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수도 | 상상 이상 ‘두바이 여행’! 세계 최고층 빌딩부터 300원 보트투어를 한번에 경험하다! Trip To Dubai (Kbs_20180331) 상위 116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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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아랍어: دبي, 영어: Dubai)는 페르시아 만 남동쪽 해안에 위치한 아랍에미리트의 최대 도시이다. 아랍에미리트를 구성하는 7개의 토후국 가운데 하나인 두바이 토후국의 수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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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7회 상상 이상의 여행, 두바이]사막 위에 지어진 빌딩 숲의 도시!
주위를 둘러보면 랜드마크가 아닌 건물이 없는 도시, 두바이!
석유를 발견하기 전까지 두바이 사람들은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고 진주를 캐며 살았다는데…
세계 최고층 빌딩과 요금 3백 원짜리 나무배를
한 번에 경험할 수 있는 곳, 두바이로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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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9개의 토후국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1971년 카타르와 바레인이 분리 독립했다. 수도는 아부다비로, 아랍에미리트인구의 40%가 이 곳에 몰려있으며, 두바이는 아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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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orld.moleg.go.kr

Date Published: 5/1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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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전기·수도기업 민영화한다 | 한경닷컴 – 한국경제

두바이, 전기·수도기업 민영화한다, 지분 6.5% 증권거래소에 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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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ankyung.com

Date Published: 8/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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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두바이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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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최초 공개: 2021.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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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دبي

두바이의 모습들 시기 휘장

두바이 행정 나라 아랍에미리트 행정구역 두바이 토후국 역사 설립 1833년 6월 9일 인구 인구 3,410,837명 (2019년) 인구밀도 463.17 명/km2 광역인구 3,410,737 명 지리 면적 4,114 km2 기타 시간대 UST (UTC+4) 지역번호 098

두바이(아랍어: دبي, 영어: Dubai)는 페르시아 만 남동쪽 해안에 위치한 아랍에미리트의 최대 도시이다. 아랍에미리트를 구성하는 7개의 토후국 가운데 하나인 두바이 토후국의 수도이다. 인구는 2,106,177명으로 아랍에미리트에서 최대이며 면적은 4,114km2로 아부다비에 이어 두 번째이다.[1] 두바이는 아부다비와 함께 나라의 연방평의회에서 결정한 잘못된 법을 거부할 수 있는 거부권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두 개의 토후국이다.[2] 도시는 아랍에미리트 북부 해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두바이-샤르자-아지만 대도시권을 이끄는 중심 도시이다. 두바이는 요즘 도시 국가 또는 독립된 국가로 자주 오인하는데, 경우에 따라서 UAE 전체 대표로 “두바이”로 표기하기도 한다.[3]

두바이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075년이며 1799년 최초로 도시로 언급되었다. 1833년 셰이크 막툼 빈 버티 알 막툼이 바니야스 부족에서 800명을 이끌고 두바이를 공식적으로 세웠고, 현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토인 세컨드 사우디 스테이트에서 살기 시작했다. 바니야스 부족의 알 파사 씨족 역시 두바이 크리크에서 막툼을 따라 떠났다. 1892년에는 영국이 두바이를 지켜준다는 명분하에 독점 조약을 체결했고 1971년 아랍에미리트 연방에 가입할때까지 영국의 통제하에 있었다. 두바이는 지리학상으로 중요한 곳에 위치하면서 20세기가 시작된 이후로 중요한 무역 허브 중심지로 성장했고, 이미 중동에서 중요한 항구가 되었다.

오늘날 두바이는 중동과 페르시아 만 지역의 문화 중심지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대도시로 떠오르고 있다.[4] 또 화물과 여객 교통의 중심지이다. 두바이의 경제는 석유 산업으로부터 발전하기 시작했지만, 계속해서 사업을 해온 결과 현재는 관광, 항공, 부동산, 금융 서비스 등이 경제를 이끌고 있다.[5][6][7] 최근에는 혁신적인 대형 건설 프로젝트와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를 개최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있다. 도시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더 월드, 팜 아일랜드, 워터프런트와 같은 사람이 만든 인공섬, 초고층 호텔, 세계에서 가장 큰 쇼핑몰 두바이 몰,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 부르즈 할리파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관심이 증가하면서 공사 중 남아시아 노동자들의 인권문제와 노동이 문제가 되고 있다.[8]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로 세계 경제시장이 침체되면서 두바이 역시 2008년부터 2009년까지 큰 타격을 입었다.[9] 그러나 2013년 옥스퍼드 비지니스 그룹의 조사에 따르면 주변 토후국들이 도와주면서 점차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10]

2019년 두바이는 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도시 22위에 올라 중동 지역 도시에서는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11][12] 두바이는 중동 지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자주 선정되는데, 미국 글로벌 컨설팅 회사 머서는 2011년 중동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했다.[13] 2012년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의 세계 도시 경쟁력 지수에서 55.9점을 얻으며 40위에 올랐다. 2013년 미래 도시 경쟁력 지수에서 인덱스는 2025년 두바이가 23위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14] 좋은 도시이다

2021년 두바이에 중동지역 최초의 엑스포가 열렸다. 원래는 2020 두바이 엑스포 이지만 코로나19에 의해 1년이 늦춰지었다.

어원 [ 편집 ]

1820년대 두바이는 영국 역사가들로부터 Al Wasl라고 불렸다. 아랍에미리트의 문화사와 사람들의 말로 전해지는 구비로만 몇 개의 기록만 남아 있을 뿐 민속과 신화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아랍에미리트의 문화, 역사 연구원 Fedel Handhal에 따르면 두바이라는 단어는 내륙에 있는 두바이 크리크가 느리게 흐른다는 뜻인 Daba(두바이어로 살살 움직인다는 뜻의 Yadub의 파생어)에서 왔다고 한다. 시인이자 학자 아흐마드 모하마드 오바이드 역시 같은 단어에서 온 것으로 보고있지만, 메뚜기에서 온 지명 일 수도 있다고 한다.[15]

역사 [ 편집 ]

많은 지역에서 아랍에미리트의 초기 주민들에 의해 석기 시대 유물이 발견되었다.[16] 이 지역의 많은 고대 도시들은 동방과 서방 세계를 잇는 중계 무역지로 알려져 있다. 두바이 인터넷 시티 하수관 공사 중 기원전 7세기 맹그로브 습지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 지역은 5,000년 전에 사막화되어 예전 해안지대는 내륙으로 넓어져 오늘날의 해안선을 이루기에 이르렀다.[16][17] 옛 이슬람 도자기는 3, 4세기부터 발견되었다.[18] 이슬람이 들어오기 전 이 지역 사람들은 바지르(Bajir)또는 바자(Bajar)라고 하는 숭배사상을 믿고 있었다.[18] 비잔틴과 사산(페르시안) 제국이 전성기를 이룩했을 시대에 두바이 지역 대부분은 사산제국이 통치했다. 동부 이슬람 세계의 우마이야 왕조 칼리파가 동남쪽 아라비아를 침공하며 사산 제국을 몰아내면서 이슬람이 퍼지게 된다. 알 주메이라(주메이라) 지역에 있는 두바이 박물관 동굴에서는 우마이야 시대의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19]

두바이 최초의 기록은 1095년 아랍계 안달루시아 출신 지리학자 아부 압둘 알 박리의 Book of Geography에서이다. 1580년 베네치아 진주 상인 가스페오 발비가 이 지역을 다녀간 뒤 두바이(당시 표기는 Dibei)의 진주 산업을 알렸다.[19] 1799년 이후 두바이는 점점 도시로 알려지기 시작했다.[20] 19세기 초 바니야스 부족 중 알 아부 팔라사 씨족집단(하우스 오브 알 팔라시)이 두바이를 세웠고, 1833년까지 아부다비 의존도가 컸다.[21] 1820년 8월 1일 두바이의 셰이크와 다른 토후국의 셰이크들은 영국 정부와 “해상무역조약”을 체결했다.[16] 1833년 부족의 불화에 따라 바니야스 부족의 알 막툼 가문(하우스 오브 알 팔라시의 후손)은 리와 오아시스를 거점으로 남서쪽 아부다비와의 합의하에 먼저 정착했던 아부 팔라사 씨족을 아무런 저항없이 몰아냈다.[21]

1892년 두바이는 영국과 페르시아 만에서 러시아, 프랑스, 독일의 공격을 보호해준다는 “독점 조약”을 체결했다.[21] 그러나 1800년대 두 번의 대재앙이 들이닥쳤는데, 하나는 1841년 버두바이 지역에 천연두라는 역병이 발생했으며 이곳 주민들을 디에라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1894년에는 디에라 지역에 대형 화재가 발생하면서 거의 모든 집이 소실되었다.[22] 그러나 도시의 지리적 위치를 이용해 각국 상인들을 유치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다했다. 두바이 국왕은 외국 무역상인들을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쳤는데, 당시 중동 지역 무역의 중심지였던 샤르자와 반다르에렝게로부터 상인들을 끌어오기 위해 거래 과세 등급을 낮췄다. 페르시아 상인들은 두바이를 자연스레 알게 되면서 페르시아 만을 건너와 정착한다. 그러나 여전히 오늘날 두바이 크리크에서 다우배를 타고 에렝게와 무역을 하고 있었고, 이들은 남서부 페르시아 바스타크 지역에 정착 해 이 지구를 바스타키야라고 불렀다.[22][23]

두바이의 지리학상 이란에 가까워 중요한 무역 거점 도시였다. 주로 이란에서 온 외국 상인들이 잠시 쉬기위한 항구 도시로, 이 상인들 중 대부분이 두바이에 정착했다. 20세기가 시작되면서 중요한 항구도시로 성장했다.[20] 1930년대까지만 해도 천연진주를 수출하는 도시로 유명했다. 진주 산업은 세계 1차 대전을 거치면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피해를 입었고, 1930년대 대공황으로 인해 또 다시 피해를 입었다. 진주 산업이 무너지면서 두바이는 깊은 불경기에 빠졌고 주민들은 굶어죽거나 페르시아 만 주변 지역으로 떠났다.[16]

1960년대 두바이 디에라의 알 라스 지역.

두바이는 아부다비와 설립 초기부터 끊임없이 사이가 좋지 않았다. 1947년 두바이와 아부다비 사이에 북쪽 영토를 놓고 국경 분쟁이 일어났고, 전쟁으로 이어졌다.[24] 영국의 중재로 라스 하시안 해안에서 동남쪽으로 영토가 확장되면서 전쟁은 임시 휴전되었다.[25] 1950년대 영국의 지역 관리사무국이 샤르자에서 두바이로 옮겨지면서 전기가 공급되기 시작하는 한편 전화서비스가 시작되었고 공항도 지어졌다.[26] 이후 아부다비는 수 년간의 탐사끝에 엄청난 양의 석유를 발견해냈고, 1966년 아부다비에 비하면 훨씬 적은 양이지만 두바이에서도 석유가 발견되었다. 석유 개발은 국제적인 석유 회사에게 양도하면서 인도, 파키스탄 등지에서 외국인 근로자가 대규모로 유입되었다. 1968년부터 1975년 사이 도시의 인구는 300% 이상 증가했다.[27]

1971년 영국이 페르시아 만에서 물러나면서 12월 2일 아부다비, 두바이를 포함한 여섯 개의 토후국으로 이루어진 아랍에미리트가 건국되었다.[28] 1973년에는 다른 토후국들과 함께 전국 통화인 디르함을 채택해 사용하기 시작했다.[20] 이 시기 카타르와 바레인이 개별적인 국가로 독립했다. 1973년 카타르와의 통화 동맹이 무산되었고 UAE 디르함이 토후국 사이에서 채택되었다.

1970년대 두바이는 석유와 무역으로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었으며, 레바논 내전으로 인한 피난민들이 대규모로 유입되면서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하였다.[29] 아랍에미리트를 창설한 이후에도 토후국들 사이에서 영토 분쟁은 끊임없이 일어났는데, 1979년 협의를 통해 분쟁을 끝냈다.[30] 1979년 제벨 알리 항구가 개항하였으며, 1985년 이 주변에 외국 기업들로부터 아무런 제한 없이 노동력 수입과 자본 수출을 하고자 JAFZA(제벨알리자유구역)가 개발되었다.[31]

1990년 걸프 전쟁이 발발하면서 투자자들이 돈을 회수하고 거래자들의 무역 중단으로 도시 금융에 악영향을 끼쳤지만, 정치적으로는 오히려 분위기를 바꿔놓으면서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1990년대 이후 많은 거래 업체들은 쿠웨이트는 걸프 전쟁으로 인해, 바레인은 시아파 불안 확산으로 두바이로 옮겨왔다.[23] 걸프 전쟁 중 제벨알리자유구역은 연합국의 연료를 급유하는 곳으로 이용되었고, 2003년 이라크 침공 중에도 똑같은 용도로 이용되었다. 걸프 전쟁 이후 유가가 크게 오르면서 두바이는 자유 무역과 관광에 주력을 다하고 있다.

지리 [ 편집 ]

이 동영상은 두바이가 2000년부터 2011년까지 연도별로 성장하는 것을 보여주는 영상이다. 황갈색은 사막, 바다는 검은색, 식물이 있는 땅은 빨간색, 도시 지역은 은색이다.

두바이 도시 지도.

두바이-샤르자-아지만 대도시권의 밤.

두바이 사막의 모습.

두바이는 아랍에미리트의 페르시아 만 연안 해수면 16m에 위치해 있다. 남쪽으로는 아부다비, 북동쪽으로는 샤르자, 남동쪽으로는 오만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해안은 페르시아 만과 맞닿아 있다. 두바이의 작은 월경지 하타는 서쪽으로는 아지만, 북쪽으로는 라스알카이마, 그리고 오만 세 지역에 둘러쌓여 있다. 두바이는 수리적 위치로 에 있고 1,588 mi2 (4,110 km2)에 걸쳐 펼쳐져 있다. 간척 사업을 시작하기 전 면적은 1,500 mi2 (3,900 km2)였지만 간척 사업을 하고나서 현재와 같은 면적으로 늘어났다.

두바이는 아라비아 사막 바로 위에 펼쳐져 있다. 두바이의 지형은 아랍에미리트의 남쪽 일부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데, 남쪽 대부분 풍경은 자갈 사막인데 반해 두바이는 모래 사막이 주를 이룬다.[32] 모래에서 조개 껍데기와 산호를 찾아 볼 수 있으며, 깨끗한 하얀색이다. 도시의 동쪽에 있는 사브카로 알려진 소금으로 이루어진 연안 평지는 모래언덕의 남북을 이어준다. 동쪽 끝에는 산화철이 더해져 빨간색을 띄는 모래 언덕이 많다.[27] 평평한 모래 사막을 지나 서쪽으로가면 하타와 오만 국경에 하자르 산맥이 있다. 하자르 산맥의 서쪽은 매우 건조한데, 들쑥날쑥하고 험난한 이 산맥은 1,300 미터 (4,265 피트)의 높이를 자랑한다. 두바이에는 자연적인 강이나 오아시스가 없다. 그러나 자연적인 작은 하천 두바이 크리크를 대형 선박이 다닐 수 있도록 깊게 준설했다. 서쪽 하자르 산맥에는 많은 협곡과 물웅덩이가 있다. 두바이 남쪽은 많은 사구가 펼쳐져있고, 룹알할리 사막으로 이어진다. 지질학적으로 두바이는 자그로스 단층이라는 지진 단층선과 가까워 매우 안정된 지질에 위치하고 있지만, 아랍에미리트에서 200 킬로미터 (124 마일) 밖에 떨어져있어 충분히 두바이에 지진 영향을 받을 수 있다.[33] 또한 전문가들은 페르시아 만은 쓰나미가 생길만큼 충분한 깊은 수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쓰나미의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한다.[33]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모래 사막은 야생 풀과 대추야자의 서식지가 되어준다. 도시의 동쪽 사브카 사막에는 히아신스가 자라며 서쪽 알 하자르 산맥 주변 평야에서는 아카시아와 프로소피스 시네라리아 나무가 자란다. 대추야자, 님과 같은 고유 나무종 뿐만 아니라 유칼리나무와 같은 수입종도 두바이의 자연 공원에서 자란다. 후바라 능에, 줄무늬하이에나, 카라칼, 사막여우, 매, 아라비아영양은 두바이 사막에서 흔한 야생동물들이다. 두바이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회유하는 경로로 320종이 넘는 철새들이 봄과 가을에 이곳을 거쳐간다. 해양에는 다금바리의 한 종 하모르를 포함해 300종 이상의 물고기들이 서식한다. 이 외에 열대어, 해파리, 산호, 듀공, 돌고래, 고래, 상어 등 열대 해안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생물들도 서식하고 있다. 또한 멸종 위기에 처한 대모, 푸른바다거북 등 다양한 거북 종류가 서식하고 있다.[34][35]

두바이 크리크는 도시의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지난다. 도시의 북동쪽은 디에라가 위치하고 있고 그 측면에는 샤르자 남쪽에는 알 아위르가 있다. 디에라 남부에는 두바이 국제공항이 있으며 북쪽 페르시아 만에는 인공섬 팜 디에라가 있다. 두바이 부동산 붐의 대부분은 두바이 크리크의 서쪽 주메이라 해안선을 따라 집중되고 있다. 포트 라시드, 제벨 알리, 부르즈 알 아랍, 팜 주메이라와 같은 비지니스 베이 자유구역은 모두 서쪽 해안선에 위치하고 있다.

기후 [ 편집 ]

두바이의 기후는 더운 사막 기후이다. 여름에 두바이는 매우 덥고, 바람이 거세며, 습하다. 평균적으로 최고 온도는 42 °C (108 °F)이며, 밤사이 최저 기온은 29 °C (84 °F)이다. 대부분 일년내내 맑다. 겨울의 평균 최고 온도는 23 °C (73 °F)이고 밤사이 최저 기온은 14 °C (57 °F)이다. 강수량은 지난 수 십년간 매년 250 mm (9.84 in)씩 증가하고 있다.[36] 두바이의 여름은 많은 것들을 불편하게 할 정도로 매우 높은 습도로 잘 알려져 있다.[37] 다만, 두바이의 강수량이 급증하게 되면 두바이의 기후는 스텝 기후 대역으로 편입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으로 점쳐진다.

