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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제임스흠정역 ; 창세기 · 역대기하 ; 출애굽기 · 에스라 ; 레위기 · 느헤미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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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6/2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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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제임스 흠정역 – Google Play 앱

킹제임스 흠정역 성경 및 다양한 역본을 편리하게 볼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 입니다. – 역본 대조 보기 기능 (KJV 한국어, KJV 영어, 개역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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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3/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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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문답] 킹제임스(KJV) 성경만 옳다고 주장하는데요… : 기독교

저는 교회 전도사인데 교회의 한 청년과 대화를 하던 중 답답하고 마땅히 조언을 얻을 분이 없어서 글을 남깁니다. 독립침례교회에서 킹제임스 성경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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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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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제임스 흠정역 4+ – App St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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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9/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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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의 오류 – 바른미디어

사본의 가치를 무시하는 독단적 주장. 성경은 다양한 번역본이 있다. 그럼에도 유독 킹제임스성경(The King James Version, KJV)만이 ‘유일한 성경’이라고 주장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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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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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킹 제임스

  • Author: 킹제임스성경 낭독 Kyoto lu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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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9. 18.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78FpvQX88As

킹 제임스 성경

킹 제임스 성경(영어: The King James Version, 약칭 KJV 또는 영어: The King James Bible, 약칭 KJB)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그리고 아일랜드 왕국의 국왕 제임스 1&6세의 명으로 1604년에 번역을 시작하여 1611년에 끝마친 기독교 성경의 영어 번역본이다. 순교자 윌리엄 틴들이 번역했던 성경의 70%가 킹 제임스 성경에 사용되었다. 권위역 성경이라고도 번역되었는데, 영국 정부의 공인이 아닌 학자들의 권위로 혼동할 수 있다.

1611년 킹 제임스 성경

표지 [ 편집 ]

초판 표지에 중앙에 있는 문구는 다음과 같다.

구약과 신약을 포함하는 본 성경전서는 제임스 폐하의 특별 명령에 따라 원어에서 번역하였으며 또한 이전 역본들을 부지런히 비교하고 수정하여 번역하였음. 교회에서 낭독하도록 지정 받음.

저작권 [ 편집 ]

오래 전에 나온 출판물로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저작권 적용 없이 자유롭게 출판 가능하다. 그러나 영국에서는 영국 왕의 명령으로 번역된 문건이므로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같이 보기 [ 편집 ]

각주 [ 편집 ]

정동수 목사 킹제임스 흠정역의 실체

상세정보

본서는 킹제임스성경 만이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유일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저자는 킹제임스성경의 탄생에 관한 역사적, 신학적 고찰을 통해서 어떻게 킹제임스성경이 번역자들에 의해 탄생하게 되었는지 설명해 준다. 더불어, 유일주의가 주장하는 사항들을 킹제임스성경 서문, 난외주의 분석 그리고 실례를 들어서 그 허구성을 논증한다. 본서는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가 가지는 문제점을 본문의 탄생에 대한 역사적, 사본학적 분석을 통해 신랄하게 파헤치고 있다.

책속으로

이렇게 완벽하지 않은 성경들에 대해서 KJV 번역자들은 사도들조차 어떤 성경이 완벽하지 않음으로 인해 그 역본을 정죄하거나 폐기처분을 내리지 않았다고 강조하고 있다.

70인역본이 많은 곳에서 원어 성경과 차이가 나며, 명쾌함이나 진지함이나 장중함에 있어서 원어 성경의 근처에도 못가지만, 그렇다고 사도들 중 누가 그 역본을 정죄했는가? 폐기처분을 내렸는가? 아니다. 그들은 그것을 사용했다(The translators to the Readers). -102쪽

그 외 모든 유일론자의 책에서는 킹제임스 번역의 15가지 원칙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 이들은 왜 KJV 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들을 자세히 소개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KJV에 대한 믿음이 손상될 수 있는 여러 가지 원칙이 있기 때문으로 생각되는데 15가지 원칙에 대해서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번역의 15가지 원칙은 KJV 번역 시에 번역자들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으로 모든 번역그룹은 충실하게 이를 따라서 번역작업을 했다. -144쪽

1602년 판 비숍성경을 저본으로 하여 본문을 개정했다는 측면에서 킹제임스성경은 마지막 비숍성경이라 표현해도 무방하다. 뿐만 아니라 킹제임스성경은 1602년 비숍성경에 존재했던 외경이나 전례력 등 기존에 존재했던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 그 안에는 청교도적 정신과 거리가 있는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청교도들은 KJV가 번역된 이후에도 제네바성경을 더 선호하였다. 그리고 제임스 왕이 1616년 영국에서 제네바성경의 출판을 금지한 이후에는 어쩔 수 없이 킹제임스성경을 봐야 했지만, 그들이 미국으로 건너가서 성경을 출판할 때부터는 개혁교회에서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는 외경을 포함하여 전례력의 축일과 자신들에 대한 비난이 있는 많은 분량의 서문을 제외하고 출판하였다. -168쪽

그러나 유일주의자들은 학자들이 연구한 모든 것을 거부한다. 그들은 KJV가 원어로 하나님에 의해서 확정된 것으로 믿고 있기 때문에 본문비평이나 사본학의 발전이라는 것을 모두 쓸모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어떠한 학문적인 결과조차도 무의미한 것으로 취급한다. 이들은 KJV를 옹호하지 않는 모든 학자들을 싸잡아서 자유주의자라고 비난한다. 그들의 기준으로 본다면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하는 교황에게 헌정한 에라스무스는 제정신이 아닌 이교도며, 54명의 번역자들 대부분도 가톨릭에 오염된 자들이며, 킹제임스성경의 완전성을 거부했던 존 버건이나 스크리브너를 포함한 사본학과 관련된 모든 자들은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KJV를 변개하려고 하는 자유주의자나 로마 가톨릭주의자들이 되는 것이다. -275쪽

