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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1250년 무정의 통치기인 상나라(기원전 1600~1046년 경)로 거슬러 올라간다. 황하 문명은 여러 다른 문명의 영향을 받았으며 중국 본토에서는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 이래 약 5000년 동안 수많은 여러 왕조가 흥망을 반복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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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 한번에 다보기 (70분 순삭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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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요약 – 네이버 블로그

중국역사요약. * 하나라. 1. 은나라. 2. 주나라. 3. 춘추전국시대. 4. 진나라. 5. 한나라. 6. 위진남북조. 7. 수나라. 8. 당나라. 9. 5대10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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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5/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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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관련 정보 – 나무위키:대문

위의 영상과 아래쪽 문서는 중국 대륙에 존재한 역사적인 시대와 국가들을 간략하게 정리한 문서이다. 중국의 역사는 삼국지연의에 등장한 “무른 천하 대세는 반드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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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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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요약 No.1: 연대표(年代表)와 주요내용… (‘22.2.23 수)

중국 역사(中國歷史) 요약해 알아보기 No.1 – 연대표(年代表):건국 신화(建國神話)에서 중화 인민공화국까지 – ◇ 중국(中國)의 선사 시대(先史時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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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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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 요약 정리해 알아보자 – 쏘쏘의 하루

중국 역사 요약 정리해 알아보자 세계에서 제 4위의 국토 면적을 자랑하는 중화 인민 공화국은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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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 핵심 정리! 이것만 보면 중국 역사 정복 – 베트남코라

중국 삼황오제의 신화부터 하나라, 상나라 그리고 주나라에 이은 춘추전국시대까지를 선진시대라 부릅니다. 그 후 중국 최초의 통일 왕국 진나라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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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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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정리 1 (~1102년) – 소박한 독서가의 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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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7/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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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요약) 통일신라676~918 발해건국698~926 고려시대 …

중국역사 (은나라) 1) 은 (BC1600~BC 1046) 은(殷)왕조는 중국의 역사상 최초의 국가라고 여겨지는 나라이다. 은나라 이전에도 하나라가 존재하였다고 전하고 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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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4/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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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중국의 역사

황하

중국의 역사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기원전 1250년 무정의 통치기인 상나라(기원전 1600~1046년 경)로 거슬러 올라간다.[1][2] 황하 문명은 여러 다른 문명의 영향을 받았으며 중국 본토에서는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 이래 약 5000년 동안 수많은 여러 왕조가 흥망을 반복해 왔다.

한나라 때는 현재 중국 민족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족이라는 개념이 생겨났고 당나라는 서방의 페르시아, 이슬람 제국, 동로마 제국과의 교류도 하였다. 한나라의 멸망 이후 한족들이 취약해지고 서진의 멸망 이후로 북방 민족들이 화북 지역에 대대적으로 쳐들어온 뒤부터 수나라가 중국을 통일하기 전까지 화북은 이민족들의 무대가 된다. 한족들이 건국한 송나라 때는 중국 중세 문화가 전성기를 이루었으나 군사력이 너무 약해 주변 이민족들로부터 끊임없는 침략을 받다가 남송이 몽골족의 몽골제국에 의해 멸망함으로써 사라진다. 이후 몽골제국이 4개의 칸국하고 원나라로 분열되었으며 한족들이 몽골족을 몰아내고 명나라를 건국하게 된다. 명나라는 영락제 때 대대적인 영토 확장을 포함해 정화의 원정 등으로 큰 전성기를 맞게 된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명나라가 약해지자 여진족은 이틈을 타서 후금을 건국한 이후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청나라를 건국하여 지배자로서 중국을 손에 넣고 통치한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 제1차 아편 전쟁과 제2차 아편 전쟁에서 청나라가 영국에 패배한 이후, 중국 본토는 “아시아의 병자” 서구 열강의 반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고 대만과 만주는 일본 제국에 지배당하고 중국 한족의 남조의 수도로서 상징적이던 난징은 이민족에게 유린당했던 것처럼 현대에는 일본 제국에 의해 난징 대학살과 강간으로 유린당한다. 홍콩은 영국이 지배했으며 마카오는 포르투갈이 지배하였다.

여진족이 건국한 청나라의 무능에 반발하여 태평 천국 운동이 일어났으나 진압되었다. 그 후 한족의 개혁파들에 의해 양무 운동과 변법 자강 운동이 차례로 일어났으나 반식민지로 전락한 중국은 힘이 없었고 열강의 지배와 간섭으로 실패했다. 한편 서태후 등 보수파의 사주로 반외세 운동인 의화단 운동을 일으켰으나 진압되었다. 그 후 신해혁명이 일어나 1912년에는 아시아 최초의 공화제 국가 중화민국이 탄생했다. 하지만 일본 제국에 의해 포섭되기도 하는 각지의 군벌에 의해 수많은 내전이 일어났고 몽골, 티베트의 독립 운동 등으로 말미암아 중화민국은 혼란에 싸여 분열되었다. 또한 일본 제국의 침략에 의해 중국 동부 지역을 잃고 난징이 유린을 당하며 중국 자체가 지배당할 뻔한 위험한 시기를 보냈다. 이 때 일본의 중국 정복에 대항하기 위해 러시아와 가까워졌으나 러시아 또한 중국에 조계지를 설치하고 중국 영토로 남하하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1930년대에는 국공 내전(중국에서는 보통 “해방 전쟁”이라 칭함)과 중일 전쟁(중국에서는 보통 “항일전쟁”이라 칭함)이 발발하여 중국 각지가 전장이 되었다. 이 시기에는 중앙 정부가 2개 이상인 때에도 있었다.

많은 중국인 가난한 농민, 소작농 계급들로 구성된 중국공산당은 소련의 영향 아래에서 힘을 키웠고 그 후 중일 전쟁 중에 일본의 세력 아래에 있던 군벌들을 견제하기 위하여 소련의 영향력 아래에서 세력을 늘려 온 중국공산당은 계속되는 오랜 내전으로 군인들에 의해 반복되던 민간인에 대한 살인과 강간, 방화에 지친 중국인들의 민심을 얻었다. 1945년에 일본이 미국에 패망하고 나서 중국공산당은 중국 내에서 일어나던 국공 내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세웠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매년 10월 1일을 국경절로 정하고 이를 기념한다.

신대 [ 편집 ]

삼황오제(三皇五帝)는 중국 신화에 나오는 고대의 전설적 제왕들이다. 삼황(三皇)은 복희씨(伏羲氏), 신농씨(神農氏), 여와씨(女媧氏)를 말하며, 오제(五帝)는 황제헌원(黃帝軒轅), 전욱고양(顓頊高陽), 제곡고신(帝嚳高辛), 제요방훈(帝堯放勳:陶唐氏), 제순중화(帝舜重華:有虞氏)를 지칭한다.

중국 문명 [ 편집 ]

선진 시대 [ 편집 ]

중국에서는 이 시기를 ‘선진 시기’(先秦時期)라고도 한다. 하(夏) (기원전 21세기 – 기원전 17세기)의 경우 논란의 여지는 남아 있으나, 대체로 실존했던 국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3] 하를 무너뜨리고 세운 상(商) (기원전 17세기 – 기원전 11세기 중반)은 은허로 수도를 옮긴 이후에 은(殷)이라고도 부르며, 한때 신화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은허의 유적 발굴 이후 실존했던 국가로 인정되었다.

주(周) (기원전 1050년 경 – 기원전 256년)는 본래 상(은)나라의 제후국이었으나, 상(은)나라 말기 주왕(紂王)의 폭압으로 상(은)나라를 무너뜨리고 패권을 잡은 나라다. 이 때 주의 왕을 처음으로 ‘천자’(天子)라고 불렀다. 주의 패권은 춘추 전국 시대(春秋戰國時代) (기원전 770년 – 기원전 221년)가 되면서 약해지기 시작한다. 춘추 시대에는 여러 주나라의 제후국들이 주의 천자를 존중하고 각자의 세력을 다투던 시기로, 세력이 강한 제후국들 중에 주 왕실의 이름으로 천하를 호령한 제(齊)-환공(桓公), 진(晉)-문공(文公), 초(楚)-장왕(莊王), 오(吳)-합려(闔閭), 월(越)-구천(勾踐)의 5제후를 춘추 오패라고 부른다. 전국 시대로 들어서면서 천자에 대한 충성마저 약화되기 시작한 시기로, 진(秦), 한(韓), 제(齊), 위(魏), 조(趙), 연(燕), 초(楚)라는 전국 칠웅이 차례로 왕을 칭하고 오로지 천하 통일을 위해 질주하였다.

중화 제국 [ 편집 ]

비슷한 이름의 비슷한 이름의 중화제국 에 관해서는 해당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진 시황제는 기원전 221년에 스스로를 “황제”(황제)라고 선언했고 통치자들은 기원후 1911년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가 퇴위할 때까지 이 용어를 계속 사용했기 때문에 이 기간을 전통적으로 중화 제국이라고 부른다. 때로는 초기, 중기 및 후기의 세 하위 기간으로 나뉘며 초기의 주요 사건으로는 중국의 진나라 통일과 한족의 교체, 제1분할 후 금나라 통일, 북중국의 상실 등이 있다. 중기에는 수의 통일과 당, 제2분할, 송의 통일이 보충되었다. 후기 기간에는 원, 명, 청 왕조가 포함된다.

고대사 [ 편집 ]

진한 시기 [ 편집 ]

진(秦) (기원전 221년 – 기원전 207년)은 한(韓), 제(齊), 위(魏), 조(趙), 연(燕), 초(楚)를 무너뜨리고 중국 본토를 통일하였다. 진은 이어 모든 제후국을 폐지하고 조정에서 직접 다스리는 군현제를 처음 실시하였다. 이어 진왕 영정은 처음으로 ‘황제’(皇帝)의 칭호를 사용하였다. 진(秦)나라의 무리한 통치와 폭압으로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진나라는 진 이세황제의 치세에 몰락하여, 그 뒤 멸망하였고, 초한전을 거쳐 한나라가 중원을 통일한다. 한나라는 200년 넘게 유지된 중앙집권적 국가로 서양에 최초로 이름이 알려진 나라이기도 하다. 전한(前漢) (기원전 206년 – 서기 9년)은 한나라(전한)의 외척이었던 왕망이 황위를 찬탈하여 세운 신(新) (9년 – 23년)에 의해 잠시 명맥이 끊기나, 신나라는 급격한 개혁이 민중의 호응을 얻지 못하고 각지의 반란으로 망하였고, 한나라(전한)를 계승한 국가인 후한(後漢) (25년 – 220년)이 다시 통일 국가를 이루었으나, 화제 이후의 황권은 환관들과 외척들로 인하여 크게 약화되었다. 위에게 멸망당했다.

위진 남북조 시기 [ 편집 ]

대한민국에서는 삼국 시대(三國時代) (220년 – 280년)라고 하지만 중화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남북조 시대(南北朝時代) (439년 – 589년)까지 포괄하여 위진 남북조 시기라고 한다.

위(魏)는 조비가 후한의 황제로부터 직접 제위를 물려받은 국가로 중원 지역을 차지하였다. 촉(蜀) 후한 황실의 후예인 유비가 계승하였으나, 세력권은 서남 지방에 한정되었다. 한편 손권의 오(吳)는 독자적인 세력으로 장강 이남을 차지하였다. 위는 사마염의 서진(西晉) (265년 – 316년)에게 승계되며 서진이 삼국을 통일하게 되나, 초기부터 황실 분란인 팔왕의 난 등으로 혼란스럽다가, 흉노족의 전조에게 멸망당한다. 서진의 멸망 이후 서진이 있던 자리에 16개의 국가가 들어서 패권을 겨뤘으니 이를 십육국 시대(十六國時代) (316년 – 439년)라 한다. 비한족 국가인 전조(前趙)·후조·전연(前燕)·후연· 남연, 관중(關中)에 있던 전진(前秦)·후진·서진 및 하투(河套)의 하(夏), 사천(四川)의 성한(成漢), 하서(河西)의 후량·북량·남량과, 한족 국가인 북연, 하서(河西)의 전량(前涼), 서량이 있었으며, 전조, 후조, 전진 등이 한때 큰 세력권을 과시했으나 결국 북조의 북위로 통합된다. 북위(北魏)는 선비족 탁발씨의 국가로, 3대 태무제의 시기에 화북을 통일하였다. 그러나 북위는 곧 동위(東魏)와 서위(西魏)로 분리되고, 동위는 북제(北齊), 서위는 북주(北周)로 이어진다. 북제는 이후 북주에 흡수되고, 북주는 왕실 외척인 양견에 의해 수(隋)로 국호를 바꾸게 된다.

