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역사 | 반도체 산업 역사 5분만에 이해하기! 46 개의 자세한 답변

당신은 주제를 찾고 있습니까 “반도체 역사 – 반도체 산업 역사 5분만에 이해하기!“? 다음 카테고리의 웹사이트 ppa.maxfit.vn 에서 귀하의 모든 질문에 답변해 드립니다: https://ppa.maxfit.vn/blog. 바로 아래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작성자 미래에셋 투자와연금TV 이(가) 작성한 기사에는 조회수 7,109회 및 좋아요 118개 개의 좋아요가 있습니다.

반도체가 산업사회에서 본격적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1950년 이후부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65년 처음으로 반도체소자가 생산되었다. 미국의 고미그룹이 국내에 합작투자회사를 설립하여 트랜지스터를 조립, 생산한 것이 시초였다.

반도체 역사 주제에 대한 동영상 보기

여기에서 이 주제에 대한 비디오를 시청하십시오. 주의 깊게 살펴보고 읽고 있는 내용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세요!

d여기에서 반도체 산업 역사 5분만에 이해하기! – 반도체 역사 주제에 대한 세부정보를 참조하세요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반도체’
5분만에 반도체의 역사를 알아보고,
글로벌 투자의 선구안을 가져보아요.
미래에셋이 만드는 글로벌 투자 전문잡지 ‘더 세이지인베스터’ 65호에서
더욱 자세한 내용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investpension.miraeasset.com/contents/pubView.do?idx=13809

#반도체 #실리콘밸리 #THESAGEINVESTOR

반도체 역사 주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하세요.

반도체, 그 역사의 시작 – 반도체에 대한 이해와 개발의 역사

그럼 도체와 부도체의 중간물질이라는 반도체는 어떤 성질을 가진 물질인가. 반은 사람, 반은 물고기인 인어공주처럼 처음부터 서로 다른 성질의 물질 두 …

+ 여기에 자세히 보기

Source: amkorinstory.com

Date Published: 11/14/2022

View: 1989

10화 인문학적 반도체_4. 우리나라 반도체 역사(1) – 브런치

1장.반도체란 무엇인가? | 4. 우리나라 반도체 역사 주변에 아는 지인들은 저의 첫 직장이 삼성전자라고 하면 잘 믿지 못하는 눈치입니다.

+ 여기에 표시

Source: brunch.co.kr

Date Published: 12/30/2022

View: 6344

[반도체] 반도체 기술 발달의 간략한 역사 – 네이버 블로그

우선 반도체의 발견 자체는 1800년대에 이미 이루어졌으나, 현대적 개념으로서의 반도체 기술이 발달된 것은 지난 100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초기 반도체 …

+ 여기를 클릭

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9/14/2021

View: 1317

삼성전자 반도체의 역사

위대한 여정. 소박한 출범에서 세계 반도체 시장의 리더가 되기까지 혁신을 향한 끊임없는 열정이 우리 역사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 여기에 표시

Source: semiconductor.samsung.com

Date Published: 7/1/2022

View: 7641

세계 반도체 역사를 다시 쓴다 – Korea Science

인간이. 하루 동안 생산하는 단일품목으로 가장 많은 숫자이고, 이것은 반. 도체대량 생산 기술에 의해서 가능하다. 현재와 같은 반도체 모습. 으로발전하였던 반도체 역사 …

+ 여기에 자세히 보기

Source: koreascience.kr

Date Published: 5/21/2022

View: 3854

반도체의 역사 – Sciencetimes – 사이언스타임즈

국내 최초의 반도체 기업은 1965년 미국의 소기업인 ‘고미’가 간단한 트랜지스터를 생산하기 위해 설립한 합작기업이었다. 본격적인 제조업은 1966년 미국 …

+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Source: www.sciencetimes.co.kr

Date Published: 5/17/2022

View: 8165

[반도체 특집] 우리나라 반도체 역사 – 전자신문

[반도체 특집] 우리나라 반도체 역사 …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외국계 자본에 의한 조립생산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개별소자 생산→일괄 공정 생산 …

+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Source: www.etnews.com

Date Published: 9/14/2021

View: 874

주제와 관련된 이미지 반도체 역사

주제와 관련된 더 많은 사진을 참조하십시오 반도체 산업 역사 5분만에 이해하기!. 댓글에서 더 많은 관련 이미지를 보거나 필요한 경우 더 많은 관련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반도체 산업 역사 5분만에 이해하기!
반도체 산업 역사 5분만에 이해하기!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반도체 역사

  • Author: 미래에셋 투자와연금TV
  • Views: 조회수 7,109회
  • Likes: 좋아요 118개
  • Date Published: 2021. 9. 3.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xYvxA7Te-zg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 과학·기술 > 반도체 기술

현대 문명을 가리켜 ‘반도체시대’ 혹은 반도체의 원료인 규소의 이름을 따서 ‘규석기시대‘라고 한다. ‘반도체’란 물질의 사용으로 예전에 상상할 수 없던 편안한 삶을 누리는 현재를 일컫는 말로, 실제로 우리 주변 전자제품의 대부분에는 반도체가 들어있다. 우리가 날마다 사용하는 컴퓨터, 스마트폰, 카메라, 자동차, 냉장고, 세탁기 같은 전자제품부터 USB메모리, SD카드 등의 저장매체, 심지어 전자여권까지 생활 곳곳에 광범위하게 반도체가 사용되고 있다.

