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 그룹 | 직원을 머슴이라 부르던 재벌.. 국가부도의 신호탄, 한보그룹 이야기 / 소비더머니 55 개의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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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가까이 세무공무원으로 살다가 50대에 사업가로 변신했던 정태수 전 회장.
한보그룹의 정 전 회장은 뇌물과 점에 의존해 사업을 확장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숱한 비리와 특혜 의혹에도 불구하고 한보그룹이 어떻게 재계서열 14위까지 오를 수 있었는지,
그리고 한보의 추락은 어떻게 국가부도사태와 연결되는지, 이제는 사라진 한보그룹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한보그룹 #정태수 #소비더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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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그룹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한보그룹은 대한민국의 기업이다. 정치권 로비를 통해 은행에서 무리하게 대출을 받으며 재계 서열 14위까지 오른 대기업이기도 하다. 1997년 1월 30일 부도 처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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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9/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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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흥망] ‘국가부도의 날’ 불러온 재계 14위 한보그룹의 불법 …

한보그룹의 빚은 5조 원에 달해 은행권의 자금 순환이 안 될 정도로 막대했으며 1997년 외환위기 시작의 방아쇠 역할을 하게 됐다. 1997년 국회 한보국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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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zhankook.com

Date Published: 2/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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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Hi스토리] 한보그룹 – 파이낸셜리뷰

[파이낸셜리뷰=전완수 기자] 한보그룹은 1974년부터 1997년까지 건설·제조업 기업집단으로 우리나라 경제의 한축을 담당했다.1996년까지 재계 서열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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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financialreview.co.kr

Date Published: 10/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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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그룹 · 1997 외환위기아카이브

한보그룹 부도는 당진제철소 건립 자금 대출 및 인허가에 관련한 정태수의 정관계 로비가 밝혀지면서 이른바 ‘한보 사태’로 번지기도 했다.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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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97imf.kr

Date Published: 7/1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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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아파트 60년]⑪ 한보그룹 부도 이후 폐가로, 분양으로 …

한보탄광을 운영하던 한보그룹은 한때 재계서열 14위까지 올랐던 기업이다. 상사를 시작으로 탄광, 주택, 철강으로 덩치를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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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iz.chosun.com

Date Published: 4/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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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 한보그룹 – 뉴스타파

한보그룹. 기업으로 간 언론인들. 2020.03.10. 1 · 제보 · 소식받아보기 · 후원·제휴·협력 문의 · 인터뷰·강의·견학 요청 · 공간예약 · 청소년 보호정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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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ewstapa.org

Date Published: 9/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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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한보 그룹

  • Author: 소비더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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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2. 5. 15.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8aYooEBwgqY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한보그룹은 대한민국의 기업이다. 정치권 로비를 통해 은행에서 무리하게 대출을 받으며 재계 서열 14위까지 오른 대기업이기도 하다. 1997년 1월 30일 부도 처리가 되었다.[1][2][3]

역사 [ 편집 ]

세무공무원 출신 정태수는 1974년 <한보상사>를 설립했고 사업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회사 설립 2년 뒤 1976년 <한보주택>을 세운 후 서울특별시 강남구 대치동에 대한민국 내 최대 규모인 4424가구의 은마아파트를 지어 큰 부를 쌓았다. 1980년에는 <한보철강>을 세웠고 이를 계기로 한보그룹은 대기업 반열에 올랐다. 1984년 부산금호철강 공장을 인수했으며, 일본 철강산업이 부진해지고 중국 수출길이 열리자 부산공장이 생산한계에 도달했다. 이에 1990년에 1조 2000억원을 투자해 당진공장을 짓기 시작했다.