한편 서진 황실의 계승을 천명한 동진(東晉)은 서진의 영토를 되찾으려 여러 차례 노력했으나 모두 실패한다. 세력권은 주로 장강 이남으로 한정되었다. 동진을 계승한 국가들이 이어진 왕조를 남조라고 하며, 송(宋)=유송(劉宋), 제(齊)=남제(南齊), 양(梁), 진(陳)이 있다. 수나라에게 멸망당한다.

수나라, 당나라 시대 [ 편집 ]

수(隋) (581년 – 618년)는 북주의 외척인 양견에 의해 건국된 나라로, 남조의 진을 멸망시키고 통일하나, 무리한 원정과 과도한 세금 징수로 인해 건국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멸망하였고, 당(唐) (618년 – 907년)으로 이어진다. 당나라는 비단길을 통한 유럽과의 교역을 활성화시켜 중국 고대 문화를 서양에 전파하였다. 한편 당나라의 황후이던 측천무후가 조정을 장악하고 아들인 당의 황제를 황태자로 격하시키고 국호를 잠시 주(周) (690년 – 705년)로 바꾼다. 측천무후의 반대파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으로 공포 정치를 펼쳤으나, 인재 중심의 정치 역시 펼쳐서 백성들의 삶이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 측천무후 이후 다시 국호를 당으로 바꾸게 된다. 후량에게 멸망당한다.

중세사 [ 편집 ]

오대십국 시대 (907년 – 960년)는 화북의 정권을 다투던 5개의 대국과 나머지 10개의 소국이 혼재했던 시기이다. 5대 10국의 혼란을 수습하고 송(宋) (960년 – 1279년)이 다시 중원을 통일하였다. 세계 최초로 지폐를 발행하였으며, 중국 역사상 최초로 상비 해군을 창설하였다. 또한 문화 정치를 펼친 왕조이기도 하다. 이 시기에는 쌀과 보리의 이모작이 확대되었으며, 예술, 사상 및 각종 실용기술의 발달이 두드러져, 문화적으로 풍요롭던 시기였다. 그러나 내몽골 지역과 만주 지역을 차지한 거란족이 세운 국가인 요(遼) (916년 – 1125년)에 의해 베이징 이북의 많은 지역을 빼앗기고, 요나라와 서하에 사실상의 조공을 납부하며 별 위세를 떨치지 못하다가, 요나라의 지배하에 있던 여진족이 요나라를 정복하고 세운 금(金) (1115년 – 1234년)에게 화북 지방을 빼앗기고 멸망한다. 이 때까지를 북송(北宋)시대라고 하고, 이후 북송의 황실을 계승한 왕조를 남송(南宋)이라고 한다. 몽골 제국과 함께 금나라를 멸망시키는 데에는 성공하지만, 몽골 제국을 계승한 원나라에 의해 멸망한다.

근대사 [ 편집 ]

원(元) (1271년 – 1368년)은 만주, 중앙아시아, 서남아시아, 동유럽까지 지배한 몽골 제국의 적장자인 쿠빌라이 칸이 몽골고원, 만주, 화북력들을 아우르는 지역의 한족식으로 세운 국가로, 남송을 멸망시키고 중국 본토를 장악하게 된다. 그러나 주원장이 원나라를 몽골 고원으로 몰아내고 명(明) (1368년 -1644년)이라는 한족 왕조를 건국한다. 초기에는 외국과 교류하며 선진 문물을 과시했으나, 후기로 갈수록 임진왜란 등 외부 원정의 부담과 문화 침체로 쇠퇴하다가 사르후에서의 패배와 숭정제의 실책으로 멸망한다. 명나라의 몰락을 틈타 금나라의 후예인 만주족이 후금을 세워 중국을 다시 통일하였다. 청(淸) (1616년 – 1912년)은 후금을 계승한 왕조로, 초기에는 한족을 정책적으로 차별했으나, 전체적인 제도 및 왕조의 분위기는 명나라와 유사하였다. 양무 운동을 통해 근대 국가 진입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서구 열강 세력들의 이권침탈이 심화되면서 더욱 더 쇠퇴하고, 1912년에 신해 혁명으로 멸망한다. 청나라 소조정이 1912년부터 1924년까지 유지되었지만 결국 붕괴되었다. 그 사이에 청나라 복벽사건이 일어나서 1917년 7월 1일부터 청 황조가 복벽되었으나 1917년 7월 12일에 끝을 맺었다. 한편 남명(南明) (1644년 – 1662년)은 멸망당한 명나라의 왕실을 계승한 나라로, 명의 부흥을 기도하였으나 청나라에 망하였다. 남명의 신하였던 정성공은 타이난으로 건너가 정씨왕국을 설립하여 청나라에 대항하지만 3대째에 복속당한다.

현대사 [ 편집 ]

1912년부터 1928년까지 사용된 중화민국의 국기

1928년부터 사용 중인 중화민국의 국기

중화민국(中華民國) (1912년 – 현재)은 신해혁명의 성공으로 수립된/ 아시아 최초의 공화제 국가이다. 이후 각 지방의 실력자들이 군벌로 등장하였다. 특히 위안스카이는 자신이 거느리는 북양 군벌을 이끌고 쑨원으로부터 대총통 자리를 넘겨받았다. 위안스카이가 1916년 사망하자, 이후 그의 부하들이 할거했는데, 대표적으로 안휘파의 돤치루이, 직예파의 펑궈장, 차오쿤, 오패부, 봉천파의 장쭤린, 산시파의 옌시산 등이 중국 각지에서 할거하였다. 한편 중화민국 최초의 공화정 체제인 북양 정부는 1928년까지 존속했다. 그 후 북벌이 재개되고 모든 세력이 장제스가 이끄는 중국국민당 수중으로 들어왔다. 이로써 난징을 수도로 하는 중국국민당 주도의 국민 정부가 집권하게 되었다.

한편 천두슈(陳獨秀)와 마오쩌둥(毛澤東)을 주축으로 하는 중국공산당이 농민들 사이에서 지지를 얻고 있었다. 중국국민당은 중국공산당과 제1차 국공 합작을 이루어냈으나, 북벌 과정에서 분열이 일어나, 국공 내전이 시작되었다. 국민 정부는 1931년 만주사변 이래 일본의 침략에 무저항주의를 택하고 오로지 ‘공산당 타도’에 중점을 두는 정책을 폈으나, 시안 사건을 계기로 제2차 국공합작이 성립되어 항일 민족 통일전선이 결성되었다. 중일전쟁 중에 수도 난징이 점령당하고 충칭을 임시 수도로 정해 옮겼지만, 끝내 일본 제국이 패망하자 난징으로 복귀하게 된다. 하지만 전후 처리 과정에서 내분이 생겨 제2차 국공 내전이 발발하였다. 한편 국공 내전 중에 정부는 새로운 중화민국 헌법을 통과시켜 국민 정부를 헌정 체제로 격상시킨다. 1949년 4월에 중국 인민해방군이 수도 난징을 점령하면서 중국공산당이 사실상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된다. 기세를 몰아 중국공산당은 중국 대륙을 석권한 이후 공식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한다. 이 과정에서 중화민국 정부는 패닉 상태에 빠져, 국민당에 내분이 일어나 공산당 밑으로 들어가거나(중국국민당 혁명위원회) 타이완, 영국령 홍콩 또는 국외 등지로 피난하는 국민당 관계자도 속출했다. 한편 중국국민당은 장제스의 지도하에 현재의 타이베이 시로 정부를 이전하여 지금까지 중화민국의 법통이 계승되고 있다. 냉전 시대에 한국 전쟁 덕분에 중화민국은 영토의 대부분을 잃었어도 국제적 위상이 거의 변함없었다. 그러나 점차 탈냉전 시대에 들어서게 되면서 실리 외교를 선호하는 세계 다수의 국가들은 중화인민공화국 쪽으로 기울었다. 현재 중화민국을 중국의 합법 정부로 승인하고 있는 나라 수는 대폭 감소했지만, 서로 중국의 정통성을 계승하는 유일한 합법 정부임을 자처하며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에 ‘두 개의 중국’으로 정부가 병립된 분단 국가로서 동아시아의 정치외교적인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한편 일본 제국이 세운 괴뢰 정부로 왕징웨이 정권, 몽강연합자치정부, 만주국이 있으나 국민 정부에 통합된다.

비율 2:3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기비율 2:3

국공 내전으로 1949년 10월 중국공산당의 주도로 중국 대륙에 사회주의 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 (1949년 – 현재)이 건국되었다. 소비에트 연방과의 유대 관계를 통해 여러가지 경제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고, 국경 분쟁을 일으키는 등 소련과의 관계도 소원해진다. 1971년 유엔 총회 결의 제2758호를 통해 중화민국을 제치고 유엔에 입성하였으며 국제 사회로부터 널리 인정받게 된다. 1971년 ‘핑퐁외교’로 불리던 리처드 닉슨의 베이징 방문을 계기로, 마침내 1979년 중화민국의 강력한 후원국이던 미국과도 수교하게 된다. 덩샤오핑(중국어: 鄧小平) 이후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통해 경제 대국 반열에 진입하였다. 1990년대에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포르투갈로부터 마카오를 차례로 편입하였다. 2008년에는 베이징 하계 올림픽이, 2010년에는 상하이 엑스포가 개최되으며, 2022년에는 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개최되었다.

인구의 변천 [ 편집 ]

아래의 데이터는 양학통의 《計劃生育是我国人口史発展的必然》(1980년)에 의한다.

각주 [ 편집 ]

중국역사요약 : 네이버 블로그

중국역사요약

* 하나라

1. 은나라

2. 주나라

3. 춘추전국시대

4. 진나라

5. 한나라

6. 위진남북조

7. 수나라

8. 당나라

9. 5대10국

10. 송나라

11. 원나라

12. 명나라

13. 청나라

전설상의 중국 국가로서 은나라 이전의 국가이다. 그러나 증명할 자료가 없다.

전설상의 국가인 하나라를 제외하면 중국 대륙에 가장먼저 세워진 국가 갑골문자를 만들었으며 주에게 멸망함

은나라 이후의 국가이며 은나라를 부수고 세워진 주나라를 서주라 하고 동천이후의 주나라를 동주라 함. 주 왕실의 세력이 약해지자 춘추 전국 시대가 개막함

춘추전국

춘추 5패, 전국 7웅 중 한 국가로서 춘추 전국시대를 마감시키고 중국 대륙을 통일한 왕조

진시황으로 유명하며 악랄한 국가였다. [ 분서갱유와 만리장성 축조, 무리한 토목공사 ]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이다. 불과 15년 밖에 존속하지 못하고 농민 반란으로 멸망했다.

한 [고조선이 한나라에 멸망]

유방이 초의 항우를 이기고 초한 시대를 마감, 중국 대륙을 재통일한 국가. BC202년에 세워져 서기 220년 까지 존속한 긴 역사의 국가. 서기 8년에 왕망이 신을 설립했으나 17년 만에 광무제가 한을 재건해 신을 멸망시켰다. 신 이전의 한을 전한이라 하고 광무제가 재건한 한제국을 후한이라 한다.

삼국 시대

위, 촉, 오 3국이 대립한 시대. 위의 조조와 촉의 유비, 오의 손권이 대립했으나 위가 승리하여 삼국시대를 끝냄

서진

삼국 시대 이후의 국가. 삼국시대를 끝내고 중국을 통일한 위가 이름을 변경해 세운 국가이다.

남북조 시대

317년 부터 581년까지 지속된 북쪽의 이민족과 남쪽의 한인이 세운 왕조끼리 대립하던 시기

수 [살수대첩, 고구려에 침입 후 멸망]

남북조 시대를 끝내고 중국을 통일한 왕조. 문제가 중국을 통일하고 양제가 멸망시킨 2대 황제 왕조이다. 수의 시기에 중국에 대운하가 설립되었고, 만리장성을 이어나갔다. 그러나 지속된 토목공사와 고구려 118만 대군 파병의 실패 등으로 대규모 반란에 의해 618년에 멸망함.