반도체(半導體, semiconductor)란 전기가 통하는 도체와 전기가 통하지 않는 부도체의 중간단계 물질로, 대표적인 반도체 물질에는 규소 즉, 실리콘(Si)과 게르마늄(Ge)이 있다. 반도체를 만드는 순수한 규소 결정의 경우에는 전기가 통하지 않는 절연체이지만 여기에 열, 빛, 자장, 전압, 전류 등 약간의 불순물을 넣어 주면 상황에 따라 도체나 절연체가 될 수 있는 반도체가 되는 것이다.

2015년 6월 24일 미래창조과학부에서 광복 70년을 맞이해 광복 이후 국가 경제발전을 견인해 온 과학기술의 역할을 조명하기 위해 ‘대표성과 70선’을 선정해 공개했는데, 1980년대 성과에 ‘디램(DRAM) 메모리 반도체’ 개발이 포함되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IT 강국으로 만드는 데 반도체가 큰 기여를 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최근 과학자와 공학자들은 투명하면서도 휘어지는 반도체를 개발 중에 있다. 옷이나 시계처럼 착용이 가능한 ‘웨어러블 컴퓨터’(wearable computer)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평면 세계에서 곡면 세계로 진입하는 웨어러블 컴퓨터가 상용화되는 그때는 시커먼 돌덩이인 규소가 만들어낸 ‘규석기시대’를 넘어선 또 다른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다.

전자공업 육성과 조완희 박사 초청(1967)

전자공업진흥법 공포안(1969)

반도체가 산업사회에서 본격적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1950년 이후부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65년 처음으로 반도체소자가 생산되었다. 미국의 고미그룹이 국내에 합작투자회사를 설립하여 트랜지스터를 조립, 생산한 것이 시초였다. 그 후, 모토롤라(Motorola) 등 여러 외국 업체가 국내의 저렴한 인건비와 유능한 기능 인력을 이용해 반도체를 단순조립하기 위해 계속 들어왔는데, 이것이 우리의 반도체산업을 신장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

1974년 삼성반도체통신주식회사의 전신인 한국반도체주식회사가 설립되어 국내 기업에 의하여 처음으로 손목시계용 IC칩과 트랜지스터칩 등을 개발, 생산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국내 반도체산업은 큰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1970년대 후반에는 우리나라의 전자손목시계가 세계시장에서 수위를 차지하면서 국내에서도 반도체산업의 주축을 이루는 실리콘 중심의 IC산업발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삼성전자는 1970년대 초반 세계 오일 파동으로 경영난을 겪자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 하이테크산업에 진출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졌다. 이병철 당시 삼성전자 회장은 전자 부문을 살릴 수 있는 길은 핵심 부품인 ‘반도체 자급’이라고 판단, 1974년 12월 주변의 만류에도 사재를 털어 파산 직전에 몰린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 이미 반도체산업이 성장궤도에 오른 미국과 일본보다 27년이나 늦은 출발이었다. 삼성전자는 한국반도체를 반도체사업부로 흡수했지만, 자체 기술이 없어 난항을 겪으며 자본금만 날리는 그룹의 미운 오리새끼가 되었다. 1982년 반도체와 컴퓨터 사업팀을 조직하고, 본격적인 시장조사에 들어갔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3년 안에 실패할 것이다.’, ‘TV도 제대로 못 만드는데 최첨단산업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 등 재계의 반대 여론과 업계의 냉소가 뒤따랐다.

일반적으로 반도체사업은 인구 1억 이상, GNP 1만 달러 이상, 국내 소비 50% 이상이 되어야 가능한 사업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 우리는 이 가운데 하나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실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은 반도체가 나라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산업이라 확신했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메모리제품 64K D램 기술 개발에 착수하였다. D램은 당시 세계적으로 수요가 가장 많고 표준화된 제품이었지만 경쟁사도 많았고, 반제품을 들여다 가공하고 조립하는 당시 우리의 기술 수준에서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러나 이병철 회장은 ‘D램을 하지 않는 것은 싸워보기도 전에 항복하는 것’이라는 강력한 의지를 내보이며 개발을 강행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첨단기술의 현장-삼성반도체 64KD램 개발에 성공(1983)

1983년 12월 1일 개발에 착수한 지 6개월 만에 309개 공정을 자력으로 개발하고 웨이퍼를 생산라인에 투입하며 국내 최초로 64K D램 개발에 성공했다. 우리도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64K D램은 2013년 문화재청이 산업 역사로서 그 가치를 인정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삼성은 1992년에는 ‘64M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며 메모리 강국인 일본을 추월했고, 1994년에는 256M D램, 1996년에는 1GB D램 등 연달아 세계 최초 모델을 내놓으며 차세대 반도체시장을 주도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비메모리 분야인 시스템 반도체를 신 성장 동력으로 삼았다. 반도체 산업은 일자리 창출과 국가 이미지 제고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고부가 산업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삼성전자가 1976년 시계용 칩을 생산했을 당시 첫해 매출은 400만 달러 초반이었지만, 2012년에는 300억 달러를 훌쩍 넘겼다. 30여 년 만에 매출이 7천 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 조사에 따르면, 2012년 세계 반도체시장에서 미국의 인텔이 491억1400만 달러로 1위, 삼성전자가 322억51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일본을 제치고 2위에 올랐다. 또한 삼성전자는 1993년부터 2014년까지 21년 동안 전 세계 메모리반도체시장 점유율 1위를 확고부동하게 유지해오고 있다. SK하이닉스도 전 세계 메모리반도체시장 점유율 20%로 2위를 차지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지한 전 세계 메모리반도체시장 점유율은 무려 70%로, 사실상 전세계 메모리반도체시장을 독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은 만약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 메모리반도체의 수출을 전면 중단한다면, 전세계 국가들의 재앙이 될 수도 있다고 언급할 정도이다.

