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화폐 | 세계5대 부국 선진국에서 국가부도로 아르헨티나의 경제 몰락 이야기 모든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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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경제 위기, https://ko.wikipedia.org/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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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페소 – 나무위키:대문

아르헨티나의 통화. ISO 4217 코드는 ARS, 기호는 $이다. 타 통화와 구분시에 공식적 표기법은 없으나 AR$가 가장 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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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12/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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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페소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페소(스페인어: peso)는 1992년 1월 1일부터 통용된 아르헨티나의 통화로 1 페소는 100 센타보(centavos)에 해당된다. 페소는 1826년부터 1985년까지 통용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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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5/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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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페소 – ARS 환율 – Wise

ARS 환율 ; 0.00745 · 0.00724 · 0.59384 · 0.00614 ; 134.26000 · 138.04600 · 1.68396 · 162.884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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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ise.com

Date Published: 10/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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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페소 원 (ARS KRW) 변환기

ARS/KRW – 아르헨티나 페소 원 … 기준통화: 아르헨티나 페소 … 가상화폐 가격은 변동성이 극단적으로 높고 금융, 규제 또는 정치적 이벤트 등 외부 요인의 영향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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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r.investing.com

Date Published: 3/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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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오피니언] 아르헨티나 페르난데스 신정부와 암호 화폐 시장

이런 면에서 보면 암호화폐가 어떤 국가의 경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 신정부가 어떤 정책을 발표할 때 마다 암호화폐의 거래량과 가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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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emerics.org:446

Date Published: 8/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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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의 도시가 페소 대신 달러에 빠진 까닭은 – 한국일보

아르헨티나의 지폐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자신들의 화폐인 페소를 믿지 않는다. 대신 오직 달러를 선호한다. 이동학 작가. 우리나라는 달러에 미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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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ankookilbo.com

Date Published: 11/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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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화폐 – 네이버 블로그

이탈리아계 출신 이민자의 자손이 많기 때문이라고 하며, 중남미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은 국가에 속한답니다. ♤ 아르헨티나 화폐 단위. √ Peso [ 페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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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5/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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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르헨티나 은행 예금 금리는 45%? – 대구MBC

인플레이션으로 아르헨티나 화폐의 가치가 은행 예금 이자보다 더 빨리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또한 러시아에 대한 아르헨티나의 입장 변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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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dgmbc.com

Date Published: 12/3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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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인플레이션 우려 속 암호화폐 채택률 급증

남미 국가 아르헨티나가 인플레이션 급증 우려 속에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 채택률이 급증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30일(현지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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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g-enews.com

Date Published: 6/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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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5대 부국 선진국에서 국가부도로 아르헨티나의 경제 몰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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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아르헨티나 화폐

  • Author: 당신이 몰랐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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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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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페소(스페인어: peso)는 1992년 1월 1일부터 통용된 아르헨티나의 통화로 1 페소는 100 센타보(centavos)에 해당된다. 페소는 1826년부터 1985년까지 통용된 아르헨티나의 통화이기도 하다.

아르헨티나는 1985년에 도입한 아우스트랄의 초인플레이션이 심해지자 1992년에 10,000 아우스트랄 = 1 페소의 화폐 개혁을 시행하는 한편 1 미국 달러 = 1 아르헨티나 페소의 고정 환율을 도입했다. 미국 달러와의 고정 환율은 2002년에 폐지되었다. 현재는 1, 5, 10, 25, 50 센타보, 1, 2, 5 페소 동전과 5, 10, 20, 50, 100, 200, 500, 1000 페소 지폐가 통용된다. 센타보 동전은 인플래이션과 낮은 가치로인해 거의 사용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각주 [ 편집 ]

외부 링크 [ 편집 ]

아르헨티나 페소 – ARS 환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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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페소 원 (ARS KRW) 변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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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루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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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신정부 출범과 경제 현황

지난 12월 10일 아르헨티나에서 중도좌파인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취임했다. 친시장주의자인 마크리 우파 집권 4년을 마감하고 다시 포퓰리스트 좌파 정부가 등장했다. 아르헨티나는 마크리 집권으로 친시장적인 개혁을 추진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정권을 재창출하는데 실패했다. 아르헨티나는 페소화 평가절하, 높은 인플레이션, 디폴트 선언 우려, 빈민율 증가 등의 문제들을 안고 있다. 이에 국민들은 인플레이션이 50%를 넘지 않기를 바라고 있고, 1,000억 달러 부채를 국채로 변제하기를 바라고 있으며, 빈곤율은 40% 이하로 낮춰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좌파정부의 정책을 보면 실현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 않는다. 신임 대통령은 사실상의 디폴트(virtual default)를 사회 계층간 격차를 줄이고. 내수시장을 진작시키기 위해 저리의 신용대출을 확대할 것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지난 10월 27일에는 마크리 경제팀과 협의해 중앙은행이 페소화 평가절하와 더불어 외환보유고 보호를 위해 자본 규제(Capital Control)를 발표했으나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새 정부의 경제 수장에 IMF를 비판하는 마르틴 구즈만(Martín Guzmán)을 임명하면서 국제금융시장과의 마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경제 불안정성은 높아지고 있는데, 비트코인(Bitcoin)을 포함한 암호 화폐들의 거래가 2019년 한 해 동안 급격하게 증가했다. 지난 10년간 남미를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경제 불안정성이 높아지면 암호화폐의 거래 규모와 가치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암호화폐가 어떤 국가의 경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 신정부가 어떤 정책을 발표할 때 마다 암호화폐의 거래량과 가치가 높아지는 것을 보면 아르헨티나의 암호화폐 시장이 어떤 특정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경제 위기에 수익성이 높은 비트코인

아르헨티나에 암호화폐가 소개된 지 10년이 되었지만, 정확한 용어 정리도 되지 않아, 암호 자산(crypto-assets), 암호 화폐(cryptocurrencies), 디지털 화폐(digital currencies), 가상 자산(virtual assets) 등으로 혼용되고 있다. 암호 화폐 중에서 가장 거래량이 많은 것이 비트코인이다. 비트코인이 다른 암호화폐보다 인기가 높은 이유는 아래 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래 <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2015년 12월에 10만 달러를 투자했을 때 2019년 10월에 얻을 수 있는 수익을 평가한 것이다. 아르헨티나 페소에 10만 달러를 투자했을 때는 96만 9,000 달러로 페소를 샀다면 지금은 1만 6,225 달러 가치 밖에 없다. 반면에 2015년 12월에 10만 달러로 비트코인을 275.44 BTC를 샀다면 2019년 10월 기준으로 252만 33.29달러의 가치를 지니니 242만 333.29달러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는 평가이다. 같은 기간 아르헨티나 페소 가치가 83% 정도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체적으로 아파트(Departamento), 금(ORO), 주차장(Chochera)에 투자해도 수익을 올릴 수 있지만 비트코인의 수익이 가장 높은 것이다. 이런 수익을 반영하듯 2019년 아르헨티나의 비트코인 거래량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림 1>는 아르헨티나의 비트코인 거래량의 변화를 보여준다. 2018년에 점진적으로 증가하다가 2019년에 거래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정치적 불안정성이 증가하고 정부가 비트코인을 규제하겠다는 발표를 할 때 더 증가한 것으로 알 수 있다. 8월에 치러진 예비대선(PASO, Primarias, Abiertas, Simultáneas y Obligatorias) 결과가 발표된 이후에도 비트코인 거래는 폭증했고, 지난 10월 31일 비트코인 구매를 위한 카드 결제 금지 정책이 발표되었을 때도 크게 증가했다. 그리고 지난 12월 20일 신임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도 비트코인의 인기는 수그러들지 않았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는 대체적으로 높은 인플레이션, 환율 평가절하, 재정적자 등과 같은 경제 불안정성이 높은 국가들에서 활성화 되는 측면이 있고, 정치 불안정성이 높은 국가에서는 위험 회피용으로 선택되고 있다. 신임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암호 화폐 시장이 급격하게 팽창했다는 것은 아르헨티나의 정치와 경제의 안정성에 대한 기대가 높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법정통화로 진화하려는 비트코인

이미 아르헨티나 소비자들은 암호화폐의 투자 수익성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실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암호화폐 투자에서 대부분 상위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경제위기 시 피난처로서 암호화폐시장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를 판단하는 시험장이 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37개 도시에서 비트코인으로 대중교통 카드인 수베(SUBE)를 구매할 수 있다. 또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130개 상점이 비트코인을 결제수단으로 받고 있다. 비트코인 ATM 기계가 11곳에 설치되어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이런 환경을 반영하듯 최근 발표된 보도에 따르면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비트코인이 거래가 많은 도시가 되었다. 아르헨티나 최대 여행사인 가르바리노비아헤스(Garbarino Viajes)가 결제수단으로 비트코인을 수용하고 있고,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운영하고 있는 대표적인 아르헨티나 인터넷 쇼핑몰인 메르까도 리브레(Mercado Libre)도 브라질에서 비트코인을 받기 시작했다. 또한 라틴아메리카 암호화폐 거래소인 비텍스(Bitex)는 암호화 경제 시스템(crypto-economic system)에 민간은행의 진입을 유연하게 할 계획이다. 중앙은행이 신용카드로 암호화폐를 구매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직접 은행 거래에 대해서는 규제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또한 암호화폐 거래소 바이낸스가 중남미에서 법정통화 게이트를 개설할 것이라고 발표했는데, 대상 국가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선정되었다. 라타멕스(Latamex)라고 불리는 게이트는 바이낸스 법정통화 게이트웨이 하에서 가동되며, 이를 통해 바이낸스의 중남미 사용자들은 지역 디지털 자산 결제 네트워크인 세틀 네트워크(Settle Network)와 연계하여 직접 암호화폐를 매입할 수 있게 된다. 이 플랫폼은 우선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서 개통되어 아르헨티나 페소화와 브라질 헤알화로 암호화폐를 직접 구매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사용자들은 비트코인(BTC), 바이낸스 코인(BNB), 이더(ETH), 바이낸스의 스테이블코인 바이낸스 USD(BUSD) 등을 구입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국외에서 암호화폐 거래를 현지 화폐로 전환하려고 하는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암호화폐 거래를 규제하기 위해 2019년 9월까지는 월 1만 달러로 비트코인 구매를 제한했다가 10월 27일에는 자본 규제를 통해 2019년 12월까지 개인이 구매할 수 있는 달러를 은행계좌를 통해 월 200달러와 현금 100달러로 제한했다. 정부가 발표한 외환 거래 제한 조치는 오히려 비트코인 산업 성장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정부가 외환 규제를 할 때 마다, 점진적으로 비트코인을 포함한 암호 화폐 시장이 중산층의 전통적인 대안이었던 미국 달러와 증권거래소(OTC Exchanges)의 대안으로 등장하고 있다. 2019년 11월 기준 1 BTC는 12,759 달러에 거래되었는데, 다른 국가들에 비해 38%나 높은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달 LocalBitcoin에서 총 1,940만 페소 정도 거래되었다.

