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 북 창시자 | 페이스북이 비싸게 인수한 회사들.. 갑자기 창업자들이 자기 회사 포기하고 욕하며 퇴사한 이유!! 21123 투표 이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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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엘리엇 저커버그(영어: Mark Elliot Zuckerberg, 1984년 5월 14일 ~)는 미국의 프로그래머 및 인터넷 사업가이며, 기업 메타(과거: 페이스북)의 설립자이자 현재 CEO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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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저커버그 – 나무위키:대문

마크 저커버그가 탄생시킨 페이스북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매체와 사회, 정치 등 21세기 현대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시대적 패러다임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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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6/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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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페이스북(영어: Facebook, 약칭: 페북, FB)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멘로파크에 본사를 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이다. 2004년 2월 4일에 마크 저커버그(영어: Mar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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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1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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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주커버그 이야기 – 페이스북 창시자 – 네이버 블로그

미국 하버드대를 중퇴하고 26세에 전 세계 부자 순위 35위에 오른 페이스북(Facebook)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는 날 때부터 인터넷 환경에서 자란 ‘디지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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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9/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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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저커버그 – 해시넷 위키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 1984년 5월 14일 ~ )는 미국 페이스북(Facebook)의 창업자 겸 CEO이다. 2018년 블록체인 및 암호화폐 사업에 관심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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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iki.hash.kr

Date Published: 2/2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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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의 시작, 사업가 관점에서 바라보기 – 브런치

2019년 5월 기준 기업가치 5000억 달러 (한화 약 590조원)인 FACEBOOK(페이스북)은 “소셜 네트워크”라는 말을 창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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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runch.co.kr

Date Published: 11/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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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은 겹경사 맞았는데 저커버그가 웃지 못하는 까닭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한 비즈니스 사이트가 조사한 ‘직원이 뽑은 최고의 CEO 순위’에서 처음으로 10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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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joongang.co.kr

Date Published: 9/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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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47) –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

그의 이러한 정보공개의 열정과 해커 정신이 녹아든 작품이 바로 페이스북이다. 페이스북은 2004년 2월 공식적으로 오픈을 한 뒤, 하버드 대학의 인맥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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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venturesquare.net

Date Published: 8/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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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book 창시자인 Mark Zuckerberg의 약력

페이스북을 발명하다. 하버드에서 Zuckerberg의 룸메이트에는 문학 및 역사 전공인 Chris Hughes가 포함되었습니다. 연극 전공인 빌리 올슨; 그리고 경제학을 공부하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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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greelane.com

Date Published: 7/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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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페이스 북 창시자

  • Author: 이슈텔러 issueTe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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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6. 24.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BnYWwMhxHwM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마크 엘리엇 저커버그(영어: Mark Elliot Zuckerberg, 1984년 5월 14일 ~)는 미국의 프로그래머 및 인터넷 사업가이며, 기업 메타(과거: 페이스북)의 설립자이자 현재 CEO이다.

생애 [ 편집 ]

저커버그는 미국 뉴욕주 화이트플레인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에드워드(Edward)는 치과 의사였으며 어머니 캐런(Karen)은 정신과 의사였다.[1] 그는 세 명의 여자 형제들인 랜디(Randi), 도나(Donna), 애리얼(Arielle)과 함께 뉴욕주 돕스페리에서 자랐다.[1] 그는 유대교 교육을 받았으며, 13세 때는 유대교 성인식의 일종인 바르와미츠바 또한 거쳤다.[2][3] 그러나 성인이 된 이후로는 그는 스스로를 무신론자라고 밝혀 왔다.[3][4]

저커버그는 중학교 시절 프로그래밍을 시작했다. 1990년(16세)대에는 아버지로부터 아타리 BASIC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웠으며, 이후 1995년(21세) 경에는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데이비드 뉴먼(David Newman)으로부터 개인 지도를 받았다. 또한 1990년대 중반에 집 근처 머시 칼리지의 대학원에서 관련 수업을 청강하기도 했다.[1] 그는 프로그래밍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특히 통신 관련 툴을 다루거나 게임하는 것을 좋아했다. 아버지 사무실 직원들의 커뮤니케이션을 돕는 애플리케이션을 고안하기도 했으며, 리스크 게임을 PC 버전으로 만들기도 했다.

아즐리 고등학교를 다닐 당시 그는 서양고전학(classics) 과목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 이후 3학년 때 필립스 엑세터 아카데미로 학교에서 지냈다.[5][6][7] 그는 고등학교 재학 중에 인텔리전트 미디어 그룹(Intelligent Media Group)이라는 회사에 고용되어 시냅스 미디어 플레이어(Synapse Media Player)를 제작했다. 이것은 인공지능을 사용하여 사용자의 음악 감상 습관을 학습할 수 있도록 만든 뮤직 플레이어로, 슬래시닷에 포팅 되었으며[8] PC 매거진에서 5점 만점에 3점의 평가를 받았다.[9] 마이크로소프트와 AOL이 시냅스 플레이어를 사들이고 저커버그를 고용하겠다는 제안을 해왔으나, 그는 이를 거절하고 2002년 9월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는 대학에서 컴퓨터 과학 및 심리학을 전공으로 택했으며, 알파 엡실론 파이라는 유태인 학생 클럽에 가입하였다.[1][10][11] 대학에서 그는 평소 일리아드와 같은 서사시의 구절을 곧잘 인용하는 것으로도 유명했다.[5]

2학년 때 참가한 사교 파티에서 그는 중국계 여학생인 프리실라 챈(Priscilla Chan)을 만났으며, 이후 두 사람은 연인 관계가 되었다.[1] 현재 의대생인 챈은 2010년 9월 팰로앨토의 저커버그가 세들어 살고 있는 집으로 옮겨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둘은 5월 19일 깜짝 결혼을 했다.[1] 2010년 9월 현재 저커버그는 챈과의 중국 여행[12]과 중국에서의 사업 확장[13]을 위해 개인 교사로부터 중국어를 배우고 있다.

Hackers: Heroes of the Computer Revolution(1984)의 저자인 스티븐 레비는 2010년 저커버그에 대해 “그는 확실하게 스스로를 해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라고 썼다.[14][15] 저커버그는 “무언가를 개선하기 위한 목적에서라면, 그것을 깨뜨리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는 견해를 밝혔다.[15][16][17] 페이스북은 매 6~8주마다 열리는 해커톤이라는 행사를 주관하기도 했었다. 이것은 일종의 협업 프로젝트 이벤트로, 참가자들은 하룻밤동안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구현할 수 있다.[15] 페이스북이 행사 중에 필요한 모든 음악과 음식, 맥주를 제공하며, 저커버그 자신을 비롯한 많은 페이스북 직원들도 이 행사에 직접 참여했다.[17] 저커버그는 스티븐 레비와의 인터뷰에서, 이 행사가 하룻밤만에도 아주 훌륭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하며[17][18] 이것이 오늘날 페이스북을 이끌어가는 아이디어의 하나이자 자기 자신의 가장 중요한 개성이기도 하다고 말했다.[15][19]

대중 잡지인 배니티 페어는 저커버그를 2010년 “정보화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에 올렸다.[20] 2009년 이 잡지의 동일한 랭킹에서 저커버그는 23위를 차지했었다.[21] 영국의 잡지 뉴 스테이츠먼에서 매년 실시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50인을 선정하는 투표에서는 2010년 저커버그가 16위에 올랐다.[22] 2010년 타임이 뽑은 ‘올해의 인물’에도 선정되었다.[23]

저커버그는 적록색약이 있어, 파란색을 가장 잘 인식한다고 알려져 있다. 파란색은 페이스북의 주색상이기도 하다.[24]

학력 [ 편집 ]

아즐리 고등학교 (전학) (~2000년)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 (졸업) (2000년~2002년)

하버드 대학교 컴퓨터과학, 심리학 (중퇴) (2002년~2004년)

각주 [ 편집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페이스북(영어: Facebook, 약칭: 페북, FB)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멘로파크에 본사를 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이다. 2004년 2월 4일에 마크 저커버그(영어: Mark Zuckerberg)가 하버드대 동문이자 룸메이트인 사람들과 함께 웹사이트를 개설했다.[3] 2020년 6월 기준으로, 월 실 사용자(Monthly Active Users)의 수는 약 27억 명이었다. 전 세계 인구 3명 가운데 한 사람이 페이스북을 사용한다고 할 수 있다.[4]

“Compete.com”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인터넷 사용자들 가운데 가장 많이 이용되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라고 한다.[5]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에서는 페이스북을 이번 10년 최고 리스트에 올리면서 “페이스북이 있기 전에는 어떻게 우리가 전 애인의 근황을 알아보고, 우리 동료의 생일을 기억하고, 친구를 놀렸을까?”라고 언급했다.[6] Quantcast가 밝힌 바로는, 매달마다 1억 3890만 명의 새로운 미국 방문자들이 있다고 한다.[7] 소셜 미디어 투데이에 따르면 2010년 4월 기준 미국 인구의 41.6%가 페이스북 계정을 갖고 있다고 한다.[8]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이스북의 성장은 일부 지역에서 제동이 걸렸으며, 미국과 캐나다에서만 700만 명의 활동 사용자들이 사라진 상태이다.[9] 2012년 9월, 마크 저커버그는 회사의 시장가치 하락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이러한 감소를 “실망적”이라고 표현했다.[10] 2015년 8월 기준으로, 페이스북의 월 활동 사용자 및 일 활동 사용자는 전년 동기 대비 13%와 17%가 증가해 14억 9천만 명과 9억 6천 8백만 명을 기록했다. 아울러, 모바일 월 활동 사용자와 모바일 일 활동 사용자 수치는 13억 1천만 명과 8억 4천 4백만 명으로, 전체 월 활동 사용자의 65% 가량이 매일 페이스북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전 세계에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인구인 30억 명의 절반 가량이 페이스북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5년 2분기 월 활동 사용자 기준).

