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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블룸버그 – 나무위키

미국의 기업인이자 정치인이며 제108대 뉴욕 시장. 블룸버그 통신 등을 포함한 대형 미디어 그룹 블룸버그 L.P.의 창립자 겸 CEO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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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1/14/2021

View: 5790

마이클 블룸버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마이클 루벤스 블룸버그(영어: Michael Rubens Bloomberg, 1942년 2월 14일 ~ )은 미국의 기업인이자 정치가이며 전 뉴욕 시 시장이다. 《포브스》에서 2021년 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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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10/3/2021

View: 8127

‘트럼프 20배 부자’ 기부왕, 그런 블룸버그 왜 비호감 1위?

미디어그룹 블룸버그LP의 창립자이자 전 뉴욕 시장. ‘트럼프보다 20배 부자’란 사실로 화제가 되는 이 남자, 어떤 인물이기에 미국 대선판이 술렁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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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joongang.co.kr

Date Published: 4/13/2022

View: 2030

마이클 블룸버그 | 다음영화

Michael Bloomberg 원문 더보기. 공유하기. 직업: 정치인, 기업인. 출생일: 1942.02.14. 출생지: 미국. 성별: 남성. 경력: 2002.01.01 미국 뉴욕시 시장 외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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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ovie.daum.net

Date Published: 9/12/2021

View: 1780

마이클 블룸버그 – 해시넷 위키

그는 블룸버그(Bloomberg L.P.)의 대주주이자 공동창시자이며 2002년부터 2013년 사이에 뉴욕시 시장으로 임직했었고 2020년 민주당 대통령 예비선거 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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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iki.hash.kr

Date Published: 6/18/2021

View: 6081

마이클 블룸버그 – 알라딘

마이클 블룸버그(Micheal Bloomberg). 존스 홉킨스대학 공과대학 졸업. 하버드 MBA. 현재 블룸버그사 CEO. 타임지 선정 사이버 엘리트 톱 50인 중 33위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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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aladin.co.kr

Date Published: 4/13/2021

View: 8566

[황승원의 세계 대부호 10]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

블룸버그 L.P.의 시작돈과 권력. 많은 사람이 꿈꾸는 로망이다. 하지만 죽기 전에 하나도 하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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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eomagazine.co.kr

Date Published: 2/4/2022

View: 5162

마이클 블룸버그

마이클 루벤스 블룸버그 (Michael Rubens Bloomberg, 1942년 2월 14일 ~ )은 미국의 기업인이자 정치가이며 현직 뉴욕 시장이다. 2010년 개인 자산 180억 달러의 미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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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dbpedia.org

Date Published: 7/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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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만장자’ 마이클 블룸버그, 대선 도전 초읽기…“떨고 있나 …

미국의 ‘억만장자’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77)이 1년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 앞서 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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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khan.co.kr

Date Published: 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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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리치의 성공경제학-3] 마이클 블룸버그 - 미디어 재벌과 뉴육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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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마이클 블룸버그

  • Author: ELK이러닝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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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4. 10. 6.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KGWbN7u3Gxo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마이클 루벤스 블룸버그(영어: Michael Rubens Bloomberg, 1942년 2월 14일 ~ )은 미국의 기업인이자 정치가이며 전 뉴욕 시 시장이다. 《포브스》에서 2021년 개인 자산 590억 달러다.[1]

또한 블룸버그 L.P.의 창립자이자 회사의 지분을 88% 소유하고 있다.[2][3][4]

젊은 시절 [ 편집 ]

1942년 2월 14일 보스턴의 세인트 엘리자베스 병원에서 윌리엄 헨리 블룸버그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윌리엄 블룸버그는 1906년 1월 19일에 영국 첼시에서 태어나 이민 온 러시아 유대인이자 부동산업자 출신이었고 어머니 샬롯 블룸버그는 1909년 1월 2일 뉴저지주에서 태어난 러시아계 이민자였다.

존스 홉킨스 대학교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여 1964년에 학사를 받았고 1966년에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았다. 1975년 요크셔 출신의 수잔 브라운 블룸버그와 결혼해 1979년 엠마 블룸버그와 1983년 조지나 블룸버그를 슬하에 두고 있다.

