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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 – 나무위키:대문
북유럽의 발트 3국 중 최북단에 위치한 국가. 남쪽에는 라트비아, 동쪽으로 러시아, 북쪽의 발트해를 지나면 핀란드가 위치하고 있다.
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1/20/2022
View: 5339
에스토니아(Estonia)
에스토니아는 발틱 국가들 중 가장 북쪽에 있는 작은 나라로 면적은 스위스와 비슷하다. 동쪽으로 러시아, 남쪽으로는 라트비아와 국경을 이룬다. 서쪽에는 발틱해와 리가 …
Source: shoestring.kr
Date Published: 10/14/2021
View: 9502
에스토니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종족구성은 에스토니아인 65.3%, 러시아인 28.1%, 우크라이나인 2.5%, 벨라루시인 1.6% 등이다. 언어는 에스토니아어와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종교는 대부분 기독교(루터교) …
Source: encykorea.aks.ac.kr
Date Published: 11/15/2021
View: 6275
에스토니아 – 국가/지역별 정보 > 외교부 해외안전여행
에스토니아아에는 우리대사관이 없으며, 주핀란드한국대사관이 겸임하고 있습니다. ㅇ 주소 : Erottajankatu 7 A, Helsinki, Finland
Source: www.0404.go.kr
Date Published: 1/1/2022
View: 1831
라트비아·에스토니아도 중국·중부유럽 협력체 ’16+1′ 탈퇴 – 한겨레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가 중국이 동부·중부 유럽 국가들과의 협력을 위해 꾸린 이른바 ’16+1′ 정상회의에서 탈퇴한다고 선언했다.
Source: www.hani.co.kr
Date Published: 5/25/2022
View: 5299
에스토니아
에스토니아는 북유럽에 위치하며 북쪽과 서쪽은 발트 해, 동쪽은 러시아, 남쪽은 라트비아와 닿아 있다. 수도는 탈린이다. 정식 명칭은 에스토니아 공화국이다.
Source: artsandculture.google.com
Date Published: 2/2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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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EBSDocumentary (EBS 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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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17.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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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에스토니아 2021
에스토니아(에스토니아어: Eesti 에스티 [ˈeːsʲti] (도움말·정보) , 문화어: 에스또니야)는 북유럽에 위치하며 북쪽과 서쪽은 발트해, 동쪽은 러시아, 남쪽은 라트비아와 닿아 있다. 수도는 탈린이다. 정식 명칭은 에스토니아 공화국(에스토니아어: Eesti Vabariik 에스티 바바리크 )이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독립국가를 선언하였으나, 1940년 다시 소련에 강제 점령 병합되었다. 50년 뒤 노래 혁명과 발트의 길을 비롯한 독립운동과 소련 해체로 1991년 8월 20일 자주권을 회복하여 공화국이 되었다. 2008년 5월 1일에 유럽 연합에 가입했다. 발트 3국의 최북부에 있으며, 빙하 작용을 받은 토지는 낮고 평평하다. 기후는 습윤하며, 삼림·습지·목초지는 매우 넓다. 민족 구성은 65%가 에스토니아인이다. 공용어로는 에스토니아어를 사용한다. 의회는 단원제로 직접 선거로 선출되며 임기는 4년이다. 발트해를 따라 핀란드, 스웨덴과 국경을 접한다. 핀란드에서는 에스토니아를 “Viro”(비로)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1]
역사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에스토니아의 역사 입니다.
에스토니아는 상고적부터 핀우그리아어파의 언어를 사용하는 우랄계 민족인 에스토니아인들의 땅이었으며, 리보니아의 발트족과도 관계를 주고받았다. 중세에 독일의 프라테스 밀리치아이 크리스티(Fratres militiae Christi) 기사단의 리보니아 원정에 의해 1227년 정복되며 기독교화되었다. 이후 덴마크의 지배를 받다가 17세기 스웨덴-러시아 전쟁의 결과로 스웨덴령으로 넘어갔다. 18세기부터는 러시아 제국에 의한 지배를 받게 되었는데, 19세기 초부터 이른바 국민계몽(Ärkamisaeg)으로 불리는 민족주의 부흥 시대가 시작되며 민족 독립을 원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10월 혁명으로 제정 러시아가 무너지고 난 뒤 1918년 2월 24일 에스토니아는 독립국가가 되었다. 1934년에 초대 국무총리였던 콘스탄틴 패츠(Konstantin Päts)가 쿠데타를 일으켰고, 1939년 8월 23일 소련은 나치 독일[2] 과 리벤트로프-몰로토프 밀약을 맺어 중앙유럽을 독일과 소련이 각각 분할하기로 하는 비밀 의정서를 만들었을 때[2][3] 같은 의정서에서 에스토니아는 소련의 영향권에 두기로 인정받았다.[3] 소련은 1940년 6월 중순에 에스토니아를 점령하여 소련의 내무인민위원회 요원은 에스토니아의 국경 초소를 급습하였고,[4][5] 에스토니아군을 몰아낸 뒤 소비에트 간부단으로 대신하였다.[4][6] 의회와 여타 정부 부처의 공직자를 뽑는 선거에서는 명부에 후보자가 한 명씩밖에 없었는데, 독재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명분으로 선거가 치러져 선거의 공식 결과에서 친(親)소련 후보가 92.8%의 표를 얻었다.[4] 그렇게 구성된 의회는 곧 소비에트 연방에 가입할 것을 요청하였으며, 소련의 승인을 얻어 1940년 8월 6일, 에스토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소련에 병합되었다.[4] 국제 사회는 이와 같이 진행된 소련의 발트 3국 병합을 불법으로 보고 비판하였다.[7][8] 에스토니아는 1941년 6월 하순부터 1944년까지 나치 독일군에게 점령되었다. 1991년 8월 20일 노래혁명과 소련의 붕괴로 독립을 되찾았으며, 8월 20일은 에스토니아의 국경일로 지정되어 있다.
소련 군대가 에스토니아를 떠난 1994년 8월 31일 이후 에스토니아는 서유럽과의 관계 정상화에 노력을 기울여 2004년 3월 29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2004년 5월 1일 유럽 연합(EU)에 가입했고, 2011년 1월 1일부터 유로를 공식화폐로 도입했다.[9][10] 에스토니아는 세계에서 최초로 휴대폰으로 투표를 치르게 되는 방식을 2012년에 도입하여 주목을 받았다.[11]
지리 [ 편집 ]
에스토니아는 국토 전체가 빙하침식에 의한 평야 지대이다. 남쪽으로 라트비아와 접하며, 동쪽으로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는데 이쪽에 페이푸스 호가 있다. 서쪽으로 발트해, 북쪽으로 핀란드만을 끼고 있기도 하다. 평균 해발고도가 50m에 불과하고 가장 높은 지대라고 해도 318m에 지나지 않는다.
유혈암(오일셰일)과 석회석 그리고 전체 국토의 7%에 해당하는 삼림이 국가 경제의 주 원동력이 되고 있다. 에스토니아에는 1,400여 개나 되는 작고 큰 호수가 있다. 거의 대부분은 작지만 가장 큰 호수는 3,555km2에 이르는 페이푸스호(Lake Peipus)이다. 강 줄기도 많아서 162km의 지류인 버한두강(Võhandu), 패르누강(Pärnu) 등이 있다.
에스토니아 인근의 도서 지역은 1,500여 개 이상인 것으로 추측되며 가장 큰 두 섬은 사레마섬(Saaremaa)과 히우마섬(Hiiumaa)이다.
냉량습윤한 해양성기후이며, 평균기온은 1월 -5.9°C, 7월 16.8°C이고, 연강수량은 600~750mm다.
정치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에스토니아의 정치 입니다.
