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체 가바나 | 돌체앤가바나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전 방문해서 다 입어만 봤어요! 57 개의 정답

당신은 주제를 찾고 있습니까 “돌체 가바나 – 돌체앤가바나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전 방문해서 다 입어만 봤어요!“? 다음 카테고리의 웹사이트 ppa.maxfit.vn 에서 귀하의 모든 질문에 답변해 드립니다: https://ppa.maxfit.vn/blog/. 바로 아래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작성자 김나영의 nofilterTV 이(가) 작성한 기사에는 조회수 198,625회 및 좋아요 4,963개 개의 좋아요가 있습니다.

돌체 가바나 주제에 대한 동영상 보기

여기에서 이 주제에 대한 비디오를 시청하십시오. 주의 깊게 살펴보고 읽고 있는 내용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세요!

d여기에서 돌체앤가바나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전 방문해서 다 입어만 봤어요! – 돌체 가바나 주제에 대한 세부정보를 참조하세요

•본 영상은 유료광고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김나영의 #입어만볼게요
올해 초, 새로 오픈한 #돌체앤가바나 의 플래그십에 초대를 받아
2021 가을/겨울 여성 컬렉션, #DGNextChapter 를 입어만 보고 왔습니다.
돌체앤가바나 공식 카카오톡 채널: http://pf.kakao.com/_RfMRs
돌체앤가바나 공식 온라인 스토어: https://www.dolcegabbana.com/ko/
*돌체앤가바나 서울 스토어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로 414
– 매장 정보
롯데백화점 동탄점 (여성) 031 8036 3594
롯데백화점 광주점 (여성) 062 221 1168
롯데백화점 부산본점 (여성) 051 810 4067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월드타워점 (남성) 02 3213 2538
현대백화점 본점 (남성) 02 3438 6252
롯데백화점 본점 (남성) 02 772 3366
신세계백화점 대전점 (남성) 042 607 8209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남성) 051 745 1587
–––\r
\r
• Channel\r
\r
인스타그램: \r
http://www.instagram.com/nayoungkeem

돌체 가바나 주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하세요.

돌체 앤 가바나 – 나무위키

도메니코 돌체(Domenico Dolce)와 스테파노 가바나(Stefano Gabbana) … 돌체 앤 가바나와 다른 브랜드와의 차별점은 디테일에 있다.

+ 여기에 자세히 보기

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7/19/2021

View: 3759

돌체앤가바나 / 남성 컬렉션 – FARFETCH

독특한 디테일과 시선을 사로잡는 프린트의 조화는 돌체앤가바나(Dolce & Gabbana) 고유의 독보적인 스타일이죠. 이탈리아 레이블 특유의 젊고 세련된 감각으로 완성한 …

+ 여기를 클릭

Source: www.farfetch.com

Date Published: 11/20/2021

View: 2026

DOLCE & GABBANA 돌체앤가바나 – 무신사 스토어

DOLCE & GABBANA (돌체앤가바나) 는 도미니코 돌체 (Domenico Dolce) 와 스테파노 가바나 (Stefano Gabbana) 두 사람 이름의 앞 자를 딴 ‘Dolce&Gabbana’ 라벨을 탄생 …

+ 더 읽기

Source: www.musinsa.com

Date Published: 5/26/2022

View: 5317

돌체앤가바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돌체앤가바나(Dolce & Gabbana)는 이탈리아의 고급 산업 의류 회사이다. … 이 회사는 이탈리아 디자이너 도메니코 돌체와 스테파노 가바나가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시작 …

+ 여기에 자세히 보기

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12/12/2021

View: 8620

Clothing for men & women | Dolce&Gabbana Online Store

Dolce & Gabbana Online Store, shop on the official store exclusive clothing and accessories for men and women. Worldwe delivery.

+ 여기에 자세히 보기

Source: www.dolcegabbana.com

Date Published: 7/12/2021

View: 1318

돌체엔가바나 : 롯데ON

[돌체앤가바나] [빈티지] 여성 크로스백 돌체엔가바나 돌체엔가바나. 상품비교 찜하기. 롯데홈쇼핑 무료배송. [돌체앤가바나] [빈티지] 여성 크로스백 돌체엔가바나 …

+ 여기에 보기

Source: www.lotteon.com

Date Published: 10/21/2021

View: 4253

돌체앤가바나 브랜드관 | 올리브영

돌체앤가바나의 다양한 제품들을 만나보세요! … BEST돌체앤가바나 라이트블루 오드트왈렛 50ml. 97,000원40%58,200원 … 돌체앤가바나 돌체 피오니 오드퍼퓸 30ml.

+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Source: m.oliveyoung.co.kr

Date Published: 2/3/2021

View: 215

돌체&가바나(Dolce&Gabbana) – 네이버 블로그

패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파트너십을 보여준 도메니코 돌체(Domenico Dolce, 1958.9.13~)와 스테파노 가바나(Stefano Gabbana, 1962.11.14~)는 재능 …

+ 더 읽기

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1/10/2021

View: 4277

주제와 관련된 이미지 돌체 가바나

주제와 관련된 더 많은 사진을 참조하십시오 돌체앤가바나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전 방문해서 다 입어만 봤어요!. 댓글에서 더 많은 관련 이미지를 보거나 필요한 경우 더 많은 관련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돌체앤가바나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전 방문해서 다 입어만 봤어요!
돌체앤가바나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전 방문해서 다 입어만 봤어요!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돌체 가바나

  • Author: 김나영의 nofilterTV
  • Views: 조회수 198,625회
  • Likes: 좋아요 4,963개
  • Date Published: 2021. 9. 29.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bhnVrMtcFZs

돌채앤가바나 남성 컬렉션

파페치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10% 할인 혜택을 받아보세요

파페치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특별한 프로모션부터 맞춤형 신상품과 재입고 알림까지 이메일로 받아보세요.

여성 컬렉션 남성 컬렉션 뉴스레터 수신 설정 이메일 SMS 구독하기

구독 시, 파페치의 개인 정보 보호 정책에 동의하시게 됩니다. 이용을 원치 않으실 경우, 파페치 이메일 하단의 구독 취소 링크를 통해 설정을 변경하실 수 있습니다.

돌체앤가바나(DOLCE & GABBANA)

DOLCE & GABBANA (돌체앤가바나) 는 도미니코 돌체 (Domenico Dolce) 와 스테파노 가바나 (Stefano Gabbana) 두 사람 이름의 앞 자를 딴 ‘Dolce&Gabbana’ 라벨을 탄생시키며, 밀라노 지중해의 여인 이미지를 바탕으로 남성과 여성의 조화를 도시풍 세련미로 선보이는 첫 여성 컬렉션을 밀라노에서 출시하면서 돌체 앤 가바나가 시작됩니다. 아이러니 속에서 독특한 조화를 찾아 내며, 관습과 인습에 얽매이지 않고, 그에 대한 도전과 혁신을 꿈꾸는 반항적 럭셔리 브랜드입니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돌체앤가바나(Dolce & Gabbana)는 이탈리아의 고급 산업 의류 회사이다.[1] 이 회사는 이탈리아 디자이너 도메니코 돌체와 스테파노 가바나가 이탈리아의 밀라노에서 시작했다. 2005년까지 그들의 매출액은 5.97억 유로였다.[2]

회사 역사 [ 편집 ]

초기 역사 [ 편집 ]

도메니코 돌체는 1958년 8월 13일 시실리의Polizzi Generosa에서 태어났다. 스테파노 가바나는 1962년 11월 14일 밀란에서 태어났다. Dolce는 여섯 살의 나이에 처음으로 자신의 옷을 디자인과 재단하기 시작했다.[3] 이 두 사람은 돌체가 가바나가 일하던 의류 회사에 전화해서 취업에 대한 문의를 했을 때 전화상으로 처음 만났다. 회사에 취직이 된 후, 가바나는 돌체를 돌보기 시작했고 새로운 디자인을 스케치하는 법 뿐 아니라 의류 회사에서 디자인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 지를 가르쳐 주었다. 돌체가 취업이 된 직후, 가바나는 18개월의 의무 군 복무에 징집되었지만, 그가 돌아온 후1982년에 둘은 디자이너 컨설팅 회사를 창립했다.[4]

그들은 함께 일하는 동안, 항상 따로 대금 청구서를 발부하곤 했는데 결국 경리가 일을 더 쉽고 비용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대금 청구서를 함께 발부할 것을 권하게 되었다. 그 이후 둘은 Dolce and Gabbana라는 이름으로 고객들에게 청구서를 발부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이후 그들이 개발한 디자인 사업의 이름의 되었다.[3] 이 디자인 듀오의 첫 번째 컬렉션은 1985년 10월에 밀란 패션 주간의 일부로 다섯 개의 다른 새 이탈리안 상표와 함께 선보였다.[4] 둘은 모델에게 지불할 돈이 없었기 때문에,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들을 모델을 치장할 돈도 없었고 그래서 그들의 모델들은 옷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단순히 그들의 개인적인 아이템을 걸쳤다. 그들은 또한 돌체가 집에서 가져온 침대 시트를 무대 커튼으로 사용했다.[5]

