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반도체 역사 | 한국이 반도체 최강인 이유 | 무시받는 국가에서 세계 1위가 되기까지 상위 176개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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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가 산업사회에서 본격적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1950년 이후부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65년 처음으로 반도체소자가 생산되었다. 미국의 고미그룹이 국내에 합작투자회사를 설립하여 트랜지스터를 조립, 생산한 것이 시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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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반도체 제국의 미래’를 소개합니다.
본 영상은 이레미디어의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오늘은 반도체에 대해 제대로 알아봅시다!
일본과 미국이 꽉 잡고 있던 반도체 패권을
한국이 어떻게 가져왔는지,
반도체를 제대로 파헤쳐보겠습니다!
시장의 흐름에 따라, 혁신의 방향에 따라
전략은 달라져야 하는데요.
PC 혁명, 모바일 혁명에서 어떤 특징이 필요했을까요?
앞으로의 반도체 흐름은 어떨까요?
‘반도체 제국의 미래’로 산업 전체를 읽어보겠습니다.
책그림 | 반도체, 경제경영, 메모리, D램, SSD, 낸드 플래시
삼성, SK하이닉스, 인텔, 도시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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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인문학적 반도체_4. 우리나라 반도체 역사(1) – 브런치

‘한국 반도체’는 모토롤라 연구원 출신인 강기동 박사가 1973년에 부천에 FAB을 짓고 전자시계용 반도체 칩을 만든 우리나라 최초 반도체 회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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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runch.co.kr

Date Published: 5/14/2022

View: 7107

한국반도체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한국반도체주식회사(韓國半導體株式會社)는 1974년 1월 설립된 손목시계용 IC칩과 트랜지스터칩 등을 개발, 대량생산한 기업이었다. 1974년 12월 이건희 당시 동양방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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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4/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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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의 역사 – Sciencetimes – 사이언스타임즈

국내 최초의 반도체 기업은 1965년 미국의 소기업인 ‘고미’가 간단한 트랜지스터를 생산하기 위해 설립한 합작기업이었다. 본격적인 제조업은 1966년 미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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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ciencetimes.co.kr

Date Published: 5/1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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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특집] 우리나라 반도체 역사 – 전자신문

그러나 개별소자 생산→일괄 공정 생산체제→생산체제 고도화 시도 등의 단계를 거치면서 세계 반도체 생산의 핵심 축으로 거듭났다. ◇1970년대=국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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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etnews.com

Date Published: 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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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산업의 현황 및 미래

반도체산업의 역사. 반도체는 휴대폰, 컴퓨터 등 전자장치의 입출력 및. 주요기능을 수행하는 핵심부품으로 … 가 한국에 반도체조립공장을 세우면서 최초로 시작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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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vs.or.kr

Date Published: 1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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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반도체 역사를 다시 쓴다 – KoreaScience

한편으로 미국은 일본의 반도체 기술을 견제하기 위해 한국에. 반도체 관련 기술 이전을 묵인했고 한국 반도체 산업은 전환기를. 맞이할수있게되었다. 1990년 소비에트연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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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reascience.kr

Date Published: 8/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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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반도체 수출 역사 총정리 및 과제 | ㅍㅍㅅㅅ

한국 반도체 수출 역사 총정리 및 과제. 2019년 2월 18일 by 유춘식. ※ 한국무역협회 부설 국제무역연구원이 발간한 『반도체의 수출 신화와 수출경쟁력 국제비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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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ppss.kr

Date Published: 5/1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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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칼럼] 한국반도체 역사와 미래 그리고 부산 /최윤화

우리나라 국민은 반도체 하면 삼성을 떠올린다. 물론 맞는 말이다. 한국 반도체의 역사가 곧 삼성의 역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재 메모리 반도체 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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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ookje.co.kr

Date Published: 7/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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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성장사 #18. 미래 위한 결단, 반도체 산업 진출

중화학공업과 전자산업은 국가 경제의 미래를 내다보며 정부가 정책적으로 키웠던 산업이었어요. 그렇지만 한국 반도체 산업의 역사의 주인공은 한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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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econoi.com

Date Published: 10/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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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반도체 최강인 이유 | 무시받는 국가에서 세계 1위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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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한국 반도체 역사

  • Author: 책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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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10. 30.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89PUgOWmN7M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 과학·기술 > 반도체 기술

현대 문명을 가리켜 ‘반도체시대’ 혹은 반도체의 원료인 규소의 이름을 따서 ‘규석기시대‘라고 한다. ‘반도체’란 물질의 사용으로 예전에 상상할 수 없던 편안한 삶을 누리는 현재를 일컫는 말로, 실제로 우리 주변 전자제품의 대부분에는 반도체가 들어있다. 우리가 날마다 사용하는 컴퓨터, 스마트폰, 카메라, 자동차, 냉장고, 세탁기 같은 전자제품부터 USB메모리, SD카드 등의 저장매체, 심지어 전자여권까지 생활 곳곳에 광범위하게 반도체가 사용되고 있다.

반도체(半導體, semiconductor)란 전기가 통하는 도체와 전기가 통하지 않는 부도체의 중간단계 물질로, 대표적인 반도체 물질에는 규소 즉, 실리콘(Si)과 게르마늄(Ge)이 있다. 반도체를 만드는 순수한 규소 결정의 경우에는 전기가 통하지 않는 절연체이지만 여기에 열, 빛, 자장, 전압, 전류 등 약간의 불순물을 넣어 주면 상황에 따라 도체나 절연체가 될 수 있는 반도체가 되는 것이다.

2015년 6월 24일 미래창조과학부에서 광복 70년을 맞이해 광복 이후 국가 경제발전을 견인해 온 과학기술의 역할을 조명하기 위해 ‘대표성과 70선’을 선정해 공개했는데, 1980년대 성과에 ‘디램(DRAM) 메모리 반도체’ 개발이 포함되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IT 강국으로 만드는 데 반도체가 큰 기여를 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최근 과학자와 공학자들은 투명하면서도 휘어지는 반도체를 개발 중에 있다. 옷이나 시계처럼 착용이 가능한 ‘웨어러블 컴퓨터’(wearable computer)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평면 세계에서 곡면 세계로 진입하는 웨어러블 컴퓨터가 상용화되는 그때는 시커먼 돌덩이인 규소가 만들어낸 ‘규석기시대’를 넘어선 또 다른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다.