에스토니아는 의회 공화제를 채택한 단일 국가이다. 단원제 입법부로 리기코구 (Riigikogu)가 있으며, 행정부로는 에스토니아 정부를 두고 있다.[12]
리기코구는 에스토니아의 의회로, 총 101인의 국회의원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4년이다. 매 선거마다 18세 이상의 에스토니아 국민이 투표에 참여하며, 전원 비례대표로 선출된다. 리기코구는 에스토니아 정부를 승인하는 역할을 맡으며, 통상적인 입법 활동, 국가예산 수립, 국회 감사활동 등을 수행한다. 또한 에스토니아 대통령의 승인을 거쳐 에스토니아 대법원장, 에스토니아 은행 총재, 감사원장, 법무관, 총사령관을 임명할 권한도 지닌다.[13][14]
에스토니아 총리는 대통령의 권고에 따라 에스토니아 정부를 수립하며, 의회의 승인으로 공식 출범한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총리가 수장을 맡으며, 자국 현안과 대외정책을 펼쳐 나간다. 중앙정부 산하 부처에는 장관을 수장으로 각자 부문에 대한 업무를 관할한다. 한편 별도의 소속부처 없이 활동하는 ‘무임소 장관’도 가끔씩 임명된다.[15] 에스토니아 정부는 여러 정당이 내각에 참여하는 연립내각 체제를 띄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원내에서 한 정당이 과반 의석수를 차지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12]
에스토니아 의회 리기코구 의 국회의사당으로 쓰이는 톰페아성
에스토니아의 국가원수는 에스토니아 대통령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동시에 의례적인 역할을 맡는다. 에스토니아 대통령은 국민에 의한 직접선출이 아닌, 의회에서 특별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로 선출된다.[16] 대통령은 의회에서 통과된 법을 승인하는 권한을 지니며, 법안을 의회로 돌려보내 새 토의와 결의를 진행토록 하는 승인 거부권 행사도 할 수 있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을 의회가 다시 한번 통과시킬 경우, 대통령은 해당 법안의 위헌심판을 청구할 권리를 지니게 된다. 이밖에도 에스토니아 대통령은 국제 외교무대에서 국가를 대표하는 역할을 맡는다.[12][17]
에스토니아 정부는 전자정부 구축을 적극 추진하고 있으며, 전체 행정 서비스의 99%가 하루 24시간 언제든지 온라인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하였다.[18] 2005년 에스토니아는 지방선거에 즈음하여 세계 최초로 인터넷을 통한 전자투표를 실시하는 국가가 되었다.[19] 가장 최근인 2019년 총선에서 전체 투표수 중 44%가 온라인 투표인 것으로 집계되었다.[20]
가장 최근 선거인 2019년 에스토니아 총선에서는 총 다섯 개 정당이 국회의원을 배출하였다. 에스토니아 중도당의 당대표인 위리 라타스가 에스토니아 보수인민당, 이사마당과 함께 연립내각을 이루며 총리 연임에 성공하였다. 나머지 에스토니아 개혁당과 사회민주당은 야당으로 남게 되었다.[21] 하지만 2021년 1월 라타스 총리가 부패혐의로 실각하고,[22] 에스토니아 개혁당의 카야 칼라스 당대표가 에스토니아 최초의 여성 당대표로써 에스토니아의 총리로 선출하였다. 칼라스 총리는 야당이 된 에스토니아 중도당과의 연립내각을 통해 원내 1·2당이 참여하는 안정적인 정치 기반을 확보하였다.[23]
에스토니아 헌법에서 국민투표를 통한 직접민주주의 실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으나, 1992년 헌법 제정 이래 실시된 국민투표는 2003년 유럽연합 가입 국민투표가 유일하다.[24]
사법과 치안 [ 편집 ]
국가의 기본법으로 에스토니아 헌법이 있으며, 인간의 존엄성, 민주주의, 법치국가, 사회국가, 에스토니아의 정체성이라는 다섯 가지 원칙에 의거한 헌법적 질서를 수립하고 있다.[25] 에스토니아 법률은 대륙법 체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독일법을 모델로 삼고 있다.[26]
에스토니아의 사법제도는 3심제이다. 1심은 모든 형사·민사 사건을 처리하는 주법원과, 중앙정부 및 지역정부 당국을 상대로 하거나 기타 사회적 분쟁을 다루는 행정법원으로 나뉜다. 2심으로 구역법원이 있으며, 항소 사건을 심판한다.[27] 3심인 대법원은 상고법원으로서 헌법재판도 겸하는데, 총 19인의 대법관으로 구성되어 있다.[28] 법원은 독립성을 준수하며, 판사도 종신직으로서 범죄행위로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에만 판사직에서 물러날 수 있다.[29] 에스토니아의 사법제도는 유럽연합 사법평가 (EU Justice Scoreboard)에서 EU 회원국 가운데서도 가장 효율적인 제도로 평가받은 바 있다.[30]
오늘날 에스토니아는 유럽에서도 가장 안전하고 안정된 국가로 꼽히지만, 90년대와 2000년대만 하더라도 조직범죄가 만연했다. 당시 조폭 세력들 간의 느슨한 연대가 구축되어 있었는데 특히 러시아 출신 조직이 많았으며, 매춘, 차량절도, 마약거래 등 다방면으로 활동자금을 확보했다. 옛날에는 핀란드의 공사업체로 노동자들을 ‘알선’시켜 그 임금을 가로채는 조직들도 큰 문제가 되었다.[31] 에스토니아의 마피아 단체 역시 규모는 작을지언정 계급과 조직이 탄탄하기로 유명했으며, 다소 위축된 모습이기는 하나 지금까지도 여전히 잔존해 있다.[32][33][34][35] 같은 시기 에스토니아의 살인률 역시 역대 최고를 기록하였는데 1999년부터 2001년까지 인구 10만 명당 9.4명이 살해된 것으로 평균치가 집계되기도 했다.[36]
대외 관계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에스토니아의 대외 관계 입니다.
에스토니아의 대사관 주재국 현황
에스토니아는 1921년 9월 22일 국제연맹에 가입하였으며, 소련 해체 후인 1991년 9월 17일 유엔에 다시 가입하였다.[37][38] 주권 독립 이래 에스토니아는 서방 국가와의 밀접한 외교를 추진하고 있으며 그 영향으로 2004년 3월 29일 나토에, 2004년 5월 1일 유럽연합에 가입하였다.[38] 2007년에는 솅겐 조약에 서명하였으며 2011년에는 유로존에 가입해 유로화를 공식 통화로 채택하였다.[38] 이러한 노력과 더불어 2012년 말 수도 탈린에서 유럽연합 산하 대규모 IT시스템 운영관리국이 출범하여, 유럽연합 산하기관 본부가 처음으로 설치되었다.[39] 2017년 하반기에는 유럽 연합 이사회 의장국이 되었다.[40]
에스토니아는 같은 발트해 연안국인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와 함께 발트 3국으로 불리며, 소련으로부터의 독립국 지위를 되찾은 1990년대부터 활발한 3자 협력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발트3국 의회 간의 실질적인 지역 협력체인 발트 의회가 설치되어 있으며, 발트3국 정부간의 협력와 더불어 ‘발트 협의회’라는 공동포럼을 수립하였다.[41] 에스토니아는 노르딕 국가과의 북유럽 협력관계에도 참여하고 있으며, 특히 핀란드와 스웨덴과 밀접한 외교관계를 이루고 있다. 또 노르딕3국과 발트3국을 잇는 외교 협의체인 NB8의 회원국으로 남아있다.[38][42] 노르딕3국과 발트3국 간의 공동 프로젝트로는 다국가 교육 프로그램인 ‘노르드플러스’ (Nordplus)[43]와 경제산업 부문과 공공행정 부문의 유동성 강화 프로그램[44][45]이 있다. 또 노르딕 장관 협의회는 탈린에 사무소를, 타르투와 나르바에 부사무소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46][47] 에스토니아를 비롯한 발트3국은 노르딕 투자은행, 유럽연합 노르딕 전투군 회원국이며 2011년에는 노르딕 방위협력체 (NORDEFCO)와 특정 부문활동 협력이 이뤄지기도 했다.[48][49][50][51]
에스토니아는 그 지리적 인접성 탓에 노르딕 국가로 보자는 목소리도 적지 않은데, 이 같은 발상은 1999년 12월 토마스 헨드리크 리베스 에스토니아 외무장관이 스웨덴 국제외교연구소에서 “노르딕 국가로서의 에스토니아”란 이름의 연설을 하면서 본격화되었다.[52] 여기에는 자국에 비해 발전이 더뎌서 에스토니아의 EU 조기 가입을 늦출 수도 있었던 남쪽 이웃국가, 즉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와 차별되길 바라는 정치적 계산이 작용하였다.[53] 2005년 안드레스 카세캄프는 발트 3개국이 유럽연합과 나토에 다같이 가입하면서 정체성 공감대는 줄어들었지만, 미래에는 발트3국 내 노르딕 정체성 환기가 증대하여, 노르딕 5국과 발트 3국이 하나의 지역단위로 묶이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53]
이 밖에도 에스토니아는 OECD, OSCE, WTO, IMF, 발트해 국가 이사회 등의 국제기구의 회원국으로 있다.[38][54][55] 2019년 6월 7일에는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비상임이사국으로 선출되어, 2020년 1월 1일부터 임기를 수행하게 되었다.[56]
러시아와의 관계는 역사적인 배경과 외교적 갈등으로 여전히 냉랭한 관계를 이루고 있으며, 특히 에스토니아에 거주하는 러시아인 문제와 러시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에 편입된 일부 영토의 영유권 주장에 따른 갈등을 겪고 있으나, 부분적인 외교 협력은 지속되고 있다.[57] 미국과의 관계는 친서방 정책으로 매우 좋은 편이었으나, 도널드 트럼프 정권 시절 외교적 갈등을 빚어 제임스 멜빌 에스토니아 주재 미국 대사가 물러나는 사건이 있었다. 대한민국과의 외교 관계는 1991년 독립 직후부터 이뤄져 왔으며, 북한과는 2006년 핵 실험을 계기로 국가승인을 취소한 이래 미수교 상태로 남아 있다.
