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슐츠 |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를 일으킨 사나이 | 인생읽어주는남자 모든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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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민가 출신으로 스타벅스 CEO가 되어 현재는 대통령까지 꿈꾸고 있는 ‘하워드 슐츠’의 인생을 낱낱이 읽어드립니다.
# 슐츠’s Keyword : 빈민가 출신, 스타벅스 CEO, 세계 400대 부자, 중도진보성향, 미국대선후보?
# 유명인사의 인생을 읽어주는 ‘타인의 인생’ 채널입니다. 부족한 영상 봐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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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열전: 하워드 슐츠]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 커피 제국 ‘스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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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2/2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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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경험 재설계, ‘스벅’ 브랜드 활용한 NFT 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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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econo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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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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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슐츠' 스타벅스를 일으킨 사나이 | 인생읽어주는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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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하워드 슐츠

  • Author: 타인의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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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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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하워드 슐츠

Howard Schultz 2019년 당시의 하워드 슐츠 출생 1953년 7월 19일 ( 1953-07-19 ) (69세)

미국 뉴욕 브루클린 성별 남성 학력 노던미시간 대학교 직업 기업인, 전직 정치인 경력 스타벅스 전직 회장 배우자 셰리 커슈 슐츠 자녀 슬하 1남 1녀 정당 민주당 (2019년 이전 )

무소속 (2019년 이후)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 1953년 7월 19일 ~ )는 미국의 기업인(전직 정치인)으로, 스타벅스의 전직 회장 (1986년 ~ 2000년, 2008년 ~ 2017년)이며 NBA 농구 팀 시애틀 슈퍼소닉스의 전 소유자 (2001년 ~ 2006년)이다. 노던미시간 대학교에서 통신학 학위를 취득한 후 1982년 스타벅스 커피 컴퍼니를 위한 소매업과 마케팅의 대표 이사가 되었다. 1987년 커피 회사 일 조르날레 (이탈리아어: Il Giornale)를 창립한 후, 그는 스타벅스를 사들여 그 회사의 최고경영자와 대표이사가 되었다. 슐츠는 자신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회사의 대표이지만, 2000년 스타벅스의 최고경영자로서 사임을 한다고 공개적으로 공고하였다. 그는 그러고나서 2019년 퇴임 이후, 2020년 무소속으로 미국 대통령 후보에 출마한다고 밝혔다.

초기 생애 [ 편집 ]

뉴욕 브루클린 유대인 가정에서 프레드와 일레인 슐츠에게 태어난 하워드 슐츠는 자신이 3세 때 가족과 함께 브루클린 남동부의 이웃 커나시에 있는 베이뷰 집합 주택으로 이주하였다. 슐츠는 자연 운동 선수로 자신 집 주변 농구 코트와 학교 미식축구 필드에서 경기를 치렀다. 그는 1970년 노던미시간 대학교에 미식축구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며 브루클린 지역에서 벗어났다.

초기 경력 [ 편집 ]

1975년 통신학에서 과학사와 함께 대학을 졸업한 후, 슐츠는 미국에 유럽산 커피 제조기 회사인 ‘함마르플라스트’의 기구 판매원으로 일하였다. 1980년대 초반, 판매 국장으로 진급한 슐츠는 메이시스 시보다 워싱턴주 시애틀 시에서 당시 스타벅스 커피(티 앤드 스파이스 컴퍼니)라는 작은 회사가 자신보다 커피 메이커를 더 많이 판매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슐츠는 시애틀로 이주한 이유를 말했다. “스타벅스가 단지 상점 몇 개를 운영했는데도 매달마다, 분기마다 판매량이 증가하였다. 그리고 시애틀로 가야 했다.”

슐츠는 1981년 초기의 스타벅스에 처음으로 들어선 기억이 뚜렸하다고 했다. 당시 스타벅스는 겨우 10년 된 회사로 시애틀 외부에는 지점도 없었다. 회사의 원래 소유자들 – 대학 동창인 제리 볼드윈과 고든 바우커, 그리고 그들의 이웃 제브 시글이 1971년 스타벅스를 창립하였다. 3명의 친구들은 또한 커피 회사의 유비쿼터스 인어 로고와 함께 나왔다.

“정말 지나치게 감상적인 이야기지만, 내가 처음으로 이 상점에 들어가자 집에 있는 느낌이었다.”며 슐츠는 후에 “난 그것을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난 내가 특별한 장소에 있었고 나에게 말한 제품 종류를 알았다.”는 것을 기억하였다. 당시 그는 “난 전혀 좋은 커피 한잔을 한 적이 없다. 난 회사의 창립자들을 만났고 정말 거대한 커피 이야기를 처음으로 들었다 … 난 그냥 ‘맙소사, 이것은 나의 전체의 전문적 인생을 위하여 내가 찾아 온것이다.’라고 말하였다.”고 추가하였다. 당시 얼마나 우습게 회사로 자신의 소개가 진실이었나 혹은 자신이 현재의 스타벅스를 창조하는 중요한 부분에 대하여 슐츠는 전혀 몰랐다.

현재 스타벅스의 탄생 [ 편집 ]

캐나다 에서 스타벅스 의 현존에 관하여 기자 회견을 가지는 슐츠 (2007년)

1982년 스타벅스의 창립자들과 만난 1년 후에 슐츠는 당시 커피 음료가 아닌 커피콩을 팔은 자라나는 커피 회사를 위하여 소매업과 마케팅을 위한 대표 이사로서 기용되었다. 공동 창립자 제브 시글은 “당시 하워드에 관한 나의 인상은 그가 멋진 통보자였다는 것이다.”고 기억하며 “일 대 일. 그는 여전하다.”고 말하였다.

