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와 시대 | 일본 새 연호 ‘레이와’ 발표에 종일 떠들썩…어떤 의미길래 / Sbs 124 개의 자세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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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5월 1일에 새로운 일왕이 즉위합니다. 현재의 아키히토 일왕은 올해 86세로 나이가 많아서 큰아들인 나루히토에게 왕위를 물려주기로 한 건데요, 일본에서는 왕이 바뀌면 해를 부르는 연호도 바뀝니다. 새 연호는 영화 일본말로 ‘레이와’라고 읽습니다. 그러니까 올해가 레이와 1년이 되는 셈인데 희망이 꽃피는 사회를 만들자는 뜻이라고 일본 정부는 밝혔습니다. 오늘(1일) 새 연호가 발표되면서 일본 전역이 떠들썩합니다.
도쿄 성회용 특파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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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와 시대 – 나무위키

현행 일본의 연호이자 시대 구분. 나루히토가 일본의 제126대 천황으로 즉위한 2019년 5월 1일 자정부터 사용되었다. 일본이 처음 연호를 사용한 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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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6/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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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와 시대/반응 – 나무위키:대문

서기나 단기 등도 큰 의미로는 연호지만, 이는 면밀히 따지면 과거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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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5/1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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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와 시대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레이와(일본어: 令和 れいわ)는 서기 2019년을 원년으로 하는 일본의 연호이다. 나루히토가 5월 1일에 일본의 제126대 천황으로 즉위하면서 레이와 원년으로 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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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5/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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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레이와 시대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분류:레이와 시대 · 냉전 후 국가편집 · 하위 분류 · “레이와 시대” 분류에 속하는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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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3/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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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세이(平成)의 끝, 레이와(令和)의 시작 – DiverseAsia

아키히토 천황의 생전퇴위를 한 달 앞둔 2019년 4월 1일, 일본의 새 연호 레이와(令和)가 발표되었다. 이 연호의 공식적인 의미는 ‘아름다운 조화(beautiful harmony)’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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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diverseasia.snu.ac.kr

Date Published: 9/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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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와 시대

레이와 시대. 2019. 5. 1. – … 레이와는 헤이세이에 이어서 쓰이고 있는 일본의 연호다. 헤이세이는 일본의 제125대 천황인 아키히토의 퇴위로 인해 2019년 4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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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5/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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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와 시대의 반란 | 다음영화

인기배우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야마모토 다로가 이끄는 반체제 진보 정당 레이와 신센구미는 2019년 여름 참의원 선거에 참여한다.(2020년 제12회 DMZ국제다큐멘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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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ovie.daum.net

Date Published: 11/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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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일본 ‘레이와’ 시대 개막, 동북아 평화·협력 계기로 – 한겨레

일본의 나루히토 왕세자가 1일 새 일왕에 즉위한다. 1989년부터 30년간 지속했던 ‘헤이세이’ 시대가 저물고 이제 ‘레이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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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ani.co.kr

Date Published: 11/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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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와’ 시대, 오해와 진실 – 프레시안

일본에서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퇴위와 나루히토(徳仁) 일왕의 즉위로 레이와(令和) 시대가 개막했다. 일본에서는 퇴위식과 즉위식을 포함해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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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pressian.com

Date Published: 8/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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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새 연호 '레이와' 발표에 종일 떠들썩…어떤 의미길래 / SBS
일본 새 연호 ‘레이와’ 발표에 종일 떠들썩…어떤 의미길래 / SBS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레이 와 시대

  • Author: SBS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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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4. 1.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ZUYrmy-gwU8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레이와가 일본의 새 연호로 결정되었음을 발표하는 스가 요시히데 일본 내각관방장관(2019년 4월 1일)

레이와(일본어: 令和 れいわ[*] )는 서기 2019년을 원년으로 하는 일본의 연호이다. 나루히토가 5월 1일에 일본의 제126대 천황으로 즉위하면서 레이와 원년으로 개원했다. 이 개원은 일본 헌정 사상 최초로 천황의 생전 퇴위로 개원한 예이다.[1][2] 헤이세이에 이어서 쓰이고 있는 일본의 연호로, 헤이세이는 일본의 제125대 천황인 아키히토의 퇴위로 2019년 4월 30일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어원 [ 편집 ]

레이와의 어원이 등장하는 《만엽집》의 구절

레이와는 일본 역사상 최초로 중국의 고전이 아닌 일본의 고전 연호로, 일본 최초의 운문집인 《만엽집》에서 인용하였다. 그러나 만엽집의 해당 구절인 “初春令月 氣淑風和”(초춘령월 기숙풍화)는 《문선》에 수록된 중국 후한의 시인 장형의 부인 〈귀전부〉 중 “仲春令月 時和氣淸”[3]을 참고한 구절로, 결국은 중국의 고전을 한 다리 걸쳐 인용한 모양이 되었다는 지적도 있다.[4]