당 [고구려에 침입 / 나당연합 등]

수에 이어 세워진 통일왕조. 300여년간 대륙을 통치하였으며 이시기에 사회 경제 문화 종교가 크게 발달했다. 그러나 각종 농민반란으로 쇠퇴하면서 결정타인 황소의 난에 의해 907년 멸망했다.

5대 10국 시대 [936년 고려가 후삼국 통일]

907년 부터 960년 까지 지속된 분열 시기. 송이 재통일 할때까지 대륙의 지배권을 놓고 각축을 벌였다.

송 [성리학 등]

5대 10국시대를 마감하고 중국을 재통일한 통일왕조.

고려와 친했으나 북쪽의 이민족에 침입을 많이 당했다. 1127년에 여진족이 건립한 금의 침입으로 화북 지방을 빼앗기고 수도를 카이펑에서 항저우로 옮겼으며 이때부터 남송이라 불렀다. 1127년 전까지를 북송이라 하고 1127년 이후를 남송이라 한다.

원 [13세기 고려 침입, 친원파 다수 말기에 원나라 흔들리면서 고려도 흔들림]

몽골족이 세운 이민 왕조. 금나라와 송나라를 부수고 들어와 역사상 최초로 전중국을 지배한 왕조이다. 그러나 황족사이의 내분과, 한족의 반란으로 약해졌고, 결국 홍건적의 난으로 멸망하고 명이 수립되었다.

명 [요동정벌(명나라의 무리한 요구에 경계)에 위화도 회군(이성계) 조선시대, 친명정책]

홍건적을 이끌던 주원장이 세운 한족왕조. 이시기에 한인이 또다시 동북아시아에서 패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양명학이 발달했고, 부국 강병제와 황제 독재 체제를 유지했다.

그러나 1644년 이자성이 명을 멸망시키자 화북에서 청이 베이징으로 들어와 중국을 지배했다.

청 [광해군의 중립외교/병자호란 – 조선말기 청일전쟁]

여진족이 1616년 명에서 독립해 후금을 세웠다. 태종때 만주와 몽골을 통일해 청으로 국호를 변경하고 명을 압박했다. 1644년에 이자성이 명을 멸망시키자 베이징으로 들어와 중국을 1912년 까지 지배했다. 중국의 마지막 전통 왕조이며 마지막 이민왕조이다.

중화민국

쑨원이 청왕조를 누르고 세운 중국 최초의 공화정 국가. 쑨원이 총통은 되지 못했다.

중화민국은 1945년(국민정부 포함)까지 지속 되었으며 원세개의 황제 취임의 욕망으로 붕괴의 위기에 처했다가 국민당이 국민정부를 세우면서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국공내전

국민당과 공산당이 벌인 내전. 일본이 패망한뒤 국공합작을 이루었던 일도 잠시, 다시 전쟁에 불이붙어 장제스와 마오쩌둥이 으르렁 거리기 시작했다. 이전쟁은 약 4년간 지속되었다.

중화 인민 공화국

마오쩌둥(모택동)이 세운 공산국가. 줄여서 걍 중국이라 한다. 국민당은 대만으로 쫓겨나고 공산당이 대륙을 장악해 현재까지 이끌고 있다. 한때 민주화 시위등으로 시끄러웠으나 지금은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3. 언제 만리장성이 지어졌나?

BC 221년 진의 시황제가 천하를 통일하자, BC 214년에 그때까지 연 ·조 등이 북변에 구축했던 성을 증축 ·개축하여, 흉노에 대한 방어선을 이룩하였다가 다시 한나라에 이르러 영토의 서쪽 끝인 둔황 바깥쪽의 위먼관까지 장성을 연장하였습니다.

장성이 산하이관에서 자위관에 이르는 현재의 규모를 갖춘 것은 명나라대에 들어와서였습니다. 그후 청나라 이후에는 군사적 의의는 없고 지역을 나누는 정치 ·행정적인 경계선에 불과하게 되었습니다.

4. 중국 역사에 중요한 인물들

시황제, 유방, 항우, 삼국시대의 패자들(조조, 유비, 손권), 이연, 이세민, 주원장, 강희제, 건륭제,

출처 집필자 : qkrwjdduf193

중국역사 요약 No.1: 연대표(年代表)와 주요내용… (‘22.2.23 수)

중국 역사(中國歷史) 요약해 알아보기 No.1

– 연대표(年代表):건국 신화(建國神話)에서 중화 인민공화국까지 –

◆ 중국(中國)의 선사 시대(先史時代) 와 건국 신화(建國神話)…

1. 선사 시대(先史時代): 문자(文字)로 역사(歷史)가 기록(記錄)되기 이전의 시기.

. 구석기 시대(舊石器時代):

‘란톈 원인(藍田猿人남전 원인), 베이징 원인(北京原人북경 원인)’ 등의

인류 화석(人類化石)이 발견 됨.

-. 猿人(원인): 가장 원시적(原始的)인 최고(最古)의 화석 인류(化石化石)의 총칭.

-. 原人(원인): 원인(猿人)에 이은 30만~70만년 전(前)의 화석 인류(化石人類).

북경 원인(北京原人), 자바 원인(原人) 등. 원시인(原始人).

. 신석기 시대(新石器時代): B.C. 6,000년경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推定).

* ‘세계 4대 문명’으로 꼽히는 ‘황하(黃河) 및 장강(長江 :양쯔강) 문명’ 태동(胎動).

★ 세계 4대 문명(文明)

1. 황하(黃河) 문명: B.C. 5000~B.C. 4000년경, 중국 황하 중·하류 유역을

중심으로 발달한 문명. 동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 문화 형성.

2. 메소포타미아 문명: B.C. 6500년경,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농경(農耕)과 목축(牧畜)을 시작으로 발달된 문명.

. 메소포타미아: ‘두 강(江) 사이의 땅’이란 뜻.

3. 인더스 문명: B.C. 3000년 중엽부터 인도(印度) 인더스강 유역에서 청동기

문화를 바탕으로하여 번영한 고대 문명.

4. 이집트 문명: B.C. 3000년경, 나일강 하류의 비옥한 땅에서 발생한 문명.

바다와 사막으로 둘러싸여 있어 약 2천년간 외부의 침략 없이 고유(固有)의

문화(文化)를 보존할 수 있었음.

2013.3.16 (토)

☞ 문명 발생지(文明發生地)의 특징(조건):

. 4대 문명 발생지(四大文明發生地) 모두 큰 강(江)을 끼고 있으며 지구(地球)

북반구(北半球)에 위치(位置)하고 있음.

. 기후(氣候)가 온화(溫和)하고 강 유역의 비옥(肥沃)하고 넓은 토지(土地)가 있음.

. 육로(陸路)와 수로(水路)를 통(通)한 이동(移動 ,교통交通)이 편리(便利)하고, 물이

풍부(豊富)하여 관개(灌漑)가 용이(容易)하므로 농경(農耕)과 인간 생활에 적합함.

2. 신화 시대(神話時代)와 삼황 오제(三皇五帝):

. 고대(古代) 중국의 전설상(傳說上) 역사는 무한 능력을 가진 ‘반고(盤古)’라는

남신(男神)이 천지(天地)를 창조(創造)한 이래 ‘삼황 오제(三皇五帝)’에서부터

신화 시대(神話時代)가 시작됨.

. ‘삼황 오제(三皇五帝)’는 고대 중국(古代中國)을 다스린 전설 속의 제왕(帝王)으로

중국의 역사가 이들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설화(說話)로 만들어진 인물.

. 우리 나라의 ‘단군 왕검(檀君王儉)’ 신화(神話:설화說話,전설傳說) 같은 것…

★ 삼황(三皇):

① 복희씨(伏羲氏): 천황(天皇).

뱀의 몸뚱이에 사람 머리(사신 인두蛇身人頭) 형상을 함.

② 신농씨(神農氏): 지황(地皇). 염제(炎帝).

사람 몸에 소의 머리(인신 우두人身牛頭) 형상을 함.

③ 여와씨(女媧氏): ‘복희씨’의 누이이며 아내로 인류(人類)를 만든 여신(女神).

본래는 개구리(와蛙) 형상이었으나 부계 사회(父系社會)로

옮겨 가면서 뱀(사蛇)의 형상으로 바뀌었다고 함.

. 媧(wa): 여신 과·와, 여와(女媧). 여신(女神)의 이름. 고여성명여(古女聖名女).

☞ ‘여와씨(女媧氏)’ 대신 ‘인황(人皇)’인 ‘황제(黃帝)’를 ‘삼황(三皇)’으로 꼽는

견해(見解 ,기록記錄·학설學說)도 있음.

★ 오제(五帝): 고대 문헌(古代文獻) 기록에 따라 상이(相異)함.

* 사기(史記) 오제 본기(五帝本紀):

① 황제 헌원(黃帝軒轅)

② 전욱 고양(顓頊高陽)

③ 제곡 고신(帝嚳高辛)

④ 제요 방훈(帝堯放勳)

⑤ 제순 중화(帝舜重華)

* 예기(禮記) 월령(月令):

① 대호(大昊) ② 전욱(顓頊) ③ 신농(神農) ④ 소호(少昊) ⑤ 황제(黃帝)

* 제왕 본기(帝王本紀):

. ‘황제(黃帝)’의 뒤를 이은 다섯 자손(子孫)이 세상(世上)을 다스림.

. ‘인황(人皇)’인 ‘황제 헌원(黃帝軒轅)’의 뒤를 잇는 오제(五帝)를 일컬음.

① 소호(少昊): ‘황제(黃帝)’가 용(龍)을 타고 승천(昇天)한 후 그 뒤를 이음.

② 전욱(顓頊): 고양(高陽)

③ 제곡(帝嚳): 고신(高辛)

④ 제요(帝堯): 방훈(放勳). 도당씨(陶唐氏) / 당요(唐堯):요(堯)임금

⑤ 제순(帝舜): 중화(重華). 유우씨(有虞氏) / 우순(虞舜):순(舜)임금

☞ ‘요·순 시대(堯舜時代)’는 어진 임금이 덕치(德治)로 백성을 다스리는 태평한 세상,

즉 태평 성대(泰平聖)를 이루어 후세(後世)에 ‘치세(治世)의 모범(模範)’이 됨.

허난성(河南省) 정저우시(鄭州市) 황허 유역(黃河流域) 유람구(遊覽區)에 세워진

‘ 염제(炎帝 :지황地皇·신농씨神農氏)와 황제(黃帝 :인황人皇)’의 거대한 석상(石像)

◆ 중국의 고대 국가 (古代 國家 )…

3. 하(夏)나라: B.C. 21세기~B.C. 17세기(B.C. 2070?~B.C. 1600?년)

. 중국의 건국 신화인 ‘삼황 오제(三皇五帝)’의 ‘요·순(堯舜) 시대’가 끝나고,

‘순(舜)임금’의 뒤를 이은 ‘ 우왕(禹王 :하우씨夏禹氏)’이 ‘하(夏)나라’를 세움.

※ ‘하(夏)나라’까지는 문자로 된 기록이 없는 전설(傳說) 속의 중국 역사임.

. 禹(Yu): 우임금·하우씨 우, 중국 ‘하(夏)나라’를 세운 제왕(帝王).

4. 상(商 :은殷)나라: B.C. 17세기~B.C. 11세기 중반(B.C. 1600?~B.C. 1046년)

. 원래 ‘황허(黃河)’ 하류(下流) ‘상(商)’ 지역에 살던 부족(部族)’의 지도자인

‘탕왕(湯王)’이 세운 왕조이므로 부족의 이름을 따서 ‘상(商)나라’라 부르며,

신화(神話) 시대로 간주했으나 ‘은허(殷墟)의 유적’ 발굴로 여러가지 고증

자료가 나타남에 따라 중국 최초의 역사 시대(歷史時代)로 인정하게 됨.

. 고대 문헌 자료와 도읍(都邑)이 ‘ 은(殷 :지금의 허난성 안양 일대)’이란

뜻에서 ‘은(殷)나라’라고도 불렀지만 현재 중국에서는 ‘상(商)나라’로

통일하여 부르고 있으며, 중국 고대 역사에 실재(實在)한 최고(最古)의

왕조국 가(王朝國家)로 인정하고 있음.

