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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입양아 출신 IT부호 래리 엘리슨은 독점적 경영과 다양한 가십으로 유명합니다.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독점적인 경영방법으로 B2B 데이터베이스 시장을 석권한 그는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와 같은 IT 거두입니다. 히피생활에 빠져 있던 젊은 시절,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성공으로 연결시킨 재능, 부자치고도 요란한 재산목록과 어린 여자친구까지… 래리 엘리슨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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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엘리슨 – 나무위키

래리 엘리슨 · 1944년 출생 · 뉴욕 시 출신 인물 · 미국의 남성 기업인 · 시카고 대학교 출신 · 유대계 미국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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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11/2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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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엘리슨의 명언: 그의 50가지 최고의 명언과 이 사람은 누구 …

오라클 창업자 래리 엘리슨(Larry Ellison) … 이 기사에서 우리는 이 남자가 누구인지 설명하고 래리 엘리슨의 베스트 문구 50개를 나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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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economiafinanzas.com

Date Published: 8/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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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클 설립자, 래리 엘리슨의 웰니스 연구소 – 포브스

세계 최고 부자 5위에 오른 래리 엘리슨, 그가 하와이 라나이섬 전체를 웰니스 실험실로 바꾸는 과정을 조용히 진행 중이다. 현재 코로나바이러스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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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jmagazine.joins.com

Date Published: 1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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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CEO 열전] 사악한 MS, 구글과 대립각 세운 오라클 창업주 …

엘리슨은 실리콘밸리의 산증인이다. 1977년 오라클의 전신이 되는 ‘소프트웨어 개발 연구실(SDL)’이라는 회사를 캘리포니아 샌타클래라(실리콘밸리)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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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it.donga.com

Date Published: 10/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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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래리 엘리슨

  • Author: Weekly Digest
  • Views: 조회수 51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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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2. 1. 16.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R5itGuvy-is

[CEO 열전: 래리 엘리슨] 입양아의 자격지심, 세계 7번째 부자로 만들다

1977년 엘리슨은 앰펙스를 떠나 프리시전 인스트루먼트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 회사는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할 필요가 생겨 외부에 개발을 의뢰하기로 결정했는데, 이 사업을 엘리슨이 따내게 되었다. 엘리슨은 앰펙스에서 일하던 시절 알게 된 동료인 밥 마이너와 에드 오츠에게 연락했다. 둘을 설득해 DBMS만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업체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초기 자본금은 고작 2000달러(227만 원)였다. 이 2000달러 가운데 1200달러(136만 원)를 엘리슨이 냈고, 남은 800달러(91만 원)를 둘이 반반씩 냈다. 비록 1200달러라는 보잘것없는 금액이었지만, 이는 오라클 전체 지분의 60%에 달하는 수치였다. 현재 500억 달러(56조8250억 원)가 넘는 그의 막대한 재산은 바로 이 지분 60%에서 시작되었다.

처음 정한 회사의 이름은 소프트웨어 개발 연구실(SDL)이라는 멋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이름이었다. 1979년 이를 의식한 것인지 회사 이름을 ‘릴레이셔널 소프트웨어(관계형 소프트웨어)’로 변경했다. 회사의 주력 상품이 관계형 DBMS라는 점에서 착안한 이름이다. 하지만 이 역시 촌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참다못한 엘리슨은 회사 이름을 회사의 주력 상품인 ‘오라클 데이터베이스’에서 따온 ‘오라클’로 최종 결정했다.

먼저 시장을 선점하고 그다음 문제를 고쳐라

엘리슨과 오라클은 IBM이 관계형 DBMS ‘시스템R’을 구축하기 위해 개발한 SQL이라는 데이터베이스용 프로그래밍 언어에 주목했다. SQL은 DBMS를 구축하는데 최상의 기술이었으나, 이를 이용하려면 IBM의 비즈니스 컴퓨터 ‘메인프레임’을 구매해야만 했다. 메인프레임은 대규모 기업에게는 적합한 하드웨어였지만, 중견 기업이나 작은 기업(SMB)에겐 적합한 시스템이 아니었다.

그들에겐 유닉스(UNIX) 기반의 하드웨어가 더 적합한 시스템이었다. 엘리슨과 오라클은 유닉스 하드웨어에서도 SQL 기반으로 만들어진 DBMS를 이용할 수 있도록 오라클 데이터베이스를 출시했다. 이 새로운 DBMS는 IBM의 시스템과 DBMS를 구매하는 것이 부담되었던 중견 기업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게 되었고, 오라클이 시장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해주었다.

[방성수의 글로벌 경제 72] 래리 엘리슨 오라클 창업자 겸 회장 소수 인종 차별 논란…“실리콘밸리 신화의 이면” 비판

소수 인종·여성 차별 논란에 휘말린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 사진 블룸버그

래리 엘리슨(Larry Ellison·75) 오라클 회장 겸 CTO(최고기술책임자)가 소수 인종, 여성 차별 논란에 휘말렸다. 블룸버그, 와이어드 등은 오라클의 소수 인종과 여성 차별 고용 정책이 미국 노동부 조사 결과 확인됐다고 1월 24일(현지시각) 일제히 보도했다.

미국 노동부는 “오라클의 최근 대졸 신규 채용자 500명 가운데 흑인은 6명, 히스패닉계는 5명으로 확인되는 등 소수 인종, 여성 지원자를 극단적으로 차별, 2013~2016년 4000만달러의 임금을 부당하게 줄인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소수 인종, 여성 직원이 같은 일을 하는 백인 남성에 비해 평균 25% 낮은 임금을 받는 등 임금 차별도 확인됐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작년 1월 인종과 성차별을 금지한 연방법을 위반했다며 오라클을 제소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오라클이 최종 패소할 경우 수억달러 손실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소수 인종(유대인), 저소득 가정 입양아 출신으로 대학 중퇴 학력을 딛고 거부가 된 엘리슨 회장이 소수 인종, 성차별 혐의를 받은 것에 대해 실리콘밸리 성공 신화의 어두운 이면이 드러난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풍운아, 악동, 플레이보이’ 평가 갈려

‘실리콘밸리의 풍운아’ ‘실리콘밸리의 악동’ ‘실리콘밸리의 플레이보이’.

실리콘밸리와 연결된 별명들이 상징하듯 엘리슨 회장은 ‘억만장자 공장’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기업인이다. 2012년 개인 재산 440억달러(약 50조원)로 세계 억만장자 순위 3위에 오르는 등 ‘억만장자 톱10 리스트’에 빠짐없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현재 재산은 595억달러(약 67조원)로 추정된다(2018년 11월 현재·포브스).

