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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항과 큰 길을 사이에 둔 항동, 신흥동, 해안동 등 구도심에는 항구가 가까
운 입지조건으로 오래전부터 거대한 규모의 물류창고가 즐비했습니다. 그 중 개항기 근대건축물이 잘 보존돼 있던 해안동 일대가 지난 2009년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탈바꿈했죠.
13개 동의 예술창작 공간으로 구성된 아트플랫폼은 일제강점기 근대 창고업이 시작된 곳. 인천항을 통해 미곡을 반출하기 위해 일제는 이 일대에 대규모 창고들을 건립했고 일본해운회사도 앞다퉈 진출했습니다. 당시 진출한 일본해운회사 중 일본우선회사 인천지점 건물은 아트플랫폼에 그대로 보존돼 있습니다.
지상1층, 최고높이 7.7m의 근대 절충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사무소는 당시 인천해안의 랜드마크로 꼽히기도 했죠. 건물의 역사성을 살려 옛 일본우선회사는 아트플랫폼의 아카이브역할을 하는 자료관으로 변신했습니다.
구도심재생사업의 일환이자 산업유산 재활용의 성공사례로 주목받고 있는 인천아트플랫폼. 도시의 역사성과 장소성을 최대한 살려 문화공간으로 변신시키고자 노력했던 시민들과 인천시의 의지가 합쳐진 결과물이죠. 일제강점기 수탈의 현장이기도 했던 이곳이 이젠 다양한 장르의 예술 창작소로 이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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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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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uthor: TBS 시민의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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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6.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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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아트플랫폼 > 인천문화재단

복합예술공간 인천아트플랫폼

인천아트플랫폼은 인천 구도심 재생사업의 일환으로 舊일본우선주식회사(등록문화재 제248호)를 비롯한 근대 개항기 건물 및 1930~40년대에 건설된 건축물을 리모델링하여 조성된 복합문화예술 공간이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시각예술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와 연구자들이 창작과 연구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원함으로써 새로운 예술 창작의 인큐베이팅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인천아트플랫폼 C동. 대한통운의 창고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다.

인천아트플랫폼 B동의 내부 전시 공간

인천아트플랫폼(Incheon Art Flatform)은 인천광역시 중구 해안동에 있는 전시공간 복합체이다. 구도심 재생사업을 통해 개항기에서 근현대에 이르는 여러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전시 공간으로 삼고 있으며 인천문화재단이 운영하고 있다.[1] 인천시에서 주도하여 리모델링 하였으나 운영은 인천문화재단을 통해 민간에게 위탁하고 있다. 인천아트플랫폼은 작가가 일정 기간 동안 입주하여 작업을 하고 그 결과물을 전시한다. 입주 기간이 끝난 작가들 가운데 다수는 계속해서 인근에 작업 공간을 얻어 활동하기도 한다.[2]

건축물 [ 편집 ]

인천아트플랫폼을 이루는 건축물은 A에서 H까지 구분된 8개 동의 근현대 건축물이다.[3]

A동은 옛 군회조점의 사무실로 1902년 벽돌로 건축한 2층 건물이다.[4] 조점이란 운조점(運漕店)을 줄인말로 배로 물건을 나르는 조운업(漕運業)을 하는 가게란 뜻이다.[5] 군회조점은 쓰시마 출신의 코오리킨 자부로(郡金三郞)가 세운 해운회사이다. 코오리킨은 1877년 부산으로 건너와 삼점을 열었으며 울릉도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이권을 얻기 위해 앞장섰다. 인천의 일본 조계 내에 군회조점을 창업하고 이 건물을 세웠다.[6] 해방 이후 건물은 이러 저러한 용도로 바뀌어 사용되면서 애초의 용도가 잊혀졌으며 2000년대 초에는 당시까지 운영되었던 인쇄소의 이름을 따 삼우인쇄소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근현대 건축물의 리모델링 계획을 시작할 때에는 1940년대 쯤의 건물로 인식되었으나 2003년 아트플랫폼 사업을 시작하면서 상량문[* 1]이 발견되어 1902년 세워졌음을 알게 되었다.[7] 상량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6]

明治三十五年十一月十一日郡金三郞

메이지 35년(1902년) 11월 11일 코오리킨 자부로

벽돌로 올린 건물은 트러스 구조로 지붕을 받쳤고, 창문에는 장식 아치를 써 고급스런 느낌을 주었다. 천정의 마감에도 흰 회반죽을 써서 20세기 초 사무 공간 인테리어의 특징을 알 수 있게 한다. 벽면에 한국 전쟁 당시의 총탄 흔적이 남아 있다.[7]