두바이의 기후 월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년 최고 기온 기록 °C (°F) 31.6

(88.9) 37.5

(99.5) 41.3

(106.3) 43.5

(110.3) 47.0

(116.6) 46.7

(116.1) 49.0

(120.2) 48.7

(119.7) 45.1

(113.2) 42.0

(107.6) 41.0

(105.8) 35.5

(95.9) 49

(120) 평균 최고 기온 °C (°F) 24.0

(75.2) 25.4

(77.7) 28.2

(82.8) 32.9

(91.2) 37.6

(99.7) 39.5

(103.1) 40.8

(105.4) 41.3

(106.3) 38.9

(102.0) 35.4

(95.7) 30.5

(86.9) 26.2

(79.2) 33.4

(92.1) 일 평균 기온 °C (°F) 19.0

(66.2) 20.0

(68.0) 22.5

(72.5) 26.0

(78.8) 30.5

(86.9) 33.0

(91.4) 34.5

(94.1) 35.5

(95.9) 32.5

(90.5) 29.0

(84.2) 24.5

(76.1) 21.0

(69.8) 27.5

(81.5) 평균 최저 기온 °C (°F) 14.3

(57.7) 15.4

(59.7) 17.6

(63.7) 20.8

(69.4) 24.6

(76.3) 27.2

(81.0) 29.9

(85.8) 30.2

(86.4) 27.5

(81.5) 23.9

(75.0) 19.9

(67.8) 16.3

(61.3) 22.3

(72.1) 최저 기온 기록 °C (°F) 6.1

(43.0) 6.9

(44.4) 9.0

(48.2) 13.4

(56.1) 15.1

(59.2) 18.2

(64.8) 20.4

(68.7) 23.1

(73.6) 16.5

(61.7) 15.0

(59.0) 11.8

(53.2) 8.2

(46.8) 6.1

(43.0) 평균 강수량 mm (인치) 18.8

(0.74) 25.0

(0.98) 22.1

(0.87) 7.2

(0.28) 0.4

(0.02) 0.0

(0.0) 0.8

(0.03) 0.0

(0.0) 0.0

(0.0) 1.1

(0.04) 2.7

(0.11) 16.2

(0.64) 94.3

(3.71) 평균 강수일수 5.4 4.7 5.8 2.6 0.3 0.0 0.5 0.5 0.1 0.2 1.3 3.8 25.2 평균 상대 습도 (%) 65 65 63 55 53 58 56 57 60 60 61 64 60 평균 월간 일조시간 254.2 229.6 254.5 294.0 344.1 342.0 322.4 316.2 309.0 303.8 285.0 256.6 3,511.4 출처 1: 두바이 기상청[38] 출처 2: climatebase.ru (extremes, sun),[39], NOAA (습도, 1974-1991)[40]

정부와 치안 [ 편집 ]

두바이의 정부는 입헌군주제 체제 안에서 움직이며 1833년이후 알 막툼가 하에 통치되고 있다. 현재 통치자 무하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은 아랍에미리트의 부통령이자 수상이고 유니온 최고 위원회(SCU)의 일원이다. 두바이는 아랍에미리트의 연방 최고 입법 기구 연방평의회(FNC)에 8명씩 선출된다.[41]

두바이 시청(DM)은 두바이의 통치자 라시드 빈 사에드 알 막툼에 1954년 시민들의 서비스와 지역 시설 유지를 위해 도시 계획에 포함돼 지어졌다.[42] 시청은 함단 빈 라시드 알 막툼이 의장이 맡고 있으며, 도로부, 통계부, 환경 및 공중위생부, 재무부 등 여러 부서로 나뉘어 있다. 2001년 두바이 지자체는 도시 웹 포탈[43]을 통해 도시 서비스 40개를 제공하는 전자 정부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2001년 10월부터 13개 서비스를 시작했고 나머지 서비스들은 차후에 이용이 가능하다고 알렸다.[44] 두바이 지차제는 도시의 위생 시설과 사회 기반 시설 등의 책임도 맡고 있다.[45]

법 집행 [ 편집 ]

두바이 경찰은 1956년 나이프 지역에서 설립되었고, 토후국의 법집행 관할권을 가지고 있다. 경찰은 두바이의 통치자 무하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의 지휘 아래 하에 있다.

두바이와 라스알카이마는 아랍에미리트의 연방 사법 체제와 같지 않은 유일한 토후국들이다.[46] 두바이의 사법원은 제1심 법원, 상소 법원, 파기원으로 구성되어있다. 민사 재판의 제1심 법원은 모든 시민의 의견을 수용하며, 형사 재판의 경우 경찰 민원에서 발생한 의견만 수용하며 이슬람교도 사이에서 발생한 문제는 샤리아 법원에서 책임을 지고 있다. 이슬람교도가 아닌 경우 샤리아 법원에 전혀 출두하지 않는다. 파기원은 토후국 최고 법원이며 법률 문제에만 참여한다.[47]

두바이 도로교통 당국은 교통을 유지하기 위해 길거리에 사람들이 교통 규칙을 준수하는 것을 보장하기 위해 규칙이 잘 정의된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런 규칙을 어길시 무거운 벌금을 물어야 하며 벌금 목록은 두바이 경찰 공식 웹사이트에서 찾을 수 있다. 자신에게 부과된 벌금도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온라인을 통해 벌금을 납부할 수 있다.[48]

인구 통계 [ 편집 ]

연도별 인구 연도 인구 ±% 1822[49] 1,200 — 1900[50] 10,000 +733.3% 1930[51] 20,000 +100.0% 1940[49] 38,000 +90.0% 1960[52] 40,000 +5.3% 1968[53] 58,971 +47.4% 1975[54] 183,000 +210.3% 1985[55] 370,800 +102.6% 1995[55] 674,000 +81.8% 2005 1,204,000 +78.6% 2010[56] 1,905,476 +58.3% 2015[57] 2,446,675 +28.4% 2019[58] 3,355,900 +37.2% c-census; e-estimate

민족과 언어 [ 편집 ]

두바이 통계 센터의 인구 조사에 따르면 2009년을 기준으로 두바이의 인구는 남자 1,370,000여 명, 여자 401,000여 명으로 총 1,771,000여 명이다.[59] 지역의 면적은 497.1 평방 마일 (1,287.5 km2)이다. 인구 밀도는 408.18/km2로 전국 평균의 8배 높다. 두바이는 나라에서는 두 번째로 물가가 비싼 도시이며, 세계에서는 20번째로 물가가 비싼 도시이다.[60]

2005년을 기준으로 토후국의 인구 17%는 아랍에미리트 자국민이며 나머지는 외국인들로 구성되어 있다. 외국인 인구(아랍에미리트 총 인구의 71%)의 85%는 아시아 출신으로, 주로 인도인(51%), 파키스탄인(16%)이다. 이 외에 방글라데시아인 (9%), 필리핀인 (3%)도 상당수를 이루고 있고 소말리아인도 30,000만 명으로 상당히 큰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온 공동체들이 많이 있다.[61][62] 소문에 따르면 인구 4분의 1은 자신의 조상을 추적하면 이란인이 나온다고한다.[63] 게다가 집단 노동 숙소에 살고있는 인구의 16%(288,000만 명)는 민족이나 국적이 확인되지 않았으며 주로 아시아인일 것이라고 보고있다.[64] 두바이 서쪽 거주지에는 10만 명이 넘는 영국 출신자들이 거대한 집단을 이루고 있다.[65] 평균 연령은 27세이고, 2005년 사망률은 1%일 때 출생률은 13.6%를 기록했다.[66]

아랍어는 아랍에미리트의 공식 공용어이다. 아랍어의 걸프지역 방언은 두바이 사람들 사이에서 흔한 언어이다.[67] 영어는 두 번째로 많이 사용되는 언어이다. 이 외에 이민으로 인해 많이 사용되는 언어로 우르두어, 힌두어, 페르시아어, 벵골어, 말레이어, 툴루어,[68] 타밀어, 칸나다어, 싱할라어, 텔루구어, 타갈로그어, 중국어 등이 있다.[69]

종교 [ 편집 ]

아랍에미리트의 임시 헌법 제7조에는 이슬람이 국가의 공식 종교라는 것이 명시되어 있다. 모스크의 95%와 이맘에게는 정부에서 보조금을 주고 있으며 나머지 5% 모스크는 사유 재산이다. 몇몇 큰 규모의 모스크는 개인 제단을 가지고 있다.[70]

또 기독교, 힌두교, 시크교, 바하이, 불교도 많은 신자들을 두고 있으며 이 외에 도시에는 여러 종교 집단이 존재하고 있다.[71] 이슬람교도가 아닌 종교집단도 예배당을 가질 수 있는데, 정부로부터 무상 토지가 주어줘 건물 건설 승인과 자유롭게 종교 실천이 가능하다. 소유 건물이 없는 집단은 개인 집이나 다른 종교 집단 시설을 사용한다.[72] 이슬람교도가 아닌 종교 집단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것은 허용되지만, 개종시키려 하거나 종교 문학을 배포하는 행동은 형사고발, 징역, 이슬람교를 모욕한 행위로 추방하는 등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70] 또 이슬람교도들은 돼지고기와 술을 먹지 않지만 라마단 기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도시 경관 [ 편집 ]

두바이의 스카이라인.

경제 [ 편집 ]

아랍에미리트 연방은(이하 UAE) 산유량이 세계 5위권에 드는 산유부국이나, UAE 석유 매장량의 95%는 아부다비(أبو ظبي)에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1966년 유전이 발견되었을 당시부터 두바이는 석유의 부존량이 바닥을 드러낼 머지않은 미래에 대비해야 했다.

아라비아 만의 작은 항구도시였던 두바이는 석유 수출에서 발생하는 오일달러를 기반으로 물류허브, 나아가 비즈니스와 관광허브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직후 빈약한 기반 위에 부동산 개발 위주의 개발과 성장은 주춤했으나, 전열을 가다듬은 두바이의 성장은 계속되고 있다.

교통 [ 편집 ]

두바이의 교통으로는 두바이 메트로, 두바이 국제공항, 버스, 택시 등이 있다.

자매도시 [ 편집 ]

같이 읽기 [ 편집 ]

각주 [ 편집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UAE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다른 뜻에 대해서는 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다른 뜻에 대해서는 UAE (동음이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아랍에미리트 연합국(아랍어: دولة الإمارات العربية المتحدة‎ 다울라툴 이마라툴 아라비야툴 무타히다[*] , 영어: United Arab Emirates), 약칭 아랍에미리트 또는 UAE은 서남아시아의 아라비아 반도 남동부에 있는 전제군주제하의 대통령제(사실상 입헌군주제)국가로, 7개 토후국(아부다비 토후국, 두바이 토후국(두바이), 샤르자 토후국, 아지만 토후국, 움알쿠와인 토후국, 라스알카이마 토후국, 푸자이라 토후국)으로 이루어진 연방 국가이다. 각각의 토후국들은 서로 다른 국왕들에 의하여 통치되며, 이 국왕들 중 한 명이 아랍에미리트 전체의 대통령으로 선출된다.[1] 아랍에미리트는 사우디아라비아, 오만과 육상 국경을 접하며, 카타르, 이란과 해상 국경을 접하고 있다. 2013년 아랍에미리트의 인구는 약 920만 명이었는데, 이들 중 140만 명만이 아랍에미리트인이었고, 나머지 780만 명은 외국에서 들어온 노동자와 외국인들이다.[2]

현재 아랍에미리트 지역에 인류가 거주하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12만 4천년 전, 아프리카에서 발원한 원생 인류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과정에서 이 지역에 정착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동기 시대에 전성기를 맞았으며, 인도의 인더스 문명, 레반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국가들과 활발히 교역하며 번영을 이루었다. 이후 사산조 페르시아가 이 지방을 점령하였고, 이들의 영향으로 이슬람교가 전파되었다. 아랍에미리트 지방은 위치가 많은 교역로들이 모였다고 지나치는 곳이었기에, 얼마 되지 않아 아랍의 상인들은 근방 지역들의 해상 무역로들을 장악하고 막대한 돈을 벌여들였다. 다만 이들의 무역 독점은 16세기 들어 포르투갈과 영국과 같은 서구 열강들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아랍에미리트는 서구와의 갈등을 몇 차례 겪은 이후, 영국과 1820년에 해상 조약을 체결하였고, 영국의 보호령으로 편입되었다. 그러다가 1971년 12월 2일에 마침내 영국에게서 독립을 이루어냈으며, 6개의 토후국들은 그 직후 아랍에미리트 연방에 가입하였으며, 라스알카이마 토후국은 1972년 2월 10일에 가입하였다.[3] 이슬람교는 아랍에미리트의 국교이자 최대 종교이다. 아랍에미리트는 세계에서 6번째로 많은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천연가스 매장량은 세계 7위이다. 아랍에미리트의 첫 대통령이었던 자예드 대통령은 인프라의 중요성을 직감하고 석유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돈을 교육, 복지, 인프라 건설 확충에 쏟아부었으며, 이것이 나중에 아랍에미리트의 발전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결과적으로 두바이와 같은 대도시들이 중동의 금융 허브로 떠올랐고, 아랍에미리트는 관광업과 금융업 등이 발전하며 이전보다는 훨씬 덜 석유와 같은 천연자원에 의존할 수 있게 되었다. 수도는 아부다비로서, 아랍에미리트의 정치, 산업, 문화의 중심지이다. 국내 최대 도시는 두바이이다. 아랍에미리트는 걸프 협력 회의 창립 회원국이며, 아랍 연맹의 회원국으로, 국제 연합, 이슬람 회의 기구, 석유 수출국 기구, 세계 무역 기구에도 가입하며 지역 강국으로서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역사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아랍에미리트의 역사 입니다.

이슬람 정착 이전 현재의 아랍에미리트 지역에는 아랍족들이 부족을 구성하며 살고 있었다.

무함마드의 후계자인 칼리프가 지배할 때 이슬람이 이 지역에 실히 정착되었으나 페르시아 만 건너 이란의 영향으로 시아파가 침투하였다. 16세기에 포르투갈이 지배했으나 17세기에 영국이 포르투갈을 몰아내고 점차 이 지역을 보호령화시켰다. 그러나 번영국은 오직 자신을 제외한 외세 세력들이 아랍에미리트에 관여하지 못하게만 하는데에 그쳤고, 토후국 끼리의 내정에는 거의 간섭하지 않았기에 토후들은 모두 국내 지배를 자유로이 할 수 있었다.

영국 지배 [ 편집 ]

18세기까지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활동하던 해적들이 유럽 국가의 선박들을 자주 습격했기 때문에 해적 해안(海賊 海岸, Pirate Coast)이라고 불렀다. 이 지역의 토후들과 해적들이 하도 영국의 상선을 약탈하는 일이 잦자, 참다 못한 영국이 군대를 파견하였으며 토후국들은 ‘서양의 상선을 영구적으로 공격하지 않는다’라는 각서를 쓰고 영국의 보호령으로 들어갔다. 1820년 1월 8일 영국과 아라비아 반도의 셰흐들 사이에 체결된 해상 조약에 따라 휴전 오만이 수립되었고 1853년에는 영국과의 항구적인 해상 휴전 조약이 체결되었다.[4] 원래 영국은 사막과 모래뿐이었던 당시의 아랍에미리트 지방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나, 이후 아랍 지역에서 석유와 유전이 대규모로 발견되자 이의 중요성을 인지한 영국은 이를 대대적으로 탐사하여 막대한 부를 끌어가려 하였다. 허나 1966년에 이르자 영국도 세가 기울어 더이상 효과적으로 아랍 지역을 통치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인하게 되었으며, 영국군도 아랍 현지 반발 세력들을 제압하기에는 너무나 넓게 펴져 있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1968년에는 해럴드 윌슨 총리가 아랍 지역을 점차 독립시키겠다는 정부의 입장을 발표했고, 1971년에 에드워드 히스 총리가 이를 재확인하였다. 다만 이같은 결정이 공식적으로 발표된 후, 영국의 보호 아래 권력을 누리고 있던 아부다비의 유력자들은 영국의 결정을 번복하려 시도하였으나, 노동당이 권력을 잡고 있던 영국은 이를 거부하였다.[5] 이후 영국이 최종적으로 아랍 지역에서 철수할 것이라고 발표하자, 아랍 지역의 9명의 토후들은 서로 모여 연합체를 구성하려 하였으나, 내부간의 불화 때문에 제대로 결정한 것이 없었다. 이 때문에 영국군이 그해 12월에 철수한다고 하는 통보가 왔음에도 아랍 현지에서는 제대로 된 정부 구성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독립의 날이 점차 가까워지자, 아랍 지역 내부에서도 무정부 상태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었다. 게다가 이란의 무장 집단이 걸프 만 하구에 상륙, 섬을 강탈하고 현지인들을 쫓아내는 일을 벌였는데, 영국군도 이를 그저 지켜만 보고 있으며 혼란은 더욱 가중되었다. 이 집단들은 아부 무사 섬에도 접근하였으나,[6] 그 곳의 토후가 이란과 빠른 협상을 벌여 1년에 3백만 달러를 내고 임차해주기로 결정하며 혼란이 일단락되었다. 그와중에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부다비의 수로 사용권을 요구하였다.

본디 바레인과 카타르는 아랍에미리트에 포함되어 독립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바레인은 1971년 8월에, 카타르는 9월에 독립하며 아랍에미리트와는 다른 독자노선을 갔다. 한편 영국과 아랍 셰흐들 간의 조약은 1971년 12월에 만료되었고, 아랍인들은 그해 12월 2일에 완전한 독립을 이루었다. 1971년 12월 2일에 6명의 토후국들이 모여 새 국가의 이름을 ‘아랍에미리트(United Arab Emirates)’로 하기로 결정하였다. 1972년에는 7명의 토후들이 임명한 40명의 위원들로 구성된 연방국가위원회가 창설되었고 1971년 12월 6일에 아랍 연맹에, 12월 9일에는 국제연합에 가입하였다.[7] 아랍에미리트는 걸프 협력회의의 창립국으로 참여하였으며, 아부다비에서 첫 회의를 개최하며 국제 무대에 데뷔하였다.

19세의 아부다비 소년이었던 ‘압둘라 모하메드 알 마이나’가 1971년에 공식적인 아랍에미리트 국기를 제작하였다. 아랍에미리트의 국기는 아랍의 상징색인 붉은색, 검은색, 초록색, 흰색이 담겼으며, 다른 토후국들이 연합하여 미래를 위해 나아간다는 의미를 담았다. 1971년 12월 2일에 공식 채택되었으며, 알 마이나는 후에 체코에 아랍에미리트 대사로 파견되었다.

독립 이후 [ 편집 ]

아랍에미리트는 2001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준동하는 탈레반, 2003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과 맞서기 위하여 미국과 군사적 동맹을 맺었고, 막대한 무기를 수입하며 군사력을 증강시켰다. 또한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서 일어나는 테러와의 전쟁에도 참가하기도 하였다. 1994년에는 미국과 방어 조약을 맺었으며, 몇년 후에는 프랑스와도 방어 조약을 맺으며 군사적으로 협력도를 끌어올렸다. 2008년 1월에는 프랑스와 조약을 맺어 아부다비 인근에 영구적인 프랑스 군기지 주둔을 허가하기도 하였고, 2011년 3월에는 리비아에서 벌어지는 원정에 군인들을 파견하기도 하였다.

2004년 11월 2일, 아랍에미리트의 첫 대통령이었던 셰이크 자이드 빈 술탄 알나하얀이 사망하였다.[8] 이후 할리파 빈 자이드 알나하얀이 새로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아랍에미리트는 헌법에 의거하여 각 토후국들의 국왕, 즉 칼리파들을 대통령으로 선출한다. 이후에는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히얀이 아부다비의 왕세제로 아부다비의 칼리파직을 승계하였다. 2006년 1월에는 두바이의 국왕이자 총리였던 막툼 빈 라시드 알막툼이 사망하였고,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이 아랍에미리트의 총리직과 두바이 국왕직을 모두 승계하였다.

할리파 빈 자예드 알나히얀 대통령

정치 [ 편집 ]

아랍에미리트는 연방 입헌군주국으로, 7개의 세습 왕정 체제가 모여 셰흐가 최고 수장으로 통치하는 독특한 정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의 중앙정부의 최고 의사결정기관은 아부다비, 두바이, 샤르자, 아지만, 움알쿠와인, 라스알카이마, 푸자이라의 토후들로 구성된 연방최고회의(Federal Supreme Council)이다. 다만 토후국들의 자치를 보장하기 위하여 아랍에미리트 연방정부의 관할은 오직 연방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일에만 한정되어 있으며,[9] 연방정부는 각각 토후국들에게서 일정한 비율로 세금을 걷어 국정을 운영한다. 아랍에미리트는 자국의 토후들을 이슬람의 칭호인 에미르 대신 셰흐라는 칭호로 부른다. 셰흐의 칭호는 부족 중심으로 나뉘어 있던 아라비아 반도의 전통이 현재까지 내려온 산물인데, 당시 아라비아에서 셰흐는 지도자, 연장자, 혹은 부족장을 의미했는데 이 것이 아직까지도 살아남아 현재 아랍에미리트 토후국들의 공식적인 칭호로 자리잡은 것이다.

