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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강 추상미술 칸딘스키와 몬드리안 3

현대 미술사에서는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을 추상회화의 선구자로 서술하고 있다. 4. .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의 주요 문헌. △. 칸딘스키 (Kandinsky, Wassily: 186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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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artnstudy.com

Date Published: 2/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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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 칸딘스키 vs 피에트 몬드리안 by 현주 성 – Prezi

바실리 칸딘스키 vs 피에트 몬드리안. Number of times this content has been viewed 61 Button to like this content Button to …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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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prezi.com

Date Published: 9/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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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리안과 칸딘스키 비교 – documen.site

이후 그는 1938년 런던을 거쳐, 1940년 뉴욕으로 망명하. 였고 칸딘스키와 더불어 20세기 추상미술의 선구자가 되. 었다. Page 5. 몬드리안의 대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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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documen.site

Date Published: 7/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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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딘스키와 몬드리안의 회화에서 감정과 이성 – DBpia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은 같은 시기의 추상화가로서 다 같이 인상주의 화풍과 물질을 경시하는 정신주의적인 신지학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칸딘스키가 느낌과 감정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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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dbpia.co.kr

Date Published: 9/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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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 칸딘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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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uthor: dinosaur gallery공룡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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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5.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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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읽어주는 여자, 황정빈]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의 추상 작업의 유사점과 차이

황-적-청(Yellow-Red-Blue) –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출처-WikiArt

Place de la Concorde –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출처-WikiArt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는 러시아에서 태어난 프랑스 화가, 판화 제작자이자 예술 이론가이다. 피카소, 마티스와 비교되며 20세기의 중요한 예술가로 현대 추상회화의 선구자라 평가된다.표현주의적 경향이 짙어지면서 그의 추상 회화는 ‘드라마틱 시대’(1920~1924), 건축적 구성을 가진 ‘컴포지션 시대’(1920~1924), ‘원의 시대’(1925~1928), ‘구체 예술’의 시대로 나뉘게 된다.라는 그의 말처럼 구체적 대상을 표현하는 것에 연연하는 것이 아닌, 선명하고 밝은 색채로 음악적이고 역동적인 추상표현을 만들어냈다. 그의 작품들은 색채와 선, 면 등 순수한 조형요소만으로 작가의 감정을 표현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동을 준다.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은 네덜란드의 화가로 자연주의적 수법을 사용하여 풍경, 정물 등을 그렸으나, 마티스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후에 추상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는 신조형주의(Neo Plasticism)를 창도하며 20세기 조형이론에 깊은 영향을 준 추상회화의 대표적 인물이다.몬드리안은 수직선과 수평선의 구조 원리를 두어 원색의 정방형, 장방형의 배치로 질서와 균현을 이룬다. 그의 작품에서 그의 관심사였던 도시의 건축물이 연상된다.칸딘스키는 관념을 자유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확산시켰기 때문에 ‘따뜻한 추상’이라고 불리고, 몬드리안은 이야기를 줄여 함축하는 ‘환원’의 과정을 거쳐 ‘차가운 추상’이라고 불린다.둘 다 자신만의 추상적인 시각 언어로 사상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유사하지만,칸딘스키는 ‘확산’이라는 측면에 주목했고, 몬드리안은 ‘환원’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황정빈 파르트 문화예술전문지 에디터][ⓒ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칸딘스키,몬드리안 부터 프란츠 클라인까지_현대미술에서 그림보는 시각을 바꾼 추상화가들

오늘은 그림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꾼 7명의 추상 예술가들을 소개합니다. 바실리 칸딘스키, 피에트 몬드리안,잭슨폴록,클리포드 스틸 ,프란츠 클라인, 마크 로스코, 힐마 아프 클린트 입니다.