“페이스북”이라는 이름은 대학교에서 학기 초에 학교 측에서 학생들에게 서로를 알아가라고 주는 책에서 비롯된다. 페이스북은 현재 만 14세 이상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게 되어 있다.[11] 한국어판은 2009년 1월에 시작되었다.

역사 [ 편집 ]

마크 저커버그

하버드 대학교의 학생이었던 마크 저커버그는 2학년 때 2003년 10월 28일에 페이스매시(Facemash)라는 이름으로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그 뒤 2004년 2월 4일에 “더페이스북”(TheFaceBook)이라는 이름으로 thefacebook.com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12] 2004년 6월에는 캘리포니아주의 팰러앨토로 회사를 옮겼다.[13] 그 뒤 페이팔 공동 창립자 피터 틸로부터 첫 투자를 받았다.[14] 그 뒤 페이스북은 facebook.com 도메인 이름을 2005년에 200,000 달러를 주고 구매한 뒤 이름에서 The를 빼어 지금의 이름 “페이스북”으로 자리잡게 되었다.[15]

처음에는 하버드 대학교의 학생들만 이용할 수 있게 하였다. 3월에는 스탠퍼드, 컬럼비아, 예일까지 영역이 확대되었으며,[16] 그 이후 아이비리그 대학교들, 뉴욕 대학교,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점차 미국과 캐나다의 대부분 대학교로 영역이 확대되었다. 2005년 9월에는 고등학교에까지 영역이 확대되었다.[17] 2005년 말까지 2,000개 이상의 대학과 25,000개 이상의 고등학교의 네트워크가 생성되었다. 그 이후로는 몇몇 기업에까지 회원 영역을 넓혔으며, 마침내 2006년 9월에는 13살 이상의 전자 우편 주소를 가진 사용자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게 되었다.[16] 하지만 실제로 13세 이하 이용자가 750만 명, 10세 이하 이용자가 500만 명 존재한다고 2011년 5월 컨슈머 리포츠(Consumer Reports)에 의해 보고된 바 있다.[18] 또한 페이스북은 2006년 야후로부터 10억 달러에 인수 제안을 받았으나 이를 거부하고, 벤처 캐피털로부터 2억 5천만 달러를 투자받기도 하였다.

설립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2008년 포브스 선정 세계의 억만장자에 15억 달러의 자산으로 785위에 올랐으며,[19] 동시에 유산 상속이 아닌 자수성가형 억만장자 중 최연소로 기록되었다.[20]

2012년 2월 1일, 페이스북은 기업공개를 신청하였으며, 상장을 통해 50억 달러의 자금을 조달할 계획을 밝혔다.[21]

2015년 12월 2일 페이스북의 창립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딸의 출산 소식을 알리며 딸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를 썼다. 이 편지에는 그들 부부가 ‘첸 저커버그 이니셔티브’를 설립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현 시가 약 450억 달러(52조 원)인 그의 페이스북 지분 중 99%를 살아있는 동안 첸 저커버그 이니셔티브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22]

주요 기능 [ 편집 ]

뉴스피드 [ 편집 ]

사용자의 친구, ‘좋아요’ 한 페이지의 소식을 시간순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뉴스피드에 나타나는 소식의 가장 주요한 조건은 친구 관계 및 ‘좋아요’이지만 이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아니며 페이스북에서 자체 개발한 복잡한 알고리즘에 의해 소식이 뉴스피드에 게시될지의 여부와 뉴스피드상의 배치 순서가 결정된다.

타임라인 [ 편집 ]

사용자가 게시하는 사진, 글 등을 실시간, 시간순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뉴스피드에 있는 대부분의 소식은 사용자의 친구들이 각자의 타임라인에 올린 것들이다. 원래 명칭은 ‘Wall(담벼락)’이었다. 2011년 페이스북 키노트에서 마크 주커버그는 개인의 삶을 역사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타임라인의 개념을 발표하였다. 사용자는 페이스북에서 제공하는 형식에 따라 자신의 중요한 경험을 타임라인에 남길 수 있으며 이를 다른 사용자가 연도별 인덱스에 따라 빠르게 볼 수 있다.

스토리 [ 편집 ]

사용자가 게시하는 사진,투표, 글 등을 24시간 동안 보여주는 공간이다. 스토리는 페이스북, 페이스북 메신저 검색창 아랫칸에 있으며 페이스북 메신저와 페이스북에서 할 수 있다. 24시간동안 공개적으로 올려져있다가, 24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내려진다. 내려진 스토리는, 설정에서 스토리 저장 기능을 사용하면 예전 스토리를 볼 수 있다.

페이지 [ 편집 ]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가장 큰 차이점 중 하나는 트위터는 회사 이름, 사물 등 다양한 주제를 이름으로 하여 가입하는 것이 가능하지만 페이스북은 가입시 성별, 생년월일을 반드시 입력해야 하며 이는 사람만이 가입할 수 있다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페이스북 내에서 기업체의 홍보 등을 하기 위해서는 페이지를 만들어야 한다. ‘좋아요’ 수나 게시글 수 등의 일정 기준을 넘는 페이지들은 사용자의 프로필에 등록 가능하며 @기호를 이용하여 하이퍼링크를 생성할 수 있다.

그룹 [ 편집 ]

그룹은 페이스북 내의 공동체이다. 그룹은 한개의 타임라인을 가지고 있으며 그룹에 속한 사람은 그룹에 사진과 파일(최대 25메가)까지 올릴 수 있다. 그룹은 공개, 비공개, 비밀 그룹으로 나뉜다.

그룹의 관리자 [ 편집 ]

그룹 생성자는 자동으로 관리자가 된다. 그룹 생성시 관리자는 그룹의 비공개 또는 공개 여부를 설정할 수 있다. 공개관리자는 다른 사용자를 관리자로 임명할 수 있으며, 가입 신청을 승인하고, 그룹의 게시물을 삭제할 수 있다. 그룹의 커버 사진, 그룹 설명 등의 설정을 변경할 수 있다. 그러나 그룹을 생성한 사람을 제외할 수 없다.

그룹의 종류 [ 편집 ]

그룹원이 250명 미만의 그룹의 경우 관리자가 그룹의 공개 범위를 자유롭게 할 수 있으나 그룹원이 250명 이상이 될 경우 그룹이 비공개나 비밀로 전환될 경우 다시 공개 그룹으로 전환할 수 없다.

공개: 그룹에 가입되어 있지 않더라도(제3자) 그룹의 게시물과 그룹에 속한 사용자를 볼 수 있다. 다만 그룹에 게시물을 올리기 위해서는 그룹에 가입하여야 한다.

비공개: 그룹의 존재 자체와 그룹에 속해있는 일부 사용자를 제3자가 확인 가능하나 그룹의 게시물과 전체 그룹원을 보기 위해서는 그룹에 가입하여야 한다.

비밀: 그룹의 존재자체를 제3자가 확인할 수 없다. 따라서 그룹에 속해있는 사람의 초대와 초대에 대한 승인을 통해서만 그룹에 가입이 가능하다.

검열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페이스북 검열 입니다.

페이스북 검열을 하는 국가가 일부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등의 공산권 국가이다.