암호화폐 규제 회색지대

현재 암호화폐 관련 규제는 돈세탁방지법 25,246호와 27,430호에 근거한 300/2014 결의안(Resolution 300/2014) 뿐이다. 비트코인은 중앙정부가 발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식으로 분류되지도 않고 있으며, 세제개혁법안에 따르면 가상화폐의 상업화로 발생하는 소득에 대해서만 세금을 부과할 수 있다.

소득세로 분류되기 때문에 국내외 거래에서 발생한 수익의 15%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그러나 세제개혁법안의 주요 목적이 금융 소득 과세이기 때문에 암호화폐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 2020년 1월 1일에서 2029년 12월 31일 사이에 공표될 것으로 보이는 27,506호 법령에는 소프트웨어, 컴퓨터와 디지털 서비스, 전자 및 커뮤니케이션과 관련된 상품, 나노기술과 과학, 항공우주와 인공위성 산업, AI, 로봇 및 산업 인터넷, 사물인터넷, 가상현실과 같은 지식경제(Knowledge Economy)를 활성화하기 위한 내용들이 포함될 예정이다. 하지만 시행시기를 10년 간으로 예정하고 있어 언제 적용될지 알 수 없다.

암호화폐에 대한 평가

현지에서는 아르헨티나의 조세서비스를 담당하는 연방국세청(Administración Federal de Ingresos Públicos, AFIP)이 규제를 명확히 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2019년 11월 상원에서 금융 혼란을 해결하기 위한 신중한 해결책으로 암호화폐 규제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11월 20일 실비아 엘리아스 데 페레스(Silvia Elías de Pérez) 상원의원이 “아르헨티나 디지털 경제: 암호화폐, 장정과 단점” 토론회를개최하고 인플레이션 억제와 통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한 기술적인 가능성을 제기했다. 암호화폐로 자본이 몰리는 이유가 아르헨티나의 페소화 가치 하락과 높은 인플레이션에 있, 이런 위험성을 회피하기 위해 달러를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외환 부족 현상이 가중되고 있다고 보고있기 때문에 암호화폐가 이런 문제들을 다소 해소시켜 인플레이션과 환율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반면에 아르헨티나 중앙은행과 재무부와 같은 정부와 암호화폐 시장 팽창에 부정적인 입장인 사람들은 우선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법정 화폐가 아니기 때문에 화폐 가치의 안정성이 확보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중앙은행 대표인 이반 운데와트(Ivan Hundewadt)은 비트코인의 글로벌 및 시스템적인 위험성뿐만 아니라, 개별적인 위험성, 휘발성, 컴퓨터 파워로의 화폐집중, 구매력의 익명성 때문에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부정적인 입장은 암호화폐가 자본 유출의 익명성을 가지기 때문에 또 다른 자본 유출 통로가 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사이버 법률 전문가인 호아나 카트리나 팔리에로(Johana Caterina Faliero)는 암호화폐는 대규모 혼란을 초래할 수 있는 양날의 칼이라고 주장한다. 국가의 화폐 발행권 독점을 깰 수 있고, 새로운 화폐에 대한 혁신적인 규제 틀이 필요한데, 많은 장점도 있지만 많은 문제(도전)도 갖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경제 위기에 직면한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수익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사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암호화폐 시장은 신정부가 경제안정화를 위한 특단의 조치를 내놓고 그 정책이 성과를 내지 않는다면 계속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페르난데스 신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정책이 많아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대부분이 자본 규제에 초점을 두고 있다. 정부는 새로운 정책이 없는데, 국민들은 투기 위험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적응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탱고의 도시가 페소 대신 달러에 빠진 까닭은

우리나라는 달러에 미친 나라예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카페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20대 카밀라(Camilla)는 2016년 베네수엘라를 떠나 콜롬비아와 에콰도르, 페루, 칠레를 거쳐 아르헨티나에 왔다.

카밀라가 거쳐 온 경로는 베네수엘라 이주민들이 가장 많이 찾는 루트인데, 그 이용 인원이 2015년 8만9,000명에서 2017년 88만 명으로 10배나 증가했을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018년 8월 에콰도르와 페루가 국경을 닫았다. 신분증만 있으면 자유롭게 오고 갔는데 그때부터 여권을 보여줘야 지나갈 수 있는 길로 바뀌었다.

이는 베네수엘라에서 여권 만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을 이용해 이웃 나라들이 사실상 베네수엘라 국민들을 받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이다. 여권 발급에 수백 달러를 뒷돈으로 주고도 1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하니, 사실상 여권 갖는 게 하늘에서 별 따기만큼 어렵다.

나는 칠레 산티아고에서 더 황당한 이야길 듣기도 했다. 국경이 막히니 국경 수비대의 눈을 피해 불법으로 국경을 넘고, 그러다 보니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워져 걸어서 산티아고까지 온다는 것이다. 무려 7,300㎞에 이르는 엄청난 거리를.

어려움을 겨우 이겨내고 국경을 넘어 아르헨티나까지 와도 굴곡은 이어진다. 카밀라는 전전긍긍하다 겨우 카페에 일자리를 얻었지만, 공식 이민 서류를 갖고 있지 않은 친구는 합법적으로 취직을 못 했고, 최악의 경우 성매매로 생계를 꾸린다며 안타까워했다.

아르헨티나는 브라질과 함께 남미 경제를 이끄는 양대 산맥이다. 여기에 작지만 강한 국가로 우루과이와 칠레가 꼽힌다. 하지만 양국은 자원의 저주라 불릴 만큼 풍족한 자원에도 경제는 내리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8년 아르헨티나는 27년 만에 최고 인플레이션을 기록했는데 무려 47.6%였다.

자국 화폐인 페소 가치도 달러 기준으로 급락했는데, 내가 아르헨티나에 머물던 2018년 8, 9월 페소 가치는 하락 또 하락. 8월 1일에는 1달러 대비 27.52페소였던 가치가 같은 달 28일엔 31.34페소를 기록하며, 약 13% 떨어졌다.

당시 페소 환율은 8월 29일 33.99페소 → 8월 30일 37.59페소 → 8월 31일 36.85페소 → 9월 3일 37.39페소 → 9월 4일 38.88페소를 기록했다.

때마침 같은 시기에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던 나는 여행객 입장에서 페소 가치가 하락한 덕을 크게 봤다. 숙소 비용과 식비, 교통비 등 8월 이전에 갔더라면 써야만 했던 돈을 3분의 1 이상 아낀 것이다.

정부의 극약 처방에도 경제 회복은 저 멀리

더 운이 좋았던 건 9월 4일 대국민 담화를 자청한 마우리시오 마크리(Macri) 대통령의 회견을 대통령궁 앞에서 아르헨티나 언론인들과 지켜볼 수 있었다.

이날 대통령은 끝없이 추락하는 국가 경제를 되살려 보겠다며 극약 처방을 내놓았다.

대통령은 정부 부처 10여 개를 통폐합해 절반으로 줄이고, 방만한 재정 지출을 27% 줄이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여기에 대통령의 입으로 ‘나쁜 세금’이라고 말하면서도, 위기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곡물을 수출하는 기업에 1달러당 4페소를 과세하는 수출세를 부과한다고 했다. 페소 가치 하락으로 이익을 얻은 수출업자들에게 고통 분담을 호소하며 협조를 구한 것이다.

정작 내가 놀란 것은 무거운 내용의 대통령 담화를 현장에서 함께 지켜본 이들이 크게 개의치 않아 했던 모습이다. 애초에 친 기업과 친 시장을 기치로 당선된 대통령이었고, 개혁 방안의 실현도 순탄치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2018년 7월 1일부터 효율성을 추구한다는 목적으로 경찰서 재편도 시도했다. 그래서 기존의 경찰서를 54개에서 43개로 줄였다고 한다. 경찰서가 총기 난사를 당하며 공격에 노출되면서도 재정 지출을 위한 조치가 강행됐다고 한다.

2018년 4월 부에노스아이레스주의 라마탄자(LaMatanza) 경찰서에서는 마약 거래와 살인 혐의로 수감 중인 애인을 탈옥시키기 위해 19세 여성이 다른 공범과 함께 총기를 난사하며 습격한 사건이 있었단다.

이 사건으로 경찰관이 중태에 빠져 시민 불안이 커졌고, 비슷한 시기에 경찰이 공격을 당한 총기 사건은 몇 건 더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좋지 않은 치안 상태는 더 나빠졌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위험하다고 알려진 거리의 상점들은 자물쇠를 채워두고 장사를 하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간판도 없다. 불법 영업을 하는 곳이 아니지만 아는 사람들만 문 앞에 가서 인기척을 하면 문을 조용히 열어주는 식으로 영업을 한다. 오토바이 절도는 흔한 일이며, 길가에 세워둔 차량의 유리창이 깨지는 것도 눈 깜짝할 사이였다.

마크리 정부는 이미 2018년 5월에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 금용을 신청했다. 나는 아르헨티나가 IMF에 도와달라고 구조 신호를 보내는 단골손님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1958년 이후로 20여 차례나 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했으니까.

객관적으로 나라의 신용과 체력이 허약해져 가는데, 어째서인지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기류가 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만성적 위기는 일상이 되어버린 것일까.

나는 스위스에서 만났던 아르헨티나 출신 소피아를 다시 만났다. 소피아는 대학을 졸업한 뒤 한 달 동안의 유럽 여행을 마쳤다. 이후 구직 활동 중이었는데, 쉽지 않다고 했다. 그의 친구들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5명은 멕시코로, 스페인과 미국으로 각각 10여 명이 향했다.

