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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루빈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앤드루 “앤디” 루빈(영어: Andrew “Andy” Rubin, 1963년 3월 13일 ~ )은 미국의 기업인, 투자가, 프로그래머, 공학자이다. 데인저 사(社) 및 안드로이드 사 공동 …
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2/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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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人사이드] 9000만 달러의 사나이…앤디 루빈의 추락
안드로이드의 아버지 앤디 루빈이 창업한 지 4년만에 백기를 들었다. 루빈은 지난 2014년 구글을 퇴사했다. 이후 2015년 11월에 스마트폰 제조 스타트 …
Source: www.ajunews.com
Date Published: 9/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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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 대부’의 몰락…추악한 성추문 폭로 – 지디넷코리아
앤디 루빈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개발한 인물이다. 2005년 자신이 설립한 안드로이드를 구글에 매각하면서 스마트폰 혁명의 불씨를 지핀 것으로도 …
Source: zdnet.co.kr
Date Published: 12/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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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RT PEOPLE] 안드로이드의 아버지 앤디 루빈 – 앱스토리
앤디 루빈은 1964년, 뉴욕 차파콰(Chappaqua)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심리학자로 활동하다가 다이렉트 마케팅 회사를 차리게 되었다.
Source: news.appstory.co.kr
Date Published: 8/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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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 앤디 루빈 구글 퇴사와 창업(에센셜폰), 2017년 당시 진실
지난 2017년 5월 30일, 2013년부터 안드로이드 플랫폼 (또는 OS) 총 책임자였던 앤디 루빈(Andy Rubin)이 구글을 떠나 에센셜이란 벤처 회사를 설립할 …
Source: codingcoding.tistory.com
Date Published: 3/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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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 창시자 앤디 루빈 창업 4년 만에 백기 – 한국경제
루빈은 2002년 벤처 기업을 창업해 안드로이드 개발을 추진하다 2005년 구글과 합병한 뒤 오늘날 모바일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확립하는 데 중추적 …
Source: www.hankyung.com
Date Published: 6/2/2022
View: 6397
‘안드로이드 창시자’ 앤디 루빈의 퇴장…’에센셜’ 폐업 – IT 조선
입력 2020.02.13 18:20. ‘안드로이드의 아버지’ 앤디 루빈이 설립한 스마트폰 제조사 ‘에센셜’이 문을 닫는다. 에센셜 프로덕츠는 12일(현지시각) 회사 홈페이지를 …
Source: it.chosun.com
Date Published: 1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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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The Plex ] 구글 수석부사장, 안드로이드 개발자 앤디 루빈의 …
2003년 안드로이드를 창업한 앤디 루빈은 2005년 회사를 구글에 매각했다. 그 이후 안드로이드OS는 구글의 핵심전략이 되어 이제는 아이폰의 시장점유율을 …
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5/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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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앤디 루빈에 구글 1천억원 퇴직금” NYT 기사 파문
구글은 순다르 피차이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나서 NYT 기사를 반박했고, 기사의 핵심 당사자인 ‘안드로이드’ 창업자 앤디 루빈도 “거짓 혐의”라고 …
Source: www.yna.co.kr
Date Published: 5/11/2022
View: 8090
앤디 루빈 – 요다위키
앤드류 E. 루빈은 미국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기업가, 벤처 투자가로 2014년 성 비위 의혹을 받고 구글을 떠났다. 루빈은 벤처캐피털 기업인 플레이그라운드 글로벌의 …
Source: yoda.wiki
Date Published: 9/2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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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앤디 루빈
- Author: 오작가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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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10.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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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앤디 루빈
앤드루 “앤디” 루빈(영어: Andrew “Andy” Rubin, 1963년 3월 13일 ~ )은 미국의 기업인, 투자가, 프로그래머, 공학자이다. 데인저 사(社) 및 안드로이드 사 공동 창립자이자 전직 CEO를 역임하였으며 구글이 안드로이드 사를 인수한 후 구글의 모바일 부문 수석 부사장으로 일하며 안드로이드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비롯한 그것을 이용한 휴대 전화의 개발 업무를 관장하였다. 2014년에 구글에서 퇴사 후 에센셜 사를 창립하였다.
앤디 루빈은 뉴욕주의 호레이스 그릴리 고등학교(Horace Greeley High School)와 유티카 대학교(Utica College)를 졸업했다. 애플에서 엔지니어로서 일을 시작하였다. 나중에 애플을 나와 제네럴 매직이라는 회사로 옮긴다. 휴대용(hand-held) 기기를 위한 운영체제와 인터페이스, 이름하야 매직 캡(Magic Cap)을 만드는 회사였다. 매직 캡이 실패하자, 루빈과 그의 동료 몇 명은 제네럴 매직을 떠나 아르테미스 리서치(Artemis Research)사를 설립한다. 이 회사는 나중에 WebTV 사가 됐다. 이 회사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인수합병한다.