B 동·C 동 [ 편집 ]

B동은 대한통운이 사용하던 창고를 개조한 것이다. 제물포 조약에 따라 개항을 맞은 제물포는 일제강점기 시기 인천항으로 이름을 바꾸고 조선의 가장 중요한 무역항이 되었다. 특히 1911년 공사를 시작하여 1923년 완공한 갑문의 운용으로 인천항은 조석 간만이 심한 인천 앞바다에서 상시적으로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이후 해방을 거쳐 1970년대까지도 이 갑문은 연안부두의 역할을 하였고 부둣가를 따라 창고가 즐비하였다.[8] 차츰 인천항이 포화 되자 옛 도크 지역의 어시장과 연안부두가 이전하면서 물동량이 급감하였고 창고도 새 항만지역으로 이전하여 비워지게 되었다.[9]

인천아트플랫폼 B동을 이루는 대한통운 창고는 1948년 지어진 것으로 인천아트플랫폼이 착공되던 때까지 계속하여 창고로 사용되었다. 전형적인 창고로 박공 지붕에 함석 슬레이트를 올렸다. 지금은 입주 작가의 전시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10]

C 동 역시 대한통운 창고로 목조 슬레이트 지붕을 한 창고이다.

D 동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구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입니다.

D동은 구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이었던 건물이다. 일본우선주식회사는 개항이후 일본과 조선 사이의 해운을 독과하였던 기업이었다. 1888년 지어졌으며 벽돌조의 비교적 큰 건물이다. 해방 이후로도 해운사의 사무실로 쓰였다. 현재는 인천아트플랫폼의 운영 사무실로 쓰이고 있다.[11] 2006년 인천광역시의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883년 4월 우편기선 미쓰비시회사(郵便汽船 三菱會社) 부산지점의 인천출장소로 개설되었으며[12] 1885년 10월 우편기선 미쓰비시회사와 공동운수회사가 합병되어 일본우선주식회사가 설립되자[13] 1886년 7월 16일 인천지점으로 승격되었다. 건물의 준공 시기는 1888년 말에서 1889년 초로 추정되며 현존하는 대한민국의 근대건축물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한다.[12]

E동, F동, G동은 1933년 지어진 창고 건물이다. 한때 인천 지역예술가들의 “피카소 작업실”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입주 작가의 작업실과 게스트하우스로 쓰인다.[14] 피카소 작업실은 인천 지역 문화 예술인들이 모여 공동으로 작업하던 공간이었으며 리모델링 후 현재의 인천아트플랫폼의 운영 방식에 영감을 주었다.[2]

H동 [ 편집 ]

H동은 1943년 건축된 일본식 점포 건물이다. 리모델링 당시에는 금마차 다방이 있었기 때문에 금마차 다방 건물로 불렸다. 현재는 커뮤니티관과 인천생활문화센터로 사용되고 있다. 원래는 양쪽 벽을 벽돌로 쌓은 목조 2층 건물이었다. 지금은 그 위로 유리를 덮어 씌웠다.[15]

갤러리 [ 편집 ]

북서입구

중앙길

남동입구

각주 [ 편집 ]

내용주

↑ 상량은 대들보를 올리는 것을 뜻한다. 목조 건축 문화의 유산이다. 목조 건물은 골격을 다 짜맞추면 대들보를 올렸는데, 이 단계가 되면 건물의 구조적 안정성이 확보되었다고 보고 상량식을 치렀다. 상량문은 대들보의 가운데에 상량식을 치른 날과 건물주의 이름 등을 쓴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철근 콘크리트조가 일반화 된 1970년대까지도 상징적으로 상량식을 올렸다. 1902년의 군회조점 역시 벽돌 건물이므로 상량식은 상징적인 의미만을 지닐 뿐이었을 것이다.

참조주

인천 아트플랫폼 > 상세

인천 중구 수정일 : 2021.12.08

기본정보

아트플랫폼은 인천광역시 원도심 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중구 해안동 일대의 근대 개항기 건축물을 리모델링하여 조성된 문화예술 창작공간으로 2009년 9월에 개관하였다. 예술의 창작, 유통, 향유, 교육에 이르는 전 과정을 아우르는 문화예술의 창작공간으로 지역의 문화 활성화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새로운 문화예술의 발신지다. 예술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전시 및 공연, 시민참여 교육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예술가에게는 창작공간, 시민들에게는 예술을 함께 나누는 문화예술 향유의 광장의 역활을 하고 있다.