아랍에미리트의 대통령과 총리는 연방최고회의에서 선출된다. 보통 아부다비의 셰흐가 대통령직을 맡으며, 두바이의 셰흐가 총리직을 맡는다. 아랍에미리트 역사상 1번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총리들이 부통령직을 겸임하기도 한다. 자예드 빈 술탄 알나히얀은 아랍에미리트의 국부(國父)이며, 2004년 11월 2일에 세상을 하직하기 전까지 아랍에미리트의 대통령직을 맡았다. 그가 죽은 직후 최고회의에서는 그의 아들인 칼리파 빈 자예드 알나히얀을 새로운 대통령으로 선출하였다.

아랍에미리트 연방정부는 삼권분립에 기초하여 3개의 부로 나뉘어 있다.

입법부 : 크게 둘로 나뉘어 있는데, 연방최고회의(Federal Supreme Council)가 중추적 기능을 맡으며 연방평의회(Federal National Council)가 이를 보좌하는 역할을 한다.

: 크게 둘로 나뉘어 있는데, 연방최고회의(Federal Supreme Council)가 중추적 기능을 맡으며 연방평의회(Federal National Council)가 이를 보좌하는 역할을 한다. 행정부 : 국가수반인 대통령이 군권을 가지며, 그 외의 총리들과 각부 장관들로 이루어져 있다.

: 국가수반인 대통령이 군권을 가지며, 그 외의 총리들과 각부 장관들로 이루어져 있다. 사법부 : 대법원과 하부 연방법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내각은 연방의 총리가 제청하여 연방최고회의에서 선출하며, 법안의 발의 및 연방정부의 예산승인 및 연방정부의 감독을 수행한다. 에미리트들 간의 권력구조에 따라 각부 장관을 배분하는데, 아부다비가 외교, 내무, 정보 등 6명의 장관들을 선출하고 두바이와 샤르자가 각각 국방, 재정, 경제, 무역 등을 나누어 가진다. 푸자이라, 라스 알 카이마가 2개씩, 움알쿠아인이 1명을 배정받는다. 각료회의(Council of Ministers)은 행정부의 최고 기구로, 대통령, 총리, 부총리 등으로 이루어져 현재 총 22명의 각료들이 있다. 국방장관은 부통령 겸 총리가 겸임하며, 국무를 담당하는 장관은 금융과 산업 담당, 내각 담당, 외교 담당, 연방 담당 장관들이 있다.

연방평의회는 입법기관의 하나이나, 그 기능은 심의(consultation)에 국한되어 있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입법권은 각료회의, 연방평의회, 최고회의가 나누어 행사하기 때문에 입법권 행사에 있어서 평의회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헌법에 따르면, 연방평의회는 총 4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는데, 의원은 헌법에 정해진 의석수에 따라 각 토후국에서 선출된다. 의석 배분은 연합 내에서의 정치 적, 경제적 영향력의 순으로 배분되므로, 아부다비와 두바이는 8석을, 샤르자와 라스 알 카이마는 6석을, 아야만, 움알쿠아인, 푸자이라는 각각 4석을 배분받 고 있다. 원래 평의회의 구성은 전적으로 각 토후국의 대표에게 일임되어 있었으나, 2005년 셰흐 노하메드 빈 라시드가 두바이의 대표가 되고, 동시에 국무총리 및 부통령으로 선출되면서 간접선거 방식으로 개편되었다. 이에 따라 각 토후국의 대표들은 배분받은 의석의 절반은 선거인단을 구성하여 선출 하고, 다른 절반은 자신이 지명하고 있다. 이러한 선거제도의 개혁은 UAE 정 치 제도에 있어서 국민의 참여를 증대시키기 위한 개혁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된 것이다. 국가 개혁 프로그램을 추진하면서 연방평의회가 좀 더 역동적인 기능을 하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 구성의 절반은 선거에 의하도록 한 것이다. 2008년 12월에 최고회의는 연방평의회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헌법 개 정을 승인했다. 헌법 제72조는 평의회 의원의 임기를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것으로 수정되었고, 제78조는 평의회의 회기를 매년 10월 3일에 시작하는 것으로 함으로써 내각과의 공조를 원활하게 하도록 수정되었으며, 헌법 제91조는 정부 가 국제 협정이나 협약에 서명하기 전에 그 내용을 평의회에 통지함으로써 평의 회가 인준하기 전에 미리 논의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하였다. 의원이 되기 위한 자격요건은 헌법 제70조에 따르면 아랍 에미리트의 국민이면서, 자신이 대표하는 토후국 거주자여야 하고, 25세 이상이어야 하고, 시민권 및 좋은 품성과 품행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읽고 쓰는 데 지장이 없어야 한다. 의원 은 2년 임기로 선출되고, 연임이 가능하며 다른 공직과 겸임이 불가능하다. 의원은 발언 및 표결의 자유가 인정되므로, 평의회 본회의나 위원회에서 행한 발언에 대해서는 검열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또한 헌법 제82조에 따르면 의원은 중범죄(flagrant delicate)를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는 회기 중에 평의회의 동의 없이 의원에 대한 형사절차가 개시되어서도 안된다. 만일 폐회 중에 의원에 대한 체포, 구속이 시행되는 경우에는 지체 없이 평의회에 보고되어야 한다. 평의회에는 의장, 제1, 2 부의장 및 2명의 감사로 구성된 사무국(Secretariat)이 존재하며, 의장 및 부의장의 임기는 평의회가 활동이 종료되거나 헌법 제88 조 제2항에 따라 해산하는 때까지이고, 감사들의 임기는 다음 정기회의 개회에 서 새로운 감사가 선출됨으로써 종료된다. 또한 평의회에는 사무총장(Secretary General)을 두고 평의회에 직접 책임을 지는 수많은 공무원들의 지원을 받도록 한다. 한편 평의회는 복무 조건과 권한을 규정하기 위한 규칙을 발할 수 있다. 동규는 의장 및 부의장, 감사의 권한, 평의회의 권한 범위를 확정하고, 그 위원회와 위원, 사무국 직원, 피고용인에 대해 규정하고, 의결 절차 등을 규정한다.[10]

헌법에 따르면 각 토후국의 대표로 구성되는 연방최고회의는 국가 내 최고의 권한을 행사한다. 즉, 최고회의에서 대통령 및 부통령이 선출되고, 헌법에 의해서 연방에 부여된 모든 사안에 관한 일반 정책의 수립, 국가의 목적을 달성하고, 구성 토후국의 공동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안건의 심의, 연방 법률 및 명령의 인준, 국제 조약 등의 비준, 대통령, 법원장, 각료회의 의장 등의 임명 승인 등을 담당한다. 각료회의의 의장은 대통령이 최고회의의 자문을 거쳐 선출한 국무총리가 된다. 연방 법률의 제·개정 절차에 있어서도 최고회의가 최종 절차인 인준을 담당하므로, 최고회의를 거쳐야만 비로소 법률로 확정될 수 있다. 최고회의의 의사결정은 다수결에 의하나,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는 2/3의 찬성 방식에 따라 결정한다.[11]

외부 전문가들은 아랍에미리트를 ‘독재 체제’로 규정하는 경우가 잦다.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아랍에미리트가 ‘현대적, 진보적인 요소를 옅게 가미한 독재 체제’라고 평한 바 있으며, 아랍에미리트는 시민권과 정치권을 평가하였을 때에도 세계에서 하위권에 속하는 나라이다. 프리덤하우스가 설문한 결과에 의하면 아랍에미리트는 ‘Not Free’, 즉 자유롭지 못한 나라이며 국경없는 기자회가 집계한 통계에서도 낮은 자유도를 기록하였다. 1997년 4월, 아랍에미리트의 대통령이었던 셰흐 자예드에게 왜 아랍에미리트에는 국민들이 직접 선거를 통하여 선출하는 고위공직자가 없냐고 질문하였을때, 자예드 대통령은 아래와 같이 답했다.

왜 우리가 반대와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체제를 도입하기 위하여 우리의 시민들을 만족시키는 현재의 전통적인 체제를 버려야 한다는 말인가? 우리의 정부 체제는 우리 고유의 종교에 기반한 체제이며, 이 것이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다. 만일 국민들이 이를 원치 않는다면, 나는 언제든지 대안에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다. 아랍에미리트 정부는 언제나 국민들에게 목소리를 내달라고 말한다. 우리는 모두 한 배에 타고 있고, 우리 모두가 선장이자 선원이다. 정부의 문은 모두에게 열려있고, 국민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신은 모두를 동등하게 창조하셨으며, 모든 이들은 선택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그 누구도 타인에게 마치 그들을 소유한 것처럼 대할 수는 없다. — 자예드 아랍에미리트 대통령

대외 관계 [ 편집 ]

아랍에미리트는 세계의 여러 나라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OPEC과 UN의 핵심 회원국이며, 걸프 협력 회의의 창립국이기도 하다. 아랍에미리트의 핵심적인 외교 정책들 중 하나는 전세계의 나라들과 적대 관계를 맺지 않으며, 협력과 무역에 기반한 상호호혜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아랍에미리트는 석유 수출을 통하여 벌어들인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인근의 무슬림 국가들에게 막대한 금력 지원을 해주고 있으며, 이는 아랍 세계와 인근 지역에서 아랍에미리트의 국제적 위상을 크게 높이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할리파 빈 자예드 알나히얀 국왕

아랍에미리트는 특히 이집트와 관계가 가까우며, 아랍 국가들 중 이집트에 가장 막대한 투자를 하는 나라이기도 하다.[12] 또한 파키스탄은 아랍에미리트를 최초로 공인한 나라들 중 하나이며, 현재 아랍에미리트의 가장 중요한 경제적, 외교적 협력국이다. 중화인민공화국과는 경제적 협력과 교류를 통하여 대단히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정치적, 문화적으로도 많은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에 소재하는 외국인들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인도인들이며, 이때문에 인도와 문화적으로 친숙하기도 하다. 1971년 영국이 아랍에미리트에서 철수할 적에, 신생 아랍에미리트 정부는 페르시아 만의 3개의 섬들을 두고 이란 정부와 영유권 분쟁을 벌였다. 아랍에미리트 정부는 이 사안을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하려 하였으나, 이란 정부가 이를 거부하였고 이 문제는 현재 진행형으로 남아있다. 다만 이같은 분쟁이 양국 간 관계의 심각한 악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는데, 이란과 아랍에미리트가 워낙 경제적, 문화적으로 교류가 깊기 때문이었다.[13] 아랍에미리트는 역사적으로도 영국, 독일과도 오래된 친선 관계를 이어왔으며, 실제로도 많은 영국인들과 독일인들이 현재 아랍에미리트에 외국인 신분으로 거주하고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아부다비의 국부 펀드인 무바달라 펀드에 조언자로 고용되어 일하기도 하였다.

아랍에미리트는 미국과 전략적으로 굉장히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전문가들은 아랍에미리트를 걸프 만 지역에서 미국의 가장 핵심적인 동맹이라 부르기도 하며, 미국은 아랍에미리트에 3개에 달하는 군기지를 두어 운용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중동에서 유일하게 미국으로 자유롭게 여행갈 수 있는 나라이며, 미국은 테러리즘 등을 방지하기 위하여 추가적으로 실시하는 검사도 아랍에미리트의 국민들에 한하여 대체적으로 하지 않는다. 2013년에는 아랍에미리트는 미국 정계에 막대한 로비를 퍼부었으며, 세계에서 미국 정계에 가장 많은 로비를 한 나라이기도 하였다. 한편 이란이 미국과의 적대적인 관계로 인하여 석유 공급의 생명선인 호르무즈 해협을 지속적으로 차단하겠다고 위협하자, 호르무즈 해협을 통하여 원유를 소송하던 아랍에미리트도 이에 위협을 느끼고 혹시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푸자이라와 아부다비를 잇는 원유 수송관을 2012년 6월에 새로 개통하였다.

아랍에미리트는 탈레반을 공식적인 아프가니스탄 정부로 인정하는 3개국 중 하나였다. 나머지 2개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이다. 아랍에미리트는 미국의 동의를 얻어 알카에다의 지도자인 오사마 빈 라덴과의 연을 끊는 것, 아프가니스탄의 헌법을 존중하는 것, 무력을 버리고 폭력을 멈추는 것,[14] 이 세가지의 조건을 들어 탈레반의 대사를 국내에 데려오려 시도하기도 하였다. 다만 탈레반은 위와 같은 세개의 조건들을 모두 거절했고, 아랍에미리트는 위의 제안을 완전히 철회하였다. 다만 2001년에 9.11 테러가 뉴욕에서 일어난 직후, 아랍에미리트는 탈레반과의 모든 공식적인 관계를 끊어버렸다.

아랍에미리트는 사우디아라비아 주도의 예멘 내정 간섭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으며, 예멘 합법 정부와 예멘 남부의 남부과도협의회(Southern Transitional Council)을 둘다 지지한다. 다만 이 사우디아라비아 주도의 동맹군들은 민간인들을 상대로 공습을 한다는 국제적인 비판을 받고 있으며, 2018년에 알나히얀이 프랑스 파리를 방문하였을 때에는 인권운동가들이 그의 동선을 따라 그를 ‘예멘에서의 전쟁 범죄와 비인간적인 살상을 저지른 자’라고 공개 비난하기도 하였다. 언론들은 아랍에미리트가 예멘의 내정을 진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예멘 내부의 알카에다 세력에게 무기를 팔아넘겨 후티군과 맞서 싸우게 조장하고 있다는 비난이 나왔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는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가 국왕으로 즉위하고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가 2017년에 왕세자로 오른 이후 급격히 가까워졌다. 2017년 6월에는 아랍 국가들과 아프리카 대부분 국가들이 카타르가 테러리즘을 공공연하게 지원하였다는 이유로 카타르와의 국교를 단절하였다. 아랍에미리트는 사우디아라비아가 2018년에 캐나다와 분쟁을 벌일 때에 사우디아라비아의 편을 들기도 하였으며, 사우디아라비아의 언론인 자말 까슈끄지가 정부에 의하여 계획적으로 살해되었을 때에도 사우디아라비아 정부의 편을 들어주었다.

대한 관계 [ 편집 ]

1980년 6월에 대한민국과 정식으로 수교하였고, 대사관은 아부다비에 있고 총영사관은 두바이에 있다. 2009년 12월 27일 대한민국에게 원자력발전소를 발주했다.[15] 한국인은 대사관 가족을 포함하여 약 3350명이 살고 있으며 인천국제공항에서 하루 1편의 두바이행(KE951) 대한항공과 하루 1편의 두바이행(EK323)에미레이트 항공, 아부다비행(EY876) 에티하드 항공 1편이 아랍에미리트로 취항한다. 그리고 최근 임종석 비서실장과 접촉을 가지며 양국간의 우호적인 관계를 과시하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아부다비와 두바이를 2018년 3월 24일부터 27일까지 국빈 방문하였다.[16]2020년 대대적으로 발발한 코로나 19 사태에서, 대한민국에서 수출한 진단키트를 먼저 받은 국가도 아랍에미리트였다.

대일 관계 [ 편집 ]

아랍에미리트는 일본과 대체적으로 우호적이며 아랍에미리트와 일본은 무역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있다.

대중 관계 [ 편집 ]

아랍에미리트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의거하여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중이지만, 중화민국의 경우 비공식적인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대 이스라엘 관계 [ 편집 ]

아랍에미리트는 아라비아반도 내에 속한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이스라엘과의 평화 협정이 체결되면서 정식으로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

대 카타르 관계 [ 편집 ]

아랍에미리트는 카타르와의 관계를 2017년 6월 단절하였다. 자세한 사항은 2017년 카타르 외교 위기 문서를 참조하라.

지리 [ 편집 ]

지리 [ 편집 ]

북쪽은 페르시아 만에 접해 있다. 바다에 접해 있으나 대부분의 지역이 사막에 위치해 있으며, 건조한 사막 기후를 보이는 곳이다. 아랍에미리트는 세계적으로 원유를 사우디아라비아만큼 많이 보유하고 있는 산유국이다.

자연 [ 편집 ]

국토의 대부분은 사막 지대이나, 페르시아 만 연안부는 평탄하고 염분이 많으며, 사우디아라비아 국경의 알아인 지방은 풍요로운 오아시스 지대이다. 북동부의 무산둠 반도 동부에는 남북 80km에 걸치는 아하다르 산맥이 있으며, 최고봉은 약 3,000m이다. 페르시아 만 연안의 해안선은 복잡하게 얽혀 있고, 바다는 멀리까지 수심이 얕고 먼 바다에는 많은 섬과 산호초가 떠 있다.

기후 [ 편집 ]

고온 건조한 사막 지대이다. 여름에는 50°C까지 올라간다.

아랍에미리트의 여인

인구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아랍에미리트의 인구 입니다.

사회 [ 편집 ]

아랍에미리트는 인구 구성 중 이주민의 비중이 매우 높은 나라로, 에미리트인은 전체 주민의 약 19%이다. 에미리트인 외의 아랍인과 이란인이 23%, 인도계를 중심으로 한 남아시아인이 50%, 동남아시아 및 유럽 등의 이주민이 8%를 차지한다.[17] 언어는 아랍어가 공용어이지만, 영국으로부터 비교적 최근에 독립했고 외국출신 이주민이 많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영어가 두루 쓰인다.

아랍에미리트의 문화는 기본적으로 아라비아의 문화에 기반하며, 페르시아, 인도, 동아프리카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건축의 경우, 아라비아와 페르시아 양식에서 영감을 받은 건축양식이 고유한 에미리트식 건축양식으로 자리잡았다. 페르시아 양식은 그 외에도 민속화, 건물 등에 큰 영향을 미쳤고, 특히 페르시아에서 전래된 바르질(Barjeel)이라고 불리는 바람창은 에미리트의 건축물들을 상징하는 양식으로 여겨진다. 이는 19세기 초, 세금을 피하여 아랍에미리트로 도망쳐 온 페르시아의 상인과 무역상들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이다.

아랍에미리트의 사회는 매우 다양하다. 아랍에미리트의 주요 공휴일은 라마단이 끝난 것을 기념하는 이드 알피트르와 12월 2일의 독립기념일 등이 있다. 남성들은 주로 토브(Thobe)라고 불리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흰색 의복을 주로 입는다. 이는 주로 직물이나 솜으로 짜여있다. 여성의 경우에는 아바야라고 불리는 몸 대부분을 덮는 검은빛 의복을 입는 경우가 많다.[18] 또한 대체적으로 수수한 의복을 정부 차원에서 장려하는데, 이는 검소함을 지향하는 이슬람 율법의 영향이다. 아랍에미리트에 있는 대부분의 쇼핑몰에서는 입구에서 격에 맞는 의복을 입고 올 것을 요구하며, 이에 맞지 않는 옷을 입거나 노출이 너무 심한 옷을 입은 사람들은 출입을 허가하지 않기도 한다. 다만 이에도 불구하고 수영장이나 해변에서는 수영복을 입는 것을 허가해 주기도 한다. 사람들이 모스크를 출입할 때에는 특히 더 보수적인 복장을 하고 올 것을 요구한다. 모스크들은 관광객들을 위하여 남성과 여성을 위한 의복을 미리 준비해주고 입구에서 돈을 받고 대여해주기도 한다.