몇 년이 지나, 루빈은 마이크로소프트를 나왔다. 그와 그의 동료는 데인저 사를 만든다. 데인저 힙탑[1]이라는 초창기 스마트폰을 만들었는데, “기술을 좋아하는” 마니아 계층에서 컬트하게 인기있었다. 앤디 루빈은, 이후, 데인저 사에서 퇴사하고 안드로이드 사를 만들었다. 안드로이드 사는 다시 구글에 인수되었고, 2013년까지 안드로이드 플랫폼의 총 책임자로 근무하였다. 2013년 5월 13일 앤디 루빈은 안드로이드 플랫폼 총 책임자에서 물러나 구글의 로봇 분야 책임자로 근무하였다 2014년 10월 31일 앤디 루빈은 구글을 퇴사하고 벤처기업 에센셜 사를 설립하였다. 2017년 11월 구글 재직시에 있었던 부적절한 관계가 보도됨에 따라 에센셜 사의 운영에서 잠시 물러났다가 당해 12월 복귀하였다.
참고 문헌 [ 편집 ]
John Markoff. “I’m not thing”.
각주 [ 편집 ]
↑ T-모바일 사이드킥이라는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SMART PEOPLE] 안드로이드의 아버지 앤디 루빈
OS는 독점이 아닌 협력이다
안드로이드의 아버지 앤디 루빈
곧 죽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성공의 축포를 쏘아올린 집념의 사나이.
앤디 루빈이야말로 인간을 뛰어넘은 진정한 안드로이드일 것이다.
앤디 루빈(Andy Rubin)
출생 : 1964년 (미국)
소속 : 구글 (부사장)
학력 : Horace Greeley 고등학교 졸업(1977~1981)
Utica 대학 컴퓨터 공학과 학사 졸업(1981~1986)
경력 : Google 수석 부사장 (2005~) / Android Inc 공동 설립자 (2003~2005) /
Danger Inc 공동 창업자 (1999~2003) / Artemis Research
엔지니어 (1995~1999) / General Magic 엔지니어 (1992~1995) /
Apple 제조 엔지니어 (1989~1992) / Carl Zeiss AG 로봇 엔지니어 (1986~1989)
앤디 루빈, 애플과 만나다
앤디 루빈은 1964년, 뉴욕 차파콰(Chappaqua)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심리학자로 활동하다가 다이렉트 마케팅 회사를 차리게 되었다. 이 회사의 주요 업무는 신용카드 청구서가 인쇄되는 전자기기의 사진을 찍어 마케팅에 활용하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어린 루빈의 집에는 늘 최신 전자 기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한 영향이 컸던 탓일까? 루빈의 흥미는 언제나 기계를 향해 있었고, 청소년기에는 PC 게시판 시스템을 운영할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 과정까지 마친 루빈은 3년간 광학렌즈로 널리 알려진 칼 자이즈(Carl Zeiss)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그리고 1989년, 루빈은 애플(Apple)에 취직하게 되고 3년간 자신의 기량을 발휘했다. 이 근무 기간 동안 루빈은 자신의 흥미를 유발하는 분야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바로 ‘모바일 플랫폼’ 부분이었다. 루빈은 해당 프로젝트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진 않았지만, 이는 그에게 중대한 방향을 알려준 것임에 틀림없었다.
애플과의 이별, 새로운 도전
앞서 말한 모바일 플랫폼의 주요 프로젝트는 바로 ‘PDA용 운영체제’의 개발이었다. 당시 맥킨토시 개발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던 빌 앳킨슨(Bill Atkinson), 엔디 허츠펠트(Andy Hertzfeld), 마크 포럿(Marc Porat)이 이 프로젝트를 수행 중이었다. 그들은 곧 PDA와 같은 소형 기기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프로젝트에 임했으나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정작 당시 애플의 경영책임자였던 존 스컬리(John Scully)는 그들의 생각과 정반대였고, 프로젝트를 점차 축소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더 견디지 못한 3인은 존 스컬리에게 회사를 분사시켜주기를 요청했고, 1990년 ‘재너럴 매직(General Magic)’ 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이러한 호기를 루빈은 놓치지 않았다. 그 또한 2년 후, 애플에서 퇴사하고 재너럴 매직에서 엔지니어로 활약하게 된다. 입사 후, 빌 앳킨슨을 포함한 3인과 회사 임원들이 진행한 프로젝트는 ‘매직 캡(Magic Cap)’의 개발이었다. 매직 캡은 PDA와 같은 소형 기기의 운영체제와 인터페이스를 포함한 통합 프로그램 개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프로젝트의 진행은 더뎌졌고, 자회사로 인정하지 않는 애플의 미비한 지원이 더해져 매직 캡은 1995년에 실패로 끝나게 된다.