. ‘허난성(河南省) 안양(安養)’ 지역의 ‘은허(殷墟)’에서 소뼈 (우골牛骨)와

거북의 껍데기 (귀갑龜甲,등딱지,배갑背甲 및 점복占卜에 사용한 복갑腹甲)

등에 새겨진 당시의 ‘갑골 문자(甲骨文字)’가 발견 됨.

. ‘탕왕(湯王)’이 세운 ‘ 상(商 :은殷)나라’는 약 400년 넘게 이어왔으나 음란하고

사악한 요녀(妖女) ‘달기(妲己 Daji)’와 방탕한 향락에 빠진 ‘주왕(紂王)’ 때

견융족(犬戎族) 등 서쪽 지방 여러 부족인 ‘서융(西戎)’의 패자(覇者)이던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아들 ‘주무왕(周武王)’에 의해 토멸(討滅) 당함.

‘갑골 문자(甲骨文字)’ 발굴(發掘).

. 복갑(卜甲): 복점(卜占 :거북점)을 치는데 쓰였던 거북의 복갑(腹甲 ,배 껍데기).

. 시대(時代): ‘ 상(商 :은殷)나라’ 말기(末期). B.C 1300~B.C 1046년.

. 출토지(出土地): 허난성(河南省) 안양시(安養市) ‘은허 유지(殷墟遺址)’.

1928년 발굴 당시 갑골문(甲骨文)이 새겨진 거북 껍데기 (귀갑龜甲) 무더기

허난성(河南省) 안양시(安陽市)에 있는 ‘중국 문자 박물관(中國文字博物館)’

5. 주(周)나라: B.C. 1046~B.C. 256년

. ‘ 상(商 :은殷)나라’ 서쪽 황토 고원(黃土高原) 일대 ‘주(周)’ 땅을 다스리던 ‘서백(西伯)’의

아들 ‘무왕(武王)’이 군사(軍士)를 일으켜 폭군(暴君) ‘주왕(紂王)’을 토멸(討滅)하고

‘주 왕조(周王朝)’를 세워 아버지 ‘서백’을 ‘문왕(文王)’으로 추숭(追崇 ,추존追尊)함.

* 서주(西周): B.C. 1046~B.C. 771년

도읍:’호경(鎬京)’, 지금의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 부근.

* 동주(東周): B.C. 771~B.C. 256년

도읍:’낙읍(洛邑)’, 지금의 ‘허난성(河南省) 뤄양(洛陽)’.

뤄양시(洛陽市)에 있는 주(周)나라 ‘천자가육상(天子駕六像)’과 박물관.

※※중국 역사에 등장하는 같은 국호(國號)의 다른 나라 알아보기 ※※

* 진(晋·晉)나라:

1. ‘주(周)나라’ 때 제후국(諸侯國) 중의 하나로 B.C. 1106~B.C. 376년까지

‘펀수이(汾水)강’ 유역을 중심으로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으나 ‘춘추 시대’ 말기

‘한(韓)·위(魏)·조(趙)나라’ 로 삼분(三分)되어 멸망한 ‘진(晋·晉)나라’.

2. 남북조(南北朝) 시대 ‘남조’의 마지막 왕조인 ‘진(晉)나라: A.D. 265~420년’.

‘서진(西晉)’ 시기인 A.D. 280년 ‘오(吳)나라’를 끝으로 삼국(三國)을 모두

평정하여 통일을 이룸.

. 서진(西晉)시기: A.D. 265~317년. 수도: 낙양(洛陽)

. 동진(東晉)시기: A.D. 317~420년. 수도: 건강(建康)

* 송(宋)나라:

1. ‘주(周)나라 무왕(武王)’이 ‘ 상(商 :은殷)나라’ 폭군(暴君) ‘주왕(紂王)’을 토멸(討滅)한 뒤

그의 서형(庶兄)인 ‘미자계(微子啓)’에게 ‘ 상(商 :은殷)나라 유민(遺民)’을 다스리게 하기

위해 제후국(諸侯國)으로 세운 ‘송(宋)나라’.

‘공자(孔子)’ 조상(祖上)의 나라며 아버지 때 ‘노(魯)나라’로 이주(移住)하였음.

2. 남북조 시대(南北朝時代) ‘동진(東晉)’의 ‘유유(劉裕)’가 세운 ‘남조(南朝)’의 ‘송(宋)나라’.

3. ‘오대 십국(五代十國)’시기 이후 A.D. 960년 ‘조광윤(趙匡胤)’이 세운 ‘송(宋)나라’는

‘조송(趙宋)’이라 구분하여 부르기도 함.

* 오(吳)나라:

1. ‘주대(周代)’의 제후국(諸侯國) 중 하나인 오(吳)나라: B.C. 585~B.C. 475년.

2. 삼국(三國) 시기 ‘손권(孫權)’이 세운 오(吳)나라: A.D. 222~280년.

3. ‘오대 십국(五代十國)’ 중 하나인 오(吳)나라: A.D. 902~937년.

6. 춘추·전국 시대(春秋戰國時代): B.C. 770~B.C. 221년

* 춘추 시대(春秋時代): B.C. 770~B.C. 476(403?)년

. 춘추(春秋): ‘공자(孔子)’가 편찬(編纂)한 ‘노(魯)나라’의 역사서(歷史書).

. 춘추 오패(春秋五覇): ‘동주(東周)’ 왕조(王朝 ,왕실王室) 보다 더 세력이 강력했던 5개의

제후국(諸侯國)과 그 나라의 임금 (제후왕諸侯王)을 일컫는 말.

. 춘추 오패: ① 제(齊):환공(桓公) ② 진(晋·晉):문공(文公) ③ 초(楚):장공(莊公)

④ 오(吳):합려(閤閭) ⑤ 월(越):구천(勾踐)

공자(孔子): B.C. 551~B.C. 479년

* ‘전국 시대(戰國時代): B.C. 475(403?)~B.C. 221년

. 전국 칠웅(戰國七雄): 제(齊), 연(燕), 진(秦), 초(楚), 한(韓), 위(魏), 조(趙).

☞ 한(韓)·위(魏)·조(趙): 춘추 오패(春秋五覇) 중의 하나로 꼽혔던 강대국(强大國)

‘진(晋·晉)나라’가 춘추 시대 말(末) 삼분(三分)되어 세워진 제후국임.

※ ‘춘추(春秋) 시대’ 당시 약 140여개에 이르던 제후국(諸侯國)이 ‘전국(戰國) 시대’에

이르러 크게 7개 정도로 정리(?)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타당할 것 같음.

◆ 제국(帝國)을 이룬 시대(時代)…

7. 진(秦 Qin)나라: B.C. 221~B.C. 206년(3황제皇帝, 15년간 존속)

. ‘전국 시대(戰國時代)’를 종식(하고 중국 최초로 중원 통일(最初中原統一)을 이루어

황제(皇帝)의 나라인 제국(帝國)을 세움.

. B.C. 771년 ‘주(周)나라’의 제후국(諸侯國)으로 지금의 산시성(陝西省) 지방에 봉(封)해진

‘진 백작국(秦伯爵國)’이 그 모태(母胎)임.

. 통일(統一)된 ‘진 제국(秦帝國)’을 이룬 ‘진 시황(秦始皇 이름:영정(贏政)’은

전국(戰國) 시기인 B.C. 247년 ‘진(秦)나라’ 왕으로 즉위하여 자국(自國)을 포함하여

‘전국 칠웅(戰國七雄)’이라 불리는 주변(周邊) 6개 나라를 차례로

정복(征服)하고 39살이 되던 B.C. 221년 ‘제(齊)나라’ 정벌(征伐)을 끝으로

천하 통일(天下統一)을 이루어 ‘진 제국(秦帝國)’을 세움.

☞ ‘전국 칠웅(戰國 七雄) 중 6개국 멸망 연도(滅亡年度):

① 韓(한: B.C. 230년) ② 趙(조: B.C. 228년) ③ 魏(위: B.C. 225년)

④ 楚(초: B.C. 223년) ⑤ 燕(연: B.C. 222년) ⑥ 齊(제: B.C. 221년)

. ‘진 제국’은 B.C. 210년 ‘진시황’이 죽은 후 4년 동안 조정의 권력 다툼과 연이은 농민 반란으로 혼란에 빠졌고, B.C. 206년 ‘유방(劉邦)’이 도읍인 ‘ 함양(咸陽 :지금의 시안西安 근교)’을 함락하고 입성함으로 멸망하게 됨.☞ 반란(叛亂)의 주동 세력(主動勢力)인 ‘초(楚)나라의 항우(項羽)’와 ‘한(漢)나라의 유방(劉邦)’은 18개 제후국으로 갈라져 있던 중원(中原)의 패권(覇權)을 잡기 위해 전쟁(戰爭)을 벌였으며 ‘항우’가 자결(自決)한 ‘해하 전투(垓下戰鬪)’가 마지막 결전(決戰)임.

* ‘진 시황(秦始皇)’은 자신이 천하를 통일한 첫번 째 황제라 하여 스스로

‘시황(始皇)’이라 칭(稱)

했으며, B.C. 247년 ‘진(秦)나라’ 왕위(王位)에 오른 뒤 B.C. 221년

중원 대륙(中原大陸)에 ‘통일 제국(帝國)’을 이루고,

B.C. 210년 죽을 때까지 무려

37년간이나 절대 권력자의 위치에 있었음. 오늘날 세계인(世界人)들이 불가사의(不可思議)로 여기는 ‘시안(西安)’의 ‘병마용(兵馬俑)’이나 아직도 발굴되지 않고 있는 미스터리(신비神秘)의 ‘진시황 무덤 (능침陵寢)’은 결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님. ☞ 현재 중국(中國)의 국호(國號)인 유럽식 이름 ‘China’ 는 ‘진(秦)나라’의 ‘秦(Qin)’의 발음이 변형되어 만들어 진 것임.

* 오초 칠국(吳楚七國)의 난(亂): B.C. 154년, ‘경제(景帝)’ 때 ‘제후국’ 왕들의

죄를 폭로하며 영지(領地)를 줄이려 하자 ‘오왕(吳王)’이 다른 제후왕들과

공모하여 ‘경제(景帝)’의 측근인 ‘조조(晁錯)’의 억압 정책 탓이라며 ‘조조’를

제거한다는 구실로 군사를 일으킴.

8. 한(漢)나라: B.C. 202~A.D. 220년(유비의 ‘촉한蜀漢’을 포함하여 264년)

. ‘진(秦)제국’ 이후에 다시 중원(中原)대륙을 통일하여 약 400년간 존속한 왕조.

. 중국 역사상 가장 강성했던 시기중의 하나로 지금의 ‘한족(漢族)’이란

민족 이름, 중국문자인 ‘한자(漢字)’란 말이 ‘한(漢)나라’에서 유래함.

* 전한(前漢)/서한(西漢): B.C. 202~A.D. 9년(15황제 211년간 존속)

수도: ‘장안(長安)’, 지금의 ‘시안(西安)’

.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건국함.

. ‘해하(垓下)전투(A.D. 202년): ‘초한(楚漢)시대’말 초나라의 ‘항우’와

‘한나라’의 ‘유방, 한신장군’이 ‘안후이(安徽)성 오강(烏江)’부근에서 벌인

마지막 결전, 이 전투에서 승리한 ‘유방’이 신하들의 추대를 받아 황제로

즉위하게 됨.

* 신(新)나라: A.D. 8~25년, ‘전한(前漢)’의 섭정(攝政) 재상(宰相)이었던

외척(外戚) ‘왕망(王莽)’이 황위(皇位)를 찬탈하여 세운 나라.

* 후한(後漢)/동한(東漢): A.D. 25~220년(14황제 195년간 존속)

수도: ‘뤄양(洛陽)’, 수도를 동쪽으로 옮겨 ‘동한’이라 함.

. ‘광무제(光武帝)’ 재위기간 부터 ‘한나라’ 멸망시까지를 ‘동한’, 또는

‘후한’이라고 함.

. ‘후한(後漢)은 ‘세조(世祖)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가 재건한 ‘한나라’.

. A.D. 220년 ‘위왕(魏王) 조비(曹丕)’가 ‘후한 헌제’의 황위를 빼앗음으로

‘한나라’는 멸망하게 됨.