경영 및 정치가로서의 삶 [ 편집 ]

원래 살로몬 브라더스에서 근무하다 1981년 퇴직금 1000만 달러로 해고당하자 블룸버그 L.P.를 설립하고 혁신적 시장 체제를 설정해갔으며 1982년 첫 고객 메릴린치에 단말기와 자금 3000만 달러를 투자해 블룸버그 전용 단말기를 설치하고 1991년 《뉴욕 타임즈》에도 단말기를 제공해 일반에 알려져 종합 미디어 그룹으로도 발전했다.

2001년에는 민주당을 탈당하여 뉴욕 시장 선거에 공화당 당적으로 당선되어 루디 줄리아니의 뒤를 이어 뉴욕 시장이 되었고 2005년 선거에도 공화당 후보로 당선되었다.

모교 존스 홉킨스 대학에 수억 달러를 기부하며 블룸버그 가족 재단에 2004년 ~ 2005년 1억 6500만 달러, 2006년 2억 500만 달러를 기부해 세계 기부 순위 7위에 올랐으며 2007년에는 미국에 대한 1억 3800만 달러의 기부를 약속했다. 또 2008년 웹사이트 블룸버그닷컴을 통해 빌 게이츠와 함께 5억 달러를 금연 사업과 개발 도상국 지원에 기부한다고 발표했다.

2007년 6월 19일 공화당을 전격 탈당했다. 2007년 《러닝 타임 100》은 그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39위로 선정했으며 2007년 9월 《베니티 페어》는 베니티 페어 100위 중 9위로 선정했으며 2008년 5월 29일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법학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어 버나드 대학, 컬럼비아 대학에서도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 11월 19일 뉴욕 협회의 골드 메달을 수상했으며 2008년 10월 2일 임기 한도법을 연장해 무소속 후보로 2009년 11월 3일, 뉴욕시장 3선에 도전하여 민주당 후로 빌 톰슨(Bill Thomson)을 50.7% 대 46.3% 로 누르고 당선되어 2010년 1월 1일에 3번째 4년 임기를 시작했다. 2009년 시장선거 과정에서 측근 존 해거트리에게 100만 달러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2009년 《포브스》 발표 재산이 160억 달러로 전년보다 45억 달러가 늘어 순식간에 미국에서 8위, 세계에서 142위에서 17위로 순위가 바뀌었다.

2009년 5월 16일 포덤 대학교로부터 명예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0년 1월 《포브스》 발표 세계에서 가장 정치력 큰 갑부 1위에 올랐다.

역대 선거 결과 [ 편집 ]

각주 [ 편집 ]

외부 링크 [ 편집 ]

‘트럼프 20배 부자’ 기부왕, 그런 블룸버그 왜 비호감 1위?

“그는 훌륭한 대통령은 될 수 있겠지만… 그렇지만….” (워싱턴포스트)

미국 대선 소식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뉴스입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마당이라, 이 남자의 등판이 더욱 흥미진진합니다.

[후후월드]

‘품격 있는 억만장자’ 대선 도전

중도층 끌어안으며 돌풍 될까

여성과 비백인 지지 받아야

올해 77세. 미디어그룹 블룸버그LP의 창립자이자 전 뉴욕 시장. 거물 중의 거물로 꼽히는 마이클 블룸버그 얘기죠.

‘트럼프보다 20배 부자’란 사실로 화제가 되는 이 남자, 어떤 인물이기에 미국 대선판이 술렁이는 걸까요.

앞서 언급한 워싱턴포스트(WP)의 칼럼은 이렇게 요약됩니다.

“트럼프가 갖지 못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그는 훌륭한 대통령은 될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민주당 후보가 되기 힘들 듯하다.”

이런 우려를 내놓는 건 이 신문뿐 아닙니다. 왜일까요?

품격 있는 억만장자의 탄생

자수성가, 갑부, 억만장자….

그를 다룬 기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입니다.

그의 순자산은 무려 530억 달러(약 62조원). 미국에서 9번째, 전세계에서 14번째 부호죠. 자신이 부자라고 늘 자랑하는 트럼프는 이런 블룸버그의 등판이 달갑지 않은지 “그는 실패할 것”이라 비꼽니다. 그러나 트럼프가 블룸버그보다 못한 건, 부의 규모보다는 부를 일군 방법입니다. 금수저 트럼프와 달리 블룸버그는 자수성가했거든요.