오늘날 추상화는 현대미술운동에 포함된 핵심 양식으간주되고 있고 20세기 화가들에게 가장 흥미로운 분야였으며 끊임없이 개척되고 있고 혁신적인 많은 화가들에의해 추상적인 장르는 모더니즘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현대미술의 촉매제로서 추상화는 전통예술의 ‘규칙’을 거부하였고. 추상 화가들은 비유적이고 표현적인 묘사에 집중하기보다는 색채, 구성, 감정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예술가들은 완성된 작품에만 집중하는 대신에 그 과정에서 중요성을 부여했는데. 화가의 설명이 그림값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화가의 개념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주요 인물들을 탐구하며, 그들의 독특한 스타일, 다른 접근 방식, 추상 예술에 대한 지속적인 기여에 특히 관심을 가져보겠습니다. 전통 틀을 깬다는것, 자신만의 세계를 추구하고 표현한다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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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오늘날, 러시아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가 추상적인 장르의 지배적인 선구자로 유명합니다. 칸딘스키의 실천은 “내면의 필요성”에 의해 좌우되었는데, 이것은 예술가들이 “인정”하고 ‘인정되지 않은’ 형태를 요구하면서, 그 시대의 가르침과 욕망에 귀를 기울이지 않도록” 요구했던 개념입니다. 이 전위적이고 혁신적인 접근법은 기하학적 형태, 부유선, 그리고 활기찬 색상에 대한 조형적 형태를 예고하는 구성으로 절정에 달했습니다.

추상화 대표 추상미술화 추상화 작가: 바실리 칸딘스키

[미술 산책] 추상미술의 선구자, 칸딘스키와 몬드리안

*바실리 칸딘스키 ‘노랑, 빨강, 파랑’ [그림 출처=wikipedia]

무엇을 그렸는지 이해하기 힘든 그림이 있다. 도형과 직선, 곡선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이 그림은 어떻게 보면 어린아이가 마구 휘갈긴 낙서 같기도 하다. 한눈에 이해되지 않는 ‘추상미술’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와 ‘피트 몬드리안’은 세상을 조형적인 요소들로 나타내려는 추상미술의 선구자였다. 교과서에도 이들의 작품이 빈번히 등장할 만큼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두 사람의 작품을 감상하며 추상미술의 세계를 들여다 보자.

-이 기사는 <나침반> 7월호 ‘인문 다이제스트’에 8p분량으로 실린 내용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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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조형 요소로 세상을 표현하는, 추상미술

추상미술(Abstract Art)이란 나무나 꽃, 자동차, 건물, 인물과 같이 구체적인 형태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점이나 선, 면, 색처럼 순수한 조형 요소로 표현하는 미술을 말한다. 20세기, 추상미술은 다양한 실험으로 수많은 미술 사조들이 폭발하듯 등장한 바로 그때 탄생했다.

촉망받던 법학자가 붓을 들게 된 이유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 [사진 출처=rbth.com]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는 1866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러시아 화가다. 그는 원래 대학에서 법과 경제를 배웠지만 1895년, 클로드 모네의 ‘건초더미’라는 작품을 본 후 깊은 영감을 받아 본격적으로 미술을 시작했다.

칸딘스키는 처음에 모네의 그림을 보고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모네는 건초더미와 풍경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관적인 인상을 화폭에 옮겨 그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술 사조를 인상주의라고 한다.

*클로드 모네 ‘건초더미’ 시리즈 [그림 출처=wikipedia]

제목을 보고 나서야 그림의 정체를 알아챈 칸딘스키는 놀라움과 함께 이를 알아보지 못한 자신에 대해 화가 났다. 그리고 섬세하게 빛을 표현한 붓터치와 색감은 그의 뇌리에 깊게 박혔다. 이 경험을 계기로 비로소 그는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무제’ [그림 출처=wikipedia]

거꾸로 놓인 그림에서 탄생한 추상미술

*’즉흥’ [그림 출처=wikipedia]

칸딘스키를 ‘추상미술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가 바로 새로운 미술 사조인 추상주의를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야외에서 스케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칸딘스키는 처음 보는 아름다운 그림 한 점을 발견한다.