우리나라의 반도체산업은 이처럼 양적으로는 발전했으나 진정한 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비메모리 반도체 생산 점유율을 높여야 한다. 세계 반도체 시장규모를 보면 비메모리 반도체가 70%, 메모리 반도체가 30%를 차지하는데 우리는 이 중 메모리 분야의 점유율이 50-60%, 비메모리 분야에선 5% 정도를 차지할 뿐이다. 비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위성통신, 이동체 통신 같은 정보통신 단말기기 등 쓰임새도 워낙 다양하고, 핵심기술만 있으면 경쟁자가 쉽게 따라올 수도 없기 때문에 앞으로는 이 분야의 개발·생산에 주력할 과제가 놓여있다.

(집필자 : 남애리)

반도체, 그 역사의 시작 – 반도체에 대한 이해와 개발의 역사

반도체란 무엇일까. 분명히 우리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아주 가까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에 만족스러운 대답을 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전기가 통하기도 하고, 통하지 않기도 하는 물질’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래서 총 세 번의 연재를 통해 반도체의 과거, 현재, 미래를 함께 살펴보면서 반도체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

반도체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 보면, 반도체는 말 그대로 전기가 잘 통하는 도체와 전기가 통하지 않는 부도체 중간의 물질, 그래서 딱 중간물질이라는 의미의 ‘반도체(半導體, semi-conductor)’다. 그럼 도체와 부도체의 중간물질이라는 반도체는 어떤 성질을 가진 물질인가. 반은 사람, 반은 물고기인 인어공주처럼 처음부터 서로 다른 성질의 물질 두 개를 붙여놓은 것일까. 아니면 치킨의 양념 반, 프라이드 반처럼 처음에는 같았던 것을 반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성질을 갖도록 만든 것일까. 아니면 영화 <트랜스포머>에 나오는 로봇들처럼 자동차와 로봇 사이를 맘대로 변화하는 것처럼 결국 그 근본은 같은 것이지만 필요에 따라 성질을 바꾸는 것일까. 사전적 의미로 보면, 반도체는 말 그대로 전기가 잘 통하는 도체와 전기가 통하지 않는 부도체 중간의 물질, 그래서 딱 중간물질이라는 의미의 ‘반도체(半導體, semi-conductor)’다. 그럼 도체와 부도체의 중간물질이라는 반도체는 어떤 성질을 가진 물질인가. 반은 사람, 반은 물고기인 인어공주처럼 처음부터 서로 다른 성질의 물질 두 개를 붙여놓은 것일까. 아니면 치킨의 양념 반, 프라이드 반처럼 처음에는 같았던 것을 반으로 나누어 서로 다른 성질을 갖도록 만든 것일까. 아니면 영화 에 나오는 로봇들처럼 자동차와 로봇 사이를 맘대로 변화하는 것처럼 결국 그 근본은 같은 것이지만 필요에 따라 성질을 바꾸는 것일까.

이 중에서 반도체의 성질과 가장 비슷한 것을 고르라면, 그것은 아마 ‘트랜스포머’가 될 것이다. 하지만 트랜스포머보다 반도체를 더 비슷하게 잘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 ‘헐크’다. 그렇다면 헐크와 트랜스포머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둘 다 서로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는 것은 같지만, 아주 중요한 차이가 있다. 트랜스포머는 로봇과 자동차로 변화하는 데 있어 자신의 의지로 언제든지 마음대로 바꿀 수 있지만, 괴물인 헐크는 그렇지 못하다. 평범한 인간에서 헐크로 바뀌는 데 있어서 자신의 의지가 아닌 자극으로 화가 나거나 흥분하면 괴물로 변하고, 그 외부 자극이 없어지고 흥분이 가라앉으면 다시 정상적인 인간으로 돌아온다.

이것을 다시 반도체와 결합해보자. ‘반도체란 외부 자극으로 전기가 흐르는 도체가 되거나 혹은 전기가 흐르지 않는 부도체가 되기도 하는 두 가지 성질을 임의로 조절할 수 있는 물질이다.’ 사전적 의미에 기술적 의미가 부가된 반도체의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즉, 반도체는 수도꼭지처럼 외부에서 힘주어 열면 물이 흐르고 (도체), 잠그면 물이 흐르지 않는다 (부도체). 하지만 수도꼭지는 스스로 여닫고를 할 수 없다. 다시 말해, 반도체는 두 가지 성질을 다 가졌기에 양면성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외부 자극을 이용해 흐름을 조절할 수 있는 장치를 우리는 ‘스위치’라고 하는데, 앞서 설명한 반도체의 성질이 스위치의 성질과 비슷하다. 반도체의 여러 가지 기능 중에 가장 중요한 것도 바로 스위치 기능이다.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디지털 값인 ‘1’ 또는 ‘0’이라는 것이 반도체의 스위치 기능에 의해 전기가 흐르면 ‘1(on)’, 흐르지 않으면 ‘0(off)’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스위치를 보통 ‘트랜지스터’라고 하는데, 이 트랜지스터 1개를 ‘1비트(bit)’라 하고, 이 비트가 8개 모이면 ‘1바이트(byte)’라고 한다. 우리가 물건을 셀 때 물건마다 다른 단위가 있는 것처럼 반도체 스위치 트랜지스터 개수를 셀 때의 단위를 ‘바이트’라고 이해하면 된다. 따라서 이 바이트는 반도체에 정보를 저장할 때 있어서 가장 최소 단위로, 쉽게 돈으로 비유하면 가장 최소 단위인 1원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어떤 반도체의 저장 용량이 ‘1메가(MB)’라고 하면 100만 바이트로, 1바이트는 8개의 비트 즉, 8개의 트랜지스터이니 그 반도체 안에 반도체 트랜지스터 스위치가 800만 개 만들어져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1기가(GB)’는 10억 바이트로 80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엄지손톱만 한 면적에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80억 개라는 숫자가 얼마나 엄청난 집적도인지 감이 잘 오지 않을 것이다. 머리카락으로 비교해보자. 평균적으로 한 사람의 머리카락 개수는 약 10만 개다. 머리 묶을 때 10만 개가 다 묶어지지는 않지만, 대략 한 손에 모두 잡히는 한 움큼 정도가 된다. 그런데 이 머리카락 지름이 100㎛(0.1mm)라고 가정하고 머리카락 80억 개를 한 다발로 묶는다고 할 때 면적을 계산해 보면 약 62.8㎡, 즉 가로・세로의 길이가 각각 약 8m인 정사각형을 가득 채울 수 있는 면적이 된다. 웬만한 가정집 안방은 물론 거실보다도 넓은 면적이 된다.