러시아(친가)ㆍ벨라루스(외가) 유대인 핏줄인 그는 존스홉킨스대 전자공학과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뒤 증권사 살로먼브라더스에 입사해 탁월한 성과를 내기 시작합니다. 그곳에서 영원히 승승장구할 것 같던 그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건 1981년, 사내정치에서 밀려나 잘렸을 때였죠.

그의 나이 서른아홉. 절망할 법한데 그는 이걸 기회로 삼습니다. 살로먼에서 일할 당시 금융 거래 분석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확인하는 방법에 불만을 품고 있던 그는 전용 단말기와 회선을 통해 실시간으로 고급 정보를 제공하는 혁신적인 서비스를 선보입니다. 거대 미디어그룹 블룸버그의 시작이었죠.

‘연봉 1달러’ 뉴욕 시장의 자신감

막대한 부를 일군 그는 정치에 눈을 돌려 2001년 뉴욕 시장이 됐고 2005년, 2009년에 연이어 3선에 성공합니다. 연봉을 단 1달러만 받으며 공교육 개혁과 빈곤 퇴치에 힘을 썼고,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시장으로도 유명했죠. ‘보여주기 위한 쇼’란 욕을 먹기도 했지만 사실 부자란 사실보다 더욱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건 그의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부자의 품격’이라 해야 할까요. 그는 ‘기부왕’으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지난해에는 모교 존스홉킨스대에 무려 18억 달러(약 2조1000억원)를 쾌척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대학 기부 역사상 가장 큰 액수였죠. 블룸버그는 “나는 장학금 덕분에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고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었다”며 자신이 “기회의 평등을 위해 투자”하는 이유를 밝혔습니다.

민주당 소속이었다가 돌연 공화당으로 당적을 바꿔 시장에 당선되고, 다시 무소속이었다 민주당으로 돌아온 그가 큰 무리 없이 대선주자로 나선 것도 정치적인 이슈에 있어 자신만의 ‘품격’을 지킨 덕입니다. 그는 낙태ㆍ총기 규제ㆍ기후변화ㆍ 이민자 문제 등에서 진보적이지만, 경제 이슈에선 자유무역을 지지하고 친기업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요. 당적은 바꿔도 신념은 바꾸지 않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신뢰를 준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 때문에 그가 중도층 표를 흡수해 돌풍을 일으킬 수 있단 전망이 나오는 겁니다.

데이터를 믿는 남자, 대통령에 도전하다

블룸버그는 모든 일에서 데이터를 근거로 움직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나는 데이터를 믿는다”는 게 그의 신조라고 측근들은 전하죠. 지난 2016년 대선 때 출마를 포기했던 것도 “자료를 분석해보니” 승산이 없었다고 밝혔을 정도입니다.

올 초만 해도 출마하지 않는다 했던 그가 돌연 입장을 바꾼 것도 철저한 분석을 한 결과란 게 미 언론의 설명입니다.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선 조 바이든, 엘리자베스 워런, 버니 샌더스가 트럼프 대항마가 되기엔 역부족이란 평가를 했단 거죠.

그런데 이상합니다.

여론조사 결과 트럼프와 양자 대결에선 그가 앞서는 것으로 나오는데, 민주당 후보 중에선 ‘비호감 1위’를 차지했거든요. WP 등 주요 언론은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해선 여성과 비백인 유권자의 지지가 필수인데 블룸버그는 여기에 약하다”고 진단합니다. 뉴욕타임스(NYT)는 “그는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언행으로 알려져 있지만, 대선 후보로선 더 많은 검증을 거쳐야 한다”고 설명하죠.

가장 문제가 되는 건, 그가 뉴욕 시장 재직 시절 시행했던 ‘불심검문(Stop and Frisk) 강화’ 정책입니다. 아프리카계ㆍ히스패닉 남성이 주로 검문 대상이 됐기에 두고두고 욕을 먹었죠. 이를 의식한 것인지 그는 지난 17일(현지시간) “생명을 구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정책이었지만 죄가 없는 많은 사람도 검문을 당했다”며 “잘못했다”고 처음으로 사과했습니다. “77세 억만장자의 놀라운 양보”(NYT)란 평가가 나왔죠.