아랍에미리트의 시문학은 8세기의 아랍 학자인 알 칼리 빈 아흐메드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아랍에미리트에서 가장 오래된 시인은 1432년과 1437년 사이에 출생한 대시인 이븐 마지드이다. 또한 가장 유명한 시인은 1880년에 태어나 1954년에 별세한 무바라크 알 오카이리, 1887년에 태어나 1959년에 죽은 알리 알 오와이스, 1905년에 태어나 1976년에 하직한 아흐메드 빈 수라옘 등이 있다.

샤리아법 [ 편집 ]

아랍에미리트는 기본적으로 이슬람 국가이며,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국가 법체계에 적용하여 광범위하게 펼친다. 샤리아는 특히 간통과 같은 중범죄에 적용되는 경우가 많으며, 그 외에도 혼전 성교, 도둑질, 음주와 관련 범죄에도 적용되어 매우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샤리아는 결혼, 이혼, 자식 양육과 같은 국민들의 일상들에도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특히 비무슬림과 무슬림들에게 모두 적용되며 심지어는 외국인들에게까지 적용되는 경우가 잦다.

아랍에미리트의 여성들은 결혼, 혹은 재혼할 때 남성 보호자의 동의를 구해야만 하며, 원래는 샤리아법으로 통용되다가 2005년 이래에는 연방법으로까지 제정되어 완전한 법적 효력을 지니게 되었다. 모든 토후국들에서는 무슬림 여성이 비무슬림 남성과 결혼하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으며, 이는 간음으로 인정되어 법률상으로 처벌받을 수 있는 중죄이다. 2012년에 실시된 조사에 의하면, 아랍에미리트 여성의 30%가 미혼이며, 이는 1995년에 실시했던 조사에서 5분의 1만이 미혼이었던 결과보다도 훨씬 더 높아진 수치이다.

공공에서 키스하는 것도 불법이며, 외국인의 경우에도 강제 추방당할 수 있다. 아부다비의 경우에서는 공공장소에서 키스를 하였다는 이유로 80대의 채찍질을 당했다. 특히 두바이의 경우, 미국의 왓츠앱을 사용하여 음성통화를 하는 것도 테러 방지를 목적으로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만일 이를 어겼을 경우에는 250,000 디르함을 벌금으로 내거나 국외로 추방당할 수 있다. 2015년 7월에는 오스트레일리아 국적의 사람들이 페이스북을 남용하였다는 이유로 강제추방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아랍에미리트에서는 동성애가 절대적인 불법이며, 국가적으로도 이를 탄압하고 있다. 2013년에는 한 국민이 ‘게이식 악수’를 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고발당한 적도 있으며, 아부다비 법 80조에 의하면 동성애는 최소 14년에 달하는 무거운 형량을 선고받을 수 있다고 나와 있다. 두바이의 경우에는 최소 10년 형에 달하는 중벌을 내린다.

2019년 아시안컵의 아랍에미리트 대표팀

스포츠 [ 편집 ]

포뮬라 원은 아랍에미리트에서 유난히 인기가 있는 스포츠이며, 그랑프리가 야스 마리나 서킷에서 매년 열린다. 경기는 저녁에 열리는데, 이는 낮에 시작하여 밤에 끝나는 첫 그랑프리였다.

아랍에미리트에서 인기있는 다른 스포츠 종목들에는 낙타 경주, 매 사냥, 승마, 테니스 등이 있다. 두바이 토후국은 두바이 골프 클럽, 에미리트 골프 클럽, 이 두 양대 주요 골프 클럽들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낙타 경주의 기수로 어린이들이 쓰이는 일이 많았는데, 이것이 국제적으로 대대적인 비난을 받자 결국 아랍에미리트도 이에 굴복하여 스포츠 경기에서 어린이들을 참가시키는 모든 행위들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하였고, 결과적으로는 현재에는 모든 스포츠 종목에서 어린이들이 참가하는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 현재 아랍에미리트에서는 어린이들을 대체하기 위하여 로봇을 사용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에서는 축구가 매우 대중적이다. 알 나스르 FC, 알 아인 FC, 샤르자 FC, 알 와흐다 FC, 샤바브 알아흘리 두바이 FC 등의 축구 팀들이 가장 유명하고 인기있는 축구 팀들이다. 아랍에미리트 축구연맹은 1971년에 설립되었고, 연맹은 설립된 이래 축구 경기를 조직하고 어린 선수들을 양성하고 선수들의 능력을 키우는 것에 온 힘을 쏟아왔다. 아랍에미리트는 1990년에 FIFA 월드컵에 이집트와 함께 참여하였으며, 굴프 컵 챔피언십에서도 2번이나 승리를 거둔 바 있다. 2007년 1월에 아부다비에서 열린 경기에서 처음으로 이겼으며, 2013년에는 바레인에서 열린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아랍에미리트에서는 2019 AFC 아시안컵을 유치하는 데에 성공하였고, 준결승전까지도 올라갔으나 결국 카타르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크리켓은 아랍에미리트에서 가장 대중적인 스포츠들 중 하나이다. 이는 남아시아 지역 협력 연합에 소속된 국가들에서 유입된 국외자들에 의한 영향이 큰데, 특히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등의 영연방 국가들의 힘이 크다. 샤르자 크리켓 연맹 스타디움은 현재까지 4개의 국제 크리켓 경기들을 유치하였으며, 아부다비에 있는 자예드 크리켓 스타디움도 국제 크리켓 경기를 예치한 바 있다. 두바이에도 2개의 크리켓 스타디움이 따로 있고, 두바이 스포츠 시티에 DSC 크리켓 스타디움이 따로 있다. 두바이는 국제 크리켓 평의회의 본부가 소재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교육 [ 편집 ]

아랍에미리트의 교육 관련 업무는 아부다비를 제외하고는 모두 교육부가 총괄한다. 아부다비의 경우에는 아부다비 교육 위원회가 자치적으로 아부다비 학교 교과과정을 심의하고 계획한다. 아랍에미리트의 학교에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로 이루어져 있다. 공립학교들은 세금으로 운영되며, 커리큘럼은 주로 아랍에미리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발전 방향에 맞추어져 있다.

공립학교에서 주로 쓰이는 언어는 당연히 아랍어이나, 영어도 제2언어로 상당히 중요한 언어로 사용되고 있다. 다만 공립학교 외에도 국제적인 후원을 받는 사립학교들이 대단히 많다. 공립학교들은 아랍에미리트 국민들에게는 전액 무료이고, 사립학교들은 질에 따라 그 비용이 천차만별이다. 아랍에미리트의 고등 교육은 아예 고등교육부가 총괄한다. 고등교육부는 아랍에미리트 국민들이 제대로 된 학부 과정을 밟고 최소 평균 수준의 학력을 지니게 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하며, 이에 힘입어 2015년 아랍에미리트의 성인 문해율은 93.8%에 육박하였다. 아랍에미리트는 국민들의 교육에 매우 관심이 많으며, 수많은 기관들과 연구회들을 설립하고 이에 돈을 쏟아부으며 관련 연구들을 진행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에서 가장 명망높은 대학은 아랍에미리트 대학이고 세계 대학순위에서 대략 421위에서 430위 정도에 위치한다. 그 다음으로는 할리파 대학으로, 세계에서 441위에서 450위의 순위이다. 그 외에는 세계에서 551위에서 600위 정도의 순위를 지닌 샤르자 대학이다.

인권 [ 편집 ]

아랍에미리트에서는 채찍질형과 투석형이 아직도 법적으로 존재한다. 이 형벌들은 이슬람교의 샤리아법에서 유래된 것으로, 2005년부터는 아예 연방법으로 제정되었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부당한 형벌을 받아 큰 피해를 입는 경우가 현재에도 공공연하게 존재한다. 프리덤 하우스의 조사에서는 아랍에미리트가 1999년 이래로 단 한번도 ‘Not Free’, 즉 자유롭지 못함 이상으로 올라가지를 못하였다.

아랍에미리트는 아랍의 봄도 무사히 버터냈다. 다만 이는 100여 명이 넘는 자유 운동가들을 감옥에 투옥하고 고문한 결과로,[19] 2011년 이후부터는 아랍에미리트 정부 차원에서 강제로 반체제 인사들을 납치하여 구금하는 일들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에미리트 국민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외국인들에게까지 적용되는 경우가 많으며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다만 아랍에미리트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이들을 납치하였다는 사실을 부정하며, 이들이 법의 통제 밖에 있는 사람들이라 규정하며 즉답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인다. 휴먼라이츠워치에 의하면 아랍에미리트 정부에 의하여 자행되는 납치와 고문은 국제적으로도 심각한 문제라고 전해진다.

아랍 인권 기구에서는 많은 피해자들을 조사하여 보고서를 발간하였는데, 이 보고서에서는 아랍에미리트 정부가 직접 나서 반체제 인사들을 납치, 고문하고 기관에서 재교육시켰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또한 구타, 전기 충격, 치료 거부 등 아랍에미리트 고문관들이 사용한 16가지의 고문 방법에 대해서도 상세히 적혀있다. 2013년에는 94명의 아랍에미리트 활동가들이 붙잡혀갔고,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죄로 판결에 회부되었다. 국제인권기구들은 이 재판이 공개되지 않고 정부의 마음대로 이루어지는 것에 대하여 비판하였으며, 이 활동가들 중 한 명의 아들은 이 재판에 대하여 트위터에 트윗을 남겼다는 이유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았을 정도였다. 현재 아랍에미리트에서 밝혀진 마지막 납치 사건은 아부다비에서 3명의 누이들이 행방불명된 사건이다. 아랍에미리트 정부는 자국민이 아닌 외국인들에게도 압박을 가하여 정부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데에 큰 노력을 쏟는다. 또한 외국인이 인권 활동을 벌일 시엔, ‘자국민과 작당하여 국가를 전복’시키려 한다고 주장하며 이도 크게 탄압하거나 강제 추방시켜버리는 경우가 잦다. 실제로 이집트 등 여러 나라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몇 년 동안 아랍에미리트에서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눈 밖에 나 며칠만에 국경 밖으로 추방된 사례가 많다.

아랍에미리트 정부는 외국인들도 납치하는 경우가 있는데, 현재 2명의 리비아인들과 2명의 카타르인들이 있다. 엠네스티는 이 카타르 국적의 남성들이 아랍에미리트에 의하여 납치되었다고 밝혔으나, 정부는 이 사실이 알려진 이후에도 피해자의 가족들에게 남성의 생사 여부에 대하여 알려주지 않았다. 또한 팔레스타인 출신의 이야드 엘 바그다디라는 인물도 있었는데, 바그다디는 유명한 블로거이자 트위터 계정 소유자였다. 허나 그는 아랍에미리트 고위층들의 심기를 거슬렸다는 이유로 경찰에 붙잡혔고, 감옥에 갇힌 후 결국 국외로 추방되었다. 바그다디는 명확한 정부가 존재하지 않는 팔레스타인 출신이었기에 제대로 이 명령에 저항할 수도 없었으며, 이스라엘과 인접한 팔레스타인령 영토로 되돌아갈 수는 없었기에 결국 말레이시아로 망명하였다. 2017년에는 아랍에미리트 정부 차원에서 프랑스인 소년이 3명의 현지인들에게 강간당한 사건도 덮으려고 하였으나,[20] 프랑스 등 외교적인 압박이 워낙 거세어 결국 이 강간범들을 체포하여 처벌하기도 하였다.

2009년 4월, 실수로 유출된 동영상에서 자예드 빈 알나히얀 전 대통령의 아들인 이사 빈 자예드 알 나히얀이 채찍, 전기 고문도구, 손톱 뽑는 기계 등을 가지고 한 남성을 고문하는 충격적인 내용이 담겨있었다.[21] 게다가 자동차를 몰고 남성의 몸 위로 반복적으로 지나가는 등 인간으로 할 수 없을 반인륜적 행위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던 것이다. 2009년 12월, 이사는 법정에 출두하였고, 그의 무죄를 주장하였다. 법정은 2010년 1월 10일에 이사의 무죄를 선언하며 종결되었다. 국제인권감시기구는 이 결정을 혹독히 비난하였고, 아랍에미리트 권력층들을 따로 수사할 수 있는 독립적인 수사기관을 만들라고 요구하였다. 심지어 미국 국무부도 이 판결에 의문과 우려를 표하였으며, ‘모든 아랍에미리트 국민들이 법 앞에 평등해야 한다’라고 밝히며 이 사건에 대하여 다시 제대로 된 심의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였다.

최근에는 아랍에미리트에서 소수를 점하는 시아파 무슬림들이 쫓겨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특히 레바논의 시아파 무슬림들이 헤즈볼라와의 연계성을 의심받아 쫓겨나는 경우가 많다. 조사 결과에 의하면 최소 4,000여 명이 넘는 시아파 무슬림들이 최근들어 강제 추방당했다고 전해진다.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심각한 성추행과 성폭행도 아랍에미리트의 심각한 문제점이다. 특히 일반인들의 주택이나 가정에서 일하는 고용 가정부들의 경우, 1980년과 2007년에 제정된 노동법들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며, 정부 차원에서 항의 시위들을 억압하며 절차 없이 구금하고 있기에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2013년의 연례 보고서에서, 엠네스티는 아랍에미리트의 비참한 인권 실태를 지적하며 집회,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비판하였다. 또한 고문, 임의적인 체포, 사형제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난을 하며 시정을 촉구하였다.

2012년, 두바이 경찰이 마약 혐의로 3명의 영국인들을 체포한 후 구타와 전기 충격으로 고문을 가한 적이 있었다. 당시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이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했고, 할리파 빈 자예드 빈 알나히얀이 2013년에 영국을 국빈 방문한 이후 2013년 7월에 3명의 구금자들은 모두 풀려났다. 2013년에는 미국 국민들과 자국민들 일부를 체포하였는데, 이는 이들이 유튜브에 두바이와 주민들을 비하하는 듯한 내용의 동영상을 업로드하였다는 이유였다. 2015년에는 외국인들이 여러 이유로 감옥에 갇히는 일들이 있었는데, 예를 들어 오스트레일리아 국적 여성이 불법 주차된 차량의 사진을 올린 후 ‘소셜미디어에 나쁜 말들을 썼다’라는 이유로 아랍에미리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이 여성은 이후 아랍에미리트에서 강제 추방당했다. 아랍에미리트에서는 동맹의 자유도 심각하게 제재를 받는다. 모든 국제 NGO들과의 연계는 무조건적으로 정부 부처의 허가를 받아야만 하며, 이 때문에 사실상 정부의 통제를 받는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정부의 허가를 받은 이후에도 정부가 반포한 가이드라인과 법률을 지켜야 하며, 모든 공공활동들과 캠페인들은 일단 정부의 허가를 받아놓고 시작하여야 한다. 2018년 7월 12일, 엠네스티는 국제 보고서를 통하여 예멘에서 아랍에미리트 정부가 운영하는 감옥들에 대한 실태 조사를 촉구하였다. 2018년 9월 10일, 아랍에미리트가 운영하는 예멘의 감옥에서 몇 수감자들이 파업을 하여 자신들의 부당한 처벌과 처우에 대하여 항의하였다. 관료들은 이 파업으로 인하여 몇몇 수감자들을 풀어주었으나, 여전히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을 억류하고 있다. 걸프 만의 인권 단체들은 아랍에미리트가 ‘순수성’을 지키기 위하여 반이슬람적 인사들을 감금, 고문하는 경우가 잦고, 가혹한 방법들을 동원하여 위협을 제거한다고 비판하였다.

종교 [ 편집 ]

종교 구성 (아랍에미리트) 이슬람 76% 기독교 12.6% 힌두교 6.6% 불교 2% 기타 1% 무종교 1%

아랍에미리트의 국교는 이슬람교이며, 최대 종교이기도 하다. 다만 정부는 공식적으로 타 종교들도 관용적으로 수용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으며, 정부 차원에서 이슬람 이외의 종교를 탄압하거나 간섭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22] 대신 아랍에미리트 정부는 이를 대가로 다른 종교 단체들도 이슬람교의 문제나 이슬람의 문제들에 간섭하는 것에 대하여 암묵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정부는 그 어떠한 형태던지 만일 그 행위가 무슬림들을 대상으로 한 개종과 선교 행위로 비쳐진다면 그 행위를 즉시 금지시킨다. 아랍에미리트에는 현재 31개의 교회가 위치하고 있으며, 두바이에 힌두교 사원이 1개 존재한다. 그 외에 시크교 사원도 1개 있고, 불교 사찰도 1개씩 있다.

2005년에 실시된 정부 조사에 의하면, 이슬람교 신자가 전체의 76%를 차지하며, 기독교가 13%이며, 그 밖의 종교인들이 11% 미만이다.[23]이슬람교와 기독교를 제외한 타 종교인들은 대부분 힌두교도들로, 아랍에미리트에 워낙 인도인 노동자들이 많이 근무하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무슬림들 가운데에서는 97%가 수니파이고, 3%만이 시아파로 대부분이 두바이나 샤르자에 거주하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교도들은 돼지고기와 술을 먹지 않지만 라마단 기간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행정 구역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아랍에미리트의 토후국 입니다.

아랍에미리트의 행정 구역

아랍에미리트는 7개 토후국으로 구성되어 있는 연합 국가이다. 이 일곱 토후국들은 아부다비 토후국, 아지만 토후국, 두바이 토후국, 푸자이라 토후국, 라스알카이마 토후국, 샤르자 토후국, 움알쿠와인 토후국이 있다. 두바이에 가장 많은 인구들이 몰려 있는데, 아랍에미리트 인구의 35.6%가 이 두바이에 몰려 산다. 아랍에미리트에서 가장 강력한 아부다비는 두바이의 뒤를 이어 31.2%의 인구가 모여 살고 있는데, 이로 인하여 아랍에미리트 전체 인구의 3분의 2가 이 두바이와 아부다비에 몰려 살고 있는 것이다.

아부다비의 면적은 67,340제곱킬로미터에 육박하는데, 이는 아랍에미리트 전역의 86.7%를 차지할 정도로 에미리트들 가운데에서도 압도적으로 거대한 크기이다. 아부다비 토후국의 해안선은 400km가 넘고, 3개의 행정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아부다비의 뒤를 이은 두바이 토후국의 해안선은 72km 정도로 뻗어있고 면적은 대략 3,885제곱킬로미터이다. 이는 아랍에미리트 전체 면적의 5% 밖에 되지 않는 면적이다. 샤르자 토후국은 대략 16km 정도의 해안선을 점유하고 있으며, 나머지 토후국인 아지만 토후국, 푸자이라 토후국, 라스알카이마 토후국, 움알쿠와인 토후국의 면적을 다합쳐봤자 3,881제곱킬로미터 밖에 되지 않는다. 다만 오만과 아지만 토후국이 공동통치하는 구역이 1군데 있고, 푸자이라 토후국과 샤르자 토후국이 공동통치하는 구역이 1군데 있다.

