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의 비유 | [철학유치원] 동굴의 비유로 배우는 플라톤의 이데아론 답을 믿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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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철학의 근간이 된 플라톤 철학,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게 평가되는 이데아론을 ‘동굴의 비유’를 통해 알아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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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이 하나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갇힌 사람들이 있죠. 그들은 사슬에 묶인 채 평생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머리마저 고정되어 동굴의 벽멱 말고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상황이죠. 그들 뒤로는 불이 있으며, 불과 그들 사이에는 길이 하나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다양한 사람들이 지나며 그림자를 동굴의 벽면에 드리웁니다. 몇몇은 동물의 모형을 운반하며 그림자를 만들기도 하죠. 결국 이들은 이 그림자가 실재라고 믿게 됩니다. 이보다 나은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죠.
그러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잠시 풀려나게 됩니다. 그의 시선은 자연스레 동굴의 반대편을 향하죠. 처음엔 눈이 부셔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조금씩 환한 빛에 적응하게 됩니다. 그는 곧 태양빛 가득한 동굴 밖까지 발걸음을 옮기고, 그곳에서 자신이 실재라고 믿었던 것들이 고작 그림자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다시 동굴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지만 더 이상 어둠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친구들은 그가 불쌍하기만 합니다. 동굴 밖을 다녀온 뒤로 시력이 떨어진 데다 엉뚱한 소리마저 지껄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죠. 그가 아무리 ‘진짜를 보았다’고 외쳐도 사람들은 그 말을 믿지 않습니다. 그의 친구들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자신들이 바라보고 있는 그림자에 만족하며 평생을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죠.
위의 이야기는 플라톤, 다시 말해 서양철학의 토대를 만든 것으로 평가받는 철학자의 책 국가에 나오는 예입니다. ‘동굴의 비유’라 불리는 이 이야기는 플라톤이 이해한 인간이 처한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주는데요. 그가 보기에 대부분의 인간은 단순한 현상들, 즉 동굴의 벽면에 비친 그림자만으로도 만족하며 살아갑니다. 반면 철학자들은 진리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실재에 관한 지식을 추구하죠. 다시 말해, 동굴 밖으로 나가 ‘이데아’를 향해 나아가는 겁니다.
그렇다면 대체 이데아란 무엇일까요? 이를 알아보기 위해선 하나의 사례를 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의자가 존재합니다. 어떤 것은 나무로 된 것이며, 또 어떤 것은 푹신푹신한 쿠션으로 만들어져 있죠. 1인용도 있으며,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의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은 모두 ‘의자’라고 불리는 무언가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공유하는 것이 바로 이상적인 의자와의 관계, 즉 의자 ‘이데아’와의 관계입니다. 플라톤이 보기에 이데아는 실제로 존재하며, 그곳의 의자야말로 ‘진정한’ 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모든 의자들은 이데아의 불완전한 복사물에 불과하죠.
우리는 의자의 이데아로부터만 의자에 대한 진정한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현실의 의자에 대한 정보는 무엇이든 견해에 불과할 뿐 지식은 되지 못합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실과 달리, 이데아의 세계는 시간을 초월하며 불변합니다. 철학자들은 지혜에 대한 사람을 바탕으로, 이데아계에 접근하고 사유를 통해 지식의 가능성을 얻게 되죠.
재밌는 점은 이데아가 개별 사물뿐만 아니라 정의正義나 선善 같은 추상적 개념에도 적용된다는 겁니다. 특히 선의 이데아는 궁극적인 이데아이자 모든 철학적 탐구의 목표라고 할 수 있죠. 플라톤은 선의 이데아를 태양에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그는 태양이 우리가 보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며, 성장의 근원이 된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플라톤은 선의 이데아가 마치 태양처럼 마음의 눈을 통해 실재의 본성을 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다고 말합니다. 선이라는 빛이 있기에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지침을 얻을 수 있는 것이죠.\r그는 우리가 이성을 토대로 이데아를 발견하기 위해 늘 노력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불완전한 현실에 안주하기보다는 완벽함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러한 목표는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부담스럽게 느껴질 것임에 분명합니다. 게다가 그는 이런 고민을 선행한 철학자들이 국가를 다스려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워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죠. 하지만 보다 높은 이상과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는 그의 목표가 분명 인간 문명 발전에 큰 원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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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의 우화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동굴의 비유(영어: Allegory of the Cave 또는 Plato’s Cave)는 이데아론을 설명하기 위해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생각한 비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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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5/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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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6 플라톤중 동굴의 비유 | 생글생글