도약과 변화: 인천아트플랫폼 10주년

1882년 제물포조약이 체결된 이후, 인천의 작은 항구로 근대 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일본, 청나라, 미국·영국 등 서구 열강이 개항장으로 몰려들었고, 조계지에는 외국인 거주지와 각국 영사관, 경찰서·우체국 등 관공서가 들어섰다. 미곡 거래소·세관·은행 등 통상 및 금융 관련 시설, 구락부와 호텔, 외국인 별장도 자리를 잡았다. 당시 조선인들을 사로잡은 근대적이고 이국적 풍경 이면에는 일제의 경제적 수탈과 기존 거주민들의 퇴거가 있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 전쟁 이후에도 개항장 일대는 번성했지만, 산업화 시기가 지나고 주요 관공서가 이전하면서 2000년대에 이르러서는 사람이 거주하기 어려울 정도로 황폐해졌다. 인천아트플랫폼은 쇠락한 이 원도심을 활성화하는 앵커시설로서 기획됐다. 10년이 흐른 지금 이 지역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10년을 이어온 창작 플랫폼

인천아트플랫폼에 따르면 지난 10년은 운영 전반에 체계를 갖추는 시간이었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전시·교육·국제교류 등 여러 사업이 초기에 기획됐는데, 예산 규모와 인력 면에서 이를 원활히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매해 입주하는 서른 명 넘는 작가들에게 거주 및 작업 공간을 제공하고 비평과 연구 프로그램으로 이들의 창작을 뒷받침하는 일은 상당한 경험을 필요로 했다. 열세 개 동에 이르는 시설 운영도 품이 많이 들었다. 그러나 시설 관리 직원을 제외하면 실무를 맡은 인력이 다섯 명 내외에 불과했고, 예산 규모가 1억 원을 밑돌던 시기도 있었다. 국내에 들어선 다른 2세대 창작 공간들과 마찬가지로 더 나은 지원을 바라는 예술가들과의 갈등, 지역사회와 관계 맺기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럼에도 지난 세월 동안 인천아트플랫폼은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300명이 넘는 작가들의 창작을 지원했다. 인천에서 유일하게 제1종 미술관으로 등록된 시설로서 지역 내 공공미술관의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레지던시 작가들의 작품 발표 이외에도 다각적인 기획전과 국제 교류전을 개최하고, 인천의 역사와 환경, 인물 등 지역 관련 콘텐츠를 발굴하는 데에도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재언(인천아트플랫폼 관장)은 “지난 10년간 인천아트플랫폼은 안정적인 내부 시스템과 입주작가 중심의 콘텐츠 개발에 주력해왔다”며 “개관 초기에는 행정과 기획 시스템의 노하우가 없었고, 넉넉지 못한 예산으로 운영이나 콘텐츠 개발과 수행이 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동안 레지던시 아티스트들의 창작 공간 제공과 창작 지원에 사업이 집중되었다면, 이제는 예술가들의 창작이 인천 시민과 관람객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는 프로그래밍과 인근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되는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공공의 개입으로 달라진 원도심

인적이 드물던 원도심에는 아트플랫폼이 개관한 2009년 이후 유동인구가 증가했다. 아트플랫폼을 이용하는 작가와 상주 직원 이외에도 이곳에서 열리는 양질의 전시·공연을 관람하고 교육 및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인근 지역에서 시민들이 찾아왔다. 월미도·차이나타운만 둘러보던 관광객들도 이 일대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나들이하기 좋은 봄과 가을엔 관광객으로 북적이고 있다. 빈 골목마다 카페와 음식점 등 상업시설이 자리 잡았고, 공방과 민간 갤러리도 몇몇 곳에 들어섰다.

이 지역에서 근대 산업시설(얼음창고)을 개조해 작업실로 쓰고 있는 건축가 이의중(건축공방 대표)은 “이전에는 저녁이 되면 가게 셔터가 대부분 내려지고 거리가 어두컴컴해 생활이 유지되는 가로로 보기 어려웠다”며 “아트플랫폼을 계기로 카페와 문화 공간이 들어서고 근대 건축자산에 대한 지역의 인식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처럼 전후 변화가 명확하지는 않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을 일으킬 만한 자본들이 들어와서 부동산을 구입하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활기는 아트플랫폼을 비롯해 이 일대에서 진행되는 공공사업과 무관하지 않다. 아트플랫폼 개관 이듬해인 2010년, 인천시는 중구 신포동과 인접 지역인 북성동·동인천 일대를 ‘개항장 문화지구’로 지정했다. 근대건축물 보전·관리와 관광산업 활성화라는 두 가지 목적이 결합된 이 정책에는 행정적·재정적 지원이 다수 포함됐다. 특히 ‘권장 업종(공연장·갤러리·문고 등 문화시설, 공방·양장점 등 수공예업, 기념품점·카페 등 접객·편의업)’을 유치할 경우 저리 융자와 경관 조성 보조금, 각종 세제 혜택이 제공됐다. 한국근대문학관, 인천개항장 근대건축전시관, 중구 생활사전시관 등 공공 문화시설이 설립되고, 2014년부터 항만·철도·음식문화 등을 문화관광 벨트로 연결하는 ‘개항창조도시 재생사업’도 추진되고 있다.