군사 [ 편집 ]
2015년 나토 연합훈련 당시 에스토니아군 병사
에스토니아의 국방을 책임지는 군조직으로 에스토니아 방위군이 있으며 에스토니아 지상군, 에스토니아 해군, 에스토니아 공군으로 구성된다. 에스토니아는 징병제 국가이며, 만 18세~28세의 건강한 남성을 대상으로 8개월에서 11개월의 의무적인 병역을 부여하고 있는데, 이때 복무기간은 훈련과 군 보직에 따라 갈린다.[58] 에스토니아 방위군의 평시 군병력은 6천 명으로 이 중 절반이 병역수행 인원에 해당된다. 전시 동원되는 군병력은 6만 명으로 산정되어 있으며, 2만 1천명은 상시 투입 준비된 상태로 남아 있다.[59] 에스토니아의 국방예산은 나토의 국방지출 기준에 따라 2015년부터 국가 GDP의 2% 이상으로 책정되었다.[60]
에스토니아 방위 연대는 에스토니아 국방부 감독 하에 있는 자발적인 방위조직이다. 군사원칙을 기반으로 조직되어 자체 군장비를 갖추고 있으며, 소속대원들을 위해 게릴라 전술을 비롯한 다양한 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방위연대는 총 1만 6천명의 대원이 소속되어 있으며 여기에 제휴단체 소속 1만 명도 추가로 속해 있다.[61][62]
에스토니아는 발트해 공동방위 이니셔티브를 통해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와 협력하고 있다. 삼국은 발트 항공 감시 네트워크 (BALTNET)의 일환으로 NATO 대응군으로 참여하는 발트해 영공관제 센터, 발트대대 (BALTBAT)를 관리하고 있으며, 공동 군사교육기관인 발트 국방대학도 타르투에 두고 있다.[63]
에스토니아는 2004년 NATO에 가입하였으며, 2008년에는 탈린에 우수 사이버 공동 방위센터가 설립되었다.[64] 2017년부터는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군사개입에 따라 NATO 보강 전방주둔군 대대군이 타파 육군기지에 주둔하게 되었다.[65] 또 2014년부터는 NATO군의 발틱 항공 헌병대가 애마리 공군기지를 중심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66]
에스토니아는 1995년부터 세계 분쟁지역에서 국제안보 및 평화유지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레바논, 코소보, 말리 등이 대표적이다.[67] 특히 아프가니스탄에서는 2009년 파병규모가 289명에 달해 최대 규모를 기록한 바 있다.[68]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임무 수행 중 전사한 에스토니아 군인은 총 11명에 달한다.[69]
행정구역 [ 편집 ]
에스토니아의 행정 구역
에스토니아는 단일 국가이며, 1단계로 통합된 지방자치정부 체계를 두어 지역현안을 처리하도록 되어 있다. 2017년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현재 총 79개의 지방정부가 설립되어 있으며, 15개 시 (Linn)와 64개 마을 (Vald)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시나 마을에 상관 없이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동등한 법적 지위를 지닌다. 이들 지방정부는 다시 한번 15개 주를 이루어 최고 행정구역 단위를 구성한다.[70] 주 정부의 최고 지도자인 주지사는 중앙 정부가 임명하며 임기는 3년이다.
지역 대의기관으로 시의회를 두고 있으며, 매 4년마다 치러지는 지방선거에서 시의원을 선출한다. 각 시의회는 지방정부를 임명하며, 그 수장으로 시장을 둔다. 지방분권화 추세에 따라 각 지역정부는 구를 설치할 수 있으며, 이들 구는 일정한 범위 내에서 자체 권한을 보장받는다. 현재 수도 탈린과 히우마시에서 구를 설치하고 있다.[71]
공식적인 행정구역 체계 외에도 마을 (küla), 소구 (alevik), 구 (alev), 도시 등의 구분법도 존재한다. 그 기준은 인구수에 따라 세워지며, 300명 이하는 마을, 300명~1000명은 소구, 1000명 이상은 구 내지는 도시로 구분하는 것이 보통이다.[71]
경제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에스토니아의 경제 입니다.
유럽 연합의 회원국으로서 경제적으로 발달했으며,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로는 가장 성장이 빠르고 경제수준이 높은 나라이다. 이러한 급속 성장으로 에스토니아는 발틱의 호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2011년 1월 1일부터 유로화를 도입했다. 유럽 연합의 통계청인 Eurostat에 따르면 에스토니아는 2010년 유럽 연합 회원국 중 가장 낮은 6.7%의 채무율을 자랑했다고 한다.[72] 최근 세계의 매체는 에스토니아를 북유럽 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경제적 영향력, 정치, 문화가 다른 발틱 국가들과 다르기 때문이다.[73]
최근 20년 에스토니아의 성장은 핀란드, 스웨덴 그리고 독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 3개의 국가가 에스토니아의 주 무역대상이다. 에스토니아 개혁당은 에스토니아의 1인당 국내총생산을 2014년까지 유럽 연합 최고 수준까지 상승시키겠다고 주장하였다. 2007년에 시작된 경제 불황으로 에스토니아의 GDP는 2008년 2분기 1.4% 감소를 시작으로, 3분기에는 3% 이상, 4분기에는 9% 이상 감소하였다. 이에 따라 에스토니아 정부는 예산 보충안을 세웠고 이는 에스토니아 의회인 리기코구에 의해 통과되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2008년 지출은 61억 크론에서 32억 크론으로 감소하였다.[74] 2010년, 경제가 안정되고 강력한 수출로 성장이 다시 시작되었다. 2010년 4분기에는 에스토니아 공업 생산량이 전년대비 23% 증가하였다.[75] Eurostat에 따르면 2008년 에스토니아 일인당 국내총생산이 유럽 평균의 67%에 미친다고 하였다. 2011년 3월 에스토니아의 1인당 평균 월 수입은 843유로라고 발표하였다. (2011년 기준 150만원 가량)[76] 하지만 1인당 국내총생산은 지역마다 다르다. 국내 총생산의 50%를 수도 탈린에서 생산해낸다고 한다. 2008년 기준 에스토니아의 일인당 총생산은 1만 5천 불 가량이지만, 수도 탈린은 다른 지역보다 172% 높은 수치를 나타내었다. 이는 유럽 연합 평균 일인당 총생산의 115% 높은 수치라고 한다. 실업률은 11.7%로 유럽 연합 평균보다 높으며, 실제 GDP 성장률인 8%보다 높은 수치이다.[77]
발전 시작 [ 편집 ]
1929년까지 에스토니아의 화폐인 크론이 에스토니아 은행에서 발행되었다. 하지만 소련에 합병된 후 발행이 금지되었고, 서유럽에 초점을 두었던 무역도 금지 되었다. 1940년대에 있었던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농업으로 어느 정도 성장을 하는 국가였지만, 1940년 소련의 합병과 나치의 만행으로 경제적으로 피폐해졌다. 전쟁이 끝나고 독립을 한 1991년부터 에스토니아는 자국을 동구권과 서유럽을 이어주는 문으로 활용하였고, 서유럽의 경제 체제를 본따 경제 개혁을 시작하였다. 1994년 밀턴 프리드먼의 이론에 기초를 두어 에스토니아는 일률 과세를 도입하였고, 세금을 26%로 동결하였다. 그리고 2005년 1월 세금을 24%로, 2006년 1월 23%로, 마지막으로 2008년 1월 21%로 감축하였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2004년 말 자국의 유로화 디자인을 완성했고, 2011년 1월 1일 도입하였다.[78] 1999년 에스토니아는 1991년 독립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를 맞게 되는데, 이는 1998년에 있었던 러시아 금융위기가 이유가 되었다. 이후 1999년 11월 유럽 연합의 도움으로 세계 무역기구에 가입하였고, 2002년 유럽 연합의 동의를 받아 2004년 가입하게 된다. 2010년 OECD 가입으로 한번 더 경제대국이라는 것을 알리게 되었다.[79]
자원, 환경, 산업 [ 편집 ]
에스토니아가 자원이 부족한 국가로 알려져있지만, 곳곳에서 소규모의 자원이 발견되어 사용하고 있다. 유혈암과 석회석이 주를 이루며 이 국가의 48%를 덮고 있는 숲도 이에 포함된다.[80] 유혈암과 석회석 외에도 에스토니아는 인회암, 우라늄과 화강암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채굴하지 않고 있고, 그나마 채굴 하고 있는 곳도 소규모에 불과하다.[81] 최근에, 에스토니아 여론은 원자력 발전소를 짓자는 의견이 제시되었는데, 이는 동쪽 나르바에 있는 발전소들이 노후화되어 전기 공급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2016년까지 재건되지 않으면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다고 한다.[82]
식품 제조업, 건설업 그리고 전기 산업이 에스토니아의 산업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2007년 조사에 따르면 이 산업에 종사하는 종사자 수가 8만 여명이고 이는 에스토니아 노동 인구 중 12%를 차지 한다고 한다.[83] 또 이 나라의 주요 산업은 제조업과 화학 산업인데, 이다비루 주와 탈린에 많이 있다고 한다. 에스토니아는 첨단 산업의 중심지라고도 불리며 정보 산업으로 크게 발전한 국가이다. 이는 90년대 중반, 정부에서 실시한 트리그리후페 프로젝트 때문이다. 덕분에 에스토니아는 전 세계 국가 중 인터넷 속도 1위(2010년 기준)를 차지했으며, 수도 탈린 중심지의 건물은 거의 대부분 와이파이 설비를 갖추고 있다고 한다. 또한 스카이프가 바로 에스토니아에서 만들어졌는데, 창설자가 에스토니아인이고 본사가 탈린에 있다고 한다.[84]
무역 [ 편집 ]
에스토니아와 각 국가간의 무역 비율
사회 [ 편집 ]
주민 [ 편집 ]
에스토니아의 인구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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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차 대전 이전, 에스토니아를 차지하는 에스토니아인은 전체 인구의 88%를 차지했다. 1934년 통계에 따르면 12%를 차지하는 소수 인에는, 러시아인, 독일인, 스웨덴인, 라트비아인, 유대인, 폴란드인, 핀란드인이 주를 차지하였다. 소련 아래에 있던 1945년부터 1989년까지, 에스토니아를 차지하는 에스토니아인은 전체 인구 61%대로 떨어졌고, 러시아인, 벨라루스인 그리고 우크라이나인의 대거 유입으로 도시화가 시작되었다. 1989년까지 에스토니아의 소수인들은 에스토니아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하지만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인의 전출로 인해 지금까지도 급격한 인구 감소를 겪고 있다.