그러나 대개는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돌아온다고 한다. 그곳 역시 일자리 사정이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의 월마트는 문을 닫았고, 실업률은 35%에 이를 만큼 심각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를 걷다 보면 ‘돌러돌러(달러)!! 깜비오!!’ 라는 소리를 수도 없이 듣는다. 이른바 거리 환전상들이다. 1달러에 얼마냐고 묻자 계산기를 두드려보더니 37페소로 바꿔준다고 했다.

세계 여행을 하다 보면 환전상들은 보통 국경 지역에 있고, 시내에서는 환전소만 있다. 국경이 아닌 도심 길거리마다 넘치는 환전상들을 볼 수 있는 나라는 아르헨티나가 유일했다.

그 배경에는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자국의 화폐 페소를 믿지 않는다는데 있다. 자국의 화폐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정부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다는 것. 숙소에서 결제할 때도 페소는 거부당하고 달러만 받는다고 했다.

이용료를 깎아주더라도 가격 하락 위험이 덜한 달러로 받아두는 것이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달러를 주는 내 손길을 반기며 정권이 다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집권한 정부가 성과를 내기는커녕 안 좋은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도심 속 전시회장 같은 묘지의 정체는

죽어서도 살 수 있을까. 나는 언젠가부터 사람은 세 번 죽는다고 정의했다. 꿈을 잃는 것이 첫 번째 죽음이요, 내 목숨이 끊어지는 것이 두 번째 죽음이요,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모두 죽었을 때 비로소 세 번째 죽음이 완결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위인이든 극악무도한 인물이든 역사 속에서 늘 기억되는 사람들이 있다. 죽어도 산 사람들이 아닐까.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북동부의 부유한 지역인 레콜레타(Recoleta)엔 죽어서도 산 사람들의 묘지가 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뿐 아니라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이 묘지로 몰려든다. 이유가 무엇일까.

언뜻 봐도 이렇게 비싼 땅에 묘지가 있다는 것이 이국인의 시선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묘지 이전과 도시 개발이라는 유혹이 밀어닥쳤을 텐데 그런 움직임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묘지를 다 둘러보고 나서야 하게 됐다.

레콜레타 공동묘지 부지를 묘지로 결정한 것은 182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베르나르디노 리바다비아(Bernardino Rivadavia) 아르헨티나 초대 대통령이 주도하고, 프로스페르가켈린이라는 프랑스인이 설계해서 만들어진 이 묘지는 그 이전까지 수도승들의 텃밭으로 사용되던 정원이었다고 한다.

아르헨티나인의 마음 속 에바 페론

묘지는 비석이 아닌 수많은 조각들과 전통 양식의 소형 건축물 등이 주를 이루고 있어 박물관을 연상케 한다. 수많은 묘지 중 70여 개의 묘는 예술적 우수성을 인정받아 문화재로도 지정되었다고 한다.

이곳에 잠들어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대부분이 가족묘 형식인 이곳은 아르헨티나의 역대 대통령과 가족, 명문가의 인사들이 누워 있다.

특히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큰 존경을 받는 국모로 기억되는 전 영부인 에바 페론도 잠들어 있다. 에바 페론의 드라마 같은 역정과 삶의 궤적은 1997년 영화 ‘에비타(Evita)’가 미국에서 개봉될 정도로 아르헨티나의 근현대사에 큰 영향을 줬다.

에바 페론은 가난한 시골 농부의 사생아라는 점 때문에 사람들의 멸시 속에서 성장한다. 나이트클럽의 댄서를 시작으로 출세를 향한 야망을 키워나가던 에바 페론은 성우를 거쳐 영화배우로까지 활동 반경을 넓혀나간다.

1940년대에 이르러서는 어느 정도 유명세를 떨치는 연예인의 반열에 오르기도 한다. 1944년 아르헨티나의 지진으로 인해 난민구제모금 기관에서 주최한 모임에 나갔다가 당시의 노동부 장관인 후안 페론을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이후 에바 페론의 삶은 완전히 뒤바뀐다. 우여곡절 끝에 1945년 민중 혁명 끝에 아르헨티나의 퍼스트 레이디가 된다.

노동자와 서민의 편에서 복지 정책을 확대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던 영부인 에바 페론은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던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소외와 멸시받았던 기억을 더듬으며 에바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가난한 자들과 노동자들을 차별하는 현실에 맞서며 해결에 노력을 다한다.

9년 동안 이어진 헌신의 노력을 다한 끝에 에바 페론은 국민들에 의해 부통령 후보로 추대되지만 암 말기 선고를 받고 1952년 3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이후 아르헨티나 경제의 어려움으로 인플레이션, 실업률 상승 등을 막지 못한 남편 후안 페론은 쿠데타로 쫓겨나 해외로 망명하게 된다. 에바 페론의 시신 역시 도난당해 해외를 떠돌다가 현재의 레콜레타 묘지에 자리를 잡은 것은 197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였다.

만화 속 부자나라 아르헨티나의 앞날은

에바 페론에 대한 평가는 내가 만난 사람들 사이에서도 엇갈리는 편이었지만, 직접 묘지를 찾은 당일에만도 많은 이들이 묘지를 찾고 있었다.

이렇게 매일 추모를 받기에 그의 묘지 앞은 늘 새로운 꽃다발이 놓인다. 한때 선진국 가도를 달리며, 많은 이들의 이민의 목표 국가였던 아르헨티나.

시간이 흘러 위기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지 않는 이들의 낙천성이, 흘러들어오는 베네수엘라 사람들과도 잘 공존할 수 있을까.

수출세를 부과하는 등 긴축 재정에 나섰던 마크리 정부는 경제난에 지친 국민들로부터 실각하고 2019년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이 새로 취임했다.

2019년 8월 기준 페소는 1달러에 43.20으로 더 떨어졌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공식 환율은 91.63을 기록하고 있다. 암 시장의 달러는 140페소.

대체 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문득 어린 시절 즐겨 보던 만화영화 ‘엄마 찾아 삼만리’가 떠올랐다.

이탈리아의 어린이가 돈을 벌러 떠난 엄마를 찾는다는 내용이 줄거리였다. 이때 돈을 벌기 위해 엄마가 간 곳이 아르헨티나일 정도로 부유한 국가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브루마블이라는 게임에도 등장하는 부유한 도시다.

직접 찾아간 그곳은 치안문제, 실업문제, 복지문제, 교육문제가 심화되었고, 선거 때마다 대통령을 바꿔보지만 어디로 가도 쉽진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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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화폐

♤ 아르헨티나 공화국 ( Republic of Argentina )

° 언어 : 스페인어 ° 수도 : 부에노스아이레스( Buenos Aires ) ° 면적 : 2,780,400 ㎢ (9위) ° 인구 : 4,389 만명 (2016년 33위)

부에노스아이레스 아르헨티나 Buenos Aires San Nicolás 아르헨티나 Buenos Aires San Nicolás

♤ 아르헨티나에 대해서

√ 남아메리카 대륙의 남쪽에 위치하는 브라질 다음으로 넓은 나라로서, 스페인어 사용 국가

중 가장 큰 나라입니다.

√ 16세기 경부터 스페인의 식민지화 되었으며, 1810년 독립하였지만 실질적 독립선언은

1816년에 하였으며 아르헨티나에서는 호세 데 산 마르틴( Jose de San Martin)을 독립

영웅으로 추앙하고 있습니다.

√ 이후 주변국과의 영토 전쟁과 쿠데타 등 내분을 겪으며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 아르헨티나의 주요 산업은 농업과 목축업이며, 국토의 40% 이상이 목장과 방목지, 10%가

사료 작물과 목초의 농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 국민의 대부분이 유입된 백인으로 상류 계층은 프랑스 풍이 유행하지만, 중·하류 계층은 이탈리아 문화가 펴져있다고 하는데, 이는

이탈리아계 출신 이민자의 자손이 많기 때문이라고 하며, 중남미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은 국가에 속한답니다.

♤ 아르헨티나 화폐 단위

√ Peso [ 페소, 복수형 Pesos ]

보조화폐 단위 Centavo [ 센타보 = 1/100 Peso, 복수형 Centavos ]

√ 화폐개혁 / 리디노미네이션( Redenomination )

1992년 : 1 Peso = 10,000 Australse

1985년 : 1 Austral = 1,000 Pesos Argentinos

1983년 : 1 Peso Argentino = 10,000 Pesos

√ Austral [ 오스트랄, 복수형 Australes ]

: ‘남쪽에서 오는, 남쪽에서 발생한’이란 뜻의 라틴어 Australis’에서 유래

♤ 아르헨티나 화폐에 대해서

√ 1970년대부터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짧은 기간 동안 여러 차례의 시리즈를 발행하였기

때문에 아르헨티나 화폐는 쉽게 접할 수는 있지만 모두 수집하기는 조금 어려운 편입니다. 게다가 현재도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해서 저는 조금 더 두고 볼 생각입니다.

√ 2016년부터 새로운 시리즈를 발행하고 있는데, 종전에는 100 페소가 최고액권이었지만, 2016년 200 페소와 500 페소, 2017년

1,000 페소가 발행되면서 최고액권이 계속 바뀌고 있습니다.

√ 아르헨티나 보충권 지폐는 일련번호가 ‘R’로 시작합니다.

√ 아르헨티나 중앙은행 홈페이지 : http://www.bcra.gov.ar/MediosPago/Nueva_familia_billetes_i.asp

▒▒▒▒▒ 2016년부터 발행된 현행권 시리즈입니다 ▒▒▒▒▒▒▒▒▒▒▒▒▒▒▒▒▒▒▒▒▒▒▒▒▒▒▒▒▒▒▒▒

(뒤) 아르헨티나에 서식하는 고유종의 동물들이 도안되어 있습니다.