* 관도 대전(官渡大戰): ‘후한’ 말 삼국(三國) 시기, 지금의 ‘허난성(河南省)

중무현’ 근처인 ‘관도’지역에서 ‘조조(曹操)’와 ‘원소(袁紹)’가 벌인 전투.

☞ ‘후한(後漢)’ 말 역사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人物)의 이름들…

동탁(董卓), 여포(呂布), 왕윤(王允), 초선(貂蟬), 원술(袁術), 원소(袁紹),

조비(曹丕)…

◆ ‘삼국 시대(三國時代)’와 그 이후…

9. 삼국 시대(三國時代): A.D. 220~280년

. ‘위(魏)나라’가 세워진 A·D 220년 부터 ‘오(吳)나라’가 ‘진(晉)나라’에

멸망 당한 A.D. 280년까지의 시기.

* 위(魏)나라: A.D. 220~265년(5황제): 조조(曹操), 초대황제 ‘조비(曹丕)’

* 촉한(蜀漢): A.D. 221~264년(2황제): 초대 ‘소열(昭烈)황제 유비(劉備)’

* 오(吳)나라: A.D. 220~280년(4황제): 초대 ‘대황제(大皇帝) 손권(孫權)’

10. 진(晋:晉)나라: A.D. 265~420년

* 서진(西晉): A.D. 265~317년/수도:뤄양(洛陽)

-. A.D. 280년 ‘오(吳)나라’를 끝으로 삼국을 평정하고 통일을 이룸

* 동진(東晉): A.D. 317~420년/수도:건강(建康), 지금의 ‘난징(南京)’

-. 후에 ‘남조(南朝)’의 ‘송(宋), 제(齊), 양(梁), 진(陳)’으로 이어짐.

★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시대: A.D. 304~439년, 화북(華北)지역에 난립.

. ‘진(晉)’말기 부터 ‘북위(北魏)’가 ‘화북(華北)’을 통일 할 때까지

흥망(興亡)했던 ‘오호(五胡)’와 ‘한족(漢族)’이 세운 16개 나라.

11. ‘위(魏) 진(晉)/남북조(南北朝)’시대: A.D. 220~589년

. A.D. 220년 ‘후한(後漢)’이 멸망하고 ‘수(隋)나라’가 A.D. 589년

다시 중원(中原)을 통일 할 때까지의 약 370년간의 시기.

* ‘위·진시대’: A.D. 220~420년

. 삼국시대 ‘위(魏)나라:AD 220~265년’때부터 ‘서진(西晉)’을 거쳐

‘동진(東晉)’ 말(AD 420년)까지 약 200년의 시기.

* ‘남북조시대’: A.D. 420~589년

. ‘진(晉)나라’와 ‘수(隋)나라’의 중간시기에 해당함.

. 한족(漢族)이 세운 ‘남조(南朝)’와 북방유목민이 세운 ‘북조(北朝)’가

대립하다가 ‘수(隋)나라’가 통일을 이룰 때까지의 시기

* 남조(南朝):

. ‘송(宋), 제(齊), 량(梁), 진(陳)’으로 교체하며 이어진 ‘한족(漢族)의 4왕조.

. A.D. 589년 ‘진(陳)’이 ‘수(隋)나라 문제(文帝) 양견(楊堅)’에게 멸망함으로

막을 내림

* 북조(北朝):

. ‘북조’는 ‘선비족(鮮卑族)’인 ‘탁발(拓跋)씨’가 세운 나라임.

.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의 혼란을 수습한 ‘북위(北魏) 태무제(太武帝)’

때부터 ‘북주(北周)’의 외척인 ‘양견(楊堅)’이 ‘수(隋)나라’를 세워 ‘남조’

최후의 왕조인 ‘진(陳)’을 멸망시키고 중원(中原)을 통일함.

. ‘북위’는 ‘동위(東魏)’와 ‘서위(西魏)’로 분열하고, ‘동위’는 ‘북제(北齊)’로

‘서위’는 ‘북주(北周)’로 교체되었다가 ‘북주’가 ‘북제’를 멸망시킴으로

한때 화북(華北)지역을 통일하였으나 ‘북주’의 ‘양견’이 ‘수나라’를 세움.

※ 위(魏),촉(蜀),오(吳) → 서진(西晋) → 동진(東晋) → 남북조(南北朝)

12. 수(隋)나라: A.D. 581~618년

. 수도: 대흥성(大興城)/동도(東都), 지금의 ‘시안(西安),옛날 장안(長安)’

. A.D. 581년 ‘북주(北周)’의 ‘정제(靜帝)’가 ‘대승상(大丞相)’인

수국공(隋國公) ‘양견(楊堅)’에게 제위(帝位)를 물려주자 국호를 ‘수(隋)’로

바꾸고 황제에 즉위함.

* ‘양견(楊堅)’은 한족(漢族)이 아니고 ‘선비족(鮮卑族)’이란 논란이 있음.

. ‘남북조시대’의 혼란을 평정하고 ‘서진(西晉)’이 멸망한 후 약 300년 동안

분열되었던 중원(中原)을 A.D. 589년에 다시 통일하였으나 38년만에 멸망함.

13. 당(唐)나라: A.D. 618~907년

. ‘정관(貞觀)의 치(治): A.D. 627~649년까지 ‘당나라’ 제2대 황제인

‘태종(太宗) 이세민(李世民)’의 치세(治世)를 일컫는 말로 중국 역사상

가장 번영했던 시기중의 하나임.

-. ‘율령(律令)체제’: ‘당나라’ 통치의 기본이 되는 행정법

토지제도(균전제), 조세제도(조요조), 군사제도(부병조)

* ‘무주(武周)’: A.D. 690~705년까지 15년간 ‘측천무후(則天武后)’가 수도를

‘뤄양(洛陽)’으로 옮겨 국호를 ‘대주(大周)’라 하며 ‘무측천(武則天)’황제로

‘당나라’를 다스리던 시기, ‘무주(武周)의 치(治)’ 라고도 함.

. ‘개원(開元)의 치(治)’: ‘측천무후(則天武后)의 손자인 ‘당현종(唐玄宗)’이

통치했던 A.D. 713~741년까지 약 28년간의 태평성대를 이르는 말.

. ‘안록산(安祿山)의 난(亂)’: A.D. 755~763년, 양귀비(楊貴妃)의 총애를

받던 ‘안록산’장군이 현종(玄宗) 말기 ‘사사명(史思明)’과 공모하여 일으킨

반란.

. ‘황소(黃巢)의 난(亂)’: A.D. 875~884년

-. A.D. 875년 산둥(山東)지방에서 ‘왕선지(王仙芝)’, ‘황소(黃巢)’가 주동이

되어 일으킨 농민반란으로 ‘당나라’가 붕괴되는 근본적 계기가 됨.

-. 원래 ‘황소’의 부하이던 ‘주전충(朱全忠)’이 ‘당나라’ 조정에 투항하여

‘반란’을 진압했다는 공(功)으로 카이펑(開封)지역을 다스리는 ‘절도사’

‘양왕(梁王)’에 봉해졌고, 뒤에 ‘후량(後梁)’을 세움.

14. ‘오대십국(五代十國)’시대: A.D. 907~960년

. ‘당나라’가 멸망한 때부터 ‘송(宋)나라’가 중원(中原)통일을 이룰 때까지

흥망(興亡)한 ‘한족(漢族)’의 5개 정통왕조 및 그외 10개 나라와 그 시기.

* 오대(五代): 화북(華北)의 중심지역을 지배하던 정통왕조계열 국가

1. 후량(後梁)/대량(大梁): A.D. 907~923년(3대 16년간 존속)

. ‘오대십국’의 첫번째 왕조, ‘당나라’말 혼란한 조정을 장악한 군벌(軍閥)

‘주전충(朱全忠)’이 ‘카이펑(開封)’을 수도로 세운 나라.

2. 후당(後唐)/대당(大唐): A.D. 923~936년(4대 13년간 존속)

. ‘이존욱(李存勖)’이 ‘후량’을 멸망시키고 ‘뤄양(洛陽)’을 수도로 세운

5대의 두번째 왕조.

3. 후진(後晉): A.D. 936~947년

4. 후한(後漢): ” 947~950년

5. 후주(後周): ” 951~960년

* 십국(十國): ‘화남(華南)’과 기타 주변지방에서 흥망(興亡)한 지방 정권

. 1.북한(北漢), 2.오(吳), 3.남당(南唐), 4.오월(吳越), 5.초(楚),

6.남한(南漢), 7.민(門안蟲자), 8.전촉(前蜀), 9.후촉(後蜀), 10.형남(荊南)

★ ‘후주(後周):A.D. 951~960년’에서 ‘송(宋)나라’로…

. ‘오대(五代)’의 마지막 왕조인 ‘후주(後周)’는 ‘후한’의 개국공신이며

실력자인 ‘곽위(郭威)’가 세웠으나 3대 황제에 이르러 7살짜리 어린

‘공황제(恭皇帝) 곽종훈(郭宗訓)’이 황위(皇位)를 계승하게 되니

불안을 느낀 군부(軍府)에서 근위군대장인 ‘전전도점검(殿前都点檢)’

‘조광윤(趙匡胤)’을 황제로 옹립하자 황위를 선양하고 물러남.

* ‘요(遙)나라’: A.D. 916~1125년 / ‘거란(契丹)족’의 ‘아율아보기’ 가

세운 나라.

15. 송(宋)나라: A.D. 960~1279년

. A.D. 960년 ‘오대(五代)’의 최후 왕조인 ‘후주(後周)’의 근위병대장이던

‘조광윤(趙匡胤)’이 군부의 추대를 받아 황위(皇位)를 선양 받은 뒤

‘카이평(開封)’에 도읍을 정하고 국호를 ‘송(宋)’으로 바꿈.

‘춘추시대’의 ‘송(宋)’, ‘남북조시대’의 ‘송(宋)’과 구별하기 위해

‘조송(趙宋)’이라고도 부름.

* 북송(北宋): A.D. 960~1127년(9황제 재위:’조광윤’~흠종(欽宗)’趙桓’)

. 수도: 변경, 카이펑(開封)

. ‘정강(靖康)의 변(變)’: A.D.1126년 11월, ‘여진족 금(金)나라’ 군대가 수도

‘카이펑(開封)’을 함락하고, ‘흠종(欽宗), 휘종(徽宗)’을 비롯해 황족(皇族),

대신 등 수천명을 포로로 잡아 만주로 끌고간 정변(政變)으로 멸망함.

* 남송(南宋): A.D. 1127~1279년(9황제 재위:’조구(趙構)’~少皇帝’趙昺’)

. 수도: 임안(臨安) 지금의 항저우(杭州)

. ‘정강의 변’으로 ‘송(宋)왕조’가 무너지자 ‘휘종’의 9번째 아들이자

‘흠종’의 동생인 ‘조구(趙構)’가 강남(江南)으로 내려와 ‘임안(臨安)’에 도읍을

정하고 ‘남송(南宋)’을 세움.

. A.D. 1279년 ‘몽골족 원(元)나라’와 최후의 결전을 벌인 남중국해(海)의 섬

‘애산(厓山)전투’ 패배로 멸망함.

. 중국 역사상 애국영웅으로 칭송 받는 주전파(主戰波) 장수 ‘악비(岳飛)’가

활동하였음.

* ‘서하(西夏)’: A.D. 1038~1227년

-. 티베트계 ‘탕구트족’이 세운 나라, ‘칭기즈칸’의 몽골군에 멸망함.

* ‘금(金)나라’: A.D. 1115~1234년

-. ‘여진(女眞)족’ ‘완안 아골타(阿骨打)’가 세운 나라.

-. ‘말갈족’ → ‘여진족’ → ‘만주족(滿州族)’으로 이름이 바뀌어 옴.

16. 원(元)나라: A.D, 1271~1368년(12황제 97년간 존속)

. ‘한족(漢族)’의 ‘송(宋)나라’를 멸망시킨 이민족(異民族)의 정복왕조.

-. 유목국가로는 A.D. 1271~1635년까지 존속.

-. 중국대륙을 점령한 국가로는 A.D. 1271~1368년까지 존속.

