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찌 이미지 | 명품 브랜드 이미지가 나락 가는 과정 (일진들의 영향력 ㄷㄷ) 상위 204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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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 – 나무위키

유명한 명품 패션 브랜드 중 하나이다. 톰 포드의 구찌 시절엔 가장 핫한 남성복 라인으로 인기를 받았고 이후 올드하다는 이미지가 생기면서 약간 주춤했으나, 201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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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9/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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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2/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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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무료 Gucci & 구찌 이미지 – Pixabay

Gucci의 이미지를 검색하세요. ✓ 상업적 용도 무료 이용 ✓ 권한 필요 없음 ✓ 저작권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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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6/2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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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6/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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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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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8/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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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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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에 대한 이야기 – 구찌

수십년간 쌓아온 이미지를 단 몇년만에 탈바꿈한 브랜드

이번에 소개할 브랜드는 그 누구나 아는, 동네 할머니도 가지고 있는 명품 브랜드.

구찌입니다

1.구찌의 시작

1921년, 구찌오 구찌(Guccio Gucci)가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승마용품, 가죽용품으로 첫 시작을 한 브랜드이다.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구찌오 구찌는 호텔에서 일하며 상류층들을 보고 분석하여 그들의 생활패턴과

라이프스타일을 알아내고 그들을 겨냥하여 승마용품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함

이후 산업화가 되어가며 말, 마차가 아닌 자동차를 타고 다니기 시작하며

승마용품이 더이상 팔리지 않기 시작.

구찌오 구찌는 승마용품을 만들며 갈고닦은 가죽 제작 기술로 트렁크, 핸드백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시장에 맞게 다른 제품을 만든것까진 좋으나..바로 두번째 위기를 맞이함

2.위기와 기회

1947년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전범국이자 패전국이었던 이탈리아에 수출 금지령이 내려짐

그렇게 가죽 공급이 멈추며 가죽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데 가죽이 없어서 큰 위기에 놓여지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구찌오 구찌의 아들, 알도 구찌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묘수를 던지게 된다.

그게 바로 구찌의 첫 시그니처 핸드백, 뱀부백이다.

1960년 구찌 뱀부백 광고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핸드백은 대마, 삼마, 황마, 대나무 등으로 만든 가방이다(그 대마가 맞다)

고급 일본산 대나무를 활용하여 만든 핸드백 손잡이는 당시 엄청난 열풍을 불러 일으켰다.

벨기에 파올라 왕비 1964

여러 할리우드 스타들과 셀럽, 왕실가문까지도 구찌의 뱀부백을 즐겨 이용했다.

이후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며 구찌를 이끌던 창립자 구찌오 구찌는 1953년 숨을 거두게 됨.

그렇게 그의 아들이 경영권을 이어받으며 경영을 이어갔다.

그의 첫째 아들인 알도 구찌는 아버지를 기리며 아버지의 이름을 따 GG로고를 탄생시킴

Guccio Gucci의 이름을 딴 로고

이때까지만 해도 구찌는 계속해서 승승장구를 해나가고 있었다.

다양한 국가에 구찌 매장을 선보이며 글로벌화 하기 시작했고 ‘뱀부백’의 열풍 이후에는 ‘재키백’을

열풍시키며 대박을 치기 시작했음

하지만 1980년, 구찌의 비극이 시작됐다(가족경영의 폐해, 가 족같은 회사)

3.구찌 가문의 몰락

구찌오 구찌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알도 구찌와 로돌프 구찌.

그 외에 알도 구찌의 아들인 파올로 구찌, 로돌프 구찌의 아들인 마우리치오 구찌….구찌 구찌 하다보니 이해하기가 어려우니 알도 구찌 아들은 A, 로돌프 구찌 아들은 B로 하겠음

구찌의 2대 CEO인 알도 구찌는 자신의 아들 A와 사이가 무척 좋지 않았다. 그리고 알도 구찌의 형제인 로돌프 구찌는 일찍이 숨을 거두었고 그에 따라 로돌프 구찌의 아들인 B가 구찌의 지분 50%를 가지게 됨

B는 큰아빠인 알도 구찌의 경영이 마음에 들지 않았음. 그 자리가 욕심이 생기기도 했을것.

어떻게 큰아빠인 알도 구찌를 끌어내릴까..하다가 뜬금없이 알도 구찌 아들인 A가 먼저 손을 내밀었음

A는 자기 아버지인 알도 구찌를 탈세 혐의로 고소해서 감옥으로 보내버리는 기이한 행동을 함

그렇게 구찌의 지분을 가장 많이 가지고있던 B가 구찌의 경영권을 얻게 됨.