초기에 슐츠는 자신의 스타벅스 임무를 만드는 동안 회사에 자신의 마크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1983년 이탈리아 밀라노를 여행한 동안 그는 자신이 만난 커피바들의 다수에 의하여 향해졌다. 그때 “스타벅스는 커피콩 뿐만 아니라 커피 음료를 팔아야 한다.”는 아이디어가 그에게 생겼다. “난 어떤 것을 보았다. 커피의 낭만 뿐이 아니라, 그러나 … 공동체 의식. 그리고 사람들이 커피를 마셔야 했던 연결 – 장소와 서로”라며 “그리고 이탈리아에서 지낸지 1주 후에 나는 내가 미래를 본 사실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데 내가 시애틀로 돌아오기를 기다릴 수 없었던 그런 그런 열성적인 열정으로 확신되었다.”고 슐츠는 상기하였다.

하지만 스타벅스 상점들에서 커피 바들의 개장을 위한 슐츠의 열정은 회사의 창조자들에 의하여 나누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오 아니야, 그것은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야’라고 말했다.”면서 기억하며 시글은 “70년대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상점에서 커피를 시중들었다. 한 포인트에 마저 우리는 카운터의 위에 좋고, 큰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럼에 불구하고, 결국 소유자들이 시애틀에서 개장하고 있던 새로운 상점에서 자신이 커피 바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할 때까지 슐츠는 아직도 지속성이 있었다. 그 일은 즉각적인 성공이었고, 1984년 시애틀로 하루에 수백명의 사람들을 데려오고 전체의 새로운 언어 – 커피하우스의 언어를 소개하였다.

그러나 커피 바의 성공은 슐츠가 원래 창립자들을 데려가려고 했던 방향으로 그들이 가려 하지 않았던 것으로 논증하였다. 그들은 상점이 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실망한 슐츠는 1985년 빠르게 성공을 거둔 자신 소유의 커피 바 체인점 “일 조르날레”를 개장하러 스타벅스를 떠났다.

2년 후에 투자가들의 도움과 함께 슐츠는 스타벅스를 매입하여 시애틀 회사와 함께 일 조르날레를 병합하였다. 즉시 그는 스타벅스 (그 후에 스타벅스 커피 컴퍼니로 알려짐)의 최고경영자와 의장이 되었다. 그는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이 50 센트에 얻은 음료를 위하여 미국인들이 사실 높은 가격을 남기지 않고 내려고 한 것을 투자가들을 설득해야 했다. 당시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네스카페 인스턴트 커피의 티스푼으로부터 높은 등급의 커피콩을 몰랐다. 사실로 미국에서 커피 소비는 1962년 이래 내려가면서 지내왔다.

2000년 슐츠는 공개적으로 자신이 스타벅스의 최고경영자로서 사임을 한다고 공고하였다. 하지만 8년 후에 그는 회사에 우두 머리를 맡는 데 돌아왔다. 2009년 CBS와 인터뷰에서 슐츠는 스타벅스의 임무에 관하여 “우리는 배를 채우는 비지니스에 있지 않고, 영혼을 채우는 비지니스에 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지속된 성공 [ 편집 ]

2006년 슐츠는 미국에서 400명의 개인적 거부들을 소개하는 포브스 잡지의 “포브스 400” 명단에 359위에 놓였다. 2013년 그는 전세계적으로 억만장자들의 포브스 명단에 931위는 물론, 같은 명단에 311위에 놓였다.

오늘날 아무 회사도 스타벅스보다 더 많은 장소들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커피 음료를 팔지 않는다. 2012년까지 스타벅스는 전세계 39개국에서 17,600개 이상의 지점들을 포함하도록 자라났으며 그 시가 총액은 3백 5십 6억 달러 가치에 있었다. 2014년까지 스타벅스는 전세계적으로 21,000개 이상의 지점들을 가졌으며 시가 총액이 6백억 달러였다. 엄청나게 인기있는 커피 회사는 보고적으로 매일 2개 혹은 3개의 새로운 지점들을 열고 한 주에 6천 만명 가량의 고객들을 끌어들인다. 회사의 웹사이트에 의하면 스타벅스는 1971년 이래 세계에서 최고 품질의 아라비카 커피를 윤리적으로 명시하여 볶는 데 헌신되어 왔다.

사회적 원인 – 동성 결혼과 인종적 민감도 [ 편집 ]

2013년 3월 슐츠는 동성 결혼의 입법화의 성원에서 진술한 후 주요 헤드라인을 만들고 넓은 박수를 얻었다. 스타벅스가 동성 결혼을 위한 그 성원의 이유로 판매들을 잃었다고 주주가 불평할 때 슐츠는 “모든 결정이 경제적 결정이 아닙니다. 당신이 시간에 좁은 통계를 낭송했다는 사실에 불구하고 우리는 작년에 38 퍼센트의 주주 수익을 마련하였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많이 투자를 했는지 나는 모르나 지난 12개월 동안 38 퍼센트를 돌려준 많은 것들, 회사들, 제품들과 투자들에 혐의를 두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응답하였다.

“우리의 국민들의 렌즈를 통한 결정을 우리가 만드는 것에 있는 렌즈”라며 그는 지속하였다. “우리는 이 회사에 200,000명 이상의 사람들을 고용하고 우리는 상이를 받아들이길 원합니다. 전부의 종류들. 당신이 작년에 얻은 38 퍼센트보다 더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공손히 느낀다면 그것은 자유의 국가입니다. 당신이 스타벅스에서 당신의 주식을 팔고 다른 회사에서 주식을 살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2018년 4월 회사는 아무 것도 주문하지 않고 카페에서 회합한 후, 2명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들이 무단 침입으로 필라델피아의 한 지점에서 체포될 때 또다른 뜨거운 문제에 부딪혔다. 슐츠는 즉시 그런 불행한 사건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증하는 도움을 주는 데 인종적 편견 훈련 프로그램을 선봉하였다.