전자공업 육성과 조완희 박사 초청(1967)

전자공업진흥법 공포안(1969)

반도체가 산업사회에서 본격적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1950년 이후부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65년 처음으로 반도체소자가 생산되었다. 미국의 고미그룹이 국내에 합작투자회사를 설립하여 트랜지스터를 조립, 생산한 것이 시초였다. 그 후, 모토롤라(Motorola) 등 여러 외국 업체가 국내의 저렴한 인건비와 유능한 기능 인력을 이용해 반도체를 단순조립하기 위해 계속 들어왔는데, 이것이 우리의 반도체산업을 신장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

1974년 삼성반도체통신주식회사의 전신인 한국반도체주식회사가 설립되어 국내 기업에 의하여 처음으로 손목시계용 IC칩과 트랜지스터칩 등을 개발, 생산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국내 반도체산업은 큰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1970년대 후반에는 우리나라의 전자손목시계가 세계시장에서 수위를 차지하면서 국내에서도 반도체산업의 주축을 이루는 실리콘 중심의 IC산업발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삼성전자는 1970년대 초반 세계 오일 파동으로 경영난을 겪자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 하이테크산업에 진출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졌다. 이병철 당시 삼성전자 회장은 전자 부문을 살릴 수 있는 길은 핵심 부품인 ‘반도체 자급’이라고 판단, 1974년 12월 주변의 만류에도 사재를 털어 파산 직전에 몰린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 이미 반도체산업이 성장궤도에 오른 미국과 일본보다 27년이나 늦은 출발이었다. 삼성전자는 한국반도체를 반도체사업부로 흡수했지만, 자체 기술이 없어 난항을 겪으며 자본금만 날리는 그룹의 미운 오리새끼가 되었다. 1982년 반도체와 컴퓨터 사업팀을 조직하고, 본격적인 시장조사에 들어갔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3년 안에 실패할 것이다.’, ‘TV도 제대로 못 만드는데 최첨단산업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다.’ 등 재계의 반대 여론과 업계의 냉소가 뒤따랐다.

일반적으로 반도체사업은 인구 1억 이상, GNP 1만 달러 이상, 국내 소비 50% 이상이 되어야 가능한 사업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 우리는 이 가운데 하나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실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은 반도체가 나라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산업이라 확신했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메모리제품 64K D램 기술 개발에 착수하였다. D램은 당시 세계적으로 수요가 가장 많고 표준화된 제품이었지만 경쟁사도 많았고, 반제품을 들여다 가공하고 조립하는 당시 우리의 기술 수준에서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러나 이병철 회장은 ‘D램을 하지 않는 것은 싸워보기도 전에 항복하는 것’이라는 강력한 의지를 내보이며 개발을 강행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첨단기술의 현장-삼성반도체 64KD램 개발에 성공(1983)

1983년 12월 1일 개발에 착수한 지 6개월 만에 309개 공정을 자력으로 개발하고 웨이퍼를 생산라인에 투입하며 국내 최초로 64K D램 개발에 성공했다. 우리도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64K D램은 2013년 문화재청이 산업 역사로서 그 가치를 인정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삼성은 1992년에는 ‘64M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며 메모리 강국인 일본을 추월했고, 1994년에는 256M D램, 1996년에는 1GB D램 등 연달아 세계 최초 모델을 내놓으며 차세대 반도체시장을 주도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비메모리 분야인 시스템 반도체를 신 성장 동력으로 삼았다. 반도체 산업은 일자리 창출과 국가 이미지 제고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고부가 산업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삼성전자가 1976년 시계용 칩을 생산했을 당시 첫해 매출은 400만 달러 초반이었지만, 2012년에는 300억 달러를 훌쩍 넘겼다. 30여 년 만에 매출이 7천 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 조사에 따르면, 2012년 세계 반도체시장에서 미국의 인텔이 491억1400만 달러로 1위, 삼성전자가 322억51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며 일본을 제치고 2위에 올랐다. 또한 삼성전자는 1993년부터 2014년까지 21년 동안 전 세계 메모리반도체시장 점유율 1위를 확고부동하게 유지해오고 있다. SK하이닉스도 전 세계 메모리반도체시장 점유율 20%로 2위를 차지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지한 전 세계 메모리반도체시장 점유율은 무려 70%로, 사실상 전세계 메모리반도체시장을 독주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은 만약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 메모리반도체의 수출을 전면 중단한다면, 전세계 국가들의 재앙이 될 수도 있다고 언급할 정도이다.

우리나라의 반도체산업은 이처럼 양적으로는 발전했으나 진정한 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높은 비메모리 반도체 생산 점유율을 높여야 한다. 세계 반도체 시장규모를 보면 비메모리 반도체가 70%, 메모리 반도체가 30%를 차지하는데 우리는 이 중 메모리 분야의 점유율이 50-60%, 비메모리 분야에선 5% 정도를 차지할 뿐이다. 비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위성통신, 이동체 통신 같은 정보통신 단말기기 등 쓰임새도 워낙 다양하고, 핵심기술만 있으면 경쟁자가 쉽게 따라올 수도 없기 때문에 앞으로는 이 분야의 개발·생산에 주력할 과제가 놓여있다.

(집필자 : 남애리)

4. 우리나라 반도체 역사(1)

4. 우리나라 반도체 역사

주변에 아는 지인들은 저의 첫 직장이 삼성전자라고 하면 잘 믿지 못하는 눈치입니다.

더구나 반도체 부문에 공채로 입사했다고 하면 더더욱 의심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어쨌든 저는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인 삼성전자에 당당히 합격하여 1994년 초 졸업과 동시에 시스템 반도체 사업부가 있는 부천 사업장으로 첫 출근을 했습니다.

그런데 삼성전자 반도체 하면 기흥이나 화성을 떠 올리는데 왜 저는 부천 사업장에서 근무했을까요?