MS와의 두 차례에 걸친 인연
실패를 맛본 루빈은 회사동료 몇 명과 재너럴 매직을 떠나게 된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인 스티브 펄만(Steve Perlman)이 중심이 되어 아르테미스 리서치(Artemis Research) 사가 설립되고 루빈도 합류하게 된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르테미스 리서치는 재너럴 매직과 합병하게 되고 WebTV라는 회사로 변경된다. WebTV는 이름 그대로 향후 네트워크를 통한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 개발회사였다. 이 회사는 꾸준히 성장을 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 성장에는 뒤에서 관심을 가지고 투자를 한 어떤 기업이 있었기에 가능했는데 그 회사가 바로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자사의 디지털 라이프스타일 전략에 이 WebTV가 필요할 것이라 확신했고, 투자와 더불어 WebTV의 지분을 확보했던 것이다. 결국 WebTV는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합병되었고 이는 오늘날의 MSN TV가 되었다. 합병으로 인해 루빈도 강의 흐름에 몸을 맡긴 물줄기처럼 마이크로소프트에 근무하게 된다. 그러나 1999년, 그는 독립을 결심했고 맷 허드슨(Matt Hershenson), 조 브릿(Joe Britt) 등과 함께 데인져(Danger)라는 모바일 전문 회사를 설립하게 된다. 그러나 데인져 역시,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되면서 루빈은 공교롭게도 마이크로소프트에 두 차례나 근무하게 되는 이력을 지니게 된다.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
루빈은 거듭되는 입사와 퇴사의 반복으로 인해 모든 일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는침착하게 현재의 상황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데인져에서 그는 모바일 기기 ‘사이드킥(SideKick)’을 주력으로 개발해 판매한 경험이 있었다. 사이드킥은 슬라이드방식의 쿼티 휴대폰으로서 당시에는 상당히 획기적인 제품으로 통했다. 그래서 많은 기업들이 사이드킥의 하드웨어 방식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한 사실이 있으니 바로 OS였다. 이미 HipTop이라는 OS를 개발했던 루빈은 아무도 소프트웨어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점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자세히 분석해보니 OS는 MS의 윈도우가 거의 잠식하다시피 했고 각 제조사들도 이를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다. 제조사들은 MS에 고가의 로열티를 지불하면서 하드웨어 개발에만 주력했다. 이에 루빈은 소프트웨어 개발의 나태함이 결국 소비자들에게 돌아갈 것임을 깨달았고, 다시 MS을 나와 2003년에 회사를 설립한다. 이 회사가 바로 안드로이드(Android)다.
▲ 슬라이드 방식의 사이드킥1, 당시에는 상당히 획기적인 방식이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주인은?
2003년 한 해는 루빈에게 너무나 바쁘고 보람찼다. 자신이 구상한 아이디어를 접목해서 OS를 설계하는 데 주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년 후, 자금 부족으로 인해 그의 OS 개발은 프로토 타입에도 미치지 못했다. 몇 달 뒤, 루빈은 구글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과 래리 페이지(Larry Page)를 만났고 자신의 사업을 설명했다. 경영진은 얼마 후 루빈에게 OK사인을 내렸고 2005년 5000만 달러를 들여 안드로이드 사를 인수했다. 이토록 신속하게 인수가 이루어진 것은 래리 페이지의 공이 컸다. 그는 사이드킥의 개발자에 이미 관심을 가졌던 상태였고, 구글의 검색엔진과 맵을 휴대전화에 탑재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이후 래리 페이지가 CEO로 승격되자, 루빈 또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하지만 루빈은 부사장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프로그램을 전적으로 진두지휘, 개발에 앞장섰다. 그렇게 이 프로젝트는 2년간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채, 조용히 진행되었다. 2년 뒤 2007년, 루빈은 완성된 프로토타입을 들고 이 OS를 탑재해줄 휴대전화 제조업체를 찾아다녔다. 그리고 그가 첫 문을 두드린 곳은 LG였다. 하지만 LG의 대답은 거절이었다. 피처폰 사업에 주력하고 있는 LG에게 생소한 스마트폰 OS는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퇴짜를 맞은 루빈은 이번에는 대만의 HTC를 찾아갔다. 이때 당시만 해도 HTC는 MS의 운영체제에 맞춰서 기기만 제조하던 보잘 것 없는 하청업체였다. HTC는 루빈이 제안한 OS에 대단한 흥미를 느꼈다. 손해볼 것이 없다고 생각한 HTC는 루빈의 제안을 받아들여 세계최초의 안드로이드 OS 스마트폰 ‘G1’을 개발했다. 이후 HTC가 초고속 성장을 이룬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 최초의 안드로이드 폰 G1
▲ 좌측부터 산제이 자(모토로라 CEO), 피터 쵸우(HTC CEO),
앤디 루빈, 마리오 콰이노즈(구글 제품관리 부사장)
열정, 창의성 그리고 집념
첫 안드로이드폰의 공개 후, 구글은 안드로이드 소스의 무료배포, 플래시(Flash) 지원, OHA 체결 (Open Handset Aliance: 휴대기기에 대한 비독점 연합 체제. 모바일 기기를 위한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구글과 각 제조사, 통신사 등 34개 업체가 연합했다)을 통해 성장가도를 달렸고, 끊임없이 성장 중이다. 2011년 현재, 안드로이드 OS의 시장 점유율은 48%로 압도적인 1위다. 하루 안드로이드폰의 개통량은 13만대에 이르고 있다. 이는 OS를 독점하지 않고 오픈 소스로서 발상을 전환한 루빈의 역할이 가장 컸다고 할 수 있다. 루빈은 아직까지도 전세계를 누비며 계약과 연설을 반복하며, 안드로이드 개발에도 앞장서고 있다. 물론 그의 왕성한 활동으로 인해 회사 내 개발자들은 탈진할 정도로 업무에 시달린다는 얘기도 들려오고 있다. 그러나 그는 반년에 한 번씩 직원들을 집으로 초청해 파티를 열어 스트레스를 해소시켜주고, 자신에게 지급된 상여금을 고생한 직원들에게 나눠주며 격려하기도 한다. 실패에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OS를 개발한 그의 열정, OS에 대한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 창의성, 만족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하는 집념은 현재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 2010년 8월 SKT와 구글 간 마켓 협력 발표 때 배준동 부문장과 앤디 루빈
월간 앱스토리│신효송 기자
김준혁 기자 [email protected]
50대 앤디 루빈 구글 퇴사와 창업(에센셜폰), 2017년 당시 진실
지난 2017년 5월 30일, 2013년부터 안드로이드 플랫폼 (또는 OS) 총 책임자였던 앤디 루빈(Andy Rubin)이 구글을 떠나 에센셜이란 벤처 회사를 설립할 것이란 기사가 나왔습니다.