그에 대해서는 거듭된 혁신, 앞을 내다본 투자로 세계 최대의 데이터베이스 기업을 키운 위대한 기업인이란 평가와 ‘쓰레기 같은 독설(trash-talk)’을 불사하며 경쟁자를 밟고 올라선 무자비한 기업인이란 평가가 엇갈린다. 개인 제트기와 초대형 요트를 굴리는 호화로운 생활, 화려한 여성 편력으로 ‘플레이보이’란 딱지가 떨어지지 않는다.

엘리슨 회장은 1944년 뉴욕의 빈민가 브롱크스에서 플로렌스 스펠만의 혼외자로 태어났다. 생물학적 아버지는 이탈리아계 공군 조종사로 알려져 있다. 생후 9개월 때 폐렴에 걸리자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생모가 외삼촌 부부에게 입양 보냈다. 48세 때 생모와 첫대면했다고 한다. 양아버지는 뉴욕 엘리스섬의 이름을 따 성을 엘리슨으로 개명한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자로 하급 공무원이었다.

비상하지만 반항기 가득한 소년으로 성장한 엘리슨 회장은 일리노이대 어바나샴페인 캠퍼스에 2년간 다니다 양어머니가 사망하자 학업을 포기했고, 시카고대에 입학했다가 한 학기 만에 중퇴했다.

청년 엘리슨이 포드 선더버드를 몰고 캘리포니아주에 도착한 것은 1966년이었다.

‘웰스 파고’ ‘암달’을 거쳐 ‘암펙스’에 정착, 미국중앙정보부(CIA)가 발주한 데이터베이스프로그램 ‘오라클’을 개발하던 그의 인생은 IBM의 컴퓨터 과학자 에드거 코드가 쓴 ‘관계형 데이터베이스’란 논문을 읽고 확 달라졌다.

고객 이름, 나이, 주소, 연락처 등 다양한 데이터로 표를 구성하면 어떤 항목으로든 조회하고 출력이 가능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수 있다는 코드의 주장은 지금은 당연하지만 당시에는 획기적인 아이디어였다.

‘돈 냄새’를 맡은 엘리슨 회장은 1977년 친구 두 명과 함께 ‘소프트웨어 개발 연구소(1982년 오라클로 개명)’를 창업, 2년 뒤 ‘오라클2’를 발표했다. 창업 자금 2000달러 가운데 1200달러를 엘리슨 회장이 냈다.

IBM·MS·HP·구글과 싸우며 성장

사업 초기 영업직원이 일단 계약을 따면 미래 매출에 해당하는 수당까지 챙겨주는 ‘영업 제일주의’로 경쟁사 IBM을 누르고 돈방석에 올랐다. 하지만 계약을 따기 위해 없는 기능을 과장하는 일이 다반사였고 거액 소송으로 회사가 흔들리자 1990년 직원 10%를 감원했다. 1990년대 ‘사이베이스’ ‘인포믹스’ 등과 죽기살기식 난타전을 벌였고 경쟁사들이 경영난으로 하나둘 사라지면서 승자가 됐다.

비슷한 시기에 창업해 IBM 컴퓨터용 소프트웨어를 팔아 성장한 마이크로소프트(MS)와도 무자비한 싸움을 했다. MS 상장 하루 전날 오라클을 전격 상장하는 등 자존심 대결에 이어 MS가 윈도용 SQL 서버로 데이터베이스 시장을 잠식하자 ‘안티 MS’의 선봉을 자처했다. “가까운 미래에 MS가 윈도에 점심식사를 끼워팔 것”이라는 독설도 퍼부었다.

닷컴 버블 붕괴, 9·11 테러, 반독점 소송(2003~2004년) 등의 위기를 피플소프트, 선마이크로시스템스 등의 인수·합병으로 극복했다.

2009년 ‘자바’를 개발한 선마이크로시스템스를 인수한 뒤 구글과 ‘맞짱’을 떴다. 2010년 구글의 모바일 운영체제 안드로이드가 ‘자바’ 기술 37개를 무단 도용했다며 88억달러에 달하는 초대형 저작권 소송을 제기했다. 1심 구글 승리(2012년), 2심 오라클 승리(2014) 등 엎치락뒤치락한 끝에 작년 3월 8년간의 전쟁에서 승자가 됐다.

‘실리콘밸리의 산파 기업’인 HP와도 각을 세우고 있다. 2009년 절친 마크 허드가 HP CEO에서 경질되자 오라클 사장으로 즉각 영입했고, HP는 기밀 유출 혐의로 소송을 제기했다. 오라클은 HP, MS, 시스코시스템스, 델, 후지쓰 등이 결성한 ‘안티 오라클’ 동맹으로부터 협공을 받고 있다.

클라우드 간판 기업으로 뜬 세일즈포스 창업자 마크 베니오프(44)와 ‘애증 관계’도 유명하다. 한때 오라클 창업자와 최연소 부사장으로 호흡을 맞춘 두 사람은 이제 서로 공격하는 사이가 됐다. 하지만 세일즈포스의 기업 가치가 400억달러를 넘으면서 창업 자금의 3분의 1(100만달러)을 투자한 엘리슨 회장의 재산도 덩달아 불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고 사방에 적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고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와는 둘도 없는 ‘절친’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잡스 회장의 애플 복귀 당시 애플 이사회 멤버로 참여, 지원 사격을 하기도 했다. 출신과 성장 배경(이민자 자손, 저소득층 입양아, 대학 중퇴)의 동질성이 개성 강한 두 사람을 연결했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에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친한 사이로 알려졌다. 테슬라의 초기 투자자인 그는 2대 주주 자격으로 작년 말 테슬라 이사회 참여를 선언했다.

래리 엘리슨의 명언: 그의 50가지 최고의 명언과 이 사람은 누구인가

Larry Ellison의 문구는 매우 고무적이며 우리가 성장하고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거나 최소한 시도하도록 동기를 부여할 수 있으므로 읽는 것이 좋습니다. 오라클의 창립자가 그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들 중 한 명입니다. 현재 순자산은 112,6억 달러입니다. 그가 우리에게 줄 조언이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 기사에서 우리는 이 남자가 누구인지 설명하고 래리 엘리슨의 베스트 문구 50개를 나열합니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아주 적은 돈으로 시작한 이 억만장자의 정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래리 엘리슨의 50가지 최고의 명언

왜 우리는 Larry Ellison의 인용문을 읽는 것을 귀찮게 해야 합니까? 글쎄, 이 남자의 최고의 재능은 그의 추론과 논리이기 때문이다. 두 가지 특성 모두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세계와 일치합니다. 그는 인간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긍정적인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즐깁니다. 그에 따르면 이러한 측면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본입니다. 그는 자신의 한계에 도달하는 데 집착하고 우리 모두가 자신의 위치를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 모든 생각과 이념은 그의 문구에서 공유됩니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살펴볼 가치가 있습니다.