밝게 빛나는 색채와 반점으로만 이루어져 무엇을 그렸는지 전혀 알아볼 수 없는 특이한 작품이었다. 한참을 바라보던 칸딘스키는 그 그림이 자신이 그린 그림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것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바로 그 순간, 칸딘스키는 사물을 정교하게 묘사하지 않아도 선이나 색채만으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이 바로 추상미술의 시작이

었던 셈이다. 이때부터 그의 손 끝에서 본격적인 추상미술 작품이 탄생하게 된다. 그는 음악에도 매료돼 음의 높낮이나 악기마다 다른 음색을 색채로 표현하

는 방법을 연구하기도 했다.

차가운 추상의 선구자

*피트 몬드리안(1872년~1944년)[사진 출처=britannica.com]

칸딘스키를 이야기할 때 늘 쌍벽을 이루며 함께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1872년 네덜란드에서 탄생한 화가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이다.

몬드리안은 칸딘스키와 함께 20세기 추상미술을 이끈 인물로, 한편으로는 칸딘스키와 완전히 다른 방식의 추상 미술을 보여주었다.

보통 칸딘스키의 작품을 ‘뜨거운 추상’, 몬드리안의 작품을 ‘차가운 추상’이라 부른다.

미술을 막 시작한 초기, 몬드리안은 주로 자연주의적인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피카소와 브라크 같은 입체파 미술가들의 그림을 본 후, 그는 새로운 자극을 받아 사물을 이리저리 뜯어보는 조형적인 탐구에 몰입하게 된다.

곧게 뻗은 직선의 절제된 아름다움

*몬드리안 ‘빨강, 파랑, 그리고 노랑의 구성’ [그림 출처=wikipedia]

몬드리안은 세상의 본질을 수직선과 수평선으로 보았다. 푸르게 무성한 나뭇잎보다는 하늘로 솟구치듯 높이 뻗친 나무의 수직적인 힘에 더 큰 의미를 두고, 바다의 물결과 푸른빛보다 마치 하늘과 바다에 자를 대고 가른 듯한 수평선에 더 큰 매력을 느꼈다.

그는 수직선, 수평선 외의 대각선, 곡선, 원 등의 요소는 자연의 외적인 모습만 따라 그리는 것이라고 여겼다. 점차 검은색의 수평선과 삼원색의 수직선을 통해 최대한 절제된 아름다움을 표현한 그는 이렇게 미술계에 새로운 충격을 안겨주게 된다.

*브로드웨이 우기부기

[그림 출처=moma.org]

몬드리안도 칸딘스키처럼 음악과 친했을까. 그렇다. 재즈 음악을 매우 좋아했던 몬드리안은 기계음을 사용하는 미래주의 음악에도 크게 매료돼 있었다.

기계음은 인공적이라 누구나 똑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작품 중 ‘브로드웨이 우기부기’가 음악과 미술의 만남을 표현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에듀진 기사 URL: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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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침반> 7월호 해당 페이지 안내

‘뜨거운’ 칸딘스키 vs ‘차가운’ 몬드리안…추상화도 극과 극

바우하우스 이야기 〈47〉

1990년 10월 3일, 독일이 통일되었다. 정치적·경제적 통합에 모든 이들의 이목이 쏠려있을 때, 뜬금없이 ‘심리적 장벽’의 문제를 제기한 이가 있었다. 동독의 심리학자 한스 요아힘 마츠(77)다. 억압적 사회구조는 개개인의 심리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흔적을 남기게 되어 있다. 수십 년간 사회주의정권하에 살았던 동독 주민들에게는 ‘감정 정체’라는 집단적 정서장애가 존재한다고 마츠는 주장했다.

예술은 내적 필연성서 출발

칸딘스키의 추상화 깊은 울림 몬드리안은 ‘직선만이 객관적’

초록색 놓고 평온·혐오 엇갈려

‘감정 정체’의 가장 큰 문제는 소통 불가능에 있다. 소통은 정서의 자연스러운 표현과 이를 서로 흉내 내며 공유하는 과정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동독인들의 ‘감정 정체’라는 집단적 정서장애는 통일 후에도 동·서독 간에 ‘심리적 장벽’이라는 또 다른 견고한 장벽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마츠는 예언했다(한반도가 통일된다면 ‘심리적 장벽’의 문제는 독일의 경우보다 훨씬 더 심각한 양상을 보일 것이다. 단언컨대, 한반도의 ‘심리적 통합’은 분단의 정서적 상처를 경험한 이들이 죄다 사라진 다음에야 가능하다).