루빈은 새로운 에센셜 폰(Essential phone) PH-1 (PH-ONE, 폰)을 소개도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스마트폰 시장은 애플 iPhone, 삼성 갤럭시 시리즈로 양분된 시장이었죠. 당시 54세였던 앤디 루빈의 구글 퇴사와 창업 은 큰 이슈였습니다.
앤디 루빈은 구글에 합류하며 모바일 및 디지털 콘텐츠 담당 선임 부사장으로 제품 개발을 책임졌습니다. 구글에서 판매한 안드로이드 폰은 판매량이 지지부진했고, 되려 안드로이드를 탑재한 삼성 갤럭시 시리즈가 더 잘 팔렸습니다. 아마도 앤디 루빈은 이러한 현실에서 자기 사업을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퇴사하는 앤디 루빈에게, 래리 페이지 – 안드로이드로 10억명의 사용자들을 기쁘게 만들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2018년 겨울 11월이 되었습니다. 당시 앤디 루빈은 에센셜 대표였습니다.
근데 이게 웬일? 속칭 안드로이드 아버지라 불리던 앤디 루빈 때문에 구글 파업이 발생했습니다. 구글 재직 당시 성추행, 성폭행 정황이 발견되었으나, 회사에선 은폐 시도를 벌였죠. 이게 언론에 공개된 것입니다.
뉴욕에선 3,000명이 넘는 인파가 피켓을 들고 구글에 항의했습니다.
OK, 구글 지금 장난하나?
일어나라! 맞서 싸워라!
스마트폰 업체, 미국 성범죄 사건
구글 파업은 캘리포니아 마운틴뷰 본사, 런던, 싱가로프, 베를린, 취리히, 도쿄 등 전 세계 20여개 지사에서 벌어졌습니다. 뉴욕타임스는 루빈의 성폭행 사실을 은폐하려 했으며, 퇴직금, 스톡옵션 등 퇴직 패키지 등을 제공했습니다.
매달 200만 달러 = 총 9,000만 달러 (약 1,024억)
성과급 스톡옵션 = 1억 5,000만 달러 (약 1,700억)
앤디 루빈은 2013년, 여자 부하 직원에게 구강 성교를 강요했습니다. 회사에선 이를 알고도 은폐했으며, 래리 페이지 구글 창업자는 루빈에게 퇴사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니깐, 앤디 루빈은 창업이란 꿈을 위해 에센셜 벤처 기업을 세운 게 아니라, 쫓겨나면서 자기 사업을 시작한 셈이죠.
이런 사실은 2017년 11월 미국 IT 전문 매체 디인포메이션을 통해 의혹으로 처음 세간에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도 쫓겨나는 이유는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냥 쫓겨난다는 썰~만 나왔었죠. 그리고 2018년 11월이 되어서야 앤디 루빈의 사퇴 이유가 정확히 밝혀졌습니다.
시간은 그렇게 또 흘러, 2019년 2월이 됩니다.
스마트폰 업체, 미국 성범죄 사건
구글은 2018년 11월 폐지한 “성희롱, 성폭행 사건에 대한 강제 중재”를 전 영역으로 확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다만, 이미 중재가 끝난 사건에 대해선 적용하지 않습니다. 이 제도 폐지의 의의는,
사내 중재에 응할 경우, 피해자가 소송 등으로 외부에 피해 사실을 알릴 때 불리
였습니다.
2019년 현재, 에센셜폰은 실제로 10만대도 팔리지 않아 망한 제품으로 기억됩니다. 에센셜폰2를 만들려는 계획은 투자 유치 실패로 개발 중단되었습니다. 에센셜은 작년 하반기에 인력 30%를 감축했으며, 지금은 회사 매각 중입니다.
관련 기사 : The Essential Phone 2 has reportedly been canceled
결론은 뭐다?
1. 1,000억 정도 있으면 안드로이드폰 회사 만들 수 있다 2. 성범죄 저질러도 능력 좋으면 회사에서 감춰 준다 3. 천재라 할지라도 천재 능력을 발휘할 자리는 따로 있다
결론은 그냥 웃어넘기시고, 한때 안드로이드 아버지라 불리던 앤디 루빈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씁쓸합니다.