이렇게 넓은 장소에 머리카락 두께의 작은 것을 촘촘히 배열해야 80억 개를 놓을 수 있는 숫자가 만들어진다면? 그리고 이 숫자를 엄지손톱만 한 면적에 넣었다면? 상상해보자. 정말 엄청난 집적도다.

반도체의 역사

반도체 원리의 시효는 ‘진공관’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라디오나 TV와 같은 전자제품에는 우리가 보는 반도체 대신 거의 진공관을 사용했다. 그런데 진공관은 부피가 너무 크고 전기도 많이 먹고 작동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 이유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작고 효율적이며 빠르게 동작하는 장치를 고안하면서 지금의 반도체가 발명되었다. 그래서 당시 진공관을 사용했던 TV나 라디오는 전원을 켜면 지금처럼 바로 화면이나 소리가 나오지 않고 몇 분 기다려야 정상적인 화면이 나오거나 소리가 들렸다. 반도체 원리의 시효는 ‘진공관’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라디오나 TV와 같은 전자제품에는 우리가 보는 반도체 대신 거의 진공관을 사용했다. 그런데 진공관은 부피가 너무 크고 전기도 많이 먹고 작동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 이유로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작고 효율적이며 빠르게 동작하는 장치를 고안하면서 지금의 반도체가 발명되었다. 그래서 당시 진공관을 사용했던 TV나 라디오는 전원을 켜면 지금처럼 바로 화면이나 소리가 나오지 않고 몇 분 기다려야 정상적인 화면이 나오거나 소리가 들렸다. 이렇게 불편한 진공관을 대체하는 반도체의 첫 번째 제품이라 할 수 있는 트랜지스터는, 전화기를 발명한 미국인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세웠던 벨 연구소에서 몇몇 과학자들에 의해 1947년 처음 개발됐다. 그리고 1961년 지금 우리의 고객인 TI(텍사스 인스트루먼트) 사에서 처음 양산을 시작한 후 지금의 인텔, 삼성과 같은 초거대 반도체 기업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렇게 불편한 진공관을 대체하는 반도체의 첫 번째 제품이라 할 수 있는 트랜지스터는, 전화기를 발명한 미국인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세웠던 벨 연구소에서 몇몇 과학자들에 의해 1947년 처음 개발됐다. 그리고 1961년 지금 우리의 고객인 TI(텍사스 인스트루먼트) 사에서 처음 양산을 시작한 후 지금의 인텔, 삼성과 같은 초거대 반도체 기업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삼성, 인텔, TSMC라는 반도체 회사들의 이름을 듣게 된다. 이들이 생산하는 반도체들은 어떻게 다를까. 삼성에서는 신문 몇 년 치를 반도체 칩 하나에 모두 보관할 수 있는 몇 기가 램(RAM)을 만들었다고 하고, 인텔은 초당 연산 속도가 얼마인데 이는 1초 만에 무엇을 계산할 수 있는 속도라고 하면서 펜티엄 칩, 혹은 듀얼 코어 칩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나는 저장 용량을 광고하고 하나는 연산 속도를 광고하는데, 무엇이 다른 걸까.

우리는 흔히 반도체라고 하면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 저장이 주기능인 메모리 분야와 CPU와 같이 연산이 주기능인 로직(logic) 회로를 만드는 비메모리 분야다. 즉, 종이 매체로 비유하면 일기나 필기와 같은 기록을 위한 공책을 만드는 것이 메모리 분야고, 흥미 가득한 내용이 이미 인쇄된 책을 만드는 것이 비메모리 분야라고 이해를 하면 쉬울 듯하다. 당연히 똑같이 종이를 원료로 사용한다는 것은 같지만, 공책을 만들어 파는 것보다는 책을 만들어 파는 것이 더욱 이득이 높으므로 삼성도 이미 메모리 분야에서 세계 1위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비메모리 분야에 투자하면서 이 사업 분야에 더욱 집중하는 것이다.