그가 바로 마우리치오 구찌.

(좌)마우리치오 구찌 (우)마우리치오 구찌의 아내

근데 이렇게 되면 알도 구찌의 아들인 A는 얻은게 뭘까?

자기 아버지를 탈세 혐의로 감옥에 보냈는데 CEO는 마우리치오 구찌가 되어버렸고, A는 얻은게 없다보니

한번 더 헛짓거리를 하며 구찌 가문에 피해를 입히기 시작함

파올로 구찌

자기 이름을 딴 ‘파올로 구찌’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구찌의 가격보다 훨씬 값싸게

조잡한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함

하지만 자기도 구찌 가문이다 라며 ‘구찌’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가져다쓰며

구찌 브랜드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히기 시작했음

그렇게 당시 CEO였던 마우리치오 구찌는, 자기가 밀어냈던 큰아빠 알도 구찌에게 찾아가서 이렇게 부탁함

전부 파올로가 꾸민 일이다. 나에게 구찌 지분을 전부 넘기면 파올로를 구찌에서 몰아내겠다.

통수에 통수를 치기 시작하는 것이다.

알도 구찌도 자기 아들에게 복수를 하고싶어 마우리치오에게

자신이 가지고있던 모든 구찌 주식을 판매하였고,

마우리치오는 파올로도 몰아내며 구찌의 모든것을 갖게 됨

그렇게 전성기를 이어가던 구찌를 가지게 됐으니 파란만장한 인생만 남은것같던 마우리치오는,

자신의 아내가 의뢰한 청부살인에 의해 사망하게 됨

아까 위에 이 사람이 한 일이 맞다.

이유는.. 마우리치오가 회장이 되며 그의 아내는 엄청난 사치를 부리기 시작했고 남편에게 엄청난 집착또한 하게 됨 그렇게 마우리치오는 아내와 별거를 시작했고, 몇년이 지나 이혼까지 하게 됨. 거기다가 아내는 이후 뇌종양까지 걸림.

그에 따라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갑자기 왜..?) 마우리치오를 죽여달라는 살인 청부를 의뢰하게 됨.

그의 아내는 살인청부혐의로 경찰에 체포가 됐는데, 그 와중에도 이런 말을 남겼음

모피코트를 입어야하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광기 군단장 그 자체다.

아무튼 이렇게 구찌의 가족 경영은 개판으로 끝을 맞이했다.

구찌 이사회는 이를 계기로 ‘전문 경영인 체계’를 돌입하였으며 1994년, 구찌 디자인 팀원이었던

‘톰 포드’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자리에 앉히게 됨.

그렇게 경영인도 바꾸고, 디렉터도 바꾸게 된 첫 컬렉션이 대호황을 일으키며

다시 한 번 구찌를 되살리는 시기가 된다.

4.구찌의 부활

톰 포드

1994년, 여성복 디자이너였던 톰 포드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자리에 앉게 된다.

당시 전문 경영인도 새로 데려오고, 신예 디자이너를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앉힌다는게

패션계에서 엄청난 주목을 받았었음

당연한게 구찌같은 큰 명품 브랜드에서 유명한 스타 디자이너가 아닌 구찌 내부에 있던,

게다가 당시 주목받지도 않던 구찌의 의류 디자이너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앉는다?

업계에서는 꽤나 충격적인 상황이었던것.

하지만 불안했던 것과는 상반되게 톰 포드의 구찌 첫 컬렉션은 말 그대로 대호황을 일으킨다.

이때 구찌가 얼마나 대단했냐면, 현재 명품그룹중 가장 거대한

그룹인 LVMH(프랑스의 세계 최대 명품기업)이 구찌 주식을 사서 인수합병을 노리고 있었음

근데 구찌에서 그걸 알아채고 PPR그룹이랑 전략적제휴를 맺으면서 LVMH와는 접점이 사라졌음

PPR그룹이 현재의 케링 그룹임

(좌) 케링그룹 산하브랜드 (우) LVMH 산하브랜드

아무튼 구찌는 케링그룹으로 넘어갔고,

톰 포드는 구찌를 섹시하고 관능적인 브랜드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었음

그렇게 2004년, 구찌는 톰 포드와의 재계약 조건을 맞추지 못하면서

톰 포드와 당시 CEO인 데 솔레 둘이 동반사직을 하며 구찌를 떠났음

그리고 톰 포드의 뒤를 이을 새로운 디자이너가 왔지만…………………..

구찌는 다시 암흑기를 걷게 된다.