원문: 于時、初春令月、氣淑風和、梅披鏡前之粉、蘭薫珮後之香。

현대 일본어: 時は令月、空気は美しく、風は和やかで、梅は鏡の前の美人が白粉で装うように花咲き、蘭は身を飾る衣に纏う香のように薫らせる。

한국어 번역: 날씨가 맑고 바람이 부드럽게 부는 새봄에 매화는 거울 앞의 미인이 백분으로 치장하듯이 꽃을 피우고 난초는 몸을 치장하는 옷에서 나는 향기처럼 달콤한 향기를 낸다. — 레이와의 어원이 등장하는 《만엽집》의 구절

개원 [ 편집 ]

아키히토가 생전 퇴위의 뜻을 처음 밝힌 것은 2010년 7월 22일의 일이다.[5] 그로부터 6년 뒤, 2016년 8월 8일 일본 궁내청은 사전에 녹화해둔 아키히토 천황의 영상메시지를 발표하였다. 당시 82세였던 아키히토는 영상을 통해 “고령이 되면서 여지껏 해오던 공무를 완수하지 못할 것을 우려한다”며, “공무에 차질이 생기는 일 없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길 바란다”는 취지의 말로 나루히토 친왕에게 양위하겠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다.[6][7]

아키히토의 퇴위 표명으로 일본 정부는 기존 연호인 헤이세이를 새것으로 바꾸는 작업, 즉 개원(改元)에 착수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리 일본에서 사무자동화와 인터넷 전산화가 이뤄져 새 연호에 대한 전산화 준비 기간을 확보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일본 헌정사상 처음으로 새 연호가 공식 개원일인 2019년 5월 1일으로부터 한 달 전인 4월 1일에 발표하게 되었다. 새 연호 결정 과정은 기밀로 취급되어 관련 공문서도 《일본 공문서관리법》에 의한 ‘비공개 기간 30년’이 설정된다. 다만 최근의 네 연호였던 메이지, 다이쇼, 쇼와, 헤이세이의 알파벳 앞글자인 M, T, S, H와 같은 발음으로 시작되는 연호는 당초부터 제외한 것으로 전해졌다.[8]

연호 발표 [ 편집 ]

2019년 4월 1일, 일본 총리 관저에서 ‘연호에 관한 간담회’ (元号に関する懇談会)가 9시 30분부터 개최되고 일본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 각자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로부터 약 40분 뒤 10시 8분에 간담회가 종료되었다.[9] 간담회에 참석한 사람은 다음과 같다.[10]

이후 보도에 의하면 간담회에서 제시된 연호 후보군에는 ‘레이와’ 외에도 ‘에이코’ (英弘), ‘규카’ (久化), ‘고시’ (広至), ‘반나’ (万和), ‘반포’ (万保) 등 총 6개 안이 있었다고 전해졌다.[11] 연호를 출전한 원문의 고전은 일본 고전과 중국 고전이 각각 세 개씩이었다.[12] 한편으로 연호로 ‘레이와’를 제시한 사람은 일본문학가 나카니시 스스무로 전해졌으나, 나카니시 본인은 확답을 피했다.[13]

10시 20분부터는 일본 중의원 의장의 공관에서 일본 중의원 대표로 오시마 다다모리 의장과 아카마쓰 히로타카 부의장, 일본 참의원 대표로 다테 주이치 의장과 군지 아키라 부의장의 의견을 수렴하였다.[14] 11시부터는 일본 총리관저에서 약 15분간 아베 신조 총리 주최로 내각회의가 진행됐다.[15] 또 임시 내각의결 (각의)을 거쳐 새 연호가 내각에서 통과되었다.[16] 이후 야마모토 신이치로 궁내청장관이 아키히토가 있는 황거로, 니시무라 야스히코 궁내청차관이 나루히토가 있는 동궁어소로 가서 새 연호가 결정되었음을 보고했다.[17]

11시 40분 스가 요시히데 내각관방장관이 예정시간보다 10분 정도 늦게 기자회견장에 모습을 보이고, 새 연호를 다음과 같이 공식 발표하였다.[18][19] [20] 및 연호 읽는 법에 관한 내각고시에 각의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새 연호는 ‘레이와’입니다.

先ほど閣議で元号を改める政令および元号の呼び方に関する内閣告示が閣議決定をされました。

新しい元号は、『 令和 ( れいわ ) 』で、あります。

— 스가 요시히데 내각관방장관 조금 전 각의 에서 연호를 고치는 정령및 연호 읽는 법에 관한 내각고시에 각의결정이 내려졌습니다.先ほど閣議で元号を改める政令および元号の呼び方に関する内閣告示が閣議決定をされました。

이 말과 함께 스가 관방장관은 붓으로 한자 ‘令和’를 적은 종이를 기자들에게 내보이며 발표하였다.[21][22][23]

새 연호와 관련된 기자회견에서 담화를 발표하는 아베 신조 일본 내각총리대신 (2019년 4월 1일)