촘촘한 감시체제로 주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한 사회주의 동독에서 주민들은 내면의 정서적 경험을 외면하며 억압하는 방식으로 순응했다는 것이다. 정서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외면한 것이다. 동독 주민의 ‘감정 정체’는 동독의 정신 의료체제, 가족제도를 통해 은밀하게 강화되었다고 마츠는 고발했다. 마츠의 예언대로 동·서독간의 ‘심리적 장벽’은 통일 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사실 ‘감정 정체’는 그리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비슷한 개념이 이미 70년대 이후 서구사회에서도 논의되고 있었다. 미국의 정신의학자 피터 시프너스(1920~2008)는 불안과 같은 심리적 증상이 신체적 반응으로 나타나는 ‘정신신체장애’를 연구하던 중, 이 증상을 지닌 환자들에게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72년 그는 정서를 인지하는 능력, 정서적 경험과 신체감각을 구별하는 능력, 그리고 정서적 경험을 상징적으로 표상하는 능력에 장애가 있는 상태를 일컬어 ‘감정표현불능증’이라 이름 붙였다.

‘감정표현불능증’은 대인관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자신의 정서적 경험을 인지하지 못하면 타인의 정서적 경험 또한 유추할 수 없다. 공감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의사소통에서 공감 능력의 부재는 치명적이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상대방의 정서적 상태를 공유할 수 없다면 진정한 의미의 의사소통은 일어날 수 없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타인의 정서표현을 흉내 내는 ‘거울뉴런’을 가지고 태어나는 이유는 ‘정서 공유’가 의사소통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정서 공유에 기초한 상호주관적 의사소통이 어려워진 것은 전통적 공동체가 해체되고 대량생산, 대량소비에 기초한 물질주의가 대세가 된 산업사회의 보편적 현상이기도 하다(감각적 정서 공유가 어려워진 21세기 네트워크사회에서 이 소통 불가능 현상은 극한 형태로 치닫고 있다. 가장 발달된 네트워크 사회인 한국에서의 양극화된 정치적 갈등 양상이나 트럼프의 트위터로 야기된 저 황당한 미국의 상황을 보라. 감각적 정서 공유의 부재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가장 큰 문제가 될 것이다).

동독인들, 소통 불능의 ‘감정 정체’ 겪어

산업사회로의 급속한 이행이 진행되던 20세기 초반, 의사소통행위의 가장 극적인 형태인 예술에서 감정이 가지는 기능과 역할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앞서 주장한 이가 있었다. "예술은 내면의 깊은 정서적 경험의 표현”이라고 주장한 바실리 칸딘스키다. 1911년 출판된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와 ‘청기사연감’에 수록된 글에서 칸딘스키는 “회화는 외부대상의 모방이 아닌 ‘내적 필연성’에서 나와야 한다”고 반복해 주장한다.

‘내적 필연성’이란 예술가의 감정을 뜻한다. 예술가 내면의 감정에서 비롯된 예술작품은 관람자에게도 유사한 감정을 일으킨다. 예술 작품을 매개로 예술가와 관람자가 동일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면, 그 예술 작품은 성공한 것이다. 이때, 그 작품이 사실주의적이든 극도의 추상적 작품이든, 그 형식은 어떠해도 좋다는 것이 칸딘스키의 주장이다.

‘내적 필연성’의 예술을 주장하는 칸딘스키의 추상주의는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거울뉴런’을 통한 정서 공유의 의사소통 이론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칸딘스키가 위대한 거다. 추상회화를 주장한 이는 칸딘스키 말고도 많다. 그러나 감정과 추상의 관계를 이렇게 깊게 파고든 이는 없다.