5.구찌의 2번째 몰락

구찌의 새로운 디렉터로 프리다 지아니니(Firda Giannini)가 등장했다.

프리다 지아니니(Frida Giannini)

톰 포드의 디자인 팀에서 2년간 일해왔던 그녀는,

톰 포드가 남겨놓은 구찌의 유산을 가지고 자신이 잘 리드해갔지만 어느정도 구찌라는 이름의 체면만

갖추는 정도에서 멈췄다. 구찌의 인기는 지속적으로 떨어졌고, 시장의 주목성은 점점 떨어지고,

항상 똑같고 지루한 구찌의 로고 플레이 제품들로 인해

구찌는 올드하고 옛날, 구식 브랜드라는 이미지가 점차 쌓이게 된다.

(물론 지아니니가 만든 구찌의 시크하고 도도한 매력을 좋아하는 사람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실적은 계속해서 부진했으니 저평가가 되는게 당연하다)

그렇게 2014년(오래도 해먹었다),

지아니니는 실적 부진으로 당시 남편이었던 구찌의 CEO와 함께 구찌를 떠난다.

프리다 지아니니와 그녀의 남편 파트리지오 디 마르코

잘 나갔다가 망했다가, 또 잘 나가다가 또 망했다가를 반복하는 구찌는 점차 지쳐가는게 보였다.

구찌를 계속해서 좋아해주는 사람들만 좋아하는데 그마저도 계속해서 떨어져나가고 이전에 비해 실적이

상승은 커녕 제자리걸음을 치기 마련이었음 2010년대 초반 구찌 브랜드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알것이다.

나이많은 어르신들이 차고 다니는 브랜드, 졸부 브랜드 등

각종 안좋은 이미지만 잔뜩 낀, 젊은 사람들은 처다보지도 않는 브랜드 중 하나였던것을.

그렇게 2015년 1월, 지아니니와 CEO가 떠난 뒤 새로운 CEO가 취임하게 됐는데,

그의 선택으로 구찌는 완벽한 탈바꿈을 이뤄낸다.

6.구찌의 황금기

마르코 비자리

케링그룹에 있었던 그는 2015년 1월, 구찌의 CEO로 자리잡게 된다.

당시 케링그룹의 회장이 이런 말을 했었는데

창의적인 사람들에게 굉장히 높은 수준의 통제 권한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디렉터는 단순히 제품을 디자인하는게 아닌, 브랜드의 모든것을 관리하는것. 강력하고 보완적인 CEO와 함게 호흡을 맞추어야 브랜드가 번성 할 수 있다.

케링그룹 회장 프랑수아 피노 인터뷰 발췌

그렇게 등장한 구찌의 CEO 마르코 비자리는 취임하자마자 새로운 디렉터를 뽑는데,

여기서 엄청난 파격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아직까지 패션계에서는 새로운 디자이너를 뽑을때, 유명 스타 디자이너를 데려오는 경우가 당연했다.

당연하게도 당시 구찌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데려올 후보 디자이너들이 많았지만,

마르코 비자리는 후보에 올라왔던 디자이너들을 뽑지 않았고 지아니니와 함께 일했던

구찌의 내부 디자이너, 무명이었던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했다.

알레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

당시 마르코 비자리는 미켈레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을때,

서로가 같은 방향을 보고있다는걸 느꼈다고 한다.

외부의 스타 디자이너보다 구찌에서 오래 일한, 구찌에 대해 잘 알고있는

유능한 디자이너가 필요하다고 느낀 그는 실력있고 널리 알려진 스타 디자이너가 아닌, 패션계에서 아무도 모르는 무명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발탁했다.

더불어 미켈레에게 이런 무리한 부탁을 하기도 했다.

일주일안에 다음 컬렉션 패션쇼를 준비해줄 수 있겠나?

말도 안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미켈레는 웃으며 당연하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마르코 비자리는 어떻게 이런 과감한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보면 당연한거지만, 마르코 비자리는 철저한 ‘경영자’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르코 비자리는 철저한 경영자 마인드를 가지고 구찌를 되살리기 위한 선택을 했다.

디자인에 간섭하지 않고,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하기 가장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것.

창의적인 젊은 인재들을 양성하고, 조직 분위기 또한 그에 따라 변화하기 위해 노력을 했던것이다.

그렇게 비자리와 미켈레는 구찌에 자리잡은 구형, 구식적인 이미지를 다 없애고자 했다.

그렇게 미켈레를 통해 나온 구찌의 첫 컬렉션은, 말 그대로 초대박을 치기 시작했다.