1993년 한보정보통신, 승보철강, 승보엔지니어링, 한보관광을 설립했고, 상아제약을 인수했다. 1994년엔 삼화신용금고, 영동전문대를 사들였고 1995년에는 정태수 회장 둘째아들의 독립 회사였던[4] 한맥유니온을 계열 편입(3월)시켰으며 1993년부터 시작된 아파트 미분양 사태와 외상채권 증대, 1백억원대의 고가 터널굴착장비인 TBM의 무리한 도입 등으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은 데다 창업주 최효석 회장이 같은 해 3월 세상을 떠난 후 장남 최영준씨에게 경영권이 넘어간 뒤 기관리 능력에 대한 불안감까지 가세해 부도설에 휘말려 보험 등 제2금융권이 채권 회수에 나서면서 자금사정이 더욱 악화되자 최영준 사장이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측과 제 3자 인수를 합의했으나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돌연 법정관리를 신청한[5] 유원건설을 인수(6월)했는데 유원건설은 1995년 12월 법정관리가 해제되어 1996년 4월 한보건설로[6] 상호변경됐다. 1996년 22개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었고, 5조 4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7]

재계 14위까지 성장했던 한보그룹은 1997년 1월 위기를 맞았다. 한보철강 당진공장은 설계변경 등의 이유로 투자규모가 5조 7000 억원에 달했고, 이를 회사채 발행, 차입 등의 무리한 자본조달로 인해 1996년 말 자금이 바닥나게 됐다.

<한보철강>이 1997년 1월 23일 부도가 났고 일주일 후인 30일에 <한보건설>, <한보그룹>도 부도가 났다.[8][9][10][11][12][13]

계열사 [ 편집 ]

㈜한보

상아제약

승보목재

승보철강

한보건설(유원건설)

한보관광

한보아파트관리

한보에너지

한보정보통신

한보철강공업

한보철강판매

학교법인 한보학원

계열사 이후 현황 [ 편집 ]

㈜한보 : 부도 이후 진흥기업으로 넘어갔고 이후 LIG그룹에 인수되어 LIG건설(현재의 건영)에 합병되었다.

상아제약 : 부도 이후 2001년 녹십자에서 인수하여 녹십자상아로 변경하였고 녹십자와 합병되었다.

한보관광 : 부도 이후 상아관광으로 사명을 변경하였으나 2008년 폐업하였다.

한보철강 : 부도 이후 2004년 현대하이스코로 넘어갔고 현대제철로 통합하였다.

한보에너지 : 부도 이후 2003년 대한교과서로 넘어가서 서해도시가스(서해에너지)로 사명이 변경되었다.

스포츠 [ 편집 ]

한보 멧돼지 씨름단 – 부도 이후 해산되었으며 동성종합건설 백호씨름단으로 넘어갔지만 이후 해산되었다.

같이 보기 [ 편집 ]

[비즈한국] “야 아직 분위기 파악이 안 되지? 니들이 정치권 로비에 억지로 끌어온 수조 원 때문에 나라 망하게 생겼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에 불붙인 거야 니들이.”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한국은행 통화정책팀장 한시현(김혜수)이 한보그룹 재무팀에게 하는 대사다.

정치권 로비를 통해 은행권에서 무리하게 대출을 받으며 재계순위 14위까지 올랐던 한보그룹은 1997년 1월 부도를 맞게 된다. 한보그룹의 빚은 5조 원에 달해 은행권의 자금 순환이 안 될 정도로 막대했으며 1997년 외환위기 시작의 방아쇠 역할을 하게 됐다.

#“흙과 관련된 사업하면 성공” 점쟁이 말로 탄생한 한보그룹

1951년부터 1970년 초반까지 세무공무원으로 생계를 꾸려가던 정태수는 1969년 가을 점쟁이로부터 “흙과 관련된 사업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라는 말을 듣게 된다. 태준에서 태수로 이름을 바꿀 정도로 역술에 관심이 많던 그는 점쟁이의 말대로 ‘흙’에 매료되어 등산을 하며 사업 대상을 찾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후 정태수는 일제 시절 폐광이 된 강원도의 몰리브덴 광산을 발견하게 되고 이를 헐값에 매입해 1974년 한보상사를 설립하며 수출로 사업을 시작한다.