ⓒ written by vicddory
‘안드로이드 창시자’ 앤디 루빈, 창업 4년 만에 백기
“논쟁만 벌이는 정치인들에게 진절머리…상원의원 도전” ’20세기의 모나리자’로 불리며 전 세계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탈리아 영화계의 전설 지나 롤로브리지다가 95세의 나이에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1927년 7월 4일생으로 최근 95번째 생일을 맞은 롤로브리지다는 지난 15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일간 ‘코리에레델라세라’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이탈리아 총선에 상원의원으로 출마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정치인들이 본론으로 들어가지 않고 서로 논쟁만 벌이는 것에 지쳤다”며 “건강에서 정의에 이르기까지 국민의 결정권을 위해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롤로브리지다는 “현재 이탈리아는 형편없는 상태다. 국가에 보탬이 되는 긍정적인 일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9월 25일 치러지는 이탈리아의 조기 총선은 사임 의사를 밝힌 마리오 드라기 총리의 정책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가 초점이다. 드라기 총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미국, 유럽연합(EU)과 보조를 맞추며 러시아에 대한 강경 입장을 견지했다. 롤로브리지다는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반대 등 반(反)드라기를 표방한 ‘주권과 대중 이탈리아 정당(ISP)’ 소속으로 상원의원에 도전할 계획이다. 그는 그 이유에 대해 영국을 상대로 비폭력 불복종 운동을 주도했던 ‘인도 건국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롤로브리지다는 195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면서 소피아 로렌, 브리지트 바르도 등과 함께 유럽을 대표하는 섹시 스타로 이름을 날렸다. 1956년 ‘노트르담의 꼽추’, 1959년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 등에서 맡은 관능적인 역할로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누렸으며 1968년
‘안드로이드 창시자’ 앤디 루빈의 퇴장…’에센셜’ 폐업
‘안드로이드의 아버지’ 앤디 루빈이 설립한 스마트폰 제조사 ‘에센셜’이 문을 닫는다.
에센셜 프로덕츠는 12일(현지시각)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우리는 운영을 중단하고 에센셜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안드로이드 개발자 앤디 루빈이 2015년 설립한 에센셜은 한때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으며 성장세를 기록했다. 올 상반기에 신제품 ‘젬(GEM)’을 출시한다는 계획도 있었다. 하지만 비용 부담과 앤디 루빈의 스캔들이 발목을 잡았다. 에센셜은 결국 혁신으로 시장의 판도를 바꾸려던 목표를 접고 영업 중단을 선언했다.
에센셜 스마트폰 ‘PH-1’에 대한 보안 업데이트는 3일 종료됐다. 뉴튼 메일 사용자는 4월 30일까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에센셜은 개발자들을 위해 ‘깃허브’에 PH-1 관련 자료를 올려두겠다고 밝혔다.
에센셜 ‘PH-1’. / 제공=에센셜, 편집=IT조선
안드로이드 개발자, 스마트폰 시장에 도전장
에센셜은 과거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유망한 하드웨어 기술 스타트업 중 하나다. 에센셜은 텐센트, 레드포인트벤처스 등 주요 투자자로부터 3억3000만달러(약 3902억원)를 유치하기도 했다. 기업 가치는 한때 10억달러(약 1조1800억원)까지 치솟았다.
대표 앤디 루빈의 명성 덕이다. 그는 2013년 모바일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를 개발했고, 이후 회사를 5000만달러(약 591억원)에 구글에 팔았다. 앤디 루빈은 구글에서 모바일 부문 수석장을 지내며 스마트폰 사업을 이끌었다. 2014년 구글에서 퇴사 후 창업한 회사가 에센셜이다.
에센셜은 2017년 5월 ‘PH-1’을 선보였다. 이 제품은 5.7인치 화면에 부품을 조립할 수 있는 모듈식 스마트폰이다. 티타늄과 세라믹 소재를 사용한 점도 독특하다. 화면 베젤을 없애고 전면부에 노치 디자인을 채택한 점도 눈길을 끈다.
당시 앤디 루빈은 “매년 정기적인 업데이트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기존의 스마트폰과 다른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에센셜은 사용자들 사이에서 안드로이드 업데이트 지원이 빠른 것으로 유명했다.
앤디 루빈 에센셜 대표. / 에센셜 제공
대표 스캔들과 신제품 흥행 실패
앤디 루빈의 야심에도 불구하고 에센셜은 단 하나의 제품만을 출시했다. PH-1이 처음이자 마지막 에센셜폰이 된 것이다.
에센셜은 2020년 초 출시를 목표로 신제품 ‘젬’을 개발 중이었다. 실제로 에센셜은 2019년 10월 이 제품을 공개하기도 했다. 리모컨처럼 폭이 좁고 위아래로 긴 형태로 외형이 독특해 눈길을 끌었다. 인공지능과 음성 명령을 이용한 작업에 최적화된 제품으로 알려졌다.