사실 인텔도 처음에는 CPU뿐만 아니라 메모리를 생산했던 시절이 있었다. 삼성 덕분에 익숙해진 DRAM이란 메모리도 인텔이 최초로 만들었다. 하지만 일본 반도체 회사들이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 진입함에 따라 경쟁이 치열해졌고 수익성 악화가 발생했다. 이에 따라 인텔이 1985년부터 과감하게 메모리 사업을 축소하거나 포기하면서 CPU와 같은 비메모리 분야에 전념하게 되었다. 그래서 1980년대 중후반에 386과 486칩이 나왔고, 곧이어 1990년대에 펜티엄 칩이 개발되었다. 이어 일본 메모리 반도체 회사들도 1990년대 들어 가장 늦게 반도체 시장에 뛰어든 우리나라의 삼성과 하이닉스의 추격에 그만 덜미를 잡히고 몰락의 길을 걸었다.

이번에는 반도체에 대한 이해와 개발의 역사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았다. 다음에는 세계 거대 반도체 기업들이 몇십 년 만에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는 이 치열한 반도체 시장에서, 지금껏 살아남은 반도체 회사들이 경쟁을 유지하고 생존하기 위해 개발하는 반도체 기술들에 대해 살펴보겠다.

글쓴이 / 기술연구소 개발2팀 김윤주 부장 (前)

4. 우리나라 반도체 역사(1)

4. 우리나라 반도체 역사

주변에 아는 지인들은 저의 첫 직장이 삼성전자라고 하면 잘 믿지 못하는 눈치입니다.

더구나 반도체 부문에 공채로 입사했다고 하면 더더욱 의심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어쨌든 저는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인 삼성전자에 당당히 합격하여 1994년 초 졸업과 동시에 시스템 반도체 사업부가 있는 부천 사업장으로 첫 출근을 했습니다.

그런데 삼성전자 반도체 하면 기흥이나 화성을 떠 올리는데 왜 저는 부천 사업장에서 근무했을까요?

왜냐면 삼성전자가 반도체를 처음 시작 한 장소가 부천 사업장이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는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 반도체 사업을 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반도체 기업인 ‘한국 반도체’라는 회사를 인수하여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반도체’는 모토롤라 연구원 출신인 강기동 박사가 1973년에 부천에 FAB을 짓고 전자시계용 반도체 칩을 만든 우리나라 최초 반도체 회사입니다. 참고로 삼성전자 부천 사업장은 IMF 때 미국의 Fairchild사에 인수되었다가 몇 년 후 온세미컨덕터가 이 회사를 인수하여 온세미컨덕터 코리아가 되었습니다.

반도체가 우리나라 산업사회에서 본격적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1950년 이후부터 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5년 처음으로 반도체 소자가 생산되었습니다.

미국의 고미 그룹이 국내에 합작투자회사를 설립하여 트랜지스터를 조립, 생산한 것이 시초라고 합니다.

그 후, 정부가 ‘외자도입법’을 제정하면서 미국의 페어 차일드사, 시그넥틱스사, 모토롤라(Motorola) 등 여러 외국 업체가 국내의 저렴한 인건비와 유능한 기능 인력을 이용해 반도체를 단순 조립하기 위해 계속 들어왔는데, 이것이 우리의 반도체 산업을 신장시키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한국 자본이 반도체 산업에 투자를 시작한 건 1968년입니다.

그해 3월 아남산업이 국내 최초로 반도체 조립 산업을 시작했고, 1970년에 금성사가 미국 내셔널 세미컨덕터와 기술 공급 계약으로 ‘금성전자’를 설립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반도체 산업을 이끈 선구자 두 분이 계십니다. 한분은 세계 최초로 MOSFET을 만든

‘강대원’ 박사와 한국 반도체의 아버지로 불리는 ‘강기동’ 박사입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몰라도 두 분 모두 경기고, 서울대 전기과, 오하이오 주립대 전기과 선 후배 사이입니다.

[ 강대원 박사 ] [ 강기동 박사 ]

1973년 강기동 박사는 미국 내에 ICII 사를 설립하고 동시에 경기도 부천에 한국 최초의 반도체 소자 생산 공장인 ‘한국 반도체 주식회사’를 세웠습니다. 이후 제4차 중동전쟁으로 인한 오일쇼크를 이겨내고 C-MOS와 전자 손목시계용 칩을 개발했습니다.

한국 최초로 FAB을 처음 만들었지만 오일쇼크로 파산 직전까지 가니까 이건희 당시 동양방송 이사가 한국 반도체 지분을 인수하면서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이 시작됐습니다.

현대도 1983년 초 '현대전자'를 설립하고 IC를 생산하기 시작하고 '금성반도체'도 1984년부터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삼성전자는 시장 수요가 많은 메모리 반도체중에서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칩 구조가 비교적 간단한 D램을 주력으로 개발하려고 목표를 세웠습니다.

1983년 12월 1일 개발에 착수한 지 6개월 만에 309개 공정을 자력으로 개발하고 웨이퍼를 생산라인에 투입하며 국내 최초로 64K D램 개발에 성공하였습니다.

1992년에는 ’ 64M D램’ 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며 메모리 강국인 일본을 추월했고, 1994년에는 256M D램, 1996년에는 1GB D램 등 연달아 세계 최초 모델을 내놓으며 차세대 반도체 시장을 주도했습니다.

2000년대 이후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세계 1위를 한 번도 내주지 않고 있습니다.