한보그룹의 시초인 한보상사를 설립한 후 1976년 한보주택으로 건설업에 뛰어들며 아파트 건축으로 사세를 확장했다. 1975년 정태수 회장은 구로구에 영화아파트를 지어 돈을 번 뒤 1979년 9월에는 대치동에 은마아파트를 지었다. 때마침 안전자산으로 부동산이 인기를 얻으며 은마아파트는 20일 만에 전 세대인 4424가구를 분양했다. 정 회장은 2000억 원이라는 돈을 손에 쥐며 그룹 성장의 발판을 다지게 된다.

이후 1979년 초석건설을 인수해 한보종합건설로 상호를 변경하며 몸집을 키웠고, 1981년 한보그룹 총괄비서실을 마련해 기업 집단의 면모를 갖췄다. 이후 태화방직과 금강철강, 한보선물, 한보관광, 상아제약, 세양선박 등을 인수하며 계열사를 확장해나갔다.

#대한민국의 타고난 로비스트?

1989년 3월 21일 서울특별시는 강남구 수서동, 일원동 일대를 ‘수서택지개발지구’로 지정했는데, 국가 또는 민간업자가 개발해 일반에 공급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강남이라는 지리적·경제적 특성상 여러 단체가 조합을 결성하고 특별공급을 청원하는 민원을 끊임없이 제기했다.

당시 건설부(현 국토교통부)와 서울특별시는 특별공급은 불가능하다고 지속적으로 입장을 밝힌 상태였다. 하지만 약 2년 만에 입장을 바꾸어 공공용지 3만 5500평을 26개 주택조합에 특별 분양하기로 결정했다.

그 뒤에는 정 회장이 정관계에 벌인 엄청난 액수의 로비가 자리하고 있었다. 택지공급을 받은 조합에 농협, 경제기획원, 서울지방국세청, 언론, 군부대 등 영향력 있는 세력들이 참여하고 있었고 이들은 모두 정 회장과 관련 있는 인물들이었다. 시공사는 한보주택이었다. 이런 사실이 밝혀지면서 특혜의혹이 확산됐다.

당시 고건 서울시장은 원칙을 고수하면서 정 회장에게 로비를 받은 정관계 인사들의 불법 분양 외압에 맞서다 경질된다. 정 회장의 로비가 서울시장을 바꿀 정도로 강력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나며 건설부, 서울시, 정치권에 있던 수많은 인사들이 옷을 벗게 됐다. 정 회장 역시 이로 인해 1991년 경영에서 물러났고, 뇌물공여죄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또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구속 당시, 수서사건 때 정 회장에게 비자금 150억 원을 받은 사실이 밝혀졌다. 정 회장의 뇌물이 당시 대통령한테까지 흘러간 것이다.

#외환위기의 신호탄, 한보철강

3개월 후 병보석으로 풀려난 ​정 회장은 ​한보그룹 총회장으로 복귀한다. 이후 상아제약 인수, 1995년 유원건설 인수, 1996년 시베리아 가스전과 당진제철소 개발 등 문어발식 사업 확장에 나선다.

당시 당진제철소 부지는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고 선박이 드나들기 힘들어 제철소에 적합한 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한보그룹이 요청한 지 9개월 만에 매립 허가가 났다. 검증받지 않은 기술과 안정성 검사 등이 아무런 문제없이 통과됐다.

2조 2800억 원의 투자금을 염두하고 제철소 개발이 시작됐지만, 비용은 2년 만에 5조 7000억 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됐다. 정부와 은행단은 사업성에 대한 엄격한 평가와 견제도 없이 한보그룹에서 요청한 만큼의 자금을 계속 지원해줬다. 이번에도 역시 정 회장의 로비가 배경에 있었다. 정관계와 금융권을 향한 정 회장의 로비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씨에게까지 뻗을 정도였다.​​

한보그룹은 대출받은 돈으로 계열사도 지속적으로 확장했다. 1995년 11월 계열사는 26개에 이르렀다. 1996년 11월 기준 한보그룹이 빌린 돈은 5조 원이 넘었다. 금융기관은 제철소를 완공해도 적자경영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해 대출금 회수에 나섰다. 결국 한보그룹은 돈을 갚지 못해 1997년 1월 23일 최종 부도 처리됐다. 당진제철소 개발을 위한 한보철강의 무리한 대출은 한보그룹의 부도를 불러왔고, 한보그룹의 부도는 외환위기에 불을 지피게 된다.