퇴직과 대통령직의 사색 [ 편집 ]

2018년 6월 초순에 슐츠는 그 달의 말기에 자신이 스타벅스의 의장으로서 물러날 것을 공고하였다. 당시 체인점은 77개국에서 28,000개 이상을 포함하는 데 자라났다.

운동은 성공적인 비지니스맨이 대통령직을 위하여 나가는 것을 숙고하고 있었던 소문으로 야기시키는 혼란을 추가하였고, 슐츠는 추측을 확산시키는 데 거의하지 않았다. 자신이 “미래에 관하여 아무 결정들을 만드는 것으로부터 먼 길이었다.”고 추가하였어도 그는 뉴욕 타임스에게 “한동안 나는 우리의 국가 – 본국과 세계에서 우리의 위치에 자라나는 분할에 관하여 깊이 의심스러워 왔다.”고 말하였다.

2019년 1월 슐츠는 경주에 정식으로 들어가느냐에 결정하기 전에 자신의 저서 〈먼 땅에서 위로:미국의 약속을 다시 상상하는 여행〉를 흥행하는 데 자신이 전국 순회를 다니려고 말했어도 무소속으로서 대통령직을 위하여 나가는 데 자신이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을 드러냈다.

결국적 민주당 후보 지명자로부터 잠재적으로 투표를 이끌어낸 것으로 풍화 비판과 함께 슐츠는 요통이 수술의 일련을 흥행할 때 좌절을 겪어 그를 선거 운동 흔적에서 나가도록 강요되었다. 그해 9월 이제 비지니스맨은 자신이 대통령직을 위한 입찰을 버리고 있었다는 것을 공고하였다.

그는 “우리의 이당 제도를 개혁하는 데 필요함에 나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으나 나는 이때 백악관을 위한 무소속 선거 운동은 내가 어떻게 최고로 우리의 국가를 섬긴 것이 아닌 것이었다고 결론을 내렸다.”고 자신의 웹사이트에 올려진 편지에 썼다.

개인 생활 [ 편집 ]

슐츠는 자신의 부인 셰리 여사와 함께 두명의 자식들 – 조던과 애디슨을 두었다. 그들은 현재 시애틀의 매디슨 파크 구역에 살고 있다.

스타벅스 CEO 하워드 슐츠의 인생스토리

빈민가 출신의 그가 스타벅스 CEO가 되기 까지..

블룸버그 통신에 의하면 1953년 7월 19일에

태어난 슐츠는 뉴욕 브루클린 빈민가에서

자라났다고 합니다.

위 사진은 그가 유소년 시절을

불우하게 보냈던 건물의 반지하 단칸방입니다.

슐츠가 7살이 되던 해,

트럭 운전 기사였던 아버지가

아무 의료 보험도 없이 사고를 당하면서

집안은 심하게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미식축구에 능했던 슐츠는

운동으로 장학금을 받아 노던미시간대학에

입학했고 1975년 졸업 후 그는 ‘제록스’사의

영업사원으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3년 뒤 그는 스웨덴의 생필품 회사인

‘Perstorp’으로 이직하여 고공 승진해

영업부장과 부사장 자리까지 오르게 됩니다.

이 때 슐츠는 스타벅스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습니다.

(하워드슐츠가 스타벅스를 창시한건 아닙니다)

당시 스타벅스는 시애틀에서 막 시작한

커피매장으로 창업자 3명

(제브 시겔, 제리 발드윈, 고든 보우커)

이 Perstorp사로부터 커피 기계들을

대량으로 주문하여 슐츠와의

만남이 성사되었습니다.

그리고 1년 후 슐츠는 29살의 나이로

스타벅스의 유통 및 마케팅 부서장으로

이직하게 됩니다. 당시 스타벅스 매장은

3개였고 커피숍이 아닌 가정용

원두커피를 판매하는 가게였습니다.

슐츠의 인생 전환기이자 스타벅스의 운명은

그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국제 생필품 박람회를 참석하면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 곳에서 그는,

‘커피와 사람과의 개인적인 관계’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1985년 슐츠는 스타벅스에서 사표를 쓰고

이탈리아 커피 체험을 중점으로 둔

슐츠만의 커피 브랜드인 ‘일 지오르날’을

설립했습니다. 그는 이 회사를 차리는데

초기 자본 160만달러(약 18억 4,000만원)를

투자받았습니다.

슐츠는 일 지오르날을 차리기에 앞서,

242명의 지인들과 업계 전문가들에게

상담을 받았는데, 무려 217명이

반대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불과 2년 후 1987년

슐츠는 380만달러(약 43억 7,000만원)를

지불하고 스타벅스를 인수했습니다.

슐츠는 스타벅스 그룹의 CEO에 공식적으로

취임했고 당시 스타벅스는 6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빠르게 스타벅스 커피에 빠져들었고

1992년 스타벅스는 상장기업이 되었습니다.

이 때는 165개의 매장과 연매출 9,300만달러

(약 1,067억 7,000만원)를 올리고 있었죠.

2000년도에는 3,500개의 매장과

연매출 22억달러(약 2조 6,000억원)를

벌어들이는 공룡기업이 되었습니다.

2008~2010년 스타벅스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슐츠는 회사 순이익을

3억 1,500만달러에서 9억 4,500만달러로

약 3배나 증가시키는 기염을 토해냈습니다.

그가 CEO를 맡는 동안 자사 직원들을

항상 ‘파트너’로 불렀다고 합니다.