이 디자인 듀오는 그들의 첫 번째 컬렉션에 “실제 여성”이라는 라벨을 붙였는데, 부분적으로는 무대 위에 세운 모델이 아마추어 현지 여인이었기 때문이다.[4] 그들의 첫 번째 켈렉션에서의 판매량은 너무나 실망스러워서 가바나는 두 번째 컬렉션을 위해 주문한 직물을 취소했다. 하지만 이 둘이 크리스마스 동안 시실리를 방문했을 때 돌체의 가족이 그들의 비용을 지불하는 데 도움을 제안했고, 직물 회사는 취소 공지를 시간 내에 받지 못했기 때문에 밀란으로 돌아온 그들을 위해 직물이 준비되어 있었다.[3] 그들은 1986년에 그 다음 컬렉션을 보여주었고 같은 해에 그들의 첫 상점을 열었다.[4] 마이클 그로스는 1992년 인터뷰에서 그들의 세 번째 컬렉션에 대해 썼는데, “이들은 소수의 이탈리아 패션 편집자들에게만 알려진 비밀이었습니다. 그들의 몇 안되는 모델들은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스크린 뒤에서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컬렉션을T-셔츠-면 및 신축성 있는-실크 조각 변신이라고 불렀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컬렉션에서의 그들의 옷은 한 작품이 옷으로 입을 수 있는 일곱 가지 방법에 대한 설명이 딸려 있었는데, 이는 착용자가 벨크로와 똑딱 단추를 사용해서 옷의 형태를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6]

그들의 네 번째 컬렉션이 이탈리아 패션 시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첫 번째 것이었다. 이 컬렉션에서 돌체는 자신의 시실리안 기원에 의지했다. 컬렉션의 광고 선전은 시실리에 있는 사진작가 페르난도 시아나가 1940년대 이탈리아 영화에 영감을 받아 흑백사진으로 찍었다. 그들은 다섯 번째 컬렉션에서도 계속해서 이탈리아 영화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영화감독 루치노 비스콘티의 작업과 그의 작품 “표범”을 이용했다.[4]

그들의 네 번째 컬렉션 중 한 작품은 패션 언론이 “시실리안 드레스”라고 이름 붙였는데, 작가 핼 루벤스타인에 의해 당시까지 디자인된 가장 중요한 100개의 옷 중 하나로 명명되었다. 이것이 그 브랜드에 대한 이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여겨진다. 루벤스타인은 2012년 이 작품에 대해 “시실리안 드레스는Dolce & Gabbana의 정수, 이 브랜드의 의류에 대한 시금석이다. 이 옷은 슬립에서 힌트를 얻었지만, 이것은 안나 마냐니를 장식했던 슬립이고, 아니타 에크버그, 소피아 로렌 등등을 아름답게 꾸며 주었던 실루엣이다. 끈은 마치 브라 끈처럼 몸에 딱 맞고, 목라인은 가로질러 똑바로 달려가지만 적어도 두번 멈추어 서는데, 한번은 양쪽에서 가슴을 감싸기 위해 그리고 중간에서 부드럽게 푸쉬업 해주는 위로 올려주는 주름과 마주쳤을 때이다. 이 슬립은 그냥 아래로 미끄러져 내리지 않고, 허리에서 사람을 꽉 하지만 너무 타이트하지는 않게 잡아주기 위해 안으로 들어온 후, 힙을 강조하기 위해 넓어지고, 착용자가 걸을 때 힙이 움직이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 무릎에서 조금 좁아지며 떨어진다.”라고 묘사했다.[7]

새 라인 및 새 시장 [ 편집 ]

1987년에 듀오는 별도의 니트웨어 라인을 시작했고, 1989년에는 란제리 라인과 비치웨어 라인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1990년에 그들은 그들의 첫 번째 남성 컬렉션을 출시했다.[8] 그 해 그들은 또한 디자인 회사를 그들의 첫 번째 공식 사무실 안으로 옮겼고 그들 본래의 옷 외에 가운 및 다른 고급 작품들을 디자인하기 시작했다.[6] 그들의 1990 봄/여름 여성 컬렉션은 라파엘의 신화 그림을 참조했고, 이 듀오는 크리스탈 장식 옷으로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 또한 1991년 가을/겨울 여성 컬렉션도 금 줄 세공을 한 메달과 장식된 코르셋을 포함한 장신구들로 장식되었다. 이후 1992년 가을/겨울 여성 컬렉션은 비록 여전히 크리스탈 장식이 된 바디 슈트를 포함하고 있긴 했지만, 1950년대 영화 산업에서 영감을 받았다.[9]

1991년에 그들의 남성 컬렉션은 그 해의 가장 혁신적인 남성 컬렉션을 위한 울마크 어워드를 수상했다.[10] 국제적 명성으로 가는 그들의 첫 번째 시도로 여겨지는 것은 1990년에 마돈나가 Dolce & Gabbana의 보석으로 만들어진 코르셋과 그것에 동반되는 재킷을 입고 1990 칸 영화제에서 《진실 또는 대담: 마돈나와 함께 침대》에서를 초연했을 때이다. 이후 이 듀오는 1993년에 마돈나와 파트너가 되어 그녀의 1992 앨범 Erotica를 지원하는 걸리 쇼 세계 투어를 위한 의상을 1500벌 이상 디자인했다.[8] 이 의상에 대한 인터뷰에서, 마돈나는 “그들의 옷은 유머감각이 있으면서 섹시해요. 나처럼 말이죠.”라고 말했다.[6] 1994년, 이 회사의 트레이드마크 겹여밈 재킷은 모델 크리스티 털링턴의 이름을 따 “라 털링턴”이라고 명명되었다. 같은 해 이 회사는 젊은이들을 겨냥한 두 번째 메인 라인—D&C를 출시했다. 1996년 D&C 런웨이 쇼는 새로운 매체를 향한 실험적인 움직임으로 패션쇼 무대가 아니라 인터넷에서만 보여졌다. 또한 그 해 Dolce & Gabbana는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을 위한 의상을 디자인했다’.[11]

영화 산업의 관점에서, 돌체와 가바나는 1995년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영화 “스타메이커”에 엑스트라로 출연했다. 그들은 롭 먀살의 각색 영화 “나인”에 좀 더 중요한 카메오 역할로 출연했다.[12] 그들은 또한 듀란 듀란의 뮤직 비디오 “걸 패닉!”에 스타일리스트로 작업했다.[13]

1990년 대 시장 확장의 관점에서, 1989년 Dolce & Gabbana는 일본에 그들의 첫 번째 부티크를 개업하기로 카시야마 그룹과 계약을 체결했다. 그들은 1992년 “Dolce & Gabbana Parfum”라고 부르는 최초의 여성용 향수를 발매했는데, 향수 아카데미의 올해 최고의 여성 향수 1993 어워드를 수상했다. 그들의 최초의 남성 향수 “Dolce & Gabbana pour Homme”는 동일한 아카데미에서 1995년에 올해의 최고 남성 향수 어워드를 수상했다.[10] 그 해 Dolce & Gabbana의 컬렉션은 영국 및 이탈리아 언론과 논쟁을 야기했는데, 이 때 그들은 작품을 위한 영감으로 미국 갱스터 모티브를 선택했다.[14] Dolce & Gabbana은 이 가을/겨울 1995 영감을 여성 의류에 맞춰 바꾸었는데, 비평가들은 에로틱한 강렬함을 불러일으킨다고 평했다. 이 듀오는 그 모티브를 예전에도 사용했었다. 1992년 사진작가 스티븐 메이셀이 그 회사를 위한 광고 캠페인을 찍었는데 거기에서 모델들이 “갱스터 스타일”로 포즈를 취했다. 이것은 1930년대 스타일의 폭이 넓은 코트와 검은색 가죽 모자를 포함한다.[15]

작가인 니루파마 푼디어는 “Dolce & Gabbana는, 자신들의 초여성적이고 환상적인 스타일로 90년대의 대부분을 지배했던 심각하고 침착한 패션에서 벗어났다”라고 썼다.[16]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다 [ 편집 ]

Dolce & Gabbana는 계속해서 마돈나와 작업을 하면서 그녀의 2000 앨범 “뮤직”을 지원하는 “익사한 세계 투어”를 위한 의상을 디자인했다.[11] 그들은 또한 미씨 엘리엇, 비욘세, 그리고 메리 J. 블리제의 세계 투어를 위한 의상도 디자인했다.[11][17] 1999년 이 듀오는 가수 휘트니 휴스턴을 지원하여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했다. 휘트니 휴스턴은 이 쇼를Dolce & Gabbana 가 자신의 “내 사랑이 당신의 사랑이예요”투어를 위해 디자인한, 패션 및 음악 비평가들이 일반적으로 “음란”하다고 여겼던 의상을 선보이기 위해 사용했다.[18] 이 듀오는 2000년 대에 들어서도 계속 카일리 미노그의 쇼걸 홈커밍 투어를 위한 의상을 포함한 뮤직 아티스트들을 위한 의상을 디자인하고 있었다.[11] 마돈나는 또한 Dolce & Gabbana의 2010 광고 캠페인에도 참가했다.[7]

2000년 대에 Dolce & Gabbana은 축구에서 또한 많은 영감을 얻었다. 2003년 남성 라인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축구 스타들에게서 주된 영감을 취했다.[8] Dolce & Gabbana는 다른 형태의 예술에 영감을 주기도 했다. 2003년 댄스 뮤직 아티스트 프랭키 넉클스는 그 패션 회사가 패션과 음악 양쪽의 동향을 위한 “훌륭한 지표”라고 말했다.[19] 디자인계에 그들이 미친 영향으로, Dolce & Gabbana의 초기 디자인의 주요 부분이었던 코르셋이 2002년 많은 유럽의 주요 디자이너들에 의해 다가오는 유행으로 재발견되었다.[20] 최근에 들어서 Dolce & Gabbana는, 자신들의 컬렉션이 공개되기 전에 판매하고 패스트 패션 회사들이 자신의 디자인을 카피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구매자들을 대상으로 신상품의 개인적인 전시를 열기 시작했다.[21]

2012년 메인 라인을 강화하기 위해 D&G는 Dolce & Gabbana와 합병했다. 마지막의 독립적인 D&G 컬렉션은 2011년 9월에 선보인 봄/여름 2012 컬렉션이었다.[22] 뉴요커는 2005년에 “1990년대에 프라다가 1980년대에 아르마니가 했던 역할을 2000년대에는Dolce & Gabbana가 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감성이 그 세대를 정의하는 gli stilisti”라는 기사를 게재했다.[3] 개인적인 수상으로, 1996년과1997년대에 Dolce & Gabbana는 올해의 디자이너로 FHM이라고 명명되었다. 2003년에는 GQ 매거진이 “올해의 인물들” 중에 Dolce & Gabbana를 지명했다. 이듬해 “엘리”의 독자들은 2004 엘리 스타일 어워드에서Dolce & Gabbana를 최고의 국제 디자이너로 뽑았다.[23] Dolce & Gabbana는 2010년 6월 19일 밀란의 피아조 델라 라 스칼라와 팔라조 마리노에서 브랜드의 20 주년을 기념했다. 또한 다음날 공개 전시회가 열렸는데 여기에는 수십 개의 텔레비전이 되는대로 쌓여서20년의 역사를 되짚어 보며 그 디자인 회사의 지난 컬렉션 중 각각 서로 다른 것을 보여주는 방도 있었다.[24]

브랜드 라인 [ 편집 ]

rightDolce & Gabbana는 2012년까지 두개의 주요 라인 (D&G 과 Dolce & Gabbana)이 있었는데, 그 해에 두 라인을 Dolce & Gabbana하로 합병했다.