비판 [ 편집 ]

Facebook Detox와 같은 페이스북 비평가들은 페이스북이 나르시즘을 조장하고, 시간을 뺏는다는 이유로 강박상태에 있게 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페이스북은 사용자의 프라이버시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해 미국 연방무역위원회(FTC)가 조사를 진행하였으며, 페이스북이 프라이버시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례를 찾아내었다. 그 결과 FTC와 페이스북은 20년간 외부 기관의 정기적인 감사 등의 내용을 포함한 합의안에 합의하였다.[23]

직원들이 페이스북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사내 페이스북 접속을 차단하기도 한다.[24]

일부 국가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해외 웹사이트를 차단하는데, 페이스북은 중화인민공화국[25] 베트남,[26] 이란,[27] 우즈베키스탄,[28] 파키스탄[29] 시리아,[30] 방글라데시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간헐적으로 차단된다. 종교, 정치적인 이유에서 해당 국가에서 유해하다고 판단되는 내용이 게재된다는 점 등이 그 이유이다.

페이스북은 소스 코드와 지적 재산권에 대한 손해 배상과 관련하여 소송 절차를 밟기도 했다.[31]

한편 2016년 5월 페이스북은 뉴스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보수성향의 기사를 의도적으로 적게 노출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하여 저커버그는 뉴스 편집과정의 문제를 인정하고 이를 시정하기로 약속하였다.[32]

2016년 대선과 관련하여 미국 페이스북 가입자 5천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는 폭로로 인해 페이스북의 주가는 하루만에 7%가 급락했다.[33]

영향 [ 편집 ]

매체의 영향 [ 편집 ]

2011년 4월에 페이스북은 마케팅 담당자와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독립된 방송 제작사와 프리랜서를 네트워크로 구성해 프로그램을 제작, 공급하는 사업이다.)의 상품 홍보를 위한 새로운 포털 사이트로 진출했다. 회사는 몇몇 영국의 광고 선두주자들 집단과 페이스북의 고위 간부들을 2010년 2월에 “influence’s summit”에서 만남으로써 페이스북을 내보냈다. 페이스북은 지금 《트루 블러드》, 《아메리칸 아이돌》과 《탑 기어》[34]의 판촉 활동을 한다. 워싱턴 포스트[35], 파이낸셜 타임스[36] 그리고 ‘ABC뉴스’[37]와 같은 뉴스와 매스컴은 모인 페이스북의 팬 정보를 그들의 기사와 함께 싣기 위한 다양한 인포그래픽(정보를 시각적으로 나타낸 것)과 표(도표, 그래프)를 만드는 데 사용하였다.[38]

사회적 영향 [ 편집 ]

페이스북은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적인 삶과 사람들의 활동에 영향을 미쳤다. 많은 휴대 기기에서 사용 가능하므로 페이스북은 사용자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친구들, 친척들, 그리고 어느 곳에 있든지 인터넷 접속만 가능하다면 만날 수 있는 다른 아는 사람들과 연락할 수 있게 한다. 또한, 공통된 관심사를 가지고 있거나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그룹과 다른 페이지로 결합시킬 수 있고, 소식이 끊긴 가족 구성원들과 친구들을 다시 만나게 하는 사이트로 알려져 있다.[39] 존 왓슨과 20년 동안 그가 찾아다닌 딸의 어떤 한 재결합 실화가 있다. 왓슨이 딸의 페이스북 프로필을 찾은 후에 그들은 만나게 되었다.[40] 아버지와 딸의 다른 재결합 실화는 아버지 토니 맥노튼과 딸 프랜시스 심슨 사이에 일어난 일인데 그들은 거의 48년 동안이나 서로를 보지 못하였다.[41]

다른 사람들은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서로 의사소통을 하지 않기 때문에 페이스북이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경향을 야기한다고 하는 반면에 특정 사람들만이 지속적으로 친구들, 친척들과 만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사회적인 삶에만 유용하다고 어떤 사람들은 논쟁을 벌인다. 어떤 연구 결과는 페이스북이 관계 문제의 원인이라고 하였다. 몇몇 보도 기사는 페이스북 사용이 이혼과 배신의 빈도를 높인다고 하였지만 그 주장은 다른 (신문, 방송의) 해설자들에 의해 이의가 제기되었다.[42][43]

사업 확장으로 직원 확충을 발표한 뒤 1년 사이에 직원을 48%나 더 뽑았다. 단기 투자의 증가로 기업 수익은 감소했지만 오큘러스 등 신사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는 만큼 대박이 터지면 SNS에 머물 기업이 아니라는 관측이다.[44]

정치적 영향 [ 편집 ]

페이스북과「#jan25」의 해시태그 사용을 호소하는 플래카드를 들고있는 이집트의 데모 참가자. (2011년 2월 1일 촬영)

2010년부터 2011년에 걸쳐 튀니지에서 발생한 재스민 혁명에서는 정보 교환을 위해 페이스북이 큰 역할을 했다. 또한 이에 영향을 받아 일어난 2011년 이집트 혁명에서는 시위의 결과로, 2월 11일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군부에 권력을 이양하고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45]

한편에서는 페이스북은 실명 등록제이기 때문에 정부의 추궁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명으로 등록한 운동가들에게 실명을 요구하고[46] 어쩔 수 없이 실명공개를 한 운동가가 당국에 체포 당하는 등 운동에 재를 뿌리는 사태도 일어났다.[47]. 이런 제약 때문에 실제 운동에선 종래의 입소문이나 전단지가 주력이었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가 ‘데모를 조직한 것이 아니다’라는 지적도 있다.[48]

같이 보기 [ 편집 ]

각주 [ 편집 ]

마크 주커버그 이야기 – 페이스북 창시자

목 차

1. ‘페이스북 창시자’ 마크 주커버그 CEO

2. 페이스북 이름의 유래

3. ‘페이스북 이펙트’ – 서평

4. 저커버그 – 재산 절반 이상 ‘기부서약’

5. ‘한국판 저커버그’ 나올 수 있나

(주커버그, 저커버그의 표기는 원문에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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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6세 억만장자, 이건희 회장보다 더 부자

재미로 만든 온라인앨범 전세계 5억명이 열광

26세에 억만장자 대열에

마크 주커버그 프로필

세간에선 페이스북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 마크 주커버그가 불과 26세의 나이에 떼돈을 벌었다는 것에만 관심을 둔다. 하지만 그가 어떻게 부자가 됐는지 알려면 그의 꿈을 보라.

`개방, 사람을 연결하고 그들에게 중요한 것을 공유하는 데 보탬되기, 혁명, 정보 흐름, 미니멀리즘.` 페이스북에 적힌 그의 신조다.

2012년쯤 상장될 예정인 페이스북의 현재 가치는 줄잡아 230억달러. 지분 30%를 가진 주커버그 재산은 69억달러(약 7조8000억원)에 달한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미디어 제왕 루퍼트 머독보다도 많다.

2012년 페이스북 상장 때쯤 이건희 회장보다도 더 많은 부를 거머쥘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주커버그는 현재 캘리포니아주 팰러앨토에 있는 방 네 칸짜리 단독주택에서 중국인 여자친구와 함께 산다. 그것도 5500달러짜리 월세다.

미국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공개된 그의 생활은 우리나라 온라인게임 업체 젊은이들과 다를 게 없다. 하루에 16시간씩 회사에 머물면서 일하지만 일벌레는 아니다. 티셔츠에 청바지, 운동화 차림으로 출근하며 패스트푸드를 즐겨 먹고 직원들과 맥주를 즐겨 마신다.

주커버그는 다른 젊은 부자들과는 다르다. 세계 10대 젊은 억만장자(더 타임스 선정)의 돈벌이는 주로 부동산과 에너지 사업이다. 반면 그중 최고인 주커버그의 사업은 `재미`다. 페이스북은 학생들과 교직원 사진을 묶어 발행하던 책을 온라인으로 옮겨놓고 실시간으로 안부를 확인하게 만든 것으로 시작했다. 처음엔 하버드대 기숙사 여대생 인기투표에 활용돼 파문을 일으켰지만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는 폭발적이었다. 결국 스탠퍼드대, 예일대, 13세 이상으로 점차 가입 대상이 늘면서 급성장했다. 급기야 올해 7월엔 전 세계 가입자(최근 30일간 1회 이상 로그인한 사람)가 5억명을 돌파했다.

주커버그는 11세 때 486컴퓨터를 선물 받고는 `멍청이를 위한 C++`란 책을 사서 혼자 소프트웨어 공부를 시작했다. 중학교 때는 라틴어 수업에서 배운 로마사를 바탕으로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주인공으로 한 게임을 만들었다.