“오라클을 구축하는 것은 어렸을 때 수학 퍼즐을 푸는 것과 같습니다.” “기업의 주된 목적은 돈을 버는 것입니다. 정부의 주요 역할은 그 돈의 많은 부분을 나머지에게 주는 것입니다.” “혁신적인 소프트웨어가 나오면 Microsoft는 이를 복사하여 Windows의 일부로 만듭니다. 이것은 혁신이 아닙니다. 이것이 혁신의 끝입니다.” “일정 금액이 지나면 거의 모든 것을 자선단체에 기부할 생각입니다. 그것으로 무엇을 더 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그것을 시도, 당신은 그것을 보낼 수 없습니다. 나는 노력해 왔다.” “나는 성공에 필요한 모든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인류에 대항하는 것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약간의 이점만 있는 것입니다.” “성공을 결정짓는 내 성격의 가장 중요한 측면. 그것은 관습적인 지혜, 전문가의 의심, 권위에 대한 나의 질문이었습니다. 부모와 선생님과의 관계에서는 고통스러울 수 있지만 인생에는 큰 도움이 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엄청난 이익을 내고 지금까지 가장 수익성이 높은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회사가 될 것입니다.” “당신은 그것에 대해 걱정할 수 없습니다. 주식 시장이 하락하거나 헤드라이트의 사슴처럼 얼어붙는 것을 볼 때 당황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당신이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내가 무언가를 할 때 그것은 자기 발견에 관한 것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배우고 발견하고 싶어요.” “소프트웨어는 규모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키가 클수록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두 배의 소프트웨어를 판매한다면 그 소프트웨어를 구축하는 데 두 배의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따라서 고객이 많을수록 규모가 커집니다. 키가 클수록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무도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가 인수 전략이 극도로 위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혁신적이었습니다.” “저는 Oracle에 입사한 첫날부터 엔지니어링을 실행해 왔으며 여전히 엔지니어링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매주 데이터베이스팀, 코어웨어팀, 애플리케이션팀과 회의를 했다. 나는 엔지니어링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사회가 나를 퇴출시킬 때까지 그렇게 할 것입니다.” “저는 제가 매우 목표지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메리카스컵에서 우승하고 싶습니다. 오라클이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회사가 되었으면 합니다. 나는 여전히 마이크로소프트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여행이다. 한계를 발견하는 여정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사업에서 하는 모든 것을 하면, 당신은 잃을 것입니다. 정말 앞서가는 유일한 방법은 달라져야 합니다.” “잘못된 멋진 말이 있습니다. 왜 산에 올랐습니까?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나는 그 산에 올라갔다. 그건 어리석은 짓이야. 당신이 여기 있기 때문에 산에 올랐고 당신이 할 수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어떨지 궁금하셨죠? “지금 행동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위대한 성취는 성공을 추구하기보다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됩니다.” “지금부터 XNUMX년 후, 나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나는 그들이 우리를 벤치에서 더 깊이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은행 영역에서 회사를 인수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소매 공간에서 회사를 인수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통신에서 회사를 인수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비즈니스 인텔리전스를 강화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회사이지만, 당신은 아직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믿는 것과 다른 신념을 가진 최초의 사람이 되었을 때, 당신은 기본적으로 ‘나는 옳고 다른 사람들은 틀렸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매우 불쾌한 위치에 있습니다. 그것은 행복감이며 동시에 공격에 대한 초대입니다.” «빌 게이츠 (Bill Gates) 그는 개인용 컴퓨터 산업의 교황입니다. 누가 지을지 결정하십시오.”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당신이하는 일을 믿어야합니다.” “저는 우리가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매출이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즈니스를 성장시킬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우리는 틀에 박힌 방식으로 사업을 재편하고 지분을 확보해야 했습니다.” “그는 인수에 대해 격렬하게 반대했습니다. 이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구입합시다. 글쎄요, 그것은 약간의 과장입니다. 우리는 그보다 조금 더 전략적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판매용이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단순히 전자 회사의 데스크탑이 되는 것입니다.” “혁신할 때 사람들이 당신에게 미쳤다고 말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스티브 잡스를 모델로 하는 것은 ‘피카소처럼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빨간색을 더 사용해야 하나요? “당신은 더 넓은 시야를 갖고 이것이 다른 산업과 같은 산업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통신, 철도; 그들은 통합을 거쳤습니다. IT 산업이 다르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것은 누구에게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지만, 내가 이런 말을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통합자로서 혼자인 이유입니다.” “빌 게이츠는 사람들이 그가 진짜 록펠러인데도 그가 에디슨이라고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미국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으로 게이츠를 언급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부는 지능과 같지 않습니다. “어쨌든 본부에서 벗어나 반성할 시간을 가지면 전략의 오류를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일을 다시 생각해야합니다. 그것은 종종 내가 저지른 실수나 다른 사람이 저지르려고 하는 실수를 수정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우리는 반대되는 일을 해왔습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처음부터 작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앞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통념에서 잘못을 찾는 것뿐이다.” “여러가지 삶을 살다 보면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집니다. 그래서 그것을 처리합니다. 그들은 당신이 무엇을 하려는지 모릅니다.” “대부분의 기술 리더는 비즈니스 환경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들은 정말로 교구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실리콘 밸리에 간 년뿐입니다. 그것이 그들이 자란 환경입니다.” “오라클이란? 사람들이야. 우리는 HR 부서가 이 조직을 만들고, 그 사람들을 찾고, 그 사람들을 성장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인공 지능 소프트웨어와의 가상 관계에 주의하십시오.”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루 종일 비디오 게임을 하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파요.” “Android용 프로그램을 작성할 때 모든 작업에 Oracle의 Java 도구를 사용하고 마지막에 버튼을 누르고 이것을 Android 형식으로 변환합니다.” “우리 삶에서 중요한 것은 사랑과 일, 반드시 그 순서는 아니지만 둘 다 중요하다.” “우리 사업에는 새로운 기술의 개발과 함께 엄청난 불확실성이 있습니다.” “미래에 있더라도 현재에서 사물을 보십시오.” “그렇게 느껴지지 않더라도 자신 있게 행동하십시오.” “여행하지 않고 길을 따라 여행할 때마다 위험이 있습니다.” “누구나 사고 싶어 하는 것은 무엇이든 팔 것입니다.” “일과 사랑은 일종의 행복을 제공하기 위해 공모합니다.” “지난 XNUMX년 동안 사업을 어떻게 운영했는지 말하지 마십시오. 대신, 앞으로 XNUMX년 동안 어떻게 사업을 운영하고 싶은지 알아내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당신이 당신의 영혼을 팔 준비가 되어 있다 하더라도, 당신은 보통 아무도 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래리 엘리슨은 누구인가

1944년, Larry Ellison으로 더 잘 알려진 Lawrence Joseph Ellison은 브롱크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미혼모는 그를 시카고로 보내 그의 숙모와 삼촌과 함께 살기로 결정했습니다.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수업을 듣기 전에 저는 중산층 고등학교에 다녔습니다. 그의 양어머니가 사망한 후 Larry Ellison은 대학을 중퇴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시카고 대학에서 다시 시도했지만 한 학기 후에 그는 다시 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22세에 Ellison은 Berkeley로 이사하여 여러 직업을 가졌습니다. 그 중 기술 회사 Ampex에서 CIA용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것이 눈에 띕니다. 1977년 그는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 연구소, Bob Miner 및 Ed Oates와 함께. 이 회사 21.785달러로 시작하여 이 자본을 XNUMX백만 달러로 증자했습니다.s 2019년 XNUMX월. 오늘은 오라클 코퍼레이션.