한 곳에서 Journeying(여정)이라고 했으면 다시는 Traveling(여행)이라고 하지 않고, 한 곳에서 Think(생각하다)라고 했으면 다시는 Suppose(가정하다)라고 하지 않고, 한 곳에서 Pain(고통)이라고 했으면 다시는 Ache(아픔)라고 하지 않았고, 한 곳에서 Joy(기쁨)라고 했으면 다시는 Gladness(즐거움)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단어 대 단어로 직역하는] 문제를 완곡하게 이야기하자면, 우리는 [그런 식으로 번역하는 것을] 지혜보다는 기괴한 느낌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경건한 독자에게 유익을 주기보다는 무신론자 속에 냉소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단어나 철자에 달려있단 말인가?

만일 우리가 자유로울 수도 있다면 왜 굳이 그런 것에 얽매여야 하는가?

같은 정도의 적절한 다른 말을 폭넓게 사용할 수 있을 때에도 굳이 정확한 한 단어만 사용해야 하는가? -409쪽(부록: The Translators to the Readers)

목차

추 천 사 조영엽 박사/총회신학(성경보수) 교의신학 교수 4

저자 서문 6

제1장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의 문제점들 11

1. 우리는 진실 위에서 시작해야 한다 13

2. 이단적 성경관 – 성경의 원본이 영어로 존재한다 21

3. 배타적 교회관 – 우리는 침례 요한의 후예들이다 33

제2장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의 역사 39

1. 안식교교리 보존을 위해 시작된 유일주의 40

2. 근본주의 내에서의 유일주의 53

제3장 제임스 왕의 통치와 잉글랜드 국교회 61

1. 영국의 정치 상황과 제임스 왕의 통치 62

2. 1604년의 교회법 73

3. 찰스 1세의 시대(재위 1625 – 1649) 79

4. 특별 고등법원 81

제4장 킹제임스성경에 영향을 준 성경들 85

1. 가톨릭의 권위 아래 놓였던 성경 86

2. 킹제임스성경 관련 성경들 89

제5장 킹제임스성경 번역자들의 이력 103

1. 각색된 54명의 영감 받은 번역자들 104

2. 번역자들의 신학적 입장 108

3. 번역자들의 이력 110

제6장 킹제임스성경의 번역 135

1. 번역의 필요성 136

2. 번역의 15가지 원칙 143

3. 1602년 판 비숍성경으로 수정된 증거들 151

제7장 초판에 드러나는 번역자들의 신학사상 167

1. 마리아 숭배 사상 169

2. 가톨릭의 전례력과 축일들 177

3. 외경은 참고자료가 아니다 183

4. 정경과 외경이 상호 참조되어 있다 193

제8장 서문과 난외주의 중요성 197

1. 서문의 중요성 198

2. 난외주의 중요성 206

3. 다른 사본에는, 다른 고대 사본에는… 225

제9장 같은 신앙 다른 평가 231

1. 가톨릭 신학의 아버지 – 어거스틴 233

2. TR의 창시자 – 에라스무스 237

3. 교황에게 헌정된 에라스무스의 성경 241

4. 에라스무스가 필요 없는 세상 253

5. 마귀적인 변개자 – 웨스트코트와 호르트 257

제10장 TR의 근본적인 의문들 261

1. 공인본문(Textus Receptus)의 기원 262

2. 다수 본문(MT)과 공인본문(TR)은 다르다 269

3. MT와 TR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 276

제11장 없음이 없는 성경과 바른 성경관 341

1. 불가타전수성경 342

2. 없음이 없는 성경의 위대함 344

3. 균형 잡힌 성경관과 신앙 346

부록 1 킹제임스성경의 그리스어 원문 비교 354

부록 2 킹제임스성경의 서문: 번역자들이 독자들에게 375

추천의 글

KJV만이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의 망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총 11장, 부록1, 2로 되어 있는 이 책은 KJV 유일주의의 허구성을 적나라하게 파헤친 기념비적 저서라고 확신합니다. 그것은 저자의 지대한 관심과 예리한 투시력과 탁월한 실력으로 그 내용과 깊이에 있어서 광맥에서 보화를 찾게 했다고 확신합니다. 이 책은 KJV를 연구하고자 하는 분들에게 연구를 위한 귀한 기초자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으로 이 책을 교수, 목회자, 신학생, 평신도 모두에게 필독서로 추천합니다.

조영엽 박사 | 총회신학 교의신학교수

권동우 소개 저자는 한국에서 20년 만에 알게 된 1611년 판 킹제임스성경 내에 존재하는 번역자들이 독자들에게 써놓은 서문을 접한 후, 너무나도 중요한 그 서문이 오랫동안 한국 성도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이유를 찾아내기 위해 킹제임스성경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한국에 킹제임스성경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자료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점을 밝히고자 이 책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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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 CHO more_vert 부적절한 리뷰로 신고 2021년 11월 21일

한글과 영어 동시번역이 참 좋았습니다 아쉽다면 “창세기”를 영어로 번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현재는 통신사 혹은 와이파이에 의해서 어플이 작동되는 것으로 압니다. 어느 한 순간 기존 네트워크에서 가동이 안되거나 구글플레이에서 삭제될 경우 저희는 이미 다운로드하였기때문에 지장없나요? 그리고 오프라인에서도 작동이 되는가요? 오프라인저장은 안되는가요? 윈도우환경에서도 다운로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앙문답] 킹제임스(KJV) 성경만 옳다고 주장하는데요…

[질문]

저는 교회 전도사인데 교회의 한 청년과 대화를 하던 중 답답하고 마땅히 조언을 얻을 분이 없어서 글을 남깁니다. 독립침례교회에서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는 문제인데 기성교회가 사용하는 개역개정 혹은 영문판 다른 버전들은 애초에 사해사본에서 시작되었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번역에도 구원에는 문제가 없지만 성도를 건강히 자라게 하는 것은 다르기에 킹제임스를 보고 그것을 활용하도록 주장합니다. 저는 이와 같은 고집적인 사고와 기성교회와 성경의 번역본 자체를 문제 삼는 바로 그것이 도리어 위험한 사고라고 지적했습니다. 구원의 진리에 대한 부분에 지금의 번역본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킹제임스 버전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옳지 않다고 이야기를 했지만 전혀 받아들이질 않습니다. 이런 경우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좋을까요?