‘늙은 부자 백인 남성’은 왜 자꾸 백악관을 탐내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기부자가 필요 없는”(폴리티코) 억만장자가 대선에 등판하면 금권선거가 될 수 있단 우려죠. 재벌 트럼프를 이기겠다며 나온 블룸버그 역시 ‘늙고 부자인 백인 남성’이란 점에 회의적인 이들도 많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블룸버그는 뉴욕 시장 선거 때도 엄청난 사재를 턴 것으로 유명하거든요.

젊은 진보층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버니 샌더스는 블룸버그의 출격을 두고 “억만장자의 오만”이라며 “선거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란 일침을 놨습니다.

아직 그가 공식적으로 출마를 선언한 것은 아닙니다. 앨라배마주 민주당 프라이머리(예비선거) 관리위원회에 대선 경선 출마 서류를 제출했을 뿐이죠. 블룸버그의 존재가 돌풍이 될지 미풍에 그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있습니다.

어찌 됐든 그는 트럼프 재선 저지에 사활을 걸 거란 사실이죠. 그는 이미 “트럼프의 재선을 막기 위해서라면 돈은 얼마든지 쓸 수 있다”며 반(反) 트럼프 온라인 광고 영상에 1억 달러(약 1169억원)를 쏟아부었습니다.

올해 77세인 노장은 과연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의 설명을 빌려봅니다.

“그는 이것이 자신에게 마지막 기회일 거란 걸 잘 알고 있다. 상황이 어찌 되든 그가 트럼프를 몰아내는 데 최소 5억 달러(약 5838억원)쯤은 쓸 거란 점은 확실하다.”

임주리 기자 [email protected]

※ [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외교안보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황승원의 세계 대부호 10]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

블룸버그 인물사진(사진=블룸버그SNS)

블룸버그 L.P.의 시작

돈과 권력. 많은 사람이 꿈꾸는 로망이다. 하지만 죽기 전에 하나도 하지 못하고 죽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이 둘을 동시에 가진 이가 있었으니 바로 블룸버그 L.P. CEO이자 역사성 처음으로 뉴욕시장 3선에 성공한 마이클 블룸버그다.

블룸버그는 1942년 2월 14일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보스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민자 1세대였고, 어머니는 이민자 2세대였다. 블룸버그의 가족이 유대인이었기에 블룸버그 역시 유대인으로 자랐다. 블룸버그의 친할아버지는 유대교의 선생인 랍비였다.

블룸버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남는 시간을 활용하여 전자 쪽 중소기업에서 일했다. 그는 이런 경력을 활용하여 존스홉킨스대학 전자공학과에 입학했으나 공학 학점은 C 근처를 왔다 갔다 했다. 대신 학생회 선거 운동이나 파티를 주최하는데 대단한 능력이 있어 동아리나 학생회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마친 그는 베트남 전쟁이 한참이던 1966년 군에 입대하려 했으나 평발 때문에 입대를 포기했다.

이후 진로를 고민하던 중 투자은행 쪽으로 생각하고 골드만삭스와 살로만 브라더스에 동시에 합격한다. 골드만삭스가 더 좋은 조건을 제시했지만, 골드만삭스의 격식을 차리는 문화에 부담을 느낀 블룸버그는 살로만 브라더스에 입사하게 됐다.

블룸버그는 입사하자마자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등, 온 힘을 바쳐 일했고 그 모습이 사장인 빌리 살로만에게 눈에 띄어 자연스럽게 빨리 승진하게 됐다. 1973년 일반 파트너가 된 그는 주식 거래와 시스템 개발을 이끌게 되었다. 그러던 1981년, 피브로 법인이 살로만 브라더스를 인수하면서 60명의 파트너 중 7명을 해고하게 되었는데 블룸버그도 그중에 포함되었다. 블룸버그는 회사 지분에 대한 보상인 1,000만 달러를 받고 퇴사하게 되었다.

블룸버그(사진=블룸버그 SNS)

블룸버그는 퇴사 직후, 퇴직금 1,000만 달러 중 400만 달러를 투자해 블룸버그 통신을 창립하게 된다. 당시 증권사의 정보 축적방식은 초라하기 짝이 없어 3주일 전에 주식이 어떻게 거래됐는지 알려면 해당 날짜의 신문을 일일이 찾아봐야 할 정도였다. 컴퓨터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데이터를 분석, 수집하고 전달할 수 있던 것을 안 그는 컴퓨터 시스템의 전용 단말기를 통해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하는 혁신적인 방법을 선보였다.