12시 5분 아베 신조 총리가 기자회견을 열고 담화를 발표하였다. 레이와라는 연호에 대해 아베 총리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마음을 모아 문화가 태어나게 하고 키운다”는 의미라고 설명하였다.[24][25]

같은 날 일본 정부는 연호 발표 기자회견에서 언급했듯, 천황의 재가를 거친 <연호를 고치는 정령> (원문, 번역문)을 일본 관보 특별호외 제9호로 공포하여, 2019년 5월 1일부로 시행할 것을 결정하였다.[26] 또한 새 연호의 읽는 법이 ‘레이와’ (れいわ)임을 <연호 읽는 법에 관한 고시> (元号の読み方に関する告示)를 통해 고시하였다.[26] 이와 더불어 새 연호의 로마자 표기가 ‘Reiwa’임을 알리는 공문을 전세계 195개 국가와 국제기관 측에 통보하였다.[27]

대외 관계 [ 편집 ]

주된 사건 [ 편집 ]

현 연호인 레이와 시대를 기준으로 일본 국내외의 사건, 앞으로 열릴 확정된 일정에 대해 기술한다.

서기 대조표 [ 편집 ]

레이와 원년 2년 3년 4년 5년 6년 7년 8년 9년 10년 11년 12년 서기 2019년 2020년 2021년 2022년 2023년 2024년 2025년 2026년 2027년 2028년 2029년 2030년 육십간지 기해 경자 신축 임인 계묘 갑진 을사 병오 정미 무신 기유 경술

원년의 기간

같이 보기 [ 편집 ]

각주 [ 편집 ]

주해 [ 편집 ]

↑ 레이와 시대 개막 이후 처음 열린 선거다.

참조 [ 편집 ]

이 전

헤이세이 일본의 연호

2019년 ~ 다 음

(현재)

헤이세이(平成)의 끝, 레이와(令和)의 시작: 노스탤지어와 불안한 미래 사이에서

일본에서 2019년 4월 30일과 5월 1일은 헤이세이(平成) 시대를 마감하고 레이와(令和) 시대가 열린 날이었다. 이 글에서는 아키히토 천황의 퇴위식과 나루히토 천황의 즉위식, 그리고 레이와 시대를 맞이하는 일본사회의 모습을 통해 ‘헤이세이’를 돌아본다. ‘쇼와(昭和) 시대’를 마감하고 ‘헤이세이’가 시작된 1989년은 버블경제의 절정기였다. 그러나 순식간에 버블경제가 붕괴되고 그 여파는 거세었다. 이 때문에 헤이세이 시대에 대해서는 쇼와(昭和)시대에 비해 얼마나 ‘잃어버렸는가’의 이야기가 숱하다. 이 글에서는 전후 50년인 1995년을 조명하며 한신대지진, 옴진리교에 의한 지하철 사린 사건의 사회적 의미를 규명한다. 그리고 고용불안, 격차의 확대와 자살자의 증가, 저출산과 고령화, ‘가족’의 위기를 짚어보며 ‘불안한 미래’의 그림자를 밟아본다. 그리고 동일본대지진과 원전사고 이후, 즉 ‘재후(災後)’ 사회라는 시대 인식을 통해 성장사회에서 성숙사회로의 전환을 논의한다.

박승현(서울대학교)

2019년 4월 30일과 5월 1일

2019년 5월 1일, 나루히토 왕세자가 일본의 왕위를 계승하였다. 1989년 아키히토 천황이 즉위한 이래 30년간 이어져 온 헤이세이 시대가 저물고 레이와 시대가 시작되었다. 사람들은 이세신궁에 퇴위를 보고하고 돌아오는 천황의 마지막을 보기 위해 비오는 날씨에 우산을 쓰고 모여들었다. 차창을 열고, 혹은 열차에 서서 손을 흔드는 천황부부에게 사람들은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를 외쳤다. 뉴스에는 ‘마지막 공무수행’이라는 자막이 흘렀다. 인터뷰에 나선 사람들은 천황부부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자신과 함께 나이를 먹은 천황부부의 퇴위를 보면서 한 시대가 저물었음을 실감한다고 눈물짓기도 했다.

아키히토 천황의 생전퇴위를 한 달 앞둔 2019년 4월 1일, 일본의 새 연호 레이와(令和)가 발표되었다. 이 연호의 공식적인 의미는 ‘아름다운 조화(beautiful harmony)’로, 일본의 가장 오래된 노래집으로 알려진 만요슈(万葉集)에 수록된 단어라고 한다. ‘레이와’라는 새 연호를 알리는 호외가 발행되었고 전 일본이 들썩였다.