이제 우리는 Larry Ellison의 문구를 알았으므로 이를 사용하여 동기를 부여하고 자신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IT CEO 열전] 사악한 MS, 구글과 대립각 세운 오라클 창업주 래리 엘리슨

[IT CEO 열전] 사악한 MS, 구글과 대립각 세운 오라클 창업주 래리 엘리슨 강일용 [email protected]

[IT동아 강일용 기자] 회사에 저장된 데이터를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소프트웨어인 관계형 데이터베이스 관리 시스템(DBMS)을 만들어 세계 7번째(2017년 포브스 기준)로 부자가 된 인물이 있다. 바로 DBMS 업계 1위 기업 ‘오라클’의 창업자이자, 전 최고경영자(CEO)였고, 현 최고기술책임자(CTO)인 래리 엘리슨(Lawrence Joseph Ellison) 오라클 회장이다.

데이터베이스의 모음인 인터넷과 데이터 중심 기업 경영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DBMS는 컴퓨터 운영체제 못지않게 중요한 소프트웨어로 떠올랐다. 오라클은 이 DBMS 업계에서 IBM, MS, 오픈소스 진영 등과 경쟁하면서 입지를 쌓았다. 래리 엘리슨은 이러한 오라클의 지분을 25% 정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덕분에 522억 달러(59조3253억 원)의 자산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는 과연 어떻게 세계에서 손 꼽히는 부자가 되었을까.

래리 엘리슨

<오라클 창업자 래리 엘리슨이 소비자 구매 및 소비 행태가 미래에 어떻게 변화할 지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출처: 오라클 공식 트위터>

내가 바로 오라클이다

엘리슨은 실리콘밸리의 산증인이다. 1977년 오라클의 전신이 되는 ‘소프트웨어 개발 연구실(SDL)’이라는 회사를 캘리포니아 샌타클래라(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이래 꾸준히 최고경영자로 재직하며 오라클과 실리콘밸리의 성장을 지켜봤다. 그와 동시대 인물이었던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등은 여러 가지 이유로 회사에서 손을 떼고 후계자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었지만, 엘리슨은 73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라클을 지휘하며 현업에서 활동하고 있다. 1977년 회사를 창업했을 때부터 2014년까지 37년간 오라클 최고경영자로 재직했고, 최고경영자에서 물러난 뒤에도 오라클 회장 및 CTO로 회사 경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비즈니스인사이트 <전 세계 부호 순위. 출처: 비즈니스인사이트>

엘리슨의 삶은 ‘오라클’로 요약할 수 있다. 오라클의 주식이 폭락하는 중에도 엘리슨은 절대로 오라클의 주식을 팔지 않았다. 오히려 당시 훨씬 가치가 있던 다른 회사의 주식을 팔아 현금을 확보한 후 그 현금으로 오라클의 주식을 추가로 매입했다. 컨설턴트들이 엘리슨에게 안정적인 재산 확보를 위해 오라클의 주식 대신 수익률이 보장되는 회사의 주식을 구매하라고 권유했으나 그는 이를 단칼에 거절했다. 엘리슨은 “나와 회사(오라클)는 완전히 하나다. 회사는 내 몸의 일부다. 몸의 일부를 잘라내고 싶은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고 오라클 주식에 집착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오라클

<오라클 회사 내부 모습. 공간을 클라우드 개발을 테마로 꾸며놓았다. 출처: 오라클 공식 트위터>

현재 엘리슨의 공식적인 직함은 CTO다. 오라클의 기술 개발에만 관여하지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2014년 9월 자신의 오른팔이었던 마크 허드 부사장에게 CEO 자리를 넘기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개발자와 기업이 오라클과 엘리슨을 동일시 여기고 있다. 1996년부터 열린 오라클의 개발자 행사 ‘오라클 오픈월드’의 기조 연설은 언제나 엘리슨이 전담하고 있다. 행사 동안 2~3번에 걸쳐 기조 연설을 하고 있으며, 참가자들도 이를 당연시 여기고 있다. CEO가 개발자 행사의 기조 연설자로 나와 한 해 동안 어떤 사업을 진행할 것인지 자세히 설명하는 실리콘밸리의 문화는 엘리슨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입양아라는 자격지심이 창업으로 이어져

엘리슨은 1944년 유대계 미혼모와 이탈리아계 미 공군 조종사 사이에서 태어났다. 생후 9개월이 지나 엘리슨이 폐렴에 걸리자 생모는 그의 양육을 포기했다. 그는 시카고에 거주하는 유대인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두 부부는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자신들의 원래 성 대신 뉴욕시의 엘리스 섬에서 따온 엘리슨을 자신들의 성으로 삼았고(국내에 귀화하는 사람들이 새로 성과 본관을 정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를 래리 엘리슨에게 물려줬다.

그의 양어머니 메간 엘리슨은 래리 엘리슨을 친자로 여기고 따듯하고 자상하게 돌봐주었다. 부부는 독실한 유대교 신자였으나, 엘리슨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13세 때 진행되는 유대교 성인식에 참석하기를 거부했고, 지금까지도 무교를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슨은 두 부부에게 종교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 훗날 창업한 회사의 이름을 신탁을 뜻하는 오라클로 정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엘리슨은 일리노이대에 진학했다. 그러나 2학년에 들어 그의 인생을 바꾸게 될 큰 시련에 부딪친다. 그의 어머니가 숨진 것이다. 엘리슨은 기말고사조차 보지 않고 학교를 그만뒀다. 일리노이대를 떠나 당시 히피들의 천국으로 떠오르고 있던 샌프란시스코에서 방황하게 된다.

하지만 방황은 길지 않았다. 양아버지의 설득과 히피 생활 자체가 체질에 맞지 않았던 엘리슨은 다시 시카고대 물리학과에 입학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시카고 대학에서 당시 세상을 바꿀 기기로 떠오르고 있던 컴퓨터를 접한 엘리슨은 이번에는 히피가 아니라 컴퓨터 산업의 본산인 실리콘밸리의 일원이 되기 위해 대학을 중퇴한다는 결정을 내리고 미국 캘리포니아 샌타클래라로 떠났다.