간단한 조작만으로 많은 정보를 쉽고 빠르게 받을 수 있다는 소식에 블룸버그의 매출은 급상승했고 1991년에는 뉴욕타임스에 단말기를 제공하게 된다. 나중에는 금융정보 시장의 일인자였던 2003년 시장조사업체인 인사이드 마켓 데이터에 따르면 매출 기준 블룸버그의 금융 시장 점유율이 43.7%지만 로이터는 39.8%로 불과 24년 만에 150년 역사의 로이터를 제칠 정도로 막강해진 블룸버그 통신은 이후 블룸버그 단말기가 없으면 국경을 넘는 거래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다.

1986년에는 사명을 블룸버그 L.P.로 바꾸게 된다. 1990년에는 블룸버그 단말 가입자들에게 금융뉴스를 전달하기 위해 매튜 윙클러와 함께 블룸버그 뉴스를 공동 창간했다. 블룸버그는 뉴스를 창간하면서 다우존스 뉴스 서비스에 대한 의존을 끊었다.

뉴욕 시장 블룸버그(사진=블룸버그SNS)

정치인 블룸버그

2001년 블룸버그는 뉴욕시장 선거에 나서게 된다. 그는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당적을 옮긴다. 또 정치인은 회사의 CEO를 겸임할 수 없기에 그해 3월 CEO를 블룸버그 L.P. 이사회 구성원이었던 피터 그라우어에게 물려주고 사퇴하게 된다. 그해 9월 11일 마침내 뉴욕시장 선거를 위한 경선에 들어가게 됐는데 그날 벌어진 테러로 인해 경선이 연기되었다. 이후 다시 열린 경선에서 블룸버그는 허먼 바딜로 전 하원의원을 누르고 공화당의 후보로 뉴욕시장 선거에 나서게 된다.

그 당시 뉴욕시는 공공 선거 자금법에 따라 후보자가 받을 수 있는 기부금의 액수를 제한하고 있었다. 이에 블룸버그는 공공 선거자금을 쓰지 않고 자신의 사비를 털어 상대 후보인 민주당 마크 J. 그린보다 5배나 많은 선거자금을 쓰며, 재산이 많은 이점을 충분히 활용했다. 또 블룸버그는 세계 무역 센터가 테러로 무너진 상황에서 도시의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기에 사업가 경력이 있는 그가 시장이 되어야 한다고 외쳤다.

11월 6일 마침내 투표가 시작됐다. 투표 결과 전체의 50.3%인 744,757표를 얻은 블룸버그가 47.9%인 709,268표를 얻은 마크 J. 그린을 제치고 뉴욕시장에 당선된다. 블룸버그의 당선은 뉴욕 역사상 처음으로 두 명의 서로 다른 공화당원이 연속으로 시장에 당선된 것이었다.

블룸버그(사진=블룸버그SNS)

108대 시장에 정식 취임한 블룸버그는 그동안 기업에서 갈고닦은 비결을 시정에 활용했다. 2002년 초 뉴욕시의 재정적자는 60억 달러였다. 시의 주요수입원인 관광 수입조차 한 해 전 발생한 9.11 테러로 인해 최악인 상황이었다. 시의 재정 문제를 위해 부동산세를 인상한 그는 시 재정이 흑자로 돌아서자 시 홍보를 늘렸고 시민들의 민원전화를 24시간 신속하게 처리하는 체제도 갖췄다. 그는 또 처음으로 매년 3차례 예산 현황을 보고했으며, 복잡한 숫자를 쉽게 볼 수 있는 도표와 표 등을 보고에 활용했다.

2004년 블룸버그는 민주당과 공화당 대선후보 지명대회를 유치했다. 전당대회 당일 수천 명의 시위대가 참가해 상당수가 이라크 전쟁 등 다른 문제들에 대해 분노하는 일이 벌어진다. 뉴욕 경찰국은 이 중 1,800명의 시위대를 체포했으나 대부분 사건은 나중에 기각됐다.