두바이의 스카이라인

경제 [ 편집 ]

아랍에미리트는 석유 덕분에 50년 만에 베두인들의 부족 국가에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로 급성장할 수 있었다. 아랍에미리트는 2009년에 있었던 금융 위기 때를 제외하고는 꾸준하고 인상적인 성장률을 유지해 나갔으며, 2015년부터 2019년까지는 경제 발전이 정체되며 혼란스러운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00년과 2018년 사이, 아랍에미리트의 실질적인 GDP는 연간 4%라는 높은 수치를 기록하였으며 사우디아라비아의 뒤를 이어 걸프협력회의에서 2번째로 거대한 경제 규모를 가지고 있다. 1971년과 비교해서 2013년에는 거의 경제 규모가 231배로 팽창하였다. 석유를 제외한 물품들의 거래 규모는 1981년과 비교하여 2012년에는 약 28배로 증가하였다.[24]아랍에미리트는 세계에서 7번째로 거대한 석유를 소유하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중동에서 진보적인 정책들과 정부의 효과적인 정책들로 인하여 지난 40년 만에 실질적인 GDP가 3배 넘게 증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의 아랍에미리트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국가들 중 하나이며, 1인당 GDP가 OECD 회원국들의 평균 GDP보다 80% 가량 더 높을 정도로 매우 경제적으로 풍요롭다. 다만 두바이 등 주요 핵심 도시들이 2008년 금융 위기의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점차 정체된 경제 성장을 보이고 있으며, 아부 다비나 도하와 같은 경쟁 도시들이 급격히 발달하며 과거의 영화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급격한 경제성장과 함께 인구도 상당히 증가하였다. 1975년의 인구가 55만 명 정도에 머물렀던 것에 비하여, 2018년에는 거의 1,000만 명에 달하였던 것이다. 다만 이 인구 증가는 대부분 외국에서 이주해온 외국인 노동자들로 인한 것으로, 오히려 자국민은 소수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에는 비자 제도가 매우 유동적이며 그 기간도 짧은데, 이는 노동 시장이 자국민들의 수요에 빠르게 적응하여 거시경제적인 면에서는 상당한 이점을 준다. 이는 정부가 국가의 실업률을 3% 이하로 유지할 수 있게 하는 효과를 불러오기도 한다.[25] 2014년과 2018년 사이, 음식, 교육, 정보통신, 예술, 부동산에서 아랍에미리트는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으나, 다만 건설, 전문 서비스업, 석유와 가스 사업에서는 그다지 기대에 못미치는 실적을 내었다.

또한 길바닥을 걸레로 닦는 직업이 존재한다. (구글 로드뷰 참고 : 25°11’56.1″N 55°16’27.8″E) 길바닥을 물걸레로 닦는 경제 선진국의 모습을 보여준다.

금융 [ 편집 ]

아랍에미리트는 안정적인 정치체제와 미래지향적인 정부 정책, 훌륭한 기반시설과 정보통신 네트워크 등을 기반하여 기업들에게 최적의 활동 환경을 제공해준다. 게다가 정부 차원에서 기업의 투자를 장려하고 보조금 등을 지원해주는 경우가 많아, 세계에서 가장 사업하기 좋은 나라들 중 하나로 손꼽힌다. 아랍에미리트는 세계은행그룹에 의하여 조사된 결과에 따르면 세계에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 26위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아랍에미리트는 그 외에도 국가 경쟁력 지표, 세계 행복도 지수, 세계 혁신 지수 등에서도 좋은 성적을 보인다. 2018년 아랍 청년 조사에서는 아랍에미리트가 생활의 질, 안전, 치안, 경제적 기회, 사업 벤처 등에 있어서 아랍 지역 전체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드러났으며, 다른 국가들도 배워야 할 모범으로 제시되었을 정도였다.

다만 아랍에미리트의 경제적 취약점으로는, 지나친 복지 정책으로 인한 국민들의 교육에 대한 열의 감소 때문에 발생하는 국민 수준의 하향화, 금융과 노동 시장의 한계, 지나치게 석유에 치중해있는 경제 구조, 새로운 사업을 방해하는 규제 등이 있다. 아랍에미리트 법에는 노조의 성립이 금지되어 있다. 게다가 파업권과 단체교섭권도 인정되지 않으며, 노동부는 노동자들을 강제로 일터로 내몰 수 있는 권리까지 있다. 특히 외국 이주 노동자의 경우, 파업에 참가하였을 시 모든 계약이 취소되고 강제 추방당할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는 아랍에미리트에서는 노동 문제와 관련된 법 질서가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으며, 이 때문에 정작 자국민들은 경쟁과 스트레스가 적은 공무원으로 취업하려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아랍에미리트 자국민들 중의 80%가 정부 조직, 혹은 공기업에 취업하고 있으며,[26] 대부분이 아랍에미리트 항공이나 국영기업들에 취직하여 월급을 받고 사는 신세이기도 하다.

2008년 아랍에미리트의 국내총생산(GDP)는 2,621.5억달러, 1인당 GDP는 55,028달러이다. 2008년말 인구는 476.4만명이다. 2008년중 물가상승률은 12.26%이며 경상수지는 410.9억달러로 GDP의 15.7%를 차지한다.(IMF World Economic Outlook 참고)

석유, 가스 [ 편집 ]

아랍에미리트의 경제는 전적으로 석유와 천연가스 등의 수출에 의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아랍에미리트 정부도 1980년대의 오일 파동 이전부터 경제 품목을 다원화 하려고 시도하였고, 현재는 그나마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서는 가장 수출품이 다양화된 나라로 떠올랐다. 다만 석유는 여전히 아랍에미리트 경제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유가의 파동에 따라서 아랍에미리트의 경제 성장률이 급성장하거나 급추락하는 경우가 잦다. 2018년의 경우 석유와 가스 부문이 전체 GDP의 26%를 차지하였으며, 정부가 새롭게 도입한 부가가치세가 전체 GDP의 6% 정도를 차지하며 정부에게 새로운 세원을 마련해주었다. 아랍에미리트 정부의 세입 중 36%가 석유 산업에서 걷어온 것이며, 나머지는 서비스업, 관광업 등에 의존하고 있다. 부가가치세 도입으로 인하여 아랍에미리트 정부가 큰 이득을 보기는 하였으나, 전문가들은 앞으로 아랍에미리트가 새로운 세금을 개설하여 부과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전망한다. 이는 세금이 늘어날 때마다 기업들이 국외로 탈출할 것이고, 이 것은 오히려 경제 전반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관광 [ 편집 ]

아랍에미리트의 관광업은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고, 정부 차원에서도 대대적으로 투자하는 분야들 중 하나이다. 특히 대도시 두바이는 중동에서 가장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지이며, 마스터카드의 발표에 의하면 두바이는 세계에서 5번째로 대중적인 관광지라고 전한다.[27] 두바이는 이러한 위상에 힘입어 아랍에미리트의 관광업 비중의 66%를 차지하기도 한다. 그 다음을 아부 다비가 16%로 이으며, 샤르자가 10%로 그 뒤를 잇는다. 두바이는 2013년에 1,000만 명의 관광객들을 맞았다.

이러한 관광업 발달에는 아랍에미리트 정부의 노력이 깔려있다. 정부는 1980년대 이래 수 십억 달러의 자금을 기반 시설 건설에 쏟아부었고, 이에 힘입어 중동에서 가장 인프라가 잘 깔린 국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발전은 특히 아부다비나 두바이 같은 대도시에서 두드러지게 눈여겨볼 수 있다. 그 외의 샤르자, 움알쿠아인과 같은 상대적으로 작은 토후국들도 이들의 전철을 밟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단순히 두바이에만 집중되어 있던 관광객 수요가 아랍에미리트 전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2020년 1월 6일에는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 총리가 관광 비자를 이전의 30-90일에서 5년으로 확대한다고 선언하며 관광업의 활성화를 노리기도 하였다.

아랍에미리트는 2016년 기준으로 세계에서 8번째로 규모가 큰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으며[28], 중동 지역에서 경제 선진국으로 꼽히는 나라이다. 현재 환율로 GDP가 36번째 규모이며, 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이 54,607 달러이다.[29] 아랍에미리트의 1인당 구매력은 세계 40위이며, 인간 개발 지수도 아시아 대륙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며, 전 세계 기준으로 31위이다.[30] 다만 국제통화기금에서는 아랍에미리트를 개발도상국으로 분류하고 있다.

교통 시설 [ 편집 ]

두바이의 교통 시설 [ 편집 ]

두바이의 대중교통은 ‘도로교통국 (Roads and Transport Authority, RTA)’에 의해 관리된다. 최근에 RTA는 300 버스들을 독일의 MAN AG라는 회사로부터 사들였다 버스 시스템을 운영중이다. 이는 두바이 도시의 대두되고 있는 교통 문제를 해소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RTA는 두바이 지하철 체계를 개발하고 있다. 첫 번째 지하철 노선은 2009년 9월에 완성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 개발 중인 옐로 노선은 인공섬인 팜 아일랜드 (Palm Islands)을 통과할 예정이다.

고속도로 [ 편집 ]

최근에는 두바이가 새로운 통행료 징수 시스템을 2007년 7월에 개발했다. 이 새로운 시스템은 사리크(아랍어로 투명하고 매끄러움을 뜻한다)라 불린다. 이 새로운 시스템은 통행료 부스가 없고 최신의 기술을 활용을 한다. 또한 차량들은 통행료 부스를 고속으로 통과할 수 있다. 이 부스를 지날 때마다 RFID 기술이 활용되어 AED 4가 운전사의 선불 계정으로부터 차감한다.

공항 [ 편집 ]

대표적으로 두바이 국제공항과 아부다비 국제공항이 있다. 그 외에도 샤르자 국제공항, 알막툼 국제공항, 라스알카이마 국제공항, 알아인 국제공항이 있다. 에미레이트 항공은 두바이에 출/도착하고, 에티하드 항공은 아부다비에 출/도착하며, 에어 아라비아는 샤르자 국제공항에 출/도착한다.

각주 [ 편집 ]

참고 자료 [ 편집 ]

이 문서에는 다음커뮤니케이션(현 카카오)에서 GFDL 또는 CC-SA 라이선스로 배포한 글로벌 세계대백과사전의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준조, 〈중동 주요 국가의 외국인 투자관련법〉, 부산외국어대학교 비교법연구소, 《비교법학》 (2007년 제18호) 69~72쪽. : 아랍에미리트의 외국인 투자 관련 법제 소개.

두바이/ 두바이는 어떤 나라일까? : 두바이 날씨, 두바이 위치, 아랍에미리트, 중동

두바이/ 두바이는 어떤 나라일까? : 두바이 날씨, 두바이 위치, 아랍에미리트, 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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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는 어떤 나라?

두바이하면 어떤나라에 속해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사우디에 살고 있는(비록 온지 한달도 안됐지만 ㅋㅋ) 나 또한 두바이 가기전까지도 잘 몰랐으니.

보통 아부다비, 두바이, 아랍 에미레이트 하면 잘 아는데

아랍 에미리트라는 국가에 아부다비와 두바이가 속해 있는지는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아부다비는 아랍에미리트의 수도인 도시이고, 두바이는 아랍 에미리트의 또 다른 도시이다.

위키피디아 설명을 좀 따르자면,

” 두바이(아랍어: دبي)는 아랍에미리트의 최대 도시이자 토후국의 중심 도시이다.

두바이는 페르시아 만 남동쪽 해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아랍에미리트를 구성하는 일곱 토후국 가운데 하나이다.

인구는 2,106,177 명으로 아랍에미리트에서 최대이며 면적도 아부다비에 이어 두 번째이다.

두바이는 아부다비와 함께 나라의 연방평의회에서 결정한 잘못된 법을 거부할 수 있는 거부권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두 개의 토후국이다.

도시는 아랍에미리트 북부 해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두바이-샤르자-아지만 대도시권을 이끄는 중심 도시이다.

두바이는 요즘 도시 국가 또는 독립된 국가로 자주 오인하는데, 경우에 따라서 UAE 전체 대표로 “두바이”로 표기하기는 한다.”

여기서 ‘토후국’이라는 단어는 ‘Emirate’를 의미하는데

아랍 에미리트는 7개의 Emirate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United Arab Emirates라고 불린다. (이를 줄여서 UAE라고 쓴다.)

일곱 토후국들로는 아부다비, 아지만, 두바이, 푸자이라, 라스알카이마, 샤르자, 그리고 움알쿠와인이 있다.

+ 덧,

좀 이상한게 같은 Emirates라는 스펠링을 쓰면서

국가이름은 ‘아랍 에미리트’가 표준어인듯 하고

항공사는 ‘에미레이트 항공’이라는 이름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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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지역이란?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중동은 Middle East(혹은 Mid East)를 말하는 것으로,

중동이라는 명칭과 중동 지역의 경계선은 뚜렷하지 않다.

‘중동’이라는 용어는 1850년경 영국의 동인도 회사에서 최초로 사용되었고,

미해군 전략가인 알프레드 테이어 마한(Alfred Thayer Mahan)이 이 용어를 사용하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

중동에는 다음의 나라들이 포함된다.

이라크, 이란, 이스라엘, 요르단, 레바논, 사우디아라비아, 시리아, 예멘,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카타르, 오만, 키프로스, 북키프로스, 터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와 요르단 강 서안 지구(웨스트 뱅크)

넓은 의미에서의 중동의 나라에는 다음의 나라가 포함된다.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리비아, 수단, 모로코, 서사하라, 튀니지, 알제리, 모리타니, 소말리아, 지부티, 에리트레아, 코모로, 이집트

​ (출처 : 위키피디아)

우리나라에서는 분명 중동지방은 서쪽인데 왜 중동인지 의문이 있었다.

위키피디아에서 나온 것처럼 유럽이 패권을 잡던 시절에 유럽을 기준으로 이름이 붙여져서 중앙&동쪽 아시아라고 붙여진 듯 하다.

유럽에서 옛날에는 Near East라는 이름으로도 자주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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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는 어디에 있을까?

아랍에미리트는 아프리카와 아시아가 연결되는 중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쪽은 페르시아만, 오만만, 서쪽은 홍해, 남쪽은 아라비아해, 아덴만에 둘러쌓여 있는 아라비아 반도내에 속해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오만을 주변국가로 두고 있다.

자세히 보면 아부다비, 두바이, 알아인의 위치는 이러하다.

두바이와 아부다비는 모두 해변에 인접해있는 도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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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의 날씨,

두바이에 간다면 옷은 어떻게 입어야 할까?

두바이의 기후는 더운 사막 기후이다. 여름에 두바이는 매우 덥고, 바람이 거세며, 습하다.

평균적으로 최고 온도는 42 °C (108 °F)이며, 밤사이 최저 기온은 29 °C (84 °F)이다. 대부분 일년내내 맑다.

겨울의 평균 최고 온도는 23 °C (73 °F)이고 밤사이 최저 기온은 14 °C (57 °F)이다.

두 바이의 기후 월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년 최고기온기록 ℃ (℉) 31.6 (88.9) 37.5 (99.5) 41.3 (106.3) 43.5 (110.3) 47.0 (116.6) 46.7 (116.1) 49.0 (120.2) 48.7 (119.7) 45.1 (113.2) 42.0 (107.6) 41.0 (105.8) 35.5 (95.9) 49 (120) 평균최고기온℃ (℉) 24.0 (75.2) 25.4 (77.7) 28.2 (82.8) 32.9 (91.2) 37.6 (99.7) 39.5 (103.1) 40.8 (105.4) 41.3 (106.3) 38.9 (102) 35.4 (95.7) 30.5 (86.9) 26.2 (79.2) 33.4 (92.1) 일평균기온 ℃ (℉) 19 (66) 20 (68) 22.5 (72.5) 26 (79) 30.5 (86.9) 33 (91) 34.5 (94.1) 35.5 (95.9) 32.5 (90.5) 29 (84) 24.5 (76.1) 21 (70) 27.5 (81.5) 평균최저기온 ℃ (℉) 14.3 (57.7) 15.4 (59.7) 17.6 (63.7) 20.8 (69.4) 24.6 (76.3) 27.2 (81) 29.9 (85.8) 30.2 (86.4) 27.5 (81.5) 23.9 (75) 19.9 (67.8) 16.3 (61.3) 22.3 (72.1) 최저기온기록 ℃ (℉) 6.1 (43) 6.9 (44.4) 9.0 (48.2) 13.4 (56.1) 15.1 (59.2) 18.2 (64.8) 20.4 (68.7) 23.1 (73.6) 16.5 (61.7) 15.0 (59) 11.8 (53.2) 8.2 (46.8) 6.1 (43) 강수량 mm (inches) 18.8

(0.74) 25.0

(0.984) 22.1

(0.87) 7.2

(0.283) 0.4

(0.016) 0.0

(0) 0.8

(0.031) 0.0

(0) 0.0

(0) 1.1

(0.043) 2.7

(0.106) 16.2

(0.638) 94.3

(3.713) % 습도 65 65 63 55 53 58 56 57 60 60 61 64 59.8

(출처 : 위키피디아)

두바이 하면 1년 내내 더울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여행했던 3월은 평균온도로 따지면 최저기온이 17.6도이고 최고기온이 28.2도이므로중동에서도 날씨가 딱 좋은 시즌이다.

아침 저녁으로 일교차가 살짝 있어 아침저녁으론 얇은 긴팔티, 대체로 낮에는 반팔티를 입으면 적당할 정도의 날씨이다.

습도가 높지 않고 바람이 부는 편이라 온도에 비해 많이 덥지 않다.

여행 다닐때 나시티나 나시원피스 등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꽤 보긴 했으나,

나에게는 실내에선 에어컨이 쎄서 추웠고,

개인적으로 두바이가 개방적인 도시이기는 하지만 아랍 문화권이라 너무 짧거나 하는 옷은 별로 추천하지 않는다.

나는 2박 3일동안 긴팔+긴바지 또는 긴팔 원피스를 입고 다녔는데 전혀 덥지 않았다.