D램뿐 아니라 8Gb 낸드가 애플 아이팟 나노에 탑재된 후 NAND 분야에서도 세계 정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2014년에는 세계 최초로 3D 낸드플래시인 ‘V낸드’를 개발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현대전자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LG반도체와 합병하여 일 년 남짓 현대전자와 현대반도체라는 두 개의 법인으로 존재하다가, 2001년 3월 ‘하이닉스반도체’ 이름으로 사업을 이어 갔습니다.

그러다 2000년대 중반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IC 사업을 분리하여 메모리 반도체는 하이닉스에서, 시스템 IC는 매그나칩으로 나누어 사업을 지속했습니다. 2011년 11월 하이닉스를 SK텔레콤이 인수하여 2012년 ‘SK하이닉스’로 재탄생하여 현재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 20%로 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매그나칩의 AP사업부가 분사해서 어보브반도체가 되었고 Foundry사업부는 분사해서 키파운드리가 되었습니다. 올해 3월에는 SK하이닉스가 키파운드를 인수하였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지한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무려 70%로, 사실상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독주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부터 반도체 조립산업을 줄곧 펼쳐 왔던 아남산업은 1990년대 중반 팹 사업에 뛰어들면서 아남반도체라고 사명을 바꾸었고 2000년대 초반 동부전자와 합병하여 동부아남반도체로 바뀌었습니다.

그때 반도체 조립사업은 암코(AmKor)라는 회사에 매각하였고 동부아남반도체는 동부하이텍, 현 DB하이텍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시스템 반도체 특히 8인치 파운드리 사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우리나라 주요 반도체 회사들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봤습니다.

[ 우리나라 반도체 역사 ]

[반도체] 반도체 기술 발달의 간략한 역사

반도체(semiconductor)란 반도체 소자의 발전을 이끈 핵심 재료로서, 일반적으로 전기적으로 도체(conductor)와 부도체(insulator) 사이의 성질을 띠고 있는 물질로서 정의된다. 다만 보다 정확한 정의를 위해서는 양자역학적인 개념을 동원해야 하는데, 이 부분은 물리전자 카데고리에서 이미 다룬 바가 있다.

본문에서는 반도체 기술이 어떤 식으로 발달하게 되었는지, 그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도록 할 것이다.

우선 반도체의 발견 자체는 1800년대에 이미 이루어졌으나, 현대적 개념으로서의 반도체 기술이 발달된 것은 지난 100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초기 반도체는 현대에 널리 쓰이는 실리콘이 아닌, 황화납(PbS), 안티몬화아연(ZnSb), 황화은(AgS)와 같은 화합물 반도체였다.

이후 1874년에 독일의 물리학자인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Karl Ferdinand Braun)에 의해 PbS의 점 접점 다이오드(point-contact diode)에서의 정류작용 현상이 보고되었다. 이후 그는 마르코니(Marconi)와 함께 그 다이오드를 라디오에 응용하는 업적을 통해 1909년에 노벨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1906년에는 리 디 포레스트(Lee de Forest)에 의해 라디오 파를 검출하는 수신 장치로 쓸 수도 있고, 전자파를 증폭하는 증폭기로도 쓸 수 있는 ‘오디온’이 개발되었다. 이는 삼극 진공관으로서, 인류가 기계적인 조작 없이 전류의 흐름을 통제할 수 있게 한 발명품이었다. 일정한 주파수로 들어오는 교류는 오디온을 통과하면서 한 방향의 직류로 ‘정류’되었는데, 이는 전류의 흐름에 관계하던 전화, 전신 등에 모두 이용할 수 있는 핵심부품이었다.

1930년대에는 다이오드의 정류 작용에 대한 이론이 완성되었으며, 1947년에는 벨 연구소에서 윌리엄 쇼클리(William Bradford Shockley)와 월터 브래튼(Walter Brattain), 존 바딘(John Bardeen)에 의해 점 접점 트랜지스터(point-contact transistor)가 개발되었는데, 이들은 이 업적을 통해 1956년에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다.

다만 1947년 당시 점 접점 트랜지스터를 만든 것은 실질적으로 바딘과 브래튼이었는데, 연구팀의 지휘자인 쇼클리는 트랜지스터의 개념 역시 그가 고안한 것이긴 하지만 쇼클리가 개발하던 트랜지스터는 샌드위치 구조를 하고 있는 다른 방식의 트랜지스터였다. 쇼클리는 점 접점 트랜지스터의 개발 이후에도 본인이 생각한 방식의 트랜지스터 개발을 독자적으로 진행하였고, 결국 1949년 말에 이 새로운 트랜지스터의 작동 원리를 증명하고, 1951년 7월에 언론을 통해 발표함으로써 현대적인 트랜지스터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접합형 트랜지스터(BJT, Bipolar Junction Transistor)를 개발하였다.

1951년에는 성장 접합(grown junction)을 사용하는 공정 기술이 개발되었으며, 1954년에는 감광막(photo-resist) 기술이 개발되었다. 이후 1959년에는 페어차일드(Fairchild)에 있던 로버트 노이스(Robert Noyce)가 잭 킬비(Jack Kilby)의 게르마늄 기반 집적회로에서 발생하던 많은 실용적인 문제들을 풀어낸 실리콘 집적회로를 개발하였다. 또한 진 호에르니(Jean Hoerni) 역시 같은 해, 같은 회사에서, 2D 방식의 트랜지스터 설계 방식을 개발하기도 했다.

이후 1960년대 초에는 모토로라(Motorola)가 반도체 업계의 빅3에 합류하기도 했다. (‘TI-Fairchild-Motorola’. 현재는 분야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을 빅3로 꼽는다.)

1950년 대에서부턴 10년 단위로 키워드를 하나씩 잡아낼 수 있다. 이는 다음과 같다.