컴퓨터공학과 심리학을 전공한 주커버그는 자신을 `해커(hacker)`, 즉 더 나은 것을 위해 기존의 것을 파괴하길 주저하지 않는 사람으로 규정한다. 그에게 2005년 MTV(7500만달러), 2006년 야후(10억달러)의 인수 제안 거절은 당연한 것이었다. 뒤이어 나온 미디어그룹 바이어컴, 뉴스코퍼레이션의 인수 제안도 마찬가지였다. 가격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나와 내 동료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우리가 개방된 정보 흐름(open information flow)을 창조하고 있다는 점”이라면서 “거대 기업이 소유한 미디어기업은 우리에게 매력적인 생각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커버그는 2007년 빌 게이츠 MS 회장이 페이스북 지분 1.6% 인수 대가로 2억4000만달러를 투자한다는 제안은 받아들였다. 그해 페이스북은 외부개발자에게 응용프로그램 개발 플랫폼(API)을 공개했다. 소위 `F8` 전략이다. 이는 MS의 윈도와 마찬가지다. MS와 페이스북은 그래서 닮은꼴이다. 이런 개방성 덕분에 페이스북은 이듬해 SNS 최강자였던 마이스페이스를 앞질렀다.

주커버그가 `제2의 빌 게이츠`인 건 그가 젊은 날 컴퓨터를 이용해 떼돈을 번 하버드 자퇴생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자선사업을 펼치는 빌 게이츠처럼 `사회운동`을 펼친다. 수익과 공익을 동시에 추구하는 신문산업을 페이스북의 롤모델로 삼기도 했다. 그는 지난 9월 미국 뉴저지주 뉴워크시의 고등학교에 1억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물론 논란도 있다. 최근 개봉된 영화 `소셜네트워크`에서 주커버그는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훔치는 파렴치한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이는 다소 과장된 면이 없지 않다. 페이스북을 다룬 책 `페이스북 이펙트`의 저자 데이비드 커크패트릭은 페이스북을 `근본적인 투명성에 복무하는 일종의 사회운동`으로 본다.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개인과 사회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 페이스북 성공 DNA는 `융합`

= 페이스북 창업자는 마크 주커버그 외에 크리스 휴스(27), 더스틴 모스코비츠(26), 에두아르도 세버린(26) 등 4명이다.

대부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미국 400대 억만장자 대열에 합류했다. 주커버그 재산이 69억달러(65위)로 가장 많고 모스코비츠와 세버린의 재산도 각각 14억달러(290위), 11억5000만달러(356위)에 달한다. 특히 세버린은 주커버그보다 8일 뒤에 태어나 최연소 억만장자가 됐다. 명단엔 빠져 있지만 페이스북 지분 12%를 가진 휴스의 재산도 28억달러에 달한다.

하버드대 동창생인 이들이 최연소 부자가 된 원동력은 무엇일까? 이들의 행적을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주커버그는 컴퓨터공학과 심리학을 전공했다. 고등학교 시절엔 라틴어에 심취했다. 휴스는 문학과 역사를 전공했으니 말할 것도 없다. 여기에 경제학을 공부한 세버린과 모스코비츠가 가세했다.

페이스북이 탄생할 수 있었던 건 주커버그의 공학적 재능이 하버드대 동료들이 가진 인문사회학적 토양과 `융합`한 덕분이다. 페이스북 창업자에게 중요한 건 부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였다.

지금은 네 명의 창업자 중 주커버그만 남고 페이스북을 모두 떠났다.

휴스는 세계지식포럼에 와서 이렇게 말했다. “주커버그를 빼곤 창업자 모두가 다른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미국인 핏속에 있는 기업가정신이 가만히 있는 걸 참지 못하게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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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mk.co.kr(2010. 10. 22일자/박대민 기자)

[그것은 이렇습니다]

2. 페이스북 이름은 어디서 유래됐나?

Q. 페이스북 이름은 어디서 유래됐나?

세계 최대 인터넷 친구 찾기 서비스인 페이스북(Facebook)의 이름이 어디서 나왔는지 언론 기사마다 제각각인데 그 유래가 궁금합니다. – 경기 고양시 독자 함초롬씨

A. ‘더(The) 페이스북’에서 ‘페이스북’으로 바꿔… 창업자, 유래 언급한 적 없어,

창업자 모교인 엑시터高 학생수첩과 하버드大기숙사 인명록 등 두 가지 說

페이스북을 창업해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가 된 마크 주커버그(Zuckerberg·26) 사장은 지금까지 페이스북이라는 이름을 어디서 따왔는지 단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어, 정확한 사실은 확인된 바 없습니다. 하지만 미 언론 등에 따르면 페이스북의 유래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

하나는 주커버그 사장이 페이스북이라는 이름을 미국 명문 사립고등학교인 엑시터(Exeter)의 신입생들에게 나눠주는 학생 교범에서 따왔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주장은 하버드대학을 중퇴한 주커버그 사장이 하버드대학에서 나눠주는 학생 인명록의 이름에서 페이스북을 따왔다는 것입니다 .

주커버그 사장은 2000년부터 2002년까지, 고등학교 2학년과 3학년 과정을 엑시터에서 보냈습니다. 엑시터는 매년 학생들에게 전체 학생들의 사진과 이름, 전화번호, 학교 수칙 등이 적힌 수첩(The Photo Address Book)을 나눠줍니다. 학생들은 이를 페이스북(The Facebook)이라고 부릅니다 .

당시 학생들은 이 수첩을 통해 친구를 찾고, 얼굴을 확인하고, 누가 누구랑 한 방을 쓰는지 등 정보를 확인한다고 합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주커버그가 고등학교 3학년 때인 2002년 엑시터는 이 수첩을 온라인에 올렸습니다. 당시 웹주소는 http://student.exeter.edu/facebook이었습니다. 이미 2002년에 ‘페이스북’이라는 이름이 온라인에 소개된 것이죠 .

반면, 주커버그 사장과 페이스북의 성공 스토리를 담은 ‘ 페이스북 이펙트’라는 책에서는 주커버그 사장이 ‘페이스북’이라 불리던 하버드대 학부 기숙사의 학생 인명록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합니다 .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주커버그는 페이스북을 창업하면서 처음에는 ‘더 페이스북'(The Facebook)이라고 했다가 정관사 ‘더(The)’를 뺐습니다. 그리고 www.facebook.com 이라는 웹주소를 20만달러(한화 약 2억4000만원)를 주고 샀습니다. 이후 페이스북은 창업 6년 만에 전 세계적으로 5억5000만명이 가입했고, 현재 230억달러의 시장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주커버그 사장은 현재 세계 부자 순위 35위에 올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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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chosun.com(2010. 12. 14일자/최우석 기자 [email protected])

3. 온·오프라인이 함께 움직이는 페이스북 – 서평

번역서 및 원서 표지

페이스북 이펙트

데이비드 커크패트릭 지음|임정민·임정진 옮김|에이콘|522쪽|1만7900원

하버드대생 ‘얼짱’ 투표 등 처음엔 ‘장난’에서 시작∙∙∙ 기술 또한 이미 있었던 것

그럼에도, 성공할 수 있던 건 實名 에 입각한 즐거움 때문

미국 하버드대를 중퇴하고 26세에 전 세계 부자 순위 35위에 오른 페이스북(Facebook)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는 날 때부터 인터넷 환경에서 자란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의 영웅이다. 그를 모르면 지금 젊은이들의 가슴을 끓어오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 없으며, 그를 알면 젊은이들이 만들어갈 미래를 미리 알 수 있다.

장난기로 가득 찬 천재 주커버그가 ‘열린 세상’을 위해 창업한 페이스북은 불과 6년 만에 전 세계적으로 5억5000만명이 가입했고 현재 230억달러의 시장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중국과 인도에 이은 세 번째 ‘인구대국’을 사이버 세계에 건설한 셈이다. 5년 후면 페이스북이 구글을 뛰어넘는 가치를 갖게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지난 4월 페이스북 창업자이자 CEO인 마크 주커버그가 미 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기술개발자회의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주커버그는 이날 다른 웹사이트 게시물을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손쉽게 공유할 수 있는 기술을 선보였다. /AFP연합뉴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그 설명을 ‘포천’지 기술 전문기자 출신의 커크패트릭이 맡았다. 커크패트릭은 주커버그가 페이스북을 창업한 초기부터 관계를 맺어왔다는 점에서 적임자다.

어려서부터 컴퓨터광( 狂 )이었던 주커버그가 하버드대에 입학해 관심을 가졌던 것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소프트웨어 만들기’였다. 대학 2학년생이던 2003년 그가 일주일 만에 뚝딱 만든 웹사이트 ‘코스 매치(Course Match)’는 다른 학생들이 신청한 수업시간표를 토대로 자신이 들을 수업을 고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과목명을 클릭하면 누가 그 수업을 수강하는지 볼 수 있고, 특정 학생을 클릭하면 그 사람이 무슨 수업을 듣는지 보여주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수백명의 하버드 학생들이 이용자로 가입했다. 이미 페이스북에 가입한 사람이라면 ‘코스 매치’에 페이스북의 원형이 고스란히 들어 있음을 감지했을 것이다.