현재 주민은 에스토니아인이 65.3%, 러시아인이 28.1%, 우크라이나인이 2.5%, 벨라루스인이 1.5%, 핀란드인이 1%, 기타 1.6%가 있다.(1998년) 구 소련 해체후에 발트 3국 내에서 법적으로 외국인이 되어버린 러시아계 주민의 문제가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만큼은 아니나 사회적 갈등요소이다. 2007년 소련군 동상 철수로 말미암아 에스토니아에 거주하던 러시아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다.[86]
여성 1인당 합계출산율은 2005년 현재 1.5명으로 [1], 출산력 수준은 차차 회복 중에 있다. 그러나 2005년 현재 천 명당 출산율은 10.66명, 천 명당 사망률은 12.86명이어서 인구 감소세는 여전하다.
도시화 [ 편집 ]
수도인 탈린이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큰 도시이다. 에스토니아 북해안에 자리 잡았으며, 핀란드 만을 사이로 핀란드와 마주 하고 있다. 33개의 도시와 군-도시 급 마을이 있는데, 이를 합쳐 총 47개의 린”Linn”이 있는데, 이는 한국어로 도시와 마을을 의미한다. 에스토니아 전체 인구 70%가 바로 이 린에 거주한다.
종교 [ 편집 ]
루흐누 교회. 1644년 지어졌으며 현존하는 건물 중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 건축물로 꼽힌다.
에스토니아는 헌법에 따라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으며, 다채롭고 뿌리깊은 종교 역사를 지닌 나라이다. 하지만 오늘날 에스토니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비종교적인 국가로, 최근 인구조사에 따르면 전체 인구의 대다수가 본인을 무교로 밝히거나 무응답인 것으로 집계된다. 종교를 갖고 있는 국민 사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종교는 기독교이며, 루터교와 정교회를 필두로 여러 기독교 교파가 존재한다. 그 다음으로는 극소수의 비기독교 신자가 차지하며 유대교, 이슬람교, 불교 순이다. 통계에 따라서는 전체 인구 중 절반이 기독교도, 나머지 절반이 무교 혹은 무응답으로 조사된 결과도 있다.
2011년 기준 전체 인구 중 14%만이 종교가 일상생활에서 중요하다고 답했다. 2011년 통계에 따르면 동방 정교회 그리스도인이 17만 6천여명, 루터교 개신교인이 10만 8천여명, 로마 가톨릭교회가 4천 5백여명, 여호와의 증인을 믿는 사람이 4천 여명이었다.[89] 그 중에서도 러시아 정교회를 믿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러시아인들이라고 한다.[90]
헨리 리보니아 연대기에 따르면 고대 에스토니아 지역에 살았던 외셀인들은 타라피타 (Tharapita)라는 신을 믿는다며 토착신앙이 존재했음을 기록하고 있다.[91] 이후 13세기 들어 튜턴 기사단이 기독교를 처음으로 전파하였고, 뒤이은 프로테스탄트 개혁의 영향으로 1686년 루터교가 자리를 잡았다.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이전에는 에스토니아 국민의 약 80%가 개신교도로, 루터교 신자가 압도적이었다.[92][93][94] 그 다음으로는 칼뱅교와 기타 개신교 교파가 차지하였다. 다만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독일의 봉건 통치에 따라 종교가 전파되었기에,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특별히 종교에 충실하지 않다고 밝히는 경우가 많다.[95] 이 밖에도 타르투주 페이푸스호 인근 지역에는 러시아계 구교도 신자가 예로부터 소수 분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언어 [ 편집 ]
에스토니아의 공용어로는 에스토니아어가 있다. 에스토니아어는 우랄어족의 한 갈래인 핀어군에 속하며, 핀란드어와 유사하다. 이웃국가에서 사용하는 스웨덴어, 라트비아어, 러시아어는 모두 인도유럽어족에 속하기 때문에, 소수의 어휘를 차용한 점을 제외하면 언어의 기원상 관련이 없다. 유럽의 언어 중에서도 인도유럽어족이 아닌 몇 안되는 언어이기도 하다.
에스토니아어는 독일어와 유사한 어휘를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에스토니아어의 전체 어휘 중 3분의 1 가량을 독일어로부터 들여왔기 때문이다. 특히 중세 시대 독일어권 국가의 지배를 거치면서 영향을 받은 저지 작센어 (중세 저지 독일어)와 고지 독일어 (표준 독일어)로부터 유래한 어휘가 많았다. 이들 저지작센어와 고지독일어에서 유래한 어휘는 22~25%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며, 저지작센어 유래 어휘만 15%에 달한다.
에스토니아어 외에 지역 언어가 4개 있는데 이들을 남부 에스토니아어라고 부르며, 총 사용인구는 10만 여명 정도 된다. 지역 언어로는 가장 많이 쓰이는 버로어(7만 여명이 사용) 그리고 세투어, 물기어, 타르투어가 있다. 남부 에스토니아어라는 이름답게 에스토니아 남부와 동부에서 사용하며, 계통적으로는 북부 에스토니아어와 별개의 언어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또 공식적으로는 별개의 언어가 아닌 에스토니아어의 지역 방언으로 취급되고 있다.[96]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소수언어로 러시아어가 있다. 에스토니아 북동부의 나르바 같은 지역에서는 에스토니아어 화자가 소수고 러시아어 화자가 대부분인 마을도 많다. 연령별로는 40대에서 70대 에스토니아인들이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1944년부터 1990년까지 에스토니아가 소련에 편입되어 있던 시절의 영향으로, 제2언어로 의무교육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소련 해체 직후인 1990년부터 러시아어는 에스토니아 언어법에 따라 특별언어 지위를 공식적으로 부여받기도 했으나,[97] 1995년부로 해당 지위는 사라졌다. 90년대 말에 이르러서도 구소련 시절 러시아 출신 노동이민자 1세대와 2세대 대다수가 에스토니아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으며,[98] 2010년 통계에서는 비에스토니아인 중 64.1%가 에스토니아어를 사용할 줄 아는 것으로 조사됐다.[99] 러시아어 화자들은 수도 탈린과 이다비루주의 산업지역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다.