외신에 따르면 에센셜은 젬을 개발하기 위해 5000만달러(약 591억원) 이상을 투자하는 등 수년간 공을 들였다. 하지만 동시에 미국 주요 이동통신사의 외면과 투자금 고갈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에센셜이 문을 닫으면서 젬도 결국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에센셜 ‘젬(GEM)’. / 에센셜 제공
에센셜은 2018년부터 힘든 시기를 보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PH-1이 예상보다 흥행하지 못한 탓이다. 시장은 반응은 차가웠고, 에센셜은 제품 가격을 대폭 인하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 스마트홈 기기 구축 계획을 접고 인력을 120여 명에서 50명 이하로 줄이기도 했다.
외신은 스캔들 사태도 에센셜 경영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2017년 IT매체 더인포메이션은 앤디 루빈의 성추문 의혹을 제기했다. 부적절한 사유로 퇴사한 그에게 구글이 퇴직금 9000만달러(약 1064억원)를 지급했다는 사실도 알려지면서 구글 직원 수천 명이 파업하기도 했다.
에센셜의 폐업이 스마트폰 제조업체의 녹록지 않은 현실을 상징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쿼티 키보드가 달린 독특한 디자인으로 인기를 끈 ‘블랙베리’도 3일 스마트폰 사업을 접는다고 밝힌 바 있다.
뉴욕타임스는 “에센셜의 폐업 결정은 전자제품 창업자들이 직면한 어려움을 보여준다”며 “소프트웨어 회사와 달리 하드웨어 회사들은 부품을 구입하고 제품 재고를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자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In The Plex ] 구글 수석부사장, 안드로이드 개발자 앤디 루빈의 삼성 본사 방문 일화
스티븐 리비 의 구글에 대한 역작 ‘ In The Plex ‘를 읽다보면 삼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안드로이드의 아버지, 앤디 루빈 이 2004년 한국의 삼성본사를 방문한 일화다.
2003년 안드로이드를 창업한 앤디 루빈은 2005년 회사를 구글에 매각했다. 그 이후 안드로이드OS는 구글의 핵심전략이 되어 이제는 아이폰의 시장점유율을 능가하는 최고의 모바일OS로 등극해 있다. 앤디 루빈은 지금 구글의 안드로이드담당 수석부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분들을 만나 구글 안드로이드를 화제로 꺼내면 과거에 앤디 루빈이 삼성에도 자주 왔었다는 말을 들었다. 삼성이 당시 안드로이드를 인수할 수도 있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만큼 앤디 루빈과 삼성이 가까왔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In The Plex에서 구글의 안드로이드인수 뒷이야기에 대한 부분을 읽다가 앤디 루빈의 삼성에 대한 회상부분을 만나게 됐다. 작은 벤처CEO의 입장에서 한국대기업을 묘사한 흥미로운 이야기이다.
루빈 부사장은 2003년 10월 자신이 창업한 안드로이드사가 다음해 자본 유치를 위해 제일 먼저 찾은 곳은 구글이 아닌 삼성이었다고 말했다. 루빈 부사장은 2004년 안드로이드사의 대표 자격으로 개발팀 8명과 함께 당시 최대 휴대폰 제조업체인 삼성전자를 찾았다.
20명의 삼성 임원들에 둘러싸인 루빈 부사장은 안드로이드폰에 대해 제안했지만 삼성 임원들은 침묵으로 일관하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루빈 부사장은 삼성 임원들이 “너희들 6명이 이 일을 만들어 낸다고? 너희들 미치지 않았느냐?(You and what army are going to go and create this? You have six people. Are you high?)”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삼성 임원들이 회의실 밖에서 비웃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인수하기 바로 2주 전의 일이다.
2005년 초 구글은 안드로이드사를 5000만달러에 인수했고, 루빈을 비롯한 8명의 안드로이드 기술자를 구글 본사로 영입했다. 루빈 부사장은 인터넷 검색과 인터넷 광고에 의존했던 구글의 사업 영역을 모바일의 세계로 확장하는데 역할을 했고, 안드로이드는 애플과 노키아를 제치고 스마트폰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소프트웨어로 발전했다.
“성폭행 앤디 루빈에 구글 1천억원 퇴직금” NYT 기사 파문
‘안드로이드 아버지’ 한 여성에 “넌 내 소유물, 다른 사람에게 빌려줄 수도” 이메일 NYT “불륜 드러나면 남성 편, 면접 보러온 여성 성추행한 임원 해고 안 해” 구글 “성희롱 엄중 대처했고, 보상금 준 적 없다” 반박
(서울=연합뉴스) 김현재 기자 = 구글 전·현직 고위직들의 실명을 직접 거론하며 사내 불륜과 성희롱에 대한 구글의 부적절한 대처를 지적한 뉴욕타임스(NYT) 기사가 실리콘밸리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미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의 구글 본사 [AP=연합뉴스]
구글은 순다르 피차이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나서 NYT 기사를 반박했고, 기사의 핵심 당사자인 ‘안드로이드’ 창업자 앤디 루빈도 “거짓 혐의”라고 주장하면서 진실공방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NYT는 25일 익명의 구글 임원들을 인용해 “루빈이 구글에 재직할 때 그와 혼외 관계였던 여직원이 ‘2013년 한 호텔 방에서 구강성교를 강요당했다’는 진술서를 냈다”면서 “조사결과 여직원의 주장은 신뢰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됐고, 래리 페이지 구글 창업자가 그에게 사퇴를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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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구글은 2014년 그가 회사를 떠날 때 이 문제를 일절 언급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지난 4년 동안 월 200만 달러씩 무려 9천만 달러(1천24억 원)를 퇴직 보상금으로 지급했다고 한다.