Dolce&Gabbana는 디자이너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고급 제품을 전문으로 하고, 시즌의 변화 뿐 아니라 장기간 동향에 반응하여, 격식을 가지며 유행을 타지 않는다.[25]

D & G [ 편집 ]

D & G는 도시적인 영감을 따르며, 유행을 따르기 보다는 유행을 창출하는 캐주얼 라인이다. Dolce&Gabbana 보다 더 젊고 화려한 보급형 라인이면서 Dolce&Gabbana와 달리, D&G는 의류 이외에 시계도 판매한다. 최초의 남성 D&G 컬렉션은 1994년 1월에, 최초의 여성D&G 컬렉션은 같은 해 4월에 출시했다.[26] 2012년 이후 이 라인은 Dolce&Gabbana와 통합되었다.

기타 라인 [ 편집 ]

Dolce & Gabbana는 신부용 컬렉션도 만들었지만, 이것은1992년과 1998년 사이에만 존재했다. Dolce & Gabbana 홈 컬렉션도 1994년 시작했지만, D&G 매장을 위해서 만든 고유한 작품들을 제외하고는 1999년에 중단되었다. Home Collection–started in 1994–was also discontinued in 1999, with the exception of unique pieces being created for D&G premises. 최초의 여성 비치웨어 컬렉션은 1989년에, 최초의 남성 비치웨어 컬렉션은 연이어 1992년에 개발되었다. D&G는 1998년에는 아이웨어 라인을, 2000년에는 시계 라인을 출시했다. 같은 해 D&G는Dolce & Gabbana의 란제리 컬렉션과는 별도로 남성용과 여성용 속옷 라인을 출시했다. 2001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D&G 쥬니어 라인을 출시했다. 2006년에 이 듀오는 여성을 위한 표범 무늬 악세서리의 아나말리에 라인을, 2007년에는 남성들을 위한 악어 여행 가방 라인을 출시했다. 이 회사가 만드는 다른 가방에는 미스 시실시 손가방,[27]과 짚과 가죽으로 제공되는 “돌체”가방이 있다.[28]

2009년에 이들은 스칼렛 존슨을.[29] 그 광포 캠페인의 얼굴로 하는 최초의 색조 화장품 라인을 출시했다.[26] Dolce & Gabbana는 2011년 후반에 보석으로 장식한 묵주, 장식이 달린 팔찌, 목걸이를 포함한 80 개의 작품으로 최고의 고급 보석 라인을 출시했다.[30] Dolce & Gabbana 은 위의 섹션에서 설명한 것처럼 그들의 향수로 여러 상을 수상했다. 현재 나오는 향수에는 “더 원”, “스포트”, “밝은 파랑”, “클래식”, “시실리”, “장미 한 송이”, 그들의 원래 향수인 “Pour Homme”과 “Parfum”이 있다.[31]

인터넷 [ 편집 ]

Dolce & Gabbana는 “DG” 로고를 그들의 상징물로 만들었지만,[32] 그것과 어울리는 인터넷 주소인 DG.com을 갖지는 못했다. 사실상, DG.com은 가장 오래된 인터넷 도메인의 하나로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컴퓨터 회사 Digital General이 이미 1986년에 등록했다. DG.com은 2010년 6월,[33] 자신들의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 다른 DG로고를 사용하는 미국의 잡화점 체인 Dollar General 이 사들였다.

동업자 [ 편집 ]

스포츠 [ 편집 ]

Dolce & Gabbana는 2004년 이후부터 AC 밀란을 위한 운동복을 디자인해 오고 있다.[34] Dolce & Gabbana가 디자인한 운동복을 가지는 것 외에, AC 밀란의 선수들은 또한 운동장 밖의 공식 석상에서 팀이배포하는 Dolce & Gabbana복장을 입는다.[35] 이 듀오는 이태리 국가대표 풋볼 팀을 위한 운동장 밖의 복장도 디자인했다.[36] 2010년 Dolce & Gabbana는 첼시 풋볼 클럽과 클럽의 운동 유니폼 운동장 밖 복장을 디자인 및 제공하기로 3년 계약의 맺었다. 계약은 남성 스태프들과 선수들 외에 여성 스태프들을 위한 의류를 만드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클럽을 위한 운동장 밖 복장은 가슴 주머니에 사자 문양이 있는 남색 슈트를 포함했다. 디자이너들은 또한 클럽 감독의 라운지와 메인 사무실 리셉션 공간을 다시 설계했다.[37] Dolce & Gabbana are also the named sponsors of the Milano Thunder Italian Boxing Team.[38]

제품 [ 편집 ]

2006년 Dolce & Gabbana는 모토롤라와 제휴해서Motorola V3i Dolce & Gabbana 휴대폰을 생산했다.[39] 그 이후 200년에는, 소니 휴대 통신과 제휴해서 기술과 공동 디자인한 작품 위에 24캐럿 금 세공과 디자인 회사의 로고가 새겨진 버전의 Jalou 휴대폰 라인을 만들었다.[40] Dolce & Gabbana는 또한 시트로엥과 제휴해서 C3 Pluriel 자동차를 공동 디자인했다.[41] 2010년에는 마티니와 제휴해서 베르무트의 “황금 판”을 생산했다.[42] 이후 2010년에는 이 디자인 회사는 가수 마돈나와 함께 MDG라고 불리는 공동 디자인한 선글라스 라인을 발매했다.[43]

광고 캠페인 [ 편집 ]

Dolce & Gabbana 최초의 여성 향수에 대한 광고는 영화제작자 쥬세페 토르나토레가 제작을, 엔니오 모르꼬네가 음악을 담당하고 여배우 모티카 벨루치가 주연으로 출연하여 만들었는데, 이탈리아에서 수년 동안 방송되었다. 이 30 초짜리 초현실주의 광고는 한 남자가 조수 웅덩이의 돌 마루에 문어를 미끄러지게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 남자는 서서 일상적인 일을 하고 있는 다른 여성들을 둘러본다. 한 여성(벨루치)가 다른 두 여성이 들고 있는 하얀 천 뒤에서 50년대 스타일의 수영복으로 갈아입는 것이 보인다. 옷을 갈아 입은 후, 그녀는 자신의 브라를 부채선인장 위로 던지고 바다로 걸어간다. 나중에 그녀가 잘 만들어진 침대 위에 누워있는 것이 보이는데, 그녀를 쳐다 보았던 그 남자가 그녀의 브라를 코에 걸고 창문 밖에 서 있다. 이 광고는 검은색 배경으로Dolce & Gabbana 향수병 이미지로 끝난다.[44] 2003년, Dolce & Gabbana의 향수 시실리는 또한 쥬세페 토르나토레가 제작한 시실리인들의 장례식에 관한 초현실주의 광고로 선전되었다.[45]

향수 “더 원”을 위한 2006년 광고에는 지젤 번천이 주연을 맡았는데, 사이사이에 배치한 카메라맨 무리들의 플래쉬를 받으며 화장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하고 있는 번천을 그 특징으로 한다; 그 다음 그녀는 황금색 드레스, 신발을 걸치고 D&G 선글라스를 얼굴에 쓴다.[46] Dolce & Gabbana와 함께 광고 캠페인에 작업했던 사진 작가와 영화 제작자에는 지암파올로 바비에리,[47] 미쉘 콤트,[48] 파브리지오 페리,[49] 스티븐 클레인,[50][51] 스티븐 마이젤,[52] 머트 + 마르커스,[53] 장 밥티스트 몬디노,[29] 페르디난도 시아나,[54] 지암파올라 스구라,[55] 마리오 소렌티,[56] 솔브 선즈보,[57] 마리오 테스티노,[58] 쥬세페 토르나토레 및 마리아노 비반코[59] 가 있다. Dolce & Gabbana는 그들의 캠페인으로 독일의 선두적인 광고상인 리드어워드를 두 번 수상했다. 2004년에는 가을/겨울 2003/04 캠페인으로[60] 그리고 2006년에는 가을/겨울 2005/06 캠페인으로 수상했다.[61]

영감과 스타일 [ 편집 ]

돌체앤가바나 골드 스니커즈 운동화.