예술 작품은 예술가의 정서적 경험, 즉 내적 필연성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칸딘스키의 주장은 앞서 설명한 세기말의 ‘빈 모더니즘’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비합리적 존재’인 인간의 발견, 그리고 ‘자기분석’이라는 방법론을 통한 ‘자아의 재편집’이라는 빈 모더니즘의 성과는 알로이스 리글(1858~1905)의 ‘예술 욕구’개념과 빌헬름 보링거(1881~1965)의 책 『추상과 감정이입』을 거쳐 칸딘스키의 ‘내적 필연성’으로 이어졌다.

예술양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양식이란 그 시대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욕구, 즉 자신의 욕구에 맞게 세계를 해석하려는 ‘예술 욕구’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리글의 주장이다. 따라서 아무리 사소하고, 빈약해 보이는 예술 작품도 그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주체가 자신이 처한 상황과 관계 맺는 고유한 방식이 예술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리글의 ‘예술 욕구’ 개념으로부터 예술의 주관적, 심리적 해석이 본격 시작된다. 보링거는 ‘예술 욕구’를 다시 ‘감정이입 충동’과 ‘추상 충동’으로 구분했고, 칸딘스키는 보링거의 ‘추상 충동’을 ‘내적 필연성’이라는 예술가 개인의 정서적 경험으로 구체화했다. 기존 회화기법을 기초부터 흔들어버리는 ‘표현주의’라는 독일 특유의 강력한 심리주의적 흐름도 칸딘스키의 추상회화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이때부터 비로소 예술가의 주체적 내면세계가 예술적 창조의 출발점으로 여겨지게 된다. 예술가들을 억누르고 있는 형식으로부터의 자유는 덤으로 얻어졌다(지금이야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상을 얼마나 똑같이 그릴 수 있는가의 ‘기교’가 예술성의 척도였던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주장이다). 이른바 ‘창조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칸딘스키와 같은 시기에 등장한 몬드리안의 추상화다. 같은 추상을 추구하지만, 이 둘은 서로 극과 극이다. 흔히들 몬드리안의 시도를 ‘차가운 추상’, 칸딘스키의 경우를 ‘뜨거운 추상’으로 표현한다. 애매하다. 칸딘스키는 ‘정서적, 감정적 추상’, 몬드리안은 ‘인지적, 이성적 추상’이라고 부르는 것이 보다 분명하다.

몬드리안은 칸딘스키와 마찬가지로 ‘대상의 재현’이라는 전통적 회화관을 거부한다. 그는 회화의 구성요소를 최대한 단순화했다. 수직과 수평의 직선, 그리고 그 직선의 관계인 직각만으로 형태를 추구했다. 선은 항상 직각으로 만나야 한다. 그래야 질서 잡힌, 조화로운 조형이 되기 때문이다. 곡선은 물론, 방향이 애매한 사선도 거부한다.

괴테 색채론, 칸딘스키보다 100년 앞서

직선만이 모든 사물의 핵심이고, 객관적이며 보편적이다. 몬드리안은 직선으로 이뤄진 기하학적 도형의 편집을 통해 개별성을 초월한 보편성의 추상회화를 추구했다. 당연히 각 개인의 독특한 정서적 경험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이성적 질서의 구현이 몬드리안이 추구한 추상의 목표다. 그는 색채의 사용 또한 빨강·파랑·노랑의 삼원색과 흰색·회색·검은색의 기본적인 무채색으로 제한했다. 자연의 초록색은 거의 혐오했다. 무질서하고 변하기 때문이다. 몬드리안의 추상은 변치 않는,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 질서의 구현, 즉 이성의 최고치를 구현하려는 시도였다.

칸딘스키의 추상은 정반대 편에 있다. 내적 필연성의 표현에 적합하다면 어떤 형태라도 가능하다. 주로 곡선을 많이 사용했지만, 그렇다고 기하학적 도형을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형식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칸딘스키의 책에는 형태보다는 색채에 관한 서술이 훨씬 더 많다. 색에 대한 칸딘스키의 지극히 주관적이며 감정적인 설명을 한번 읽어보자.