2019년 4월 30일에는 ‘오늘은 무엇을 해도 헤이세이 마지막’이라면서 일본 전역에 다양한 이벤트가 벌어졌다. ‘平成’, ‘令和’가 새겨진 과자, 열차표, 스템프가 판매되고 ‘아리가또 헤이세이(고마워 헤이세이)’, 그리고 ‘요오코소 레이와(반가워 레이와)’를 외치는 많은 행사가 열렸다. 연호를 주로 쓰는 사람이 30년 동안 절반으로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연대를 표시할 때 ‘주로 원호’를 쓴다는 이가 34%, ‘원호와 서력 반반’ 쓴다는 이가 34%로, 일상적으로 ‘연호’를 쓰는 이가 70%를 차지한다. 주로 서력을 쓴다는 응답은 25%에 불과하였다(마이니치 신문 2019/02/05).1) 정부문서는 물론이고, 일상적인 서류 등에 연호가 쓰이니 자연스럽게 일상적으로 연호 사용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연호가 바뀌는 것은 일본인들에게 새 시대의 바람을 불어넣는 사건이었다.

퇴위식에서 아베총리는 일본국과 일본국민통합의 상징으로써 재난의 상황에 처했을 때 현장을 찾아 피해자를 위로하고 국민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며 고락을 함께한 천황에 감사를 표하였다. 아키히토 천황은 국민의 신뢰와 경애를 받은 것에 대한 기쁨을 표시하고, 상징으로서의 본인을 받아들여 준 국민들에게 감사를 표하였다. 그리고 레이와 시대의 일본과 세계의 평화와 행복을 비는 말로 답례하였다. 헤이세이 시대가 저물고 레이와 시대가 시작되었다. 4월 30일 자정에는 각지에서 불꽃놀이가 벌어졌고, 사람들은 함께 카운트다운을 하면서 자정을 넘어 ‘레이와’가 시작되자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5월 1일에 천황의 자리에 오른 나루히토는 헌법에 의거해 일본 및 일본 국민의 통합의 ‘상징’으로의 책무를 다 할 것을 선언하였다. 마침 일본은 열흘에 이르는 ‘골든위크’의 긴 휴가 중이었다.

‘쇼와’를 추억하며

‘헤이세이’를 보내며 헤이세이가 어떤 시대였는가를 돌아보는 이야기들이 무성하였다. 각종 특집방송이 방영되고 다양한 특집기사 및 출판물이 쏟아졌다. 서점에는 ‘황실’코너가 신설되었다. 결혼 당시 ‘미치코 붐’을 일으켰던 황후의 모습도 재조명되었다. 마침 2019년은 1959년 4월 10일(쇼와35년)로부터 결혼 60주년이었기에 천황부부의 테니스코트 만남부터 재조명되었다. 당시는 일본의 고도성장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시기였고, 아키히토 왕세자 부부의 결혼식을 시청하기 위해 텔레비전 판매량이 급증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퇴위를 기념하여 미치코 붐을 일으켰던 당시, 왕실의 결혼식 및 나루히토의 탄생과 성장을 담은 사진을 엮은 달력이 발행되기도 했다.

여러모로 2019년 나루히토 왕세자의 즉위식은 1989년의 아키히토의 즉위식, 곧 ‘쇼와(昭和)의 끝, 헤이세이(平成)의 시작’을 떠올리게 했다. 2019년 ‘레이와’의 시작은 이전 천황의 ‘은퇴’로 시작되었지만, 1989년의 ‘헤이세이’는 쇼와천황의 사망으로 인한 ‘자숙(自粛)’의 분위기 속에서 시작되었다. 상복을 입은 채 즉위식이 열린 셈이다. 쇼와시대의 마지막 총리 타케시타 노보루는 “쇼와시대는 세계적인 대공황으로 시작되어 대전(大戰)의 참화, 혼란과 궁핍하기 그지없는 폐허로부터의 부흥과 진정한 독립, 유례가 없는 경제성장과 국제국가에의 발전이라는, 참으로 격동의 시대였다”고 추모사를 읽었다.

일본 사람들이 떠올리는 쇼와의 이미지는 야마자키 타카시 감독의 영화 (2005)에서 그려지는 평범한 가족과 일상의 행복일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는 경제성장기의 도쿄, 도쿄타워와 우에노역이 지어지던 1958년(쇼와 33년) 당시, 도쿄의 서민동네 삼쵸메의 가족과 이웃들이 겪는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당시는 ‘단지족’이라고 하는 부러움에 찬 유행어가 등장한 때이기도 하다. 2개의 방과 스텐레스 싱크대, 수세식 화장실과 욕조를 갖춘 2DK로 상징되는 근대식 주거, 테이블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다이닝 키친(DK)의 일상이 본격적으로 대중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의 사진과 영상에 담긴 전형적인 모습은 놀이터를 가득 메운 아이들과 젊은 부모의 모습이다. 높은 경쟁률을 뚫고 입주한 화이트 칼라 중산층 가족에 대한 동경은 세련된 2DK가 단란한 ‘단지가족’의 ‘소비생활’에 대한 부러움이기도 했다.