원래 다방면의 중고품 가게 보헤미아의 영감을 받은 Dolce & Gabbana의 깊은 색의 동물 프린트는 특별히 유명한 이탈리아의 영화 역사에서 영감을 얻은 “고급 히피 관념”이라고 묘사되었다. “우리가 디자인을 할 때 그건 마치 영화같아요”라고 도메니코 돌체는 말한다. “우리는 이야기를 생각해 내고 그 이야기와 어울리는 의상들을 디자인합니다.” 그들은 패션 역사에 자신의 유일한 공헌이 검은 색 브라뿐 이라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고 인정하면서, 유행을 촉발시키는 것보다 최고의, 사람을 가장 돋보이게 하는 옷을 만드는 데 더 관심이 있다고 주장한다. (돌체와 가바나2007).

D & G 등록상표에는 (코르셋과 브라 잠금 방식 같은) 겉옷 같은 속옷, 갱스터 보스 가는 세로줄 무늬 정장 및 사치스럽게 무늬 염색한 코트가 있다. 한편 그들의 여성 컬렉션은1987년 페르디난도 시아나가 찍은 모델 마르페사가 나오는 흑백 광고처럼, 항상 강력한 광고 캠페인으로 백업된다(Dolce & Gabbana). “그들은 모든 검은 드레스, 모든 단추를 다 채운 블라우스에서 빠져 나갈 방법을 찾습니다”라고 로젤리니는 말한다. “내가 착용한 그들의 첫 작품은 흰색 셔츠로 아주 소박한 것이었지만, 내 가슴이 터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도록 잘려져 있었죠.”

일단 “이탈리아 패션 계의 길버트와 조지”라는 별명이 붙자,[62] 1996년 돌체와 가바나는 “D&G는 사랑”이라는 말을 테크노 비트에 맞춰 읊조리는 자신들의 싱글을 녹음함으로, 자신들의 패션에 대한 흥미를 음악적인 재능에 부여하기도 했다 (Dolce & Gabbana 2011). 베르사체와 아르마니 같은 다른 이탈리아의 헤비급 패션 회사에 비해 디자인 계의 후발 주자인 이들은 자신들의 경이적인 성공에 운이 많이 작용했다는 것을 인정한다. 1997년까지, 이들의 회사는 4억의 매출을 보고했고, 두 디자이너가 40세의 나이에 은퇴할 계획이라는 발표를 하게 했다. 이 약속은 둘 다 지키지 않았다. (도메니코).

Dolce & Gabbana의 책 [ 편집 ]

Dolce & Gabbana는 옷을 디자인하는 작업 외에도 자신들의 작품 모음 및 사진 설명을 특징으로 하는 책을 거의 스물 네 권이나 공동 저작했다. 이 중 많은 책의 수익금은 어린이 액션 네크웍과 버터플라이 온러스“école sans frontières” 재단을 포함한 자선 단체에 기부된다.[26] 다음은 그들의 문학 작품 목록이다:

10 Anni Dolce & Gabbana (디자인 회사의 첫 십년 동안 가장 중요한 광고 및 편집 이미지 모음 [63]

(디자인 회사의 첫 십년 동안 가장 중요한 광고 및 편집 이미지 모음 황야 [64]

동물 [65]

헐리우드 (Features over 100 photographs of the movie stars from the post-1985 era) [66]

(Features over 100 photographs of the movie stars from the post-1985 era) 칼치오 (44명의 축구 선수, 3개의 팀, 2명의 코치들의 사진) [67]

(44명의 축구 선수, 3개의 팀, 2명의 코치들의 사진) A.C. 밀란 [68]

음악 (150명 이상의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를 다룬다) [69]

(150명 이상의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를 다룬다) Dolce & Gabbana 20년 (1000 개 이상의 사진을 연대기적으로 보여 주는 각 회사 컬렉션의 역사) [26]

(1000 개 이상의 사진을 연대기적으로 보여 주는 각 회사 컬렉션의 역사) 밀란 [70]

2006 이탈리아 (이탈리아의 2006 월드컵 우승을 축하하는 책) [71]

(이탈리아의 2006 월드컵 우승을 축하하는 책) 패션 앨범 (Dolce & Gabbana 컬렉션의 위대한 사진작가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400개 이상의 이미지를 포함) [72]

(Dolce & Gabbana 컬렉션의 위대한 사진작가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400개 이상의 이미지를 포함) 비밀 의식 [73]

가족 (인생의 중심으로 가족에 초점을 맞춘 책) [26]

(인생의 중심으로 가족에 초점을 맞춘 책) 선한 목자 (Dolce & Gabbana의 옷을 입고 있는 평범한 목자의 하루를 그린 책) [74]

(Dolce & Gabbana의 옷을 입고 있는 평범한 목자의 하루를 그린 책) 밀라노 비치 축구 [26]

다이아몬드 & 진주 [75]

남성을 위한 Dolce & Gabbana 20년 [76]

아이콘 1990-2010 [77]

패션 쇼 1990 – 2010 [78]

이탈리아 국민: 남아프리카 2010 (2010 FIFA 월드컵에 앞선 훈련 기간동안에 이탈리아 축구 국가 대표팀을 주인공으로 한 이미지들) [79]

(2010 FIFA 월드컵에 앞선 훈련 기간동안에 이탈리아 축구 국가 대표팀을 주인공으로 한 이미지들) 남성 [80] [81]

밀란 패션 축구 선수 사진 [82]

데이빗 간디 (Follows the life of male model David Gandy for a full year) [83]

(Follows the life of male model David Gandy for a full year) 샘플[84]

공간과 전시회 [ 편집 ]

Dolce & Gabbana는 1995년 9월에 아틀리에 La sede di via San Damiano를 개장했다. 이들은 또 2002년 부띠끄와 기업 공간이 결합된 7층 건물 Lo showroom di via Goldoni를 개장하고, 인도주의 광장에 있던 예전의 메인 전시실을 옮겼다. 그 이후 2006년 7월에 Dolce & Gabbana는 5,000 스퀘어 피트의 전시 공간 Lo showroom di via Broggi를 밀라노에 개장했다. 이 디자인 회사는 또한 1940년대에 지어진 역사적인 극장인 밀라노에 있는 Il Metropol 극장을 샀다. 이곳은 개조되어서 2005년 9월에 다시 문을 열었다.[26] Dolce & Gabbana는 2003년 밀라노의 남성용품 전시실에 마티니 바라고 불리는 공동 후원의 음료 시설을 열고 뒤를 이어2006년에 카페, 바, 비스트로와 식당 을 갖춘 시설인 IL GOLD를 개장했다.[11] 이들은 또 다른 마티니 바를 이후 2006년에 상하이 전시실에 열었다.[26] 2009년에 Dolce & Gabbana는 93 개의 부띠끄와 11개의 공장 아울렛을 소유하고, 80여개 이상의 나라에서 판매되었다.[85] In all they have 251 mono-brand stores.[86]

자신들의 컬렉션을 위한 패션쇼와 광고 캠페인을 개발하는 것 외에, Dolce & Gabbana는 자신들의 공간을 사진 및 다른 예술 전시회를 개최하는 데 사용했다. Il Metropol 개장 직후, 이들은 로비 공간에서 2006년 4월과 2007년 4월 사이에는 론 아라드(산업 디자이너)의 전시회 Blo-Glo를 두 번,[87] and Bodyguards in late April 2007.[88] 2007년에는 엔조 셀레리오의[89] 그리고 2008년에는 헤르베르트 리스트의[90] 작품을 담은 사진 전시회를 개최했다. 2011년 Dolce & Gabbana는 스튜디오 Piuarch와 함께 오픈 하우스와 1996 이후의 스튜디오의 다양한 건축 디자인 및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건축 전시회를 개최했다.[91] 스튜디오 Piuarch는 2006년에 Dolce & Gabbana 본사를 지었는데, 이곳이 전시회와 오픈 하우스가 개최된 곳이다.[92]

Dolce & Gabbana는 또한 2011년 그들의 책 “데이빗 간디”의 출간 행사와 같은 도서 출간행사와 자신들 옷의 사진 전시를 위해 그 공간을 사용했다.[93] 그들은 또한 2009년 5월 US보그의 90년 역사에서 선별한 100장 이상의 영상을 위한 사진 전시회를 무대에 올렸던 밀란의 팔라조 델라 레지오네와 같은 다른 공간들도 사용한다. 이 전시회는 “보그의 미의 극치”라고 불렸다.[94][95]

또한 이 회사는 레냐노와[96] 인치사 인 발다르노에[97] 생산 공장을 갖고 있다.

논란 [ 편집 ]

광고 [ 편집 ]

Dolce & Gabbana는 칼을 휘두르는 모델을 보여주는 광고 캠페인 때문에 2007년 1월 영국의 광고 감시 광고 표준 위원회 (ASA)에 의해 공개적으로 비난받았다.

2007년 2월 소비자 집단에서의 불만 이후, Dolce & Gabbana는 스페인에서 한 남성이 바닥에 있는 여성의 손목을 잡고 있고 그 모습을 일단의 남성들이 쳐다보는 모습을 담은 광고를 냈다. 스페인의 노동사회부는 그 여성의 몸의 위치가Dolce & Gabbana가 판매하려고 하는 상품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하면서, 그 광고를 불법적이고 여성 비하적이라는 낙인을 찍었다.[98] 이탈리아 간행물들은 전례를 따라 이 광고를 금지했다. 이 광고는 “갱 강간의 찬양”이라고 불렸고 미국의 잡지Debonair는 “패션의 역사 상 가장 논란이 되는 광고 중 하나”라고 공표했다.[99]

탈세 혐의 [ 편집 ]

2009년 5월, 이탈리아 정부는 2004년에서 2006년까지의 기간동안 세금 천국인 룩셈부르크에 만 249에 대한 유로의 자산을 이동했다는 이유로Dolce & Gabbana를 탈세 혐의로 기소했다.[100][101]

홍콩 사진 논란 [ 편집 ]

네 거리 중 하나가 일요일 시위 동안 막혀 있다.