‘코스 매치’의 성공에 고무된 주커버그는 곧바로 ‘페이스매시(Facemash)’라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두 명의 여학생 혹은 두 명의 남학생을 나란히 올려 누가 ‘얼짱’인지를 투표하는 프로그램으로 8시간 만에 완성했다. 여기에 올린 사진들은 ‘페이스북’이라 불리던 하버드대 학부 기숙사의 학생 인명록에서 가져왔다. 불법까지는 아니어도 규정위반이었다. 이후 주커버그가 기존의 기술과 아이디어들을 통합해가면서 수없이 부딪히게 되는 불법( 不法 ) 논란도 이미 대학생 시절에 시작되고 있었다.

저자는 주커버그의 성격을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좀 고집스러운 데다 뭔가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했다. 추진하기 전에 허락을 구하지도 않았다. 규정을 어기려고 했다기보다는 그저 규정이나 허락 따위에 무관심했다.” 페이스북에 대학생 특유의 반항 정신이 녹아들어 있는 것도 창업자의 성격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사실 페이스북에 이르는 기술 자체를 주커버그가 만든 것은 아니다. 그가 아이디어를 실행하려 할 때 마침 그가 필요로 하는 기술들은 완비돼 있었다. 저자는 “그에게는 천재성과 열정 이 외에 운도 따랐다”고 말한다. 그가 대학에서 이런 ‘장난’을 치고 있을 때 이미 미국에는 데이트 상대나 옛 친구를 찾아주는 사이트가 유행하고 있었다. 초보적인 ‘소셜네트워크’의 탄생이었다. 책에 언급된 한국의 ‘싸이월드’처럼 블로그도 폭발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제압하고 페이스북 세상이 열린 것일까? 그 이유는 실명( 實名 )과 즐거움이라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페이스북은 철저하게 실명에 입각해 있다. 그것이 역설적으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었다. 그런 범위 안에서 페이스북은 묘한 즐거움을 준다. “페이스북은 인간에게 존재하는 원초적 본능을 토대로 한다. 누구나 소속 본능, 약간의 허영심, 어느 정도의 관음증( 觀淫症 )을 갖고 있다.”

게다가 기존의 이메일·문자메시지·UCC·블로그 등 개인들이 활용하던 거의 모든 것을 한곳에 모았다. 물론 이 과정에서 시련도 컸다. “주커버그는 아이디어를 도용한 혐의로 여러 차례 기소됐다. 사실 페이스북은 지난 40여년간 다양한 아이디어가 진화해 온 유산이다.” 이후 주커버크가 회사를 설립해 CEO로 성장해가는 모습보다는 그것이 바꿔놓은 세상의 모습이 저자의 주된 관심이다.

페이스북은 온·오프라인의 간격을 좁혀놓았다. “페이스북은 이제 전 세계적으로 불평분자나 행동주의자들이 모이고 시위모임이 처음 싹트는 장소가 됐다.” 디지털 민주주의와 시민운동의 새로운 근거지로 폭넓게 자리 잡아가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저자는 페이스북이 가진 공감( 共感 ) 창출력이 이런 흐름을 만들어낸 것으로 본다.

그러나 저자는 페이스북의 보다 중요한 영향을 세계화와 결부짓는다. “세계화는 반드시 전 세계 모두와 친구가 돼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과거보다 훨씬 넓은 의미에서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다는 뜻이다.”

저자는 페이스북이 자유의 매체이면서 동시에 미국적인 서비스임을 지적한다. 나라마다 자유를 누리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는 감옥에 있는 마피아 두목을 지지하는 페이스북 그룹이 생겨나자 한 국회의원은 웹사이트 서비스가 범죄행위를 ‘선동하거나 정당화하는’ 내용을 삭제토록 강제하는 법안을 올렸다. 법안은 통과되지 못했다.” 실은 페이스북 정책에 증오나 폭력을 선동하거나 불법인 내용은 금지하도록 돼 있다.

모바일 통신 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한국에서도 페이스북의 영향력은 폭발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그것이 축복이 될지 재앙이 될지를 점쳐보기 위해서라도 읽어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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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chosun.com(2010. 12. 4일자/이한우 기자 [email protected])

4-1. 26세 저커버그 재산 절반 기부

美 억만장자 17명, 빌 게이츠 ‘기빙 플레지’ 또 동참

올 8월 미국 억만장자 40명이 재산의 절반 이상을 내놓기로 서약한 데 이어 또다시 미국 부자들이 집단으로 자선 대열에 동참했다. 이번에 재산을 내놓기로 약속한 사람들은 미국의 억만장자 17명.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창립자를 비롯해 스티브 케이스 아메리카온라인(AOL) 공동창업자, 기업사냥꾼으로 유명한 억만장자 투자자 칼 아이컨, ‘정크본드의 황제’ 마이클 밀컨 등이 재산 기부 서약에 서명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9일 보도했다.

이에 따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와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주도하는 ‘기빙 플레지(Giving Pledge)’에 재산 기부를 서약한 억만장자는 모두 57명으로 늘어났다. 기빙 플레지는 부자들을 대상으로 재산의 절반 이상을 생전에 또는 사후에 사회에 기부하도록 권하는 자선 캠페인이다.

올해 26세로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추정한 재산 가치가 69억 달러에 이르는 저커버그 창립자는 기부 서약을 마친 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기부하겠다고 하지만 왜 기다려야 하느냐”며 “사업에서 상공한 젊은 사람들은 인생의 좀 더 이른 시기에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그 재산이) 자선 활동에 쓰이는 효과를 직접 볼 수 있는 큰 기회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리 준비한 동영상 인사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 지금 (자선 활동을) 시작하는 게 좋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저커버그와 함께 페이스북을 창업한 더스틴 모스코비치도 재산 기부 서약에 서명했다고 WSJ는 전했다.

케이스 AOL 공동창업자는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우리 재산이 우리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단지 우리는 재산을 관리하는 ‘책임 있는 집사(responsible steward)’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억만장자 투자자 밀컨 역시 “나는 이번 일이 30, 40대인 사람들에게 좀 더 이른 시기에 자신의 창의성을 자선 활동에 쓰도록 권하는 요청이라고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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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donga.com(2010. 12. 10일자/성동기 기자 [email protected])

동영상 ▶ http://reuters.donga.com/bbs/main.php?tcode=10103&no=14158

4-2. 주커버그(페이스북 CEO), 재산 절반 이상 ‘기부서약’

게이츠·버핏 주도운동 동참

“페이스북 원래 내 아이디어” 윙클보스 형제에 또 피소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CEO가 자기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기로 공개 약속하는 ‘기부서약’ 운동에 동참했다. 그의 재산은 무려 69억달러.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 주도하는 기부서약 운동은 세계 각지의 갑부들로부터 “생전 또는 사후에 최소한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겠다”는 약속을 받는 캠페인이다. 주커버그는 “기업경영에서 성공을 거둔 젊은 세대는 일찌감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그 자선적 노력의 파장을 지켜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

‘기부서약’측은 8일 주커버그 외에 AOL 공동 설립자인 스티브 케이스, ‘공격적 인수합병의 귀재’ 칼 아이칸, ‘정크본드(고위험 채권)의 황제’ 마이클 밀켄 등 총 17명이 새로 서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지난 6월 시작된 기부서약 운동 참여자는 총 57명으로 늘어났다.