동굴의 비유는 눈에 보이는 현상의 세계를 벗어나 참된 본체의 세계를 인식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비유에 따르면, 우리가 보는 현상의 세계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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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gsg.hankyung.com

Date Published: 4/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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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이데아와 동굴의 비유

이 태양은 사물을 직접적으로 볼 수 있게 해 주는 눈은 아니지만, 그 눈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좋음의 이데아라는 의미입니다. 이 좋음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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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0/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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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유치원] 동굴의 비유로 배우는 플라톤의 이데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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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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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구속되어 벽을 마주본 사람들은 그림자만을 봐 그것을 실체라고 믿어 버리고 있다.

동굴의 비유(영어: Allegory of the Cave 또는 Plato’s Cave)는 이데아론을 설명하기 위해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생각한 비유이다. ‘국가’ 제7권에서 상술된다.

‘국가’ 제7권의 기술 [ 편집 ]

(514A-515A) …… 지하의 동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상상해 보자. 빛으로 향한 동굴의 좁은 통로가 입구까지 달하고 있다.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손과 발, 목이 속박되어 뒤에 있는 금자

해설 [ 편집 ]

동굴에 사는 속박된 사람들이 보고 있는 것은 ‘실체’의 ‘그림자’이지만, 그것을 실체라고 믿어 버리고 있다. ‘실체’를 옮겨 가는 사람들의 소리가 동굴의 안쪽에 반향하고, 이 믿음은 확신으로 바뀐다. 똑같이, 우리가 현실에 보고 있는 것은 이데아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다고 플라톤은 생각한다.

즉, 세상 만물은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에 불과하고 동굴 밖에 실체가 존재하며 인간은 그 실체를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관련 항목 [ 편집 ]

[김흥일쌤의 서양철학 여행] (6) 플라톤(중) 동굴의 비유

“완전한 이데아의 세계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우리가 아는 세계는 동굴벽에 비친 그림자일 뿐”