한보그룹 부도 이후 대외 경제 여건 악화와 금융경색 등으로 줄줄이 기업이 무너지며 외환위기가 닥치게 된다. 한보 사태는 지속해서 곪아온 우리나라의 정관계, 금융권 유착과 대기업의 문어발식 계열사 확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주요 계열사의 운명도 처참했다. (주)한보는1997년 부도난 후 법정관리를 받다가 네 번 주인이 바뀐 후 LIG건설이 됐다. 한보건설은 1997년 부도 후 2001년 미국 울트라컨으로 매각되어 ‘울트라건설’로 바뀌었고, 2014년 다시 법정관리를 받게 된다. 결국 2017년 호반건설산업에 합병됐다. 한보철강 당진제철소는 포항제철이 위탁운영을 하다가 법정관리를 받게 된다. 이후 현대제철에 합병됐다. ​

​당시 정태수 회장이 당진제철소에 ​무리하게 투자를 벌인 것은 쇠를 만져야 큰돈을 번다는 점쟁이의 조언 때문이었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정 전 회장은 1997년 1월 31일 구속돼 공금횡령 및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 15년 형을 선고받았다. 5년 5개월 복역 후 2002년 고혈압 등 지병을 이유로 병보석으로 석방된 정 회장은 2005년 강릉영동대학 교비 72억 원을 횡령해 다시 구속됐다. 2007년 2심 재판 진행 도중 병 치료를 이유로 일본으로 가겠다며 출국금지처분 집행정지를 받아낸 정 전 회장은 말레이시아로 도피했다. 이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에콰도르 등에서 도피 생활을 해왔다.

2019년 6월 11일 정 전 회장의 4남인 정한근 씨가 체포되었다. 정 씨를 통해 아버지 정 전 회장이 에콰도르에서 사망했음이 알려졌고, 검찰도 이를 공식 확인됐다. 타인의 신분을 빌려 산 정 전 회장은 사망 후 무연고자로 처리되었다. 정한근 씨는 ​2020년 4월 1일 1심에서 징역 7년과 추징금 401억 3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한편 정 전 회장이 남긴 체납액은 2225억 원에 달한다.

정동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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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Hi스토리] 한보그룹

기업인이나 정치인이 재판 혹은 청문회 출석 때 휠체어 타고 마스크 쓰는 것이 유행했는데 원조가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이다./사진=연합뉴스

[파이낸셜리뷰=전완수 기자] 한보그룹은 1974년부터 1997년까지 건설·제조업 기업집단으로 우리나라 경제의 한축을 담당했다.

1996년까지 재계 서열 18위로 대기업이었지만 1997년 1월 23일 부도가 나면서 공중분해됐다. 한보그룹의 부도는 그해 외환위기를 도래하게 만들었고, ‘김현철 스캔들’의 도화선이 되기도 했다.

정태수 회장이 ‘사업을 하면 잘된다’는 점쟁이 말을 듣고 창업했으며 ‘쇳가루를 만져야 한다’는 점쟁이 말에 제철소 건설에 뛰어들었지만 부도가 난 것이다.

한보그룹의 드라마틱한 흥망성쇠는 우리나라 산업화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한보사태를 방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세무공무원이었던 정태수

1960년대까지 정태수 회장은 세무공무원이었다. 그런데 “사업을 하라”는 역술인의 말을 듣고 세무공무원을 그만 두고 1974년 ‘한보상사’를 창업했다.

사업을 시작하기 직전 폐광을 인수했는데 미국에서 몰리브데넘의 생산이 중단되자 떼돈을 벌었고, 1975년 서울 영등포구 구로동에 영화아파트 172가구를 지으면서 주택건설업에 진출했다.