. 유목(遊牧)민족인 ‘몽골족’ ‘칭기즈칸’의 손자(孫子) 5대 칸(汗) ‘쿠빌라이’가

A.D. 1971년 국호를 ‘대원(大元)’이라 고치고 ‘한족(漢族)’의 땅인 중원(中原)을

점령하고 세운 나라.

. A.D. 1279년 수도(首都)를 몽골고원의 ‘카라코룸’에서 지금의 베이징(北京)인

‘대도(大都:옌징燕京)’로 옮겨 옴.

* ‘기황후(奇皇后)’: ‘고려(高麗) 여인’으로 ‘원(元)나라’ 마지막 황제인

‘순제(順帝:토곤 티무르)의 제1황후가 되었고, 아들 ‘아이유시리다라’는

북원(北元)의 ‘소종(昭宗)황제가 됨.

17. 명(明)나라: A.D. 1368~1644년(16황제, 277년간 존속)

. A.D. 1368년 강남(江南)’일대에서 일어난 ‘홍건적(紅巾賊)’ 출신인

‘주원장(朱元璋)’이 처음 ‘남경(南京)’에 도읍을 정하고 몽골족

‘원(元)나라’를 북쪽으로 몰아내고 세운 ‘한족(漢族)’의 통일왕조.

. 제3대 황제 ‘영락제(永樂帝)’ 때 지금의 베이징(北京)으로 천도(遷都)함.

. 제16대 황제 ‘숭정제(崇禎帝)’ 때 ‘만주족의 청(淸)나라’에 멸망함.

* ‘남명(南明)’: A.D. 1644~1662년(4황제, 18년간 존속)

18. 청(淸)나라: A.D. 1636~1912년(‘후금後金’시기를 포함시:A.D. 1616년~ )

. ‘후금(後金)’왕조인 A.D. 1616년부터로는 297년간 존속, 12대(代) 황제 재위.

. ‘만주(滿州)족’인 ‘후금(後金)’의 마지막 ‘칸(汗:황제)’ ‘누르하치’의 아들

‘홍타이지(皇太極)’가 ‘한족(漢族)의 명(明)나라’를 정복하고 세운 나라.

* ‘말갈족’→ ‘여진(女眞)’, 또는 ‘여직(女直)족’→ ‘만주(滿州)족’

‘청태종(淸太宗) 홍타이지(皇太極)’ 고향땅인 ‘만주’를 민족이름으로 바꿈

. 국호(國號)개칭: A.D. 1636년 ‘후금(後金)’에서 ‘대청(大淸)’으로 바꿈.

. 수도(首都): 흥경(興京:지금의 沈陽) A.D. 1636~1644년

베이징(北京) A.D.1644~1912년

. 오배(鰲拜)의 난: A.D. 1669년

. 삼번(三蕃)의 난: A.D. 1674~1683년, ‘오삼계(吳三桂)’ 등 3명의 번왕(蕃王)

세력이 일으킨 반란.

. A.D. 1683년 ‘타이완(台灣)’을 점령하고 저항하던 ‘명(明)나라’의 마지막

유신(遺臣) ‘정성공(鄭成功)’ 세력을 진압하고 실질적인 중국 통일을 이룸.

. 네르친스크’조약: A.D. 1689년 ‘러시아’의 동진,남하를 저지하기 위한 것.

. ‘백두산 정계비(定界碑)’를 세움: A.D. 1712년.

. ‘건륭제(建隆帝):A.D. 1735~1795년’ 때 ‘내몽골, 신장 위구르, 티베트(토번)’를

복속시켜 중국 역대 왕조 중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함.

. ‘명(明)나라’ 때 6천여명이던 인구가 3억 8천여명으로 급격히 증가함.

. 백련교(白蓮敎)의 난: A.D. 1796~1804년

. 천리(天理)의 난: A.D. 1813년

. 아편(阿片)전쟁: A.D. 1840~1842년

. 난징(南京)조약: A.D. 1842년, ‘홍콩’이 99년간 영국의 조차지(租借地)가 되고

‘상하이(上海)’ 등 5개 항구가 강제 개항(開港) 됨.

. 태평천국운동: A.D. 1851~1864년, ‘홍수전(洪秀全)’을 중심으로 전개된

기독교적 성격을 띈 사회운동.

. 제2차 아편전쟁: A.D. 1856~1860년

. 베이징조약: A.D. 1860년, ‘아편전쟁’시 도움을 준 ‘러시아’에게 동부지역

‘연해주(沿海州)’ 땅을 할양(割讓)함.

. 양무(洋務)운동: A.D. 1868년부터 ‘증국번(曾國蕃)’, ‘이홍장(李鴻章)’이

주도하여 서양식 신식 무기 제조기술 등을 도입하고 관련

공업을 진흥하여 중국 산업화의 기원을 이룸.

. 청일전쟁(淸日戰爭): A.D. 1894~1895년, ‘청(淸)나라’의 패배.

. 무술(戊戌)개혁: A.D. 1898년, ‘강유위(康有爲)’, ‘양계초(梁啓超)’ 등이

입헌군주제 추진 등을 시도하나 ‘서태후(西太后)’, ‘이홍장’ 등

기존세력의 반발로 실패함.

. 북청(北淸)사변: A.D. 1899년에 봉기한 ‘의화단(義和團)’과 열강(列强) 8국의

연합군이 A.D. 1900년 베이징(北京)에서 격돌한 사건.

‘청(淸)나라’는 A.D. 1901년 ‘베이징 의정서’를 체결하고

‘청조(淸朝)’는 쇠퇴의 길로 접어들게 됨.

. 러일전쟁: A.D.1904~1905년간의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남만주(南滿州)’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고히 하게 됨.

. 신해(辛亥)혁명: A.D. 1911년에 일어난 ‘청 왕조(淸王朝)’를 무너뜨린 계기(契機)가 된

중국의 민주화 혁명, ‘쑨원(孫文)’이 임시 대총통(大總統)에 취임,

‘공화제(共和制)’를 선언하고 1912년 1월 ‘중화(中華)민국’이 탄생함.

선양시(沈陽市) ‘자오링(昭陵)’에 있는 ‘홍타이지(皇太極)’상(像)…

◆ 현대(現代)의 중국(中國)…

19. 중화민국(中華民國): A.D. 1911~1949년

. 북양정부 / 국민정부

20.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 A.D. 1949.10.1~현재

* 중화민국(中華民國)/Taiwan(대만台灣): A.D. 1945~현재

* 대약진 운동: 1958~1960년. (모택동 시기)

. 인민을 동원해 꽹과리를 치며 참새떼를 쫓음-메두기떼 창궐로 대흉년-4천만 명이 굶어죽음.

* 문화대혁명: 1966~1976년. (모택동 식)

. 홍위병(紅衛兵)의 폭압으로 약 3천만 명이 희생 당함.

* 현재도 천안문(天安門)에 걸려있는 ‘모택동’의 대형 사진이 중국을 지배하고

있으며 그의 시신(屍身)은 천안문광장 인민궁전에 안치되어 있음.

. 천안문광장에서 ‘모택동’의 대형 사진이 사라지는 날이 와야만 지금의 중국은

1949년 이전의 중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 참고

. 수출액: 세계 1위

. 군사력: 세계 3위

.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71명(중국 권력의 최정점에 있음).

. 시따따(習大大): ‘시 아저씨’, 곧 중국 국가주석(國家主席) ‘시진핑(習近平)’을

친근하게 부르는 호칭.

http://blog.daum.net/chunhao 만년설/영겁의 약속…

사진(寫眞)으로 보는 중국 역사(中國歷史)의 흔적들…

◆ ‘황제(黃帝)와 염제(炎帝)’의 거대한 석상(石像).

‘허난성(河南省) 정저우시(鄭州市)’의 ‘황하 유람구(黃河遊覽區)’에 있음…

뤄양시(洛陽市)에 있는 ‘주(周)나라 천자(天子) 가육상(駕六像)’

정확한 명칭은 ‘주왕성(周王城) 천자 가육(天子駕六) 박물관’ 입구에 세워진 동상…

중국 ‘주(周)나라’ 때 왕이 타던 가마 수레를 끌던 여섯 마리 말의 화석과 수레 등이 발견된 유적지.

뤄양시(洛陽市)에서 발굴된 ‘말화석(馬化石)’…

2005.12.20 만리장성에 올라…

시안(西安)의 ‘진시황(秦始皇) 병마용(兵馬俑)’…

쓰촨성(四川省) 멘양시(綿陽市) 부락산(富樂山) 공원의

‘촉한 사영(蜀漢四英)’과 ‘오호 상장(五虎上將)’상…

쓰촨성(四川省) 청두시(成都市)에 있는 ‘무후사(武侯祠)의 삼의묘(三義廟)’…

시안시(西安市)의 ‘화청궁(華淸宮)’에 있는 ‘양귀비(楊貴妃)’상…

쓰촨성(四川省) 광위안시(廣元市) ‘황택사(皇澤寺)’에 있는

‘측천 무후(則天武后)/무측천(武則天)’과 ‘당고종(唐高宗) 황제’상…

명판관 ‘포청천’으로 유명한 카이펑시(開封市)의 ‘개봉부(開封府)’ 정문…

카이펑시(開封市)의 ‘청명상하원(淸明上河園)’…

쓰촨성(四川省) 광위안시(廣元施) ‘지에먼관(劍門關)’…

‘시안시(西安市)’ 중심에 있는 ‘명대(明代) 성벽(城壁)’ 윗부분 모습…

마치 고속도로(高速道路)처럼 폭(幅)이 넓고 길다.

2013.3.16 (토)

2014.11.12 (수) 일부 수정

2020.1.5 (일) 날씨:-4/6℃ 맑음. 日出 07:47/日沒 17:27

2022.2.23 (수) 날씨:-9/0℃ 快晴. 日出 07:13/日沒 18:19

http://blog.daum.net/chunhao 만년설/영겁의 약속…

중국 역사 요약 정리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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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 요약 정리해 알아보자

세계에서 제 4위의 국토 면적을 자랑하는 중화 인민 공화국은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이다. 이 나라에 살고 있는 10억이 넘는 인구는 세계 인구의 약 22%를 차지한다.

중국의 전통 문화와 역사는 수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9년 인민 공화국의 창건으로 중국 공산당은 이 고대 국가를 현대화하는 과업을 시작했다.

중국의 자연적인 특색은 이 나라가 광활한 만큼이나 매우 다양하다. 중국의 동부 지역에는 베이징 상하이와 같은 거대 도시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가장 비옥한 지역이 있다.

서쪽과 남쪽으로는 산맥과 광활한 초원 그리고 황량한 사막이 있다. 남부는 자연적인 지형의 영향으로 보호받아 왔지만 북쪽 지방은 항상 탁 트여 있어서 수천년 동안 훈족, 몽골족, 만주족 등 북방의 이민족들로부터 침입을 받아 왔다.

멋지고 아양한 자연 경관 외에 가장 아름다운 지역으로 대표되는 구이린 지역에 있는 리강 유역에서는 낚시꾼들이 고기를 잡기 위해 가마우지를 사용한다.

중국은 남동부의 습한 열대 기후에서부터 북부의 혹독한 한랭 기후에 이르기까지 기후가 매우 다양하다. 중국의 환상적인 역사는 5000년 이상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제국은 진나라로 기원전 221년 진시황이 창건하였다. 진나라는 기원전 206년까지만 존속했지만 1911년까지 계속되는 황제의 전통을 남겼다.

중국을 지배한 왕조는 수천년 동안 흥하고 망하는 변화가 있었지만 중국을 통치하는 황제의 전통은 계속적으로 이어져 갔다. 중국 문화는 다양한 역사의 많은 측면들을 반영하고 있다.

철학, 종교의 수많은 학파와 유교, 도교를 포함한 많은 학파들은 기원전 300년에서 500년대에 발전하였다. 종교라기보다는 오히려 도덕과 행동의 길잡이인 유교는 기원전 500년대에 창시되었다.

공자가 창시한 유교는 올바른 개인 행동의 중요성과 타인에 대한 개인의 의무를 가르친다. 도교는 단순한 생활과 자연과의 친화를 강조한다.

불교는 여러 세기에 걸쳐 인도로부터 전래되었고 이 시기에 중국의 많은 예술적 전통이 중앙 아시아로 전래되었다. 중국은 수판, 나침반, 화약 그리고 인쇄술과 같은 주요 발명품을 발명했고 기술적인 진보를 이룩했다.