2005년 블룸버그는 재선에 도전했다. 저번 선거와 마찬가지로 선거자금을 모으는 대신 사비를 털어 선거에 임한 그는 지난 선거에 썼던 7,400만 달러를 넘어서는 당시 뉴욕시장 역사상 최고인 7,800만 달러를 썼다. 2005년 11월 8일 마침내 선거가 시작됐다. 블룸버그는 이 선거에서 58.4%인 753,090표를 가져가며 39%인 503,219표를 가져간 민주당 후보 페르난도 페러를 제치고 당시 역대 최고 격차로 재선에 성공했다.

재선 이후 그는 초당파 정치인이 되고자 2007년 6월 공화당을 탈당했다. 각종 정책에서 당과 부딪혔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보수 색채가 강한 존 로버츠 대법원장 선임 문제로 날을 세웠기 때문이다.

2008년 10월 2일, 블룸버그는 2007~2008년 금융위기 후 뉴욕에 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는데 바로 뉴욕시의 시장 임기는 2회 연속 4년이었기 때문이다. 법규상 선거에 출마할 수 없던 것을 안 블룸버그는 포기하지 않고 법규 변경을 위해 힘쓴다.

그는 3선을 위해 1억 2,000만 달러라는 천문학적 금액을 써서 여론을 무마시켰다. 이후 시의회에서 29VS22로 법규 개정에 성공해 블룸버그는 3선에 도전할 수 있게 됐다. 11월 3일 선거가 시작됐다. 블룸버그는 전체의 50.7%인 585,466표를 얻어 46.3%인 534,869표를 얻은 민주당의 빌 톰슨을 제치고 뉴욕시장에 당선되었다.

블룸버그(사진=블룸버그 SNS)

이참에 대선까지?

3선에 성공한 블룸버그는 유력한 대선후보로 등극했다. 2016년엔 대선 출마를 적극적으로 검토했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블룸버그가 측근들에게 무소속 출마를 전제로 한 대선 계획을 짤 것을 지시했고, 이에 측근들은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직 관료, 경제를 이해하는 자수성가형 사업가, 초당적 시정 경험”이란 내용으로 블룸버그를 TV 광고에 내보내는 방식까지 고려했었다. 당시 블룸버그는 대선에 출마할 경우 최소 10억 달러를 선거에 사용하겠다는 용의를 주변 지인들에게 밝혔다.

그러나 그해 3월 블룸버그는 불출마 선언을 했다. 자신이 신중하게 검토한 결과 승산이 없는 게 확실하다는 것이 그의 불출마 이유였다. 또 그가 출마하게 되면 공화당, 민주당 후보와 3파전을 이루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공화당의 강경 보수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커진다고 우려한 것도 이유였다.

하지만 블룸버그는 대선을 포기한 것이 아니었다. 2019년 11월 24일 민주당 대선 경선에 참여할 것을 공식 발표했다. 많은 사람이 그의 선거 이력을 이야기하며 돈으로 민주주의를 사려 한다고 비판받았다. 또 블룸버그는 전국 선거 사무소에 직원 2,400명을 고용하고 초임 사무원 월 급여를 버니 샌더스 후보나 엘리자베스 워런 후보 캠프 직원의 2배인 6,000달러를 지급했으며 블룸버그를 홍보하는 글을 올리는 직원을 별도로 유료 고용했는데 이러한 행태 역시 비판받았다.

그런데도 막대한 돈을 쏟은 영향인지 플로리다주에서 1위를 차지하며 민주당 경선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심지어 2020년 2월 18일 NPR/PBS 뉴스아워/메리스트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샌더스의 31% 지지율에 이은 19%의 지지율로 여론조사 2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과거 블룸버그 근무 당시 성희롱 발언과 뉴욕시장 재임 시절 했던 Stop-and-frisk라는 정책이 인종 차별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그의 정치가 철새 같다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전체 대의원 1/3이 걸려있는 슈퍼화요일 경선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을 얻은 블룸버그는 결국 사퇴하고 만다. 선거자금을 5억 달러 넘게 쓴 것에 비하면 처참한 결과였다.