아키히토 천황부부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추억에 잠기는 사람들이 회상하는 시대가 바로 이 시대이다. 1959년 4월 10일에 왕세자 아키히토와 쇼다 미치코가 결혼을 했고, 그 다음해인 1960년에 첫 아들 나루히토가 태어났다. 헤이세이를 마감하면서 사람들이 추억하는 시대는, 헤이세이를 건너뛴, 전후의 고도경제성장기의 ‘쇼와시대’인 것이다.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그 당시는 누구나 ‘중간’은 되던 시절이었다. 1958년부터 내각부의 ‘국민생활에 관한 의식조사’에서 계층귀속의식을 묻는 설문조사가 실시되었고, ‘상, 중상, 중중, 중하, 하’의 다섯 가지 선택지 중에서, ‘중’에 해당하는 중상, 중중, 중하를 선택하는 이들의 비율이 1958년의 72.4%에서 지속적으로 높아져, 1964년에는 87%, 1970년에는 89.5%, 1973년에는 90.2%에 달한다. 이로부터 ‘1억 총 중류론’이 대두된다.

일본의 경제성장은 급속한 것이었기에, 단지의 2DK는 순식간에 ‘협소함’의 상징이 되어버린다. 단지의 황금시대는 길게 잡아도 5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전반까지였다. 1970년대 들어 ‘자동차를 살 수 있는 자금으로 내 집 마련’, ‘2DK 단지에서 녹음이 우거진 뉴타운으로’라는 슬로건으로 ‘내 집 마련 정책(持ち家政策)’이 본격화된다. 취업하고, 결혼하고, 집을 사고, 자녀를 낳는 표준적인 라이프코스, 남성정사원의 ‘회사인간’과 정책적으로 독려된 ‘전업주부’를 주축으로 한 이들의 ‘중간은 된다’라는 자신감이야말로 그리운 시절의 평범한 행복의 모습일 것이다. 헤이세이 시대가 잃어버린 것은 그 ‘평범함’일 것이다.

버블의 절정을 향하던 1987년에 리쿠르트사가 만든 ‘프리타’라는 용어가 유행하였다. 이는 회사인간을 탈피하여, 일하고 싶은 만큼만 일하고 ‘나를 찾는 삶’을 추구하는 자유로운 아르바이트 생활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는 돈은 벌 만큼 벌었다, 혹은 돈은 쓸 만큼 벌 수 있다는 낙관을 포함한 용어일 것이다.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 당시 주식시가총액을 기준으로 한 세계 10대 기업 중, 2위 IBM을 시가총액 4배에 가까운 압도적인 차이로 1위에 오른 것은 일본회사 NTT였다. 10대 기업 안에 스미토모 은행(3위)등 일본회사 8곳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20위 안의 16개 기업이 일본회사였다. 1989년 당시 사람들은 ‘버블’이라고 깨닫지 못했지만, 돌아보면 헤이세이 시대는 버블경제의 절정기에 시작되었다. 그리고 헤이세이가 시작되자마자 버블경제는 붕괴되었다. 이 때문에 헤이세이 시대에 대해서는 ‘잃은 것’에 대한 이야기가 숱하다.

상실의 시대 ‘헤이세이’

마이니치 신문은 2018년 10-12월에 사이타마대학 사회조사 연구센터와 공동으로, 2019년 4월로 막을 내리는 헤이세이 시대를 주요 테마로 하여, “일본의 여론 2018 -당신의 헤이세이-”라는 제목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헤이세이 시대에 일어난 일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사건을 20개의 항목 중에서 복수응답으로 고르도록 하였다(이하, 설문조사는 본 조사를 의미함). 이 설문에 응답한 18세 이상 남녀 1274명 중에서 2011년의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사고”를 78%의 사람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꼽았다. 1995년의 지하철 사린사건, ‘미국동시다발테러’, 1995년의 ‘한신대지진’이 그 뒤를 이었다.2)

필자는 전후 50년을 맞은 헤이세이 7년, 1995년에 주목하고 싶다. 1995년 1월 17일 새벽에 한신 아와지 대지진이 발생한다. 진도 7.3의 도시직하형지진으로 사망자가 6천434여 명에 이르렀다. 인구가 밀집한 도심에서 발생하여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을 뿐 아니라 사망원인의 상당수가 불량한 가옥의 파손에서 의한 것이었고, 사망자의 대다수가 고령자, 특히 빈곤층의 여성 고령자였다는 점은 일본사회에 큰 충격을 안긴다. 버블경제에 취해 ‘재팬 넘버 원’을 외치는 동안, 그리고 1억 총 중류라는 평등사회의 신화에 빠져있는 동안 한쪽에서는 열악한 주거환경을 면치 못한 이들이 존재하고 있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게다가 한신아와지 대지진 피해자들이 거주하던 가설주택에서 연이어 발생한 고독사 문제는 ‘풍요사회’ 속에서 사회적인 약자가 구조적으로 발생하고 또한 구조적으로 배제되고 있음을 폭로하는 것이었다.