[답변]

이단만 고집불통이 아니다.

우선 제 개인적 경험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근 30년 전에 완전 불신자 집에서 제일 먼저 예수를 믿었던 평신도(이런 명칭을 어쩔 수 없이 사용함을 양해 바람) 시절에 어느 젊은 목사님과 영어성경으로 일대일 성경공부를 한 적이 있습니다. 사역자들조차 영어 성경으로 공부하는 것이 생소할 때입니다.

그 때 사용한 역본은 이런 저런 말들이 많지만 어쨌든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NIV였습니다. 그럼에도 저에겐 성경을 보는 눈이 아주 넓어졌습니다. 한글 개역성경에 비해 더욱 깊이 있게 말씀을 깨달을 수 있었으며 언젠가 기회가 되면 본격적으로 성경을 배우고 싶다는 결심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 영어로 배워 은혜가 더 된다면 원어로 즉, 신학을 전공하면 더 말할 나위 없겠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리고 10여년 후에 목사가 되었으며, 그 얼마 후에 저 또한 가깝게 아는 분에게서 질문하신 것과 똑 같은 경우를 겪었습니다. 여러 합리적 근거로 설득해봤지만 실패했습니다. 물론 킹제임스 성경의 번역이 당시까지의 가톨릭 성경의 오류를 수정했으며 영어번역본 중에는 아주 잘 된 것으로 학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헬라, 히브리 원어에 비해, 또 당시 상황이나 문맥에 따라 부족한 부분도 있음이 사실이라고 말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제 개인적 경험을 먼저 말씀드리는 까닭은 제가 드리는 답변대로 그 청년을 설득해야 별무소득이 될 것을 각오하시라는 뜻입니다. 논리적 설득과 변증이 유효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단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이론, 교리, 사상이 가장 월등하다고 여길 때에는 다른 어떤 대안도 안중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질문을 주셨기에 몇 가지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그런데 질문하신 내용 중에, 질문자가 아니라 예의 청년의 주장에서, 불합리한 내용이 있어서 간단히 지적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기성교회가 사용하는 개역개정 혹은 영문판 다른 버전들은 애초에 사해사본에서 시작되었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잘못된 의견입니다. 사해사본은 1947년에 최초로 발견되었고 지금도 해석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글성경은 최초로 1882 년경부터 일부 번역되다가 신구약전서는 1938년에 번역 완간되었습니다. 사해사본이 발견도 되기 전입니다.

참고로 성경의 최초 외국어 번역이라고 할 수 있는 히브리어 구약성경의 헬라어 70인역은 BC 3세기경에 이뤄졌습니다. 신구약성경 전체를 제롬이 라틴어로 번역한 Vulgate는 405년, 위클리프가 최초로 영어로 번역한 것은 1385년, 마르틴루터가 독일어로 번역한 것은 1522년, 그리고 킹제임스 흠정역은 1611년에 이뤄졌습니다. 한글을 비롯한 다른 성경 번역이 사해사본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주장입니다.

사해사본이 갖는 신학적 역사적 중요성은 현재 잔존하고 있는 최고로 오래된 구약의 필사본보다 근 천년이나 앞선 데도 현재의 성경과 내용에서 거의 완벽하게 일치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성경의 필사가 오류 없이 정교하게 이뤄졌다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 말씀에 단 하나라도 가감(加減)이 없게 하려고 최대한 정성을 들인 결과입니다.

성경 안에도 해석의 차이가 있다.

사해사본의 예에서 살펴보았듯이 번역이 아닌 필사의 경우는 천년이 지나도록 오류 없이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다른 말로 성경의 최초 원본이 다 소실되었어도 히브리어 구약과 헬라어 신약 성경의 원문은 원래대로 보존되어 왔다는 뜻입니다.

문제는 번역본입니다. 번역에서 완전한 번역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있다고 가정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자 억지입니다. 흠정역 번역도 마찬가지입니다. 번역에 성령의 역사가 없다거나, 신학적 전문가가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선 성경이 기록된 당시와 각 나라 언어로 번역되는 것 사이에는 시공간의 차이가 큽니다. 저작 당시의 정확한 의미를, 그것도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하여서 온전히 담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언어가 다르면 문화, 관습, 제도는 물론 사고, 감성, 나아가 사상과 철학까지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한 문화권의 언어가 다른 문화권 언어의 의미와 어감과 적용 등에 완벽하게 일치할 수는 없습니다. 간단한 예로 한국의 판소리를 최고 전문가를 동원해 최선을 다해 영어로 번역해도 한국인이 느끼는 의미와 감동을 외국인이 똑같이 느낄 수는 결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 자체에 번역의 다양성과 비근한 예가 있습니다. 바로 사복음서입니다. 성령의 영감으로 동일하게 예수님의 생애를 기록했는데도, 심지어 같은 사건에서마저 지엽적으로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번역이 아니고 저작임에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잘못된 인도도, 저자의 오류나 착오도 아닙니다. 역사적 실화를 후대 사람 네 명이 기록할 때에 상이(相異)한 부분이 필연적으로 생긴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이러합니다. 약 30-40년 전에 일어난 마을의 홍수를 노인 네 명이 회상했다고 칩시다. 어떤 이는 사망자가 다섯 명이라고, 또 다른 이는 여덟 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건망증이나 치매가 걸리지 않아도 그렇습니다. 한 명은 시체가 완전히 발견된 자만의 숫자를, 다른 이는 그 다섯 명에다 실종되어 사망처리가 된 세 명을 합쳐 말했기 때문입니다. 복음서끼리 또 한 복음서 안에서 앞뒤 기록을 잘 살피고 대조하면 합리적이고도 타당한 해석이 충분히 가능합니다.