플라톤 철학의 핵심은 이데아론이다. 그의 이데아론에 의하면 세계는 현상의 세계와 이데아의 세계로 구분된다. 현상의 세계는 감각으로 지각되는 불완전한 세계로 이데아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반면 이데아의 세계는 이성에 의해서만 인식될 수 있는 완전하고 불변하는 세계이다. 예컨대 현실에 있는 삼각형이나 아름다운 꽃들은 모두 불완전하지만, 이데아의 세계에는 완전한 삼각형의 이데아와 아름다움의 이데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이 세상의 모든 사물마다 그 본질인 이데아가 있으며, 그 가운데 최고의 이데아는 선의 이데아이다. 그러나 이데아에 대한 그의 사상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플라톤도 이데아를 말로 적절하게 표현하기 어렵기 때문에 비유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플라톤의 대화편 에 제시된 유명한 ‘동굴의 비유’이다.동굴 안에 죄수들이 갇혀 있다. 이들은 오직 맞은편 동굴 벽에 있는 그림자만 볼 수 있도록 온몸과 목이 사슬에 묶여 고정된 상태이다. 죄수들의 뒤에 있는 장벽 위에서 사람들이 모닥불을 피워놓고 그 앞에서 그림자놀이를 하고 있다. 죄수들이 보고 있는 그림자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평생 벽만 보고 살아온 죄수들은 등 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고, 심지어 자신들이 묶여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들이 보고 있는 그림자들이 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다. 그런데 한 죄수가 사슬에서 풀려나 동굴 밖으로 끌려 나간다. 그 죄수는 지금까지 보아온 그림자들이 모두 실물이 아니라는 것도 깨닫는다. 동굴 밖 세상을 보고, 모닥불이 아닌 진짜 태양 빛도 느끼게 된다. 그 후 그가 다시 동굴 안으로 돌아온다. 그가 아직 묶여 있는 죄수들에게 장벽 뒤의 세상 이야기를 해준다면, 그의 말을 선뜻 받아들이기보다 오히려 그를 조롱할 것이다.동굴의 비유는 눈에 보이는 현상의 세계를 벗어나 참된 본체의 세계를 인식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비유에 따르면, 우리가 보는 현상의 세계는 동굴 안의 그림자에 불과하며, 동굴 안에 갇혀 있는 죄수들은 현상의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다. 그리고 동굴 밖의 세계는 참된 실재인 이데아의 세계이며, 참된 세계를 보려면 동굴 밖으로 나가 태양을 보아야 한다. 동굴 밖의 태양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진정한 원인인 선의 이데아를 상징한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만물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근원이다. 태양이 그 빛으로 세상을 널리 비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무엇 하나 볼 수 없으며, 분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데아는 사물의 인식 근거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쇠사슬을 풀고 동굴 밖을 나와 태양을 보고 다시 동굴로 들어간 죄수는 누구인가? 이는 바로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상징한다.이제 동굴의 비유를 통하여 플라톤은 철학자로서 소크라테스가 누구이며 그가 한 일의 의미가 무엇인지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에게 이성을 통해 그림자의 세계인 동굴에서 벗어나 이데아의 세계에 도달한 사람이다. 또한 동굴 밖에 나아가 태양을 보고 다시 동굴 안으로 들어와 사람들을 참된 세계로 인도하려 한 사람이다. 이를 위해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유명한 말을 통해 자기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고 진리를 추구할 것을 역설하였으며, 아테네 젊은이들에게 이성적 진리 탐구 방법인 대화법을 가르쳐 기존의 지식과 관습에 의문을 제기하고 끊임없이 진리를 추구하도록 하였다. 또한 인간의 영혼을 돌보는 일을 최대 관심사로 생각했던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법정에서조차 “음미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고 주장하면서 ‘등에’로서 무지의 잠을 자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도전을 주었다. 이것이 소크라테스가 죽은 이유였다.플라톤의 동굴 비유는 이제 올바른 교사와 그렇지 않은 교사를 구분하는 기준을 제시해 준다. 그 기준은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그 보편적인 기준은 무엇인지에 대한 문제의식과 그에 대한 헌신이 있느냐 여부이다. 소피스트들은 보수를 받고 수사학과 같이 실생활에 유용하게 쓰이는 지식이나 기술을 가르치는 데만 관심이 있었다. 이들이 변론술을 통하여 보여 주려 했던 것은 어떠한 주제든지 반대편 입장에서도 훌륭한 논리를 전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요즘 말로 하면 “정의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게 정의”라는 궤변과 비슷하리라. 여기서 우리는 플라톤이 소피스트들을 일컬어 ‘지식의 장사꾼’이라고 비판했던 의미를 이제 분명히 알 수 있다.동굴의 비유는 눈에 보이는 현상의 세계를 벗어나 참된 본체의 세계를 인식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비유에 따르면, 우리가 보는 현상의 세계는 동굴 안의 그림자에 불과하며, 동굴 안에 갇혀 있는 죄수들은 현상의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다.

차곡 차곡 정리하는 삶

| 들어가며 :

딸이 읽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구입한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50선’이라는 만화책을 제가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비록 만화지만, 매우 구체적이고 많은 내용을 담고 있어 인문고전에 대한 입문서로 충분합니다.

플라톤의 국가를 읽으면서 플라톤이 이야기하는 이데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에게 이데아는 철학자로서 도달해야 하는 지혜 혹은 절대선과 같은 의미인 듯합니다.

오늘은 플라톤이 이 이데아를 설명하기 위해 자주 인용하는 ‘동굴의 비유’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아래와 같은 질문에 대해 답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동굴의 비유란 무엇이고,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까?

1. 플라톤이 생각한 이데아

이데아는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참모습, 본모습이라고 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진리 같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 이데아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지성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데아는 좋음, 선 등으로 표현하는데 지혜를 사랑하고 추구하는 철학자가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내용을 보다 보면 진리를 깨닫기 위해 수행하는 스님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플라톤은 이데아를 설명하기 위해 3가지 비유를 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태양의 비유, 선분의 비유, 동굴의 비유입니다.

간단하게 살펴보면 태양의 비유라는 것은 사물을 볼 수 있는 것은 눈을 통한 ‘보는 감각’과 함께 빛이 있어야 하는데, 그 빛의 원천이 태양이라는 것입니다.