여행기를 올리면서 뭔가, 아랍에미리트와 두바이에 대해 먼저 공부해봐야 할거 같아서 급 조사포스팅!ㅋ

여행기는 계속 됩니당 ^.^

두바이(Dubai)

두바이 (Dubai) ◈ 두바이 (Dubai) 아랍 에미리트 연합의 가장 활기찬 도시 두바이는 ‘모래’, ‘작열하는 태양’, ‘자유로운 쇼핑’과 같은 단어가 연상되는 도시다. 아랍 에미리트 연합에 약 1세기전 석유가 발견되어 생산되기 이전에 두바이는 작은 촌락에 불과했었다. 그러나 석유가 발견되고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두바이에는 고속도로가 뚫리고 하늘을 찌르는 마천루가 들어서 사막위의 신기루처럼 도시가 생성된 것이다. 두바이 는 페르시아 만 남동쪽 해안에 위치한 아랍에미리트의 최대 도시이다. 아랍에미리트를 구성하는 7개의 토후국 가운데 하나인 두바이 토후국의 수도이다. 인구는 약 210만 명으로 아랍에미리트에서 최대이며 면적은 4,114㎢로 아부다비에 이어 두 번째이다. 두바이는 아부다비와 함께 나라의 연방평의회에서 결정한 잘못된 법을 거부할 수 있는 거부권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두 개의 토후국이다. 도시는 아랍에미리트 북부 해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두바이-샤르자(Sharjah)-아지만(Ajman) 대도시권을 이끄는 중심 도시이다. 두바이는 요즘 도시 국가 또는 독립된 국가로 자주 오인하는데, 경우에 따라서 UAE 전체 대표로 “두바이”로 표기하기도 한다. 두바이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075년이며 1799년 최초로 도시로 언급되었다. 1833년 셰이크 막툼 빈 버티 알 막툼이 바니야스 부족에서 800명을 이끌고 두바이를 공식적으로 세웠고, 현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토인 세컨드 사우디 스테이트에서 살기 시작했다. 바니야스 부족의 알 파사 씨족 역시 두바이 크리크에서 막툼을 따라 떠났다. 1892년에는 영국이 두바이를 지켜준다는 명분하에 독점 조약을 체결했고 1971년 아랍에미리트 연방에 가입할때까지 영국의 통제하에 있었다. 두바이는 지리학상으로 중요한 곳에 위치하면서 20세기가 시작된 이후로 중요한 무역 허브 중심지로 성장했고, 이미 중동에서 중요한 항구가 되었다. 오늘날 두바이는 중동과 페르시아 만 지역의 문화 중심지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대도시로 떠오르고 있다. 또 화물과 여객 교통의 중심지이다. 두바이의 경제는 석유 산업으로부터 발전하기 시작했지만, 계속해서 사업을 해온 결과 현재는 관광, 항공, 부동산, 금융 서비스 등이 경제를 이끌고 있다. 최근에는 혁신적인 대형 건설 프로젝트와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를 개최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있다. 도시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더 월드, 팜 아일랜드, 워터프런트와 같은 사람이 만든 인공섬, 초고층 호텔, 세계에서 가장 큰 쇼핑몰,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 부르즈 할리파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관심이 증가하면서 공사 중 남아시아 노동자들의 인권문제와 노동이 문제가 되고 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로 세계 경제시장이 침체되면서 두바이 역시 2008년부터 2009년까지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2013년 옥스퍼드 비지니스 그룹의 조사에 따르면 주변 토후국들이 도와주면서 점차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고 한다. 2012년 두바이는 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도시 22위에 올라 중동 지역 도시에서는 최고 순위를 기록했다. 두바이는 중동 지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자주 선정되는데, 미국 글로벌 컨설팅 회사 머서는 2011년 중동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했다. 2012년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의 세계 도시 경쟁력 지수에서 55.9점을 얻으며 40위에 올랐다. 2013년 미래 도시 경쟁력 지수에서 인덱스는 2025년 두바이가 23위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1820년대 두바이는 영국 역사가들로부터 Al Wasl라고 불렸다. 아랍에미리트의 문화사와 사람들의 말로 전해지는 구비로만 몇 개의 기록만 남아 있을 뿐 민속과 신화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아랍에미리트의 문화, 역사 연구원 Fedel Handhal에 따르면 두바이라는 단어는 내륙에 있는 두바이 크리크가 느리게 흐른다는 뜻인 Daba(두바이어로 살살 움직인다는 뜻의 Yadub의 파생어)에서 왔다고 한다. 시인이자 학자 아흐마드 모하마드 오바이드 역시 같은 단어에서 온 것으로 보고있지만, 메뚜기에서 온 지명 일 수도 있다고 한다. 많은 지역에서 아랍에미리트의 초기 주민들에 의해 석기 시대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 지역의 많은 고대 도시들은 동방과 서방 세계를 잇는 중계 무역지로 알려져 있다. 두바이 인터넷 시티 하수관 공사 중 기원전 7세기 맹그로브 습지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 지역은 5,000년 전에 사막화되어 예전 해안지대는 내륙으로 넓어져 오늘날의 해안선을 이루기에 이르렀다. 옛 이슬람 도자기는 3, 4세기부터 발견되었다. 이슬람이 들어오기 전 이 지역 사람들은 바지르(Bajir)또는 바자(Bajar)라고 하는 숭배사상을 믿고 있었다. 비잔틴 과 사산(페르시안) 제국이 전성기를 이룩했을 시대에 두바이 지역 대부분은 사산제국이 통치했다. 동부 이슬람 세계의 우마이야 왕조 칼리파가 동남쪽 아라비아 를 침공하며 사산 제국을 몰아내면서 이슬람이 퍼지게 된다. 알 주메이라(주메이라) 지역에 있는 두바이 박물관 동굴에서는 우마이야 시대의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 두바이 최초의 기록은 1095년 아랍계 안달루시아 출신 지리학자 아부 압둘 알 박리의 Book of Geography에서이다. 1580년 베네치아 진주 상인 가스페오 발비가 이 지역을 다녀간 뒤 두바이(당시 표기는 Dibei)의 진주 산업을 알렸다. 1799년 이후 두바이는 점점 도시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19세기 초 바니야스 부족 중 알 아부 팔라사 씨족집단(하우스 오브 알 팔라시)이 두바이를 세웠고, 1833년까지 아부다비 의존도가 컸다. 1820년 8월 1일 두바이의 셰이크와 다른 토후국의 셰이크들은 영국 정부와 “해상무역조약”을 체결했다. 1833년 부족의 불화에 따라 바니야스 부족의 알 막툼 가문(하우스 오브 알 팔라시의 후손)은 리와 오아시스를 거점으로 남서쪽 아부다비와의 합의하에 먼저 정착했던 아부 팔라사 씨족을 아무런 저항없이 몰아냈다. 1892년 두바이는 영국과 페르시아 만에서 러시아, 프랑스, 독일의 공격을 보호해준다는 “독점 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1800년대 두 번의 대재앙이 들이닥쳤는데, 하나는 1841년 버두바이 지역에 천연두라는 역병이 발생했으며 이곳 주민들을 디에라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1894년에는 디에라 지역에 대형 화재가 발생하면서 거의 모든 집이 소실되었다. 그러나 도시의 지리적 위치를 이용해 각국 상인들을 유치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다했다. 두바이 국왕은 외국 무역상인들을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펼쳤는데, 당시 중동 지역 무역의 중심지였던 샤르자와 반다르에렝게로부터 상인들을 끌어오기 위해 거래 과세 등급을 낮췄다. 페르시아 상인들은 두바이를 자연스레 알게 되면서 페르시아 만을 건너와 정착한다. 그러나 여전히 오늘날 두바이 크리크에서 다우배를 타고 에렝게와 무역을 하고 있었고, 이들은 남서부 페르시아 바스타크 지역에 정착 해 이 지구를 바스타키야라고 불렀다. 두바이의 지리학상 이란에 가까워 중요한 무역 거점 도시였다. 주로 이란에서 온 외국 상인들이 잠시 쉬기위한 항구 도시로, 이 상인들 중 대부분이 두바이에 정착했다. 20세기가 시작되면서 중요한 항구도시로 성장했다. 1930년대까지만 해도 천연진주를 수출하는 도시로 유명했다. 진주 산업은 세계 1차 대전 을 거치면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피해를 입었고, 1930년대 대공황으로 인해 또 다시 피해를 입었다. 진주 산업이 무너지면서 두바이는 깊은 불경기에 빠졌고 주민들은 굶어죽거나 페르시아 만 주변 지역으로 떠났다. 두바이는 아부다비와 설립 초기부터 끊임없이 사이가 좋지 않았다. 1947년 두바이와 아부다비 사이에 북쪽 영토를 놓고 국경 분쟁이 일어났고, 전쟁으로 이어졌다. 영국의 중재로 라스 하시안 해안에서 동남쪽으로 영토가 확장되면서 전쟁은 임시 휴전되었다. 1950년대 영국의 지역 관리사무국이 샤르자에서 두바이로 옮겨지면서 전기가 공급되기 시작하는 한편 전화서비스가 시작되었고 공항도 지어졌다. 이후 아부다비는 수 년간의 탐사끝에 엄청난 양의 석유를 발견해냈고, 1966년 아부다비에 비하면 훨씬 적은 양이지만 두바이에서도 석유가 발견되었다. 석유 개발은 국제적인 석유 회사에게 양도하면서 인도, 파키스탄 등지에서 외국인 근로자가 대규모로 유입되었다. 1968년부터 1975년 사이 도시의 인구는 300% 이상 증가했다. 1971년 영국이 페르시아 만에서 물러나면서 12월 2일 아부다비, 두바이를 포함한 여섯 개의 토후국으로 이루어진 아랍에미리트가 건국되었다. 1973년에는 다른 토후국들과 함께 전국 통화인 디르함을 채택해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카타르와 바레인이 개별적인 국가로 독립했다. 1973년 카타르와의 통화 동맹이 무산되었고 UAE 디르함이 토후국 사이에서 채택되었다. 1970년대 두바이는 석유와 무역으로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었으며, 레바논 내전으로 인한 피난민들이 대규모로 유입되면서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하였다. 아랍에미리트를 창설한 이후에도 토후국들 사이에서 영토 분쟁은 끊임없이 일어났는데, 1979년 협의를 통해 분쟁을 끝냈다.[30] 1979년 제벨 알리 항구가 개항하였으며, 1985년 이 주변에 외국 기업들로부터 아무런 제한 없이 노동력 수입과 자본 수출을 하고자 JAFZA(제벨알리자유구역)가 개발되었다. 1990년 걸프 전쟁이 발발하면서 투자자들이 돈을 회수하고 거래자들의 무역 중단으로 도시 금융에 악영향을 끼쳤지만, 정치적으로는 오히려 분위기를 바꿔놓으면서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1990년대 이후 많은 거래 업체들은 쿠웨이트는 걸프 전쟁으로 인해, 바레인은 시아파 불안 확산으로 두바이로 옮겨왔다. 걸프 전쟁 중 제벨알리자유구역은 연합국의 연료를 급유하는 곳으로 이용되었고, 2003년 이라크 침공 중에도 똑같은 용도로 이용되었다. 걸프 전쟁 이후 유가가 크게 오르면서 두바이는 자유 무역과 관광에 주력을 다하고 있다. 두바이는 아랍에미리트의 페르시아 만 연안 해수면 16m에 위치해 있다. 남쪽으로는 아부다비, 북동쪽으로는 샤르자, 남동쪽으로는 오만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해안은 페르시아 만과 맞닿아 있다. 두바이의 작은 월경지 하타 는 서쪽으로는 아지만, 북쪽으로는 라스알카이마, 그리고 오만 세 지역에 둘러쌓여 있다. 두바이는 수리적 위치로 북위 25° 16′ 11″ 동경 55° 18′ 34″ / 북위 25.2697° 동경 55.3095° / 25.2697; 55.3095 에 있고 4,110 ㎢ 에 걸쳐 펼쳐져 있다. 간척 사업을 시작하기 전 면적은 3,900 ㎢ 였지만 간척 사업을 하고나서 현재와 같은 면적으로 늘어났다. 두바이는 아라비아 사막 바로 위에 펼쳐져 있다. 두바이의 지형은 아랍에미리트의 남쪽 일부 모습과는 상당히 다른데, 남쪽 대부분 풍경은 자갈 사막인데 반해 두바이는 모래 사막이 주를 이룬다. 모래에서 조개 껍데기와 산호를 찾아 볼 수 있으며, 깨끗한 하얀색이다. 도시의 동쪽에 있는 사브카로 알려진 소금으로 이루어진 연안 평지는 모래언덕의 남북을 이어준다. 동쪽 끝에는 산화철이 더해져 빨간색을 띄는 모래 언덕이 많다. 평평한 모래 사막을 지나 서쪽으로가면 하타와 오만 국경에 하자르 산맥 이 있다. 하자르 산맥의 서쪽은 매우 건조한데, 들쑥날쑥하고 험난한 이 산맥은 1,300m의 높이를 자랑한다. 두바이에는 자연적인 강이나 오아시스가 없다. 그러나 자연적인 작은 하천 두바이 크리크를 대형 선박이 다닐 수 있도록 깊게 준설했다. 서쪽 하자르 산맥에는 많은 협곡과 물웅덩이가 있다. 두바이 남쪽은 많은 사구가 펼쳐져있고, 룹알할리 사막으로 이어진다. 지질학적으로 두바이는 자그로스 단층이라는 지진 단층선과 가까워 매우 안정된 지질에 위치하고 있지만, 아랍에미리트에서 200km 밖에 떨어져있어 충분히 두바이에 지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전문가들은 페르시아 만은 쓰나미가 생길만큼 충분한 깊은 수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쓰나미 의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한다.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의 모래 사막은 야생 풀과 대추야자의 서식지가 되어준다. 도시의 동쪽 사브카 사막에는 히아신스가 자라며 서쪽 알 하자르 산맥 주변 평야에서는 아카시아와 프로소피스 시네라리아 나무가 자란다. 대추야자, 님과 같은 고유 나무종 뿐만 아니라 유칼리나무와 같은 수입종도 두바이의 자연 공원에서 자란다. 후바라 능에, 줄무늬하이에나, 카라칼, 사막여우, 매, 아라비아영양은 두바이 사막에서 흔한 야생동물들이다. 두바이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회유하는 경로로 320종이 넘는 철새들이 봄과 가을에 이곳을 거쳐간다. 해양에는 다금바리의 한 종 하모르를 포함해 300종 이상의 물고기들이 서식한다. 이 외에 열대어, 해파리, 산호, 듀공, 돌고래, 고래, 상어 등 열대 해안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생물들도 서식하고 있다. 또한 멸종 위기에 처한 대모, 푸른바다거북 등 다양한 거북 종류가 서식하고 있다. 두바이 크리크는 도시의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지난다. 도시의 북동쪽은 디에라가 위치하고 있고 그 측면에는 샤르자 남쪽에는 알 아위르가 있다. 디에라 남부에는 두바이 국제공항이 있으며 북쪽 페르시아 만에는 인공섬 팜 디에라가 있다. 두바이 부동산 붐의 대부분은 두바이 크리크의 서쪽 주메이라 해안선을 따라 집중되고 있다. 포트 라시드, 제벨 알리, 부르즈 알 아랍, 팜 주메이라와 같은 비지니스 베이 자유구역은 모두 서쪽 해안선에 위치하고 있다. 두바이의 기후는 더운 사막 기후이다. 여름에 두바이는 매우 덥고, 바람이 거세며, 습하다. 평균적으로 최고 온도는 42°C이며, 밤사이 최저 기온은 29°C이다. 대부분 일년내내 맑다. 겨울의 평균 최고 온도는 23°C이고 밤사이 최저 기온은 14°C이다. 강수량은 지난 수 십년간 매년 250mm씩 증가하고 있다. 두바이의 여름은 많은 것들을 불편하게 할 정도로 매우 높은 습도로 잘 알려져 있다. ◐ 두바이 기후 (℃) 지 역 구분/월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두바이 (Dubai) 최고평균 24.0 25.4 28.2 32.9 37.6 39.5 40.8 41.3 38.9 35.4 30.5 26.2 최저평균 14.3 15.4 17.6 20.8 24.6 27.2 29.9 30.2 27.5 23.9 19.9 16.3 평 균 19.2 20.4 22.9 16.5 31.1 33.3 35.4 35.8 33.2 29.7 25.2 21.3 강우량mm 15.6 25.0 21.0 7.0 0.4 0.0 0.8 0.0 0.0 1.2 2.7 14.9 관광 명소 ◈ 두바이 최고의 건축물 5가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Dubai)는 ‘중동의 꽃’이라고 불리며 위용을 자랑하는 도시다. 석유사업으로 돈을 쓸어 담은 재벌들이 사는 부자 동네이기도 하다. 두바이는 20여년 전만 해도 허허벌판 사막이었다. 1990년 두바이 사진이다. 두바이의 주도로인 셰이크 자예드 로드 주변에 건물들이 띄엄띄엄 세워져 있다. 도로정비조차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2016년 현재 두바이는 뉴욕 맨해튼 못지않은 호화 도시가 됐다. 세계 최대, 최고를 기록하는 건물도 다수 들어섰다. 사막 위 기적을 만들어 낸 두바이. ‘1등’을 자랑하는 두바이 건축물 5가지를 꼽아봤다. 1. 팜 아일랜드( Palm Island) 팜 아일랜드는 세계 최대의 인공 섬이다. 두바이 해안에서 8km 가량 떨어져 있다. 팜 아일랜드는 팜 주메이라, 팜 제벨알리, 팜 데이라로 구성됐다. 두바이 앞바다를 흙으로 메꿔 만들어졌다. 가장 먼저 완공된 섬은 팜 주메이라다. 야자수 잎 17개를 본뜬 모양이다. 하늘에서 보면 큰 야자수처럼 보인다. 팜 아일랜드는 지금도 확장되고 있다. 팜 제벨알리와 팜 데이라는 여전히 공사 중이라고 한다. 유명 스타들도 팜 아일랜드를 눈여겨본다.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 가수 마돈나, 골프선수 타이거 우즈 등이 팜 아일랜드의 호화 빌라를 사들였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팜 아일랜드를 간다면 유명 인사와 마주치게 될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2. 스키 두바이 (Ski Dubai) 키장이 들어설 수 없는 뜨거운 두바이 사막. 이곳에 스키를 탈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두바이에 있는 세계 최대의 실내 돔 스키장 스키 두바이다. 사계절 더운 날이 이어지는 중동지역에서 최초로 지어진 스키장이기도 하다. 실내 스키장이라고 해서 결코 작지 않다. 면적은 모두 2만 2500㎡에 이른다. 축구장 3개 크기에 달하는 크기다. 슬로프 최장길이는 400m다. 스키장 안에는 리프트도 설치됐다. 3. 두바이 몰( The Dubai Mall) 쇼핑센터도 세계 최대다. 두바이 몰 면적은 약 34만 평(약 1.12㎢)이며 매장 수는 1200개 이상이다. 온종일 돌아다녀도 둘러보기 힘들다고 여행자들은 말한다. 두바이 몰에는 ‘세계 최대’를 자랑하는 두 가지 요소가 더 있다. 아쿠아리움과 분수 쇼다. 저녁 6시에 야외에서 펼쳐지는 세계 최대 분수 쇼는 인기 만점이라고 한다. 쇼가 시작되기 전부터 근처에는 명당을 차지하기 위한 자리싸움이 벌어진다. 연간 두바이 몰을 찾은 방문객은 모두 8000만 명에 이른다. 방문객 수도 어마어마하다. 4. 부르즈 알 아랍( Burj Al Arab) 부르즈 알 아랍은 세계 최초의 7성급 호텔이다. 두바이 주메이라 해안과 연결된 인공섬에 세워졌다. 부르즈 알 아랍은 ‘아랍의 타워’라는 뜻이다. 1999년에 세워진 이 호텔은 두바이의 상징처럼 여겨지곤 한다. 돛단배처럼 생긴 외관이 사람들의 눈길을 끈다. 건물 높이는 321m에 달한다. 건축비는 약 15억 달러(약 1조 8000억 원)가 투입됐다고 한다. 5. 부르즈 칼리파( Burj Khalifa) ‘최고’를 자랑하는 건물 가운데서도 가장 높은 건물은 한국 건설회사가 올린 부르즈 칼리파(Burj Khalifa)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2009년 건물 공사를 마쳤다. 높이는 828m다. 가장 높은 건물답게 부르즈 칼리파는 다른 최고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건물 엘리베이터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1분에 600m를 이동한다. 1층부터 142층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데 45초가 걸린다고 한다. 건물 층수도 세계 최고다. 지하 2층, 지상 162층이다. ◈ 요새를 개조한 건물, 두바이 박물관(Dubai Museum) 1971년에 완공된 이 두바이 박물관은 위압적 분위기의 19세기 초에 지은 알 파하이디 요새 Al Fahidi Fort 에 자리잡고 있다. 알 파하이디 요새 Al Fahidi Fort 는 두바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의 하나로 여겨지며 원래는 이웃 종족들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한 곳으로 사용되었고 때때로 감옥, 통치자의 저택, 정부건물 등으로 사용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두바이 시측은 이러한 역사적 건물을 두바이의 지난 과거의 기록과 전통을 보존하기 위한 박물관으로 변모시켜 1971년에 개장한 것이다. 두바이 박물관은 동, 설화 석고(雪花 石膏), 4000년전 Al Qusais 무덤들에서 발견된 인공 유물 등과 같은 고대의 유물들을 보유하고 있다. 박물관은 토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08:30 ~ 19:30 개관, 금요일날은 14:00 ~ 19:30 시간대에 개관한다. ◈ 7성급 호텔, 버즈 알 아랍 호텔(Burj Al Arab Hotel) 바다를 항해하는 거대한 아라비아 돛단배를 형상화해서 만들어진 버즈 알 아랍 호텔(Burj Al Arab Hotel)은 지금은 타계한 통치자 셰이크 라시드(Sheikh Rashid)가 정책적으로 건축하도록 한 두바이의 명물로 당시까지 세계에 알려지지 않은 두바이를 세계에 알리는 일등공신 역할을 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호텔”로 인식되고 있다. 호텔의 높이는 321m로 두바이 해변선의 랜드마크가 되기도 하며 해변과 어울려 더욱 아름답다. ◈ 부르즈 칼리파 ( برج خليفة. Burj Khalifa ) = 부르즈 할리파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있는 높이 828m의 초고층 건물. 부르즈 할리파는 2010년부터 세계 최고층 건물이다. 이전의 최고층 건물 : 타이베이 101 이후의 최고층 건물 : 스카이 시티, 펑황 타워, 제다 타워(아직 건설중) o 위치 : 아랍에미리트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o 기공식 : 2004년 9월 21일 o 건축 : 2004년~2010년 o 개장 : 2010년 1월 4일 o 용도 : 사무, 관광, 쇼핑, 호텔 o 높이 : 안테나/첨탑 829.8m, 지붕 828m, 최상층 621.3m o 층수 : 지상 163층, 지하 2층 o 연면적: 34만 4천㎡ o 건축가/건축회사 : 대한민국 삼성물산 건설부문 o 구조 엔지니어 : 미국 스키드모어, 오윙스 앤드 메릴 o 개발사 : 아랍에미리트 에마르 프로퍼티스 o 웹사이트 http://www.burjkhalifa.ae ‘부르즈(Burj)’는 아랍어로 ‘탑(Tower)’라는 뜻이며, ‘칼리파’는 아랍에미리트 대통령의 이름인 칼리파 빈자이드 알나하얀에서 온 것이다. 높이 828m의 163층짜리 건물로, 2015년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다. 2004년부터 2009년까지 공사가 진행되었고 2010년에 개장했다. 2005년 2월 착공 이후 15억달러의 공사비가 투입된 부르즈칼리파는 1~39층은 호텔, 40~108층은 고급 아파트, 109층 이상은 사무실로 이뤄졌다. 