스타벅스는 모든 미국 직원들에게

대학교 4년의 장학금을 지원해주고

어린시절 의료보험 때문에

집안이 어려워졌던 사실을 기억하면서

계약직을 포함한 전 직원들에게

의료보험을 제공해주었습니다.

2016년 7월 슐츠는 미국에 있는

스타벅스 전 직원 15만명의 임금을

5~15% 인상하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현재 스타벅스는 슐츠 회장 아래

2018년까지 10,000명의 군 전역자들과

10,000명의 싱글맘, 10,000명의

16~24세의 젊은이들을 고용하는

계획을 진행중에 있습니다.

지난 28년 동안 슐츠는 스타벅스를

70개 국가에 22,500개의 매장을 열면서

현재 192억달러(약 22조 500억원)의

연 매출을 올리고 있습니다.

하워드 슐츠는 빈민가에서 태어나

맨손으로 일궈낸 성공기로 인해

많은 이들에게 용기와 영감을 주고 있습니다.

“당신이 사업가라면 큰 꿈을 품고,

그 다음에는 더 큰 꿈을 품어야 한다.”

-하워드 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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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커피 제국’ 만든 하워드 슐츠 5년만에 돌아온다

케빈 존슨 CEO 4월 4일자 사임…하워드 슐츠 명예회장 임시 CEO 올라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명예회장.

[인사이트코리아=남빛하늘 기자] 스타벅스를 글로벌 ‘커피 제국’으로 키워낸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 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에 복귀한다. 2017년부터 최고경영자(CEO)를 맡아온 케빈 존슨(Kevin Johnson)이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데 따른 것이다.

16일(현지시간) CNBC, 블룸버그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스타벅스는 이날 성명을 통해 지난 2017년부터 직책을 맡아온 케빈 존슨 CEO가 4월 4일자로 물러난다고 발표했다. 그는 2009년 스타벅스 이사회에 합류한 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2년간 스타벅스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지내다 2017년 4월부터 CEO를 맡아왔다.

케빈 존슨 CEO는 이날 성명을 통해 “1년 전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팬데믹이 끝나감에 따라 대표직에 물러날 수 있음을 암시했다”며 “내가 물러나지만 창업자인 슐츠 회장이 임시 대표직을 맡으며 이사회가 더 나은 CEO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점이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경영 일선에 복귀하는 하워드 슐츠 명예회장은 스타벅스 이사회에 다시 합류하고, 케빈 존슨 CEO의 정식 후임자를 찾는 작업에도 참여할 예정이다. 스타벅스 측은 올해 가을까지 정식 CEO를 임명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워드 슐츠 명예회장은 보수로 1달러를 받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5년 만에 복귀…시장은 환영 분위기

올해 68세인 하워드 슐츠 명예회장은 1980년대 스타벅스에 합류해 회사의 급성장을 진두지휘했다. 그가 회사를 경영하는 동안 11개에 불과하던 스타벅스 매장은 77개국 2만8000여개로 늘어났고, 현재 3만4000개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워드 슐츠 명예회장이 회사를 감독하기 위해 돌아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0년 CEO에서 물러난 그는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커피 시장에서의 경쟁력 약화로 실적이 악화된 스타벅스를 구하기 위해 CEO로 복귀했고, 이후 케빈 존슨 CEO에게 자리를 넘겨줬다.

이날 성명에서 하워드 슐츠 명예회장은 “뭔가를 사랑한다면 부름을 받았을 때 도움을 줘야 한다는 강한 책임감을 갖게 된다”며 “난 스타벅스에 돌아올 계획이 없었지만 회사가 새롭고 신나는 미래를 향해 다시 한번 변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코로나19 이후 회복과 글로벌 불안 요소가 증가하는 환경에서 우리는 파트너와 고객을 위해 스타벅스 경험을 용기있게 구상하고 재창조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시장에서는 하워드 슐츠 명예회장의 복귀를 환영하고 있는 분위기다. 케빈 존슨 CEO의 사임과 하워드 슐츠 명예회장의 복귀 소식이 알려지자 이날 스타벅스 주가는 장중 7% 오르며 약 2년 만에 가장 큰 상승폭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 스타벅스 주가는 24% 내린 바 있다.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

작가소개

1953년 뉴욕 출생. 우연히 스타벅스의 커피맛과 경영방식에 반해, 1982년 대기업 부회장의 자리를 박차고 당시 오직 4개의 스토어를 갖고 있던 작은 커피 커피 회사 스타벅스에 마케팅 책임자로 합류했다.1986년 이태리 스타일의 에스프레소 바를 열기 위해 스타벅스를 떠나 ‘일 지오날레’를 연 뒤, 1987년 8월 스타벅스를 인수하여 회장 겸 최고 경영자가 되었다. 1992년, 스타벅스를 스페셜티 커피 회사로서는 최초의 상장기업으로 만들었고, 현재 2,000여 스토어를 갖고 있는 세계 최고의 커피 브랜드로 성장시켰다.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새 CEO는 외부수혈”