이 태양은 사물을 직접적으로 볼 수 있게 해 주는 눈은 아니지만, 그 눈이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좋음의 이데아라는 의미입니다. 이 좋음의 이데아는 인간이 좋고 행복한 삶을 위해 이성이 추구해야 하는 최종 목표라고 주장합니다.

선분의 비유는 정리는 해 보겠지만, 명확하게 이해는 되지 않는 개념입니다. 다음에 만화가 아닌 제대로 된 책으로 다시 읽어 보아야 할 듯 합니다.

이 세상에 선분 하나를 그어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로 나눕니다. 그리고, 보이는 세계는 다시 선분을 하나 더 그어 한쪽을 ‘영상의 영역’으로 정의하고, 다른 한쪽을 ‘그 영상들이 닮아 보이는 것들의 영역’으로 정의합니다.

이 용어들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더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영상의 영역은 우리가 상상으로 짐작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의미하고, 그 영상들이 닮아보이는 것은 우리 주위의 동식물이나 사물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세계는 다시 선분을 그어 ‘도형이나 숫자로 이루어진 영역’과 ‘순수한 본질(이데아)로 이루어진 영역’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결국 이데아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숨어 있는데, 도형이나 숫자로 이루어진 영역은 수학과 기하학을 통한 추론을 통해 알 수 있고, 순수한 본질로 이루어진 이데아 영역은 지성을 통해 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스 철학자들이 대부분 수학과 기하학을 잘 하고, 다양한 공부를 통해 다재다능한 학식을 갖추었던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2. 이데아를 설명하기 위한 동굴의 비유

동굴의 비유는 플라톤이 이데아를 설명하기 위해 들었던 비유 중에 가장 유명합니다. 흔히 뜬구름 잡는다고 표현하는데 ‘이데아’와 같이 플라톤이 만들어낸 개념을 보다 쉽게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동굴의 비유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필요가 있습니다.

눈 앞에 동굴을 상상하시고, 그 동굴 입구에는 커다란 횃불이 켜져 있습니다. 동굴 안에는 어릴 때부터 손발이 묶여 살아온 죄수들이 있습니다.

이들이 묶여져 있는 방향은 횃불을 등지고 있기 때문에 평생 동굴 밖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 죄수들과 횃불 사이에 나지막한 담벼락이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이 담벼락과 불빛 사이로 수많은 사람들과 동물들이 소리를 내면서 지나갑니다.

죄수들은 머리를 돌릴 수 없기 때문에 본인 눈 앞의 동굴벽에 비친 그림자가 현실이고 실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동굴 속에서 메아리처럼 울리는 소리가 실제 소리라고 믿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바로 이 죄수들의 처지와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허상이라는 가정입니다. 왜냐하면, 등 뒤에 있는 진실은 태어났을 때부터 볼 수 있도록 교육을 받거나 훈련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때 죄수 중 한명이 풀려납니다.

생전 처음으로 횃불을 볼 수 있었고, 그림자로만 비쳤던 물체가 무엇인지 처음으로 직접 확인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평생 그림자로 보아왔던 것들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죄수는 혼란에 빠지고, 평생 보아왔던 그림자가 진실이라고 믿으려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때 누군가 죄수를 데리고 동굴 밖으로 끌어냅니다.

햇빛에 눈이 부셔 잠시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시간이 흐르고, 차츰 모든 것을 명확하게 볼 수 있게 됩니다. 동굴 밖의 세상 뿐 아니라 동굴 안의 세세한 부분도 정확하게 볼 수 있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이 죄수는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태양이라는 존재를 인식하게 됩니다. 아마도 이 태양을 진리의 근본인 이데아로 표현하는 듯합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이 죄수를 다시 동굴로 끌고 들어가 다시 손발을 묶습니다. 진실을 알게 된 이 죄수는 옆 죄수들에게 지금 이 모습은 모두 거짓이며, 밖에 진실이 있다고 목소리 높여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들은 죄수들은 모두 밖에 나갔다가 끔찍한 일을 겪고 돌아온 것이 아닌지 밖에서 돌아온 죄수를 불쌍히 여깁니다.