안드로이드의 아버지로 불리는 앤디 루빈 [CNBC 캡처]
NYT는 “구글은 루빈을 해고할 수 있었고, 그에게 한 푼도 주지 않아도 됐다”고 말했다.
구글 사규에 따르면 부하 직원과의 부적절한 관계는 해고사유이며, 그녀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성폭행을 저지른 그에게 오히려 거액의 위로금을 주고 자진사퇴 형식을 취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루빈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스마트폰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를 개발한 인물로, 자신이 창업한 안드로이드를 2005년 구글에 매각하고 합류했다.
2002년 법률 고문으로 구글에 들어온 데이비드 드러먼드의 경우는 구글이 직원들 간 부적절한 성관계가 드러났을 때 남성 편을 든 대표적 사례라고 NYT는 전했다.
드러먼드는 같은 부서의 상사였던 제니퍼 블레이크와 합의로 혼외 관계를 맺은 뒤 2007년에는 아이까지 낳았다.
블레이크는 NYT 인터뷰에서 “이 사실이 회사에 알려지자 인사담당자가 ‘둘 중 한 명은 법률 부서를 떠나야 한다’고 했고, 그건 분명 데이비드는 아니었다”면서 “결국 내가 판매 파트로 전출됐고 1년 후 퇴사했다”고 말했다.
반면 드러먼드는 승승장구하며 현재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 그룹의 최고법률책임자(CLO)이자 구글의 투자회사인 캐피털 G의 회장 자리까지 올랐다. 드러먼드는 블레이크가 퇴사한 뒤 그녀 곁을 떠났고, 두 사람은 아이 양육권 문제로 소송까지 벌였다고 한다.
구글의 연구개발부문인 구글 X의 리처드 드볼 이사의 케이스는 ‘성희롱 당사자는 해고한다’는 구글의 정책이 얼마나 유연한지를 보여준다고 NYT는 전했다.
드볼은 구직 면접을 보러 온 20대 초반의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로 이 여성에 의해 고발됐다. 구글은 조사결과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내리고 그녀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 외부에 발설하지 말아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드볼은 해고되지 않았다. 구글 X측은 NYT에 “우리는 발설하지 말 것을 요청한 적이 없으며, 당시 적절한 조치를 했지만, 내부 기밀이라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드볼은 자신이 그녀에게 ‘판단 실수’를 했다고 사과했다.
NYT는 “1998년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회사를 만들 때부터 구글은 관대한 직장 문화를 조성했다”며 “페이지가 당시 구글 엔지니어였던 머리사 메이어 전 야후 CEO와 데이트를 한 것은 실리콘밸리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에릭 슈밋 전 CEO는 내연녀를 컨설턴트로 고용했고, 브린은 여직원과 합의에 따른 혼외 관계를 가졌다”고 말했다.
NYT는 이 기사가 30여 명의 전·현직 임직원을 취재해 확인한 것이며 취재원들은 회사와 ‘기밀서약’을 맺었기 때문에 모두 익명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사자인 루빈은 “뉴욕타임스 기사는 수많은 부정확함과 엄청난 과장이 담겨있다”면서 “특히 호텔 방에서 여성에게 구강성교를 강요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거짓 혐의는 전 부인과의 이혼 및 양육권 다툼 때 나를 비난하기 위해 동원됐던 더러운 공격들”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NYT는 그와 1년 전 헤어진 전 부인이 법정에서 “결혼생활 중에도 그는 여러 여성과 ‘소유관계’였다”고 주장하면서 루빈이 한 여성에게 보낸 ‘넌 내 소유물과 같다. 나는 너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줄 수 있다’는 이메일 스크린 샷을 증거자료로 제출했다고 전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AFP=연합뉴스]
아일린 노턴 구글 인력운용 담당 부사장은 성명에서 “구글은 성희롱을 심각하게 다뤄왔고, 관련된 모든 민원을 조사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고 반박했다.
피차이 CEO와 노턴 부사장은 직원들에게 보낸 공동명의의 이메일에서 “오늘 NYT 기사는 매우 읽기가 어려웠다”면서 “지난 2년간 성희롱과 관련해 48명을 해고했고, 이 가운데는 선임 매니저 또는 그 이상의 직급이 13명”이라고 말했다. 또 “해고된 이들 중 누구도 떠날 때 퇴직 보상금을 받은 사람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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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루빈
미국의 사업가
미국 배우에 대해서는 앤드류 루빈을 참고하세요.