국내 식품기업들이 ‘비건(엄격한 채식주의)’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100% 비건 인증을 받은 메뉴만 판매하는 레스토랑을 연달아 여는가 하면, 식품 제조·유통업체들의 대체육 사업 범위도 확대되고 있다. 국내 비건 인구는 아직 전체 인구의 5%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채식 수요가 꾸준히 늘 것으로 판단한 식품기업들이 시장 선점에 나선 결과다. 대체육 사업 확대 2일 밀키트 전문기업 프레시지는 채식 브랜드 ‘헬로베지’에 대체육 사업을 결합해 간편식 사업을 확대한다고 밝혔다. 헬로베지는 올 초 자회사 ‘테이스티나인’이 런칭한 채식 전문 브랜드다. 현재 채식 소스류를 판매중이다.프레시지는 ‘헬로베지’ 브랜드를 활용해 단체급식 등 기업간거래(B2B)사업과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B2C) 사업을 동시에 확장할 계획이다. 하반기에는 대체육을 활용한 김치찌개, 된장찌개 간편식을 선보이고 단체급식 업장과 외식 프랜차이즈에서 활용할만한 간편식도 개발하고 있다.신세계푸드도 식품 제조 사업을 확장하면서 미래 먹거리로 비건을 선택했다. 신세계푸드는 2016년부터 급식매출 비중을 점차 낮추고 식품 제조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현재 급식 매출 비중은 전체 매출의 15%까지 낮아진 상태다. 지난해 7월에는 ‘베러미트’라는 대체육 브랜드를 선보인 뒤 첫 제품으로 슬라이스 햄을 내놨다. 급식사업 메뉴 뿐만 아니라 스타벅스의 비건샌드위치 ‘플랜트 햄&루꼴라 샌드위치’에도 활용된다. 이 샌드위치는 하루 평균 2000개씩 판매되며 인기를 끌고 있다. “‘비건 음식은 맛 없다’는 편견 깨자”…오프라인 마케팅 활발 “비건 음식은 맛이 없다”는 편견을 깨기 위한 오프라인 마케팅도 활발하다. 레스토랑을 통해 일반 소비자들에게 비건 식문화를 소개하겠다는 전략이다. 비건은 동물성 단백질(유제품, 달걀, 생선, 가금류 등)을 섭취하지 않는 채식주의의 일종이다. 고기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간 비건 음식은 감칠맛이 없다는 평가를 받아왔다.지난달 말 풀무원과 농심은 연달아 비건레스토랑을 열었다. 풀무원은 삼성동 코엑스에, 농심은 잠실 롯데월드몰에 각각 비건레스토랑 1호점을 냈다. 풀무원은 퓨전 한식, 농심은 양식 중심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두 회사 모두 100% 비건 인증을 받은 메뉴들로만 구성했다. 김성환 농심 외식사업팀 상무는 “새로운 비건 식문화 경험을 제공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운영할 계획”이라며 “비건 외식업계 트렌드를 선도하겠다”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다른 식품 기업들도 오프라인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커지는 대체유 시장우유를 대신할 식물성 음료 시장도 커지고 있다. 유로모니터에 따르면두유를 포함한 군내 대체우유 시장 규모는 2020년 431억원에서 2025년 668억원까지 연평균 9%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CJ제일제당은 지난해 12월 선보인 식물성 식품 전문 브랜드 ‘플랜테이블’에 이어 2일 식물성 대체유 사업 전문 브랜드 ‘얼티브’를 런칭했다. 이 브랜드는 CJ제일제당의 사내 벤처 프로그램을 통해 발굴됐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직원 6명이 기획을 맡아 사업화까지 이어진 것이다.첫 제품은 식물성 음료인 ‘얼티브 플랜트유’다. CJ제일제당 관계자는 “현재 미국, 유럽 등 선진 식물성 유제품 시장은 대체우유를 포함해 브랜드와 제품들이 세분화돼 있는 데 반해 국내는 시장 형성 초기 단계”라며 “시중 동물성 유제품들을 다양한 식물성 제품으로 대체하며 ‘얼티브’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확장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한경제 기자 [email protected]

[CEO 열전: 하워드 슐츠]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 커피 제국 ‘스타벅스’를 세우다

[CEO 열전: 하워드 슐츠]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 커피 제국 ‘스타벅스’를 세우다 강일용 [email protected]

[IT동아 강일용 기자] 6월 4일,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 스타벅스 회장이 두 번째 은퇴를 선언했다. 6월 26일까지 자신이 키운 세계 최대의 커피 브랜드 ‘스타벅스(Starbucks)’에서 맡고 있는 모든 직위를 내려놓은 후 두 번째 삶에 도전하겠다는 것. 슐츠 회장이 자신의 향후 거취를 직접 밝힌 적은 없지만, 미국 언론은 그가 정치권에 투신해 2020년 열리는 차기 미국 대선에 도전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실제로 슐츠 회장은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의 후원인으로서 동성결혼 지지 같은 많은 조언을 해왔다. 힐러리의 인기 하락과 샌더스의 고령 때문에 마땅한 차기 대권주자가 없었던 미국 민주당 입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처럼 성공한 사업가 경력을 보유한 슐츠 회장은 충분히 영입을 고려해볼만한 인재다.

슐츠 회장은 기회의 땅 미국에서도 손 꼽히는 자수성가 사례다.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영업사원을 거쳐 작은 커피 브랜드를 인수했고, 각고의 노력 끝에 자신의 회사를 세계 최고의 커피 브랜드로 만들었다. 현재 스타벅스는 77개국에서 2만 8000여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한국에 보유한 매장의 수만 1150여개가 넘는다. 미국, 중국, 일본, 한국 등 전 세계 주요 국가 도시 어디에서나 스타벅스를 만나볼 수 있다. 스타벅스의 성공비결은 뭘까. 슐츠 회장은 “커피와 함께 경험과 공간을 파는 것이 주효했다”고 스타벅스 성공비결을 요약하고 있다.