이밖에 스웨덴어 사용 지역도 존재한다. 13세기경부터 20세기까지 에스토니아의 주요 소수언어였으며, 주로 에스토니아의 발트해 연안과 섬 (히우마섬, 보름시섬, 루흐누섬)을 따라 스웨덴어 화자들이 정착해 있었다. 에스토니아가 처음 독립국이 되었던 시절, 이들 지역의 지자체는 스웨덴어를 행정상의 언어로 인정하였고, 의회에서 스웨덴어권 대표 의원이 선출되어 회의 시에 모국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 좋은 대우를 받았으며, 스웨덴과 에스토니아의 문화 융합도 이뤄졌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대다수 스웨덴어 화자들은 스웨덴으로 이주하였고, 결정적으로 1944년 소련의 에스토니아 침공 및 합병으로 러시아어에 밀려 극소수의 고령층만 사용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스웨덴어는 러시아어 다음으로 많이 사용되는 언어이며, 22개의 작은 마을에서 스웨덴어와 에스토니아어가 혼용된다고 한다.[100] 스웨덴어의 영향력이 뚜렷한 지역으로는 래네주의 노아로치교구 지역이 꼽히는데, 대부분 마을에서 에스토니아와 스웨덴어를 병기한 지명과 거리 표지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101][102]
에스토니아에서 제2외국어 중에는 영어, 러시아어, 독일어, 프랑스어를 택하는 경우가 많으며, 핀란드어, 스페인어, 스웨덴어도 인기가 있다.[103]
문화 [ 편집 ]
에스토니아의 문화적 수준은 매우 높다. 이 나라의 문맹율은 0.2% 미만이다.
음악 [ 편집 ]
매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참가하며 자국의 음악 축제인 Laulupidu를 연다. 대표적인 가수로는 레나 쿠르마, 컬리, 오트 레플란드, 비르기트 어이게멜 등이 있다.
각주 [ 편집 ]
외부 링크 [ 편집 ]
에스토니아 [ 편집 ]
대한민국 [ 편집 ]
에스토니아(Estonia)
통계 자료
국명: 에스토니아공화국
면적: 45,200평방km
인구: 150만
수도: 탈린(Tallinn – 인구 443,000)
인종: 에스토니아인(62%), 러시아인(30%), 우크라이나인(3%)
언어: 에스토니아어
종교: 기독교23%(루터교 및 러시아정교)
정체: 독립공화국 지리 및 기후
에스토니아는 발틱 국가들 중 가장 북쪽에 있는 작은 나라로 면적은 스위스와 비슷하다. 동쪽으로 러시아, 남쪽으로는 라트비아와 국경을 이룬다. 서쪽에는 발틱해와 리가만(Gulf of Riga)이 있고, 북쪽에는 핀란드만이 있다. 핀란드만을 건너 80km지점에 헬싱키가 있다. 북서해안에 위치한 수도 탈린(Tallinn)의 서쪽320km에 상페테스부르그가 있다. 국토는 비교적 평평하지만 남동부에 있는 317m 높이의 제일 높은 산 수우르 무나매키(Suur Munamägi)에서 힘들지 않고 많은 곳을 볼 수 있다. 에스토니아와 러시아의 국경지역에 있는 페이푸스(Peipus)호수는 3500평방km로 유럽에서 네 번째로 크다. 에스토니아 전국토의 10%가 섬이다. 가장 큰 섬은 사아레마아(Saaremaa)와 히이우마아(Hiiumaa)로 둘 다 서부해안에 있다. 국토의 절반은 산림이며, 약4분의1은 습지대인데 일부 토탄습지는 깊이가 6m나 된다.에스토니아에는 1470가지에 달하는 다양한 토착식물이 있는 한편, 동물들 가운데는 노루와 엘크를 포함한 커다란 유럽포유동물이 많이 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 10가지의 희귀보호 양서류가 있다. 황금독수리(250쌍), 꼬리가 긴 독수리, 점박이독수리, 수리부엉이 등과 같은 수많은 맹금류들이 보호받고 있으며, 희귀종인 검은 황새도 있다. 에스토니아 산속의 가장 특이한 구경거리는 유럽산 날다람쥐이다. 기후는 대륙에 접하고 있어 차고 습하며, 내륙으로 들어갈수록 해안보다 겨울에는 몇 도 정도 기온이 낮고 여름에는 약간 더 덥다. 겨울은 매섭게 춥다. 히이우마아와 사아레마아섬을 둘러싼 바다는 1월 중순쯤 얼어붙어 나라 전체가 눈으로 덮여 있는 약 3개월 동안은 녹지 않는다. 비는 9월에 가장 많이 내리고 봄에 가장 적게 온다. 역사
국가정체성과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수세기에 걸친 투쟁은 에스토니아 역사의 상징이다. 이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지는 적어도 BC 7500년부터이지만 현재 거주민의 조상은 아마도 BC3000년에서 2000년 사이에 들어온 피노–우그리아족(Finno-Ugric)의 수렵인들이었다이 지역이 방치되었다가 역사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3세기의 식민지 개척자이자 무역상이었던 게르만 왕자의 동으로 향하는 열망에 의해서 였고, 그 후 에스토니아는 곧 외부세력의 지배에 들어가면서, 어두운 역사는 7세기 동안 이어진다. 독립국가로 부상하려는 투쟁은 1920년 에스토니아 국회와 영구적인 독립을 인정한다는 소련과의 평화조약이 맺어짐에 따라 성취되는 듯 하였다. 그러나 기세가 오르던 소련과 팽창주의자 나치독일이 걸림돌이 되었고, 에스토니아는 1934년 수상 콘스탄틴 패츠(Konstantin Päts)가 독재정권을 잡아 민주주의에서 권위주의로 빠져든다.1939년 나치와 소련 간의 불가침협약에서 비밀리에 에스토니아를 소련의 영향권에 넣었고 소련정부는 국가주의화와 숙청을 단행하여 6만 명의 에스토니아인을 조사하여 학살, 이주 또는 추방한다. 바로 이 때문에 일부 에스토니아인들은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략하고, 발틱국가들을 점령했을 때 아돌프 히틀러의 군대를 해방자로 잘못 알게 된다. 에스토니아는 2차 세계대전으로 약 40만 명을 잃었고 독립을 다시 상실했다. 1944년 소련의 재점령으로 집단농업화와 수천명의 에스토니아인을 학살하고 강제 이주시키는 스탈린시대가 시작된다.에스토니아는 수 십년에 걸친 소련의 지배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유를 갈구한다. 1980년대 말 소련지도자 미카엘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는 그들의 희망과 일치하는 주장을 하였고, 그간의 울분과 민족정서가 합쳐져 자치를 요구하는 대규모의 집회가 이어졌다. 1988년 수많은 사람들이 에스토니아에 모여 전에 금지되었던 민족가요 중의 하나인 해방의 노래를 부른다. 30만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탈린 집회에 참가하여 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1988년 11월 에스토니아 소연방 최고위원회는 독립선포를 통과시키고, 1989년8월, 2백만이 모여 탈린부터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니우스(Vilnius)까지 인간사슬을 만들어 분리탈퇴를 주장하였다. 1991년 8월 에스토니아는 완전한 독립을 천명한 후, 다음달 UN에 가입하고 새롭게 형성된 민족의 자주독립을 확고하게 다지기 시작한다. 경제
국내 총생산 GDP : US$ 230 억
1인당 국민 총생산 GNP : US$ 15,851
연성장률: 10%
인플레이션: 11.2%
주요산업: 식품, 의류, 혈암류, 금속, 목공
주요무역상대국: 핀란드, 스웨덴,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문화