중국의 많은 발명품들이 후에 유럽에 전래되었고 또한 중국 문화는 한국과 일본을 비롯하여 인접해 있는 다른 여러 동아시아 국가의 문화 발전에 중요한 역활을 했다.

중국은 여전히 농업국이며 인구의 60% 이상이 아직도 농장이나 조그만 마을에 살고 있다. 오늘날 인구 과잉은 중국의 많은 문제점 가운데 하나이다.

중국 황제시대 역사

중국의 역사가들은 기원전 3000년부터 뚜렷한 중국 문화가 형성되었다고 믿기 때문에 중국을 5000년의 역사를 간직한 나라라고 여긴다. 기원전 1700년대에 최초의 지배 왕조인 은 왕조가 탄생했다.

기원전 1122년경에는 주나라가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기원전 256년까지 중국을 다스렸다. 주나라 말기부터 중국은 역사에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여러 지역의 강력한 제후들이 서로 왕권을 다투었다.

이 시기를 역사가들은 춘추 전국시대라고 부른다. 춘추 전국시대의 혼란을 평정한 시황제가 마침내 중국을 통일하여 기원전 221년에 진나라를 세웠다.

진나라는 기원전 206년까지 중국을 지배했는데 이 짧은 기간 동안 진시황은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를 확립하고 북쪽의 오랑캐가 쳐들어오지 못하도록 만리 장성을 쌓기 시작했다.

진나라의 뒤를 이어 등장한 한나라는 기원전 202년부터 서기 220년까지 존속했다. 한나라때 중국은 예술과 과학이 번창했고 인도로부터 불교가 들어왔다. 중국인들은 지금도 여전히 이러한 한나라를 의식하여 자기 민족을 한족이라고 부른다.

한나라가 멸망한후 중국은 처음으로 여러 왕국들로 분열되었고 반면에 비중국계 왕조들이 304년에서 581년까지 북부를 지배했다. 수나라가 581년에서 618년에 중국을 재통일하고 양쯔강 계곡과 중국 북부를 연결하는 대운하를 완공하였다.

618년에서 907년까지 지배한 당나라는 중국을 번영시켜 힘있는 나라로 만들었고 당의 예술과 문화의 위대함은 전설이이었다. 당의 수도 장안은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가 되었다.

당의 멸망으로 다시 중국은 분열되었으며 송나라 906년에서 1279년에 중국을 재통일했으나 제국의 중심지를 북부의 밀 경작지로부터 쌀이 생산되는 남부로 이동시켰다.

송나라 때에는 당나라때 도입된 과거 제도가 강화되어 능력에 따라 선발된 관리 중심의 체제가 확립되었다. 기술자들은 수판, 나침판, 화약, 인쇄술을 발명했다.

송나라는 새로운 유교를 도입했는데 이것은 유교에 불교와 도교의 요소들을 혼합한 국가의 철학이었다. 1200년대에 북쪽의 몽골이 침입하여 송왕조는 몽골군이 항복하고 자기들의 나라로 돌아갈때까지 수도를 남쪽으로 옮겼다.

몽골의 지배자 쿠빌라이 칸은 1279년에 원나라를 세워 1368년까지 중국을 지배했다. 중국의 문영이 유럽에 전해진 것은 베니스의 상인인 마르코 폴로가 1200년대 후반에 몽골 왕실을 여행하고 중국의 존재를 알린 때부터었다.

원나라는 몽골제국의 한부분에 불과했지만 몽골제국은 거의 아시아 전역을 지배하였다.

명나라 청나라 시대

1300년대에 몽골족은 마침내 축출되었고 명나라가 건국되어 1368년에서 1644년까지 중국을 다스렸다. 이 시기에는 예술과 학문 등이 번창했고 명나라는 중국의 지속적인 주체성을 창조했다.

명나라는 몽골 제국이 중단시켜 놓은 행정체제를 부활시키고 통일된 토지 대장과 새로운 조세 제도를 시행하였다. 여러 개의 경계선이 그어졌고 중국 본토는 여러 지방으로 분할되었다.

명의 황제들은 외국인 특히 유럽의 무역상과 선교사들을 내쫓으려 했다. 명나라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 존속하였고 가장 안정된 왕조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결국 엄격한 재배 체제가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여 붕괴되고 말았다.

1644년에는 민주족이 중국을 침략하여 청나라를 세웠는데 이 왕조는 1911년까지 존속하였다. 만주족은 외래 민족이었지만 중국 문화의 여러 부분들을 받아들였다. 그 중에는 새로운 유교와 명나라의 정치 체제가 있었다.

그러나 청나라는 정치적인 부정 부패로 힘이 약화되었으며 1796년과 1804년 사이에 반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1800년대에 중국 상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자 유럽의 영향력이 강해졌다.

중국인들이 외제 상품을 꺼려하자 유럽의 무역상들은 중국으로 아편을 들여왔다. 아편 무역은 중국의 경제와 국민들에게 치명적이었다.

그리하여 1839년 중국 정부는 아편 밀수를 중지시키려고 노력했다. 중국 정부와 아편 밀매업자들의 충돌로 아편 전쟁이 일어났고 1842년 난징 조약에 의해 전쟁은 끝이 났다.

그 결과 중국은 영구에 홍콩을 양도하고 5개의 항구를 개방하였는데 이 조약을 불평등 조약이라고 한다. 1800년대에 중국은 외국의 위협 때문에 억지로 프랑스, 미국, 독일 등 여러나라들과 이와 유사한 조약을 체결했다.

이런 조약들 때문에 그들 국가들에게 중국 내에서의 특별한 권리를 주었고 조차지를 허용하거나 특정 지역에 대한 외국인의 지배권을 인정하였다.

청나라는 또한 많은 민란으로 고통받았는데 이 중 가장 심각한 것은 1851년에서 1864년 태평 천국의 난이었다. 이 난으로 수백만명이 죽임을 당했고 국토는 황폐해졌다.

1894년에서 1895년까지 계속된 일본과의 전쟁은 중국의 패배로 끝났고 이로 인해 중국은 더욱 약해졌다. 1900년의 반서구주의를 내세운 의화단 사건 이후 중국은 정부와 체제를 근대화시키려고 노력했으나 이러한 조치들이 청나라를 지탱시켜 주지는 못했다.

1900년대 초기에는 공화국의 이념이 널리 퍼졌고 쑨원이라는 서구에서 교육을 받은 공화주의 지도자가 등장하게 되었다. 1911년 10월 우창 지역의 중국군이 일으킨 항명 사건은 중화 민국의 탄생을 가져온 혁명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중국 역사 핵심 정리! 이것만 보면 중국 역사 정복

중국 삼황오제의 신화부터 하나라, 상나라

그리고 주나라에 이은 춘추전국시대까지를 선진시대라 부릅니다.

그 후 중국 최초의 통일 왕국 진나라를 시작으로 한나라, 5호 16국 시대와 위진남북조시대,

수나라, 당나라, 5대 10국, 송나라까지 역사가 이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중국은 세계 최강의 몽골군에 의해 세워진 원나라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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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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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9년 송나라를 멸망시킨 원나라는 홍건적의 난 등 한족들의 반란과

칭기즈칸 죽음 이후 분열된 몽골의 세력으로 인해 중국에서의 영향력이 줄어들게 됩니다.

1368년 도적 출신의 주원장이 원나라를 몰아내고 명나라를 건국하게 되며

명나라는 중국 역사상 최후의 한족 통일 왕조가 됩니다.

농업 생산력이 향상되고 군사력이 증대되어 동아시아의 강자로 성장하였으나

토목의 변과 환관의 전횡, 만력제와 천계제 등의 암군의 등장으로 점차 쇠퇴하게 됩니다.

농민 출신의 이자성이 베이징을 점령하며 순 왕조를 세웠으나 만주의 부족들을 통일한 누르하치의 금나라의 침입,

그리고 누르하치의 뒤를 이은 홍타이지가 금나라에서 청으로 국호를 변경하여 침략을 지속합니다.

결국 청에 의해 명나라는 멸망하게 됩니다.

청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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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는 중국 역사상 최후의 통일 왕조로 후금의 후신입니다.

명나라 뿐 아니라 티벳, 위구르, 내몽골까지 점령하며 유라시아의 제국을 이루었으며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로 이어지는 뛰어난 황제들로 인해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건륭제 말기부터 관리들의 부정부패가 심각해지며 백성들을 분노하게 하여

전국 각지에서의 반란이 끊이지 않게 됩니다.

도광제 시기에 영국의 아편 유통으로 청나라와 영국의 아편 전쟁이 발발하고 청나라는 전쟁에서 패하게 됩니다.

서구 열강들의 침략과 태평천국의 난 등의 농민반란, 서태후의 전횡 등으로

1912년 북양군벌의 수장 위안스카이에 의해 청나라는 멸망하게 됩니다.

▶ 아편 전쟁, 태평천국의 난 확인하기

대군벌 시대

1912년 청나라가 멸망한 후 중앙과 지방에서 실질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던 군인들이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세력을 펼치는 시기가 도래합니다.

크게는 북부 군벌과 남부 군벌로 나누며 군벌 속에도 다양한 파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가장 잘 알려진 군벌은 위안스카이의 북양군벌이 있습니다.

쑨원의 후계자인 국민당 장제스가 군벌들을 하나씩 정리해 나갔으며,

그 사이 마오쩌둥(모택동)의 공산당이 세력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국공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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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 중국 국민당의 장제스와 중국 공산당의 마오쩌둥 사이에 중국 재건을 두고 내전이 일어납니다.

1927년부터 1936년까지를 1차 국공 내전,

1946년부터 장제스가 타이완(대만)으로 이동한 1949년까지를 2차 국공 내전이라 합니다.

중국 공산당의 마오쩌둥이 국공 내전에 승리하며 중국 본토에는 공산당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으며

장제스가 이끄는 중국 국민당은 중화민국 정부를 타이페이로 이전하고 타이완 섬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공산당과 국민당 사이에 정전 협정은 없으나 현재까지 사실상 정전 중이라고 합니다.

마오쩌둥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오늘날의 중국,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이어지며 오늘날의 중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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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정리 1 (~1102년)

참고) 본 글은 저의 개인적인 상식을 넓히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중국 역사를 깊이 공부할 분들에겐 도움될 만한 사항들이 거의 없을 것이니 양해 바랍니다.

구석기, 신석기 시대를 지나며 중국에 최초로 등장한 나라는 삼황오제 이후 나타난 하(夏)나라이다 (BC 2070). 하지만 이는 중국 최초의 국가가 몽고/여진/말갈/한민족 등의 원류인 동이족이 세운 상나라임이 밝혀지자, 중국 정부가 상나라보다 앞선 시대에 전설로만 전해오던 하나라를 정사로 둔갑시켜 끼워 넣은 거짓 역사이다. 이 작업은 ‘동북공정’의 수법과 마찬가지로 ‘하상주단대공정’ 및 ‘중화문명탐원공정’이라 불리는 역사왜곡 작업을 통해 이루어졌다. (참고 : 이덕일의 한국통사 p.43). 따라서 중국 최초의 국가는 商(=殷)나라이다.

(이리두Erlitou와 상(=은)나라의 수도 은허 위치. 중국 정부는 이리두 유적을 상나라보다 앞선 하나라의 것이라고 전세계에 선전하지만 실제는 동이족의 유산이며 상나라의 유적이다.)

(하나라와 상=은나라)

BC 1046년, 서쪽에서 나타난 주(周)족이 상을 멸하고 주(周)나라를 세웠다 . 주는 서주와 동주로 구분한다. 서주는 수도를 호경(=서안)에, 동주는 수도를 낙읍(=낙양)에 뒀을 때로 구분한다 (BC 770년 견융의 침입으로 서안에서 낙양으로 이주 ).