Gucci 2015 F/W 시즌 컬렉션

프리다 지아니니때와는 다르게 옛날의 구찌같은 화려함, 그러면서도 무언가 복잡하고 혼란하지만

잘 정돈되어있는 그의 컬렉션은 미켈레가 만들고자하는 구찌가 무엇인지 알아챌 수 있게 해주었다.

남성복에도 커다란 리본이 달린 장식을 보여주며 젠더리스 패션의 길을 터주기도 했다.

무명 디자이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발탁으로 인해 이미 패션계에서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구찌는, 미켈레의 첫 컬렉션까지 대박나며 첫 시작이 매우 좋았다.

그리고 다음해 2016년, 다음해 컬렉션으로 인해 구찌는 이미지 탈바꿈을 완벽하게 성공했다.

2016 구찌 가든 컬렉션

미켈레의 주특기인 꽃자수와 과감한 프린트들을 통해 영하고 트렌디한 이미지로 탈바꿈을 하기 시작했다.

2016 구찌 크루즈 컬렉션

지금까지와의 구찌와는 너무나도 상반되는 화려한 색감과 장식, 무늬들은

소비자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구찌의 유산을 활용하면서도 더욱더 과감하게, 화려하게 풀어낸

미켈레의 컬렉션들로 인해 구찌는 엄청난 매출을 기록한다.

2015년 매출 39억 유로, 약 5조 1082억원을 달성했다가 2016년에는 매출 43억 유로를 달성했다.

그리고 2018년에는 82억 유로로 3년만에 매출을 2배 이상 뛰어올리며 말도 안되는 성장세를 기록했다.

현재의 소비자들이 기억하는 ‘구찌의 이미지’는 2016년을 기점으로 새롭게 각인되었다.

그렇게 구찌는 멈출줄 모르고 성장해나가기 시작했다.

매년 최고매출을 달성해나가고 2019년에는 상반기에만 2016년도 매출을 달성하기도 했다.

구찌에서 타겟을 잡은 소비자층은 ‘밀레니얼 세대’로 1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까지를 겨냥한다.

아니, 구찌같은 고가의 비싼 브랜드가 10~30대를 겨냥하면 잘 안팔리는거 아니야? 싶겠지만..

가장 어린 소비자층의 매출이 가장 많이 증가하는 기염을 토한다.

구찌의 매출이 마르코 비자리와 미켈레의 부임을 시작으로 급격히 상승하는것 또한 볼 수 있다.

구찌의 부활은 마르코 비자리와 미켈레가 함께 이끌어간 ‘파격’ 덕분이다.

무명 디자이너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하는 ‘파격’적인 인사와 절제된 이미지에 잠자리, 벌, 꽃, 각종 동물을 크게 자수로 집어넣는 디자인 도입 등이다. 더불어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하는 만큼 온라인 판매도 강화하고 고객 맞춤 서비스 라인 확대, 구찌 어플 등도 있다.

구찌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했다. 구찌가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하며 엄청난 매출 성장을 기록하니 너도나도 구찌를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구찌의 성공은 단순히 미켈레의 디자인만이 전부가 아니라는걸 보여준다.

마르코 비자리 또한 미켈레로 인해 변화하는 구찌에 따라 직원들도 변화해야한다고 생각해

창의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이어감,

아무튼, 구찌의 성장을 보며 너도나도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하기 위해

다양한 패션기업들이 구찌를 벤치마킹하기 시작했다.

(좌)발렌시아가 트리플s (우)발렌시아가 웨이브 로고 후드티

발렌시아가도 새로운 디자이너를 영입해 밀레니얼을 겨냥하며 힙하고 스트릿한 무드를 연출하기 시작했다.

(좌)루이비통 리그오브레전드 콜라보 컬렉션 (우)루이비통 슈프림 콜라보 후드티

그 콧대높은 루이비통 또한 스트릿 브랜드 ‘슈프림’과의 협업을 통하기도 했었고, 인기게임인 리그오브레전드에도 지원하며 협업을 하기도 했다.

루이비통이라는 브랜드가 ‘게임산업’과 협업한다는건…정말 당시에는 패션계에서 엄청난 충격이기도 했다.

‘아니, 밀레니얼을 겨냥하는건 그렇다쳐도 게임이랑 콜라보를 한다고..? 이건 좀…’ 하며 오히려 루이비통의 위엄이 추락하는건 아닌가 싶을정도로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아무튼, 패션계는 2016년, 2017년을 기점으로 정말 호황기를 맞이했다.