왜냐면 삼성전자가 반도체를 처음 시작 한 장소가 부천 사업장이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는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 반도체 사업을 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반도체 기업인 ‘한국 반도체’라는 회사를 인수하여 사업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한국 반도체’는 모토롤라 연구원 출신인 강기동 박사가 1973년에 부천에 FAB을 짓고 전자시계용 반도체 칩을 만든 우리나라 최초 반도체 회사입니다. 참고로 삼성전자 부천 사업장은 IMF 때 미국의 Fairchild사에 인수되었다가 몇 년 후 온세미컨덕터가 이 회사를 인수하여 온세미컨덕터 코리아가 되었습니다.

반도체가 우리나라 산업사회에서 본격적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1950년 이후부터 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5년 처음으로 반도체 소자가 생산되었습니다.

미국의 고미 그룹이 국내에 합작투자회사를 설립하여 트랜지스터를 조립, 생산한 것이 시초라고 합니다.

그 후, 정부가 ‘외자도입법’을 제정하면서 미국의 페어 차일드사, 시그넥틱스사, 모토롤라(Motorola) 등 여러 외국 업체가 국내의 저렴한 인건비와 유능한 기능 인력을 이용해 반도체를 단순 조립하기 위해 계속 들어왔는데, 이것이 우리의 반도체 산업을 신장시키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한국 자본이 반도체 산업에 투자를 시작한 건 1968년입니다.

그해 3월 아남산업이 국내 최초로 반도체 조립 산업을 시작했고, 1970년에 금성사가 미국 내셔널 세미컨덕터와 기술 공급 계약으로 ‘금성전자’를 설립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반도체 산업을 이끈 선구자 두 분이 계십니다. 한분은 세계 최초로 MOSFET을 만든

‘강대원’ 박사와 한국 반도체의 아버지로 불리는 ‘강기동’ 박사입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몰라도 두 분 모두 경기고, 서울대 전기과, 오하이오 주립대 전기과 선 후배 사이입니다.

[ 강대원 박사 ] [ 강기동 박사 ]

1973년 강기동 박사는 미국 내에 ICII 사를 설립하고 동시에 경기도 부천에 한국 최초의 반도체 소자 생산 공장인 ‘한국 반도체 주식회사’를 세웠습니다. 이후 제4차 중동전쟁으로 인한 오일쇼크를 이겨내고 C-MOS와 전자 손목시계용 칩을 개발했습니다.

한국 최초로 FAB을 처음 만들었지만 오일쇼크로 파산 직전까지 가니까 이건희 당시 동양방송 이사가 한국 반도체 지분을 인수하면서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이 시작됐습니다.

현대도 1983년 초 '현대전자'를 설립하고 IC를 생산하기 시작하고 '금성반도체'도 1984년부터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삼성전자는 시장 수요가 많은 메모리 반도체중에서 대량생산이 가능하고 칩 구조가 비교적 간단한 D램을 주력으로 개발하려고 목표를 세웠습니다.

1983년 12월 1일 개발에 착수한 지 6개월 만에 309개 공정을 자력으로 개발하고 웨이퍼를 생산라인에 투입하며 국내 최초로 64K D램 개발에 성공하였습니다.

1992년에는 ’ 64M D램’ 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며 메모리 강국인 일본을 추월했고, 1994년에는 256M D램, 1996년에는 1GB D램 등 연달아 세계 최초 모델을 내놓으며 차세대 반도체 시장을 주도했습니다.

2000년대 이후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세계 1위를 한 번도 내주지 않고 있습니다.

D램뿐 아니라 8Gb 낸드가 애플 아이팟 나노에 탑재된 후 NAND 분야에서도 세계 정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2014년에는 세계 최초로 3D 낸드플래시인 ‘V낸드’를 개발하여 세계를 놀라게 하였습니다.

현대전자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LG반도체와 합병하여 일 년 남짓 현대전자와 현대반도체라는 두 개의 법인으로 존재하다가, 2001년 3월 ‘하이닉스반도체’ 이름으로 사업을 이어 갔습니다.

그러다 2000년대 중반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 IC 사업을 분리하여 메모리 반도체는 하이닉스에서, 시스템 IC는 매그나칩으로 나누어 사업을 지속했습니다. 2011년 11월 하이닉스를 SK텔레콤이 인수하여 2012년 ‘SK하이닉스’로 재탄생하여 현재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 20%로 2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매그나칩의 AP사업부가 분사해서 어보브반도체가 되었고 Foundry사업부는 분사해서 키파운드리가 되었습니다. 올해 3월에는 SK하이닉스가 키파운드를 인수하였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지한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무려 70%로, 사실상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독주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부터 반도체 조립산업을 줄곧 펼쳐 왔던 아남산업은 1990년대 중반 팹 사업에 뛰어들면서 아남반도체라고 사명을 바꾸었고 2000년대 초반 동부전자와 합병하여 동부아남반도체로 바뀌었습니다.

그때 반도체 조립사업은 암코(AmKor)라는 회사에 매각하였고 동부아남반도체는 동부하이텍, 현 DB하이텍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시스템 반도체 특히 8인치 파운드리 사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우리나라 주요 반도체 회사들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봤습니다.

[ 우리나라 반도체 역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한국반도체주식회사(韓國半導體株式會社)는 1974년 1월 설립된 손목시계용 IC칩과 트랜지스터칩 등을 개발, 대량생산한 기업이었다. 1974년 12월 이건희 당시 동양방송 이사가 내국인 몫 지분의 50%를 인수했고, 1977년 12월 30일 ICII 몫의 잔여 지분 50%를 추가로 인수했다. 1978년 3월 2일 삼성반도체로 상호가 변경되었다.[1][2]

역사 [ 편집 ]

창립 이전 [ 편집 ]

1965년 고미반도체의 설립 이후, 그 성공을 계기로 하여 시그네틱스 (1966년), 페어차일드와 모토롤라 (1967년), 도시바 (1969년), KMI (1970년) 등 미국 기업들이 한국에 직영 혹은 합자 형태의 조립공장을 세웠다. 그리고 뒤이어 1972년 페어차일드와 시그네틱스가 한국에서 IC 조립을 하기 시작했다. 이는 미국 내의 인건비 상승으로 인해, 노동 집약형 공정을 아시아의 저임금 시장으로 옮기는 전략에 따른 것이었다.[3][4]

196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국내 기업이 반도체 조립회사를 설립했다. 1968년 아남산업, 1969년 금성사와 한국전자는 외국의 반도체 조립기술을 배워와, 국내 최초의 반도체 기술자들을 양성하는 일을 시작했다.[3] 아남전자는 당시 반도체 패키징으로 30억달러를 벌어들이는 등, 대한민국이 패키징 산업은 한때 세계 반도체 시장의 40%를 점유하기도 하였나?.[5]

창립 [ 편집 ]

1974년 1월 한국반도체가 한국 최초의 반도체 웨이퍼 가공 대량생산 업체로서 부천시 도당동에 설립되었다. 미국에 거주하던 강기동 박사가 대한민국도 반도체를 생산하겠다는 목표 하에 설립한 회사였다. 당시로서는 최첨단인 3인치 웨이퍼 가공설비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설립한 지 2개월 만에 자금난으로 문을 닫을 처지가 되었다.