2012년 1월 5일, 애플 데일리는 홍콩 시민들이 홍콩에 있는 두 개의 상점에서Dolce & Gabbana 쇼윈도우 상품의 사진을 찍는 것을 금지당했다고 보도함으로, 반본토 정서를 자극했다.[102] 특히캔톤로드에 있는 주력 상점의 직원과 보안 요원은 상점 외부 인도 구역은 사진찍기가 금지된 사유 지역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행동은 며칠에 걸친 시위를 촉발했고 1월 8일에 국제 뉴스에 보도되었다.[103][104][105][106] 현지 뉴스 보도는 Dolce & Gabbanna 사진 금지는 그곳에서 쇼핑을 하고 가게에 있는 그들의 사진이 돌아 부패 혐의와 자신들의 부의 근원에 대한 조사를 부채질할 것을 두려워한 몇몇 부유한 중국 정부 관료들의 요청에 의해 시행된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107]

Dolce & Gabbana는 마침내 2012년 1월 18일 밀라노의 본사에서 홍콩 시민들에게 공식적인 사과를 발표했다.[108][109]

참고 문헌 [ 편집 ]

“Dolce & Gabbana.” 템스 & 허드슨 패션 및 패션 디자이너 사전. 런던: 템스 & 허드슨, 2007. Credo Reference. Web. 2011년 11월 29일.

“스테파노 가바나.” Marquis Who’s Who in the World. New Providence: Marquis Who’s Who LLC, 2011. Credo Reference. Web. 2011년 11월 29일.

“스테파노 가바나.” 템스 & 허드슨 패션 및 패션 디자이너 사전. 런던: 템스 & 허드슨, 2007. Credo Reference. 2011년 11월 29일.

“Domenico Dolce Quotes – Swide Magazine.” Dolce&Gabbana의 Swide Magazine. Swide Magazine, 2011년 6월 2일. Web. 2011년 11월 29일.

“Dolce & Gabbana – Biography on Bio.” Bio: Shows, Video, TV Schedule and More on Bio. AETN UK. Web. 2011년 11월 29일.

각주 [ 편집 ]

Dolce&Gabbana Online Store

Cookies

This site uses cookies, including third-party cookies, to send you advertising and services in line with your preferences. To find out more, or to deny your consent for some or all cookies click here to read our Cookie Policy.By closing this banner or clicking on any part of this page, you agree to the use of cookies.

돌체엔가바나 : 롯데ON

항목값을 선택하면 상품 목록이 자동으로 조회됩니다.

최근 30일 동안 많이 판매된 상품을 기준으로 정렬합니다.

(단, 광고 상품은 별도 기준에 따라 상단 정렬)

검색 정확도 및 판매 실적 등을 점수화하여 상품을 정렬합니다.

상품 비교를 선택하면 각 상품별로 비교할 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 체크상자가 나타납니다. 비교를 원하는 상품을 선택 후, 상품 목록 뒤에 있는 ‘상품 비교’ 헤딩으로 이동하세요.

상품비교

60개씩 보기 36개씩 보기

48개씩 보기

60개씩 보기

72개씩 보기

돌체&가바나(Dolce&Gabbana)

패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파트너십을 보여준 도메니코 돌체(Domenico Dolce, 1958.9.13~)와 스테파노 가바나(Stefano Gabbana, 1962.11.14~)는 재능과 땀, 마케팅의 행운이 함께 어우러지며 1980년대 중반기 이후 패션 역사의 한 장을 차지하였다. 그들은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20세기 이탈리아 디자이너들 중 거의 마지막 주자로, 이탈리아 남부의 열정적이고 대담한 기질을 담은 관능적이며 화려한 패션 세계를 선보였다. 돌체 & 가바나는 “패션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패션이 우리를 쫓아온다”라는 패션 철학을 바탕으로 기이하거나 지나치게 아방가르드한 옷을 거부하는 대신 ‘현실의 여성(real woman)’을 위한 매혹적이고 섹슈얼한 스타일을 창조하였다.

디자이너 듀오(Duo)의 탄생

도메니코 돌체는 1958년 이탈리아 시칠리아섬(Sicily) 팔레르모(Palermo)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마을의 상류층을 대상으로 신사복을 만드는 테일러였고, 어머니는 남성복 상점을 운영하였다. 때문에 돌체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작업실에서 놀며 자랐으며, 7살 무렵 테일러드 재킷의 재단을 배웠다고 알려져 있을 만큼 아주 어린 나이부터 옷과 재단에 친숙하였다. 스테파노 가바나는 돌체보다 4살 아래로, 1962년 밀라노에서 출생하였다. 돌체와는 달리 그의 가족이나 주변에 패션과 관련된 사항은 없었으며, 그의 아버지는 베니스에서 인쇄공으로 일하였다. 잘 생긴 외모를 소유한 가바나는 1980년대 초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밀라노로 이주하였고, 졸업 후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커리어를 쌓기 시작하였다.

이 두 명의 창조적 인재가 처음 만난 것은 1980년대 초, 돌체가 일하던 사무실에 가바나가 찾아오면서 시작되었다. 돌체는 시칠리아에서 밀라노로 이주해 디자인을 공부하였고, 지역의 한 패션 하우스에서 어시스턴트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가바나 역시 돌체가 일하던 사무실에 지원하였고, 채용된 후 돌체와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 돌체는 그에게 의상 스케치를 가르쳤으며, 가바나가 18개월 동안 군복무를 가기 전까지 디자인 프로세스를 가르쳐 주었다. 키가 작은 시골 출신의 돌체와 큰 키에 섬세하며 엘레강스한 가바나는 서로에게 매혹되었고, 1982년 말 가바나가 제대한 뒤 아파트를 얻어 함께 생활하기 시작하였다. 곧이어 두 사람은 ‘돌체&가바나(Dolce & Gabbana)’라는 이름의 스튜디오를 오픈하고, 둘만의 디자인을 시작하게 되었다.

외관상 정반대의 모습을 지녔던 두 사람은 성향에 있어서도 서로 달랐다. 도메니코 돌체는 호기심이 많은 성격으로 항상 새로운 것을 선호하였고, 스테파노 가바나는 경험하고 실험해 본 것을 신뢰하는 스타일이었다. 가바나가 그때그때 유행하는 문화에 집중했다면, 돌체는 장인(匠人)적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돌체는 뛰어난 테일러링 기술을, 가바나는 엘레강스한 스타일링 분야에 재능이 있었다. 가바나는 “우리는 아주 다른 두 개의 관점에서 시작한다. 그가 왼쪽에서 시작한다면, 나는 오른쪽에서 시작하는 식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가운데에서 만난다.” 라는 말로 그들의 파트너십을 강조하였다.

두 사람은 1985년 10월, 밀라노 컬렉션 기간 중 3명의 신인 디자이너 그룹의 일원으로 첫 번째 무대를 선보였다. 당시 패션의 주류였던 파워 드레싱을 제외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복잡하면서도 섬세한 재단은 호평을 받았다. 이어서 그들은 1986년 3월, 그들만의 첫 여성복 컬렉션 ‘리얼 우먼(Real Woman)’을 발표하였다. 이후 1987년 밀라노 쇼룸 오픈, 1989년 첫 번째 란제리 컬렉션과 수영복 컬렉션 발표, 도쿄 패션쇼 개최, 1990년 첫 남성복 컬렉션과 뉴욕 진출, 1993년 향수 런칭, 1994년 세컨드 브랜드 D&G 런칭 등 그들의 성공적 행보가 이어지게 된다.

1998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선보인 레오파드 프린트의 드레스(왼쪽)와 1996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나오미 캠벨이 입고 있는 코르셋 탑과 애니멀 프린트 스커트(오른쪽). 돌체 & 가바나는 타이트한 코르셋과 애니멀 프린트를 활용해 그들을 대표하는 섹시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관능성과 섹스어필: 코르셋과 애니멀 프린트

돌체와 가바나의 의상은 섹시하고 관능적인 스타일링으로 유명하며, 그들의 광고 캠페인 역시 도발적이고 강렬한 이미지를 발산한다. 돌체 & 가바나가 컬렉션에 데뷔했을 당시 밀라노는 그 어느 때보다 패션 산업이 번성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들은 당시의 트렌드 세터였던 아르마니의 엘레강스한 디자인을 따라가는 대신, 정반대의 노선을 택했다. 그들은 1986년 3월, 첫 여성복 컬렉션 ‘리얼 우먼(Real woman)’을 발표하면서 곡선적인 코르셋 드레스와 잘 재단된 핀 스트라이프 수트, 레오파드 프린트가 들어간 타이트한 실루엣의 코트를 선보였는데, 스타일에서 뚜렷하게 보여지는 관능성과 섹스어필은 곧바로 이들 듀오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돌체 & 가바나의 쇼는 안나 마냐니(Anna Magnani), 소피아 로렌(Sophia Loren)과 같은 여배우들이 란제리를 걸친 채 요부를 연기하던 20세기 중반 이탈리아 영화의 전성기적 추억을 불러 일으켰다. 그들은 그녀들의 코르셋을 컬렉션의 테마로 활용하며 관능성을 과시하였다. 검정색 브래지어와 타이트한 새틴 코르셋은 미니스커트와 매치되어 새로운 의상이 되었으며, 색색의 스와로브스키와 라인스톤으로 장식한 브래지어는 1990년대의 섹스어필 이미지를 대표하는 아이템이 되었다.

2007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의 애니멀 프린트 코트. 돌체 & 가바나 특유의 강렬한 섹시함이 잘 표현되었다.