구찌의 새로운 도약, 발렌시아가의 어글리슈즈 열풍, 하이엔드 스트릿 브랜드들의 성장까지, 명품 시장의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었다. 아마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게 구찌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큰 영향력을 끼치는 만큼 구찌는 ‘짝퉁’에 의해 많은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구찌에서 모조품을 대응하는 방법이 조금 심상치않다.

구찌 브랜드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구찌 모조품을 만들고 구찌 로고를 이용해

커스텀한 의류를 만들어 판매하던 이가 있었다.

예명은 구찌 고스트(Gucci Ghost), 본명 트러블 앤드류(Trouble Andrew)는 구찌를 너무 좋아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패러디해 만든 구찌 고스트와 그래피티 디자인들이 미켈레의 눈에 들었던 것이다.

미켈레는 단순히 아티스트의 패러디, 모조품으로 보는것이 아닌 하나의 작품으로 여겨

그와 함께 협업을 하여 컬렉션을 내기도 했다.

구찌인지 구찌가 아닌지 정말 의아하게 만들정도로 파격적인 디자인이었다.

또한 최근에는 아예 제품 전면에 ‘FAKE’ 라는 문구를 내걸기도 했다.

구찌 FAKE/NOT 컬렉션

구찌는 모방에 대해 신선한 해석을 통해 새로운 제품을 출시했다.

제품 전면에 FAKE/NOT을 프린팅해 만든 이 제품은 소비자들이 보고

‘모조품을 비판, 풍자하는게 아니냐’ 라고 말했지만, 구찌의 공식 입장으로는 모방 제품을 재해석했을뿐

풍자하거나 비판하는 의도는 아니라고 밝혔다.

이러한 구찌의 대응 방식은, 현재 트렌디하고 영한

구찌의 이미지와도 정말 잘맞는 대응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구찌 브랜드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새로운 컬렉션도 내놓고, 모조품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풀어나간 이 모습은 구찌의 클라스를 보여준다고도 생각한다.

그렇게 현재의 구찌는 1921년에 창립하여 2015년까지, 약 90년간 이어오며 정립해온 구찌의 이미지를

단 5년만에 완전히 탈바꿈을 성공했다. 이제 구찌를 보면

옛날같은 구식, 구형적인 재미없는 브랜드를 떠올리지 않는다.

수십년간 쌓아온 이미지를 미켈레의 컬렉션을 통해 몇년 채 걸리지 않은 시간에 이렇게 탈바꿈을 했다는건 믿기지가 않는 사실이다. 하지만 점차 구찌의 인기 또한 다른 브랜드들에 밀려 조금씩 주춤하는 모습도

보이기는 한다만, 그래도 구찌는 구찌다.

이제 다시 하나의 ‘명품 브랜드’로서 그의 가치를 보여주는 구찌는 앞으로의 행보가 계속해서 기대되는

브랜드로 확실하게 자리잡았다.

2021 구찌 컬렉션으로 글을 마무리 하겠다.

Gucci 2021 s/s

구찌의 브랜드 이미지 변천사

발렌시아가와 함께 요새 가장 핫한 브랜드 구찌는 구찌오 구찌가 1921년 설립한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이다.

승마용 제품을 만들면서 시작한 가족 사업 형태에서 훗날 쟁쟁한 수석 디자이너들이 거쳐가면서 수많은 시그니처 아이템을 탄생켰는데,

구찌의 브랜드 이미지 변천사와 그 시절을 함께한 아이템들을 한번 알아보자.

<창립자 구찌오 구찌>

창립자 구찌오 구찌는 젊은 시절 런던의 고급스러운 사보이 호텔에서 벨보이로 일했는데,

호텔에 방문하는 귀족들이 사용하는 고급 제품들을 항상 관찰하면서 자연스레 상류층의 취향과 문화, 고급스러운 안목을 익히게 되었다.

이후 고향 피렌체로 돌아가 가죽 공방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고 ‘구찌’라는 이름의 가죽제품 전문매장을 열어 승마용 가죽 제품을 만들어 팔았다.

이 때 깔끔한 솜씨와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스타일 덕분에 귀족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당시 주요 교통수단은 말과 마차였기에 마구 상점으로 출발했지만 갈수록 마차의 활용도가 줄어들었고

상류층의 스포츠로 승마 대신 자전거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구찌오는 가볍게 들고 다닐 수 있는 가방 가게를 오픈한다.

차근차근 규모를 키워가던 구찌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건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였다.

물자가 부족해지면서 가죽 또한 쉽게 구할 수 없어 많은 명품 브랜드들이 어려움을 겪었는데,

구찌오는 가방에는 가죽만 쓴다는 편견을 깨고 일본산 대나무를 둥그렇게 만들어 가방의 손잡이로 만들었다.