실리콘밸리의 여러 기술 기업에서 일하던 엘리슨은 앰펙스(AMPEX)라는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미국 중앙정보국(CIA)을 위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의 이름이 훗날 그의 회사 이름이 될 ‘오라클’이었다. 이 업무를 담당하면서 엘리슨은 데이터와 데이터베이스의 중요성을 깨닫고 관련된 사업을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1970년 IBM이 발표한 ‘대규모 데이터 은행을 활용한 데이터 관계 모델 구축 방법’이라는 논문을 읽고 DBMSData BaseManagement System의 중요성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래리 엘리슨

<래리 엘리슨의 요트였던 '라이징 선'. 일본문화와 에도시대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를 무척이나 좋아했던 그는 자신의 다른 요트의 이름은 '무사시'로 지었다>

1977년 엘리슨은 앰펙스를 떠나 프리시전 인스트루먼트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 회사는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할 필요가 생겨 외부에 개발을 의뢰하기로 결정했는데, 이 사업을 엘리슨이 따내게 되었다. 엘리슨은 앰펙스에서 일하던 시절 알게 된 동료인 밥 마이너와 에드 오츠에게 연락했다. 둘을 설득해 DBMS만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업체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초기 자본금은 고작 2000달러(227만 원)였다. 이 2000달러 가운데 1200달러(136만 원)를 엘리슨이 냈고, 남은 800달러(91만 원)를 둘이 반반씩 냈다. 비록 1200달러라는 보잘것없는 금액이었지만, 이는 오라클 전체 지분의 60%에 달하는 수치였다. 현재 500억 달러(56조8250억 원)가 넘는 그의 막대한 재산은 바로 이 지분 60%에서 시작되었다.

처음 정한 회사의 이름은 소프트웨어 개발 연구실(SDL)이라는 멋이라고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이름이었다. 1979년 이를 의식한 것인지 회사 이름을 ‘릴레이셔널 소프트웨어(관계형 소프트웨어)’로 변경했다. 회사의 주력 상품이 관계형 DBMS라는 점에서 착안한 이름이다. 하지만 이 역시 촌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참다못한 엘리슨은 회사 이름을 회사의 주력 상품인 ‘오라클 데이터베이스’에서 따온 ‘오라클’로 최종 결정했다.

먼저 시장을 선점하고 그다음 문제를 고쳐라

엘리슨과 오라클은 IBM이 관계형 DBMS ‘시스템R’을 구축하기 위해 개발한 SQL이라는 데이터베이스용 프로그래밍 언어에 주목했다. SQL은 DBMS를 구축하는데 최상의 기술이었으나, 이를 이용하려면 IBM의 비즈니스 컴퓨터 ‘메인프레임’을 구매해야만 했다. 메인프레임은 대규모 기업에게는 적합한 하드웨어였지만, 중견 기업이나 작은 기업(SMB)에겐 적합한 시스템이 아니었다.

그들에겐 유닉스(UNIX) 기반의 하드웨어가 더 적합한 시스템이었다. 엘리슨과 오라클은 유닉스 하드웨어에서도 SQL 기반으로 만들어진 DBMS를 이용할 수 있도록 오라클 데이터베이스를 출시했다. 이 새로운 DBMS는 IBM의 시스템과 DBMS를 구매하는 것이 부담되었던 중견 기업을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게 되었고, 오라클이 시장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게 해주었다.

행운도 뒤따랐다. 정작 SQL을 개발한 IBM은 SQL을 활용한 제대로 된 DBMS를 시장에 내놓기 위해 몇 년 동안 연구 및 개발을 진행했다. 반면 엘리슨과 오라클은 완벽한 제품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라클 데이터베이스를 바로 시장에 출시했다. 오라클 데이터베이스는 지금 기준으로 살펴보면 함량 미달의 제품이었다. 소프트웨어에는 버그가 가득했고 당연히 제대로 작동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해당 기업 시스템에 맞는 강력한 최적화를 진행해야 간신히 이용할 수 있었다.

유일한 장점은 어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도 접목할 수 있는 DBMS라는 점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라클 데이터베이스는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시장에 그만큼 큰 DBMS 수요가 존재했던 것이다. 오라클은 매년 지속적으로 오라클 데이터베이스 버전업을 진행했고, 1988년 ‘오라클 데이터베이스 6’가 되어서야 간신히 경쟁사와 대등한 수준의 안정성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초창기 DBMS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엘리슨이 취한 전략은 고객의 수요에 맞춰 완벽하지 않더라도 일단 제품을 시장에 출시한 후 문제점을 차근차근 개선해나가는 것이었다. 한 번 도입하면 교체가 힘든 비즈니스 소프트웨어 시장의 특성을 정확히 파고든 것이다. 이 전략을 통해 오라클은 SQL 시장의 경쟁자인 IBM과 ‘잉그레스(Interactive Graphics and Retrieval System, SQL의 경쟁 데이터베이스 관리 언어)’를 앞세운 또 다른 경쟁자 ‘릴레이셔널 테크놀로지’를 제압하고 DBMS 시장의 주도권을 쥘 수 있었다.

조금 부정적으로 평가하자면, 오라클은 기술력보다는 엘리슨의 천재적인 사업감각과 영업력으로 경쟁자를 밀어내고 DBMS 시장을 장악한 것이다. 하지만 1992년 오라클 데이터베이스 6 이후 4년 만에 출시한 오라클 데이터베이스 7으로 이러한 비판을 잠재우는데 성공했다. 과거 200개나 되는 명령어를 사용해야 처리할 수 있었던 작업을 단 하나의 명령어로 해결할 수 있게 해줄 정도로 세련되고 강력한 DBMS였다. 오라클의 강력한 영업력과 오라클 데이터베이스 7의 성능을 앞세워 오라클의 시장점유율은 나날이 증가했고, 출시 후 4년 만에 오라클의 전체 매출은 15억 달러(1조7047억 원)에서 42억 달러(4조7733억 원)로 상승했다.

물론 오라클의 경쟁자는 꾸준히 등장했다. 첫 번째 경쟁자는 ‘사이베이스’다. 1990년대 초 사이베이스는 유닉스와 윈도용 DBMS를 개발하며 오라클의 자리를 위협했다. 하지만 두 가지 잘못된 판단으로 회사의 몰락을 자초했다. 1993년 윈도 서버의 시장 규모가 그리 크게 성장하지 못할 것으로 예측하고 MS에 자사의 윈도 서버용 DBMS ‘SQL 서버’를 팔아버렸다. 이어 1996년 회사 규모를 확장하기 위해 파워소프트와 합병을 진행했다가 자금난에 빠져 유닉스 서버용 차세대 DBMS 개발이 늦어졌고 오라클과의 경쟁에서 탈락하고 만다.