한편 주커버그는 또다시 페이스북 창립을 둘러싼 법적 분쟁에 휘말렸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7일 자신들이 페이스북의 아이디어를 처음 제공했다고 주장하는 쌍둥이 캐머런·타일러 윙클보스 형제가 주커버그를 상대로 두번째 소송을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윙클보스 형제는 이 사안과 관련, 지난 2008년 6600만달러의 합의금을 이미 받은 바 있다. 그러나 형제는 주커버그가 당시 페이스북의 평가액을 허위로 책정해 합의금을 턱없이 적게 지급했다고 주장하며 또다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페이스북 측은 윙클보스 형제가 직접 산출해 요구한 합의 금액을 고스란히 줬는데 이제 와서 더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합의자의 뒤늦은 후회(settler’s remorse)”라며 일축했다. 페이스북의 현재 가치는 410억달러(약 47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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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chosun.com(2010. 12. 10일자/박승혁 기자 [email protected])

[사설]

5-1. 실패 용납 안되는데 `한국판 저커버그` 나올 수 있나

이명박 대통령은 어제(2011. 1. 10.) 라디오 · 인터넷 연설을 통해 “스무 살 때 페이스북을 창업해 세계적인 소셜 네트워크 기업으로 키운 마크 저커버그가 우리나라에서도 나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에 기대를 거는 우리 젊은이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정부가 예전부터 한국판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를 키우겠다고 공언했던 것과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젊은이들의 창의와 도전정신을 말했지만 그럴 만한 창업환경을 우리가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이 대통령은 국내에서 가능성을 보이는 젊은이들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면서 그 중 한 명인 신현성씨의 말을 인용했다. 소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공동 구매서비스를 제공하는 그는 ” 정부가 지원금을 주기보다는 벤처 인프라를 만들어 젊은이들에게 열정을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부는 새겨 듣지 않으면 안된다. 이 대통령은 1인 창조기업을 위해 사무공간과 경영컨설팅을 무료로 제공하는 등 다양한 지원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강조했지만 열정은 정부 지원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열정을 심어주려면 도전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는 실패를 바라보는 시각부터 달라지지 않으면 안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실패를 하면 책임 묻기에 바쁘고, 정부가 연구예산을 지원했을 때도 실패했을 경우 반드시 불이익이 따른다. 패자부활 같은 것은 꿈도 못꾸는 상황에서 젊은이들의 창의와 도전을 말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좋은 창업 · 기업환경을 만들려면 정부가 지원을 하나 더 해주기보다 규제를 하나라도 더 풀어주는 게 필요하다. 미국이 IT 흐름을 주도하고, 융합 신사업 분야의 창업이 쏟아지는 배경에는 그만큼 기업 규제가 적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는 새로운 사업분야가 나타날 때마다 칸막이식 법과 규제를 만들기에 바쁘다. 젊은이들의 창의와 도전정신을 요구하기 전에 그에 걸맞은 창업환경과 문화를 만들어주기 위해 발상부터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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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hankyung.com(2011. 1. 11일자/사설)

[취재여록]

5-2. 저커버그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왜 아직도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선 육성책을 쓰면 된다’는 생각에만 빠져있을까요. 그래선 안된다는 것을 벤처 버블로 충분히 경험했는데 말이죠.”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0일 아침 라디오 연설에서 ‘한국판 저커버그’를 키우겠다는 의지를 언급한 것에 대한 한 벤처기업인의 소감이다. 이 대통령은 모바일 분야 1인 창조기업 지원책을 확대하겠다는 뜻을 내비쳤지만, 정작 벤처기업인들의 반응은 냉랭했다. “아이를 망치려면 돈을 주면 된다죠.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을 망치려면 정부가 기업에 자꾸 돈을 주면 됩니다. ” 한 벤처투자자는 정부의 벤처 지원책을 우려하며 이렇게까지 말했다.

과거 벤처 버블 시기를 되돌아보면 정부의 과도한 지원 정책은 오히려 독이 됐다. 이제는 정부의 육성책이 나오면 가장 두려워하는 게 기업인들이다. 한글과컴퓨터 대표를 맡았던 전하진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 겸임교수는 트위터에 “역설적으로 정부가 지원을 하지 않으면 더 강한 기업이 나올 수도 있다”며 “정부가 직접 창업자금을 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벤처인들은 정부 정책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기업인들이 원하는 것에는 귀를 막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마치 ‘돈 주고 판도 깔아주고 지원해 줄 테니까 잘들 커봐’라는 식이라는 지적이다.

벤처인들의 바람은 의외로 소박했다. 직접적인 자금 지원을 바라거나 정부가 대규모 애플리케이션(앱 · 응용프로그램) 장터 같은 것을 만들어 주길 원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쓸 데 없는 규제, 행정절차를 해결해 달라는 게 대부분이었다. 이러닝 업체로 등록하는 데 사무실 평수를 따지고, 인터넷에 가입하려면 온갖 개인 정보를 다 넣어야 하고, 앱스토어에 게임 카테고리도 없는 한국 정보기술(IT) 업계의 환경에 답답해 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도 화제가 됐던 주차장 지붕탓에 게임 등록을 하지 못한 한 창업자의 일화가 대표적 사례 아닐까.

벤처인들의 인식은 명확했다. 성공한 어떤 기업인도 정부 지원을 받아서 해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치열하게 시장에서 경쟁하고 수익을 내기 위해 열심히 일한 결과일 뿐이라는 얘기다. 저커버그는 정부 지원을 받아 성공하지 않았다. 저커버그는 결코 만들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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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의 시작, 사업가 관점에서 바라보기

영화 ‘소셜네트워크’ 미국포스터

2019년 5월 기준 기업가치 5000억 달러 (한화 약 590조원)인 FACEBOOK(페이스북)은 “소셜 네트워크”라는 말을 창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영화는 페이스북의 초기 모습과 성장하면서 얽힌 사람들간에 소송에 대해 다루고 있다.

(왼쪽 부터) 마크주커버그, 숀파커, 왈도 세브린, 디브야 나렌드라, 타일러 윙클보스 쌍둥이 형제

요즘 기업가들의 영화나 책을 보고 있는데, 맥도날드의 레이크록도 그렇고 돈이 얽히게 되니 함께 사업을 이끌어나가려고 했던 사람들끼리 고소하고 변호사 대동해서 싸우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런 모습을 보니 참 마음이 불편하다. 사업을 잘하기 위해서 저렇게 까지 해야하나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지금의 모습이 안됐을것 같기도 하다.

뭔가 찜찜한 기분은 마지막에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사업가의 관점에서 이 영화에서 주목할 점을 몇가지 뽑아 봤다.

1. 사업 아이디어의 중요함, 소유권 문제

타일러 윙클보스 형제는 끝내 아이디어를 훔쳐갔다는 것으로 소송을 걸었고, 6,500만달러 (한화 700여 억원) 를 받아내고 비밀유지계약서를 작성했다. 누군가의 아이디어를 훔쳤다는 것은 후에 엄청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나의 아이디어를 점검하라.

2. 경영권 리스크 관리

마크 주커버그는 너무나도 빨리 회사를 키우고 싶은 마음에 타일러 윙클보스 형제의 아이디어를 뺏은 것도 모자라, 초기 투자금을 모두 댔던 왈도 세브린까지 지분을 30%에서 0.03%로 줄어들게 계약서를 작성하게 만들었다. 추후에 들어온 투자자의 지분을 왈도 세브린의 지분에서 모두 빼간 것이다. 왈도 세브린은 결국 그것을 되찾기 위해 소송을 걸었다. 그리고 결론은 합의금을 주고 마무리 했다고 하는데, 왈도 세브린의 입장에서 본인의 CFO 자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이다. 사업을 키워가며 조심해야 할 부분.

3. 회사의 가치, 어떻게 측정해야 하는가?

중간에 빅토리아 시크릿 대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꽤 비싼 가격에 회사를 매각했지만, 추후에 그 회사는 명품 브랜드로 성장하면서 그는 후회를하고 금문교에서 자살했다고 한다. 그는 본인의 회사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다. 나의 사업, 나의 회사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4. 타켓을 좁게 잡고 시작해라.

페이스북은 초기에는 ‘더페이스북’이라는 이름으로 하버드 내에서만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일단 하버드 대학생만 만족하는 서비스를 만든 것이다. 그렇게 좁은 타겟을 선점하고 그 안에서 시스템이 어느정도 완성되게 되면, 비슷한 부류의 확장은 어렵지 않게 된다. 다른 대학들로 뻗어나가게 되고 전 연령대로 뻗어나가고, 전세계적으로 뻗어나가게 될 수 있었다. 시작할 때 타켓은 좁게 설정하라.

5. 결과와 과정, 무엇이 중요한가?

마크 주커버그가 어떤 결정을 내렸던 현재 페이스북의 가치는 어마어마 하기 때문에, 그의 선택은 모두 옳았던것일까? 영화를 본 후 가장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결과가 중요한가? 과정이 중요한가? 영화에 나온 마크 주커버그는 오로지 사업을 성장시키고 싶은 마음으로 선택들을 이어온 것 같다.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페이스북은 존재했고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다. 그의 선택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생각해보자. 선택은 창업자 본인의 몫이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https://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64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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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은 겹경사 맞았는데 저커버그가 웃지 못하는 까닭

회사는 승승장구하는데 최고경영자(CEO)는 위기인 곳.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업인 페이스북이다. 페이스북은 최근 미국 정부와의 반(反)독점 소송에서 승리한 데 이어, 시가총액 1조달러(약 1127조원)를 돌파하는 등 겹경사를 맞았다. 상장 10년이 채 되지 않아 시총 10배 성장의 성과를 달성한 것은 이례적이다. 하지만 성장을 거듭해온 페이스북에 잠재적 위험 요소로 꼽히는 존재가 그 CEO인 마크 저커버그(37)의 리더십이다. 그는 2004년 페이스북을 창업한 이래로 쭉 CEO 자리를 지켜왔다.