당시 삼성이 중앙정보국과 함께 강기동 박사의 한국반도체를 인수하기 위해, 부정한 계략을 하였고, 결국 한국반도체는 삼성에게 인수 당했다.. 라는 유명한 루머가 있다. 또한 강기동 박사는 잠시 삼성반도체의 일원이 되었으나, 금새 모함을 당하여 쫓겨났고, 현재는 미국에서 고장난 라디오를 수리하면서 생활하고 계신다.

삼성전자에 인수 [ 편집 ]

반도체의 역사 – Sciencetimes

지난해 우리나라는 반도체 수출 2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올해 국내 총 수출이 사상 첫 2천억 달러를 넘을 전망이니 반도체 한 품목이 10%를 넘게 차지한다는 얘기다. 반도체 없는 우리나라 경제는 생각하기 어렵다. 정보통신 분야에서 눈부신 수출실적을 보여주고 있는 휴대폰에서도 세계 최강인 노키아가 메모리 반도체만은 한국에서 구매해 사용할 정도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 9월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나노 공정을 적용한 D램 양산에 돌입했는가 하면 곧바로 60나노 8기가 플래시 메모리 개발에 성공하는 등 기술면에서도 앞서나가고 있다.

국내 최초의 반도체 기업은 1965년 미국의 소기업인 ‘고미’가 간단한 트랜지스터를 생산하기 위해 설립한 합작기업이었다. 본격적인 제조업은 1966년 미국 반도체 제조사 페어차일드가 투자를 하면서 시작됐고 이후 모토롤라, 시그네틱스, AMI, 도시바 등이 잇따라 투자 대열에 참여했다. 그러나 이 때만해도 우리나라의 값싸고 우수한 노동력을 겨냥해 단순한 제품조립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완제품은 전량 투자기업으로 수출됐다.

1970년대 들어 세계 전자산업의 발전에 발맞춰 한국정부가 반도체 산업 육성에 나서면서 반도체 생산과 수출은 빠르게 증가했다. 전자산업 육성과 함께 대일 무역적자를 줄이려는 목적으로 1969년 전자공업진흥법을 제정하고 그에 기반하여 전자공업 진흥 8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이 계획에는 반도체 제품 개발, 수출진흥, 소요자금 조성 등 반도체 산업 발전을 지원하는 다양한 조치들이 포함돼 있었다.

1970년에는 국내 자본으로 금성사와 아남산업이 반도체 조립을 처음으로 시작했다. 이 때부터 우리나라 기업들도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반도체 산업에 더 많은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1970년 전자제품 생산은 불과 10억 달러 규모였고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6.6%에 불과했다. 그러나 불과 10년도 지나지 않는 1979년에 와서는 생산이 33억 달러, 수출비중은 12%를 차지할 정도로 커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국산 반도체가 기술과 생산량 측면에서 국내 전자산업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반도체 제조의 원재료라 할 수 있는 웨이퍼 가공생산을 우리나라에서 처음 성공한 것은 1974년 한국반도체가 설립되면서다. 그러나 이 회사는 공장 준공 2개월만인 1974년 12월, 자금난에 봉착하고 이건희 회장(당시 중앙일보 이사)이 사재를 털어 인수한다. 이것이 삼성전자 부천 반도체 공장의 시작이다.

삼성은 이 공장에서 1975년 전자 손목시계용 IC 칩을 개발, 국내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전자 손목시계는 ‘대통령 박정희’라는 이름이 새겨진 채 한국의 첨단기술을 자랑하는 물건으로 외국 국빈들에게 선물되곤 했다. 또 1976년에는 국내에서 처음 트랜지스터 생산에 성공하고 당시로서는 최첨단인 3인치 웨이퍼 가공설비까지 갖추고 의욕적인 사업을 전개했다.

이후 경쟁 재벌기업인 금성은 대한전선이 1977년 설립한 대한반도체를 인수하고 미국의 AT&T와 합작으로 금성반도체를 설립했다. 1979년에는 한국전자가 일본 도시바와 합작형태로 트랜지스터, 다이오드 등 개별 소자 완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는 양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 반도체를 하나의 독립된 산업으로 관심을 갖기 보다는 전자산업의 부품산업으로 주목했다. 국내 반도체산업이 독립된 산업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과감한 연구개발과 투자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1983년부터다. 이웃 일본기업들이 반도체 사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미국에 필적하는 성과를 거두는데 자극을 받은 것이다. 당시 미국 인텔은 D램을 처음 제품화한 기업이지만 일본에 밀리자 D램을 포기하고 CPU에만 전념키로 하는 획기적인 결정을 내리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삼성이 1983년 본격적으로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겠다고 하자 정부관리들 조차 비판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른바 ‘도쿄선언’을 통해 1983년 2월 8일 당시 삼성의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 산업 참여를 선언하자 정부의 모 고위 관리는 “사업성도 불확실하고 돈 많이 드는 반도체를 왜 한단 말인가. 차라리 신발산업을 밀어주는 게 낫다”고 비난했다. 물론 앞서 있던 일본의 반도체 업체들도 실소를 금치 못했다고 한다. 반도체 산업은 그만큼 투자가 많이 필요한 산업이었고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이 사업진출 10개월 만에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세번째로 64K D램 개발에 성공하자 인식이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고 금성과 현대도 본격적으로 반도체 산업에 뛰어들게 되었다. 회의적이었던 정부 역시 국내 반도체 산업 육성에 적극적이 되었고, 1985년에는 ‘반도체 산업 종합 육성 계획’을 새로 발표하고, 연구비 지원을 큰 폭으로 늘리는 등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정부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획기적인 지원은 1985년 삼성, 현대, 금성이 설립한 반도체 연구조합과의 공동연구개발 사업제의를 적극 수용한 것이다. ‘단군 이래 최대 국책사업’이라는 이 연구개발 사업에 정부는 총 1천900억원의 연구비 중 600억원을 지원했다. 이 연구개발 사업의 결과물은 1990년대에 금성과 현대가 세계 주요 D램 기업으로 성장하고 우리나라가 세계 D램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하는 발판이 됐다.