[ 아르헨티나 1,000 Pesos ]

#366 ND(2017) (미수집)

(뒤) 중부 지역에 서식하는 휘파람새의 일종인 오르네로( Hornero )

[ 아르헨티나 500 Pesos ]

#365 ND(2016) (미수집)

​(뒤) 북동부 지역에 서식하는 재규어( Jaguar )

[ 아르헨티나 200 Pesos ]

#364 ND(2016)​ + p364a/UNC/35.0/2017.3./수집본색

(뒤) 아르헨티나해와 남극 및 남대서양 군도에 서식하는 남방긴수염고래( Southern right whale )

​[ 아르헨티나 100 Pesos ]

#364A ND(2018)​ * 364A/UNC/10.0/2019.09/나밀

(뒤) 북서부 지역에 서식하는 타루카( Taruca )

[ 아르헨티나 50 Pesos ]

#363 ND(2018)​ (미수집)

(뒤) 안데스 지역에 서식하는 콘도르( Condor )

[ 아르헨티나 20 Pesos ]

#361 ​ND(2017) + p361/ UNC/3.5/2018.6.

(뒤) 남부 고원지대인 파타고니아( Patagonia )에 서식하는 과나코( Guanaco )

​

▒▒▒▒▒ 아르헨티나에서 발행된 기념권입니다 ▒▒▒▒▒▒▒▒▒▒▒▒▒▒▒▒▒▒▒▒▒▒▒▒▒▒▒▒▒▒▒▒▒

[ 아르헨티나 100 Pesos ] * 에비타 사망 60년 추모 기념

#358 ​ND(2012~2017) + p358a/UNC/42.0/2012.11./화폐사랑

(앞) 에바 페론( Eva Peron, 1919~1952 ) : 1940년대 중반 아르헨티나의 제29대 대통령 후안 페론의 부인

에바 페론 국민적 영웅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표퓰리즘 정책 남발로 아르헨티나를 몰락의 길로 들어서게 한 인물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 여인입니다

(뒤) 텔루스( Tellus ) : 땅의 여신으로 로마 아우구스투스 시대 ‘평화의 여신’에게 바진 <평화의 제단, Ara Pacis>의 일부

[ 아르헨티나 50 Pesos ] * 포클랜드 기념

#362 ND(2015)​ + p362a/UNC/9.5/2016.6./뱅크노트

(앞) 아르헨티나에서는 말비나스 제도( Islas Malvinas )로 불리는 포클랜드 제도( Falkland Islands )의 지도

(뒤) 아르펜티나 국기를 흔들고 있는 가우초( gaucho )와 포클랜드 전쟁(1982)에서 침몰한 아르헨티나의 순양함 벨그라노

( General Belgrano )의 모습

▒▒▒▒▒ 1992년~2016년 발행된 시리즈입니다 ▒▒▒▒▒▒▒▒▒▒▒▒▒▒▒▒▒▒▒▒▒▒▒▒▒▒▒▒▒▒▒▒▒

[ 아르헨티나 100 Pesos ]

(앞) 훌리오 아르헨티노 로카( Julio Arhentino Roca, 1843~1914 ) : 아르헨티나의 제9대, 14대 대통령( 1880-1886, 1898-1904 )

지방의 유력한 집안 출신으로 1858년 아르헨티나 연방군에 입대하여, 파라과이에 대한 삼국동맹전쟁(1865-1870), 반란군과의 전투 등에 참여하여 명성을 쌓으면서 1877년 국방장관에 올랐으며 1880년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대통령에 재임한 이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연방 수도로 인정함으로써 오랫동안 지속된 연방파와 중앙집권파 간의 싸움을 해결하면서 현재의 아르헨티나 공화국 기본틀을 확립하였다고 합니다.

(뒤) 삼국동맹전쟁에서 파라과이의 파타고니아를 점령한 모습

파타고니아( Patagonia )는 경작지로는 적합하지 않으나 목축, 특히 양과 소의 방목지로는 널리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351 ND(1999~2002), #357 ND(2003) + p357a/XF/28.0/2012.5./화폐사랑

#345 ND(1992~1997) + p345b/UNC/135.0/2016.4./수집114

[ 아르헨티나 50 Pesos ]

#350 ND(1999~2003), #356 ND(2002~2003) + p350/UNC/22.0/2013.3./월드노트

(앞) 도밍고 파우스티노 사르미엔토( Domingo Faustino Sarimiento, 1811~1888 ) : 아르헨티나 제7대 대통령(1868-1874)

민간인으로 당선된 최초의 아르헨티나 대통령으로 상업 및 농업의 발전, 철도 등 국가 기간시설 건설 등에 노력하였으며, ‘통치는 교육이다’라는 정치 철학을 갖고 아르헨티나의 교육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되며 아르헨티나의 국부로 추앙받고 있다고 합니다.

(뒤) 부에노스아이레스( Buenos Aires )에 있는 정부 청사( Casa de Gobierno )와 ‘5월의 광장( Plaza de Mayo )

#344 ​ND(1992~1997) (미수집)

[ 아르헨티나 20 Pesos ]

#349 ND(1999~2003), #355 ND(2002~2012) + p355a/UNC/11.5/2014.8./나라옥션

(앞) 후안 마누엘 로사스( Juan Manuel de Rosas, 1793~1877 ) :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총독(1829-1852)

완전한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기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주지사 겸 총사령관을 지낸 인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명문가 출신이었습니다. 주지사로 재임하는 23년 동안 아르헨티나 국민을 위해 유럽에 대항하며 아르헨티나의 정서를 유지키시는데 노력한 인물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폭력적인 독재자로 평가되기도 합니다. 1852년 그의 폭정에 대항한 반란세력에 쫓겨 영국으로 망명하였다가 그 곳에서 사망하였습니다.

(뒤) 1845년 영국-프랑스 연합함대와의 ‘부엘타 오블리가도( Vuelta Obligado ) 해전의 모습

#343 ND(​1992~1997) (미수집)

[ 아르헨티나 10 Pesos ]

#360 ND(2016) + p360/UNC/3.0/2018.4./미리내

​(앞) 마누엘 벨그라노( Manuel Belgrano, 1770 ~ 1820 ) : 아르헨티나 독립전쟁 때의 군사지도자

1814년 호세 데 산 마르틴에게 군사령관직을 넘겨주기 전까지 스페인에 대한 독립전쟁을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아르헨티나 국기를 창안한 인물이며, 그의 서거일인 6월 20일을 ‘국기의 날’로 정하여 기념하고 있답니다.

(뒤) 마누엘 벨그라노에 의해 1812년 아르헨티나 국기가 최초로 게양되는 모습

#348 ND(1998~2003), #354 ND(2003~2012) + p354a/UNC/11.5/2011.9./미리내

(뒤) 로사리오(Rosario)에 있는 국기기념관( Monumento a la Bandera )

#342 ​ND(1992~1997) (미수집)

[ 아르헨티나 5 Pesos ]

#359 ND(2015) + p359/UNC/2.0/2016.2.

(앞) 호세 데 산 마르틴( Jose de San Martin, 1778~1850 ) : 아르헨티나의 독립 영웅

스페인에 대한 독립전쟁 지도자로 1814년부터 혁명군의 사령관직을 이어받아 칠레와 페루의 독립에 기여하여 ‘페루의 보호자’ 칭호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시몬 볼리바르와 함께 라틴아메리카 해방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인물이지만 볼리바르의 정치 행보와는 다르게 해방운동 이후에는 프랑스에서 은둔생황을 하였다고 합니다.

(뒤) 라틴아메리카 독립 영웅들의 모습

왼쪽부터 호세 아르티가스( Jose Artigas ), 시몬 볼리바르( Simon Bolivar ), 호세 산 마르틴( Jose de San Martin )

베르나르도 오이긴스( Bernardo O’Higgins )

#347 ND(1998~2003), #353 ND(2002~2015) + p353a/UNC/9.0/2009.8./​WPM

(앞) 호세 산 마르틴의 초상과 1818년 칠레 해방의 결정적 계기가 된 마이푸 전투( Battle of Maipu )의 승리 장면

(뒤) 아르헨티나 서부 내륙의 중심지인 멘도사( Mendoza )의 산마르틴 공원에 있는 ‘영광의 언덕( Cerro de la Gloria )’

영광의 언덕( Cerro de la Gloria )은 산 마르틴 장군의 지휘소가 있었던 장소이며,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을 기념하는 의미로 산 마르틴 장군의 군대를 형상화 한 동상이 서 있다고 합니다.

#341 ND(1992~1997) (미수집)

[ 아르헨티나 2 Pesos ]

#346 ND(1997~2002), #352 ND(2002) + p352/UNC/4.0/2009.8./WPM

(앞) 바르톨로메 미트레( Bartolomé Mitre. 1821~1906 ) : 아르헨티나 제6대 대통령(1862-1868)

분열되었던 아르헨티나를 통일시켜 처음으로 전국 단위 선거에서 당선된 대통령으로, 파라과이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삼국동맹전쟁(1865-70)에서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 연합군의 총사령관으로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합니다.

(뒤) 부에노스아이레스( Buenos Aires )에 있는 미트레 박물관( Mitre Museum )

#340 ND(1992~1997) (미수집)

[ 아르헨티나 1 Peso ]

#339 ​ND(1992~1994) + p339b/UNC/2.3/2008.9./몰아트

(앞) 카를로스 페예그리니( Carlos Pellegrini, 1846~1906 ) : 아르헨티나 제11대 대통령(1890-1892)

미겔 후아레스 셀만( Miguel Juarez Celman ) 정권에서 부통령을 역임(1886-1890)하였고, 셀만 대통령이 퇴임하자 아르헨티나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습니다. 집권 기간 중 재정을 정비하였고 국립은행을 창설하였다.

(뒤) 아르헨티나 국회의사당의 모습

▒▒▒▒▒ 1985년~1991년 발행된 ‘AUSTRAL’ 시리즈입니다 ▒▒▒▒▒▒▒▒▒▒▒▒▒▒▒▒▒▒▒▒▒▒▒▒▒▒▒

(뒤) 오른손에는 방패, 왼손에는 횃불을 들고 있는 자유의 여신이 공통적으로 도안되어 있습니다

[ 아르헨티나 500,000 Australes ]

​ #338 ND(1991) + p338/XF/45.0/2016.4./수집114

(앞) 마누엘 페드로 킨타나( Manuel Pedro Quintana, 1835~1906 ) : 아르헨티나 제15대 대통령(1904-1906)

법학을 전공하였으며 젊은 시절부터 정치에 참여하였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주 의원, 내무부 장관 등을 역임하였으며 1904년 훌리오 아르헨티노 로카의 뒤를 이어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1905년 카탈로니아계 무정부 주의자의 공격을 받아 그 후유증으로 1906년 사망하였습니다.