두 번째 경쟁자는 ‘인포믹스’다. 1994년 사이베이스가 몰락한 후 인포믹스는 오라클의 주요 경쟁자로 떠올랐다. 3년 동안 오라클과 인포믹스가 벌인 살벌한 경쟁은 실리콘밸리의 주요 뉴스거리가 될 정도였다. 하지만 1997년 인포믹스가 분식회계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인포믹스의 최고경영자가 감옥에 끌려감에 따라 인포믹스 역시 오라클과의 경쟁에서 탈락하게 되었다. 내홍에 시달리던 인포믹스는 결국 2001년 IBM에게 인수합병당했다.

DBMS 시장에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던 엘리슨과 오라클은 2010년 썬마이크로시스템즈를 74억 달러(8조4101억 원)에 인수하면서 실리콘밸리에 파문을 일으켰다. 썬마이크로시스템즈는 원래 유닉스 서버인 ‘스팍’으로 유명한 회사다. 오라클이 썬마이크로시스템즈를 인수한 것은 소프트웨어 회사가 하드웨어 회사를 인수한 것인 동시에 IT 시장의 주도권이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엘리슨이 썬마이크로시스템즈를 인수한 이유는 따로 있다. 한 물간 유닉스 서버 사업 따위가 아니라 인터넷 업계의 표준 프로그래밍 언어로 떠오르고 있던 자바와 오픈소스 DBMS의 표준인 MySQL을 얻기 위해 썬마이크로시스템즈를 인수한 것이다. 실제로 2009년 엘리슨은 자바와 MySQL이 필요하다는 발언을 공공연하게 하기도 했다. 두 가지를 확보함으로써 엘리슨과 오라클은 인터넷 업계 전반과 오픈소스 DBMS 진영에도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오라클, 래리 엘리슨과 MS, 구글과의 악연

엘리슨은 실리콘밸리의 독설가로도 널리 알려져있다. (엘리슨의 표현에 따르자면) 그는 ‘사악한 독점 기업’ 마이크로소프트(MS)와 그 수장인 빌 게이츠와 대립각을 세우고, ‘남의 것을 아무런 대가 없이 가져다 쓰는 나쁜 기업’ 구글과 그 회장인 에릭 슈미트를 거침없이 비판했지만, ‘황야에서 고난을 겪은 이 시대의 진정한 혁신가’ 스티브 잡스와는 절친한 인물이다. 많은 사람들이 독설하면 스티브 잡스를 떠올리지만, 엘리슨 역시 그의 친구 잡스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경쟁사를 상대로 거침없는 독설을 내뱉었다.

래리 엘리슨 오라클 창업주와 MS, 구글과의 악연은 유명하다. 엘리슨과 오라클은 1990년대에는 반 MS의 선봉에 섰고, 2010년대에 들어서는 반 구글의 대표적인 사례가 되었다. 엘리슨은 대체 왜 이들과 대립 각을 세우는 걸까?

래리 엘리슨 <출처: 비즈니스인사이트>

일단 MS와 대립각을 세우는 이유는 명백하다. MS가 오라클의 유력한 경쟁사이기 때문이다. 한때 운영체제만 개발하던 MS는 1990년대 초 서버용 운영체제와 이 운영체제를 위한 DBMS를 개발하며 오라클이 지배하던 DBMS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다. MS는 한때 오라클의 경쟁자였던 사이베이스로부터 DBMS 원천 기술을 획득한 후 MS SQL을 개발해 DBMS 시장에 뛰어들었다. 윈도 서버와 MS SQL은 한때 오라클의 주력 사업이었던 중소기업용 DBMS 시장에서 세를 넓히며 엘리슨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엘리슨과 오라클이 처음 MS를 상대로 취한 전략을 맞불 놓기였다. MS가 우리의 주력 사업인 DBMS에 진출했으니, 우리도 그들의 주력 사업인 개인용 컴퓨터에 진출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이를 위해 엘리슨이 꺼내든 카드는 PC(퍼스널 컴퓨터)에 대응하기 위한 NC(네트워크 컴퓨터)였다. 윈도 95가 시장에 출시되고 10일 후 파리에서 열린 유럽정보기술포럼에서 엘리슨은 NC라는 개념을 언급했다.

중앙의 대용량 고성능 슈퍼컴퓨터와 가정의 단말기를 인터넷으로 연결해, 개인이 저렴한 가격으로도 슈퍼컴퓨터의 성능을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프로젝트였다. 연결의 매개체는 마크 안드레센이 개발한 웹 브라우저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라고 설명했다. 엘리슨은 수천 달러에 이르는 고가의 PC와 윈도 대신 오라클이 개발한 500달러 내외의 NC를 이용하면 훨씬 저렴한 가격에 동일한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VDI(가상 데스크탑)와 클라우드 컴퓨팅을 통해 상용화된 기술이지만,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개념이었다. 엘리슨은 NC를 통해 사람들이 오라클의 소프트웨어와 DBMS를 더욱 많이 이용하게 되길 꿈꿨다.

하지만 구리선으로 연결되던 당시 네트워크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앞서나간 생각이었다. 게다가 PC의 지속적인 가격 인하와 놀라울 정도로 편리한 윈도 운영체제 앞에 NC의 꿈은 무참히 부스러졌다. 엘리슨과 오라클조차도 이러한 PC와 윈도의 인기에 밀려 NC를 상용화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사용자가 오늘날 VDI와 클라우드 컴퓨팅의 기초 개념을 엘리슨이 제안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빌 게이츠는 엘리슨이 제안한 NC를 두고 “앞으로도 PC가 계속 시장을 지배할 것입니다. (엘리슨은) NC를 이용하면 소프트웨어를 구매할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일지는 의문입니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맞불 놓기가 실패하자 그다음으로 꺼낸 전략이 법의 힘을 빌리는 것이었다. 엘리슨과 오라클은 2000년 MS가 반독점 소송에 직면하자 가장 열정적으로 증인으로 나서 MS의 독점 행위를 고발했다. 다른 기업이 자신들에게도 피해가 미칠까봐 증인으로 나오는 것을 거부한 것과 대조적인 행보다. 심지어 엘리슨과 오라클은 사설탐정까지 고용해 MS 파트너사의 휴지통을 뒤져 증거를 수집하는 열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때 엘리슨은 “MS와 빌 게이츠가 SW 시장을 독점함에 따라 정보 기술의 혁신이 가로막히고 있다”고 공격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슬프게도 이 전략은 실패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고발로 엘리슨과 오라클의 이미지는 경쟁사의 휴지통을 뒤지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는 회사로 추락했고, 빌 게이츠와 MS는 이러한 오라클의 행보를 두고 정부와 경쟁 기업이 손잡고 MS에게 독점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씌우고 있다고 반격했다.