요컨대 하나님이 복음서를 네 권이나 남긴 것은 그런 기록상의 차이점들을 상호 대조해서 극복할 뿐 아니라, 더 깊은 의미를 깨달으라는 뜻입니다. 구약에서 율법을 창세기 외의 모세오경 중 네 권이 중복해서 설명하고, 이스라엘 역사도 열왕기와 역대기를 통해 두 번씩 진술하는 까닭입니다. 선지서들의 핵심주제는 거의 같고 구체적인 시대 상황만 조금 다르다 해도, 상호 비교해 연구할 때에 더 심오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지 않습니까?

번역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역본들이 있다는 것은 오히려 감사할 일입니다. 서로 비교 대조하면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더 넓고 깊은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영화 평론을 하나만 읽는 것보다 넷을 읽고 영화를 보면 숨겨진 의미를 놓치지 않고 더 깊은 재미를 얻는 것과 같습니다. 또 네 의견을 대조 종합하다 보면 자기 특유의 견해와 감동이 생성됩니다. 반면에 평론 하나만 읽고 영화를 보면 그 평론가와 일치하는 감상만, 다른 말로 다른 이의 생각만 그냥 답습하게 될 뿐입니다.

현재 크리스천이 읽는 모든 성경이 사실상 번역본입니다. 그런데도 서로 자기 번역본이 최고로 옳다고 주장하니까 신자들이 혼동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행인 것은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발달해 성경 번역본 전부를 쉽게 비교 참조할 수 있습니다. 신학자가 아니라도 역본들을 대조하여 읽을 수 있게 되었고 그러면 이해와 감동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이 구원은 물론 성화를 이루는 것도 아니다.

골고다 십자가 오른 편의 강도는 성경을 전혀 읽지 않았어도 구원을 얻었습니다.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눅23:42,43) 초대교회 교인들이 거의 다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임을 믿을 때에 성령이 역사하여 영생을 얻었습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4,5) 신약성경, 그것도 교리서의 대부분을 저작한 바울마저 전도는 자기가 전하는 말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이뤄진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복음을 말로 전해야 할 까닭은 전하지 않고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롬10:8-15)

예의 학생도 구원을 KJV 성경이 독점하지는 않는다고 인정했습니다. 그런데도 성화는 KJV로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이해가 안 됩니다. 스스로 모순을 범하는 것입니다. 성화를 이 땅에서 완성시킬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바울도 베드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영원한 운명이 성령에 의해 결정되는 구원을 얻는데 다른 성경에 문제가 없다면, 이 땅에선 누구나 미완성으로 끝날 성화에는 더더욱 그래야 합니다.

그리고 성화는 인간의 노력으로 가능한 것도 아니며 실제로 성령이 이끄시는 씨름입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1:6)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엡6:10-13)

신자가 살아가야 할 삶은 단순히 도덕적 삶이 아니라 마귀의 궤계를 이겨내는 영적 씨름입니다.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기록된 말씀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성경 자체가 증언합니다. 무시로 기도하고 성령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합니다. 비록 말씀이 직접 마귀를 공격할 수 있는 무기인 검으로 비유되었어도(엡6:17) 전신갑주의 일부입니다.

그 말씀의 검을 사용할 때도 반드시 기도하여서 성령의 인도를 구해야 합니다. “먼저 알 것은 경(經)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1:20,21)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 성경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만 해석, 적용, 실천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만 올바른 성화가 이뤄지는 것입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7:24,25) 바울 같은 위대한 사도도 자기 속에 있는 죄의 법에 자주 넘어짐으로 괴로워했습니다.

그런데 그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했다고 합니까?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이 하시나니, …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2-4) 성령을 좇아 행할 때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진다고 즉, 성화가 가능하다고 선언합니다.

바꿔 말해 만에 하나 KJV 성경만 옳다고 해도 그 성경을 읽고 순종하려 노력해도 성령의 도우심을 얻지 못하면 성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성화를 이루는 성경 계명과 요구는 거의 도덕적인 주제이기에 번역 상에 차이가 조금 있다 해도 결정적 하자가 될 수 없습니다. 성화에서 문제는 오히려 어떤 성경을 읽든 피 흘리기까지 순종해야 하는 것이며, 그것도 자기 힘과 믿음만으로는 되지 않기에 성령을 의지하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KJV 끼리도 싸운다.

KJV 역본 자체에도 몇 가지 부족한 점들이 있습니다. 첫째, KJV 번역 시에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전만 교본으로 삼아 번역한 것이 아닙니다. 원전과 함께 가톨릭의 라틴어 불게이트(AD4세기)를 비롯해, 그것의 영어번역판인 Tyndale(1530), Coverdale(1535), Matthew(1537), The Great(1539), Geneva(1560), Bishop Bible(1568)등도 함께 참고했습니다.