한신 아와지 대지진의 충격에 이어 1995년 3월 20일에는 종교집단 옴진리교에 의한 도쿄 지하철 사린 사건이 발생한다. 도쿄 시내 한복판을 달리는 지하철 차내에서 화학무기로 사용되는 신경가스 사린이 무차별 살포되어 승객과 역무원 등 12명이 사망하고 5,510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평온한 도시에서 벌어진 이 무시무시한 테러에 일본사회는 아연실색했다. 더구나 옴진리교의 교주 이사하라 쇼코가 전후 일본 최대의 공해병으로 알려진 미나마타병 환자였다는 후지와라 신야(藤原新也, 2009)의 추정이 사실이라면, 이 비극은 전후 일본의 경제적 풍요가 낳은 희생자들의 축적된 원한이 분출되어 나온 상징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이영진, 2014).

일본형 복지의 근간을 이루던 고용이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한 것도 1995년이다. 1995년(헤이세이7)년, 일본경영자단체연맹은 ‘신시대의 ‘일본적 경영’’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종신고용과 연공임금제를 부정하고, 파트타임이나 파견 등의 비정규직화를 통한 ‘고용유연화’를 주장했다. 이후 1999년부터는 파견의 범위가 자유화되고, 파견 노동자가 단번에 증가한다. 비정규직화는 젊은이들에게서 먼저 시작되었고, 2000년대 들어서는 중년층 이상에서도 그 비율이 상승하기 시작하여 전연령층으로 번진다. 실업률은 1991년의 2.1%에서 2001년의 5.0% 급증한다.

거품경제붕괴 직후인 1991년(헤이세이 3년)부터 2001년까지, 주식과 부동산 가격의 급락과 그 여파로 은행과 기업이 도산하고 그후 10년 넘게 0%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것을 흔히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한다. 일본사회에서 ‘격차’가 사회문제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 역시 이 즈음부터이다. 사토 토시키(佐藤俊樹 2000)는 『불평등사회 일본』에 ‘사요나라 총 중류’라는 부제를 붙인다. 그리고 1955년 이래의 ‘사회계층과 사회이동의 전국조사’ 데이터를 분석하여, 전후 일본사회가 과연 ‘노력하면 어떻게든 되는 사회’였던가에 의문을 제기한다. 당시 ‘격차’는 고령화에 따른 착시현상이라는 비판이 있기도 했다. 1994(헤이세이6)년에는 65세 이상의 인구가 14%를 넘어 일본은 본격적으로 ‘고령사회’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몰린 이들의 죽음, 자살의 급증은 ‘격차’ 이상의 문제를 암시한다. 1998년(헤이세이 10년)에는 자살자 수가 급증했고, 그 이후 14년 동안 매해 3만 명이 넘는 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바로 ‘잃어버린 10년’, 그리고 이어서 ‘잃어버린 20년’이라 불리는 기간에 일어난 일이다. 이런 가운데 2001년(헤이세이 13년)에 고이즈미 정권이 탄생했다.

헤이세이의 ‘가족’

설문조사에서 헤이세이 시대 동안 ‘무언가를 얻었다’고 느끼는 사람은 44%, ‘무언가를 잃었다’고 느끼는 이는 33%였다. 지난 30년 동안 무언가를 잃었다는 이도, 무언가를 얻었다는 이도 모두 ‘가족’을 얻거나 ‘가족’을 잃었다고 답했다. 그리하여 마이니치 신문은 ‘가족의 시대, 헤이세이’라는 제목을 달았다.4)

그러나 헤이세이는 안팎으로 ‘가족’이 위협을 당하는 시대였다. 1989년 헤이세이 원년은 이른바 ‘1.57 쇼크’로 시작되었다. 1년 뒤에도 출생률 1.34로 일본사회의 극심한 저출산이 본격화된다. 실업과 비정규직의 확대되고 일본형 사회보장을 담당했던 기업의 복지가 흔들림으로써, 이는 결혼, 출산, 육아 모두에 장벽이 되어 ‘가정’의 성립과 유지를 위협했다. ‘사회적 약자’로 전락한 젊은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본격화되었다.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평범한 삶’이 어려워졌음에 대한 이야기였다.

고용불안에 따른 빈곤과 가족붕괴, 그리고 사회적 고립이라는 악순환 속에서 ‘고독사’는 사회문제로 떠오른다. 특히 2010년의 NHK다큐멘터리 ‘무연사회’(無縁社会)’는 ‘무연’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낼 정도로 사회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취재팀은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직장을 다니던 사람이 실업과 이혼을 겪은 끝에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고독한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을 추적했고, 시청자들은 고독사에 이르는 사람들의 ‘평범함’에 충격을 받는다. 빛나는 ‘단지’는 불과 반세기를 조금 넘긴 시점에 초고령사회의 고독한 죽음의 문제를 직면하게 되었다(朴承賢, 2019).