계절의 변화, 농토, 가족문화, 사랑, 신화 등을 소재로 하는 구전 노래, 시, 찬가들이 풍부한 전통의 덕택으로 수 세기동안의 외세의 지배에도 불구하고 에스토니아의 토착 민속문화는 존속하였다. BC 천 년으로 거슬러가는 가장 오래된 에스토니아의 노래형식은 8음절의 멜로디를 기본으로 주제가 단계적으로 전개되는 고대 북유럽 룬의 멜로디이다. 에스토니아 현대문학은 19세기 초 시인 크리스티얀 야아크 페터르손(Kristjan Jaak Peterson)과 함께 시작한다. 민족서사시 칼레비포에그(Kalevipoeg)(칼레프의 아들)는19세기 중반 프레드리히 레인홀드 크레우츠발드(Freidrich Reinhold Kreutzwald)에 의해 쓰여졌다. 20세기 에스토니아 문학의 거장, 소설가 안톤 한센 탐마사아레(Anton Hansen Tammsaare)가 있다. 최근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소설가 얀 쿠로스(Jan Kross)와 시인 야안 카플린스키(Jaan Kaplinski)가 있다.에스토니아어는 핀란드어처럼 핀노–우그리아어이고,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라트비아어, 리투아니아어, 러시아어 등과는 별개의 언어이다. 에스토니아어는 깊은 소리 오—, 우—가 많은 북유럽어와 상당히 유사하다. 주요 종교는 루터교와 러시아정교이지만, 종교적 신념을 따르는 에스토니아인은 소수이다.훈제생선 특히 민물송어(suitsukala)는 에스토니아의 특별음식이고, 소시지가 나올 때 채식주의자 보다는 흡혈귀를 위한 음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크리스마스 철에는 신선한 돼지의 피와 내장으로 싼 소시지를 만든다. 선지소시지(verevorst)와 선지팬케이크(vere pannkoogid)는 대부분의 에스토니아 전통식당에서 먹어 볼 수 있다. 시럽같은 바나탈린술 (Vana Tallinn liqueur)을 무엇으로 만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역할 정도로 달고, 매우 강하지만, 에스토니아식단의 기본이다. 커피와 아주 잘 어울리며, 만일 견딜 수 있으면 우유나 샴페인에 띄운 얼음 위에 얹어 먹을 수 있다. 가장 좋은 에스토니아 맥주는 약한 사쿠(Saku)맥주와 사아레마아섬에서 만든 약간 강한 사아레(Saare)맥주가 있고, 향신료를 가미해서 따뜻하게 마시는 와인(hõõgvein)을 카페나 바에서 마실 수 있다. 축제 및 행사
에스토니아의 두가지 주요축제는 몇 년에 한번씩 만 열린다. 1998년6월 중순에 열렸던 발틱민속축제(The Baltika Folk Festival)는 발틱 및 여러 다른 민속전통에 중점을 두며 일주일간 음악, 춤, 전시회, 퍼레이드 등을 벌린다. 모든 에스토니아인이 참여하는 음악제(All-Estonian Song Festival)의 절정은, 3만명의 합창단이 야외무대에서 에스토니아의 전통노래들을10만의 청중 앞에서 부르는 것이다. 매5년마다 열리는데 탈린에서 1999년에 열렸다.여름철에는 행사들이 많다. 에스토니아인들은 6월 중순 탈린에서 멤메–타아티의 날(Memme-taadi Days)동안 그들의 민속문화를 기리는 행사를 벌린다. 6월 23일 밤은 하지축제의 절정인 하지전야제(Jaanipäev)가 있다. 신비한 힘이 있는 밤이라고 믿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축하하는 날이다. 사람들은 시골로 가서 모닥불을 돌며 노래하고 춤추며, 오직 이날 밤에만 꽃이 피어 그 꽃을 찾는 사람에게 행운이 온다고 전해지는 신비한 양치류의 꽃을 찾아 다닌다. 비루새루민속제(Viru Säru folk festival)는 짝수 해 7월 첫 째 주에 라헤마아 국립공원(Lahemaa National Park)에서 열린다.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잘 알려진 귀신 하압살루(Haapsalu)가 8월의 White Lady Festival에 나타난다고 전해진다. 8월 말 세투 왕국의날(the Day of the Setu Kingdom)에는 전통적인 세투왕국의 새 왕을 임명한다. 에스토니아사람들이 그들의 과거와 죽음, 배회하는 영혼을 기리는 11월의 만성절(Time of Spirits)동안은 나라전체가 조용해진다. 여행자 정보
비자: 북유럽과 중동부 유럽국가,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일본, 캐나다, 미국 등지의 시민권자를 제외한 모든 나라 사람들은 비자가 필요하다.건강상 유의할 점은 없다.
시간대: 그린위치 표준시 보다 2시간 빠르다.
전압: 220볼트, 50헬츠
도량법: 미터법
관광객: 일년에 250만 경비 및 환전
통화: 에스티 크로온 Eesti Kroon (EEK)
환률: US$1=EEK14.6204
일반경비
저렴한 식사: US$1-10
중급의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US$10-20
최고급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US$20 이상
저렴한 숙박: US$10-40
중급호텔: US$40-100
고급호텔: US$100-200 에스토니아 전통술 바나탈린을 시음하거나 눈송이무늬의 스웨터를 구입하는 것은 별도이지만 에스토니아에서 하루 US$100-150정도면 편안히 여행할 수 있다. 스스로 식사를 준비하고 도심 밖에서 숙박한다면 좀더 비용을 줄일 수도 있지만, 절약형의 여행자라도 하루에 US$75 정도의 경비를 예상해야 한다. 그러나 매우 값싼 것들도 많은데, 캠핑장의 캐빈은 일인당 US$8로 아주 저렴하고 US$5이하로도 품격이 있는 식사를 할 수 있다. 도시를 벗어나면 여행자수표를 환전할 수 있는 곳을 찾기 어렵지만, 유로수표는 대부분의 은행에서 현금화할 수 있고, 모든 도시에서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 환율은 판매소마다 다르다. Visa, MasterCard, Eurocard를 사용할 수 있는 현금자동지급기는 도심에 많이 있다. 신용카드는 호텔, 레스토랑, 상점에서 널리 사용 가능하다.팁을 주는 것이 의무는 아니지만 계산서를 반올림 처리하여 웨이터에게 계산서의 5–10% 정도의 팁을 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잔돈을 챙기는 대신 자신이 팁을 따로 받으려는 몇몇 웨이터에게 속아서는 안된다. 벼룩시장에서는 흥정을 할 수 있지만 처음 제시한 가격의 10-20% 이상의 할인은 어렵다. 여행 시기
에스토니아의 겨울은 대단히 매섭고 (12월에서 3월까지) 가을은 습하기 때문에 여행시기는 늦은 봄과(4월과 5월) 여름(6월에서 9월 초)이 최적기이다. 6월과 8월은 일일 최고기온이 섭씨30도까지 오르는 더운 시기이다. 스키, 스케이트, 얼음낚시 등을 매우 좋아한다면 겨울에 가는 것이 가장 좋다. 춥다는 것 외에도 겨울여행이 불리한 이유는 낮 시간이 짧기 때문이다. 주요 여행지
탈린
몇몇 도시를 제외하고 유럽 어느 곳도 중세풍의 성벽과 건물위로 돌출한 탑, 뾰족한 교회첨탑, 꼬불꼬불하며 자갈로 포장된 거리 등이 뒤섞인 탈린의 구시가 만큼 14, 15세기의 분위기를 잘 간직한 곳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은 매우 현대화되어 헬싱키의 교외라 불린다 탈린 중심에 있는 토옴페아(Toompea)언덕은 여행객들이 꼭 보아야 할 곳이다. 19세기 러시아정교의 알렉산드르 네브스키(Alexandr Nevsky)성당이 있으며, 에스토니아 의회 리이키코쿠(Riigikogu)의 집회장소인 토옴페아성이있다. 그리고 1233년에 세워진 루터교성당 토옴키리크(Toomkirik), 그 가까이는18세기 귀족의 저택에 세워진 에스토니아 미술박물관, 1475년경에 높고 견고하게 세워진 탑 키에크-인-테-셰크(Kiek-in-de-Kök) 등이 있다.탈린 구시가지 동쪽 약 2km에 있는 카드리오르그(Kadriorg)는 오크, 라일락, 마로니에 나무들로 우거진 쾌적한 공원이다. 바로크양식의 카드리오르그궁전과 함께 이탈리아인 니콜로 미케티(Niccolo Michetti)에 의해 러시아황제 피터대제를 위해 설계되었다. 이 궁전은 1718년에서 1736년 사이에 건축되었으며 피터대제 자신이 벽돌을 3장 쌓기도 했다. 궁전 뒤에는 피터대제가 건축당시 거처했던 조그만 오두막집이 있는데 지금은 피터대제 개인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탈린에는 숙박시설이 많기는 하지만 여름에는 호스텔일지라도 미리 예약해야한다. 구 시가에 있는 라에코야 광장(Raekoja Plats :Town Hall Square)에는 탈린의 식당과 카페들이 몰려있다. 여름에는 라에코야 광장 전체가 가벼운 스낵, 핫도그, 전통적인 코틀레트(kotlett), 사쿠맥주 등을 파는 임시 노천카페로 붐빈다. 또한 구 시가지에 한창 성업중인 나이트클럽이 많이 들어서 있다.