“밝은 푸른색은 플루트와, 어두운 푸른색은 첼로와 유사하며, 짙은 색조는 콘트라베이스의 경이로운 음향과 유사하다. 그리고 깊고 장중한 형식을 갖춘 푸른색의 음향은 파이프오르간의 저음과 비교할 수 있다. 노랑은 예민해지기 쉬우나, 강렬하게 심화해 침잠할 수는 없다. 반면에 파랑은 예민해지기 어렵고 강렬하게 상승할 수도 없다. 정반대로 다른 이 두색을 혼합해 이상적인 균형을 얻은 것이 초록색이다…완전한 초록색은 존재하는 모든 색 중에 가장 평온한 색이다.” (칸딘스키/권영필역,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90~91쪽, 열화당)

몬드리안이 그렇게 괴로워했던 초록색이 칸딘스키에게는 참으로 평온한 색이었다. 위의 인용에서 볼 수 있듯 칸딘스키의 추상, 특히 그의 색채론은 참으로 심리학적이다. 전쟁 동안 러시아에 머물던 칸딘스키가 독일로 돌아와 22년 바이마르 바우하우스의 선생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바이마르는 괴테의 도시였고, 괴테는 그 누구보다도 탁월한 색채이론가였기 때문이다. 뉴턴의 광학이론에 기초한 객관적 색채론과 대립되는 괴테의 색채론은 칸딘스키 그것보다 백여 년 앞선 탁월한 색채심리학이었다.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뜨거운 추상 칸딘스키 Vs 차가운 추상 몬드리안

뜨거운 추상 칸딘스키 Wassily Kandinsky (1866.12.16~1944.12.13)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의 화가. 모스크바 출생, 1939 년 프랑스에 귀화하였다. 현대 추상 미술을 창시한 한 사람이다. 현대 미술의 이론적 토대를 세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20 세기 초 예술 전반에 걸쳐 일어났던 추상 운동을 이끈 이론가이자 예술가.

처음에는 법률과 경제학을 배워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학자의 길을 걸어 나갈 참이었다. 대학에서 재임을 제의받은 상태였던 칸딘스키는 1895 년 인상파 전을 보게 되고 운명은 바뀐다. 서른 살의 칸딘스키는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을 뒤로 한채 예술에 사로 잡히게 된 것이다.

모네의 작품에 감명을 받고 이듬 해인 1896 년 뮌헨으로 옮겨 화가로서의 새 삶을 시작한다. 미술 학교부터 들어가 기초부터 공부하여 훗날 미술 교수가 된다. 그리고 그는 현대 추상 회화의 선구자로 미술사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콤포지션 no.7

1908 년 칸딘스키는 작품이 안 풀려 붓을 내던지고 산책을 나갔다. 맑은 정신으로 다시 작업실에 들어서는데 기막힌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형태는 잘 모르겠지만 순수한 색채만으로 구성된 황홀한 수채화였다. 정신을 차려 보니 실수로 옆으로 돌려 놓은 자신의 작품이 아닌가. 추상화의 세계는 그렇게 탄생했다. 콤포지션 no. 7 은 그의 대표작이자 그의 첫번째 추상화이다.

콤포지션은 원래 그림을 그릴 때 화면에 담을 것의 배치를 잡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실제의 회화 제작에서는 한정된 2 차원에 공간 조형하는 것으로 눈으로 보는 대상의 관계에서 통일과 변화, 생략과 강조라고 하는 시각적으로 느끼는 것에 의하며 일어나는 종합적인 감동을 조형 사고(思考)에 의하여 회화적으로 질서를 잡는 것을 뜻한다.

오늘날의 뜻은 구성으로까지 확대하여 생각한다. 2 차원에서 3 차원적인 양(量)의 문제로서 역학적인 조립 ·균형 ·대비 ·조화 등을 이용하여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흰색에 대하여

칸딘스키는 몬드리안과 같은 추상 표현주의에 속하는 화가이지만 그림 안의 표현에 있어 몬드리안의 정형화도 어느 정도 있는 듯 하면서도 자유로움이 더해져 있다. 추상 미술이라 함은 정해 놓은 대상이 없고 어떠한 생각이나 내용에 관한 주관적인 표현이다. 그의 그림은 자유로운 선과 형채, 색으로 감정과 직관에 근거하여 표현되어 있다.