이것이 구찌의 시그니처 아이템 중 하나인 밤부 백이고 출시되자마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아이템이 되었다.

오늘날까지도 대나무 디테일은 우산 손잡이, 벨트, 시계 등 다양한 아이템에 적용되며 사랑받고 있는 구찌의 상징이다.

[안재형 기자의 트렌드가 된 브랜드] 구찌 | 무명의 디렉터가 재건한 100년 명품, 젊은 럭셔리 이끈 ‘구찌’의 혁신 인사이트

구찌 ‘가든 아키타이프: 절대적 전형’

서울 이태원의 구찌 가옥

아디다스와 협업한 익스퀴짓 구찌(Exquisite Gucci)

구찌 러브 퍼레이드 컬렉션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디오니소스, 홀스빗, 인터로킹 G 홀스빗, 뱀부

구찌 ‘가든 아키타이프: 절대적 전형’, 구찌 컬렉터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

요즘 트렌드 좀 아는 이들은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 ‘구찌(GUCCI)’를 먹고 마시고 감상하고 소비한다. 도대체 구찌에 무슨 일이 생긴 걸까.1990년대 마돈나가 입은 아디다스 드레스에서 영감을 얻은 컬렉션이 MZ세대의 눈과 귀를 쫑긋 서게 만들었다. 구찌의 슈트와 드레스에 아디다스의 삼선 로고를 더해 완성한 이 컬렉션은 일명 ‘구찌다스’ ‘구찌디다스’라 불리며 SNS에 파고를 높였다. 구찌가 지난 2월 25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공개한 2022년 가을·겨울 컬렉션의 화두는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와의 협업이었다. 아디다스 로고 아래 구찌 로고가 새겨졌고, 아디다스의 트레이닝복을 연상케 하는 슈트가 런웨이에 등장했다. 아디다스는 명품 런웨이를 처음 경험했고, MZ세대는 온라인에서 환호했다.지난 3월, 개막과 동시에 전체 예약 일정이 마감되며 화제를 모았던 구찌의 몰입형 멀티미디어 전시 이 관람객들의 요청에 관람 기간을 2주 연장했다. 당초 3월 27일까지 운영될 예정이던 전시회는 4월 10일까지 이어졌다. 이번 전시는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선보인 지난 7년간의 캠페인을 멀티미디어를 활용해 재해석했다. 구찌 측에 따르면 ‘아키타이프(Archetype)’는 모든 복제품의 원형, 그 자체로 결코 재현될 수 없는 본래의 형태인 ‘절대적 전형’을 뜻하며, 구찌의 모든 캠페인은 독특하고 반복될 수 없는 순간을 이야기한다.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지난 3월 7일 기자간담회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전시 공간으로 미니어처가 전시된 ‘2017 가을·겨울 컬렉션 구찌 앤 비욘드’ 전시실과 나비, 마몽 핸드백 등 수많은 소품이 모여 있는 ‘2018 가을·겨울 컬렉션 구찌 컬렉터스’ 전시실을 꼽기도 했다. 그는 “수많은 것을 한눈에 볼 수 있어 마음에 든다”며 “우리가 사용했던 의상들을 미니어처로 만드는 것과 이를 광고 캠페인에 활용하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전시가 진행된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전시 기간 내내 인증샷 명소가 됐다. 분홍색으로 도배한 전시장 입구와 구찌 핸드백 200개가 거울에 비친 전시공간은 MZ세대의 새로운 성지가 됐다.서울 이태원 구찌 가옥 6층에 자리한 레스토랑 ‘구찌 오스테리아 서울’은 4분 만에 한 달 예약이 마감됐다. 이곳은 구찌가 세계적인 셰프 마시모 보투라와 협업해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선보인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2018년 1월 피렌체 구찌 가든 1호점을 시작으로 2020년 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베벌리힐스 2호점, 2021년 10월 도쿄 긴자에 3호점을 차례로 열었다. 시그니처 메뉴인 에밀리아 버거를 비롯해 서울 가든, 아드리아 해의 여름 등 한국의 계절에서 영감을 얻은 신메뉴와 창의적인 이탈리아 요리가 테이블에 오른다. 약 200여 개 품종의 와인 리스트와 칵테일도 손님을 기다린다. 전체 좌석 수는 메인 다이닝룸 28석, 테라스 36석으로 구성됐다. 이곳 역시 인증샷의 명소로 우뚝 섰다. 한껏 차려입은 이들이 구찌가 선택한 인테리어와 식기, 음식을 배경으로 스마트폰 셔터를 누르고 온라인에서 소비한다. 물론 그들의 대부분은 MZ세대다.“명품 브랜드가 만든 제품과 상징, 세계관이 온라인상에서 더 많은 세계관을 낳는 세상이 됐어요. 레스토랑을 통해 자연스럽게 브랜드의 라이프스타일을 전달하고 전시회를 통해 상징성을 알리는 건 분명 새로운 소비자에게 브랜드를 전달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구찌가 그걸 모를 리가 있을까요. 구찌를 들고 다니는 MZ세대가 늘어난 것만 봐도 효과를 가늠할 수 있어요.”오랫동안 해외명품을 수입해온 한 수입사 대표의 전언이다. 명품 브랜드가 본업과 상관없는 전시회나 레스토랑을 내는 이유는 명확하다. 