(서주와 동주의 수도 및 하나라 도읍지와 상나라 수도 은허의 상대적 위치)

동주는 이후 주변 정벌에 힘써 중원의 지배자로 부상하는데 점점 늘어나는 땅을 통치하기 위하여 중국 최초로 봉건제도를 도입한다. 그리하여 동주의 주왕으로부터 봉해진 140여 개의 많은 제후국들이 이후 서로 치고 박고 싸운 결과 마지막까지 진(秦), 초(楚), 제(齊), 진(晉= 이후 한(韓), 위(魏), 조(趙로 나뉨), 연(燕)의 5국이 살아 남았다. 이 무렵의 시기를 춘추 시대라고 하는데 이 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제후들은 기꺼이 주 왕실의 권위를 인정했다. 하지만 초나라가 중원을 위협하며 칭왕을 하기 시작하고 BC 403년에 진(晉)이 한,위,조 3국으로 분열하면서 춘추 봉건시대는 종언을 고하고 본격적인 약육강식의 전국 시대로 들어서게 된다.

(출처: 위키백과.)

(진나라의 왕 ‘정’은 BC 230년부터 한조위초연제의 순서로 하나씩 정복, 마침내 BC 221년에 중국을 통일한다. 하지만 만리장성 이북에는 여전히 막강한 흉노족이 진을 위협하고 있다.)

춘추 시대에 강력했던 제나라의 제환공 , 진(晉)의 진문공, 초의 초장왕, 오(吳)의 합려 , 월(越)의 구천을 일컬어 ‘춘추 5패’라고 부른다.

국가의 흥망성쇠를 걸고 나라간 크고 작은 수많은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던 6세기에 공자 가 등장하여 인과 예를 내세우며 뜻있는 군주를 찾아 헤매지만 잠시 머문 노나라를 제외하고는 국가가 망하느냐 마느냐 하는 판에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한다며 어느 나라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공자와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노자 또한 전쟁으로 지친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순리에 맡기고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하여 도가의 창시자가 된다. 노자의 사상은 전국 말기에 등장한 장자에 의해 완성이 된다.

(산동성의 저 지역은 거의 성현들 제조 공장이네. 공맹묵 사~려~! 불면증에 특효 무욱~!)

전국시대에 접어 들자 철기가 발명되고, 소를 농업에 이용하는 우경이 시작되었다. 수공업, 상업이 시작되고 나라간 교역도 이루어졌다 . 전쟁의 와중에 병법을 다룬 손자병법이 등장한다.

BC 221년, 진(秦)나라가 마침내 전국 통일을 이루며 전국 시대는 끝이 난다 . 진시황은 북방의 흉노를 경계하여 곧바로 만리장성 축조에 들어감과 동시에 주(周)가 시행했던 봉건제를 폐지하고 강력한 중앙집권 정치를 실시한다. 진시황은 법률, 문자, 화폐 , 도량형을 통일시키는 등 사회 발전에도 기여하였지만 아쉽게도 잔인한 폭정과 BC 213년에 벌어진 분서갱유라는 희대의 사상, 언론 탄압책을 실시하여 오늘날까지도 폭군의 대명사가 된다.

BC 210년, 진시황이 죽자 그동안 폭정을 견디다 못한 농민들의 반란이 ‘진승/오광의 난’을 시작으로 잇따라 일어난다. 그리고 마침내 유방에 의해 진나라는 멸망한다 (BC 206). 이후 항우와의 패권 경쟁에서 결국 최종 승리를 거둔 유방이 한(漢)나라를 세우니 그가 바로 한고조이다 (BC 202년) .

(한무제가 BC 129년부터 10년간 흉노와 전쟁을 벌인 끝에 서쪽지방까지 영역을 넓혔다.)

한고조는 주가 실시했던 봉건제를 진시황이 급격하게 폐지하는 바람에 권력이 사라진 지방 세력들이 불만을 가지고 결국 반란까지 이어져 진(秦)을 망하게 했다고 보고, 일단 지방 세력을 달래기 위해 중앙집권제와 봉건제를 절충한 군국제를 실시한다. 하지만 이후 왕권이 충분히 안정되자 한고조 역시 제후들을 하나씩 제거하며 왕권의 강화를 추구한다. 하지만 BC 195년에 한고조가 죽자 시일이 흐를수록 제후들의 힘이 다시 점점 커지기 시작한다. 위기감을 느낀 한의 경제는 제후들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한 축소책을 강력하게 실시한다. 이에 오(吳), 초(楚) 등의 7개 제후국이 반기를 들었으니 이것이 ‘오초 7국의 난’이다 (BC 154). 반란은 3개월 만에 진압된다.

‘오초 7국의 난’을 진압한 후 더 이상 반란을 일으킬만한 나라가 보이지 않자, 경제의 아들인 무제는 BC 141년 즉위 후 BC 87년까지 장장 54년간 한을 통치하면서 추은령 을 만들어 제후국의 영지를 축소시키는 한편,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하는 등 황제 중심의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여 동서의 길이가 오늘날의 중국 지도와 거의 맞먹는 거대한 국가를 완성한다. 한무제는 BC 108년에는 고조선까지 멸망시키며 요동 지역에 한사군을 설치한다.

★한사군의 위치에 관한 왜구사학 vs. 민족사학의 결투!

(출처 : STB 상생방송 캡처화면. TV 하단의 글자는 제가 추가한 것입니다.)

승자는 누구일까요? ☜ 누르세요 (6분짜리 짧은 동영상. 중국이 발표한 결정적인 증거가 나옴.)

한편, 진시황으로 하여금 만리장성을 쌓게 만들만큼 위협적이었던 북방의 흉노족은 여전히 막강한 위협으로 한을 압박하고 있었다. BC 139년 한무제는 흉노족을 남과 서에서 동시에 협공할 목적으로 장건을 서쪽의 월지국에 사신으로 보냈으나 월지국의 거절로 장건은 임무에 실패하고 13년 만에 귀국한다. 하지만 장건이 다녀온 길을 따라 비단길로 알려진 중앙 아시아와의 무역로가 개척되었다. 인도도 장건을 통해 이 때 처음으로 중국에 알려지게 된다. BC 136년에 무제는 유교를 국교로 채택했고, BC 91년에는 사마천이 사기를 완성한다.

AD 8년 왕망이 한나라의 왕위를 찬탈함으로써 한은 망하게 된다. 여기까지를 전한이라고 한다. 왕망은 한나라를 이름만 바꿔 신(新)나라로 부르며 15년간 통치했지만, 23년 멸망함으로써 중국 역사상 가장 단명한 왕조가 된다 . 25년 유수(=광무제)가 다시 한나라를 건국한 후 낙양에 도읍하며 왕위에 오름으로써 후한이 등장하게 된다. 105년 채륜이 종이를 발명하고, 장형은 세계 최초로 혼천의를 만들었고 132년에는 또 다시 세계 최초로 지진계를 만들었다.

광무제의 아들인 명제 이후 황제들은 극히 단명하여 어린 황제들이 잇달아 등극하니 외척과 환관들이 득세하기 시작한다. 견디다 못해 스스로를 청류라고 칭하는 사람들이 반환관 운동에 앞장서지만 166년과 169년 두 번에 걸친 ‘당고의 금 ‘으로 청류들이 대거 청소되어 버린다. 황실은 환관과 외척 세력에 의해 완전히 놀아나고, 농민들은 가뭄과 홍수 등으로 배고픔에 쓰러져 가던 차에, 이들 앞에 ‘태평도’와 ‘오두미도’라 칭하는 신흥종교가 나타나 사람들을 미혹시키니 태평도는 마침내 184년 신도인 농민들을 앞세워 ‘황건적의 난’을 일으킨다 .

이후는 유명한 삼국지의 시대이다 (요약 생략).

220년 조조의 아들 조비가 (후)한의 왕위를 빼앗으며 위나라를 세운다. 이어 221년에는 유비가 촉한을, 229년에는 손권이 오를 각각 세우니 중국은 삼국시대에 돌입하게 된다.

(출처 : EBS)

유비가 죽고 유선이 제위를 잇자 제갈량은 그 유명한 출사표를 바친 후, 장장 7년에 걸쳐 위를 6번이나 공격한다. 하지만 위의 명장 사마의에 의해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제갈공명은 전쟁터에서 죽게 된다. 결국 263년에 촉이 먼저 멸망한다. 사마의의 손자 사마염은 진(晉=서진)나라를 세운 후 280년에 오까지 멸망시킴으로써 삼국을 통일하게 된다. 이후 316년 까지를 서진, 317~420년의 시대를 동진이라고 한다.

304년부터는 북방의 유목 민족인 흉노, 선비, 저, 갈, 강이 남하하여 대륙을 지배하는 5호 16국 시대로 들어가게 된다. 돈황의 막고굴이 동진 시기에 만들어진다. 북방의 유목 민족이 남하함에 따라 남쪽으로 달아난 한족으로 인하여 강남(양자강 유역)이 크게 번성하게 된다. 한족이 사라진 화북은 5호가 16개의 나라를 세워 서로 경쟁하게 된다.

5호 가운데 선비족이 북위(北魏)를 세워 439년에 나머지 나라들을 전부 통합하며 화북지방을 통일한다 . 이로써 5호16국 시대는 끝이 난다. 589년, 수문제 양견은 중국을 재통일하며 수나라를 세운다. 덕분에 수문제는 오늘날까지 거대 중국의 초석을 다진 1등 공신으로 인정받고 있다.

220년 조비에 의해 (후)한이 망한 이후 589년 수나라의 성립까지의 기간을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라 부르며, 북위가 화북 지방을 통일한 439년부터 수나라가 성립한 589년까지는 남북조시대라고 부른다 . 수문제가 무력으로 대륙을 통일했다면, 아들인 수양제는 남북을 관통하는 대운하를 만들어 대륙의 실질적인 통일을 완성시켰다고 평가받는다.

수문제는 30만 대군으로 고구려를 공격하지만 실패하고, 수양제가 다시 612년에 113만 명의 대군으로 고구려를 재침공하지만 역시 실패한다 . 그 후 매년 고구려를 헛되어 침략한 수양제는 결국 돌아선 민심으로 인하여 618년 자신의 친위대장에 의해 살해되고 만다.

618년 이연(=당고조)이 당나라를 세운다. 아들인 태종(=이세민)은 ‘정관의 치세’라 불리는 태평성대를 이루었지만 , 조공을 바치지 않던 고구려를 밉게 보던 중 마침내 연개소문의 반란을 응징한다는 명분으로 고구려를 침공한다. 하지만 안시성의 양만춘에게 패배했고 이후에도 다시 침공했지만 또 다시 실패한다. 태종은 재침공을 준비하던 중에 결국 수은 중독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690년 측천무후가 직접 황제가 되어 나라 이름을 대주(大周=武周)라고 칭하지만 705년 중종이 복위하며 다시 당 왕조가 복원된다. 현종 때 양귀비와 이백과 두보가 등장한다 . ‘안사의 난 ‘이 일어나 현종이 장안에서 서쪽 촉으로 도망가던 중 양귀비는 화난 군사들의 압력에 의해 길에서 죽고, 현종은 곧 바로 아들인 숙종에게 양위하게 된다. ‘안사의 난’ 이후 권위가 쪼그라든 황실에선 환관들이 다시 득세하고 농민들의 생활은 더욱 비참해져 간다. 875년 ‘황소의 난’이 일어나 수 많은 농민들이 이에 가세한다. 하지만 주온의 배신으로 884년 황소가 자결하면서 난은 끝나게 된다.

907년 주온(=주전충)은 후량을 세움으로써 290년에 걸친 당나라는 망하고 5대 10국 시대를 열게 된다.

(출처 : 나무위키)

960년 후주의 조광윤이 송나라를 건국하면서 5대10국 시대는 끝이 난다. 한편 한반도 북쪽에서 916년에 건국하여 926년 발해를 멸망시키며 만주 전역을 장악한 거란족(=요)이 만리장성을 넘어 중국으로 진출한다. 이후 요와 송은 서로 싸우다가 1004년에 전연에서 화의를 하며 송은 요가 획득한 연운 16주 를 인정하는 외에 매년 조공까지 바치는 조건으로 전쟁을 끝내게 된다 .

송은 불교와 도교 대신에 유교를 숭상하여 성리학을 일으킨다 . 농업 기술이 발달하고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상업이 비약적으로 발달한다 . 화약, 나침반, 인쇄술은 송대의 3대 발명품이다. 사마광이 자치통감을 썼다.

1102년에 중국의 인구가 처음으로 1억을 돌파한다.

(2편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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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 (요약) 통일신라676~918 발해건국698~926 고려시대918~1392 신라,고구려,백제 건국 기원전 57~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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