사무실의 경우 평방미터당 미화 약 37,000달러(한화 약 44,000,000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가격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평당으로 따지면 약 1억 4천만원에 달하는 상상하기 어려운 가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부르즈 칼리파는 약 90% 정도가 분양 완료된 상태이다. 호텔숙박 가격의 경우(부르즈 칼리파에는 총 6개의 호텔 브랜드가 있다.) 방의 종류에 따라 그 가격차이가 많이 나지만 스탠다드 기준으로 1박 가격이 약 650달러(한화 78만원)에 달하는 높은 가격대를 보이고 있다. 그나마도 개장 초기 1,000달러(약 120만원)에 비하면 상당히 인하된 가격이기도 하다. 특히 124층에 위치한 전망대인 ‘At the Top’에서 사막위에 세워진 화려한 빌딩들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148층에 위치하고 있는 전망대는 ‘At the top sky’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At the top에 비해 At the top sky 전망대는 우선 대기시간이 없고, 음료와 다과를 제공하는 라운지를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가격이 At the top 전망대에 비해 거의 3~4배가 비싼 편이다. 두 전망대 모두 인기가 많아 사전 인터넷 예약은 필수이다. 인터넷예매는 현장 예매보다 가격도 저렴하다. 시간대 마다 제한 인원이 있고, 인기 있는 시간에는 가격도 올라가니 잘 확인해 보자. 건축 설계는 미국의 SOM이 맡았으며, 한국의 삼성물산이 공사 전반과 기술을 총괄했다. 58기의 엘레베이터, 2만 9000개의 커튼월, 철근 4만톤, 고성능 콘크리트 164,000㎥ 가 사용되었으며 3일에 한 층씩 건설하는 시공방식, 인공위성을 이용한 GPS 기술, 복층형 엘리베이터, 진동 저감장치 등 첨단 기술의 집합체이다. 두바이의 관광명소 중 하나로, 124층에 두바이의 모습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두바이를 찾은 여행자들이 꼭 한번은 들리게 되는 관광지로 자리매김한 ‘At the Top’은 고층부에 위치하다보니 관람객 숫자에 제한을 두고 있으며, 30분 간격으로 관람시간을 제한을 두고 있다. 부르즈 칼리파 전망대의 인기는 겨울성수기에 최고조에 이른다. 12월~1월 부르즈칼리파를 여행할 계획이라면 최소 2~3주 전에는 예약을 해야 원하는 시간대에 전망대 관람이 가능하다. 매년 1월 1일에는 부르즈 칼리파를 중심으로 두바이 전역에서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한화로 60억원 이상의 비용이 드는 대규모 불꽃놀이이다. 규모뿐만 아니라 예술성도 가미되어 화려하고 아름다운 불꽃놀이를 감상하실 수 있다. 이 외에도 부르츠 칼리파 바로 앞에 위치해 있는 두바이몰에서 시간마다 분수쇼를 선보인다. 가장 명당은 전망대 유리 바로 앞이지만, 분수쇼를 할 때는 사람이 너무 많아 미리 자리를 잡고 있어야 한다. 두바이몰은 부르즈 칼리파와 연결되어 있고, 세계 최대의 쇼핑센터이다. 두바이몰은 면세 혜택도 적용되어 쇼핑관광으로도 많이 떠나는 여행지이다. ▲ 152m 치솟는 물기둥 위엄, 세계 최대 인공호수 ‘부르즈 칼리파’ 분수 2009년까지만 해도 ‘세계 최대 분수’란 영예는 미국 라스베가스에 위치한 ‘벨라지오 분수 (Fountains of Bellagio) ‘ 몫이었다. 그러나 2009년 12월 ‘부르즈 칼리파(Burj Khalifa)’가 완공되면서 ‘세계 최고(最高) 빌딩’과 ‘세계 최대 분수’ 타이틀은 두바이로 넘어갔다. 부르즈 칼리파 앞에 마련된 분수는 이전의 세계최대 분수 벨라지오 분수보다 4배나 더 크다. 축구장 세 개를 더한 이 분수의 면적은 자그마치 12만 1410㎡에 달한다. 분수가 뿜어내는 물기둥은 152m까지 치솟고 한번에 8만 3600리터를 내뱉는다. 매일 저녁마다 음악에 따라 춤추는 ‘두바이 분수 쇼’를 볼 수 있다. 주중 18~23시, 주말 18~23시 30분에 20~30분마다 진행돼 하루 10회 이상 공연한다. 입장 경쟁이 만만치 않다고 하니 입장 티켓은 인터넷으로 예매하는 게 좋다. 티켓료는 즉시 입장 400AED(한화 약 12만 원), 일반 입장125AED(약 3만 7500원), 아동 95AED (약 2만 8500원)이다. 삼성물산이 만든 세계 최고층 빌딩 ‘부르즈 칼리파’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는 높이 828m, 163층의 세계 최고층 빌딩이다. 828m는 우리나라 63빌딩(249m)보다 세배 이상 높고 서울에서 가장 높은 산인 북한산(836m)과 비슷한 수준이다. 2004년 9월부터 2009년 10월까지 5년간 지어진 이 건물은 높이 외에도 최고 기록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5년 간 투입된 총 인원은 850만 명, 총 노동 투입 시간은 9200만 시간에 이른다. 세계 최고 기록이다. 공사 현장에 동시 투입된 최대 인원도 1만 2000명으로 역시 세계 신기록이다. 이밖에 엘리베이터 58기, 커튼월(하중을 지지하지 않고 칸막이 역할만 하는 건물 외벽) 2만9000개, 철근 4만톤, 고성능 콘크리트 16만4000㎡가 사용됐다. 이 건물을 지은 곳은 다름 아닌 국내 1위 건설업체인 삼성물산이다. 삼성물산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페트로나스 타워(88층, 452m)와 타이베이의 타이베이 101(101층, 509m)에 이어 부르즈 칼리파까지 완공하며 초고층 빌딩 분야 세계 최고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2011년 ‘건설의 날 기념식’에서는 부르즈 칼리파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삼성물산 빌딩사업부장인 김경준 전무가 국내산업훈장 중 최고등급인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영화 따라 잡기- 미션 임파서블 4 : 고스트 프로토콜 (Mission Impossible 4: Ghost Protocol) 감독 : 브래드 버드(Brad Bird) 주연 : 톰 크루즈(에단 헌트), 제레미 레너(브랜트) 개봉 : 2011년 상영시간 : 132분 IMF 소속의 짐 펠프스(Jim Pellps: 존 보이트 분)가 이끄는 ‘미션 임파서블’팀은 리더인 이단 헌터(Ethan Hunt: 톰 크루즈 분), 경보 해제 전문가 잭(에밀리오 에스테베즈 분), 여성 요원인 사라(Sara: 크리스틴 스콧-토마스 분)와 한나, 그리고 짐의 아내인 클래어(Claire: 엠마뉴엘 베아트 분)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글리촌이라는 자가 NOC 리스트(Non Official Cover List: 동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첩보원들의 명단)를 대사관에서 훔쳐내 ‘맥스(Max: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분)’라는 무기상에게 팔아 넘기려는 음모를 막기 위해 작전에 투입된다. 그러나 대사관 파티에 잠입하여 작전을 수행하나 도중, 짐을 포함한 요원들이 모두 숨지게 되고 혼자 살아남은 헌트만이 간신히 본부와 연락을 취하게 된다. IMF 책임자인 키트리지(Kittridge: 헨리 크제니 분)를 만난 헌트는, 그를 통해 이번 작전은 정보부내 깊숙히 침투해 있는 이중 간첩을 잡아내기 위한 작전이었으며 글리촌도 미끼였다는 것이다. 더구나 모든 요원들이 죽었는데, 이단만이 살아남았고, 그에게 수상쩍은 12만$의 거금이 입금되어 의심을 받고 있음을 알고는 홀로 탈출한다. 이때 살아남은 클레어가 나타나 헌터와 합류하게 된다. 헌터는 동료들을 죽인 문제의 범인이 인터넷에서 ‘옵’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무기 밀매상인 맥스와 접선했던 것을 알고 맥스를 만나는데 성공한다. 그를 통해 옵이 NOC 리스트를 600만$의 돈과 바꾸려 했음도 알고 CIA 본부 건물의 진짜 리스트가 들어있는 디스크를 빼내어 1천만$와 바꾸겠다는 것을 약속받는다. 이어 크리거(Krigger: 쟝 르노 분)와 나토 컴퓨터를 해킹했다는 컴퓨터 천재 루터(Luther: 빙 래미스 분)와 손잡고 팀을 이룬 헌터는 마침내 NOC 리스트를 빼내는데 성공한다. 이에 분노한 키트리지가 헌트의 부모를 마약 밀매 협의로 체포하여 협박하려하고 그 앞에 놀랍게도 살아있는 짐이 나타난다. 그는 키트리지가 범인이라며 헌터를 설득하지만 그를 의심하게 된 헌트는 자신과 함께 행동을 해온 짐의 아내인 클레어가 짐과 한통속이었다는 것을 알아내게 된다. 냉전시대가 이미 끝나버린 지금 짐에게 있어 가장 중요했던 것은 동료애 보다 돈이었던 것이다. NOC 리스트와 돈을 교환하려는 파리행 고속 기차에서 무정하게 아내까지 쏴버린 짐은 헬기로 탈출하려 하지만 헌트에 의해 저지당하고 모든 일을 마친 헌트는 비행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비행기 속에서 또다시 모종의 지령을 받기에 이른다. ◈ 거대한 액자 모양 전망대 두바이 프레임(Dubai Frame, 두바이 액자)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또 다른 랜드마크가 생겼다. 세계에서 가장 큰 액자라고 할 수 있다, 이 건축물의 이름도 ‘두바이 프레임’이다. 2017년 12월 27일, 두바이 도심 자빌 공원에 가로 93m, 세로 150m 규모의 직사각형 액자 모양 전망대가 완공됐다. 내부에서는 3차원 홀로그램 기술로 두바이의 역사와 미래상을 볼 수 있고, 액자의 위 틀 부분에 해당하는 고공 다리에서는 두바이 시내 전체를 관망할 수 있다. 전망대 기능에 충실하도록 유리 건물로 지어졌고, 황금빛 장식을 외벽에 둘러 화려함을 강조했다. 두바이 프레임은 두바이를 대표하는 높이 829.8m에 124층짜리 세계 최고층 건물, 부르즈칼리파를 정면에서 마주 보도록 방향을 잡았고, 반대쪽 구시가지 방향으로는 과거와 전통을 함께 관람할 수 있도록 설계됐었다. 두바이의 정경이 금빛 액자 속에서 더 돋보인다. 이 초대형 건축물은 약 1억 6800만 디르함, 한화로는 468억 원이 투입되었다. 한해 약 200만 명 이상 찾을 것으로 두바이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입장료는 어른이 50디르함(한화 1만 4700원 정도), 어린이는 30디르함이다. ◈ 사막 위에 세워진 두바이 또 하나의 랜드마크 ‘미래박물관(Museum of the Future)’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금융지구에 건설된 미래박물관(Museum of the Future) 1024개 스테인리스 패널로 조립된 외관에는 알막툼 UAE 부통령 겸 두바이 국왕의 세 가지 미래비전이 새겨졌다. 세계 최고 높이 건축물 ‘부르즈칼리파’, 150m 높이의 액자형 전망대 ‘두바이 프레임’에 이어 또 하나의 두바이 랜드마크가 될 ‘미래박물관(Museum of the Future)’ 미래박물관은 옥반지 모양의 외관을 1024개의 스테인리스 패널로 조립한 건축물로, UAE가 첨단과학기술의 허브로 자리하기 위한 의지를 담았다. 아랍에미리트(UAE)의 두바이 미래재단은 두바이 금융지구에서 미래지향적 사고· 기술· 혁신의 새로운 글로벌 중심지가 될 미래박물관를 2022년 02월 22일 개관했다. 면적 3만㎡, 높이 77m의 미래박물관은 7개 층에 걸쳐 전문가들이 모여 미래지향적 담론과 새로운 과학기술에 관한 토론을 펼칠 공간과 일반인들이 미래를 앞서 들여다볼 전시 공간을 마련했다. 미래박물관은 로봇 작업을 통해 조립된 1024개의 금속 패널 외관이 조명을 받아 밝게 빛난다. 16단계의 공정을 거친 스테인리스 기반의 4개층 복합 소재 패널이 정교하게 조립했다. 1024개는 정보 단위인 1024바이트를 뜻하며, 이는 곧 1킬로바이트(kB)를 의미한다. 국제적 건축가 숀 킬라가 설계 책임을 맡았다. 박물관의 구조는 인류를 상징하고 지구를 상징하는 녹색 언덕 위에 있다. 건물 중심부의 비어있는 공간은 아직 미지의 영역으로 남은 미래를 상징하며 동시에 미래로 나아가는 관문을 표현한 것이다. 외관에는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 UAE 부통령 겸 두바이 국왕의 미래 비전을 담은 세 개의 인용문구가 아랍어 캘리그래피로 새겨져 있었다. 미래박물관 내부에는 1000여 명의 관람객을 수용할 수 있는 다목적홀과 345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화형 강의와 워크숍을 위한 특별홀이 있다. 또 건강, 교육, 스마트도시, 에너지, 교통 혁신 등 미래 혁신을 주제로 한 상설 전시장과 사회가 당면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연구할 수 있는 실험실 등을 갖췄다. 미래박물관은 이를 통해 기술혁신을 주도하는 리더와 기업가들이 혁신적인 신기술을 만나고, 주요 대학과 국제연구기관들이 협업한 최신 과학연구 결과를 접할 수 있는 거대 플랫폼으로 거듭나길 기대하고 있다. 일반 관람객이 위한 체험형 전시도 5개 층에 걸쳐 마련돼 있다. 2071년 우주정거장에서 펼쳐질 미래 인류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OSS 희망’, 콜롬비아 아마존의 열대우림 생태계를 디지털로 재현해 관람객이 환경변화를 이해할 수 있는 ‘치유 연구소’, 폐기물 관리·환경· 식량 안보·농업과 관개·도시 계획 등 5개 분야의 50개 제품이 전시된 ‘투모로우 투데이’, 10세 미만의 어린이들이 자신과 주변 세상을 새롭게 탐구해 볼 수 있는 놀이공간 ‘미래 영웅들’ 등의 전시가 펼쳐질 예정이다. UAE는 2100년대 화성으로 대규모 이주를 꿈꾸고 있다. ◈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이슬람 건축물의 전형 쥬메이라 모스크 (Jumeirah Mosque) 1975년에 짓기 시작하여 1978년 완성된 비잔틴 양식의 이 모스크는 화려한 모자이크 문양이 특징이다. 이 사원은 기도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출입할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어 조심스럽게 안을 구경할 수 있다. 쥬메이라 모스크의 내부 건축 양식은 다음과 같다. – QUBLAWALL : 메카를 향한 벽으로 모든 기도자들은 기도하는 동안 얼굴을 이쪽으로 돌려야 한다. – MIHRAB : QIBLA 벽의 중앙에 있는 곳으로 기도를 드리기 위해 들어간 벽쪽을 뜻하며, 모스크 내부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이다. – MINBAR : MIHRAB 의 오른쪽에 있는 연단으로 그 날의 기도를 이끌어가는 사람이 설교하는 곳으로 종교,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를 언급하기도 한다. 이슬람에서는 숭배받고 있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식물은 예외)에 대한 어떤 창조적인 행위도 금기시 되고 있다. 따라서 모스크 안에서 그림을 찾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대신 모스크 내부는 화려한 장식과 아랍글씨로 장식되어 있다. 기도자들은 모스크에 들어가기 전에 종교적 의식으로 씻어야 한다. 먼저 왼손을 닦고, 입, 코, 얼굴, 오른팔과 왼팔, 머리, 귀, 마지막으로 오른발과 왼발을 닦는다. 이슬람은 다섯가지 원리에 그 기초를 두고 있으며 모든 무슬림은 그 강령을 따라야 한다. ◈ 와일드 와디 워터파크(Wild Wadi Water Park) 쥬메이라 비치 호텔(Jumeirah Beach Hotel) 옆에 위치한 이 와일드 와디는 1만 5천평의 수중공원으로, 스릴을 찾는 사람이나 가족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제공하는 세계에서 가장 진보된 수상 테마 파크다. 이곳은 모든 연령대가 즐길 수 있는 스릴 만점의 파도 타기, 서핑 지역, 파도 풀, 기타 많은 수중 놀이 시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24개의 워터 라이드(water ride) 중 16개는 서로 연결되어 있어 물밖으로 나올 필요가 없다. 고대 아라비아 스타일의 신밧드의 모험을 연상시키는 테마 공원이 실재 계곡처럼 만들어져 있으며, 워터 슬라이드는 시속 80km까지 나온다고 한다. o 홈페이지: http://www.wildwadi.com/ o 개장시간 January – February : 11am -6pm March – May : 11am – 7pm June – August : 11am – 9pm September – December : 11am – 5pm ◈ 두바이 전통시장 수크(Souk) ‘중동의 홍콩’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두바이의 매력중의 하나가 바로 쇼핑이다. 두바이에서는 현대적인 디자인과 첨단 패션으로 조성된 쇼핑몰에서부터 중동의 냄새가 물씬나는 전통시장까지 쇼핑의 폭이 넓다. 이중에서 전통시장은 두바이 현지말로 수크(Souks)라고 불리운다. 전통시장 수크는 두바이 도심을 파고 든 바닷물 ‘두바이 크릭(creek)’의 양 주변에 위치해 있는데 가장 여행객들의 발길을 끄는 곳은 데이라 지구쪽의 수크이다. 골목시장 수크는 골드수크, 향료수크, 야채수크 등의 형태로 남아있다. 두바이 전통시장 수크의 주요 판매품목 중 하나는 바로 다채로운 향신료다. 향신료를 파는 시장골목에는 독특한 중동풍 향료냄새가 풍겨오며 물건을 흥정하는 현지인들의 법석거림을 몸소 채험할 수 있다. 이 전통시장에 서게 되면 바로 석유가 발견되기 전 두바이의 사람들의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느낄 수 있게 된다. ◈ 두바이 금시장(Gold Souk) 수크(Souk)는 어떠한 종류의 상품을 가져와서 교환하는 시장 또는 장소를 의미하는 아랍어로 Deira에서 해협까지 미로처럼 굽이굽이 이어지는 좁은 길을 따라 놀랄만한 각양각색의 향신료들과 금수공예품들을 발견할 수 있다. 두바이의 금시장(Gold Souk)은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다. 400여개의 도매상과 270여개의 소매상이 모여 있는 이곳에 오면 왜 두바이를 황금의 도시라고도 부르는지 이해가 갈만큼 머리 위에서 발끝까지 금으로 치렁치렁 치장한 화려한 가게의 쇼윈도가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쇼윈도 안에는 도대체 저 목걸이와 팔찌의 수요자는 누구일까 의문이 갈 만큼 크고 이국적인 느낌의 장신구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런 의문은 그리 오래지 않아 풀린다. 검은색 차도르를 입고 손목과 손을 육중한 크기의 팔찌와 반지 등으로 번쩍번쩍 장식한 두바이의 여인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두바이 모닝 시티투어(Dubai Morning City Tour) 두바이의 역사를 알아보는 투어이다. 주메이라 모스크에서 시작하여 해변을 따라 궁전을 지나, 고대풍으로 건축한 바라탐이 있는 가장 오래된 동네인 바스타키아(Bastakia)에서는 아랍부호에 의해서 지어진 윈드타워 앞에서 잠시 멈춘다. 150년이 넘은 알 파히디 항구를 거쳐서 두바이 박물관에 들리고, 두바이 박물관을 지나 아브라(수상택시)를 타고 크릭을 지나서 금과 향신료로 유명한 수크로 이동한다. ◈ 모래 언덕을 부비는 사막 사파리 투어(Safari Tours) 끝없는 마천루의 퍼레이드 속에 감춰진 두바이의 또 다른 얼굴은 ‘사막’이다. 사막 사파리를 통해 온몸으로 체험해 보자. 모래 언덕을 가로지르는 터프한 4륜구동 지프차로 도착한 사막의 한가운데, 모래 능선을 타고 올라 노을로 붉어지는 사막의 장관은 자연의 신비를 느끼기 충분하다. 4륜구동 짚차를 타고 금빛 사막의 언덕을 오르내리며 짜릿한 스릴을 느낄 수 있다. ‘사막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진 베두인촌에 입장하면 아랍의 전통식으로 준비된 특식을 먹으며, 모래 위에서 피어난 꽃 같은 벨리댄스(BELLY DANCE)와 전통 민속 공연을 보며 열정과 낭만에 젖어 볼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다양한 무늬의 헤나 까지 그리면 두바이 사막 체험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또한 각종 과일 향이 나는 물담배 시샤 같은 베두인의 삶을 직접 체험할 수도 있다. 붉은 모래(Red Sand)는 UN 지정 자연보호구역이다. ◈ 도심을 파고 든 바닷물, 두바이 크릭(Dubai Creek) 두바이 도심을 양분하는 두바이 크릭(Dubai Creek) 두바이를 무역항으로 성장시킨 것은 도심을 파고 든 바닷물, 두바이 크릭이다. 사막의 강 역할을 해온 두바이 크릭은 아프리카와 인도를 오가던 무역선이 짐을 부리기 위해 찾던 곳이다. 두바이 크릭은 준설과 정비 공사끝에 운하로 다시 태어났고 둑 주변은 성장의 상징인 건축물로 치장됐다. 두바이 중앙은행과 특급호텔, 통신회사, 상공회의소로 구성된 건축물집단은 예술품급으로 두바이 크릭의 스카이라인을 돋보이게 한다. ◈ 두바이 현지교통 대중 교통수단으로 버스(장거리 시외버스)와 택시가 있으나, 버스는 노선이 다양하지 않고 배차 간격이 길어서 대부분 서남아 일용 근로자들만이 이용한다. 가장 일반적인 대중 교통수단은 택시이며, 두바이의 경우 미터택시가 최근 도입되어 일반택시 및 미터택시가 함께 운행(미터택시는 연노랑색으로 모두 신형이므로 구분이 용이)되고 있으며, 두바이 시내를 관통하는 경우에도Dh20(U$5.5) 이하이므로 초행자인 경우 가급적 미터택시 이용을 권장한다. ◈ 두바이 쇼핑 ✜ 두바이 명품 쇼핑 전문몰 와피 쇼핑몰(Wafi Shopping Mall) 와피 쇼핑몰 센터(Wafi Shopping Mall)는 비교적 최근에 생긴 쇼핑몰로 건물의 외형을 이집트의 피라미드 식으로 지어 놓은 것이 외관상 특징이다. 정문 양쪽으로 세워져 있는 두개의 오벨리스크와 전체적으로 사각뿔의 피라미드 모양을 하고 있고, 벽에는 이집트식 벽과가 그려져 있다. 꼭 쇼핑을 하지 않더라도, 건물자체를 구경하는데 에도 의미가 있는 곳이다. 내부는 중동 부호의 느낌이나는 진한 나무색과 스테인드글라스의 조화가 인상적이다. 두바이 명품쇼핑 전문몰로 쇼핑몰 이외에 플래닛 할리우드 등의 이벤트 레스토랑이 있다. o http://www.wafi.com/ ✜ 아랍 재래시장은 현대식으로 꾸며논 쇼핑센터 – 숙메디나트 쥬메이라 (Souk Madinat Jumeirah) 버즈 알 아랍 호텔 옆에 위치한 리조트 시티 ‘마디나 주메이라’안에는 특별한 숑핑 센터가 있다. 바로 천년전 아랍 재래시장을 현대식으로 꾸며놓은 숙메디나트 주메이라 쇼핑몰이다. 시원한 실내에서 아랍전통시장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내부의 높은 천장과 짙은 나무로 꾸며진 실내는 동양적이면서도 어딘가 이국적인 느낌이다. 특별한 장식이 없이도 아랍 스타일 물건과 어우러진 실내는 볼거리로 가득 차있다. o http://www.jumeirah.com ✜ 두바이 금시장(Gold Souk) 수크(SOUK)는 어떠한 종류의 상품을 가져와서 교환하는 시장 또는 장소를 의미하는 아랍어로 Deira에서 해협까지 미로처럼 굽이굽이 이어지는 좁은 길을 따라 놀랄만한 각양각색의 향신료들과 금수공예품들을 발견할 수 있다. 두바이의 금시장(Gold Souk)은 미국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이다. 400여개의 도매상과 270여개의 소매상이 모여 있는 이곳에 오면 왜 두바이를 황금의 도시라고도 부르는지 이해가 갈만큼 머리 위에서 발끝까지 금으로 치렁치렁 치장한 화려한 가게의 쇼윈도가 관광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쇼윈도 안에는 도대체 저 목걸이와 팔찌의 수요자는 누구일까 의문이 갈 만큼 크고 이국적인 느낌의 장신구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런 의문은 그리 오래지 않아 풀린다. 검은색 차도르를 입고 손목과 손을 육중한 크기의 팔찌와 반지 등으로 번쩍번쩍 장식한 두바이의 여인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스타투어(Star Tour) ☎:(02)723-6360 http://www.startour.pe.kr 블로그 : 스타투어 E-mail: [email protected]