심지어, 이를 본 다른 죄수들은 손발을 풀어주고 밖으로 나가도 좋다고 허락해도 본인들이 나가지 않겠다고 강하게 반발하거나 밖에 나가느니 죽겠다고 합니다.

여기까지가 동굴의 비유입니다.

3. 동굴의 비유에 대한 해석

동굴에 손발이 묶여 있는 죄수들은 바로 철학을 모르는 우리들입니다. 모두 평생 그림자를 보면서 실재라고 믿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참된 이데아인 태양이 바로 등 뒤에 있지만, 우리는 현실에 얽매어 이데아의 존재를 모릅니다. 바로 철학이 사람들을 깨우쳐 태양이 있는 쪽으로 인도를 해 준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의 통치자는 반드시 동굴 밖의 진실된 세상을 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결국, 통치자는 철학을 공부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이데아를 볼 수 있기 위해서는 철저한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며, 수학, 기하학, 천문학, 화성학을 배워야 하는데, 이 과목들이 감각의 세계에서 영혼을 진실의 세계로 인도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수학과 기하학은 순수한 지성을 사용하여 우리의 사유를 전환시키는 역할을 하고, 천문학과 화성학은 전체적인 사물의 조화와 질서를 배울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기초교육을 바탕으로 변증법을 집중적으로 훈련시켜 국가를 통치할 철학자를 양성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이 철학자들이 동굴안에 묶여 있는 죄수들을 동굴 밖으로 인도할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동굴 밖의 태양을 볼 수 있는 철인은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최대 40년을 양성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동굴을 빠져나오는 것은 생각보다 길고 힘든 과정을 거쳐야 했던 것 같습니다.

4. 하고 싶은 이야기

이 모든 내용은 소크라테스가 이야기한 것을 플라톤이 정리한 것인데, 이 주장이 플라톤의 생각인지 정말 소크라테스틔 생각이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당연히 플라톤의 생각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으리라 추측합니다.

플라톤의 이데아에 대한 내용을 읽다보니 문득 법륜 스님 유튜브 강의 내용이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는 모두 꿈속에서 살고 있는데, 꿈속에서 도둑에게 쫒기고 벼랑에서 떨어지는 고통을 느끼다가 어느 순간 눈을 딱 뜨면, 모든 것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눈을 뜨는 과정은 평생 본인을 단련하기 위해 수련을 하다가 조금씩 깨닫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탁! 깨우치면서 모든 것이 다르게 보인다는 것입니다.

어쩐지 이 이야기와 동굴의 비유가 비슷한 맥락처람 느껴졌습니다. 동양의 불교 철학과 서양의 그리스 철학은 진리와 행복을 탐구하는 측면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불교와 다른 점은, 철학을 공부해 지성을 쌓은 철학자가 되어야 이데아를 볼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불교의 경우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고 깨달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점에서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는 고승들도 어쩌면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과 시각을 얻게 된다는 것은, 철학자들이 평생 훈련을 통해 지성을 쌓은 상태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찾아가는 길은 다르지만, 목적지는 하나인 것같은 느낌입니다.

전체적으로 종합해 보면, 이 세상에는 숨겨진 진실이 있는데 이것은 오랜 시간 열심히 공부를 해야지만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진실이 이데아인지, 불교에서 말하는 행복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든 공부를 하고 사고를 전환해야만 좀 더 진실에 가까운 세상을 볼 수 있다는 점은 이해를 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수학, 기하학, 천문학, 화성학, 철학(변증법)을 공부해야 그 진실을 볼 수 있는 지성을 쌓을 수 있다고 구체적인 길까지 제시해 주었지만, 이 부분은 저에게 맞는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습니다.

정리하며,

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50선은 만화책이라고 우습게 보면 안될 것 같습니다. 두툼한 철학서적을 읽기에는 부담이 많았는데 일단 개념과 핵심 내용을 가볍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플라톤의 국가는 총 6,000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대작인데, 만화로 된 플라톤 국가는 230페이지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내용을 최대한 쉽게 풀어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늘 인문고전은 배우고는 싶지만 멀게 느껴졌었는데, 만화로 조금 쉽게 접할 수 있어 감사함을 느낍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구매하실 생각이 있으시면, 참고해 주세요.

(파트너스 활동을 통해 일정 수수료를 제공받을 수 있음)

◇ 서울대선정 인문고전 50선 : 가격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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