이후 국내 반도체 산업은 1986년 1메가 D램, 1988년 4메가 D램, 1989년 16메가 메가 D램을 차례로 개발하는데 성공하면서 기술격차를 줄여나갔다. 특히 16메가 D램에서부터 한국 반도체 산업은 기술력 면에서 미국, 일본을 따라 잡았다. 이어 1992년에는 64 메가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삼성은 시장점유율에 있어서도 1987년 세계 7위에 오른 이후 1990년 2위, 1992년에는 드디어 세계 1위를 차지했다.

한국 반도체산업의 성공은 무모하리만큼 과감한 결정과 결정된 일에 혼을 불어 넣어 미친 듯이 일하는 근로자들의 투지에 정부의 적절한 지원책이 더해 만들어졌다. 여기에다 반도체 가격 경기 등 운이 결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성공을 ‘신화’로 평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초정밀을 요하는 반도체 공장을 선진국의 3분의 1수준인 6개월 만에 그것도 겨울을 나면서 건설해 내는 집념이나 진동에 약한 고가의 장비를 설치하기 위해 불과 7시간 만에 4킬로미터나 되는 진입로를 넓히고 포장을 해내는 눈물겨운 노력이 뒷받침 되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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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특집] 우리나라 반도체 역사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은 외국계 자본에 의한 조립생산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개별소자 생산→일괄 공정 생산체제→생산체제 고도화 시도 등의 단계를 거치면서 세계 반도체 생산의 핵심 축으로 거듭났다.

◇1970년대=국내 기업들에 의한 반도체조립 및 개별소자 생산체제 구축기다. 아남산업이 1968년 3월 국내 자본에 의한 반도체 조립 사업을 출범한 이후 1970년 금성반도체, 1974년 한국반도체(삼성전자 반도체 전신) 등이 가세, 미국 기업과 기술제휴로 미국산 반도체를 조립, 전량 수출했다. 이러한 반도체 조립·개별 소자 생산 과정은 우리나라 산업체계에 상당한 파급·학습효과를 가져왔다. 현재 메모리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는 고도 생산체제 구축에 큰 밑거름이 됐다. 또 반도체장비 제조 분야에서 가장 먼저 이루어진 조립 장비 제조업을 태동시키기도 했다.

◇1980년대=국내 반도체 기업의 일관 공정 생산기반 구축기다. 조립과 개별소자 부문의 노하우를 토대로 대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1983년 2월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반도체사업 진출 결정 발표를 신호탄으로, 같은 해 12월 삼성전자가 국내 최초로 64K D램을 국산화했다. 1986년 10월엔 현대전자 반도체공장이 가동을 개시, 메모리 생산기반이 구축됐다.

◇1990년대 전반=메모리 산업 성숙기다. 국내 반도체업계는 1991∼1995년 연평균 50%를 넘어서는 폭발적인 신장세를 기록했다. 특히 일본 메모리 업계를 견제하고자 한 미국 컴퓨팅업계 이해 관계 덕분에 국내 반도체 업계는 세계 최대 메모리 수요처인 미국 시장에 진출, 반도체 시장에서 우리나라는 미·일에 이은 세계 제3위의 생산대국으로 자리매김했다. 1992년 8월 64M D램을 세계 최초로 국산화, R&D 역량 면에서도 우위를 보였다. 1990년 5300만달러에 불과했던 국내 장비업계의 매출액도 1995년엔 3억5900만달러, 1990년 1억6000만달러에 불과했던 국내 재료업계의 매출액도 1995년 8억3700만달러로 비약적인 성장세를 거듭했다.

◇1990년대 후반=생산체제 고도화단계 시기다. 1996년 반도체 불경기에 이어 1997년 IMF란 국난을 겪었으나 국내 반도체 업계는 양적 성장 일변도에서 탈피, 본격적인 생산체제의 고도화를 시도했다. 또 메모리 편중의 생산구조에서 벗어나 비메모리 개발 전략을 본격적으로 추진, 사업영역을 다각화하려는 시도도 본격화했다. 반도체산업 내 구조조정 일환으로 현대전자와 LG반도체라는 초대형 대기업 간 이른바 빅딜이 있었다. 구조조정 노력은 1998년 하반기 반도체 경기회복세와 맞물려 효과를 발휘하면서 IMF 국난을 극복하는데 있어 모든 산업 분야에서 가장 큰 역할을 수행했으며 그 역할은 21세기 현재까지 지속돼, 반도체산업은 국민 경제적 기여도와 국제적 위상을 높이는 데 적지 않게 기여했다.

윤건일기자 [email protected]

한국 반도체 수출 역사 총정리 및 과제

※ 한국무역협회 부설 국제무역연구원이 발간한 『반도체의 수출 신화와 수출경쟁력 국제비교』 보고서 내용 일부를 공유한다. 보고서 전체를 구해 읽어볼 것을 권한다.

요약

올해 반도체 수출액이 단일 품목으로는 사상 최고치인 900억 달러를 돌파할 전망이다. 반도체는 고부가가치 기술집약형 제품으로 여타 정보기술(IT) 제품의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데다 4차 산업혁명의 파고에 대비하는 데도 지렛대 역할을 수행해 양적 성장 이상의 의미가 있다.