지난 21일(현지시간) 미국 CNBC 등은 세계 비즈니스 전문 사이트 글래스도어를 인용해 “직원이 뽑은 최고의 CEO 100위 목록에 저커버그가 들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 순위는 매년 직원들이 직접 점수를 매겨 결정된다. 저커버그는 지난 2013년 1위에 올랐지만 점차 순위가 떨어지더니 올핸 처음으로 리스트 밖으로 사라졌다. 포브스는 “저커버그의 인기 하락은 비즈니스 리더들에게 중요한 교훈이 된다”고 지적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와 미국 대통령 선거 등을 겪은 지난해와 올해 저커버그에 대한 지지도가 특히 낮아졌다. 포브스는 “온라인 서비스 사용자들이 페이스북에 대한 신뢰를 잃은 점”을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꼽았다. 저커버그가 이에 대한 적절한 대책이나 반응을 내놓지 못했다는 취지다. 지난해 9월 마케팅 전문기업 인사이더 인텔리전스가 실시한 디지털 플랫폼 신뢰도 설문조사에서 페이스북은 꼴찌를 차지했다.

사용자가 신뢰를 잃은 요인 중 하나는 끊임없이 발생한 개인정보 유출 문제다. CNN에 따르면 지난 4월에도 페이스북 이용자 5억명의 이름·거주지·연락처 등이 유출됐다. 심지어 여기엔 저커버그 본인의 정보도 포함됐다고 한다. 당시 페이스북은 진정성 있는 사과나 대책 없이 “유출된 정보는 오래된 자료이고, 지난 2019년에 바꾼 보안 체계와 관련된 문제”라는 입장만 밝혔다. 이번 뿐 아니라 지난 2016년에도 870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돼 50억달러(약 5조6350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됐고, 2019년에도 2억6700만명의 정보가 새어나갔다.

내부에서 제기된 불만 중 하나는 저커버그의 ‘제왕적 리더십’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저커버그가 의결권 지분의 약 60%를 통제하기 때문에 이사회는 감독보단 자문위원처럼 일한다”고 지적했다. 저커버그 혼자서 페이스북의 알고리즘 구성, 개인정보 설정, 메시지 도달 범위 등을 결정할 수 있는 구조라는 거다. 포브스는 “세계적으로 SNS에 대한 규제 움직임이 확산하는 상황에서 저커버그가 주변의 조언을 귀담아듣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1984년 유대계 미국인 집안에서 태어난 저커버그는 의사 부모 아래서 유복하게 자랐다. 어려서부터 컴퓨터에 큰 흥미를 보였고, 12세 땐 환자가 도착하면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할 정도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하버드대에 진학해 친구들끼리 소통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이게 곧 페이스북의 전신이 됐다. 하버드대를 자퇴한 뒤 2004년 회사를 설립하고 본격 사업가의 길을 걸었다. 올해 페이스북의 시가총액은 미국 기업 중 애플·마이크로소프트(MS)·알파벳(구글의 모기업)·아마존에 이어 다섯 번째에 올랐다.

김선미 기자 [email protected]

거의 모든 인터넷의 역사 (47) –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주커버그

세계 최고 소셜 웹 서비스의 태동

타임지는 주커버그를 2008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사람의 하나로 선정하였다. 1984년 생으로 당시 만 23세에 불과했던 이 청년은 포브스에서 선정하는 400명의 갑부에도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어렸을 때부터 천재로 불리웠던 그는 뉴욕 인근의 치과의사 아버지와 정신과 의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컴퓨터에 미쳐서 독학으로 프로그래밍을 배우고, 고등학교를 다닐 때 Phillips Exeter Academy에서 이후 페이스북에서 CTO(Chief Technology Officer)로 일하게 되는 애덤 단젤로(Adam D’Angelo)와 함께 우리에게도 익숙한 윈앰프(Winamp)의 플러그-인을 제작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만든 플러그-인을 보고, AOL와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큰 회사에서 일자리를 제안했지만, 이들은 대학에 진학을 하기로 결심했다. 단짝인 단젤로는 칼텍(Caltech)에 진학하면서 캘리포니아로 떠났고, 주커버그는 하버드 대학에 입학을 하였다.

하버드 대학에 들어가서 페이스북의 전신이 되는 인맥 사이트를 만들면서 그는 일약 기숙사의 스타가 되었다. 그렇지만, 일찍 가지게 된 아이도 길러야 했고 또한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주커버그는 과감히 하버드를 중퇴하고 비즈니스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그가 본격적인 비즈니스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페이스북은 세계최대의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로서의 입지를 굳건히 하게 되었다.

하버드 대학의 문제아

페이스북의 시작은 그렇게 순탄하지 않았다. 하버드 대학에서는 다른 학교들과 달리 학생들의 기본적인 정보와 사진 등이 들어있는 디렉토리(이를 보통 페이스북이라고 한다)를 제공하지 않았다.

이에 주커버그는 하버드 대학에 페이스북을 만들기를 원했지만, 대학 측에서는 사생활 정보를 모으는 것을 반대하면서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마크 주커버그는 페이스북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는데, 이는 그가 3년의 시간을 보낸 Phillips Exeter Academy에서 전교생들을 위한 페이스북의 제작에도 관여했고, 이러한 학생들 디렉토리와 소셜 네트워크가 얼마나 중요한지 오프라인에서부터 체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호락호락 넘길 주커버그가 아니었다.

주커버그는 대담하게도 어느날 밤 하버드 대학의 전산시스템을 해킹해서 학생들의 기록을 빼낸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페이스매쉬(Facemash)라는 간단한 사이트를 제작하고서 학부 학생들의 사진들을 쌍으로 올리면서,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드는 지를 고르게 하였다. 불과 4시간 만에 450명이 이 사이트를 방문했고, 22,000 번이나 사진들이 사람들에게 노출되었다. 하버드 대학에서는 이 사태를 뒤늦게 파악하고, 주커버그의 인터넷 접속을 차단했다.

이 사건으로 주커버그는 학교당국과 동료 학생들에게 정중하게 사과를 하였지만, 마음 속으로는 자신이 잘못된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특히, 하버드 측의 학생정보에 대한 비공개 정책은 어떤 방식으로든 깨뜨리고 싶어하였다. 그의 이러한 정보공개의 열정과 해커 정신이 녹아든 작품이 바로 페이스북이다. 페이스북은 2004년 2월 공식적으로 오픈을 한 뒤, 하버드 대학의 인맥을 중심으로 그 세를 여러 대학들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늘린 뒤, 2005년 실리콘 밸리에 입성하면서 거침없는 성장을 지속하였다.

10억달러의 매수 제안을 거절하다.

2007년말 테크크런츠(TechCrunch)에서는 야후에서 페이스북을 평가한 자료를 공개한 적이 있다. 여기에 따르면, 페이스북은 2010년에 매출 9억 7천만 달러, 그리고 4800만명의 사용자를 가질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는 매출규모는 비슷하게 예측했지만, 사용자 수는 10배 이상 뛰어넘었다. 2010년 6월, 페이스북은 전세계 회원 수 5억 명을 돌파했다).

당시 뉴욕 타임즈의 보도에 따르면 이 추정치를 바탕으로 야후가 페이스북에 10억 달러에 이르는 매수 제안을 했다고 한다. 10억 달러는 명실공히 억만장자(billionaire) 클럽에 들어가는 액수로, 이때 이미 주커버그는 억만장자로 인정받게 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엄청난 제안을 받고도 그는 야후의 제안을 거절했다. 물론 현재 페이스북은 당시 야후의 제안을 훌쩍 뛰어넘는 가치로 평가되고 있으며, 독자적으로 기업공개를 하고 계속 성정해 나가고 있기에 결과적으로는 당시의 결정이 옳은 결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의 결정은 단순히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페이스북 이전의 최고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유명한 마이스페이스는 뉴스코퍼레이션의 5억 8천말 달러의 매수 제안을 받아들였고, 유튜브 역시 구글에 15억 달러에 팔렸다.

보통의 기업가라면 이 정도 액수의 오퍼가 들어온다면 거의 틀림없이 받아들이지만, 약관의 대학생같은 사업가는 과감하게 이러한 제안을 거절하였다. 사실 이는 대단히 위험할 수도 있는 도박이다.