물론 이전의 오역을 바로 잡겠다는 동기와 충분한 노력은 있었지만 KJV가 이전 번역본들과 따로 떨어져 완전히 독립된 하나의 새 번역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앞선 여러 번역본들이 바탕이 되지 않았다면 KJV도 생길 수 없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만약 KJV가 옳다면 번역의 맥을 이어주었던 이전의 다른 번역본은 물론 KJV 이후의 KJV를 참고 삼은 다른 번역본들을 무조건 사탄의 번역이라고 매도할 수는 결코 없는 것입니다.

둘째로, KJV 번역본 내에서도 번역의 오류가 있다고 학자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가장 쉬운 예로 KJV 의 자체 서문에서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번역했다고 밝혔듯이, 원래 의미와 다른 일상 영어 단어로 교체한 예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원어로는 한 단어이나 여러 영어 단어로 바꾸거나, 반대로 원어는 여러 단어이나 영어로는 한 단어로 통일시킨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셋째로, 무엇보다 KJV 옹호론자들 사이에도 번역에 일치를 보지 못합니다. 또 KJV 번역본들 사이에 우열을 다투다 못해 상대 번역이 잘못되었다고 비난합니다. 한국의 경우 미국의 근본주의 신학자 피터 러크만을 따르는 계열에선 이송오 목사가 번역한 ‘한글킹제임즈성경'(KKJB)을, 반 러크만 계열에선 정동수 교수가 번역한 ‘킹제임즈흠정역’을 각기 바른 번역이라고 다툽니다. 그럼 어떤 번역도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인정한 셈이지 않습니까?

필자도 영어 성경을 참조해야 할 때에 일차적으로 NKJV를 볼 정도로 그 번역의 우수성을 인정합니다. (KJV는 고어체가 많아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이상 읽기가 힘듭니다.) 그러나 그것만 참조하는 것이 아니라, NASV, NRSV, NIV 등도 함께 봅니다. 무엇보다 컴퓨터로 성경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면 일목요연하게 비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KJV만 옳고 나머지는 참조하지 말라는, 심지어 사탄이 개악한 성경이라는 주장에는 절대 찬동하지 않습니다.

KJV만 옳다고 하면 고대 그리스도인들이 70인역을 히브리어 구약성경보다 완전하다고 여겼거나, 로마 가톨릭교회가 오랫동안 라틴어 벌게이트를 원어성경보다 완전하다고 주장하면서 The Bible이라고 대문자로 표기해 왔던 것과 동일한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KJV 이외의 성경을 사탄이 변개한 성경으로 매도하면 다른 성경을 보는 이에게는 하나님이 올바른 말씀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아니면 사탄이 다 막았다는 결론이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입니다. 또 성경을 기록 보존 번역케 하는 역사적 과정과 신자 개인이 성경을 읽는 데에 간섭하는 성령의 능력도 부인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2:20-22)

성령 안에서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만 머리로 삼아 그분께 붙어서 함께 지어져 가라고 명합니다. 이는 예수님 이후의 모든 세대의 모든 성도의 모든 신앙생활에 똑같이 적용됩니다. 성경의 번역과 해석과 적용에도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여러 역본들을 함께 비교 대조하면 번역의 오류만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더욱 깊은 의미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화는 성경이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신자가 순종할 때에만 이뤄집니다. 성화에 대한 판정관도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어떤 번역본을 읽었느냐를 따지지 않습니다. 어떤 성경이든 기도하면서 성령의 깨우침에 따라 십자가 진리에 자신의 전부를 과연 온전히 헌신했는지 신자의 중심만 보실 뿐입니다.

[출처:박진호 목사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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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제임스 흠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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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의 오류 – bareunmedia

사본의 가치를 무시하는 독단적 주장

성경은 다양한 번역본이 있다. 그럼에도 유독 킹제임스성경(The King James Version, KJV)만이 ‘유일한 성경’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이하 킹제임스 유일주의라고 표기). 한국에는 대표적으로 말씀보존학회의 이송오 목사가 영어 킹제임스성경을 번역한 한글킹제임스를 출판해 보급함으로 킹제임스 유일주의 진영을 대표해왔다. 이 목사는 개역성경은 사탄이 변개했으며, 다른 성경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해왔다. 예장합동과 통합은 말씀보존학회를 1998년과 2002년에 각각 ‘이단’, ‘반기독교 주장을 하는 곳’으로 결의했다.

​킹제임스 유일주의 진영이 말씀보존학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몇 년 사이 급부상한 사랑침례교회 정동수 목사의 경우 개역성경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하지만, “1611년 영어 킹제임스성경이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는 최종적인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한다. 정 목사는 개역성경은 사탄이 변개했다는 (D.A. 카슨의 표현을 빌려) 무자비한 욕설을 여전히 하고 있으며 핵심 사상은 다른 킹제임스 유일론자들과 큰 차이가 없다.

사랑침례교회 측은 그리스도예수안에 출판사를 통해 영어 킹제임스성경을 번역한 킹제임스 흠정역을 만들고 홍보하고 있다. 흠정역은 한영대역 관주성경, 큰 글자 성경, 작은 성경 등 다양한 버전으로 출판되는 데, 생명의말씀사 성경 판매부분 상위권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킹제임스성경, 읽어도 될까

킹제임스성경은 말 그대로 제임스 왕에 의해 승인되고 번역된 성경이다. 필립 W. 컴포트는 킹제임스성경의 탄생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는 1603년에 영국의 왕이 된 후(이때부터 제임스 1세로 불림) 청교도와 성공회 간의 차이가 해소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두 교파에 속한 몇 사람의 성직자들을 초대해 화합을 가졌다. 그 화합은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 못했으나,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청교도 측 지도자이자 옥스퍼드 코퍼스 크리스티 칼리지의 학장이었던 존 레이놀즈가 왕에게 새로운 번역본을 인가해 주기를 청했다. 당시 그는 이전의 번역본들보다 더 정확한 번역본을 기대하고 있었다. 제임스 왕 역시 그 제안을 기뻐했는데, 그것은 그가 보기에 비숍 성경이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고, 제네바 성경에 들어 있는 주(註)들은 지나치게 선동적이었기 때문이다.1)