[ 아르헨티나 100,000 Australes ]

#336 ​ND(1990,1991) (미수집)

(앞) 호세 에바리스토 우리부루( Jose Evaristo Uriburu, 1831~1914 ) : 아르헨티나 제13대 대통령(1895-1898)

법무장관을 지내기도 하였으며 외교관으로서 1880년대 칠레와 페루-볼리비아 동맹 간에 벌어진 태평양 전쟁에서 평화 협상을 중재하기도 하였습니다. 제12대 대통령 루이스 사엔스 페냐( Luis Saenz Pena )가 1895년 사임하면서 부통령이었던 에바리스토 우리부루가 대통령직을 승계하였습니다.

[ 아르헨티나 50,000 Australes ]

​ #335 ND(1989~1991) + p335a/VF/6.0/2013.8./케이씨월드

(앞) 루이스 사엔스 페냐( Luis Saenz Pena, 1851~1914 ) : 아르헨티나 제12대 대통령(1892-1895)

아르헨티노 로카의 지지로 1892년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급진 시민 연맹의 국민당파로 정치적 색깔은 약했다고 합니다. 재임 초기 9개월 동안 23번에 걸친 내각 개편을 단행하면서 사회 질서 회복에 노력하였으나, 지지 세력의 부재와 상황 대처 능력 부재로 1895년 사임하였습니다.

[ 아르헨티나 10,000 Australes ]

​ #334 ND(1989~1991) + p334a/UNC/5.0/2007.10./고려우표사

​(앞) 카를로스 페예그리니( Carlos Pellegrini, 1846~1906 ) : 아르헨티나 제11대 대통령(1890-1892)

미겔 후아레스 셀만( Miguel Juarez Celman ) 정권에서 부통령을 역임(1886-1890)하였고, 셀만 대통령이 퇴임하자 아르헨티나 제11대 대통령으로 취임하였습니다. 집권 기간 중 재정을 정비하였고 국립은행을 창설하였다.

[ 아르헨티나 5,000 Australes ]

#330 ND(1989~1991​) + p330e/UNC/7.0/2007.10./고려우표사

(앞) 미겔 후아레스 셀만( Miguel Juarez Celman, 1844~1909 ) : 아르헨티나 제10대 대통령(1886-1890)

친척인 아르헨티노 로카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하였으며, 정교 분리와 귀족 정치를 지지하였습니다.

[ 아르헨티나 1,000 Australes ]

​ #329 ND(1988~1990) + p329d/UNC/2.0/2007.11./옥션

(앞) 훌리오 아르헨티노 로카( Julio Arhentino Roca, 1843~1914 ) : 아르헨티나의 제9대, 14대 대통령( 1880-1886, 1898-1904 )

1858년 15세로 연방군에 입대하였고 1865년부터 1870년까지 파라과이를 상대로 한 삼국 동맹 전쟁에 출전하여 공을 세워 장군이 되었습니다. 1877년 국방장관이 되어 국경 문제의 해소에 노력하였고, 1880년 대통령이 되어 무료 초등 교육과 주민 등록제 등을 시행하였습니다. 1886년 물러난 후 1898년 다시 대통령이 되어 1904년까지 집권하였습니다.

[ 아르헨티나 500 Australes ]

​ #328 ND(1988~1991) + p328a/UNC/1.0/2007.10./서부산우표사

(앞) 니콜라스 아베야네다( Nicolas Avellaneda,1837~1885) : 아르헨티나 제8대 대통령(1874-1880)

도밍고 사르미엔토 대통령 정권에서 법무, 교육 장관을 지냈습니다. 유럽 농민들의 이주를 허용하는 ‘아베야네다 법’을 만들어 많은 유럽 이주민을 받아들였고, 파타고니아를 중심으로 철도를 건설하여 육류와 곡류의 수출을 확대하였습니다.

[ 아르헨티나 100 Australes ]

​ #327 ND(1985~1990) + p327c/UNC/0.5/2007.10./서부산우표사

(앞) 도밍고 파우스티노 사르미엔토( Domingo Faustino Sarimiento, 1811~1888 ) : 아르헨티나 제7대 대통령(1868-1874)

민간인으로 당선된 최초의 아르헨티나 대통령으로 상업 및 농업의 발전, 철도 등 국가 기간시설 건설 등에 노력하였으며, ‘통치는 교육이다’라는 정치 철학을 갖고 아르헨티나의 교육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되며 아르헨티나의 국부로 추앙받고 있다고 합니다.

[ 아르헨티나 50 Australes ]

​ #326 ND(1986~1991) + p326b/UNC/0.5/2007.10./서부산우표사

(앞) 바르톨로메 미트레( Bartolomé Mitre. 1821~1906 ) : 아르헨티나 제6대 대통령(1862-1868)

분열되었던 아르헨티나를 통일시켜 처음으로 전국 단위 선거에서 당선된 대통령으로, 파라과이 전쟁이라고도 불리는 삼국동맹전쟁(1865-70)에서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 연합군의 총사령관으로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합니다.

[ 아르헨티나 10 Australes ]

#325 ND(1985~1991)​ + p325b/ UNC/0.5/2007.10./서부산우표사

(앞) 산티아고 데르키( Santiago Derqui, 1809~1867 ) : 아르헨티나 제4대 대통령(1860-1861)

후스토 호세 데 우르키사( Justo Jose de Urquiza ) 정권에서 법무 장관, 교육부 장관을 지냈으며 1860년 우르키사가 대통령직에서 사임하자 그 뒤를 이었습니다. 재임 중에 헌법을 개정하고 국명을 ‘아르헨티나 공화국’으로 제정하였으며, 1961년 그의 정책에 반대하는 세력들에게 밀리어 대통령직을 사임하고 우루과이로 망명하였습니다.

[ 아르헨티나 5 Australes ]

#​324 ND(1965~1989) + p324b/UNC/0.5/2007.10./서부산우표사

(앞) 후스토 호세 데 우르키사( Justo Jose de Urquiza ) : 아르헨티나 제3대 대통령(1854-1860)

정치를 시작할 때에는 후안 마누엘 로사스의 후원을 받았으나 1841년 엔트레리오스 총독이 되면서 세력을 모아 로사스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고 몬테카세로스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새로운 아르헨티나 연방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 아르헨티나 1 Austral ]

#323 ​ND(1985~1989) + p323b/UNC/0.5/2007.10./서부산우표사

(앞) 베르나르디노 리바다비아( Bernardino Rivadavia, 1780~1845 ) : 아르헨티나 초대 대통령(1826-1827)

1826년 제헌의회에 의해 아르헨티나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중앙집권적 정책을 추진하다 연방주의자들의 반대에 부딪혔고, 브라질과의 전쟁을 불리한 조건으로 마무리하면서 국민의 분노를 사 1827년 사직하였습니다.

▒▒▒▒▒ 1985년~1990년 발행된 ‘AUSTRAL’ 첨쇄 시리즈입니다 ▒▒▒▒▒▒▒▒▒▒▒▒▒▒▒▒▒▒▒▒

[ 아르헨티나 500,000 Australes ] * 구권 500,000 Pesos의 앞면 도안에 첨쇄하여 사용

​ #333 ND(1990) (미수집)

(앞) 호세 데 산 마르틴( Jose de San Martin, 1778~1850 )의 노년 초상

(뒤) 액면(글자)이 반복하여 기재되어 있습니다.

[ 아르헨티나 50,000 Australes ] * 구권 50,000 Pesos의 앞면 도안에 첨쇄하여 사용

#​332 ND(1989) (미수집)

(앞) 호세 데 산 마르틴( Jose de San Martin, 1778~1850 )의 노년 초상

(뒤) 액면(글자)이 반복하여 기재되어 있습니다.

[ 아르헨티나 10,000 Australes ] * 구권 10,000 Pesos의 앞면 도안에 첨쇄하여 사용

​ #331 ND(1989) (미수집)

(앞) 호세 데 산 마르틴( Jose de San Martin, 1778~1850 )의 노년 초상

(뒤) 액면(글자)이 반복하여 기재되어 있습니다.

[ 아르헨티나 10 Australes ] * 구권 10,000 Pesos에 첨쇄하여 사용

​ #322 ND(1985) + p322a/UNC/10.0/2007.8./우문관

(앞) 마누엘 벨그라노( Manuel Belgrano, 1770 ~ 1820 ) : 아르헨티나 독립전쟁 때의 군사지도자

(뒤) 마누엘 벨그라노에 의해 1812년 아르헨티나 국기가 최초로 게양되는 모습

[ 아르헨티나 5 Australes ] * 구권 5,000 Pesos에 첨쇄하여 사용

​ #321 ND(1985) + p321/UNC/5.0/2009.8./WPM

(앞) 후안 바우티스타 알베르디( Juan Bautista Alberdi, 1810~1884 ) : 아르헨티나의 정치가

후안 마누엘 로사스에게 반대하다 망명하여 우루과이와 칠레 등지에서 생활하였으며 로사스가 축출되고 난 뒤에는 저작활동 등으로 아르헨티나 정치에 참여하였고, 1853년 아르헨티나 헌법 초안 작성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뒤) 1853년 아르헨티나의 헌법 초안 작성 회의의 모습입니다.