스타벅스

<스타벅스 창업자 하워드슐츠 /출처 스타벅스>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에서 성공한 영업사원으로

커피 프랜차이즈의 역사는 크게 ‘세 차례의 물결’로 요약된다. 첫 번째 물결은 초창기 커피 프랜차이즈의 등장이다. 초기 커피 프랜차이즈는 원두를 구매한 후 오랜 시간을 거쳐 커피 원액(에스프레소)을 추출해서 마셔야했던 번거로움을 해결해주었다. 고객이 커피를 주문하면 미리 추출해둔 커피나 로스팅해둔 원두를 판매해 좀 더 쉽고 빠르게 커피를 즐길 수 있게 해주었다. 하지만 첫 번째 물결에 해당한 커피 프랜차이즈는 커피를 판매만할 뿐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은 턱없이 모자랐다. 고객들은 좁은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커피를 마시거나, 포장한 후 집에 들고가서(테이크 아웃) 마셔야만 했다.

이러한 불편함을 해결한 것이 두 번째 물결이다. 커피와 함께 여유롭게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을 함께 제공해 고객들이 커피를 더욱 쉽고 간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한 것. 스타벅스는 이러한 커피 프랜차이즈 두 번째 물결의 대표주자다. 1990년대 초 전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커피 프랜차이즈의 두 번째 물결에 올라타 스타벅스와 슐츠 회장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스타벅스

<하워드 슐츠 /출처 플리커>

슐츠 회장은 1953년 뉴욕 브루클린 빈민가에서 유태계 트럭 운전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슐츠 회장은 성공한 유태계 사업가라고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의 핏줄은 그의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슐츠 회장의 아버지는 형제자매를 먹여살리기 위해 트럭 운전 등 많은 일을 했지만 가난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슐츠 회장은 반지하 단칸방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슐츠 회장이 7살이 된 그해 그의 아버지는 아무런 의료 보험 없이 운전 사고를 당하면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가뜩이나 힘들던 가세는 더욱 심하게 기울었다.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슐츠 회장이 선택한 길은 ‘운동’이었다. 미식축구에 투신해 두각을 드러냈고, 이를 바탕으로 장학금을 받아 노던미시간대에 입학할 수 있었다. 하지만 후보 선수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자 슐츠 회장은 운동의 길을 포기하고 회사원의 길을 걷게 된다. 1975년 일찌감치 대학을 졸업한 슐츠 회장은 당시 복사기로 유명하던 제록스에 영업사원으로 입사했다. 평범한 삶이었다. 3년 동안 제록스에서 일한 후 스웨덴의 생필품 회사인 햄머플래스트(Hammarplast)로 이직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자그마한 회사였던 햄머플래스트에서 두각을 드러낸 슐츠 회장은 1980년대에 들어 미국내 판매 총책임자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스타벅스를 인수하다

당시 햄머플래스트의 주력 제품은 드립커피메이커였다. 커피메이커를 판매하던 슐츠 회장은 시애틀에 있는 작은 커피 프랜차이즈 스타벅스가 대량으로 커피메이커를 주문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들에게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음을 직감하고 스타벅스의 창업주들을 만나러 시애틀로 날아갔다. 스타벅스에 방문해 커피를 마셔본 슐츠 회장은 지금까지 마셔온 커피와 차원이 다른 스타벅스 커피 품질에 큰 감동을 받았다.

스타벅스

<스타벅스 시애틀 매장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널리 알려진 것처럼 스타벅스는 슐츠 회장이 창업한 회사가 아니다. 이점에서 스타벅스는 맥도날드, KFC처럼 천재적인 사업가가 가능성 있는 사업 아이템을 알아보고 인수한 후 전세계적인 프랜차이즈로 키운 사례에 해당한다.

스타벅스는 원래 1971년, 제브 시겔, 제리 볼드윈, 고든 보우커 등 시애틀 커피박람회에서 만난 세 명의 친구가 의기투합해 설립한 커피 원두 판매업체였다. 강렬하지만 쓴맛이 강한 ‘로부스타’ 커피 원두 대신 부드럽고 향기가 강한 ‘아라비카’ 원두를 시애틀에 소개하기 위해 만든 매장이었다. 스타벅스란 이름은 소설 모비딕에 등장하는 커피를 좋아하는 일등항해사 ‘스타벅’의 이름에서 따왔다. 회사의 상징은 그리스 신화의 바다요정 ‘사이렌’으로 정했다. 초기 스타벅스는 커피 원두만 고객들에게 판매하고, 직접 커피를 만들어 팔지는 않았다. 커피 프랜차이즈의 첫 번째 물결에 해당하는 회사였다.

스타벅스

<스타벅스 초창기 로고 /출처 스타벅스>

누구나 손쉽게 고품질 커피를 마실 수 있게 하겠다는 스타벅스의 목표에 공감한 슐츠 회장은 1982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세 창업자를 설득해 스타벅스에 마케팅 이사로 합류했다. 스타벅스에서 일하던 도중 고품질 커피메이커를 구매하기 위해 커피의 본고장인 이탈리아에 방문한 슐츠 회장은 큰 충격을 받게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모든 거리마다 커피를 손 쉽게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존재했다. 단순히 커피와 커피 원두를 판매하는 것을 넘어 누구나 잠깐 쉬어가거나 모임의 장소로 활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바로 ‘카페’였다. 이탈리아어로 커피를 의미하면서 동시에 커피를 마시며 쉴 수 있는 공간을 의미하는 단어다. 1980년대에 이미 이탈리아 전역에 20만개가 넘게 존재한 카페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삶 그 자체였다.

시애틀로 돌아온 슐츠 회장은 당시 스타벅스의 대표였던 볼드윈에게 스타벅스가 원두만 판매하는 업체가 아닌 커피와 공간을 함께 판매하는 업체로 거듭나야한다고 설득했다. 하지만 세 명의 창업주는 이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결국 슐츠 회장과 세 명의 창업주는 갈라서게 되었다.