하지만 규제조치 등이 걸리면서 미분양 사태가 발생했고, 이에 부도 직전까지 갔다. 문제는 2차 오일쇼크가 오면서 화페가치가 크게 하락했고, 부동산이 안전자산으로 각광받으면서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가 분양 20일만에 완판이 됐다. 이로서 거금을 손에 쥘 수 있게 됐고, 재벌로 성장하게 됐다.

한보그룹은 다른 대기업과 달리 은마아파트 상가 3층을 본사 건물로 사용했다./사진=연합뉴스

철강사업에 뛰어들어

1981년 그룹총괄비서실을 신설해서 대기업으로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그리고 1982년 한보탄좌개발을 세워 탄광사업에 진출했고, 1985년 (주)금호 철강사업부를 인수했다. 당시에는 사업이 잘됐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주력사업은 ‘건설’이었고, 이를 위해 로비를 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1991년 수서지구 택지 특혜 분양 사건이 일어나면서 공중분해 위기에 몰렸다. 1991년 지방선거에서 노태우 정권이 승리하면서 간신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주력이었던 주택부문에서 손을 떼야 했고, 정태수 회장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1993년 정태수 회장이 총회장으로 경영 일선에 복귀하면서 상아제약을 인수했고, 철강사업에 집중했다. 이에 1995년 부실 건설업체 유원건설을 인수했다. 하지만 노태우 비자금 사건이 터지면서 정태수 회장이 구속되고 3남 정보근 부회장이 회장으로 등극하면서 2세 경영체제로 전환됐다.

그러면서 제철소 건설에 들어갔다. 문제는 제철소를 건설하기 위해 회사채 발행, 차입, 어음발행, 매각 등으로 돈을 확보하려고 했다. 하지만 1996년 말에 결국 자금이 바닥났다. 이후 1997년 1월 6일 전환사채(Convertible Bond) 450억 원을 발행해 자금을 확보하려 했지만, 다음 날 주식시장 폭락 등의 악재가 있었다.

1월 9일 어음 1천200억 원이 들어와 위기를 맞았으나 은행권의 긴급 지원으로 위기를 넘겼다. 1월 10일에는 자사 보유 3천100억 원짜리 부동산을 내놓았으나 쉽사리 팔리지 않았고, 전환사채 350억 원을 발행하려 했으나 매각에 실패했다. 1월 14일 임원진을 전면 교체하며 비상 체제에 들어갔다. 1월 17일 560억 원의 어음을 다시 은행권 추가지원으로 넘겼다. 이 와중에 한보철강이 짓던 당진제철소의 냉연/열연공장이 준공되며 잠시나마 상한가에 오르기도 했다.

1월 20일 3,000억 원 추가 지원을 은행권에 요청했다. 그러다가 최종적으로 1997년 1월 23일 50억 원의 어음이 들어왔고, 은행권의 추가지원 난색 등으로 어음 결제를 못하자, 주식포기각서를 내며 도산했다. 이때 한보철강이 졌던 빚만 5조 원이었다.

한보가 무너지자 비슷하게 방만한 경영과 문어발식 확장을 일삼던 많은 재벌그룹이 연쇄 부도를 맞이했고, 1997년 외환위기라는 최악의 경제 위기가 도래했다.

1997년 한보사태로 인해 국회 청문회에 출석한 정태수 회장은 자신은 주인, 계열사 사장은 머슴으로 표현했다./사진=연합뉴스

휠체어 출석 원조

그해 5월 공금 횡령 및 뇌물 수수 혐의인 이른바 한보사태로 징역 15년을 선고 받았다. 이때부터 한보 리스트가 회자됐고, 청문회 과정에서 김영삼 당시 대통령 차남 김현철 개입 의혹이 불거지면서 김현철 국정농단 사건으로 번졌다.

당시 정태수 회장은 청문회에서 “주인인 내가 알지, 머슴(계열사 사장)이 뭘 압니까”라는 발언을 하면서 비난을 받았다.

그리고 청문회나 재판 과정에서 휠체어를 타고 마스크를 쓰고 출석을 했다. 이후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이 재판에 출석하거나 청문회에 출석을 할 때 마스크를 쓰고 휠체어를 타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정태수 회장이 원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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