히이우마아(Hiiumaa)
히이우마아섬은 본토에서 서쪽으로 22km지점에 위치한 사람이 별로 살지않는 조용한 곳으로 해변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소비에트시절에는 관광객의 접근이 제한되었으나, 지금은 관광수입을 올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지나친 개발로부터 환경을 보호하려는 지역주민들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섬모양의 녹색스티커를 부착하고 있다.북동쪽 해안의 중심지인 캐르들라(Kärdla)는 정원과 나무로 가득찬 한적한 마을이다. 이 곳은 마을 북서쪽으로 몇 km떨어진 타흐쿠나(Tahkuna)반도로 가는 시발점이기 때문에 여행객들에게 중요한 곳이다. 반도의 북쪽 끝에 1874년 세워진 등대가 있다. 등대지기에게 열쇠를 빌릴 수 있다면 등대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 근처에는 1994년 에스토니아 페리침몰 희생자를 위한 기념비가 있다. 반도의 남쪽 기슭 리스티매키(Ristimägi)에는 1781년 추방되기 직전 마지막 남은 1200명의 스웨덴인들이 최후의 예배를 올린 장소를 표시하는 손으로 만든 십자가가 모래언덕을 덮은 ‘십자가의 언덕’ (the Hill of Crosses)이 있다. 그때부터 이 섬을 처음 방문한 사람들이 십자가를 언덕에 놓는 것이 전통이 되었다.히이우마아에서 둘째로 큰 거주지는 한가한 전원풍경이 큰 매력인 캐이나인데, 주요 조류보호지인 캐이나(Käina)만 해변 가까운 섬 남쪽에 있다. 15세기의 석조교회 유적지도 볼 가치가 있지만, 온화한 기후가 이 마을의 가장 큰 장점이다. 본토의 하압살루(Haapsalu) 서쪽 9km에 있는 로후퀼라(Rohuküla)와 히이우마아 동쪽 끝의 헬테르마아(Heltermaa) 사이를 승객 및 화물을 나르는 페리가 운항한다.
사아레마아(Saaremaa)
에스토니아에서 제일 큰 섬, 사아레마아는 항상 독자적이 경향이 강한 지역으로, 침입자에게는 마지막으로 굴복하였다. 히이우마아로부터 불과 몇 km떨어져 있는 사아레마아는 손상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전원풍경을 지닌 곳으로 인구밀도가 낮다. 농장들은 여전히 섬 절반 이상을 덮고 있는 숲으로 둘러 싸인 곳에 자리잡고 있다. 최근 사아레마아는 핀란드인에게 경제적인 여행지로 알려져 인기가 있으므로 숙박시설을 미리 예약해야 한다. 사아레마아의 수도인 쿠레스사아레(Kuressaare)에는 외셀-비에크(Ösel-Wiek) 주교의 섬 근거지로 쓰기 위해 세워진 13세기 성이 있는 유적지이다. 쿠레스사아레의 서쪽 25km에 있는 비이투매에(Viidumäe)는 식물보호지역으로 온화한 기후와 적절한 환경에 때문에 희귀한 식물종들의 서식처가 되었다. 히이우마아의 캐르들라의 남쪽 25km에 있는 오리야쿠(Orjaku)와 사아레마아의 트리이키(Triigi)사이에 정기 페리가 있다.
라헤마아(Lahemaa)국립공원
에스토니아 최대 국립공원으로 해변의 절벽, 우거진 산림, 18세기 영주의 저택, 수많은 호수, 강, 폭포 등이 잘 어우러졌으며, 에스토니아 북부에 있다. 곰과 스라소니만 없다면 제인 오스틴의 소설속에 있는 것처럼 생각될 것이다. 공원을 동서로 이분하는 클린트(Glint)라고 알려진 북부 에스토니아의 석회암평원의 북쪽 끝 절벽을 따라 폭포가 약 56m가량 떨어진다. 여행자에게 개방되는 두 지역은 공원 북동쪽의 습기가 많은 숲 콜리야쿠-오안투(Koljaku-Oandu)보호구역과 공원 중앙에 있는 7000년 된 습지 라우카수우(Laukasoo)보호구역이다. 공원 동쪽 끝 부근에 있는 팜세(Palmse)의 복원한 영주의 저택은 라헤마아의 자랑거리이다. 대중에게 개방된 18세기 바로크양식의 이 저택은 그 시대의 가구로 가득 차 있고, 잘 조경된 정원을 산책할 수도 있다. 보수된 17세기 증류시설, 호텔, 곡창지대를 팜세에서 볼 수 있다. 짝수 해의 7월 첫째 주에 마을에서는 비루-새루(Viru Säru) 음악 및 댄스축제가 열린다. 북쪽 해안에는 멋있는 마을이 여럿 있다. 팜세에서 몇 km 북쪽에 있는 캐스무(Käsmu)만에는 소련시대 훌륭한 전시물과 마을의 역사를 알려주는 해양박물관이 구소련 해안경비대 막사에 있다. 공원의 북서쪽 끝에 있는 알티야(Altja)는 400년 된 어촌마을로 아름답게 보존되어있다. 키이테매키(Kiitemägi)에서의 전통적 에스토니아 스윙은 공원에서 벌리는 하지전야축제의 중심이다. 보수된 19세기 펍에서 에스토니아 전통술 바나 탈린(Vana Tallinn)을 한잔 단숨에 들이킬 수 있다. 탈린과 공원의 남동쪽 비이트나(Viitna) 사이를 정기버스노선이 운행된다. 편도에 약 한 시간 가량이 걸린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잘 알려지지 않은 여행지 수우마아 국립공원(Soomaa National Park)
마녀를 찾아 습지를 노젓고 다니는 꿈을 꾸었다면 여기가 바로 그런 장소이다. 지방전설에 따르면,마녀들은 수세기 동안 습지에서의 고립된 생활을 즐겼다. 공원을 탐험하는 유일한 방법은 카누나 하아피야(haabja)로 불리는 사시나무를 깍아내어 만든 핀란드 전통배를 타는 것이다. 공원에서 낚시나 캠핑을 할 수도 있고, 습지에 있는 통나무로 자신의 실력을 테스트해 볼 수 있는 하아피야만들기 코스도 있다. 공원은 에스토니아 남서부 구석에 있으며 중심부인 빌리얀티(Viljandi)는 탈린에서 버스나 기차로 갈 수 있다.
퓌흐티차(Pühtitsa) 수도원
19세기에 세워진 아름다운 수도원은 저녁식사 후 수도자와 끝임 없는 이야기를 나누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은 곳이다. 첫번째 그룹(수도자그룹)은 엄격한 채식식단과 종교의식을 매일 할 수 있다. 두 번째 그룹은 수도원 기숙사에서 밤을 지내며 80명의 수녀와 수련수도자와 지냈던 이야기를뽐내며 즐길 것이다. 이 수도원이 고대의 이교도숭배지에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할 것이다. 수천명의 순도자들이 해마다 에스토니아 북동쪽에 있는 쿠레매에(Kuremäe)의 마을에 있는 러시아정교 수도원에 참배를 하러 온다. 쿠레매에와 탈린 사이에 한 편의 버스가 매일 운행한다.
아프루카(Abruka)
이 작은 섬은 자연주의자들의 메카이다. 아름답고 울퉁불퉁한 지형에 소수의 강인한 사람들과 그 수 만큼의 사슴들이 살고 있다. 가장 볼만한 곳은 여름에 개방하여 강의, 승마, 식사, 시골풍의 숙박시설 등이 제공되는 동식물보호구역이다. 아프루카는 사아마아의 남쪽해안 로오마사레(Roomassare)에서 6km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여름에는 보트로 갈 수 있으며, 겨울에는 해협이 얼어붙으면 도보로 갈 수도 있다. 레저스포츠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은, 폴란드와 접한 서쪽 국경에 있는 벨라베즈스카야푸쉬챠 자연 보호 지역을 방문하면 좋다. 이곳은 유럽 원시림 중 가장 큰 지역으로 과거 거의 멸종할 뻔한 유럽들소의 주요무리들이 사는 곳이다. 차로 여행한다면, 벨라루스 북쪽의 푸른호수(Blue Lakes)지역이 이곳의 자연미로 유명하며, 캠핑과 하이킹 장소로도 인기 있다. 벨라루스의 실타래 같은 호수와 강줄기들은 낚시를 즐기기에 최적의 장소이다. 에스토니아로 가는 길
탈린과 암스테르담, 코펜하겐, 헬싱키, 키에프, 런던, 민스크, 스톡홀름 등 간에 항공편이 있다. 탈린 공항은 시 중심에서 남동쪽 3km지점에 있다. 출국세는 없다.에스토니아를 오갈 때 버스는 가장 저렴한 교통편으로, 유로라인버스가 탈린과 서유럽 및 스칸디나비아를 연결한다. 더욱이 버스는 국경을 넘을 때 개인교통편 보다 우선권을 갖는다. 에스토니아 국경수비대는 아주 불쾌할 만큼 깐깐한데, 서방 모든 나라의 여권에 도장을 찍을 뿐만 아니라 여권의 개인정보를 컴퓨터에 입력하기 위해 여행자를 사무실로 불러들인다. 매일 있는 발틱 급행기차(Balti Ekspress)는 기차를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탈만하다. 탈린과 바르샤바 간을 운행한다. 1990년 이래 페리편이 갑자기 많아져서 여행자들은 에스토니아와 핀란드, 스웨덴, 독일 등을 직항으로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 다양한 모양이나 크기의 페리들이 핀란드만을 건너 헬싱키와 탈린을 왕래하면서, 지금은 일년에 2백만 승선객들을 나른다. 국내 교통편
에스토니아를 돌아보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자동차여행이다. 도로가 좋고 교통이 혼잡하지 않으며 그다지 먼 곳이 하나도 없다. 주요 자동차 대여 회사들이 탈린에 있다. 여권과 국제 운전 면허증이 필요하고 유럽인은 정규면허증이 있으면 된다. 우측주행을 한다.시간이 걸리더라도 상관없다면 에스토니아의 버스나 기차서비스도 훌륭하다. 국토가 평평하기 때문에 여름 한철에는 자전거로 시골지역을 돌아 보는 것도 아주 좋다. 특히 섬 지역은 자전거타기에 안성맞춤이다. 국내비행기편은 비싸다. 발틱 항공서비스가 탈린과 쿠레싸아레(Kuressaare)와 캐르들라섬들을 연결하며, 전세편이 타르투(Tartu)와 탈린 간을 운항한다. 노선이 다양하게 있는 도시전차나 버스를 이용해 큰 상가나 도심에 갈 수 있는데, 둘 다 놀랄 정도로 복잡하다. 택시는 많고 싸다.