스타벅스

<1985년 슐츠 회장이 창업한 일 지오날레 로고. 훗날 스타벅스 로고에도 영향을 준다. /출처 스타벅스멜로디>

1985년 슐츠 회장은 스타벅스를 떠나 밀라노 지역 신문사의 이름에서 따온 ‘일 지오날레(Il Giornale, 매일)’라는 커피 프랜차이즈를 창업했다. 이탈리아를 카페 문화를 미국 고객들에게 소개하겠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다. 비록 서로 간에 의견이 달라 다른 길을 가기로 했지만, 슐츠 회장과 세 창업주의 사이가 틀어진 것은 아니었다. 당시 슐츠 회장은 아내의 임신으로 수중에 돈이 별로 없었다. 세 창업자는 슐츠 회장이 일 지오날레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최초의 투자자가 되어 주었다. 여러 군데에서 받은 투자를 바탕으로 1986년 슐츠 회장은 첫 번째 일 지오날레 매장을 열었다. 이탈리아의 카페 분위기를 내기 위해 오페라 음악을 틀어놓고, 아이스크림을 제공하는 등 고객들의 경험을 확대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일 지오날레 사업을 진행하기 앞서 슐츠 회장은 242명에 달하는 지인과 전문가들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이 가운데 217명이 그 사업은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고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슐츠 회장은 자신과 커피에 대한 강한 믿음을 바탕으로 사업을 밀어붙였다. 그의 나이 34살 때였다.

스타벅스의 세 창업자는 자신들의 원래 목표였던 더 나은 품질의 커피 원두 판매를 위해 그들의 스승 알프레드 피트(미국의 전설적인 커피 전문가)가 물려준 ‘피트의 커피와 차(Peet’s Coffee&Tea)’ 사업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해당 회사의 근거지가 샌프란시스코 근교에 있다보니 자연스레 시애틀에 있던 스타벅스를 처분해야만 했다. 1987년 세 창업자는 슐츠 회장에게 스타벅스의 모든 권리를 380만 달러에 넘겼다.

스타벅스의 성공 비결… 본질에 충실하라

스타벅스를 인수한 슐츠 회장은 재빨리 자신이 운영하고 있던 6개의 일 지오날레 매장 이름을 스타벅스로 변경하고 본격적으로 커피와 공간을 함께 파는 사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스타벅스는 시애틀을 벗어나 미국 전역으로 빠르게 확대되었다. 슐츠 회장은 프랜차이즈라는 사업 방식에 큰 불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의 매장이라도 제대로된 품질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브랜드 전체가 타격을 받는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스타벅스 본사가 모든 매장을 관리하는 직영점 방식을 고집하고 모든 직원들을 직접 고용했다. 이후 미국 전역으로의 매장 확대와 해외 진출을 위해 파트너와 합작한다는 결정을 내리기도 했지만, 이때도 커피 품질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큰 규모의 사업자와 협력했고 5:5로 지분을 나누는 합자 회사 방식을 고수했다.

이러한 슐츠 회장의 전략은 당시 난립하던 커피 프랜차이즈의 두 번째 물결 속에서 스타벅스가 두각을 드러낼 수 있도록 해주었다. 확장에만 급급해 커피 품질 관리에 소홀했던 경쟁자들과 달리 스타벅스는 어떤 매장에서나 우수하고 균일한 품질의 커피를 제공했다. 경험과 공간을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커피라는 사업의 본질을 소홀히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실천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슐츠 회장은 스타벅스 매장 확장도 매우 공격적으로 진행했다. 미국은 넓은 땅 크기 때문에 같은 사업을 두고 지역별로 강세를 보이는 브랜드가 다른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로 햄버거 판매 사업을 들 수 있다. 슐츠 회장은 스타벅스가 시애틀과 그 근교에 머무르는 브랜드가 되지 않길 바랬다. 1992년 나스닥에 회사를 상장한 후 투자금을 모아 미국 방방곡곡에 매장을 냈다. 1992년 미국 전역에 165개의 매장을 두고 9300만 달러의 매출을 내던 스타벅스는 2000년 3500개의 매장을 두고 22억 달러의 매출을 내는 미국 최고의 커피 브랜드로 우뚝서게 되었다.

스타벅스

<출처 스타벅스>

1996년부터는 미국을 벗어나 전 세계로 그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일본 도쿄에 매장을 낸 것을 시작으로 필리핀, 영국, 멕시코, 중국 등에 매장을 설립했다. 한국에는 1999년 이대 앞에 1호점을 설립하면서 진출했다. 굴지의 유통 대기업인 신세계와 5:5로 합작해 스타벅스커피코리아를 설립하고 사업을 진행 중이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미국 유학 도중 스타벅스 매장에서 커피와 공간을 경험하고 이를 한국에 알리기 위해 스타벅스를 들여온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2000년 6월 슐츠 회장은 스타벅스의 최고경영자 자리를 부사장이었던 오린 스미스에게 넘기고, 스타벅스의 전 세계 확장을 위한 글로벌 전략가라는 한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스타벅스를 성장시키기 위해 18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온 것이 그를 소진(Burn)시켰기 때문이었다. 슐츠 회장의 첫 번째 은퇴였다.

흔들리는 스타벅스… 돌아온 슐츠 회장의 선택은?

슐츠 회장의 은퇴 이후 스타벅스는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바로 커피 프랜차이즈의 세 번째 물결이 닥쳐온 것이다. 커피 프랜차이즈의 세 번째 물결은 커피의 고급화다. 천편일률적인 커피 품질에서 벗어나 뛰어난 바리스타가 만든 고급 커피를 즉시 맛볼 수 있는 ‘블루보틀’ 같은 차세대 커피 프랜차이즈와 개인 카페가 속속 등장해 스타벅스의 자리를 위협했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스타벅스 경영진들은 타성에 젖어 있었다. 회사는 성장하고 있었지만, 그 성장은 새로운 매장을 여는 것에 기댄 속빈 강정에 불과했다. 개별 매장에서 판매되는 커피의 양은 나날이 줄어들었다. 결국 스타벅스는 매출과 영업이익 급감이라는 쓴잔을 들이키고 만다.