돌체 & 가바나는 또한 애니멀 프린트에 매우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의 관능적 이미지를 더욱 부각시키는 요소가 되었다. 애니멀 프린트는 스커트와 팬츠, 드레스와 코트에 이르기까지 매우 광범위한 용도로 사용되었고, 이는 남성복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패치워크와 함께 애니멀 프린트는 돌체 & 가바나의 스타일을 말해주는 상징적 요소가 되었다. 돌체 & 가바나의 ‘애니멀 프린트 룩’ 혹은 ‘정글 룩’은 다른 모든 디자이너들이 발표해온 애니멀 프린트 스타일 중 가장 성공적이며 강한 반응을 불러왔다. 1997년 발간된 돌체 & 가바나의 책 [와일드니스(wildness)]에는 애니멀 프린트를 사용한 주요 디자인들이 수록되어 있다. 두 디자이너는 사적으로도 애니멀 프린트를 매우 좋아하여 그들의 집과 작업실, 매장의 인테리어와 가구들을 애니멀 프린트로 장식하였다.

듀오는 코르셋과 애니멀 프린트에만 머무르지 않았고, 여성적인 달콤함을 더한 디테일과 스트레치 실크 등 현대적 기술이 바탕이 된 신소재들을 통해 스타일을 새롭게 정제하면서 계속해서 진화하였다. 변화하는 패션 트렌드 안에서 관능적 스타일을 이끌어 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들의 롤 모델이었던 아제딘 알라이아(Azzedine Alaïa)가 있었다. ‘재단의 귀재’로 불린 알라이아는 30여 년간 여성의 몸에 꼭 맞는 타이트한 스타일을 지속적으로 생산해 온 디자이너이다. 이러한 영향을 받아 여성복뿐만 아니라 돌체 & 가바나의 남성복 컬렉션 역시 섹시함을 기조로 클래식한 요소가 혼합되어 있으며, X-실루엣의 남성용 재킷에서는 여성적인 이미지를 느낄 수 있다.

돌체 & 가바나 듀오에게 끊임없이 영감을 주었던 배우 소피아 로렌. 그들은 정열적이고 관능적인 매력을 지닌 남부 이탈리아, 특히 시칠리아의 여성을 영감의 원천이자 뮤즈로 삼았다.

이탈리아적 감성의 뿌리: 오마주 오브 시칠리아 (Homage of Sicily)

이 디자이너 듀오의 창의력은 그들의 고향인 이탈리아에 뿌리를 두고 있다. 화려한 색채와 남성과 여성의 아름다움을 대담하게 매치하는 능력을 가진 이들 패션의 원천은 특히 이탈리아의 여성이었다. 그 중에서도 그들은 남부 이탈리아의 정열을 가진 매력적인 시칠리아 여성을 통해 섹시하면서도 본질적인 우아함을 간직한 여성의 모습을 패션에 투영하였다.

시칠리아는 돌체가 자라난 곳이자, 가바나가 휴가를 즐기던 곳이었다. 이탈리아에 대한 이상적 이미지를 바탕으로 돌체 & 가바나가 초점을 맞추었던 몇 개의 주제는 1940~50년대 네오리얼리즘(Neo-realism: 2차 세계대전 직후 사실주의를 추구한 이탈리아 영화의 경향)적 흑백영화 속의 미녀들과 천주교 신앙, 마피아의 남성미와 시칠리아 섬의 미망인들이었다. 시칠리아의 전통적 스타일은 흑갈색이나 검정색을 기본으로 하며, 검은 레이스로 장식된 폭이 넓은 스커트와 두껍고 짙은색의 스타킹, 십자가 묵주와 화환, 그 위에 마피아의 영향이 더해진 것이었다. 검정색은 시칠리아의 남성과 여성복의 기본색이자 시칠리아의 문화와 삶의 양식을 대표하는 색으로써, 돌체 & 가바나의 컬렉션에 주요한 컬러로 사용되었다.

1988년 발표된 ‘레오파드’ 컬렉션은 정통 시칠리아의 이미지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적 흑백영화로부터 얻은 영감을 녹여낸 컬렉션이었다. 루키노 비스콘티(Luchino Visconti) 감독의 영화 <레오파드(The Leopard, 1963)>가 영감으로 작용했던 이 컬렉션에서, 영화 속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의 코르셋은 현대적인 감성의 코르셋 드레스로 재탄생되었다. 1990년, 남성복을 런칭했을 때에도 그들은 시칠리안 남성의 테일러링을 보여주는 편안한 스타일의 의상으로 호평을 받았다. 1996년의 남성복 컬렉션에서는 탱크 탑과 핀 스트라이프 바지에 가죽 슬리퍼를 매치함으로써 시칠리아에 대한 완벽한 오마주를 완성하였다. 1998년 3월, 검정색이 중심이 된 보다 종교적인 분위기의 시칠리안 스타일은 ‘Cyber-Sicilian’이라는 제목과 함께 보다 로맨틱한 형식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핀 스트라이프 수트와 중절모, 반짝이는 시퀸 장식과 목걸이로 사용된 묵주, 시칠리안 소녀의 검정색 전통 드레스, 페전트 스커트(peasant skirt)와 프린지 장식의 숄, 검정색 미니 드레스를 입고 머리에 스카프를 두른 시칠리아섬 미망인의 심플함까지. 여성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 섬세한 것과 거친 것, 귀족적인 것과 프롤레타리아적인 것이 뒤섞인 그들의 스타일은 지중해풍의 매력과 정열을 담고 있다.

1998년 봄/여름 컬렉션에서 그들은 시칠리아의 전통적 스타일인 검정색을 기본으로 절제된 검은 레이스와 풍성한 스커트 등 로맨틱한 디자인적 요소를 더한 ‘Cyber-Sicilian’ 컬렉션을 선보였다.

크로스오버 드레싱과 믹스 매치

“그들은 80년대를 특징지었던 모든 미학적 요소들을 정리했고,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그들의 탈출은 조류를 거스르는 항해와도 같았다.” 밀라노의 일간지 의 지안루카 베트로(Gianluca Lo Vetro)의 말처럼, 돌체 & 가바나는 창조적인 작업에 전혀 주저함이 없었고, 지나간 시대를 샅샅이 뒤져 풍부한 아이디어를 쏟아내었다. 그들은 정해진 규칙을 따르지 않았으며, 현대 패션의 자유로운 정신을 압축한 스타일로 매 시즌 놀라움을 주었다.

패션계의 한 인사는 그들을 패션계의 ‘믹스의 달인(mix masters)’이라 칭하면서, 변화무쌍한 소리를 엮어 음악을 창조하는 DJ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듀오는 각각 과거와 현재를 대표하는 바로크양식과 플라스틱을 혼합하거나, 크로셰(crochet: 코바늘 뜨개질)와 벨크로, 브로케이드(brocade: 꽃무늬가 있는 견직물 혹은 그것과 유사한 화학섬유 직물)와 거울을 혼합하였다. 또한 시칠리아 귀족의 예의바른 이미지와 탱크 탑을 입은 전형적인 노동자의 이미지를 혼합하였다. 그들의 주요한 영감이 되었던 시칠리아의 여성은 열정적이고 매혹적인 동시에 엄격하고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금욕주의적인 양면성을 지닌 여성이었다.

그들은 1988년 레오파드 컬렉션에서 시칠리아의 귀족적 분위기와 농부의 생활을 혼합하였는데, 벨벳 드레스와 러플 장식의 셔츠, 조끼와 화이트 셔츠, 농부의 모자와 함께 남성의 수트를 입은 여성을 등장시켰다. 1990년 ‘라 돌체 비타(La Dolce Vita)’ 컬렉션에서는 진짜 모피와 깊게 파인 드레스, 가짜 다이아몬드를 사용하였다. 1992년 10월의 ‘히피-시크(hippie-chic)’ 컬렉션은 꽃무늬 드레스, 플랫폼 슈즈, 마리안느 페이스풀(Marianne Faithfull: 1960년대 배우 겸 가수) 풍의 메이크업과 카나비 스트릿 풍의 바지를 활용한 판타지를 보여주었다. 이 컬렉션에서는 패치워크, 브로케이드와 자수, 핀 스트라이프와 레이스의 믹스매치가 제안되었다. 특히 이 컬렉션에 대해 패션 저널리스트 수지 멘키스(Suzy Menkes)는 “돌체 & 가바나가 시대와 국가, 남성과 여성, 활기차고 멋진 런던과 비더마이어 양식(Biedermeier: 19세기 중반의 간소하고 실용적인 가구 양식)을 잘 섞어 내었으며, 그들은 그러한 믹스를 통해 돌체 & 가바나만의 것으로 만드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디자이너들”이라고 칭찬하였다.

1993년 마돈나 월드 투어 ‘걸리 쇼(Girlie Show)’는 돌체 앤 가바나의 의상들로 채워졌다. 이탈리아계 미국인 마돈나는 돌체 앤 가바나 최고의 팬이자 고객으로, 그들의 상업적 성공에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하였다.

돌체 & 가바나의 여인들: 셀러브리티가 사랑한 디자이너

할리우드 영화의 셀러브리티, 패션 에디터, 파티를 즐기는 돈 많은 젊은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로서, 돌체 & 가바나의 의상은 모든 주요 도시의 패셔너블한 클럽과 바에서 볼 수 있다. 돌체 & 가바나의 여성들은 섹시하고, 맵시 있으며, 강한 지중해의 여인이었다. 이사벨라 로셀리니(Isabella Rossellini), 린다 에반젤리스타(Linda Evangelista), 마돈나(Madonna)는 돌체 & 가바나가 추구하는 여성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동시대적 아이콘들이다. 로셀리니에서 에반젤리스타에 이르는 뮤즈들은 그들이 가진 이탈리아적 정신 때문에 발탁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특히 이탈리아계 미국인이었던 마돈나는 그들의 팬이자 고객이며, 친구가 되었다. 마돈나는 1993년, ‘걸리 쇼(Girlie Show)’의 월드 투어를 위한 의상 1500벌을 주문하였고, 마돈나 월드 투어 의상의 성공은 돌체 & 가바나가 음악, 영화계와 지속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걸리 쇼 의상의 성공은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 카일리 미노그(Kylie Minogue), 제니퍼 로페즈 (Jennifer Lopez), 메리 J. 블라이즈(Mary J. Blige) 등의 공연 의상 제작으로 연결되었다.