제임스 왕의 재가 이후 약 50여 명의 학자가 6개 팀으로 나눠 1607년부터 번역을 시작했고 1611년에 ‘킹제임스성경’이 완성되었다. 킹제임스성경은 오랫동안 권위를 인정받았다. 래리 스톤에 따르면 킹제임스성경은 잉글랜드의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영어가 온전한 언어로 형성되도록 도왔고, 영문학에 배경을 제공해 주었고, 음악을 만들도록 고무했으며, 몇 세기 동안 각 가정마다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소유하고 읽곤 했던 유일한 책 이었다”고 한다.2)

킹제임스 유일주의의 시작

오랫동안 인정받았던 킹제임스성경에 대한 맹목적 믿음이 발생하면서 킹제임스 유일주의가 싹트기 시작했다. 미국의 개혁주의 신학자 R.C. 스프로울은 “킹제임스성경이 오랜 기간 탁월한 지위를 누리며 사람들에게 소중한 것이 되었기 때문에, 그 지위가 위협받을 때 나온 저항의 목소리”라고 말한다.3)

권동우 대표(킹제임스연구소)의 『킹제임스 성경 유일주의의 망상』에 따르면 킹제임스 유일주의의 뿌리는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안식교의 신학자 벤자민 G. 윌킨슨이다. 권 대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벤자민 G. 윌킨슨1872~1968은 제7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선교사이자 제7일안식일워싱턴재림대학교 신학부 학장이었다. 킹제임스성경의 유일주의는 윌킨슨이 1930년에 출간한 『입증된 우리의 흠정역 성경』이란 제목의 책으로부터 비롯되었다. … 그는 시편 12:6~7을 잘못 적용하여, 그 말씀이 마치 킹제임스성경 보존에 대한 약속인 것처럼 주장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러나 정작 윌킨슨이 KJV를 지키려 했던 이유는 1881년 개정된성경RV이 KJV보다 자신이 믿고 지지하고 있는 안식교 교리에 불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이었다.4)

윌킨슨 이후 제임스 재스퍼 레이, 데이비드 오티스 풀러, 에드워드 F.힐즈, 피터S. 럭크만 등에 의해 유일주의는 그 맥을 이어왔다. 그 중에서도 피터 S. 럭크만은 기존의 성경을 가장 모욕적으로 비판하는 인물인데 이송오 목사가 럭크만에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편 12편을 근거로 한 보존론의 오류

킹제임스 유일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을 일점일획 가감없이 보존하셨다”는 소위 ‘성경 보존론’ 교리를 만들었다. 정동수 목사(사랑침례교회)는 시편 12편 6, 7절을 근거로 하나님의 말씀들이 킹제임스성경을 통해 완벽하게 보존되었음을 믿는다고 주장한다. 킹제임스 흠정역(그리스도 예수안에)은 시편 12편 6, 7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킹제임스 흠정역

시편 12편 6절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니 흙 도가니에서 정제하여 일곱 번 순수하게 만든 은 같도다

7절 오 주여, 주께서 그것들을 지키시며 주께서 그것들을 이 세대로부터 영원히 보존하시리이다.

정 목사는 이 구절을 두고 “이게 성경보존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에요. 이걸 믿으셔야 되요. 하나님께서 영원히 보존해 주신다.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단어들, 하나님의 숨이 들어가서 살아 있는 모든 단어들을 일점일획까지 하나님이 보존해 주신다는 겁니다”라고 설명한다.

정 목사는 7절의 ‘그것들을’이 6절의 ‘주의 말씀들’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문맥을 무시한 것뿐만 아니라 문법적으로 틀린 해석이다. 6절의 ‘말씀들은’은 여성명사이고 7절의 ‘그것들은’은 남성명사다. 성,수를 일치시켜야 하는 것은 히브리어의 기본적인 문법이다. 문법상 ‘말씀들은’은 ‘그것들은’이 될 수 없다. 7절의 ‘그것들은’은 5절에 나오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다.

말씀보존학회는 한술 더 떠서 자신들이 번역한 한글 킹제임스성경에서 7절의 ‘그것들을’을 ‘이 말씀들을’로 바꾸어 번역했다.

한글 킹제임스성경

시편 12편 6절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씀들이라. 흙 도가니에서 단련되어 일곱 번 정화된 은 같도다.

7절 오 주여, 주께서 이 말씀들을 간수하시리니, 주께서 이 세대로부터 영원토록 그것들을 보존하시리이다.

히브리어 성경이나 킹제임스성경 그 어디에도 7절의 ‘그것들을’을 ‘이 말씀들을’로 번역할 만한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유일론자들의 성경보존론은 시편 12편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데 기인한 오류다.

▲ 1611년 판 킹제임스성경 시편 12편 7절과 난외주

아이러니한 것은 시편 12편 보존론은 킹제임스성경을 번역했던 번역자들에 의해서도 반박이 가능하다. 번역자들은 영어문법상 7절의 ‘그것들을’(them)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혼돈을 일으킬 가능성을 미리 예측했던 것 같다. 1611년 판 킹제임스성경 난외주에 ‘그것들을’이 사람을 가리킨다고 설명했다.