동일본대지진과 원전사고, ‘재후(災後)’

헤이세이의 마지막 10년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동일본 대지진과 ‘재후’를 언급해야 할 것이다. 2011년 3월 11일 진도 9.0의 강진과 뒤이은 쓰나미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사망자 1만5883명, 행방불명자 2553명(2017년 3월 10일 현재)이라는 전례가 없는 피해가 발생했다. 이어서 전세계를 공포에 빠뜨린 것은 ‘체르노빌 사고’와 같은 레벨 7(INES: 국제 원자력 사고등급)까지 올라간 원전사고와 뒤이은 방사능 누출이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대지진과 원전사고 이후의 상황은 1945년 8월 15일 패전 이후를 가리키는 ‘전후(戦後)’와 비교하여 ‘재후(災後)’라는 언어로 묘사되곤 한다. 총리대신 자문기구로 설치된 ‘동일본대지진 부흥구상회의’는 2011년 6월 25일에 제출한 보고서 <부흥을 위한 제언-비참함 속의 희망>에서 ‘이 나라의 ‘전후’를 계속 떠받쳐온 ‘무언가’가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라고 표현한다’(御厨貴: 2011).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 및 이에 대한 도쿄전력 및 정부의 대응은 경제발전 우선주의, 지방의 희생을 요구하는 시스템 등 전후 일본 사회의 구조적 모순들이 축적된 구조적인 위기로, ‘전후’ 일본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원전사고는 국가적 공공성이 어떻게 ‘공공’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2012년 12월 총선거에서의 자민당은 정권 교체에 성공하고 아베 신조는 총리로 복귀한다. 그리고 탈원전의 기운은 경제성장이라는 미명 아래서 사그라진다. 나루히토 일왕이 즉위한 후 첫 헌법기념일 5월 3일에는 아베 총리는 2020년을 새 헌법이 시행되는 해로 삼고 싶다 밝히며 헌법 개정의 의지를 다시 강하게 드러낸다. 일본 우경화의 우려 속에서 아베 총리는 메이지 유신 이래 최장기 집권 총리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설문조사에서 “‘헤이세이’ 다음의 시대의 일본은 일본인에게 있어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시대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있어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시대’라는 응답이 7%, ‘(그다지)희망을 가질 수 없는 시대가 될 것이다’라는 응답이 57%였다. 절반을 넘는 이들이 ‘다음 시대’에 대해 비관적이었다. 현재 가장 불안하게 여기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3년 연속 ‘노후의 생활’이 1위를 차지했다. 알 수 없는 노후에 대한 불안, 동일본 대지진 이후의 일본사회에 감도는 무색무취의 방사능 오염으로 인한 불안은 서로 닮았다. 이런 속에서 ‘레이와’ 시대가 시작되었다.

1964년 도쿄올림픽이나 1970년의 오사카 만국박람회는 패전 이후 일본의 부흥을 상징하는 축제였다. 오사카 만박 개막식은 일본의 두번째 상업용 핵발전소인 쓰루가핵발전소 1호기 운영개시일과 같은 날이었다. 박람회가 진행 중이던 8월엔 미하마핵발전소 1호기도 가동을 시작해, 행사장 전광판에는 ‘오늘 간사이전력 미하라핵발전소 전기가 박람회장으로 시험 송전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실렸다.

오사카 만국박람회로부터 정확히 50년 만에 2020년 도쿄올림픽이 열린다. 마치 반세기를 돌아 이제야 거울의 뒷면을 보는 것과 같다. “오염수는 통제되고 있다”라는 아베 총리의 발언이 비웃음을 산 것과 같이 올림픽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의 부흥의 계기로 삼으려는 정치적 시도들에 대한 시선은 냉담하다. 도쿄올림픽이 후쿠시마를 가릴 수 있을까. ‘1억 총활약’이나 ‘경제성장’이라는 낡은 구호가 아니라, 성장사회에서 성숙사회로의 전환을 견인할 수 있는 새로운 물결이 필요하지 않을까.

저자소개

박승현( [email protected] )은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BK21플러스 사업단에 BK조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도쿄대학교 총합문화연구과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령화와 재건축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도쿄의 한 대규모 공공단지의 전후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을 집필했으며, 학위논문을 바탕으로 『老いゆく団地: ある都営住宅の高齢化と建替え(늙어가는 단지: 한 공공주택의 고령화와 재건축)』 (2019.3, 東京:森話社)를 출판하였다. 도쿄대 총합문화연구과 이와모토 연구실의 프로젝트 <동아시아 일상학으로서의 민속학>에 참여하며 학술지 『日常と文化(일상과 문화)』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일본과 한국사회의 고령화와 복지, 가족과 주거, 노년과 죽음, 지역재생과 커뮤니티 케어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1. 2019년 2월 5일 마이니치 신문 <年代に元号使用34%, 30年間で「半減」>

2. 2018년 12월 30일 마이니치 신문 <時代の記憶 震災とテロ>

http://ssrc-saitama.jp/content/files/PDF/2018.12.30Mainichi.pdf

3. 일본경찰청 홈페이지 2019년 4월 28일 검색

https://www.npa.go.jp/safetylife/…/H26_jisatunojoukyou_03.pdf

4. 2018년 12월 30일 마이니치 신문 <平成という時代 ‘ものの昭和から家族へ>

5. 내각부『平成25年度版少子化社会対策白書』

https://www8.cao.go.jp/shoushi/shoushika/whitepaper/measures/w-2013/25webhonpen/html/b1_s1-1.html

참고문헌

이영진. 2014. “근대 일본사회의 원한의 한 계보.” 일본비평 11호, 218-237.