그들 외에도 데미 무어, 니콜 키드먼, 비욘세 등 섹시 스타들의 지지를 받으며 성장한 돌체 & 가바나는 ‘스타를 더 스타답게(Stars look like stars)’ 만드는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마돈나는 “가장 좋아하는 셔츠는 D&G” 라고 공언함으로써 돌체 & 가바나를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만드는데 일조하였다. 그러나 이 두 디자이너의 진정한 비밀은 평범한 여성들도 그들의 옷을 입으면 셀러브리티와 같이 된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도메니코 돌체는 “오늘날 디자이너는 ‘현실의’ 여성에게서 영감을 얻어야 한다.“는 말로 스타일의 현대성과 현재성을 강조하였다. 돌체 & 가바나의 뮤즈이자 돌체 & 가바나 10주년을 기념하는 책의 편집자이기도 했던 이사벨라 로셀리니는 “내가 처음 입었던 그들의 옷은 화이트 셔츠였다. 그것은 매우 소박한 아이템이었지만, 내 가슴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도록 정교하게 재단된 것이었다.“ 라는 말로 돌체 & 가바나의 스타일을 지지하였다.

2007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선보인 코르셋 드레스와 애니멀 프린트 드레스. 20주년이 지나 30주년을 향하는 지금도 그들의 디자인은 여전히 매혹적이다.

돌체 & 가바나의 현재, 그리고 미래

1985년, 여성복으로 시작한 돌체 & 가바나는 언더웨어, 수영복을 비롯해 남성복, 액세서리, 아이웨어, 아동복, 향수 등으로 점차 라인을 확장하며 거대한 패션 하우스를 만들어왔다. 1994년에는 돌체 & 가바나의 세컨드 브랜드인 D&G를 런칭, 합리적인 가격과 시그니처 라인에 필적할 만한 완성도 높은 디자인을 바탕으로 보다 감각적인 룩을 전개하였다. D&G는 보다 젊은층을 타깃으로 화려한 색감과 다양한 소재, 정형화된 형식을 깨는 믹스 매치 스타일링을 선보임으로써 세련된 섹시룩을 표현하였다. D&G는 컬렉션의 무대를 젊은이들이 모여있는 카페나 클럽으로 옮겨 펼치는 파격적인 시도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난 2011년 9월 밀라노 컬렉션 기간 중, 돌체 & 가바나가 세컨드 브랜드 D&G를 정리할 계획임을 밝혀 충격을 주었고, 현재는 단계적으로 철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샤넬처럼 단일화된 브랜드로 멋지게 지속하고 싶다는 것이 두 디자이너의 공식적 입장이지만, 1세대 세컨드 브랜드의 상징격인 D&G의 철수는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닌 듯 하다. D&G의 철수 배경에는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유럽의 경제 위기와 이와 맞물린 이탈리아 경기 침체의 영향이 큰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2005년, 돌체 & 가바나의 20주년 기념 책인 [20 years Dolce & Gabbana]를 편집한 저널리스트 사라 무어(Sarah mower)는 그들을 ‘이탈리아 정신의 하나’라고 정의하였다. 뉴욕 타임스는 돌체 & 가바나의 20주년 기념 기사에서, “많은 사람들이 낡은 청바지나 단정치 못한 코르셋, 앞코가 뾰족한 구두, 광택이 번지르르한 수트, 풋볼 티셔츠와 같은 아이템들이 세계적인 수출품이 될 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돌체와 가바나는 그것을 해냈다. 그들의 성공은 그들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뛰어난 테일러링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도메니코 돌체와 엘레강스한 스타일링 능력으로 유행을 선도하는 스테파노 가바나. 서로 다른 성향의 둘은 탄탄한 파트너십을 바탕으로 현재도 창조적인 컬렉션을 발표하고 있다.

함께 일하고 함께 인생을 살아온 두 디자이너는, 그들의 브랜드가 전 세계적으로 성공하기까지 20여 년 동안 동업자이자 연인 사이를 유지해왔다. 듀오는 그들의 옷뿐만 아니라 그들 자신이 유명해지는 것을 즐겼다. 그들은 자신들에 대한 책을 지속적으로 발간하였고, 정기적으로 성대한 파티를 열어 패션계와 교류하였다. 그러던 그들이 2005년 공식적인 결별을 선언하였다. 결별 이후에 대한 패션계의 우려에 대하여 그들은, 결별이 그들의 비즈니스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하였고, 결별 이후 현재까지 계속해서 함께 컬렉션을 발표하고 있다.

그들의 성공은 서로 정반대의 매력을 탄탄한 파트너십을 통해 잘 조율해 온 것에 기인한다. 20주년이 지난 현재 그들은 그동안 유지해 온 섹슈얼한 표현 방식의 방향을 선회하여, 좀 더 감각적이며 때론 낯설지만 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관능적 스타일을 표현해내고 있다. 20주년을 넘어 30주년을 향하고 있는 지금, 열정과 사랑의 결합으로 창조된 듀오의 패션은 여전히 관능적이며, 지중해풍의 매력과 위트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럭셔리하며 창조적이다.

너무 섹시해 부담스럽다고? 누구나 입는 옷은 안 만든다

밀라노 작업실서 만난 패션브랜드 돌체&가바나 공동창업자 돌체와 가바나

2012 가을·겨울 패션쇼의 마지막 순서에 등장해 관객에게 인사하는 스테파노 가바나(왼쪽)와 도메니코 돌체. 돌체&가바나의 패션쇼는 항상 밀라노 시내에 있는 피아베 가(街)의 브랜드 전용 쇼장 ‘메트로폴’에서 열린다.

1985년, 이탈리아 밀라노. 2명의 20대 청년은 종잣돈 200만 리라(당시 환율 기준 약 90만원)를 들고 패션 사업을 시작했다. 청년 도메니코 돌체와 스테파노 가바나는 각자의 이름을 따 브랜드 이름을 ‘돌체&가바나’로 정했다. 현대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성장한 ‘돌체&가바나’는 창업 후 27년 만에 전 세계 100여 개 나라에서 ‘명품’으로 불리며 한해 1조6500억원씩 판매되는 규모로 성장했다. 남성·여성복을 아우를 뿐만 아니라 향수와 안경·선글라스·시계ㆍ화장품, 그리도 캐주얼 브랜드 ‘D&G’도 이들이 만들어 낸다. 이탈리아 밀라노 중심가에 있는 그들의 작업실에서다.

지난해 11월 한국을 방문해 고객과 함께 파티를 열었다. 한국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았나.

스테파노 가바나(이하 가바나) “한국 고객들이 너무나 멋져서 놀랐다. 첫 한국 방문이었고 한국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가 현장에서 본 것은 굉장히 패션에 민감하고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모두 잘 차려 입은 것뿐만 아니라 의상에 매우 세심하게 신경 쓴 것을 알 수 있었다.”

도메니코 돌체(이하 돌체) “이번 우리 남성복 패션쇼(2012년 가을·겨울 밀라노 컬렉션)에는 두 명의 한국인 모델이 등장했다. 총 4명의 아시아 남성 모델이 섰는데 나머지 둘은 중국인과 일본인이었다. 한국을 방문해 한국인들이 어떻게 옷을 입는지 알게 된 것은 우리에게 매우 큰 자극이 됐다. 이번 컬렉션에도 대단한 영감을 준 방문이었다.”

가바나 “앞으론 ‘가장 섹시한 여성’ ‘가장 섹시한 남성’도 아시아 사람이 될 것이다. 이번 패션쇼에서 ‘섹스 심벌’로 내세운 모델 역시 동양 사람이다. 우리도 전엔 미국에 더 자주 가고 관심이 많았지만 요즘엔 아시아에 눈을 돌리고 있다. 아시아는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우린 그런 아시아가 점점 더 좋다. 지난해 서울을 방문할 때도 중국에 들렀다 간 것이었는데 아시아에서도 한국인, 특히 남성들이 대단히 잘 생기고 패션 감각이 훌륭하다는 걸 깨달았다. 다음에 갈 땐 더 많은 한국인들과 개인적으로 만나 어울리고 싶다. 저녁도 같이 먹고 클럽에도 함께 가고 말이다.”

창업을 결심했을 때 현재와 같은 성공을 예상했었나.

가바나 “전혀 꿈꾸지 못했다. 난 패션 디자이너가 되리라곤 생각도 해본 적 없었다. 도메니코야 양복장이었던 아버지 덕분에 패션에 익숙하기라도 했다. 한데 내 부모는 패션과 아무런 관계 없는 일을 하셨고 난 패션이 뭔지도 몰랐다. 도메니코는 원래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했다.”