[ 아르헨티나 1 Austral ] * 구권 1,000 Peso에 첨쇄하여 사용

#320​ ND(1985) + p320/UNC/3.8/2009.8./WPM

(앞) 호세 산 마르틴( Jose de San Martin, 1778~1850 )의 노년 초상

(뒤) 라틴아메리카 해방전쟁에서 호세 산 마르틴의 군대가 칠레로 진격하기 위해 안데스 산맥을 넘는 모습

▒▒▒▒▒ 1983년~1985년 발행된 ‘Peso Argentino’ 시리즈입니다 ▒▒▒▒▒▒▒▒▒▒▒▒▒▒▒▒▒▒▒▒▒▒▒▒

[ 아르헨티나 10,000 Pesos Argentinos ]

#319 NDj(1985) (미수집)

(앞) 마누엘 벨그라노( Manuel Belgrano, 1770 ~ 1820 ) : 아르헨티나 독립전쟁 때의 군사지도자

(뒤) 마누엘 벨그라노에 의해 1812년 아르헨티나 국기가 최초로 게양되는 모습

[ 아르헨티나 5,000 Pesos Argentinos ]

#318 ND(1984)​ + p318a/UNC/10.0/2007.8./우문관

(앞) 후안 바우티스타 알베르디( Juan Bautista Alberdi, 1810~1884 ) : 아르헨티나의 정치가

후안 마누엘 로사스에게 반대하다 망명하여 우루과이와 칠레 등지에서 생활하였으며 로사스가 축출되고 난 뒤에는 저작활동 등으로 아르헨티나 정치에 참여하였고, 1853년 아르헨티나 헌법 초안 작성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합니다.

(뒤) 1853년 아르헨티나의 헌법 초안 작성 회의의 모습입니다.

[ 아르헨티나 1,000 Pesos Argentinos ]

​ #317 ND(1983) + p317b/UNC/3.0/2007.8./우문관

(앞) 호세 산 마르틴( Jose de San Martin, 1778~1850 )의 노년 초상

(뒤) 라틴아메리카 해방전쟁에서 호세 산 마르틴의 군대가 칠레로 진격하기 위해 안데스 산맥을 넘는 모습

[ 아르헨티나 500 Pesos Argentinos ]

​ #316 ND(1984) + p316a/UNC/5.0/2007.8./우문관

(뒤) 사실상 아르헨티나의 독립을 선언하게 했던 1810년 5월 22일부터 25일까지 이어진 부에노스아이레스 회의의 모습

1807년 나폴레롱이 이끄는 프랑스 군대가 스페인 본토를 점령한 사실을 알게된 라틴아메리타에서는 독립의 기운이 솟아 올랐으며 1810년 5월 25일 아르렌티나의 독립선언은 ‘5월 혁명’이라 일컬어지며 라틴아메리카 전지역에서 일어났던 독립운동의 커다란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 아르헨티나 100 Pesos Argentinos ]

​ #315 ND(1983) + p315a/UNC/3.0/2007.8./우문관

(뒤)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남쪽 끝에 위치하여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우수아이아( Ushuaia ) 항의 모습

우수아이아( Ushuaia )는 아르헨티나 최남단 항구 도시이며, 티에라델푸에고 주(州)의 주도입니다.

[ 아르헨티나 50 Pesos Argentinos ]

​ #314 ND(1983) + p314a/UNC/1.3/2007.8./우문관

(뒤) 인디언 부족들의 왕들이 찾았다는 후후이( Jujuy )에 있는 ‘왕들의 온천( Terma de Reyes )’의 전경

후후이( Jujuy )는 아르헨티나 북서쪽에 위치하는 칠레와 볼리비아와의 접경 도시이며 해발 1,400m에 위치한다고 합니다.

[ 아르헨티나 10 Pesos Argentinos ]

​ #313 ND(1983) + p313a/UNC/1.2/2007.8./우문관

(뒤) 남아메리카 파라나 강의 지류인 이구아수 강의 하류에 있는 이구아수 폭포( Cataratas del Iguazu )의 모습

이구아수 폭포( cataratas del iguazu )는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로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국경지대에 위치하며 폭포의 20%는 브라질 영토이고 나머지는 아르헨티나 영토에 있다고 합니다. 이구아수는 원주민 언어로 ‘큰 물’ 또는 ‘위대한 물’이라는 뜻이며, 약 275개의 폭포가 말굽 모양으로 거대한 폭포 군을 이루고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규모의 폭포를 ‘악마의 목구멍’이라고 부른답니다.

[ 아르헨티나 5 Pesos Argentinos ]

#312 ND(1983)​ + p312a/UNC/1.2/2007.8./우문관

(뒤) 로사리오(Rosario)에 있는 국기기념관( Monumento a la Bandera )

[ 아르헨티나 1 Peso Argentino ]

#311 ND(1983)​ + p311a/UNC/1.2/2007.8./우문관

(뒤) 천상의 호수 도시라고 불리는 바릴로체( Bariloche )의 샤오샤오 시립공원( Parque Municipal Llao-Llao )

바릴로체( Bariloche )는 ‘남미의 스위스’라고 불리는 파타고니아 여행지 중 손꼽히는 관광지이며 안데스 산맥의 동쪽 거대한 나우엘 우아삐( Lago Nahuel Huapi ) 호수를 끼고 있습니다.

▒▒▒▒▒ 1970년~1981년 발행된 舊 PESO 시리즈입니다 ▒▒▒▒▒▒▒▒▒▒▒▒▒▒▒▒▒▒▒▒▒▒▒▒▒▒▒▒▒

(앞) 1~10 Pesos에는 아르헨티나 독립 전쟁의 지도자이자 아르헨티나 국기를 창안한 마누엘 벨그라노( Manuel Belgrano ),

50~1,000,000 Pesos에는 호세 산 마르틴( Jose de San Martin )의 노년 초상이 도안되어 있습니다.

[ 아르헨티나 1,000,000 Pesos ]

#310 ND(1981)​ + p310a/UNC/35.0/2016.1./수집114

(뒤) 1810년 5월 25일 아르헨티나의 독립을 선언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 아르헨티나 500,000 Pesos ]

#309 ND(1980)​ + p309a/UNC/8.6/2014.10./우문관

(뒤) 스페인 원정대가 유럽인 최초로 부에노스아이레스( Buenos Aires )를 발견한 것을 묘사한 그림이 도안되어 있습니다

[ 아르헨티나 100,000 Pesos ]

#308 ND(1979)​ + p308b/UNC/10.0/2016.3./수집114

(뒤) 아르헨티나 조폐창( Casa de Moneda ) 건물

[ 아르헨티나 50,000 Pesos ]

#307 ND(1979)​ + p307/UNC/5.0/2009.8./WPM

(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 건물

[ 아르헨티나 10,000 Pesos ]

#306 ND(1976)​ + p306b/UNC/5.0/2009.8./WPM

(뒤) 우루과이와 국경지대에 있는 도시 콜론( Colon )에 있는 엘 팔마르 국립공원( Parque Nacional El Palmar )

[ 아르헨티나 5,000 Pesos ]

#​305 ND(1977) + p305a/UNC/2.0/2008.11./나라옥션

(뒤) 아르헨티나 동북부 대서양 연안에 위치한 휴양 도시인 마르델플라타( Mar del Plata )의 전경

마르델플라타( Mar del Plata )는 매년 11월 개최되는 국제영화제의 개최지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 아르헨티나 1,000 Pesos ]

#​299 ND(1973), #304 ND(1976) + p304c/UNC/2.0/2009.8./WPM

(뒤) 부에노스아이레스( Buenos Aires )에 있는 정부 청사( Casa de Gobierno )와 ‘5월의 광장( Plaza de Mayo )

[ 아르헨티나 500 Pesos ]

#292 ND(​1972), #298 ND(1974), #303 ND(1977) – 은화로 구분 + p303c/UNC/1.0/2006.7 /옥션

(뒤) 아르헨티나 서부 내륙의 중심지인 멘도사( Mendoza )의 산마르틴 공원에 있는 ‘영광의 언덕( Cerro de la Gloria )’

영광의 언덕( Cerro de la Gloria )은 산 마르틴 장군의 지휘소가 있었던 장소이며, 라틴아메리카의 해방을 기념하는 의미로 산 마르틴 장군의 군대를 형상화 한 동상이 서 있다고 합니다.

[ 아르헨티나 100 Pesos ]

#​291 ND(1971), #297 ND(1973), #302 ND(1976) + p302a/UNC/1.5/2011.9./화폐사랑

(뒤)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남쪽 끝에 위치하여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우수아이아( Ushuaia ) 항의 모습

[ 아르헨티나 50 Pesos ]

#290 ND(1972)​, #296 ND(1974), #301 ND(1976) + p301b/UNC/1.0/2011.9./화폐사랑

(뒤) 아르헨티나 북서쪽 칠레와 볼리비아와의 접경 도시인 후후이( Jujuy )에 있는 ‘왕들의 온천( Terma de Reyes )’의 전경

[ 아르헨티나 10 Pesos ]

#289 ND(1970), #295 ND(1973)​, #300 (1976) + p300/UNC/1.0/2007.3.

(뒤)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이며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경계에 있는 이구아수 폭포( Cataratas del Iguazu )의 모습

[ 아르헨티나 5 Pesos ]

​ #288 ND(1971), #294 ND(1974) + p294/UNC/1.5/2009.8./WPM

(뒤) 로사리오(Rosario)에 있는 국기기념관( Monumento a la Bandera )의 모습

[ 아르헨티나 1 Peso ]

#287 ​ND(1970), #293 ND(1974) + p293/UNC/2.0/2011.9./주컬렉션

(뒤) ‘남미의 스위스’라고 불리는 바릴로체( Bariloche )의 샤오샤오 시립공원( Parque Municipal Llao-Llao )

▒▒▒▒▒ 1969년 발행된 舊 PESO (첨쇄) 시리즈입니다 ▒▒▒▒▒▒▒▒▒▒▒▒▒▒▒▒▒▒▒▒▒▒▒▒▒▒▒▒▒

[ 아르헨티나 100 Pesos ]

​ #286 ND(1969) * 구권 10,000 Pesos에 첨쇄 (미수집)

[ 아르헨티나 50 Pesos ]

​ #285 ND(1969) * 구권 5,000 Pesos에 첨쇄 (미수집)

[ 아르헨티나 10 Pesos ]

​ #284 ND(1969) * 구권 1,000 Pesos에 첨쇄 (미수집)

[ 아르헨티나 5 Pesos ]

​ #283 ND(1969) * 구권 500 Pesos에 첨쇄 (미수집)

[ 아르헨티나 1 Peso ]

#282 ND(1969) * 구권 100 Pesos에 첨쇄 (미수집)