올해 들어 1∼8월 중 반도체 수출액이 전년보다 52% 증가한 595억 달러를 기록하여 앞으로 연말까지 월간 80억 달러(최근 3개월 평균)를 유지할 경우 연간 900억 달러 돌파가 무난한 상황이다. 이는 지난 40년간 매년 15%씩 증가한 데다 올 들어 전체 수출의 16%를 담당할 정도로 호조를 보인 결과다. 올해 반도체는 전체 무역흑자액에서 절반 정도를 담당하여 안정적인 국제수지 유지에 기여하며, 1992년 이후 총 21번에 걸쳐 수출품목 1위 자리에 랭크된 바 있다. 또한 반도체는 ‘Made in Korea’라는 국가 이미지 제고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6년 기준으로 반도체의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은 8.3%로 세계 5위지만 메모리 반도체로 범위를 좁히면 27.0%로 뛰어올라 압도적 1위다. 비교우위지수(RCA)로 살펴보면 한국은 중국, 대만 등과 함께 경쟁력이 제고되는 추세인 반면 미국과 일본은 하락했다. 수출경합도(ESI)는 한·중 간에 상승하는 반면 한·일, 한·미 간에는 각각 하락하는데 이는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통해 대규모 투자를 진행함에 따라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줄어듦을 나타낸다. 한·중 간 기술격차는 초고집적 반도체 기술에서 2∼3년의 기술격차가 있을 뿐 대부분은 1∼2년으로 단축된 상태다.

반도체 수출 신화는 선제적인 투자를 통해 기술 수준을 계속 높이는 동시에 글로벌 벨류체인을 구축하여 효율적인 생산 및 수출시장을 확보한 결과이다. 앞으로도 반도체가 한국 수출호를 견인하기 위해서는 기술투자를 확대하고 인센티브 시스템 강화를 통해 인력 유출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또한 향후 메모리는 물론 상대적으로 기술 수준이 낮은 시스템 반도체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와 함께 산관학 협업을 통해 차세대 반도체와 같은 비메모리 분야에서도 성장동력을 창출해 내야 한다.

반도체 수출의 위상 변화

1. 반도체 수출의 역사

반도체 수출액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면서 ‘한국 = 수출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견인차 역할을 수행. 1970년 아남반도체가 21만 달러를 미국으로 최초 수출한 이후 1994년 100억 달러, 2010년 500억 달러, 2014년 600억 달러를 각각 돌파.

1968년 서울 화양동에 아남반도체가 공장을 설립한 데 이어 1974년 1월 경기도 부천에 한국반도체 설립 이후 같은 해 12월에 삼성전자가 한국반도체를 인수하면서 반도체 생산이 본격화됨. 1981년 정부가 ‘반도체 공업육성계획’을 통해 정책적 지원의 기틀을 마련. 삼성전자가 1983년 12월에 64K DRAM을 개발한 데 이어 1992년 8월에 64M DRAM을 세계최초 국산화하여 일본, 미국에 이어 반도체 생산 Big3 국가로 성장.

반도체 수출은 1977년 3억 달러에서 2016년 622억 달러로 연평균 14.7% 증가하면서 동 기간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에서 10.9%로 3배 이상 상승. 1994년 반도체 수출(106억 달러)이 100억 달러를 초과하면서 수출 비중도 두 자릿수(11.0%)를 기록하기 시작.

메모리 반도체가 지속적으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데다 시스템 반도체도 금년 들어 무역 적자에서 소폭 흑자로 전환되면서 한국무역의 흑자를 공고히 함.

메모리 반도체 무역수지(억 달러): (’15) 254 → (’16) 268 → (’17. 1~7) 272

시스템 반도체 무역수지(억 달러): (’15) -9 → (’16) -20 → (’17. 1~7) 3

2. 수출 주력품목에서 반도체의 위상

1977년 주력 수출품목 중 9위를 기록한 반도체는 1992년 처음으로 수출 1위 품목으로 자리 잡은 이후 26년 동안 총 21번 수출 1위 품목을 차지. 1980년대 후반 시작된 수출품목 다변화와 1990년대 전자와 자동차에 대한 대규모 투자로 수출 품목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며 수출 상위권에 반도체, 컴퓨터, 자동차 등이 부상.

1980년대 초반 수출 1위 품목은 의류(전체 수출의 11.7%를 차지)로 노동집약적 경공업 품목의 수출이 주를 이룸. 반도체는 2004년 자동차에 1위를 내주고 2008년에는 5위로 밀려났지만 2009년에 2위, 2011년에는 3위를 각각 기록한데 이어 2013년부터 1위로 다시 올라서 수출 1위 품목으로 자리를 지킴.

수출 1위 차지 횟수(회, ’77 ~ ’17): (반도체) 21 (의류) 12 (선박) 5 (자동차) 1 (석유제품) 1

반도체의 수출경쟁력 국제비교

1.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꾸준히 상승세를 보이면서 2016년 8.3%로 세계 5위를 기록(홍콩을 중국에 포함하면 4위). 중국(홍콩 포함)이 28.8%의 가장 큰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며 그 뒤를 이어 대만, 싱가포르, 한국, 미국, 일본 등이 상위권을 구성.

세계 반도체 수출시장에서 중국(홍콩 포함)과 대만, 우리나라의 점유율이 상승한 가운데 일본, 싱가포르 등은 하락. 우리나라의 세계 반도체 수출시장 점유율은 2011년 7.4%에서 2016년 8.3%로 0.9%p 상승하면서 2012년부터 일본을 앞서기 시작.

주요국 반도체 수출의 세계시장 점유율 변동 폭(2011~2016년, %p): (중국, 홍콩 포함) 8.4 (대만) 1.5 (싱가포르) -1.8 (한국) 0.9 (미국) -1.1 (일본) -2.6

중국과 대만은 파운드리, 싱가포르는 패키징·테스팅 중심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수출 1위로 27%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 우리나라 메모리 반도체 수출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2011년 23.9%에서 2016년 27.0%로 상승세 지속. 최근 화웨이·오포·비보 등 중국 업체가 프리미엄 스마트폰 생산을 확대하면서 고용량 메모리 반도체 탑재가 늘어 물량과 더불어 가격도 상승하는 추세. 일본의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플래시 메모리를 생산하는 도시바가 2017년 해외기업에 매각될 위기에 처하는 등 그 기반이 약화.

올 들어 매출액 기준 우리나라 기업의 메모리 분야 세계시장 점유율도 상승세를 보이면서 2/4분기에 PC DRAM에서 73.5%, 낸드플래쉬는 45.5%를 각각 기록. 금년 1/4분기에 비해 2/4분기 우리나라 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PC DRAM에서 0.5%p, 낸드플래쉬는 0.4%p 상승.