정식 명칭은 에스토니아공화국(Republic of Estonia)이며, 러시아 북서부에 위치한다. 발트 3국의 하나로, 해안선의 길이는 3,794㎞이다.
면적은 4만 5227㎢, 인구는 126만 5420명(2015년 현재), 수도는 탈린(Tallinn)이다.
종족구성은 에스토니아인 65.3%, 러시아인 28.1%, 우크라이나인 2.5%, 벨라루시인 1.6% 등이다. 언어는 에스토니아어와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종교는 대부분 기독교(루터교)이고, 러시아정교도 믿는다.
기후는 다소 서늘한 날씨이며, 여름에는 낮 길이가 20여 시간이나 된다.
2015년 현재 현재 국민총생산은 259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1만 9719달러이다.
이 나라의 정체는 의원내각제제의 공화제이며, 의회는 임기 4년의 단원제(101석)이다. 주요 정당은 개혁당, 인민연합당, 중도당, 공화당, 사민당, 조국당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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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ㆍ사고의 유형
□ 정정 상황 (전쟁, 내란, 테러 등)ㅇ 에스토니아는 1991년 구 소련 연방의 붕괴와 함께 독립한 발트 국가로 2004년 EU 가입 이후 급속한 발전을 계속하고 있으며, 천재지변, 전쟁, 내란 및 테러 발생 가능성이 비교적 낮은 나라입니다.□ 치안상황 (일반범죄 등)ㅇ 에스토니아의 전반적인 치안상태는 대체로 양호한 편이나, 최근 러시아와의 민족감정으로 인한 갈등이 고조됨으로써 러시아계(약 25%)와의 충돌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고, 또한 일부 외국인에 대한 범죄도 발생하고 있어 여행 시 안전에 대해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빈번한 사건·사고 유형 및 대처요령ㅇ 특히, 관광 성수기인 여름철에는 유람선 터미널 부근이나 시내 중심가에서 관광객들이 소매치기를 당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 모르는 사람이 필요 이상으로 가까이 접근해 오면 경계심을 갖고 대응하며 특히 자신의 휴대품에 주의해야 합니다.
– 현금은 가능한 한 의복의 내부 주머니에 넣어두고 현금과 여권 등 중요한 소지품은 여러 곳으로 분산하여 휴대하는 것이 좋습니다.
– 혼잡한 곳에서는 가능한 한 휴대가방을 몸의 정면에 두고 다니십시오.
–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도중 자리를 일시 비울 때는 휴대품을 의자 등에 놓아두지 말고, 휴대하는 것이 좋습니다.
ㅇ 야간에 음주상태로 외출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며, 사고를 당해도 현장에서 경찰이나 일반인들로부터 신속한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 가급적 밤늦게 공원 등 한적한 곳을 다니는 것을 피하시기 바랍니다.
ㅇ 또한,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하기 위해 택시를 이용할 경우 외국인에 대해 바가지요금을 요구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 택시를 타면서 미터기에 따라서 택시비를 지불하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하시고, 가능한 승차전 목적지까지 요금 문의가 바람직합니다.
– 택시 뒷좌석 창문에 의무적으로 부착된 요금 표를 참조하시고, 만약 미터기가 고장이 났다고 하는 경우 이용을 삼가시기 바랍니다.
자연재해
유의해야 할 지역
ㅇ 특별한 자연재해는 거의 없으나, 늦가을에는 강풍을 동반한 폭우나 한겨울에 폭설로 인해 몇 시간 정도 뱃길이 끊기는 경우가 가끔 발생합니다.ㅇ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유람선 터미널 부근 Mere Puieste 거리, 구시가지(Old Town), 시내 중심가에서 소매치기에 대해 각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라트비아·에스토니아도 중국·중부유럽 협력체 ‘16+1’ 탈퇴
작년 리투아니아 이어 발트 3국 모두 탈퇴
리투아니아, 관료 대만 보내는 등 ‘반중’ 행보
지난해 2월 중국 베이징에서 진행된 ‘17+1’ 정상회의 화상회의에서 유럽 국가들과 중국 국기가 게양돼 있다. 중국국제방송 페이스북 갈무리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가 중국이 동부·중부 유럽 국가들과의 협력을 위해 꾸린 이른바 ‘16+1’ 정상회의에서 탈퇴한다고 선언했다.
11일(현지시각) 통신 보도를 보면,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 외교부는 이날 성명을 내어 “현재의 국제 환경을 감안할 때 중국과 협력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우리의 전략적 목적과 부합하지 않는다”며 탈퇴를 선언했다.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는 인구 180만명, 130만명의 소국이다.
‘16+1 정상회의’는 중국이 동유럽 16개국과 경제·문화 등 협력을 논의하는 체계다. 중국의 대외 확장 정책인 ‘일대일로’ 정책의 하나로, 유럽에서의 중국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2년 꾸렸다. 애초 유럽 17개국이 참여해 ‘17+1’로 불렸지만, 지난해 리투아니아가 탈퇴하면서 ‘16+1’로 불린다.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는 발트 해에 접한 이른바 ‘발트 3국’으로 과거 러시아와 소련의 지배를 받다가 1991년 독립했다.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의 ‘16+1’ 탈퇴가 중국의 대만 압박이 극심한 시점에 나온 것이어서 관련성이 주목된다. 통신은 최근 들어 중국이 ‘16+1’ 참가국에 대한 대규모 투자 약속을 이행하지 못해 회원국 사이에서 협력체에 대한 회의감이 확산 중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이 협력체를 탈퇴한 리투아니아는 지난 7일부터 닷새 일정으로 아그네 바이시우케비치우테 교통통신부 차관을 대만에 파견했다.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을 떠난 지 나흘 만이었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1일 정례 브리핑에서 “리투아니아 반중 세력이 중국의 주권을 고의로 침해하고 중국 내정에 간섭한 것을 강력 규탄한다”며 “하나의 중국 원칙을 해치고 중국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훼손하는 리투아니아 측의 악랄한 도발에 단호히 보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email protected]
에스토니아 — Google Arts & Culture
에스토니아는 북유럽에 위치하며 북쪽과 서쪽은 발트 해, 동쪽은 러시아, 남쪽은 라트비아와 닿아 있다. 수도는 탈린이다. 정식 명칭은 에스토니아 공화국이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독립했으나 1940년 다시 소련에 강제 점령 병합되었다. 1991년 8월 20일에 노래 혁명 후 에스토니아의 독립을 공화국으로써 인정받았다. 2008년 5월 1일에 유럽 연합에 가입했다. 발트 3국의 최북부에 있으며, 빙하 작용을 받은 토지는 낮고 평평하다. 기후는 습윤하며, 삼림·습지·목초지는 매우 넓다. 민족 구성은 65%가 에스토니아인이다. 공용어로는 에스토니아어를 사용한다. 의회는 단원제로 직접 선거로 선출되며 임기는 4년이다. 발트 해를 따라 핀란드, 스웨덴과 국경을 접한다. 핀란드에서는 에스토니아를 “Viro”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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