브랜드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과 장소를 통해 새로운 소비군을 형성하려는 것이다. 구찌가 아시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멀티미디어 전시회를 연 것도 미래의 구찌 마니아를 위한 포석이다. 전시회 전 기자간담회에서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구찌는 단순히 신발에 붙어있는 마크가 아니라 우리의 일부분이자 아름다운 장소”라고 말했다. 어쩌면 MZ세대를 향한 이 우아한 구애는 일단 성공적이다. 미국의 컨설팅 기업 베인앤드컴퍼니는 2025년이 되면 밀레니얼세대와 Z세대가 전 세계 명품 시장 고객의 45%를 차지할 거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들의 가치 변화와 소셜 미디어의 발달은 이미 럭셔리의 개념을 재정립하고 있다. 더 이상 희소한 가치나 일부 계층만의 특권이 아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보편적인 프리미엄이 새롭게 등장했다.대중적인 브랜드와의 협업도 마다하지 않는 명품 브랜드의 변신은 ‘구찌’의 변신이 기폭제였다. 한때 커다란 로고와 촌스럽고 고루한 이미지로 나락에 빠졌던 구찌는 2015년 무명 디자이너였던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한 이후 무섭게 반등한다. 당시 명품 업계의 최고 이슈는 구찌의 부활이었다. 매출 감소로 위기를 겪었던 구찌는 밀레니얼세대를 성공적으로 공략하며 2017년 루이비통에 이어 매출 기준 세계 2위의 명품 브랜드가 됐다.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파격적인 디자인과 바이럴 마케팅, 스트리트패션과 유명 아티스트와의 협업이 한물 간 브랜드를 10대가 선망하는 젊은 브랜드로 탈바꿈시켰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경영 혁신도 브랜드의 변신을 든든히 뒷받침했다.프랑스 명품 기업 ‘케어링(Kering) 그룹’의 대표 브랜드인 구찌는 2015년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임명하며 새로운 CEO의 부임도 공표했다. 최근 방한한 앙리 피노 케어링 그룹 회장이 선택한 이는 ‘스텔라 매카트니’ ‘보테가 베네타’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마르코 비자리였다. 그는 부임 초기부터 리버스 멘토링(Reverse Mentoring)을 활용했다. 쉽게 말해 후배가 선배의 멘토가 되는 역멘토링이다. 임원회의가 끝나면 30세 이하 직원들로 구성된 위원회를 열어 임원회의에서 논의된 주제를 다시 토론했다.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구찌는 더 이상 모피제품을 생산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밀레니얼세대를 위한 여행 애플리케이션 ‘구찌플레이스’도 바로 이 위원회에서 출발했다. 결과는 실적으로 증명됐다. 지난해 구찌는 매출은 13조2100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31%나 늘었다. 팬데믹 상황에 기록적인 성장세다. 구찌와 함께 생로랑, 보테가 베네타 등의 명품 브랜드가 속한 케어링 그룹의 지난해 매출은 24조1000억원이나 됐다.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60%나 늘어난 6조8100억원을 기록했다.한국 시장에서의 반응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구찌는 꽃, 동물 등 화려한 문양과 금속, 가죽, 천 등 다양한 소재를 섞어 배치(Mix Match)한 가방, 의류가 모두 히트하며 다시금 백화점이 모셔가는 브랜드가 됐다.“브랜드 탄생 이후 100년이 지났지만 구찌는 아직 사춘기예요. 영원히 젊음을 간직해야 하고 그 몫이 나와 젊은 직원들에게 달려 있어요.”1921년 설립돼 100주년이 된 구찌에 대한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소감이다. 앞서 밝혔듯 구찌의 변신에는 그의 등장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2015년 1월에 부임한 그는 현재 모든 컬렉션과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를 담당하고 있다. 1972년 로마에서 태어난 그는 명문 패션스쿨인 아카데미 오브 코스튬&패션을 졸업했다. 펜디의 시니어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2002년 톰 포드에게 발탁되며 런던의 구찌 사무실로 출근하게 된다. 구찌의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12년간 재직한 그는 그동안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2006년엔 가죽 제품 디자인 디렉터로 임명됐고, 2011년 5월엔 당시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프리다 지아니니의 수석 디자이너 역할을 수행했다. 2014년 9월엔 구찌가 인수한 이탈리안 도자기 브랜드 리차드 지노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되기도 한다.