돌체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긴 했지만 그냥 꿈만 꾼 정도였다. 그냥 막연히 바랐던 거다. 시작부터 우린 휴가도 한 번 간 적 없을 만큼 열심히 일했다. 창업 후 수년 동안은 ‘돌체&가바나’를 위해 모든 걸 바쳤다. 하지만 지금 같은 성공은 꿈조차 꾸지 못했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출생인 돌체는 패션 디자인을, 밀라노 태생의 가바나는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다. 80년대 초 밀라노의 한 패션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함께 일한 두 사람은 연인 관계로 시작해 ‘돌체&가바나’ 브랜드를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연인 관계는 브랜드 창립 20주년이 되던 2005년 2월 초 종료됐다. 당시 이탈리아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와 인터뷰를 한 돌체는 “사업상으로 여전히 우린 함께”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영국의 일간 신문 ‘가디언’은 “한 침대를 쓰던 동업자들이 서로에 대한 연인 감정이 없어지면 대개는 다투며 재산을 나누려고 난리법석일 테지만 수천억원짜리 비즈니스를 함께 하는 관계라면 얘기가 다르다. 더군다나 자신들의 이름 자체가 사업에서 중요한 부분이라면 더욱 그러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돌체&가바나’를 시작한 80년대의 패션과 지금은 무엇이 다를까.

돌체 “패션에 진짜 창의성이 필요한 시대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진짜 패션이란 고급 코트와 재킷, 슈트 같은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옷은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세심하게 잘 다듬어진(sophisticated) 이런 옷은 갑남을녀를 위한 것도 아니고 누구나 입을 필요도 없다. 80년대는 명품 브랜드의 가방과 구두 같은 액세서리만 보이던 때였다. 그러던 게 요즘은 제대로 된 옷, 진짜 패션을 이해하는 사람들을 위한 시대로 바뀌고 있다.”

당신들의 옷은 꽤 야하고 대담한 편이다. 장식도 화려하고 때론 노출도 과감하다. 점잖은 옷을 원하는 여성들에게 ‘돌체&가바나’는 좀 부담스럽다.

가바나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지 않나. 섹시하다는 게 부담스럽다면 우리 옷을 사지 말아야지. 누구나 우리 옷을 좋아한다는 건 반대로 말해 우리 디자인이 어중간(mediocre)하단 얘기다. 그렇게 하고 싶진 않다. 우리 옷은 매우 여성적이면서도 한편으론 검소하고 소박한(austere) 편이다. 소탈해 보이고 싶은 여성이라면 ‘돌체&가바나’ 남성복을 골라도 되고.”

패션이 예술이라고 생각하나.

가바나 “패션 디자이너는 예술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패션이 예술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이란 유일무이한 무엇이어야 하는데 옷은 그렇지 않으니까. 내 생각이 너무 진부한지도 모르지만 패션이란 시대를 반영하는 문화적인 흐름 정도가 아닐까 싶다.”

돌체 “내게 패션이란 팔 수 있는 상품이다. 예술이란 뭔가 숭고한 것이어야 하고. 시간이 지나서 패션이 예술적인 형태를 띨 순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패션 디자인에 자주 사용하는 표범 무늬엔 어떤 의미가 있는 건가.

가바나 “다들 우리 걸 따라한다. 우린 이브생로랑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그 이후로 모두가 우리 걸 베끼고 있다.”

돌체 “1994년에 처음 사용한 것으로 기억한다. 이것은 과감한 화려함(extravagance)이다. 대놓고 섹시하려 하기보다는 표범 무늬를 통해 이색적인 화려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지난달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돌체&가바나 패션쇼의 마지막 무대다. 이 브랜드 남성복 패션쇼의 피날레는 언제나 모든 모델들이 정장 차림으로 등장한다.

‘돌체&가바나’에 돌체가 없거나 가바나가 없다면.

돌체 “완전히 다른 브랜드가 될 것이다. 가바나는 프린트를 좋아하고 꽃무늬, 행복해 보이는 옷을 사랑한다. 난 슈트, 슈트, 슈트만 찾을 것이다. 가바나는 나보다 훨씬 창의적이고 용기를 북돋는 성격이고 관능적인 디자인을 좋아한다.”

그렇다면 둘이서 의견 충돌이 있을 법한데.

가바나 “모든 것을 함께 결정한다. 돌체는 남성복과 스포츠 라인에 더 많은 관심을 쏟고 난 영·유아복이나 여성 구두, 가방 같은 액세서리에 더 신경을 쓴다. 둘이라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혼자서 모든 걸 다 할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모든 일을 같이 할 시간이 없으니 서로 분담해 가며 하지만 최종 결과물은 무조건 함께 결정한다. 아주 아주 엉망인 ‘돌체&가바나’의 무엇이 있다면 그것 역시 우리 둘이 결정한 것이다. (웃음)”

함께 일한 지 곧 30주년이 된다.

가바나 “그런 걸 상기시키다니! 그런 질문은 하지 말아 달라.”

돌체 “의사를 불러줘.”

(이 대목에서 가바나는 얼굴을 감싸며 우울한 표정을 짓고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장난을 쳤고 돌체는 이마에 손을 얹으며 아픈 척을 했다.)

가바나 “우린 전혀 변하지 않았다. 30년이나 지났다고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우린 아직 젊고 싱그러운 사람들이다.(웃음)”

돌체 “맞다. 그렇다. (웃음)”

창업 후 지금까지 가장 힘든 순간이 있었다면.

가바나 “힘든 일이 아주 많았는데…. 성장은 언제나 쉽지 않은 일이고 그 과정에서 희생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건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바다. 새로운 일이 일어나면 옛것은 버려야 한다. 힘든 일이 많이 있었지만 솔직히 말해 구체적인 에피소드까진 기억하지 못하겠다. 중요한 건 우리가 운이 좋은 편이었고 대단한 성공을 이뤄낼 수 있었단 거다. 열정 덕분에 어려운 일을 둘이 함께 이겨낼 수도 있었고.”

돌체 “우린 대단히 긍정적인 사람들이다. 울기도 하고 고통도 겪지만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단 긍정적으로 밀고 나가는 편이다. 나이가 들수록 현명해진달까. 학교에서 시험을 보지 않으면 성적을 올리기 어렵듯이 인생도 변화나 어려움 없인 더 성숙하기 힘든 것 아닐까.”

디자이너가 되지 않았다면.

돌체 “건축가가 됐을 것이다.”

가바나 “배우.”

돌체 “스테파노는 아마 코미디언이 됐을 것이다.”

마돈나가 우리 옷 입었다고? 마음 졸이며 영화 보다 환호

2008년 마돈나가 발표한 앨범 ‘하드 캔디’의 표지. 돌체&가바나의 의상을 입었다.

‘돌체&가바나’가 유명 브랜드로 발돋움하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팝스타 마돈나다. 도메니코 돌체는 “1980년대 후반, 우연히 마돈나의 콘서트를 보러 갔을 때만 해도 ‘언제쯤 마돈나 같은 스타에게 우리 옷을 입힐 수 있을까’ 하고 바라기만 했다. 그때 마돈나는 장 폴 고티에의 의상을 입고 공연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돌체&가바나와 마돈나의 첫 인연은 91년 마돈나가 영화 ‘진실 혹은 대담(Truth or Dare)’에 이 브랜드 옷을 입고 출연하면서 시작됐다.

스테파노 가바나는 “주변 지인에게서 ‘영화 촬영 현장에서 봤는데 마돈나가 너희들 옷을 입고 나오는 것 같다’는 얘길 들었을 때만 해도 믿지 않았다”면서 “영화에서 직접 그 의상을 확인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몇 달 동안 고민도 했다”고 털어놨다. “기대를 하고 영화를 봤는데 정작 우리 옷이 아니면 어쩌나 너무 걱정이 됐다”는 것이다. 다행히 마돈나의 의상은 돌체&가바나의 것이었고 마돈나가 이 영화 시사회에서 입을 드레스를 직접 돌체&가바나에게 의뢰하기에 이른다.

1 1993년 마돈나의 ‘걸리 쇼 투어’에 쓰인 돌체&가바나의 의상 디자인 스케치 2 (왼쪽부터) 스테파노 가바나, 마돈나, 도메니코 돌체.

돌체는 “우린 그때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꿈이 이뤄진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이후 돌체&가바나는 마돈나의 월드투어 콘서트 의상을 디자인했고, 더불어 미국 시장에서도 큰 인기를 얻으며 명성을 구축해 나갔다. 이들의 인연은 단발로 그치지 않고 계속됐다. 이들의 표현을 빌리면 “20년 넘는 대단한 우정”이다. 돌체&가바나는 2001년 봄·여름 패션쇼의 주제를 아예 ‘마돈나-80년대’로 정하기도 했고, 2010년 3월엔 마돈나와 함께 ‘MDG’라는 선글라스를 출시하기도 했다. 마돈나 이름의 첫 글자 M과 두 디자이너 이름의 첫 글자를 합쳐 지은 이름이다.

대개의 경우 브랜드 이름에 스타 이름을 덧붙이는 정도로 작명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들의 결속력이 얼마나 끈끈한지 짐작하게 하는 사례다. 돌체는 “서로 너무 바빠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우린 여전히 친구 관계로 잘 지내고 있다”면서 “요즘도 크리스마스 파티를 함께 하거나 미국 뉴욕 같은 곳에서 만나 어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키워드에 대한 정보 돌체 가바나

다음은 Bing에서 돌체 가바나 주제에 대한 검색 결과입니다. 필요한 경우 더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터넷의 다양한 출처에서 편집되었습니다. 이 기사가 유용했기를 바랍니다.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돌체앤가바나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전 방문해서 다 입어만 봤어요!

  • 노필터티비
  • nofilter tv
  • 김나영
  • nayoung kim
  • 최신우
  • 신우
  • sinu choi
  • 돌체
  • 돌체앤가바나
  • 입어만볼게요

돌체앤가바나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전 #방문해서 #다 #입어만 #봤어요!


YouTube에서 돌체 가바나 주제의 다른 동영상 보기

주제에 대한 기사를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돌체앤가바나 청담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전 방문해서 다 입어만 봤어요! | 돌체 가바나,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