두바이에 사는 한국인이 행복한 9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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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지어진 두바이의 새로운 랜드마크 `두바이 프레임` /사진=두바이 관광청 ▶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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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페스티벌에서 김치를 받아가는 현지인들

[두바이 파일럿 도전기-46] 사실 사람 사는 것이 비슷비슷하다. 외국에 산다고 해서 천국인 것도 아니고, 아무리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라고 말하지만 외국에 나가보면 “아 한국이 좋았구나” 하고 깨달을 수도 있는 것이다. 다만 한국이 아닌 외국에 살면 느끼는 점도 색다른데, 아랍에미리트 두바이란 곳은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가 아니기에 더욱 그런 게 있는 것 같다. 두바이에서 거주하는 사람으로서 살면서 이곳이 좋다고 느낀 이유 9가지를 정리해봤다.1. 글로벌 마인드를 키울 수 있다두바이는 정말 다양한 인종과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개인적 느낌으로는 미국 뉴욕보다 더 심한 것 같다. 사람들은 대부분 나 같은 노동자들이다. 이곳은 현지인 비중이 전체인구의 20%도 안 되는 비율이기에 정말 다양한 문화가 섞여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나 요르단 같은 가까운 중동 나라들부터 시작해서 인도 파키스탄, 그리고 저 멀리 브라질이나 유럽인들까지 흔히 말하는 ‘Melting Pot’의 절정이 이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뭐 나만 해도 같이 한솥밥 먹는 동기들이 영국, 스웨덴, 말레이시아, 미국, 중국, 모로코, 요르단 등 엄청 다양하게 있으니 말이다. 어딜 가나 한국인이 95%를 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기 때문에 글로벌 마인드를 쉽게 취득할 수 있다.2. 해외여행 가기에 최적 위치다두바이 장점 중 하나가 정말 축복받은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어디든지 여행 가기 편하다는 점이다. 세계지도를 보면 아랍에미리트가 중동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왼쪽으로는 유럽과 아프리카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유라시아 대륙의 중심이다.따라서 대서양을 건너야 하는 아메리카 대륙을 제외하고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의 웬만한 나라들까지 짧게는 1~2시간부터 길게는 10시간 이내면 다 가고도 남는다. 우리나라에서 일본이나 중국 가는 비행기 삯으로 웬만한 유럽이나 아프리카를 맘껏 갈 수 있다.3. 매우 안전하다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들 하나가 중동 정세가 불안하니 두바이 치안도 나쁘지 않으냐고 하는데, 두바이의 치안은 사실 세계적으로도 안전하다고 정평이 난 편이다. 각종 통계를 봐도 항상 세계 1~5위 안에 들어간다. 사실 ‘치안’ 하면 한국도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안전 국가 중 하나인데, 대충 우리나라에서 살던 느낌 그대로 이곳에서도 살 수 있다고 보면 된다.물론 그렇다고 돈이 든 가방을 차에 두고 내린다든지 하는 사고는 제외하고 일반상식에 비추어봤을 때 안전하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이슬람국가 특성상 기본적으로 슈퍼마켓에서 술을 팔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저녁에 술 먹고 행패부리고 하는 주취형 범죄도 거의 없다.4. 세계 음식을 쉽게 구할 수 있다두바이 마트에 가면 정말 없는 음식이 없다. 중동 음식뿐 아니라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유럽 음식들도 다양하게 팔고 있으며, 심지어 일본이나 중국 음식 그리고 우리나라 라면이나 김치까지 모두 마트에서 취급하고 판매한다. 보통 파키스탄이나 모로코 그리고 이집트나 요르단 같은 곳에서 수입한 과일들이 많이 있고, 유럽이나 호주 그리고 미국에서 수입해온 곡류나 과일도 꽤 많이 있다.물론 포도나 딸기 그리고 수박 같은 건 우리나라산 과일이 최고지만, 찾아보면 이곳도 꽤 쏠쏠하고 맛있는 과일이 많다. 나는 주로 이곳에서 이집트산 석류를 즐겨 먹는 편인데, 대충 우리나라와 비교해서 3분의 1 정도는 저렴한 것 같다.5.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한다.현재 두바이는 2020년에 예정돼 있는 ‘두바이 세계 엑스포’로 인해 지금 엄청나게 건물을 올리고 있으며, 이곳저곳에서 공사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그만큼 도시가 활기차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은 부문에 진출해 있다. 에미레이트, 에티하드 같은 항공 쪽이나 각종 건설 현장 그리고 원전 같은 에너지 부문에서도 많은 한국인들이 지금 이순간에도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이처럼 지난 15년 동안 두바이 경제가 정말 급속하게 성장했기 때문에 이곳에는 많은 기회들이 도처에 몰려 있다. 만약 적절한 교육을 받고 일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두바이에서 직업을 구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물론 영어가 된다는 전제로….6. 절대 춥지 않다.이게 말이 좀 웃기긴 한데, 정말 그렇다. 나처럼 추운 거 싫어하는 사람에겐 희소식이다. UAE 두바이가 중동에 있다 보니 1년 내내 덥지 않으냐고 묻는 사람들이 가끔 있던데, 아니다. 물론 더울 때는 미친듯이 덥지만 9월부터 2월까지 1년 중 5개월 정도는 날씨가 괜찮은 편이다. ‘엄청 더운 날씨 vs 엄청 추운 날씨’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차라리 더운 걸 택하는, 나와 같은 추운 걸 정말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두바이의 환경이 차라리 나은 편이다.사실 거의 모든 생활이 실내에서 이뤄지는 편이기 때문에 엄청 더운 여름에도 밖에 나갈 일이 거의 없다. 그래서 여름의 극악함을 느낄 수 있는 건 어디론가 이동하기 위해 밖에 나가 주차돼 있는 차로 뛰어갈 때의 시간 10초 정도라 보면 된다. 하루 종일 에어컨을 틀어놓고 있어 안에서는 오히려 추울 때도 많다.7. 기름값이 정말 싸다중동 국가에서 건너온 사람이 아니라면, 우선 이곳의 기름값에 놀라게 될 것이다. 현재 대략적으로 리터당 우리나라 돈으로 현재 500~600원 정도 한다. 기름을 끝까지 채우면 약 25000원 안팎인 것 같다. 근데 이것도 예전보다 많이 인상된 가격이다. 그러다 보니 거리를 보면 정말 누가 봐도 ‘이건 기름잡아먹는 괴물이다’ 싶은 몬스터 차들이 잘만 돌아다닌다. 연비따위는 전혀 신경 안 쓰는 리터당 1㎞씩 가는 차들 말이다.8. 영어를 사용한다.아랍에미리트 공식 언어는 아랍어다. 하지만 아랍어를 정말 하나도 몰라도 사는 데 전혀 지장 없다. 물론 아랍어를 배워서 나쁠 건 없지만 그냥 영어 하나만 잘해도 정말 삶을 윤택하게 살 수 있다. 파리나 로마 같은 곳도 물론 좋은 도시지만, 나 같은 사람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익숙한 영어 국가가 더 살기엔 아무래도 편한 법이다. 그래서 ‘영어 실력도 키울 수 있고 글로벌 감각도 키울 수 있으니 이 어찌 좋지 아니한가’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있다. 다른 외국어를 배우기에도 좋은 환경이다. 다른 국적의 사람들이 많다 보니 뜻만 있으면 언어 교환 친구를 만드는 것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9. 한국인에게 친절하다원래 ‘×× 나라에서 왔습니다’라고 하면 다양한 미신과 선입견에 잡혀 있게 마련이다. 때로는 인종차별적 선입견을 갖기도 하는데, 참 이게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나라의 국력이나 위치에 따라 아예 처음부터 평가절하를 깔고 들어가는 거라 좀 많이 유감스러운 대목이다.뭐 어쨌든 한국인에게는 다행하게도 이 나라는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적어도 디스카운트 당할 일은 없다. 우리나라가 투자를 많이 해서 그런지 이해도도 높고 한국인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K팝이나 한국 화장품들도 현지에서 은근 인기가 많다. 때로는 보통 레스토랑에 가면 점원들이 먼저 알아보고 “안녕하세요”라고 말할 때도 있다.[Flying Johan/ [email protected]][ⓒ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두바이, 전기·수도기업 민영화한다

지분 6.5% 증권거래소에 상장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의 수전력청(DEWA)이 기업공개(IPO)를 통한 민영화에 나선다고 15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보도했다. 전체 지분의 6.5%인 32억5000만 주를 두바이 증권거래소(DFM)에 상장할 계획이다.

사에드 알테이어 DEWA 최고경영자(CEO)는 상장 소식을 전하며 “두바이의 빠른 성장으로 전기와 수도 수요가 증가하면서 DEWA의 경쟁력이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섰다”고 말했다. 시장이 추정하는 DEWA의 가치는 1000억다르함(약 33조678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기준 조정 EBITDA(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는 121억다르함, 순채무는 176억다르함 수준이다. 상장하면 UAE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IPO가 된다.

두바이 정부가 DEWA 상장을 추진하는 것은 침체된 민간 자본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두바이는 UAE 내 경쟁 토후국인 아부다비와 사우디아라비아 등을 따라잡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2000년 설립된 두바이 증권거래소는 한동안 호황을 누렸지만 DP월드 이마르몰 등 일부 기업의 상장 폐지가 잇따르면서 위기감이 높아졌다. 반면 아부다비와 사우디 증시는 거래량과 규모가 빠르게 커졌다.

두바이 정부는 추가로 6개 국영기업의 지분을 일부 매각할 계획이다. 항공사를 보유한 에미레이트그룹 등이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FT는 전했다. 도로공사 격인 살릭과 수도·전기·가스 공급업체 임파워, 비즈니스파크를 운영하는 테콤 등이 일부 주식을 상장한다.

박주연 기자 [email protected]

두바이 — Google Arts & Culture

두바이는 페르시아 만 남동쪽 해안에 위치한 아랍에미리트의 최대 도시이다. 아랍에미리트를 구성하는 7개의 토후국 가운데 하나인 두바이 토후국의 수도이다. 인구는 2,106,177명으로 아랍에미리트에서 최대이며 면적은 4,114km²로 아부다비에 이어 두 번째이다. 두바이는 아부다비와 함께 나라의 연방평의회에서 결정한 잘못된 법을 거부할 수 있는 거부권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두 개의 토후국이다. 도시는 아랍에미리트 북부 해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두바이-샤르자-아지만 대도시권을 이끄는 중심 도시이다. 두바이는 요즘 도시 국가 또는 독립된 국가로 자주 오인하는데, 경우에 따라서 UAE 전체 대표로 “두바이”로 표기하기도 한다.

두바이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075년이며 1799년 최초로 도시로 언급되었다. 1833년 셰이크 막툼 빈 버티 알 막툼이 바니야스 부족에서 800명을 이끌고 두바이를 공식적으로 세웠고, 현재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영토인 세컨드 사우디 스테이트에서 살기 시작했다. 바니야스 부족의 알 파사 씨족 역시 두바이 크리크에서 막툼을 따라 떠났다. 1892년에는 영국이 두바이를 지켜준다는 명분하에 독점 조약을 체결했고 1971년 아랍에미리트 연방에 가입할때까지 영국의 통제하에 있었다. 두바이는 지리학상으로 중요한 곳에 위치하면서 20세기가 시작된 이후로 중요한 무역 허브 중심지로 성장했고, 이미 중동에서 중요한 항구가 되었다.

오늘날 두바이는 중동과 페르시아 만 지역의 문화 중심지로 꾸준히 성장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대도시로 떠오르고 있다. 또 화물과 여객 교통의 중심지이다. 두바이의 경제는 석유 산업으로부터 발전하기 시작했지만, 계속해서 사업을 해온 결과 현재는 관광, 항공, 부동산, 금융 서비스 등이 경제를 이끌고 있다. 최근에는 혁신적인 대형 건설 프로젝트와 국제적인 스포츠 행사를 개최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있다. 도시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더 월드, 팜 아일랜드, 워터프런트와 같은 사람이 만든 인공섬, 초고층 호텔, 세계에서 가장 큰 쇼핑몰,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 부르즈 할리파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관심이 증가하면서 공사 중 남아시아 노동자들의 인권문제와 노동이 문제가 되고 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로 세계 경제시장이 침체되면서 두바이 역시 2008년부터 2009년까지 큰 타격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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