▒▒▒▒▒ 1966년 이전 발행된 舊 PESO 시리즈 중 일부입니다 ▒▒▒▒▒▒▒▒▒▒▒▒▒▒▒▒▒▒▒▒▒▒▒▒▒▒

[ 아르헨티나 1,000 Pesos ]

#279 ​ND(1966) + p279b/UNC/18.0/2016.3./수집114

(앞) 호세 산 마르틴( Jose de San Martin, 1778~1850 )의 젊은 시절 초상

(뒤)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범선의 모습

▒▒▒▒▒ 1992년부터 발행된 아르헨티나 주화들입니다 ▒▒▒▒▒▒▒▒▒▒▒▒▒▒▒▒▒▒▒▒▒▒▒▒▒▒▒▒▒▒

[ 아르헨티나 1 Peso ] * 1994년~

km#112.1/1995/XF/1.0/2014.09/수집본색

[ 아르헨티나 50 Centavos ] * 1992년,1993년~2009년

km#111.1/1994/VF/1.0/2015.04/수집본색

[ 아르헨티나 25 Centavos ] * 1992년~2010년(aluminum-bronze),1993년~2009년(copper-nickel)

km#110a/1996/XF/1.0/2013.02/화폐사랑

km#110.1/2009/VF/

[ 아르헨티나 10 Centavos ] * 1992년~2005년,2006년~

km#107a/2011/XF/0.3/

km#107/1992/XF/0.3/2014.10/수집본색

[ 아르헨티나 5 Centavos ] * 1992년~2005년(brass),1993년~1995년(copper-nickel),2006년~

km#109/2005/XF/0.5/2013.02/화폐사랑

[ 아르헨티나 1 Centavo ] * 1992년~1993년,1993년~2000년

km#113a/1998/UNC/0.5/2006.05/옥션

km#108/1992/UNC/0.3/2016.05/화수1090

▒▒▒▒▒ 1985년~1991년 발행된 오스뜨랄( Austral ) 시리즈 주화들입니다 ▒▒▒▒▒▒▒▒▒▒▒▒▒▒▒▒▒▒▒

[ 아르헨티나 1,000 Australes ] * 1990년~1991년

[ 아르헨티나 500 Australes ] * 1990년~1991년

[ 아르헨티나 100 Australes ] * 1990년~1991년

km#103/1990/XF/

[ 아르헨티나 10 Australes ] * 1989년

km#102/1989/VF/1.0/2016.05/수집본색

[ 아르헨티나 5Australes ] * 1989년

[ 아르헨티나 1 Austral ] * 1989년

​[ 아르헨티나 50 Centavos ] * 1985년~1988년

km#99/1985/XF/1.0/2012.03/화폐사랑

[ 아르헨티나 10 Centavos ] * 1985년~1988년

km#98/1987/VF/1.0/2012.03/화폐사랑

[ 아르헨티나 5 Centavos ] * 1985년,1986년~1988년

km#97.2/1987/VF/1.0/2012.03/화폐사랑

[ 아르헨티나 1 Centavo ] * 1985년,1986년~1987년

km#96.2/1987/VF/0.5/2013.06/화수1090

[ 아르헨티나 1/2 Centavo ] * 1985년

▒▒▒▒▒ 1983년~1985년 발행된 아르헨티나 주화들입니다 ▒▒▒▒▒▒▒▒▒▒▒▒▒▒▒▒▒▒▒▒▒▒▒▒▒▒▒▒

[ 아르헨티나 10 Pesos ] * 1984년~1985년

km#93/1985/VF/1.5/2014.09/화수1090

[ 아르헨티나 5 Pesos ] * 1984년~1985년

[ 아르헨티나 1 Peso ] * 1984년

km#91/1984/AU/0.5/2016.05/화수1090

[ 아르헨티나 50 Centavos ] * 1983년

km#90/1983/VF/0.7/2014.09/화수1090

[ 아르헨티나 10 Centavos ] * 1983년

km#89/1983/XF/0.5/2011.11/서부산우표사

[ 아르헨티나 5 Centavos ] * 1983년

[ 아르헨티나 1 Centavo ] * 1983년

​▒▒▒▒▒ 1978년~1981년 발행된 아르헨티나 주화들입니다 ▒▒▒▒▒▒▒▒▒▒▒▒▒▒▒▒▒▒▒▒▒▒▒▒▒▒▒▒

​[ 아르헨티나 100 Pesos ] * 1978년(200주년 기념),1978년~1980년,1980년~1981년

km#85a/1980/XF/

km#85/1979/AU/

km#82/1978/XF/1.5/2014.09/수집본색

[ 아르헨티나 50 Pesos ] * 1978년(200주년 기념),1979년~1980년,1980년~1981년

km#83/1979/VF/0.6/2015.06/화폐사랑

km#81/1978/XF/1.5/2016.05/수집본색

▒▒▒▒▒ 1970년~1978년 발행된 아르헨티나 주화들입니다 ▒▒▒▒▒▒▒▒▒▒▒▒▒▒▒▒▒▒▒▒▒▒▒▒▒▒▒▒

​[ 아르헨티나 10 Pesos ] ​ * 1976년~1978년

km#72/1976/AU/1.0/2013.06/화수1090

[ 아르헨티나 5 Pesos ] * 1976년~1977년

km#71/1977/AU/0.5/2013.06/화수1090

[ 아르헨티나 1 Peso ] * 1974년~1976년

km#69/1976/AU/0.7/2013.02/화폐사랑

[ 아르헨티나 50 Centavos ] * 1970년~1976년

km#68/1970/AU/0.5/2016.09/화수1090

[ 아르헨티나 20 Centavos ] * 1970년~1976년

km#67/1971/VF/0.3/2016.07/화수1090

[ 아르헨티나 10 Centavos ] * 1970년~1976년

km#66/1974/VF/0.5/2013.02/화폐사랑

[ 아르헨티나 5 Centavos ] * 1970년~1975년

km#65/1973/VF/0.5/2013.02/화폐사랑

[ 아르헨티나 1 Centavo ] * 1970년~1975년

km#64/1975/VF/0.3/2013.02/화폐사랑

▒▒▒▒▒ 1957년~1968년 발행된 아르헨티나 주화들입니다 ▒▒▒▒▒▒▒▒▒▒▒▒▒▒▒▒▒▒▒▒▒▒▒▒▒▒▒▒

[ 아르헨티나 25 Pesos ] * 1964년~1968년

km#61/1964/XF/1.0/2016.05/화수1090

[ 아르헨티나 10 Pesos ] * 1962년~1968년

km#60/1964/XF/1.0/2014.10/수집본색

[ 아르헨티나 5 Pesos ] * 1961년~1968년

km#59/1968/XF/

[ 아르헨티나 1 Peso ] * 1957년~1962년

km#57/1958/XF/0.7/2013.04/화수1090

[ 아르헨티나 50 Centavos ] * 1957년~1961년

km#56/1957/XF/0.7/2013.02/화폐사랑

[ 아르헨티나 20 Centavos ] * 1957년~1961년

km#55/1959/AU/0.7/2014.09/수집본색

[ 아르헨티나 10 Centavos ] * 1957년~1959년

km#54/1959/XF/

[ 아르헨티나 5 Centavos ] * 1957년~1959년

▒▒▒▒▒ 1950년~1956년 발행된 아르헨티나 주화들입니다 ▒▒▒▒▒▒▒▒▒▒▒▒▒▒▒▒▒▒▒▒▒▒▒▒▒▒▒▒

[ 아르헨티나 50 Centavos ] * 1952년~1956년

km#49/1954/XF/1.5/2015.06/수집본색

[ 아르헨티나 20 Centavos ] * 1950년~1953년,1954년~1956년

km#48a/1952/VF/0.5/2013.02/화폐사랑

[ 아르헨티나 10 Centavos ] * 1950년,1951년~1953년.1953년~1956년

km#51/1954/VF/2013.02/화폐사랑

[ 아르헨티나 5 Centavos ] * 1950년,1951년~1953년,1953년~1956년

km#50/1955/VF/0.7/2014.10/수집본색

▒▒▒▒▒ 1939년~1950년 발행된 아르헨티나 주화들입니다 ▒▒▒▒▒▒▒▒▒▒▒▒▒▒▒▒▒▒▒▒▒▒▒▒▒▒▒▒

[ 아르헨티나 20 Centavos ] * 1942년~1950년

km#42/1950/VF/2.0/2015.04/수집본색

[ 아르헨티나 10 Centavos ] * 1942년~1950년

km#41/1950/VF/2.0/2015.04/수집본색

[ 아르헨티나 5 Centavos ] * 1942년~1950년

[ 아르헨티나 2 Centavos ] * 1939년~1947년,1947년~1950년

[ 아르헨티나 1 Centavo ] * 1939년~1944년,1945년~1948년

▒▒▒▒▒ 1942년 이전 발행된 아르헨티나 주화들입니다 ▒▒▒▒▒▒▒▒▒▒▒▒▒▒▒▒▒▒▒▒▒▒▒▒▒▒▒▒▒

[ 아르헨티나 50 Centavos ] * 1941년

km#39/1941/AU/4.0/2020.08/수집본색

[ 아르헨티나 20 Centavos ] * 1896년~1942년

[ 아르헨티나 10 Centavos ] * 1896년~1942년

km#35/1930/VF/2.0/2016.04/수집본색

[ 아르헨티나 5 Centavos ] * 1896년~1942년

km#34/1929/VF/2.0/2016.04/수집본색

[글로벌+] 아르헨티나 은행 예금 금리는 45%? ::::: 기사

”아르헨티나, 인플레이션으로 화폐 가치 절반으로 떨어져···암시장에서 공식 환율보다 두 배 주고 달러 교환” “러시아에 우호적이던 아르헨티나, 미국·유럽연합 진영으로 옮겨가”

아르헨티나에서는 은행에 예금을 하면 맡긴 금액의 45%를 이자로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얼핏 들어서는 너도나도 은행으로 몰려갈 것 같지만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대신 암시장에서 달러로 교환하거나 암호화폐, 중고차 등을 사고 있다고 합니다.

인플레이션으로 아르헨티나 화폐의 가치가 은행 예금 이자보다 더 빨리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또한 러시아에 대한 아르헨티나의 입장 변화와 코로나 상황을 대구MBC 시사 라디오 방송 ‘여론현장’ 김혜숙 앵커가 황진이 대구MBC 통신원에게 들어봤습니다.