시스템 반도체(비메모리 반도체)에서 우리나라의 세계 수출 순위는 7위로 5% 내외의 시장 점유율을 보임. 중국(홍콩 포함)이 25.6%의 가장 큰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며 그 뒤를 이어 대만, 싱가포르, 미국 등이 상위권을 차지. 세계 시스템 반도체 수출시장 점유율은 중국(홍콩 포함), 대만 등이 상승한 가운데 우리나라는 2011년 5.4%에서 2016년 4.7%로 0.7%p 하락

시스템 반도체 수출의 세계시장 점유율 변동 폭(2011~2016년, %p): (중국, 홍콩 포함) 6.4 (대만) 2.3 (싱가포르) -3.1 (미국) -0.4 (한국) -0.7 (일) -2.1

2. 현시비교우위지수(RCA)로 살펴본 주요국 수출경쟁력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은 세계 시장에서 비교우위를 확보했으며 경쟁력이 개선되는 추세. 세계 반도체 수출 7위권 이내 국가 중 중국(홍콩 포함), 대만, 한국, 일본 등은 RCA 지수가 1 이상으로 수출경쟁력을 확보함. 일본, 싱가포르의 수출경쟁력이 확보되었으나 그 수준이 낮아짐. 우리나라 반도체의 RCA 지수는 2011년 2.43에서 2016년 2.68로 상승.

반도체 중 메모리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주요국 대비 높은 수출경쟁력을 보유했으나, 시스템 반도체의 경쟁력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임. 우리나라는 메모리 반도체 RCA 지수는 2011년 7.89에서 2016년 8.68로 상승하면서 경쟁력이 개선되는 모습. 시스템 반도체는 RCA 지수가 1 이상을 유지했으나 2011년 이후 하락하는 추세.

시스템 반도체 RCA 지수(2016년): (대만) 9.09 (싱가포르) 6.85 (중국, 홍콩 포함) 1.56 (한국) 1.50 (미국) 0.76 (일본) 0.76

3. 수출경쟁 현황 분석

세계시장에서 우리나라와 수출경합도(ESI) 지수는 미국, 일본, 싱가포르, 대만은 낮아지는 반면 중국은 가파른 상승 추세. 2016년 기준 한·중 ESI 지수는 71.0(홍콩 포함 시 66.7)로 주요국 중 가장 높고 그다음으로 일본(53.0), 미국(52.7) 순임.

중국과 우리나라 간의 ESI 지수는 2011년 57.3(홍콩 포함 60.8)에서 2016년 71.0(66.7)로 5포인트 이상 상승. 일본, 미국, 싱가포르, 대만과 우리나라 간의 반도체 ESI 지수는 하락세를 보이면서 경쟁 정도가 약화.

한·중 간 반도체 수출 경합도 지수: (’11) 57.3 → (’15) 65.91 → (’16) 71.0

결론 및 향후 과제

2017년 수출 전선에서 반도체가 신화를 만들어 감.

반도체는 금년 사상 최대의 수출실적에도 선진국 대비 비메모리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중국의 추격이 매서워 향후 지속적인 경쟁력 보유를 낙관할 수 없음.

중장기적으로 반도체의 국제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메모리 분야의 기술 격차를 유지하고 시스템 반도체 육성을 위한 노력이 시급.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은 메모리 반도체 위주로 비메모리 반도체(시스템 반도체가 74% 차지) 중심의 세계 반도체 시장과 괴리된 구조를 가짐.

전 세계 수출시장 반도체 분야별 비중(2016, %): (메모리) 19.0 (비메모리) 81.0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 분야별 비중(2016, %): (메모리) 56.6 (비메모리) 43.4

반도체 생산기술은 세계적인 수준이나 설계기술을 비롯한 전반적인 기초 기반기술과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기술이 선진국에 비해 취약함. 특히 반도체 기술에서 중국과의 격차가 줄어들면서 경쟁이 심화해 기술력의 지속적인 제고가 절실. 한·중 간 기술격차는 초고집적 반도체 기술에서 2∼3년의 기술격차가 있을 뿐 대부분 1∼2년으로 단축된 상태.

우리나라 반도체 특허 출원 건수는 2007년 7,583건에서 2016년 4,241건으로 지속적 감소. 외국인 특허 출원 건수는 2,000건 내외로 유지한 반면 내국인 출원 건수는 2007년 4,928건 대비 2016년 1,936건으로 절반 이하로 급감.

인적 자원 측면에서도 반도체 관련 인재의 해외유출과 국내 반도체 산업의 인력 부족으로 산업 내 공조 협력체제 형성에 어려움이 있음. 1년에 약 1~2만 명의 반도체 관련 학과에 입학하여 1,000명 정도가 석·박사로 졸업을 하지만 대부분 반도체 업체가 아닌 콘텐츠, 디자인계열이나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이 현실임.

중국이 반도체 굴기에 나서면서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시스템 반도체에서 메모리 반도체까지 모든 영역에서 우수한 인재를 스카우트함. 중국 반도체 업체들은 동일한 언어권에 속한 대만 업체에서 팀 단위 기술 인력을 영입함과 동시에 한국·미국 등 반도체 기술 선진국에서의 우수인재 스카우트에도 힘씀. 정부와 기업이 기존 인력에 대한 처우개선과 자기개발과 기회제공 등 근무환경 개선이 필요하며 사후 인센티브 강화로 우수인재 보상시스템 도입이 필요.

4차 산업혁명에 선제적 대응 및 미래 핵심기술 확보를 위해 표준설계에 의존한 메모리 반도체에 편중된 구조에서 벗어나 시스템 반도체 설계기술 개발에 R&D 투자를 확대할 필요가 있음. 차세대 반도체 분야로서 수요가 급격히 발생하는 저전력·초경량·초고속 시스템 반도체의 원천기술 확보가 중요.

산학관연 간 유기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해외 유관기관과의 교류, 해외 업체와의 인수합병(M&A) 및 전략적 제휴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중요. 단기적으로 가시적인 성과가 나기 어려운 시스템 반도체에 대한 기술개발투자에 정부와 기업, 대학, 연구소가 협력해서 R&D 자금을 공동으로 출자하여 원천기술 개발 및 인력양성 생태계를 형성.