Andrew E. Rubin은 미국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기업가, 벤처 투자가입니다. 루빈은 2003년에 Android Inc.를 설립했고, 2005년에 구글에 인수되었습니다.루빈은 9년간 구글 부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대부분의 재임 기간 동안 휴대폰 및 기타 기기용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개발하고 홍보하는 구글의 노력을 주도했습니다. 루빈은 2014년 성적 비위 의혹이 제기되자 구글을 떠났다. 하지만 처음에는 해고라기보다는 자진 탈퇴로 제시됐다. 이후 2015~2019년에는 [1]벤처캐피털 회사인 Playground Global의 공동 창업자 겸 CEO를 역임했습니다. 루빈은 2015년 Essential Products를 설립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이 회사는 2020년 구매자를 찾지 못한 채 문을 닫았다.
루빈은 1989년 로봇에 대한 사랑 때문에 애플 동료들로부터 “안드로이드”라는 별명을 얻었고, 그 별명은 결국 안드로이드 운영 [2]체제의 공식 이름이 되었다. Android Inc. 이전에 Rubin은 1999년에 Danger Inc.를 설립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습니다.Rubin은 2003년에 Danger를 떠나 Android에서 일했고, Danger는 결국 2008년에 Microsoft에 인수되었습니다.
2018년 뉴욕타임스는 루빈의 2014년 구글 탈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담은 기사를 실었다.- 루빈이 여성 직원들을 성추행했다는 믿을 만한 주장 때문에 자발적이기 보다는 강제적이었으며, 구글이 루빈에게 9천만 달러의 퇴직금을 지급해 그 과정을 앞당겼다는 것이다. 구글의 거액의 퇴직금은 상당한 [3]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초기 생활과 교육
루빈은 뉴욕 채파콰에서 심리학자의 아들로 자랐고 나중에 자신의 다이렉트 마케팅 회사를 설립했다. 그의 아버지의 회사는 신용카드 [4]청구서와 함께 보낼 최신 전자 기기들의 사진을 만들었다. 그는 1977년부터 1981년까지 뉴욕 채파콰에 있는 호레이스 그릴리 고등학교에 다녔고 1986년 [5]뉴욕 유티카 칼리지에서 컴퓨터 공학 학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직업
앤디 루빈은 1989년부터 1992년까지 제조 엔지니어로 애플에서 [6]일했다.
제너럴 매직
루빈은 1992년에 제너럴 매직에 입사했다. 그는 Motorola Embirge를 리드 [7]엔지니어로 개발했습니다.
구글
2005년 [8]구글에 안드로이드를 인수한 후 루빈은 구글의 모바일 [9][10]및 디지털 콘텐츠 부문 수석 부사장이 [11]되어 스마트폰용 오픈소스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의 개발을 감독했다. 2013년 3월 13일, Larry Page는 블로그 투고를 통해 Rubin이 [12][13]Android 사업부에서 구글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인수하기 위해 이동했다고 발표했다. 2013년 12월, Rubin은 Google의 로봇 부문([14]당시 Google이 소유하고 있던 Boston Dynamics 등의 기업 포함)의 경영을 개시했다. 2014년 10월 31일, 그는 구글에서 9년 만에 기술 스타트업 [15][16][17][18]벤처 캐피털 회사를 설립하기 위해 회사를 떠났다.
성희롱 혐의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루빈이 자선사업과 창업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우호적인 출발로 언론에 보도됐지만 구글 조사 과정에서 루빈에 대한 직원의 성희롱 주장이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자 CEO 래리 페이지는 개인적으로 루빈의 사임을 요청했다. 루빈이 혼외 관계를 맺은 이씨는 2013년 [19]루빈이 호텔방에서 그녀에게 구강 성관계를 강요했다고 비난했다. 루빈은 “이러한 거짓 혐의는 이혼과 양육권 [20]다툼에서 나를 비하하기 위한 비방 캠페인의 일환”이라며 이러한 보도에 대해 강하게 반박하고 잘못을 부인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루빈에 대한 구글 직원 파업은 2018년 구글에서 9000만달러의 ‘출구 패키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구글은 직원들에게 2016년 이후 성희롱 우려로 해고된 직원은 한 명도 없다는 [21]내용의 메모를 보냈다.
구글 이후
구글에서 쫓겨난 루빈은 2015년 피터 배럿, 맷 허센슨, 브루스 [22]리크와 함께 플레이그라운드 글로벌을 설립했다. 동사는 벤처 캐피털 기업이며, 기술 스타트업을 위한 스튜디오로서 자금 조달, 자원, 멘토링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2015년 Playground Global은 구글, HP, Foxconn, Redpoint Ventures, Seagate Technology,[1][23] Tencent 등의 투자자로부터 3억달러의 자금을 조달했다. 그것은 Owl [24]Labs와 같은 여러 회사에 투자했다. 루빈은 2019년 [25]5월 Playground Global을 떠났다.
Rubin은 마침내 Android Phone 스타트업 Essential Products의 창설을 도왔습니다. 그는 2017년 11월 구글 시절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보도가 [26][27]나오자 에센셜 프로덕트를 휴직했다. 2017년 12월, 그는 에센셜 [28]프로덕츠로 복귀했다.
루빈과 그의 전처인 히라바루 루빈은 캘리포니아 로스 알토스에 있는 베이커리 겸 카페인 Voyageur du Temps를 소유하고 운영했다.[23][2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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