Q.세계 각지의 뉴스들 현지 통신원 연결해서 직접 듣는 목요일의 월드 리포트 시간입니다. 오늘은 저기 멀리 아르헨티나로 가보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A.안녕하세요?

Q.목소리 들으면 이제 기억하실 것 같은데 우리 아르헨티나에 계시는 황진이 씨입니다. 지금 현지 시각이 몇 시인가요, 계신 곳에?

A.아르헨티나는 지금 한국과 반대, 열두 시간 차이가 있기 때문에 지금 아침이니까 한국은 아르헨티나에서는 밤입니다.

Q.아, 밤 8시···

A.그런데 제가 현재 미국에 있습니다.

Q.그러시다면서요. 그래서 제가 시간을 여쭤봤습니다. 어쩐 일로 미국에 가 계세요? 종횡무진하시는군요?

A.네.

Q.미국에서는 어떤 일 하고 계세요. 어떤 일로 가시는 거예요?

A.미국은 제가 동생이 있는데 이 동생이 졸업을 했어요. 그래서 부모님 모시고 그냥 살짝 미국에 왔습니다.

Q.코로나로 인한 해외 이동, 큰 불편 없으셨어요, 이제는?

A.이제는 많이 풀린 것 같습니다. 남미에서나 미국에서나. 비행기에서도 마스크를 안 쓰시는 분들도 많이 뵙고, 그런데 조심을 많이 해야죠.

Q.본론으로 이제 들어가 보겠습니다. 아르헨티나 소식을 미국에 있지만 전해 주셔야 할 텐데요. 아르헨티나도 지금 인플레이션 심하다고요?

A.네, 맞습니다. 사실 아르헨티나 하면 빠질 수 없는 문제가 바로 인플레이션인데요. 아르헨티나 인플레이션이 어제오늘 이야기는 아니지만 요즘은 정말 하루 다르게 물가가 올라 매일 피부로 체감하고 있습니다.

2022년 3월 아르헨티나 인플레이션은 월 6.7%를 기록했습니다. 연간으로 따지면 무려 55%로 심각한 상황입니다.

아르헨티나 은행 예금 금리는 45%입니다. 언뜻 들었을 땐 매우 높은 이자율이지만 해가 바뀔 때마다 아르헨티나 화폐인 페소 가치가 거의 절반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사실상 손해인 실정입니다.

Q.페소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이제 환율 이야기로도 이어지겠네요?

A.네, 공식 환율과 비공식 환율이 있는데요. 아르헨티나의 공식 화폐는 페소이지만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시민들은 페소를 안정적인 달러로 교환하고 있습니다.

Q.공식 화폐가 이제 두 가지로 공식, 비공식이 있는데 이걸 달러로 교환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몰리고 있다는 말씀인데 부작용도 있겠습니다?

A.그렇죠.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러한 달러 유출을 막기 위해서 월 2백 달러까지만 환전할 수 있게끔 상한선을 두었는데요.

하지만 이러한 제재는 오히려 비공식 환율을 활성화하는 역효과를 수반했습니다. 가령 은행에서 1달러가 공식으로 100페소라면 비공식 환율로는 200페소를 지불해야 1달러를 살 수 있습니다.

Q.거의 뭐 100% 프리미엄을 주고 암시장에서 암달러 거래가 된다, 이 말씀이시네요?

A.그렇습니다.

Q.암달러 시장 개혁을 추진했습니다마는, 아르헨티나에서, 여전히 공식 환율과 암달러 시장 환율의 차이가 큰 건가요? 그 이유가 있을까요?

A.이유는 아마 정치적인 문제가 있고 또 역사적인 문제도 많이 있는 것 같은데요.

하여튼 이 달러를 가진 관광객의 경우에는 매우 유리하죠. 그렇지만 아르헨티나 현지 분들의 경우에는 어떻게든 이 달러를 확보하고자 많은 방안을 강구하는 그런 상황이 이제 생기는데요.

대부분의 사람은 페소가 생기는 즉시 재빨리 달러를 구입하거나 또 정부 개입을 피하기 위해서 은행 계좌가 아니라 개인 금고에 현금 형태로 저축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또 달러 외에도 아르헨티나에서는 중고차를 구매하는 것이 일종의 투자 수단으로 여겨지는데요. 현금보다 가치가 떨어질 확률이 낮다 보니 나름대로 안정적인 투자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Q.지금 미국 여행하고 계신다고 하니까 페소 가치 하락, 굉장히 피부로 와닿으셨겠어요? 그렇죠?

A.네.

Q.달러 구하기 어렵지 않으셨습니까?

A.계산을 하면 진짜 아무것도 못 삽니다.

Q.미국 여행 잘 마무리하시기를 바라고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석 달 이상 지속되고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와 러시아가 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던 상황이었다 보니까 이 얘기를 좀 안 할 수가 없을 것 같아요.

A.네, 그렇습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그간 러시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는데요. 전쟁 직전인 2월 초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러시아를 공식 방문한 바 있습니다.

당시 푸틴과의 회담에서 아르헨티나는 러시아에 열려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는데요. 이후 2월 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는 3월 초까지도 러시아에 대해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해 우호 관계를 증명하기도 했습니다. 또 5월 초에는 러시아를 G20에서 퇴출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해 큰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Q.지금 이제 6월인데 상황이 어떻습니까? 지금도 우호적인 관계가 유지되고 있을까요? 좀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는 이야기가 있어서요.

A.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최근 국제 정세에도 많은 변동이 있었는데요. 아르헨티나의 입장에도 그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현재는 러시아에 반대하고 미국과 유럽연합 진영에 있습니다.

Q.코로나 상황 이제 짧게 듣고 아르헨티나 좀 마무리를 해볼까 싶은데요. 미국과 아르헨티나, 전반적으로 지금 코로나 상황 좀 어떤 것 같으세요?

A.많이 좋아지는 트렌드였었는데 또 몇 주간 동안 조금 확진자가 올라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난 일주일간 아르헨티나에서는 5만여 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였고요 아마 4차 유행 시기인 것으로 보입니다.

Q.마스크 아직 여전히 잘 써야 하는데 대통령 부부가 이걸 위반해서 벌금도 냈다고요?

A.네,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봉쇄 기간에 관저에서 생일 파티를 열어 아르헨티나 대통령 부부가 방역 수칙 위반 벌금형을 받게 되었는데요.

아르헨티나는 코로나 19 유행 초기부터 전 국민 자택 격리를 포함한 엄격한 봉쇄를 장기간 유지했고 모임도 전면 금지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봉쇄 기간이었던 2020년 7월에 대통령 관저에서 대통령 부부를 포함한 한 십여 명의 사람들이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생일 만찬을 즐기는 사진이 뒤늦게 공개돼 논란을 일으키게 됐는데요.

Q.관저 사진이 논란이 되는 건 좀 한국 상황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뒷얘기는 저희가 시간 관계상 오늘 여기에서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르헨티나 황진이 씨 고맙습니다.

A.감사합니다.

아르헨티나, 인플레이션 우려 속 암호화폐 채택률 급증

아르헨티나, 인플레이션 우려 속 암호화폐 채택률 급증 이미지 확대보기 남미 국가인 아르헨티나가 인플레이션이 70에 달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면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 채택률이 급증하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30일 전했다. 사진=로이터

[알림] 본 기사는 투자판단의 참고용이며, 이를 근거로 한 투자손실에 대한 책임은 없습니다.

남미 국가 아르헨티나가 인플레이션 급증 우려 속에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 채택률이 급증하고 있다.로이터통신은 30일(현지시간) 아메리카 마켓 인텔리전스(Americas Market Intelligence)의 4월 보고서에 따르면 아르헨티나의 암호화폐 침투율은 12%로 페루와 멕시코, 브라질의 약 두 배 수준이라고 보도했다.아르헨티나는 급증하는 인플레이션에 대응해 채택 측면에서 점점 더 암호화폐 친화적인 국가가 되고 있다.달러 대비 가치가 올해 14% 하락한 아르헨티나의 국내 페소화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것이다. 월 200달러로 외환을 제한하는 자본 통제도 암호화폐 채택에 촉매제가 되고 있다.아르헨티나는 2016년부터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 부족이나 정부의 과도한 지출과 같은 여러 요인으로 인해 아르헨티나 페소의 평가절하는 시민들의 구매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이로 인해 인구의 37.3%가 빈곤선 아래에 놓였다.코인텔레그래프는 이러한 배경으로 아르헨티나인들은 시장이 몇 달 동안 적자를 내고 있고 중앙은행이 금융 기관의 디지털 자산 운용을 금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60% 인플레이션에 대한 헤지 수단으로 비트코인( BTC )과 암호화폐로 눈을 돌렸다고 전했다.최근 테라USD와 테더 등 스테이블코인이 폭락하고 비트코인이 16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연 인플레이션은 지난 4월 58%까지 올랐고 올해 70%까지 오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면서 암호화폐가 매력적인 자산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부에노스아이레스주의 IT 전문가인 빅터 레브레로(44)는 페소를 달러로 환산하기 위해 200달러의 할당량을 다 써버린 후 매달 여분의 저축을 스테이블 코인과 비트코인에 투자한다고 밝혔다.레브레로는 “기본적으로, 그것은 제가 덜 잃기 때문입니다”고 말했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인플레이션은 60~70% 사이이고, 고정 조건은 30~35%를 지불하므로, 그것은 단지 효과가 없다”고 로이터통신에서 밝혔다.코인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아르헨티나는 비트코인 ​​외에도 미국 달러에 가치를 저장하는 수단으로 점점 더 스테이블 코인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이더리움의 공동 창시자인 비탈릭 부테린은 지난해 12월 아르헨티나를 방문했을 때 아르헨티나에서 암호화폐 채택이 증가하고 있다면서 “스테이블코인 채택도 크게 증가했다”고 전했다. 그는 미국 달러가 심각한 문제를 보이기 시작하면 상황이 바뀔 수 있다고 경고했다.한편,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변동성이 큰 디지털 화폐에 투자하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 거듭 경고했고, 일부 채택자들은 신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김성은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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