엘리슨과 오라클은 2010년대에 들어 구글과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표면적인 이유는 구글이 오라클의 보유한 자바 관련 지적재산을 무단으로 침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부를 살펴보면 좀 더 복잡한 이유가 있다. 구글이 세계 최대의 인터넷 업체이고 데이터베이스를 보유한 업체임에도 오라클의 DBMS를 쓰지 않는 기업이라는 것이 엘리슨과 오라클이 소송을 제기한 진짜 이유라는 분석이다.

래리 엘리슨

썬마이크로시스템즈를 인수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2010년 8월 오라클은 구글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개발하면서 오라클이 보유한 자바 37종의 API 지적 재산을 침해했으며 이에 대한 침해를 즉각 중단하고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구글이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지적 재산을 침해했으며,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지적 재산에 대한 권리를 회사를 인수한 오라클이 보유하고 있으니 오라클의 지적 재산을 침해한 것이라는 논리다.

소송을 제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슨은 미국 CBS 방송에 출연해 구글과의 특허 분쟁을 언급했다. “구글이 오라클의 것을 그냥 가져다 썼다. 구글이 한 일은 절대적으로 사악한 일이다”고 말했다. 이는 한때 구글의 슬로건이었던 “사악해지지 말자(Don’t be evil)”를 정면으로 비꼰 것이다.

원래 썬마이크로시스템즈는 구글이 자사의 지적 재산권을 침해한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구글이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DBMS 기술이었던 MySQL의 최대 이용 업체인 만큼 언젠가는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장비를 대량 구매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알고도 묵인하고 있었다. 그러나 썬마이크로시스템즈를 인수한 오라클 입장에선 오라클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하지 않는 구글을 봐줄 이유가 없다.

때문에 엘리슨은 썬마이크로시스템즈를 인수하자마자 바로 구글에게 소송을 제기했다. 길고 지루한 소송은 엎치락뒤치락하며 7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 진행 중이다. 중간에 양측의 CEO가 만나 합의점을 찾으려 하기도 했지만 결국 결렬됐다. (엘리슨과 래리 페이지가 만난 것은 아니다.)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구글은 안드로이드에 적용된 자바 기술을 제거하고, 안드로이드 운영체제의 개발 언어를 자바에서 코틀린으로 변경했다. 또한 오라클의 입김이 세진 오픈소스 DBMS MySQL 대신 새로운 오픈소스 DBMS ‘마리아DB’를 이용하기 시작하는 등 오라클이 보유한 기술과 거리를 점점 벌리고 있다. 두 회사의 대립은 점점 더 격렬해질 전망이다.

한편 미국의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에서는 이렇게 지속적으로 소송에 휘말리는 오라클의 행보를 두고 개발 인력보다 법조 인력을 더 많이 보유한 IT 회사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스티브 잡스와의 남다른 인연

‘독설가’ 엘리슨과 독설을 던지기로 유명한 스티브 잡스는 남다른 인연으로도 유명하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쫓겨난 이후 새로운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 자택에서 휴식을 취하던 도중 엘리슨을 만났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스티브 잡스가 조깅 도중 바로 옆에 살던 엘리슨의 자택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때 엘리슨을 만날 수 있었다.

애플 스티브 잡스

<스티브 잡스와 래리 엘리슨은 여러모로 공통점이 많았다>

둘은 금세 친해졌다. 입양아, 젊은 시절의 방황, 조금은 독단적인 경영방식, 일본 문화에 심취한점 등 공통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엘리슨 역시 잡스와 마찬가지로 입양아였는데, 입양아라는 사실자체보다 더 중요한 공통점이 있었다. 둘의 양부모가 친부모보다 더한 사랑으로 잡스와 엘리슨을키웠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둘은 양부모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대학을 중퇴하고 창업에 나섰다. 양자라는 자격지심이 이른 창업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러한 어린 시절의 공통된 경험이 훗날 둘을 절친으로 이끌었을 수도 있겠다.

엘리슨은 한때 스티브 잡스에게 자신의 돈으로 다시 애플을 되찾자는 제안을 할 정도로 친밀하게지냈다. 애플이 경영위기에 빠지자 스티브 잡스는 이러한 엘리슨의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했지만, 결국 애플 이사회가 스티브 잡스를 다시 최고경영자로 불러들이면서 없었던 일이 되었다. 이후에도 둘은 같이 엘리슨의 보트를 타고 회사 경영에 대한 진지한 얘기를 나누는 등 지속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스티브 잡스가 췌장암으로 별세하자 엘리슨은 잡스를 두고 “그는 우리의 에디슨이자 피카소이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천재적인 발명가다”라며 “현재의 애플을 깎아내리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잡스의 후임인 팀 쿡도 좋아한다. 애플 내부에도 재주 있는 인력이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스티브잡스는 대체가 불가능한 천재였다”고 평가했다.

스티브 잡스 사후 그의 친동생인 모나 심슨의 주도로 열린 비공개 추모회에 엘리슨은 빌 게이츠, 마이클 델 등과 함께 참석해 오랜 친우를 기렸다.

미국의 언론은 이러한 엘리슨과 스티브 잡스의 관계를 스티브 잡스라는 천재를 엘리슨이 추종한것이라고 평가했다. 엘리슨은 늘 스티브 잡스를 닮고 싶어 했다. 그의 카리스마 있는 발언과 놀라운 언론 장악력을 지속적으로 벤치마킹했다. 물론 일방적인 관계는 아니었다. 자신이 설립한 회사에서 쫓겨나 방황하던 젊은이에게 도움을 주었고, 이후에도 회사 운영 경험이 더 많은 선배로서경영에 관한 많은 조언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친구가 서로를 닮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엘리슨의 기행과 선행

전 세계에서 손 꼽히는 부자인 래리 엘리슨은 씀씀이로도 유명하다. 그는 수많은 자동차, 요트, 비행기, 저택을 수집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섬 하나를 통째로 사들이기도 했다. 엘리슨은 하와이에서 여섯 번째로 큰 섬인 라나이섬 부동산의 98%를 보유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섬 하나를 통째로 사들인 것이다. 이 섬으로 원활하게 이동하기 위해 작은 항공사를 매입하기도 했다. 건조에만 2억 달러(2270억 원)가 들어간 전 세계에서 8번째로 큰 요트 ‘라이징 선’을 보유하고 있다가 매각하기도 했다. 수많은 제트기를 보유하고 있고, 비행 면허가 있어 직접 조종하기도 했다.

구글 맵에서 확인할 수 있는 하와이 대표 섬 중 하나인 리나이섬. 이 섬 대부분의 부동산이 래리 엘리슨의 것이라고 한다

2000년 새너제이 공항에서 심야 이륙 금지 규정을 어기고 이탈리안 마르체티 제트기를 몰다가 소음 억제법 위반이라는 지적을 받자 이 법을 시정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군용기인 미그-29기를 구매하기도 했는데, 법에 걸려 미국에 가져오지는 못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우드사이드에 있는 그의 자택은 일본식 디자인이 도입되어 있다. 1억1000만 달러(1248억 원)에 이르는 이 대저택은 북미 최대의 일본식 건물로 꼽히고 있다. 이 자택 외에도 엘리슨은 캘리포니아 란초 미라지, 말리부 해변 카본비치 등에 수십 채에 이르는 자택을 보유하고 있다.

