八卦)에 이은 정음정양(正陰正陽)의 후천 팔괘도라. (도전 1:9:10)
선천은 천지비(天地否)요, 후천은 지천태(地天泰)니라. (도전 2:51:1)
후천 가을은 상생의 세상
마음이 고요하면 선천이요 희로애락에 떨어지면 후천이며, 기가 순수하면 선천이요 탁하면 후천이다. – 『천선금단심법』, 오충허
유가에서 말하는 ‘근본으로 돌아가라’는 것은 ‘어린아이’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비로소 멈추게 된다. …… 맹자가 말하는 ‘어린아이’는 사랑할 줄 알고 공경할 줄도 아는 지식을 지닌 아이다. 노자의 ‘근본으로 돌아가라’는 것은 더 나아가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사욕이 없는 갓난아기의 모습으로까지 되돌아가야 비로소 멈출 수 있다. – 『후흑열전』, 이종오
暮日還明(모일환명) 更見堯舜世(갱현요순세)
저문 해가 밝아오니 요순 세상이 다시 나타나느니라. (도전 7:27:6)
나의 도는 상생(相生)의 대도이니라. 내가 이제 후천을 개벽하고 상생의 운을 열어 선(善)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리라. (도전 2:18:1,3)
이천칠지와 화둔공사
*4))
*4) 외부를 둘러싼 팔괘는 음형陰形, 내부의 이천칠지는 양신陽神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제 72둔(遁)을 다 써서 화둔(火遁)을 트리라. 나는 곧 남방 삼리화(三離火)로다. (도전 4:146:2~3)
북극 빙하의 해빙으로부터 시작되는 정역시대는 이천칠지二天七地의 이치 때문입니다. 이에 의하면 지축 속의 불기운이 지구의 북극으로 들어가서 북극에 있는 빙산을 녹이고 있다고 합니다. – 『부처님이 계신다면』, 탄허
선후천의 도역倒逆 운동
龍圖(용도) 倒生逆成(도생역성) 龜書(구서) 逆生倒成(역생도성) – 『정역』 「십오일언」
*5))
*5) 순역운동은 뿌리에 해당하는 수水를 체體, 가지와 잎에 해당하는 화火를 용用으로 상정한 것이다.
앞서 밝힌 것과 같이 선유들과 정역이 선후천을 구분하는 기준은 서로 다릅니다. 선유들이 말한 선천(적)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생명이 자라나는 때입니다. 나아가 생명이 탄생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순수함을 유지하는 아기나 어린이의 상태와 같습니다. 무위無爲의 상태로서 인류가 순수함을 유지하던 역사의 초창기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선유들은 복희팔괘도가 그리는 세상을 하도의 상생이 펼쳐진 이상향이라고 여겼습니다. 이에 반해 후천(적)은 유위有爲의 상태로서 인류가 순수함을 잃고 대립과 투쟁하는 역사의 발전기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문왕팔괘도가 그리는 세상을 낙서의 상극이 펼쳐지는 현실 세상이라고 여겼습니다. 이 때문에 선유들이 후천 상극의 세상을 극복하고 선천 상생의 세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그러나 과거는 현재를 거쳐 미래를 향해 흘러갑니다. 씨앗을 뚫고 탄생한 새싹은 성장하여 열매를 맺고, 아기는 청년으로 자라 가정을 꾸려 자식을 낳습니다. 역사의 초창기에 인류는 순수한 아기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역사가 발전하면서 그 아기는 순수함을 잃고 타락하여 방종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인류는 인생의 의미를 깨달은 성숙한 성인이 되어 새로운 역사를 출산하려 하고 있습니다. 하도의 이상향이 실현된 성숙한 세상, 인류가 그토록 갈망했던 후천 상생의 새 세상이 바로 정역팔괘도가 그리는 세상입니다. 모든 종교와 깨달음의 세계에서 그리워했던 이상세계는 과거지향의 선천(적)이 아니라 미래지향의 후천인 것입니다.다른 괘도와 달리 정역팔괘도에는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첫째, 5곤坤과 10건乾이 경축經軸(세로축)에 자리하여 수水와 화火의 사이에서 완충작용을 하고 있습니다(1·5·7, 6·10·2). 