황폐했던 원도심이 공공의 개입으로 살아났지만, 현 시점에서는 지나친 상업화와 관광지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개항장이 지닌 역사성을 문화 상품으로 탈바꿈하며 이를 단순·박제하는 건 아닌가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아트플랫폼 주변이 일상적 공간으로 재생되기보다 거대한 ‘테마파크’로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다.

박물화되는 개항장 문화지구

아트플랫폼의 초기 구상은 이곳에 입주했던 예술가들이 레지던시 종료 후에도 지역에 머물며 작업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작가들은 작업의 연속성을 확보하고, 지역과 커뮤니티는 회복의 기회를 얻는다. 지역이 비일상적 공간인 관광지가 되고 지가가 상승하는 등의 변화는 아트플랫폼의 주 프로그램인 레지던시와 관련해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다.

레지던시 참여 후 주변에 문화 공간을 마련해 운영 중인 채은영(임시공간 큐레이터)은 “공공 레지던시 중 유일하게 원도심에 있는 인천아트플랫폼은 편의성이 높아서 작가들이 선호하는 창작 공간”이라며 “심리적 거리감이 있던 인천을 레지던시 이후 거주나 창작의 공간으로 다시 보게 됐다”고 밝혔다. 다만 “아트플랫폼 주변이 낮에는 근처 직장인, 밤에는 유흥가 손님, 주말엔 관광객으로 채워지고 있는데, 낮과 밤의 분위기가 다르고 거주민이 많지 않아 예술가나 기획자들의 공간이 어울리기가 쉽지 않다”며 “레지던시 종료 후 작업실이나 거주지를 옮기려는 작가들은 인천의 다른 지역을 알아보게 된다”고 덧붙였다.

지역의 인구 감소와 고령화도 문제 요인이다. 인천시 인구는 지난 10년 동안 꾸준하게 증가했다. 2009년 280만 명에서 지난해 300만 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개항장 일대를 아우르는 신포동의 경우 주민등록 인구가 같은 기간 500명 가까이 감소했다. 65세 이상 고령인구 구성비도 2018년 기준 인천 평균인 12.3%, 인천 중구 평균 14.3%보다 10% 포인트 이상 높다. 이는 지역 또는 지역성을 작업 주제로 삼는 작가들에게 일종의 걸림돌이 된다. 더 나아가 지역 커뮤니티를 만들고 가꿔가는 주체가 ‘사람’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앞으로 이곳에 어떤 커뮤니티가 형성될 수 있을지에 대해 긍정하기가 쉽지 않다.

앞으로 10년에 대한 방향성

「SPACE(공간)」는 인천아트플랫폼 공식 개관을 앞둔 시점에 총괄 기획을 맡은 황순우를 인터뷰했었다(「SPACE」 2009년 9월호 참고). 당시 그는 “순환되는 구조 속에서 기존 지역 주민과 새로운 주민들이 함께 향유할 수 있는 부분을 고민했다”며 “아트플랫폼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다양한 작업실이 즐비하게 늘어서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10년이 지난 현재, 그의 바람이 실현되었는지 또는 실현될 수 있는지와 별개로 방향성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며, 그런 시점에 놓여 있다.

아트플랫폼을 둘러싼 현실이 녹록하지는 않다. 하지만 개관 후 시간이 지나며 내부 시스템이 안정되고 운영 노하우가 쌓였다. 예산도 확충되는 등 도약의 발판은 마련된 셈이다. 개항기부터 이어져 온 지역의 역사와 현재 진행 중인 변화 속에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단서들이 자리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시야를 개항장 일대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으로 확장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채은영은 “10주년을 맞이하면서 초기 설립 목표와 위상 등에 관한 재조정이 필요해지는데, 아트플랫폼 그 자체에만 시선을 두지 말고 지역 전체 상황과 연결해 미션과 사업을 재구성하고 물리적 조건과 시설을 리세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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