스타벅스

<하워드 슐츠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자신이 키운 회사가 흔들린 것을 본 슐츠 회장은 2008년 8년만에 다시 최고경영자로 복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흔들리는 스타벅스를 위해 슐츠 회장이 내린 처방전은 커피라는 본질에 다시 충실해지는 것이었다. 스타벅스가 타성에 젖게 만든 원흉인 임원들을 해고하고, 제대로된 매출이 나지 않는 수백개의 매장을 폐쇄했다. 직원들이 양질의 커피를 만들 수 있도록 교육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매장을 쉬는 한이 있어도 모든 직원이 이 프로그램을 이수하도록 했다. 최고급 커피메이커 제조사인 ‘클로버 장비 회사’를 인수해 스타벅스 산하에 두고 해당 회사에서 만든 커피메이커를 모든 스타벅스 매장에 설치했다.

슐츠 회장은 세상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중심으로 변하고 있음을 직감했다. 처음으로 최고기술책임자(CTO)를 고용해 인터넷 기반의 ‘스타벅스 리워드 카드’를 도입했다. 리워드 카드를 보유한 고객은 스타벅스 매장에서 무료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었고(후에 전면 무료로 개방), 모은 포인트를 이용해 어떤 스타벅스 매장에서나 다양한 음료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해 고객 충성도를 높였다. ‘마이 스타벅스 아이디어’라는 홈페이지를 열고 고객들의 제안과 불만을 수집한 후 이를 통해 스타벅스의 문제점을 하나씩 개선했다.

고품질 커피를 제공하고 고객 충성도(로열티)를 높인다는 슐츠 회장의 처방을 통해 위기의 스타벅스는 다시 반등하는데 성공했다. 커피 프랜차이즈 두 번째 물결의 대표주자였던 스타벅스가 세 번째 물결의 대표주자로 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008년 3억 1500만 달러였던 스타벅스의 영업이익은 슐츠 회장이 돌아오고 2년이 지난 2010년 9억 4500만 달러로 3배나 증가했다.

같이 볼 기사: [CEO 열전: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의 미래를 위한 슐츠 회장의 세 가지 전략 – http://it.donga.com/27839/

글 / IT동아 강일용([email protected])

또 돌아온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리브랜딩 나서 매장 경험 재설계, ‘스벅’ 브랜드 활용한 NFT 사업

“매장 내 큰 로비는 더 이상 스타벅스의 미래가 아닐 수 있다. (스타벅스) 매장 경험을 재정의·재설계해야 한다. 카페를 넘어 NFT (Non Fungible Token·대체 불가 토큰)를 통한 디지털 혁신도 추진한다.”

4년 만에 경영 일선에 복귀한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 스타벅스 명예회장의 취임 일성이다. 스타벅스를 세계 최대 ‘커피 왕국’으로 키운 슐츠가 4월 4일 최고경영자(CEO)로 복귀했다. 임시 CEO로, 오는 가을 새로운 CEO를 찾을 때까지 스타벅스의 경영을 맡는다. 지난 2000년 CEO에서 물러난 슐츠는 스타벅스가 실적 악화로 허덕이자 8년 만에 CEO로 복귀해 2018년까지 회사를 이끈 바 있다. 이 기간 슐츠는 매장을 급속도로 늘리는 것을 지양하고, 바리스타 교육 등을 통해 스타벅스만이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는 가치를 높이는 데 집중했다. 로고가 지금의 형태로 바뀐 것도 이 시기다.

슐츠는 코로나19로 타격받은 스타벅스의 리브랜딩(rebranding)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스타벅스는 코로나19 여파로 2020년 매출이 235억1800만달러(약 29조7000억원)로 전년 대비 11% 감소했다. 지난해 매출이 290억6060만달러(약 36조7000억원)로 회복했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 오프라인 매장 중심의 사업 모델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매장 운영 비용 증가와 바리스타들의 노조 설립 움직임은 슐츠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슐츠는 4월 4일 CEO로 복귀하면서 가진 ‘오픈 포럼’에서 스타벅스가 고객에게 제공하는 강력한 브랜드 가치를 뜻하는 ‘스타벅스 경험’을 강화하고, 기존 오프라인 중심의 커피 프랜차이즈 비즈니스를 넘어 NFT 사업에 나선다고 밝혔다.

‘스타벅스 매장은 인간의 마음과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공간이다.’ 스타벅스 브랜드 전략의 핵심이다. 단순히 맛있는 커피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매장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을 브랜딩한다. 슐츠는 스타벅스의 성공 비결로 “커피와 함께 경험과 공간을 파는 게 주효했다”고 밝힌 바 있다.

슐츠는 이런 스타벅스의 브랜드 가치가 녹아든 ‘스타벅스 경험’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오픈 포럼에서 “매장을 소비자에게 더 의미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곳으로 재정의하고, 재설계해야 한다”며 “상당한 수준의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스타벅스는 주주 가치 제고 차원으로 지난해 10월 시작한 200억달러(약 25조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프로그램을 중단했다. 슐츠는 이 자금을 매장과 고객, 직원에게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슐츠는 “스타벅스는 매장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비즈니스 부문을 만들 것”이라며 “그동안 디지털 자산을 연구했고, 올해 안에 NFT 사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스타벅스가 보유한 브랜드 자산과 콘텐츠는 NFT 플랫폼과 비즈니스를 하려는 그 어떤 회사, 브랜드, 유명인이 보유한 것보다 가치가 높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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