비록 그 위치는 반대이지만 십이지에서 축토丑土(5)와 미토未土(10)가 음양의 대립을 중재하며 변화를 일으키는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둘째, 이천칠지二天七地가 중앙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정역팔괘도는 가을·겨울의 열매와 씨앗의 형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천칠지는 씨앗 속에 통일된 양기陽氣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서쪽에서 지고 있던 리화離火(태양)의 화기가 이천칠지로 통일되어 금화교역을 완수한 것입니다.선천 세월 동안 인간과 신명은 상극의 질서로 인해 원한을 맺고 쌓아 왔습니다. 원한의 살기는 화기火氣가 과도하게 분열한 것입니다. 그래서 증산 상제님께서는 원한을 풀고 화기를 수렴하는 화둔공사를 집행하셨습니다.그런데 상제님의 화둔공사는 인류 역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벼는 여름철 말에 꽃이 피면 2·7 화기火氣를 껍질 속에 이천칠지로 감추어 열매와 씨앗을 맺습니다. 씨앗처럼 둥근 형상을 한 지구도 2·7 화기를 지중地中에 이천칠지로 감추어 성숙한 열매로 다시 태어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우주의 가을철이 되면 화기(양기)를 단전丹田 속에 이천칠지로 감추어 도통한 열매 인간으로 거듭나게 됩니다.순역順逆은 음양의 변화를 운동 방향으로 파악한 것입니다. 기운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양陽운동은 역행逆行이라고 하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음陰운동은 순행順行이라고 합니다.선천은 양의 시간대로 만물이 탄생하여 성장하는 때입니다. 후천은 음의 시간대로 만물이 진액을 수렴하여 저장하는 때입니다. 봄·여름에는 새싹이 하늘을 향해 위쪽으로 자랍니다. 뿌리에서 멀어지며 역행하는 것입니다. 가을·겨울에는 가지와 잎의 끝까지 올라갔던 양기가 아래쪽으로 방향을 바꿔 뿌리로 돌아갑니다. 근원으로 되돌아가며 순행하는 것입니다. 수상數象을 통해 순역운동을 살펴보면 수에서 화로 가는 과정(1 → 2)은 역행이며, 화에서 수로 가는 과정(2 →1)은 순행입니다. 그리고 1(태극)에서 5(황극)를 거쳐 10(무극)으로 가는 과정은 역행이며, 10에서 5를 거쳐 1로 가는 과정은 순행입니다.순역운동은 생성의 측면에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봄·여름 양의 시간대는 만물이 생生하는 때이고, 가을·겨울 음의 시간대는 만물이 성成하는 때입니다. 이를 순역운동과 결부시키면 역생순성逆生順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양을 위주로 하는 선천의 관점입니다. 즉 새싹의 입장에서는 양의 시간대에 탄생하고(生), 음의 시간대에 열매를 이룹니다(成). 그런데 이와 반대로 음을 위주로 하여 변화를 관찰하면 어떻게 될까요? 씨앗의 입장에서는 음의 시간대에 형성되기 시작하여(生) 양의 시간대에 자신의 화려한 모습을 이룹니다(成). 이를 순역운동과 결부시키면 순생역성順生逆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역에서는 순역을 도역倒逆(거꾸로 도, 거스릴 역)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역생순성은 역생도성逆生倒成, 순생역성은 도생역성倒生逆成과 같습니다. 양을 위주로 사물의 변화를 파악하는 것은 선천의 관점입니다. 그러므로 역생도성은 선천의 변화 운동입니다. 음을 위주로 사물의 변화를 파악하는 것은 후천의 관점입니다. 그러므로 도생역성은 후천의 변화 운동입니다.정역은 가을의 성역成易으로 후천의 음운동을 위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도생역성을 달(태음太陰)의 위상과 형태 변화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양을 위주로 하는 선천의 관점으로 보면 달은 음력 1일부터 15일까지 형태가 생겨나고(生), 16일부터 30일까지 형태가 이지러집니다(成). 반대로 음을 위주로 하는 후천의 관점으로 보면 달은 16일부터 30일까지 형태가 이지러지고(生). 음력 1일부터 15일까지 모양이 형성됩니다(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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