킹제임스성경은 훌륭한 사본을 가지고 번역했을까

1611년 판 킹제임스성경은 구약이 히브리어, 신약이 헬라어로 되어 있지 않은 영어로 된 하나의 번역본이다. 번역본을 완전한 성경이라는 주장 자체가 모순이다. D.A. 카슨은 “어떤 하나의 특정한 본문형태를 두고 그것이 오류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이유는 하나의 본문 형태는 사본들을 비교하여 두드러진 공통점을 가진 것들끼리 분류해서, 가장 가능성이 있는 독법을 취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확립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5)

킹제임스 유일론자들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는 킹제임스성경의 신약 기초본문이 공인 본문(Textus Receptus, TR)이기 때문이다. 킹제임스성경 번역자들이 기본적으로 TR을 사용해서 신약을 번역했다는 뜻이다.

TR이라는 이름은 인쇄업자였던 엘지비어 형제가 1633년에 펴낸 성경의 서문에서 사용한 “독자들은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본문을 가지게 되었다. 본문에는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는 표현에서 유래했다. 공인이라고 하니 권위 있는 곳을 통해 인정받은 것 같지만, 실상은 책을 판매하기 위한 상업적 문구였고 이것이 대중들에게 받아들여졌다.

학자들은 TR의 어설픈 형성 과정을 지적하며 큰 권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브루스 M. 메쯔거는 『사본학』에서 TR의 형성과정을 다음과 같이 알렸다.

최초로 발행된 헬라어 신약성경(즉 시판된 것)은 유명한 네덜란드 학자요 인문주의자인 로테르담의 데지데리우스 에라스무스가 준비한 판이었다. … 1514년 8월에 바젤을 방문했을 때 그는 그러한 가능성을 잘 알려진 출판업자 요한 프로벤과 의논하였다(아마 처음은 아닌 것 같다). 그들의 상담은 처음에는 결렬된 것 같았지만 1515년 4월에 에라스무스가 케임브리지 대학을 방문했을 때 재개되었다. 프로벤이 친구 비아투스 리이니나누스를 통하여 에라스무스가 즉시 신약의 초판을 착수할 수 있도록 부탁하였다. 의심할 여지없이 프로벤은 스페인의 다국어 대조 성경이곧 나올 것이라고 들었으며, 헬라어 신약의 판이 시장화될 것을 알았고, 크시메네스의 작품이 끝나고 출판이 허가되기 전에 이 결정이 인쇄화 될 것을 원했다. …인쇄는 1515년 10월 2일에 시작되었고, 아주 짧은 시간 내에(1516년 3월1일) 전체 판이 끝났고 … 에라스무스 자신이 후에 선언한 것과 같이 “편집되었다기보다 오히려 재촉되었다.” 출판을 서둘렀기 때문에 책은 수백 군데의 오식을 갖게 되었다. 사실 스크리브너가 언제가 “이것은 내가 아는 가장 나쁜 책이다”라고 말하였다. 에라스무스는 전부 헬라어로 된 성경 사본을 찾지 못하였으므로 신약의 몇몇 사본을 사용했다. … 계시록을 위해서는 12세기의 단 한 권의 사본밖에 없었는데, 그는 그것을 그의 친구 로이힐린에게서 빌렸다. 불행히도 이 사본은 그 책의 마지막 6개 구절들이 있는 마지막 장이 빠지고 없었다. 이러한 구절들을 위해서 요한계시록의 헬라어 본문이나 그리스어 주석으로 사본이 보충된 책에는 곳곳에 있는 몇몇 다른 구절들이 거의 분간할 수 없도록 혼합되어 있는 것 같이, 에라스무스는 라틴역에 의존하여 이 본문을 헬라어로 번역했다. 그러한 절차에서 기대 되었던 것 같이, 여기저기에 에라스무스 자신이 만든 헬라어 본문은 어떤 알려진 헬라어 사본에서 한번도 볼 수 없었던 이문(異文)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소위 말하는 헬라어 신약의 텍스투스 리셉투스(Textus Receptus)라는 인쇄물에서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영속되고 있다.6)

이후 스테파누스, 베자, 엘지비어 형제가 에라스무스의 판본을 기초로 성경을 출판했다. 엘지비어 형제의 상술로 생겨난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본문’ 이라는 표현 때문에 이 성경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에게 인정된 성경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메쯔거는 “대단히 미신적인 존경이 텍스투스 리셉투스에 바쳐졌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그것을 수정하며 비평하려는 시도는 신성모독과 같은 것으로 생각되었다”7)고 전한다.

메쯔거가 밝힌 TR의 형성과정에 따르면.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성경은 다른 사본들에 비해 열등할 수밖에 없다. 몇 개의 사본만 사용한 것도 문제지만 요한계시록은 한 개의, 그것도 불완전한 사본으로 편집했다. 학자들은 에라스무스의 편집본에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본문이 들어가 있다고 지적한다. 에라스무스는 몇 차례 개정을 통해 본문을 수정했지만 기초는 남아 있었고 이런 오류가 킹제임스성경에 유입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구절이 요한의 콤마로 알려진 요한일서 5장 7절과 바울의 질문인 사도행전 9장 6절이다.

다수본문과 소수본문

정동수 목사는 “현존하는 사본의 99%가 공인본문을 지지한다”고 주장한다. 정 목사는 ‘킹제임스성경의 대본, 번역용 본문이 된 사본에 대해서도 킹제임스가 채택한 다수 본문이 훨씬 우수하며 바르다’며 ‘다수 사본을 뿌리로 한 킹제임스성경 쪽이 소수 사본을 뿌리로 한 기타 현대 역본들에 비해 훨씬 우수하며, 당연히 우리가 보아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다. 안타깝지만 개역성경은 소수 사본 계열의 성경’이라고 말한다.8)

많은 사본이 킹제임스성경을 지지하기 때문에 킹제임스성경이 완전하고 권위가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여기에 몇 가지 함정이 있다.