그렇지만 엘리슨이 역시 가장 수집에 공을 들이는 것은 요트다. 그는 요트를 너무나도 좋아해서 아메리카컵 경주에 참여하는 요트경주팀을 운영하고 있다. 오라클의 비용으로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래리 엘리슨이라는 개인의 비용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요트 팀의 이름은 오라클이다. 이 요트팀의 배는 BMW의 제작품으로 개당 800만 달러(90억 원)에 이른다. 심지어 엘리슨은 과거 아메리카컵 요트 경주에 미디어 업계의 거물 루퍼트 머독과 함께 ‘사요나라(일본어: 안녕히 가십시오)’를 이끌고 선수로 직접 참여해 우승하기도 했다. 심지어 오라클 요트팀이 아메리카컵 결승에 진출하자 이를 관전하기 위해 오라클 오픈월드 2013의 키노트 기조 연설자임에도 불구하고 참석하지 않아 6만 명에 이르는 고객과 파트너들에게 물을 먹인 적도 있었다.

오라클

여성 편력도 유명하다. 4번의 결혼과 4번의 이혼을 반복했고, 애인이었던 오라클의 전 직원에게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본인 역시 플레이보이임을 외적으로 거리낌 없이 과시하고 있다. 그의 아들과 딸은 이러한 아버지와 오라클에게 거리를 두고 할리우드에서 영화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마냥 인색하게 산 것은 아니다. 엘리슨은 지금까지 전 재산의 1% 이상(약 6억 달러)을 기부했고, 죽기 전에 자산의 대부분을 자선활동에 내놓는 ‘기부 서약’에도 동의했다. 기부 서약은 2010년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 전 세계 억만장자를 대상으로 시작한 운동이다. 특히 의료 연구에 대한 기부에 적극적이다. 캘리포니아 의대에 5000만 달러(567억 원)를 기부해 엘리슨의 이름을 딴 정형외과 연구센터가 세워지기도 했고, 2016년에는 캘리포니아 대학 암 치료 센터에 2억 달러(2270억 원)를 기부하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회장님의 이유 있는 말 바꾸기

특정 회사가 서비스나 제품을 발표할 때에는 경쟁사를 언급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서로 얼굴 찌푸리는 일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여기서 래리 엘리슨은 예외다. 절친이었던 스티브 잡스처럼 엘리슨 역시 경쟁사와 경쟁사의 기술을 서슴없이 언급하며 비판하고 있다. 새로운 서버를 출시하며 IBM의 서버보다 성능이 떨어지면 100억 원을 보상하겠다고 큰 소리친 것이나, 오라클 클라우드의 가격이 업계에서 제일 저렴하며 AWS(아마존웹서비스)는 상대도 되지 않는다고 밝힌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말도 사실 자주 바꾸는 편이다. 2009년 엘리슨은 클라우드는 마케팅 용어에 불과하며 제대로 된 사업 모델이 될 수 없다고 AWS를 비판했다. 하지만 작년부터는 본인이 클라우드 전도사를 자처하며 오라클이 DBMS 기업에서 클라우드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클라우드 기업인 넷스위트 인수를 본인이 적극 추진하기도 했다. 오라클이 넷스위트 인수를 위해 투입한 비용은 93억 달러(10조5555억 원)로, 썬마이크로시스템즈 인수보다 더 많은 비용을 투입한 오라클 역사상 가장 큰 인수합병 사례다. 또한 멀티테넌트 기반의 CRM 업체인 세일즈포스를 비판하며 “멀티테넌트는 끔찍한 기술이다. 오라클의 소프트웨어 서비스는 싱글테넌트로 만들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멀티테넌트란 하나의 소프트웨어나 데이터베이스를 여러 고객이 사용하는 기술로, 클라우드 기반 소프트웨어 서비스(SaaS)의 핵심 기술이다. 하지만 현재 오라클의 주력 상품인 ‘오라클 데이터베이스 12c’의 핵심 기술이 멀티테넌트이며, 오라클 클라우드에서 제공되는 SaaS 역시 멀티테넌트를 이용하고 있다.

물론 아무런 이유 없이 엘리슨이 경쟁사를 비판하고, 말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오라클의 경쟁사를 견제하고, 오라클의 미래를 위해 서슴없이 말을 뒤집는 것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래리 엘리슨과 오라클은 하나다.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오라클의 영원한 회장님은 경쟁사를 비판하고 말을 뒤집어 가면서 오라클의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글 / IT동아 강일용([email protected])

래리 엘리슨, 오라클·테슬라 주식으로 세계 5위부자됐다

미국 소프트웨어 업체 오라클의 주가 폭등에 힘입어 오라클 공동창업자 래리 엘리슨이 세계 5위 부자에 등극했다.

CNBC는 10일(현지시간) 이날 주가 폭등으로 래리 앨리슨의 순자산 평가액이 1357억달러로 늘었다고 보도했다.

오라클의 주가는 9일(현지시간) 장 마감 후 예상을 뛰어넘는 실적을 공개해 10일 주가가 15.61% 폭등했다. 이날 주가 폭등세는 20년만에 2번째로 높은 상승폭이었다.

1977년 소프트웨어 업체 오라클을 공동창업한 엘리슨은 오라클 최대 주주로 지분 11억4000만주를 보유하고 있다. 포브스에 따르면 이날 주가 폭등으로 엘리슨의 순자산 평가액은 1357억달러로 늘었다.

이로써 앨리슨은 포브스 선정 억만장자 순위에서 구글의 래리 페이지(1263억 달러)와 세르게이 브린(1217억 달러)을 제치고 5위에 올랐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부유한 게이츠의 자산은 1392억 달러다.

엘리슨이 5위 부자로 등극한 것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이어진다. 최근 몇 년간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과 같은 빅테크 회사들이 매우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반면 오라클은 한 자릿수 매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라클은 성장을 가속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오라클의 클라우드 사업으로의 전환 전략이 투자자들에게 관심을 끈 것으로 보인다. 오라클은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 속에서 클라우드 사업을 차세대 사업으로 자리매김시켰다.

올해 77세인 엘리슨은 올해만 오라클의 주가가 59% 오른 덕에 자산 평가액이 약 440억달러 상승했다.

엘리슨은 테슬라의 주가 상승 덕도 봤다. 앨리슨은 과거 2018년 테슬라의 지분 약 10억 달러치를 사들였다.

지난 3년간 전기차업체들의 시가총액이 1300% 가까이 폭등한 덕에 앨리슨의 10억달러치 주식은 이제 가치가 160억달러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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