사실 그의 성공신화는 최근 패션계에선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파격적이다. 그동안 구찌 같은 글로벌 브랜드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임명할 때마다 늘 다른 브랜드의 유명 디렉터를 모셔오는 게 일반적이었다. 자체 승진이란 타이틀을 달 만한 사건이 없었던 셈이다. 그런데 그가 임명되며 신데렐라 스토리가 현실이 됐다.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이 급작스런 사건 이후 첫 컬렉션부터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드러냈다. 구찌의 기존 GG로고를 다양한 장식으로 뒤덮었고, 100만원이 넘는 시계를 형형색색의 플라스틱으로 만들기도 한다. 언론과 평론가들은 우려했지만 시장은 환호했다.알레산드로 미켈레는 2020년 5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아 매년 5번씩 선보이던 패션쇼를 연 2회로 줄인다고 밝히며 컬렉션 운영의 전면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그해 7월에는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해 디지털 채널에서 ‘에필로그 컬렉션’을 공개하며 여전히 기존의 전통적인 패션 규칙과 시각을 뒤집는 창의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올 3월에는 ‘익스퀴짓 구찌(Exquisite Gucci)’ 컬렉션을 공개하며 다양한 클래식을 재해석하고 아디다스와의 협업 제품도 선보였다. 그는 여전히 사람들의 예상을 깬 디자인과 협업을 통해 구찌를 가장 진보한 패션으로 이끌고 있다.구찌는 1990년대 초 성주 인터내셔널에 의해 국내 시장에 진출했다. 이후 1998년 구찌코리아(Gucci Korea)가 설립되며 성주 인터내셔널로부터 구찌 사업부문 전체를 인수했다. 구찌코리아는 올 4월 기준 백화점 49개, 면세점 10개, 아웃렛 3개 등 총 64개의 매장과 공식 온라인 사이트(gucci.com/kr/ko)를 운영하고 있다.국내에 진출한 해외 명품 지사들은 지난해 역대최고급 실적을 기록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루이비통이 1조4600억원, 샤넬이 1조2238억원, 크리스찬 디올이 6139억원의 매출을 올리며 각각 1, 2,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일명 ‘에루샤’ 중 하나인 에르메스는 5275억원으로 4위에 올랐다. 명품 브랜드의 국내 실적은 그동안 좀처럼 공개되지 않았다. 국내 법인을 유한회사로 뒀기 때문이다.하지만 2018년 11월 신(新)외감법(주식회사 등의 외부 감사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며 유한회사도 주식회사처럼 자산과 매출이 500억원 이상이면 실적을 공시하도록 했다. 구찌코리아는 유한책임회사로 분류돼 공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유한책임회사는 주식이나 회사채 발행이 불가능하고 출자자들이 유한책임을 지되, 이사나 감사를 의무적으로 선임하지 않아도 된다. 설립·운영과 구성 등의 자율성이 폭넓게 인정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신생 창업회사에 적합한 기업 형태다. 개정된 외감법에서도 유한책임회사는 감사보고서 공시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안재형 기자][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0호 (2022년 5월) 기사입니다][ⓒ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각자의 성격과 개성이 돋보이는 반려동물 초상화 이미지를 통해 구찌 펫 컬렉션을 만나보세요.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반려동물에게도 개성과 성격이 있다는 점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한 이번 캠페인은 포토그래퍼 맥스 지덴토프(Max Siedentopf)의 렌즈를 통해 담은 몽환적인 파티나(patina) 기법의 반려동물 초상화 이미지를 선보입니다. 구찌 펫 컬렉션은 독창적인 스타일의 레디-투-웨어, 패션소품, 데코 상품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귀여움과 터프함, 발랄함과 심술궂음에 이르기까지 강아지와 고양이의 다양한 개성과 성격을 담아 디자인되었습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Alessandro Michele)

아트 디렉터 겸 포토그래퍼: 맥스 지덴토프(Max Siedentop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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