1950년대 : BJT

1960년대 : PMOS (BJT보다 소형화 → 고집적화)

1970년대 : NMOS (PMOS보다 고속, 고집적화)

1980년대 : CMOS (NMOS보다 저전력)

반도체의 역사 – Sciencetimes

지난해 우리나라는 반도체 수출 2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올해 국내 총 수출이 사상 첫 2천억 달러를 넘을 전망이니 반도체 한 품목이 10%를 넘게 차지한다는 얘기다. 반도체 없는 우리나라 경제는 생각하기 어렵다. 정보통신 분야에서 눈부신 수출실적을 보여주고 있는 휴대폰에서도 세계 최강인 노키아가 메모리 반도체만은 한국에서 구매해 사용할 정도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 9월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나노 공정을 적용한 D램 양산에 돌입했는가 하면 곧바로 60나노 8기가 플래시 메모리 개발에 성공하는 등 기술면에서도 앞서나가고 있다.

국내 최초의 반도체 기업은 1965년 미국의 소기업인 ‘고미’가 간단한 트랜지스터를 생산하기 위해 설립한 합작기업이었다. 본격적인 제조업은 1966년 미국 반도체 제조사 페어차일드가 투자를 하면서 시작됐고 이후 모토롤라, 시그네틱스, AMI, 도시바 등이 잇따라 투자 대열에 참여했다. 그러나 이 때만해도 우리나라의 값싸고 우수한 노동력을 겨냥해 단순한 제품조립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완제품은 전량 투자기업으로 수출됐다.

1970년대 들어 세계 전자산업의 발전에 발맞춰 한국정부가 반도체 산업 육성에 나서면서 반도체 생산과 수출은 빠르게 증가했다. 전자산업 육성과 함께 대일 무역적자를 줄이려는 목적으로 1969년 전자공업진흥법을 제정하고 그에 기반하여 전자공업 진흥 8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이 계획에는 반도체 제품 개발, 수출진흥, 소요자금 조성 등 반도체 산업 발전을 지원하는 다양한 조치들이 포함돼 있었다.

1970년에는 국내 자본으로 금성사와 아남산업이 반도체 조립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이 때부터 우리나라 기업들도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반도체 산업에 더 많은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1970년 전자제품 생산은 불과 10억 달러 규모였고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6.6%에 불과했다. 그러나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는 1979년에 와서는 생산이 33억 달러, 수출비중은 12%를 차지할 정도로 커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국산 반도체가 기술과 생산량 측면에서 국내 전자산업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반도체 제조의 원재료라 할 수 있는 웨이퍼 가공생산을 우리나라에서 처음 성공한 것은 1974년 한국반도체가 설립되면서다. 그러나 이 회사는 공장 준공 2개월만인 1974년 12월, 자금난에 봉착하고 이건희 회장(당시 중앙일보 이사)이 사재를 털어 인수한다. 이것이 삼성전자 부천 반도체 공장의 시작이다.

삼성은 이 공장에서 1975년 전자 손목시계용 IC 칩을 개발, 국내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전자 손목시계는 ‘대통령 박정희’라는 이름이 새겨진 채 한국의 첨단기술을 자랑하는 물건으로 외국 국빈들에게 선물되곤 했다. 또 1976년에는 국내에서 처음 트랜지스터 생산에 성공하고 당시로서는 최첨단인 3인치 웨이퍼 가공설비까지 갖추고 의욕적인 사업을 전개했다.

이후 경쟁 재벌기업인 금성은 대한전선이 1977년 설립한 대한반도체를 인수하고 미국의 AT&T와 합작으로 금성반도체를 설립했다. 1979년에는 한국전자가 일본 도시바와 합작형태로 트랜지스터, 다이오드 등 개별 소자 완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는 양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반도체를 하나의 독립된 산업으로 관심을 갖기 보다는 전자산업의 부품산업으로 주목했다. 국내 반도체산업이 독립된 산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과감한 연구개발과 투자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1983년부터다. 이웃 일본기업들이 반도체 사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미국에 필적하는 성과를 거두는데 자극을 받은 것이다. 당시 미국 인텔은 D램을 처음 제품화한 기업이지만 일본에 밀리자 D램을 포기하고 CPU에만 전념키로 하는 획기적인 결정을 내리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삼성이 1983년 본격적으로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겠다고 하자 정부관리들 조차 비판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른바 ‘도쿄선언’을 통해 1983년 2월 8일 당시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 산업 참여를 선언하자 정부의 모 고위 관리는 “사업성도 불확실하고 돈 많이 드는 반도체를 왜 한단 말인가. 차라리 신발산업을 밀어주는 게 낫다”고 비난했다. 물론 앞서 있던 일본의 반도체 업체들도 실소를 금치 못했다고 한다. 반도체 산업은 그만큼 투자가 많이 필요한 산업이었고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이 사업진출 10개월 만에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세번째로 64K D램 개발에 성공하자 인식이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고 금성과 현대도 본격적으로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게 되었다. 회의적이었던 정부 역시 국내 반도체 산업 육성에 적극적이 되었고, 1985년에는 ‘반도체 산업 종합 육성 계획’을 새로 발표하고, 연구비 지원을 큰 폭으로 늘리는 등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정부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획기적인 지원은 1985년 삼성, 현대, 금성이 설립한 반도체 연구조합과의 공동연구개발 사업제의를 적극 수용한 것이다. ‘단군 이래 최대 국책사업’이라는 이 연구개발 사업에 정부는 총 1천900억원의 연구비 중 600억원을 지원했다. 이 연구개발 사업의 결과물은 1990년대에 금성과 현대가 세계 주요 D램 기업으로 성장하고 우리나라가 세계 D램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하는 발판이 됐다.