원문: ※ KoreaViews.com ※

한국경제 성장사 #18. 미래 위한 결단, 반도체 산업 진출

중화학공업과 전자산업은 국가 경제의 미래를 내다보며 정부가 정책적으로 키웠던 산업이었어요. 그렇지만 한국 반도체 산업의 역사의 주인공은 한국 정부가 아니에요. 삼성그룹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의 미래를 내다보는 눈과 결단력으로 시작됐습니다.

1983년 2월 7일, 일본 도쿄의 밤샘

이병철 회장의 경영 철학 가운데 ‘심사숙고하고 과감하게 단행하라’라는 내용이 있어요. 이 경영철학은 반도체 사업에서 한껏 발휘됐죠.

1983년 2월 7일 일본 도쿄의 오쿠라 호텔 505호실, 일흔네 살의 이병철 회장은 실리콘밸리에 파견했던 반도체산업 조사팀이 제출한 보고서를 보며 밤을 꼬박 새웠어요. 반도체 산업에 진출하려면 막대한 투자가 필요했습니다. 만약 제대로 결실을 거두지 못하면 엄청난 손실을 보게 되겠죠. 하지만 이 회장은 고민 끝에, 자원이 부족한 한국 기업이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진출해야 할산업이라고 판단했어요. 그는 날이 밝자 반도체 사업 계획을 알렸어요.

반도체에 뛰어들면서 이 회장이 했던 말입니다.

“중량으로 계산하면 석탄 1t은 40달러, 철 1t은 340달러, 알루미늄 1t은 3,400달러, TV 1t은 2만1,300달러이다. 반도체는 1t에 85억 달러인데, 뭘해야 할 건지 분명하지 않으냐.” 삼성은 반도체 사업 진출과 함께 64K D램 기술 개발을 시작한다는 계획도 발표했어요. 미국과 일본 등 당시 반도체 선진국은 물론, 국내에서도 무모하다는 반응을 보였죠. 일본 미쓰비시 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서 성공할 수없는 5가지 이유’라는 보고서까지 내며 조롱했어요.

그러나 1983년 12월 삼성반도체통신(1988년 삼성전자와 합병)은 보란 듯이 64K D램 개발에 성공했고, 시험생산을 마쳤어요.

등록문화재 제536호로 등록된 반도체. 1983년 삼성반도체 통신이 개발한 64K D램 모듈이다. [사진 : 삼성전자]

10개월 만에 64K D램 생산

시간과의 싸움이라는 반도체 산업. 삼성반도체통신은 빠른 사업 전개를 위해, 1983년 기흥 공장을 건설하면서 연구·개발과 생산시설 건설을 동시에 진행했습니다. 연구소에서 설계를 마치면 이를 바로 건설 현장으로 가져가 공사하고, 문제가 생기면 연구원들이 직접 현장을 찾아 해결했죠. 이런 방법으로 1년 반이 걸리는 생산 시설 공사를 6개월로 줄여서 생산 개시를 앞당겼다고 해요.

반도체 핵심 장비인 ‘포토장비’를 들여올 때 또 다른 기록이 탄생했어요. 광학 기계와 정밀기계 장치로 구성된 포토장비는 진동에 매우 약해요. 문제는, 수입한 포토장비가 한국에 도착하기 전날까지도 기흥 톨게이트와 공장 사이의 도로가 비포장도로였다는 거죠. 포토장비 운송팀은 고속도로에서 시속 30㎞로 거북이 운전을 하고, 톨게이트를 빠져나가는 그 순간까지 공장까지 어떻게 마지막 구간을 운송해야 할지 고심했대요. 그런데 놀랍게도, 톨게이트에서 기흥 공장까지 4㎞ 도로는 반질반질한 포장 도로로 바뀌어있었습니다. 운송 차량이 출발했다 돌아오는 오전 반나절 동에 기어이 도로포장을 완료한 거예요. 이런 무섭기까지 한 의지가 있었기에, 삼성반도체통신은 10개월 만에 64K D램 생산에 성공한다는 쾌거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1994년 삼성전자가 세계 처음으로 256M D램을 개발한 뒤 만든 축하 광고.[사진 : 삼성전자]

1994년 세계 첫 256M D램 개발

1910년 8월 29일은 일본이 한국의 주권을 강제로 빼앗았던 ‘경술국치’입니다. 그로부터 84년 뒤인 1994년 8월 29일, 삼성전자는 차세대 메모리반도체인 256M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어요.

삼성은 1992년 9월 64M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지만, 일본은 자국 기업인 도시바도 비슷한 시기에 64M D램을 개발했다면서 성과를 깎아내렸죠. 그렇지만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256M D램을 개발했다고 발표하자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세계 언론은 한국의 메모리반도체 기술력이 일본을 앞섰다고 놀라며 기사를 내보냈죠.

세계 최초 256M D램 개발 발표는 왜 ‘8월 29일’에 이루어졌을까요? 256M D램 개발의 주역이었던 황창규 박사. 그는 IBM,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등 세계 최고 정보통신 기업의 스카우트 제의를 뿌리치고 1989년부터 삼성전자에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일본을 이긴다는 뜻을 품었던 그의 진두지휘로 삼성전자 256M D램 개발팀은 기술 개발에 매진했죠. 마침내 뜻을 이루자, 한국 국민에게 일본을 이긴 기쁨을 선사하고자 이날을 택해서 통쾌한 소식을 발표했다고 전해집니다.

세계 1위 지키는 한국산 메모리반도체 1983년 한국이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 메모리반도체 생산국이 된 뒤,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산 메모리반도체의 국제 경쟁력은 높아졌습니다.

현대도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를 만들고, 1984년 7월 경기도 이천에 반도체 공장을 준공했어요. 금성사(현 LG전자)도 반도체 산업에 진출했죠(현재 SK하이닉스). 오늘날 한국은 메모리반도체 부문에서 세계 1위의 기술력과 시장점유율을 자랑하고 있어요. 1990년대 이후, 개인용 컴퓨터 산업의 폭발적 성장으로 메모리반도체는 개인용 컴퓨터를 생산하는 데 꼭 필요한 제품이 됐어요. 메모리반도체는 1992년 이후 현재까 지도 거의 매년 수출 품목 1위를 지키는 효자 상품입니다.

어린이 경제신문 11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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