블룸버그(사진=블룸버그SNS)

블룸버그의 정치색

블룸버그는 뉴욕시장 시절 공중 보건에 있어서 엄격했다. 그는 담배 제어를 위해 큰 노력을 했으며, 식당 내 인공 트랜스 지방 사용 철폐와 도시의 식당과 식품 서비스 업소에서 설탕이 많이 함유된 특정 음료를 금지하는 데 힘썼다. 이러한 노력은 공중 보건 옹호자들에게 지지를 받았으나 일부에선 “유모 국가”라며 반발이 심했다.

또 블룸버그는 총기 규제 조치와 낙태, 동성 결혼, 미등록 이민자들의 시민권 진입을 지지했는데 2011년 7월 25일 블룸버그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동성혼을 법제화했으며 법제화 다음날 시청 직원의 동성혼 주례를 보기도 했다. 블룸버그는 환경 문제에도 관심이 많아 2010년부터 2013년까지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협력하는 세계 최대 도시들의 네트워크인 C40 Cities Climate Leadership Group의 회장을 맡기도 했다. 2014년엔 반기문 사무총장에 의해 기후변화 특사로 임명되기도 한 블룸버그는 2018년엔 레이 달리오와 함께 해양 보호에 1억 8,500만 달러를 기부하기로 발표했다.

블룸버그(사진=블룸버그SNS)

2020 대선 실패, 정치 인생의 끝?

성공한 CEO이자 3선의 뉴욕시장으로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블룸버그는 2020년 대선 실패로 큰 위기에 놓였다. 특히 5억 달러가 넘는 금액을 쓰고도 처참하게 패배한 것은 돌이킬 수 없는 후유증이다. 그런데도 블룸버그는 여전히 정정하고, 그의 재산도 여전히 두둑하다. 과연 블룸버그는 이러한 상황에서 재기해 자신의 남은 인생을 불태울 수 있을까? 그의 앞날이 궁금해진다.

마이클 블룸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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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만장자’ 마이클 블룸버그, 대선 도전 초읽기…“떨고 있나, 트럼프”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오른쪽)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미국의 ‘억만장자’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77)이 1년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 앞서 민주당 경선에 뛰어들 채비를 갖춘 것으로 전해졌다.

아직 대선 도전을 공식 선언하진 않았지만 블룸버그 전 시장이 민주당 후보로 선출될 경우 확실한 ‘트럼프 대항마’ 역할로 기대를 모으고 있어, 선거판에는 일대 돌풍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블룸버그는 8일이 마감일인 미 앨라배마주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신청서 제출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앨라배마는 다른 주에 비해 경선 신청 마감이 빠른 지역인데,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는 블룸버그가 일단 신청서를 제출할 가능성이 높다고 NYT는 설명했다.

3선 뉴욕시장 출신으로 ‘중도’ 성향으로 분류되는 블룸버그 시장은 대선주자 ‘단골 후보’로 꼽혀왔지만 지난 3월 불출마를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본인의 불출마 언급에도 불구하고 주변이나 언론에서는 출마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민주당에서 정치를 시작했다 공화당으로 갈아탄 이력이 있는 블룸버그 전 시장은 뉴욕시장 3선 도전 때는 공화당마저 탈당해 무소속으로 선거를 치렀다. 그는 이러한 이력에 더해 미디어 재벌 출신이라는 우파적 정체성, 그러면서도 총기 규제·낙태 옹호 등에 찬성하는 진보적 가치 추구 성향 등이 한데 어우러진 인물이다. 지지층의 큰 변동이 없는 기성정당들로서는 ‘표의 확장성’ 측면에서 구미가 당기는 인물이다.

특히 민주당 내에서 ‘워싱턴 기득권’으로 불리며 상대적으로 중도적 성향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우크라이나 탄핵조사 역풍 등으로 휘청거리고, 대신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의 상승세가 두드러지면서 그를 찾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 워런’의 구도로 내년 대선이 치러질 경우 양측의 대비가 너무나 명확해 중도적 성향의 유권자들의 표심을 가져오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정치공학적 계산’에서였다.

지난해 포브스의 ‘세계 억만장자 리스트’에 따르면 블룸버그 전 시장은 재산은 500억 달러(약 58조원)로, 전 세계에서 11번째 부자에 올랐다.

NYT는 “블룸버그 전 시장이 민주당 경선에 뛰어들면 현재 경쟁하는 후보들의 지형이 상당히 변화할 것”이라면서 “막대한 재력과 중도 성향 등을 기반으로 특히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을 위협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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