원속의 원

뜨거운 추상은 우발적인 특성이 강한 추상화이다. 작가 자신의 내면의 감흥이나 감동을 비구상적인 형태와 색채로 표현하여 주정적이고 뜨거운 느낌을 표현한다. 비정형의 추상이라고도 하며, 주관성이 강하고, (작가의) 감정과 동작에 의한 강하고 열정적인 표현이 특징.

두 개의 환경

칸딘스키 하면 생각나는 것은 점, 선, 면이다. 이는 추상의 기본이 되는 구성요소이다. 그는 현대 추상 회화의 선구자로서 대상의 구체적인 재현에서 이탈한 그림을 보여 준다. 선명한 색채로써 다이내믹한 추상 표현으로 시작하여 점차 기하학적 형태에 의한 구성적 양식으로 구형된다.

검정 그물

칸딘스키의 경우에는 말 그대로 추상 즉 대상이 없는 그림을 그렸다. 추상회화는 자연의 대상을 떠나 순수한 조형 요소인 선, 면, 색채 등만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비대상 예술이다. 표현주의의 강한 표현, 야수주의의 색채 해방, 입체주의에서 나타난 사물의 파편화, 절대주의의 순수 지적인 화면 등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조형 세계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차거운 추상 몬드리안 Piet Mondrian (1872~1944년, 네덜란드) 네덜란드의 화가. 아머르즈포르트 출생. 칸딘스키와 더불어 추상화의 선구자로 1894 년 암스테르담 미술 학교를 졸업했다. 자연주의 화풍에서 시작하여 추상으로 바뀌었다. 태어날 때부터 엄격한 종교적 분위기에 젖어 있었으며, 이런 분위기에서의 성장이 몬드리안 예술을 결정지은 인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미술 교사 출신의 화가로 고독과 청빈에 만족하며, 종교적인 엄격한 경지를 지녔었다. 초기에는 큐비즘으로 전향하여 대상의 추상화를 지향함으로 비구상적 경향의 1920 년 신(新)조형주의를 창시하여 순수 추상을 지향하는 유력한 작가로 발돋움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기하학적 추상의 원류를 이루어 냈다.

Composition with Red, Yellow and Blue

1921, Oil on canvas, 39 x 35 cm

몬드리안은 가장 단순한 요소인 직선과 원색으로 그림을 만들어내고자 했고, 우주의 객관적인 법칙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명료하고 절도있는 회화를 열망하였다. 수평, 수직, 3 원색, 3 비색이란 기본적 조형 요소를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더욱 복잡하고 더욱 경쾌한 리듬과 구조의 풍부함을 드러낸 것이 었다. 엄격하고 무거운 구성과 절제의 세계에서 벗어나 어린 아이 같은 천진한 감성과 생애 즐거움을 느낄수 있다.

Lozenge Composition with Red, Black,Blue,and Yellow

1925, Oil on canvas, 77 x 77 cm, Private collection

몬드리안은 정형화되고 계획되어진 공간에의 분할을 통해서 작품을 하였기 때문에 무척 현대적으로 느껴진다. 회화라기 보다는 오히려 화면상의 공간 디자인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단순하고 깔끔하다. 그리하여 그의 그림은 차가운 추상이라 일컬어진다.

콤포지션 no. 2

눈에 익은 디자인이 아닌가? 그의 회화는 의상과 조형에 많이 응용되고 있다. 그림이란 비례와 균형 이외의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인간의 감정의 표현보다는 기하학적 질서를 강조하고 있다.