이후 국내 반도체 산업은 1986년 1메가 D램, 1988년 4메가 D램, 1989년 16메가 메가 D램을 차례로 개발하는데 성공하면서 기술격차를 줄여나갔다. 특히 16메가 D램에서부터 한국 반도체 산업은 기술력 면에서 미국, 일본을 따라 잡았다. 이어 1992년에는 64 메가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삼성은 시장점유율에 있어서도 1987년 세계 7위에 오른 이후 1990년 2위, 1992년에는 드디어 세계 1위를 차지했다.

한국 반도체산업의 성공은 무모하리만큼 과감한 결정과 결정된 일에 혼을 불어 넣어 미친 듯이 일하는 근로자들의 투지에 정부의 적절한 지원책이 더해 만들어졌다. 여기에다 반도체 가격 경기 등 운이 결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성공을 ‘신화’로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초정밀을 요하는 반도체 공장을 선진국의 3분의 1수준인 6개월 만에 그것도 겨울을 나면서 건설해 내는 집념이나 진동에 약한 고가의 장비를 설치하기 위해 불과 7시간 만에 4킬로미터나 되는 진입로를 넓히고 포장을 해내는 눈물겨운 노력이 뒷받침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18925)

[반도체 특집] 우리나라 반도체 역사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외국계 자본에 의한 조립생산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개별소자 생산→일괄 공정 생산체제→생산체제 고도화 시도 등의 단계를 거치면서 세계 반도체 생산의 핵심 축으로 거듭났다.

◇1970년대=국내 기업들에 의한 반도체조립 및 개별소자 생산체제 구축기다. 아남산업이 1968년 3월 국내 자본에 의한 반도체 조립 사업을 출범한 이후 1970년 금성반도체, 1974년 한국반도체(삼성전자 반도체 전신) 등이 가세, 미국 기업과 기술제휴로 미국산 반도체를 조립, 전량 수출했다. 이러한 반도체 조립·개별 소자 생산 과정은 우리나라 산업체계에 상당한 파급·학습효과를 가져왔다. 현재 메모리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는 고도 생산체제 구축에 큰 밑거름이 됐다. 또 반도체장비 제조 분야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진 조립 장비 제조업을 태동시키기도 했다.

◇1980년대=국내 반도체 기업의 일관 공정 생산기반 구축기다. 조립과 개별소자 부문의 노하우를 토대로 대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1983년 2월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반도체사업 진출 결정 발표를 신호탄으로, 같은 해 12월 삼성전자가 국내 최초로 64K D램을 국산화했다. 1986년 10월엔 현대전자 반도체공장이 가동을 개시, 메모리 생산기반이 구축됐다.

◇1990년대 전반=메모리 산업 성숙기다. 국내 반도체업계는 1991∼1995년 연평균 50%를 넘어서는 폭발적인 신장세를 기록했다. 특히 일본 메모리 업계를 견제하고자 한 미국 컴퓨팅업계 이해 관계 덕분에 국내 반도체 업계는 세계 최대 메모리 수요처인 미국 시장에 진출, 반도체 시장에서 우리나라는 미·일에 이은 세계 제3위의 생산대국으로 자리매김했다. 1992년 8월 64M D램을 세계 최초로 국산화, R&D 역량 면에서도 우위를 보였다. 1990년 5300만달러에 불과했던 국내 장비업계의 매출액도 1995년엔 3억5900만달러, 1990년 1억6000만달러에 불과했던 국내 재료업계의 매출액도 1995년 8억3700만달러로 비약적인 성장세를 거듭했다.

◇1990년대 후반=생산체제 고도화단계 시기다. 1996년 반도체 불경기에 이어 1997년 IMF란 국난을 겪었으나 국내 반도체 업계는 양적 성장 일변도에서 탈피, 본격적인 생산체제의 고도화를 시도했다. 또 메모리 편중의 생산구조에서 벗어나 비메모리 개발 전략을 본격적으로 추진, 사업영역을 다각화하려는 시도도 본격화했다. 반도체산업 내 구조조정 일환으로 현대전자와 LG반도체라는 초대형 대기업 간 이른바 빅딜이 있었다. 구조조정 노력은 1998년 하반기 반도체 경기회복세와 맞물려 효과를 발휘하면서 IMF 국난을 극복하는데 있어 모든 산업 분야에서 가장 큰 역할을 수행했으며 그 역할은 21세기 현재까지 지속돼, 반도체산업은 국민 경제적 기여도와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적지 않게 기여했다.

윤건일기자 [email protected]

키워드에 대한 정보 반도체 역사

다음은 Bing에서 반도체 역사 주제에 대한 검색 결과입니다. 필요한 경우 더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터넷의 다양한 출처에서 편집되었습니다. 이 기사가 유용했기를 바랍니다.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반도체 산업 역사 5분만에 이해하기!

  • 반도체
  • 실리콘밸리
  • 글로벌투자
  • 더세이지인베스터
  • 투자
  • 연금
  • 산업의쌀
  • 삼성

반도체 #산업 #역사 #5분만에 #이해하기!


YouTube에서 반도체 역사 주제의 다른 동영상 보기

주제에 대한 기사를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반도체 산업 역사 5분만에 이해하기! | 반도체 역사,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