첫째, 비잔틴 본문은 다수라는 이유로 권위를 갖지 않는다. 16세기 이후 비잔틴 사본보다 훨씬 이전의 사본들이 발견되었다. 사본은 오래 될수록 높은 가치를 가진다. 인쇄술이 발달하기 이전에는 손으로 본문을 필사했다. 주후 9세기 이전의 사본들은 대문자를 띄어쓰기 없이 기록했기 때문에 훈련된 서기관들도 필사 작업을 수월하게 할 수 없었다.

주후 9세기에 이르러서야 소문자를 띄어서 쓰기 시작했다. 필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는 필연적이었고 후대의 사본일수록 원문과 멀어지는 것은 ‘상식’이다. 사본에 대한 권위는 대부분 ‘개수’보다 ‘년도’에 따라 부여된다.

1947년 2월, 획기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아랍계열의 한 베두인이 잃어버린 염소를 찾다가 동굴 안에서 가죽 두루마리가 담긴 항아리를 발견했다. 이후 동굴을 주변으로 발굴 작업이 10여 년 동안 이뤄지면서 수백 개의 사본(성경 외에도 외경, 위경 등도 포함)들이 발견 된다. 사해 주변 지역에서 발견되었다하여 사해 사본(혹은 두루마리)이라고 하는데, 이때 발견된 문서는 무려 B.C. 200년경부터 A.D. 13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해 사본의 발견은 사본학 연구의 전환점이 되었다. 현 시대는 킹제임스성경이 저본으로 삼은 TR보다 권위 있는 사본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원문에 더 가까운 성경을 번역할 수 있게 되었다.

둘째, 현존하는 사본의 99%가 TR을 지지한다는 것은 상당한 사본학적 왜곡이다. 헬라어 신약성경은 약 13만 8천 개의 단어로 이뤄졌고 사본들 사이에는 최대 40만 개의 이문이 있다. 또한 수 천 개의 비잔틴 사본 간에도 내용이 일치하는 것이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문은 필사 과정에서 발생한 필사자들의 오류 때문에 생겨났다. 정 목사의 “현존하는 사본의 99%가 TR을 지지한다”는 주장은 수용하기 어렵다.

(없음)의 문제

킹제임스성경 유일주의자들은 킹제임스성경에는 “(없음)이 없다”는 주장을 자랑스럽게 내세운다. 개역개정성경 등은 번역 과정에서 본문을 고의로 누락 혹은 삭제했기 때문에, (없음)이 없는 킹제임스성경 흠정역이 유일하게 온전한 성경이라고 주장한다.

▲ (없음)이 없다는 주장을 내세우는 킹제임스 흠정역 광고

(없음)은 고의로 누락하거나 삭제한 것이 아니다. 원래 성경에는 장, 절이 없었다. 엄밀한 의미에서 장과 절의 구분은 15세기와 16세기 사이에 이뤄졌다고 한다. 구약은 1227년 영국 캔터베리 대주교 스티븐 랭턴이 라틴어 불가타역을 이용해 장을 나눴다. 독자의 편의를 위해 본문에 숫자가 매겨진 것은 1551년 스테파누스의 네 번째 성경이 처음이었다. 오늘날 성경은 1560년 판 제네바 성경의 장, 절 구분을 따르고 있다.

스테파누스가 절을 표시할 때 있었던 일부 본문은, 더 우수한 사본으로 원문비평을 한 결과 후대에 추가되거나 삽입된 것으로 드러나 절을 빼게 되었다. 절 하나가 빠졌다고 숫자를 다시 매길 수는 없어 (없음)으로 표시하고 ‘어떤 사본에는 (어떤) 구절이 있음’이라는 난외주를 달았다.

현재 한국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개역개정에는 13개 구절이 (없음) 으로 표시된다.

마 17:21, 마 18:11, 마 23:14, 막 9:44, 막 9:46, 막 11:26, 막 15:28, 눅 17:36, 눅 23:17, 행 8:37, 행 15:34, 행 28:29, 롬 16:24

13개의 (없음) 중 8개의 (없음)은 복음서에 존재하는데, 누가복음 17장 36절을 제외하곤 병행 본문으로 다른 복음서를 통해 충분히 보충되어 있다. 누가복음 17장 36절의 경우에는 킹제임스성경의 기초가 되었다는 TR에도 없을 뿐만 아니라, 비잔틴 사본계열 다수본문의 편집본에서조차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없음)은 고의적으로 삭제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킹제임스 유일론자들이 없는 구절을 삽입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없음)이 없는 성경은 특별하지도 않으며 독자가 신학적, 교리적으로 알아야 할 정보를 추가로 제공해 주지 않는다.

킹제임스성경만이 유일하다는 주장은 사본학적으로 지지를 받지 못한다. 킹제임스 유일주의는 현존하는 많은 사본이 가진 가치를 무시하는 배타적인 주장이다.

1) 필립 W. 컴포트 편저, 『성경의 기원』(김광남 역, 엔크리스토, 2010), 397.

2) 래리 스톤, 『성경번역의 역사』(홍병룡 역, 포이에마, 2011), 167.

3) R.C. 스프로울, 『성경을 아는 지식』, 개정판(길성남 역, 좋은씨앗, 2009), 179.

4) 권동우, 『킹제임스 성경 유일주의의 망상』(CLC, 2016), 41-42.

5) D.A. Carson, 『킹 제임스 버전 성경의 오류』(송병현·박대영 역, 이레서원, 2000), 101.

6) 브루스 M. 메쯔거, 『사본학』 개정판(강유중 역, 기독교문서선교회, 2006), 123-124.

7) 같은 책, 132.

8) 현존하는 신약 사본 중 80%는 지중해의 동부에서 왔는데, 이를 비잔틴 본문(사본) 혹은 다수본문(사본)이라 부른다.

조믿음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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