몬드리안의 비례의 원리에 바탕을 두고 수직, 수평선과 적·황·청·흑·백·회색만으로 화면을 구성하고 있는데 콤포지션 no. 2는 신조형주의 이론을 통해 완전한 추상 회화에 이른 1920 년대 몬드리안의 대표작으로 이제 그의 화면에는 보편적인 조형 요소인 수평과 수직선만이 남았으며, 빨강, 노랑, 파랑의 삼 원색만 남았다.

모든 것을 대립되는 두 요소로 설명하는 몬드리안은 이 대립의 균형을 이루어 나가는 조화를 회화의 기본 법칙으로 삼았다. 남성적인 원리가 수직선이기 때문에 남성은 이러한 요소를 숲의 상승하는 나무들에서 인식할 것이다. 그는 그의 보충을 바다의 수평선에서 본다.

브로드웨이 부기 우기(Broadway Boogie Woogie)

1942~1943, 유화, 127x 127cm 뉴욕 근대 미술관

몬드리안 말기의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몬드리안은 1938 년에 파리를 떠나 런던에 잠시 체류하다 1940 년 뉴욕에 도착했다. 이미 예순 여덟 살의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뉴욕은 그에게 충분히 매력적인 도시였다. 반듯하 게 직각으로 구획된 거리와 마천루가 이루는 도시 경관은 그가 꿈꾸던 신조형주의 도시였다. 이곳에서 그는 새로이 샘솟는 삶의 기쁨과 자유로운 감각을 느꼈다.

음악과 무용에서 영감을 얻어 제목을 붙인 <브로드웨이 부기 우기>는 뉴욕 생활의 즐거움으로 놀랍도록 생동적이고 율동적으로 변모한 그의 그림 세계를 보여 준다. 종전의 검은 색 선 대신에 주조를 이루는 노란 색 선이 빨강, 파랑, 회색과 엇갈려 작은 단위로 나뉘어졌다. 다양한 수직과 수평선이 어울리며 이 그림에 리듬감을 주고 있다.

[PDF] 몬드리안과 칸딘스키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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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딘스키와 몬드리안의 회화에서 감정과 이성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은 같은 시기의 추상화가로서 다 같이 인상주의 화풍과 물질을 경시하는 정신주의적인 신지학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칸딘스키가 느낌과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하고 색과 형태를 자유롭게 사용한 반면에 몬드리안은 직선과 수평선 그리고 삼원색과 흑백으로만 이루어진 엄격하고 냉정한 그림을 그렸다. 현대는 예술가가 어떤 예술개념이든 자유롭게 전개할 자유를 가지는 시대이고 따라서 몬드리안의 회화가 부당하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 본 논문은 몬드리안의 회화를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회화가 토대로 하고 있는 철학이 현대에 더 이상 적용되기 어려운 낡은 이성중심주의적인 편견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파스칼에 이어 막스 셸러는 오히려 감정이 인식과 선행의 근원임을 치밀하게 입증하였다. 현대의 현상학과 실존주의에서 비합리주의가 확산되고 있다. 그림이 담고 있는 철학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그림이 잘못되었다거나 미적 가치가 떨어진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림에 대한 평가는 무엇보다도 그림의 전면에 드러난 물질적 감각적 형식적 측면에 대한 즉 그림의 미적 측면에 대한 평가이어야 한다. 그림은 철학으로서가 아니라 예술로서 평가되어야한다는 것이다. 그림에 담긴 철학에 대한 평가는 철학자의 몫이며 본 논문의 저자는 철학자로서 몬드리안의 회화가 잘못된 철학에서 출발했음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감성의 배제는 조화로운 인간성에 이로울 수 없으며 미적 몰입과 해탈을 방해하므로 유토피아를 건설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 #미술 #칸딘스키 #몬드리안 #예술철학 #감정 #감성 #이성 #모방론 #표현론 #형식주의 #추상화 #인상주의 #입체파 #신지학 #플라톤 #쇼펜하우어 #합리주의 #셸러 #셸링 #쉴러 #abstract painting #Kandinsky #Mondrian #sense #reason #impressionism #kubism #theosophy #Platon #Schelling #Schiller #Schopenhauer #Max Scheler #emotionalism #rationalism #imitativism #estheticism #form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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