페이스북 이전의 유명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였던 프렌드스터(Friendster)는 2002년 구글이 제시한 3억 달러의 매수제안을 거절하였는데, 이는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10억 달러에 이르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제안을 거부한 프렌드스터는 인터넷 환경의 역동적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실상 그 가치가 엄청나게 하락하고 말았다. 사실 페이스북도 이런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법이 없었다. 당시 시스코는 소셜 네트워킹 플랫폼을 기업고객들에게 판매하는 Five Across라는 회사를 인수했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왈롭(Wallop)이라는 서비스를, 로이터는 펀드매니저와 트레이더들을 위한 자신들만의 페이스북과 같은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앞으로도 더욱 많고 다양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등장하지 말라는 법이 없었고, 아직 초창기로 볼 수 있는 회사에게는 얼마든지 더욱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그렇다면, 주커버그의 이러한 결정은 단순히 페이스북을 더욱 비싸게 팔기를 바란 것일까? 주커버그에 따르면 그의 비전이 다른 곳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했다고 한다.

장기간의 계획을 가지고 구축하고 있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그 이외의 모든 것들은 고려하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은 공동창업자들과 함께 서로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고, 동시에 오픈 마인드와 협업정신, 정보의 공유를 생명으로 하는 소셜 네트워크가 세계를 훨씬 살만한 곳으로 만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시작한 기업이었다. 아직 젊고 이상을 좇는 그들에게는 야후에서 제시한 엄청난 돈은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이후 페이스북은 성장을 거듭하여, 구글의 가장 잘 나가는 인재들이 들어오면서 다른 창업자들의 입지는 축소가 되었지만 당시 페이스북과 마크 주커버그의 머리 속에는 그다지 돈이 중요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Facebook 창시자인 Mark Zuckerberg의 약력

마크 주커버그(Mark Zuckerberg, 1984년 5월 14일 ~ )는 전 하버드 컴퓨터 공학 학생으로 몇 명의 친구들과 함께 2004년 2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셜 네트워크인 Facebook을 시작했습니다. Zuckerberg는 또한 세계에서 가장 어린 억만장자라는 구별을 가지고 있습니다. 2008년 24세의 나이로 2008년에 달성했습니다. 그는 2010년 타임지 에서 “올해의 인물”로 선정되었습니다. Zuckerberg는 현재 Facebook의 CEO이자 사장입니다.

요약 정보: 마크 주커버그 알려진 : 가장 어린 억만 장자, Facebook의 CEO, 사장 및 창립자

출생 : 1984년 5월 14일 뉴욕 화이트 플레인스

부모 : 에드워드 주커버그와 카렌 주커버그

학력 : Phillips Exeter Academy, 하버드 재학

출판 작품 : CourseWork, Synapse, FaceMash, Facebook

수상 : 타임지 선정 2010 올해의 인물

배우자 : Priscilla Chan (m. 2012)

자녀 : Maxima Chan Zuckerberg, August Chan Zuckerberg

초기 생활

Mark Zuckerberg는 1984년 5월 14일 뉴욕의 White Plains에서 치과의사 Edward Zuckerberg와 그의 아내인 정신과 의사 Karen Zuckerberg 사이에서 태어난 네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Mark와 그의 세 자매인 Randi, Donna, Arielle은 Hudson 강 동쪽 강둑에 있는 부유하고 조용한 도시인 New York Dobbs Ferry에서 자랐습니다.

Zuckerberg는 중학교 때 아버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컴퓨터를 사용하고 프로그래밍하기 시작했습니다. Edward는 11세의 Mark Atari BASIC 을 가르쳤고 소프트웨어 개발자 David Newman을 고용하여 아들에게 개인 교습을 제공했습니다. Mark가 13살이던 1997년에 그는 가족을 위해 ZuckNet이라는 컴퓨터 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이 네트워크를 통해 집에 있는 컴퓨터와 아버지의 치과에 있는 컴퓨터가 1998년에 나온 AOL의 Instant Messenger의 원시 버전인 Ping을 통해 통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Monopoly의 컴퓨터 버전과 로마 제국을 배경으로 한 Risk 버전과 같은 컴퓨터 게임도 개발했습니다.

조기 컴퓨팅

2년 동안 Zuckerberg는 공립 고등학교 Ardsley를 다녔고 Phillips Exeter Academy로 전학하여 고전 연구 와 과학에서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그는 수학, 천문학 및 물리학에서 상을 받았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Zuckerberg는 프랑스어, 히브리어, 라틴어 및 고대 그리스어를 읽고 쓸 수 있었습니다.

Exeter의 시니어 프로젝트에서 Zuckerberg는 인공 지능을 사용하여 사용자의 청취 습관을 학습하고 다른 음악을 추천하는 Synapse Media Player라는 음악 플레이어를 작성했습니다. 그는 AOL에 그것을 온라인에 올렸고 수천 개의 긍정적인 리뷰를 받았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AOL은 모두 시냅스를 100만 달러에 인수하고 마크 주커버그를 개발자로 고용하겠다고 제안했지만, 그는 둘 다 거절하고 2002년 9월 하버드 대학교에 등록했습니다.

하버드 대학교

Mark Zuckerberg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심리학과 컴퓨터 과학을 공부했습니다. 2학년 때 그는 사용자가 다른 학생들의 선택에 따라 수업 선택을 결정하고 스터디 그룹 을 구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Course Match라는 프로그램을 작성했습니다 .

그는 또한 캠퍼스에서 누가 가장 매력적인 사람인지 알아내는 프로그램인 Facemash를 발명했습니다. 사용자는 동성 사진 두 장을 보고 “가장 인기 있는” 사진을 선택하고 소프트웨어는 결과를 편집하고 순위를 매겼습니다. 그것은 놀라운 성공이었지만 하버드의 네트워크를 마비시켰고, 사람들의 사진이 허락 없이 사용되었고, 캠퍼스에서 사람들, 특히 여성 단체에 모욕적이었습니다. 저커버그는 프로젝트를 종료하고 여성단체에 사과하며 컴퓨터 실험이라고 생각했다. 하버드는 그를 보호관찰했다.

페이스북을 발명하다

하버드에서 Zuckerberg의 룸메이트에는 문학 및 역사 전공인 Chris Hughes가 포함되었습니다. 연극 전공인 빌리 올슨; 그리고 경제학을 공부하던 더스틴 모스코비츠(Dustin Moskovitz). 그들 사이에서 일어난 대화 스튜가 저커버그가 작업하고 있던 많은 아이디어와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하고 향상시켰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Mark Zuckerberg는 Harvard에 있는 동안 Harvard 학생에 대한 실제 정보를 기반으로 하는 신뢰할 수 있는 디렉토리가 되도록 의도된 응용 프로그램인 TheFacebook을 설립했습니다. 그 소프트웨어는 결국 페이스북의 2004년 2월 출시 로 이어졌다 .

결혼과 가족

하버드 대학교 2학년 때 저커버그는 의대생 프리실라 챈을 만났습니다. 2010년 9월 저커버그와 찬은 동거를 시작했고 2012년 5월 19일 결혼했다. 현재 Chan은 소아과 의사이자 자선가입니다. 이 부부는 Maxima Chan Zuckerberg(2015년 12월 1일 출생)와 August Chan Zuckerberg(2017년 8월 28일 출생)라는 두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Mark는 그가 무신론자라고 밝혔지만 Zuckerberg 가족은 유대인 혈통입니다. 2019년 기준, 마크 저커버그의 개인 자산은 600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됩니다. 그와 그의 아내는 과학, 교육, 정의 및 기회의 목표를 지원하기 위해 기술을 활용하기 위해 자선 단체인 Chan Zuckerberg Initiative를 설립했습니다.

Mark는 현재 Facebook의 사장 겸 CEO이며 캘리포니아 멘로 파크에 있는 회사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다른 회사 임원으로는 COO Sheryl Sandberg와 CFO Mike Ebersman이 있습니다.

저커버그 인용구

“사람들에게 공유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함으로써 우리는 세상을 더 투명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목소리를 내고 사람들에게 권한을 부여하면 시스템은 일반적으로 정말 좋은 위치에 있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하는 역할은 사람들에게 그 권한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웹은 지금 정말 중요한 전환점에 있습니다. 최근까지 웹의 기본은 대부분의 사물이 사회적이지 않고 대부분의 사물이 귀하의 실제 신원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웹을 향해 구축하고 있습니다. 기본값은 소셜입니다.”

키워드에 대한 정보 페이스 북 창시자

다음은 Bing에서 페이스 북 창시자 주제에 대한 검색 결과입니다. 필요한 경우 더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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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페이스북이 비싸게 인수한 회사들.. 갑자기 창업자들이 자기 회사 포기하고 욕하며 퇴사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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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를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페이스북이 비싸게 인수한 회사들.. 갑자기 창업자들이 자기 회사 포기하고 욕하며 퇴사한 이유!! | 페이스 북 창시자,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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