후지와라 신야 조. 김욱 역. 2009. 『황천의 개』. 서울:청어람 미디어.

増田寛也 編. 2014.『地方消滅: 東京一極集中が招く人口急減』. 中公新書.

御厨貴 2011.『「戦後」が終わり、「災後」が始まる』. 千倉書房.

野澤千絵. 2016.『老いる家 崩れる街 住宅過剰社会の末路』講談社.

朴承賢. 2019. 『老いゆく団地:ある都営団地の高齢化と建替え』. 森話社.

신문기사

<平成という時代><時代の記憶> 마이니치 신문 (2018년 12월 30일)

<年代に元号使用34%, 30年間で「半減」> 마이니치 신문 (2019년 2월 5일)

인터넷자료

*본 기고문은 전문가 개인의 의견으로, 서울대 아시아연구소와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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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와 시대 — Google Arts & Culture

레이와는 헤이세이에 이어서 쓰이고 있는 일본의 연호다. 헤이세이는 일본의 제125대 천황인 아키히토의 퇴위로 인해 2019년 4월 30일을 끝으로 막을 내리고, 나루히토가 5월 1일에 일본의 제126대 천황으로 즉위하면서 레이와 원년으로 개원했다. 이 개원은 일본 헌정 사상 최초로 천황의 생전 퇴위로 개원한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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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일본 ‘레이와’ 시대 개막, 동북아 평화·협력 계기로

전임 아키히토 일왕(오른쪽)이 신임 나루히토 일왕 옆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일본의 나루히토 왕세자가 1일 새 일왕에 즉위한다. 1989년부터 30년간 지속했던 ‘헤이세이’ 시대가 저물고 이제 ‘레이와’ 시대가 본격 막을 올리는 것이다. 전후 세대 첫 일왕의 즉위인 만큼, 그 의미를 살려 일본이 동북아 평화와 협력에 기여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일왕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정된 일본 헌법에서 정치적 실권이 없는 국가통합의 상징으로 남았지만, 여전히 일본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는 존재다. 그만큼 새 왕의 취임이 일본 사회에서 갖는 의미는 작지 않을 것이다. 특히 헤이세이 30년 동안 ‘잃어버린 20년’으로 대표되는 경제 침체와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으로 ‘상실감’이 컸던 일본인들에게, 이번에 새롭게 시작되는 ‘레이와’ 시대에 대한 기대는 남다를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지난 시절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고통받았던 한국 등 주변국들에서 새 일왕의 즉위를 보는 시선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천황제야말로 일본 제국주의의 뿌리’라는 인식이 여전한 현실에서, 이웃 나라의 경사라고 해서 마냥 축하해주긴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특히 최근 일본의 국내 정치가 크게 우경화하면서 과거 제국주의 침략을 부인하는 목소리가 더욱 힘을 얻고 있는 상황은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실제 아베 신조 총리는 2012년 말 재집권한 이후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지배를 사과한 ‘무라야마 담화’ ‘고노 담화’ 등을 무력화했고, 평화헌법 개정과 재무장화, 자위대의 역할 확대 등을 추진해왔다. 이런 식의 ‘반성 없는’ 전후체제 종결 시도는 그 의도에 대한 주변국의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갈등을 증폭시킬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의 부상과 미-중 패권 쟁투로 인해 격화하는 동북아 정세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전임 아키히토 일왕은 재임 기간 오키나와와 사이판 등 2차 세계대전 격전지를 직접 찾아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또 여러 차례 일본의 침략 전쟁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소망하는 발언을 하는 등 ‘평화주의자’로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루히토 새 일왕도 앞으로 선왕의 뒤를 이어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리려는 아베 총리의 시도에 제동을 거는 구심점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레이와 시대 개막을 계기로, 일본이 동북아의 선린관계와 평화에 기여하는 길로 나가길 바란다.

‘레이와’ 시대, 오해와 진실

▲ 지난 4일 나루히토(왼쪽) 일왕이 일본 국민들을 상대로 첫 연설을 가진 뒤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UPI=연합뉴스

일본에서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퇴위와 나루히토(徳仁) 일왕의 즉위로 레이와(令和) 시대가 개막했다. 일본에서는 퇴위식과 즉위식을 포함해 10일 동안 연휴가 이어지며, 5월 4일에 실시된 일반인의 왕궁 참배에 14만 명이 넘는 인파가 나서는 등 야단법석이다.이를 바라보는 외국의 시선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이를 의식한 듯 일본에서도 지나친 호들갑이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일본 국민의 80%가 호감을 표시했다는 레이와의 명명에 대해 왈가왈부 말이 많다.먼저 연호 그 자체가 왕실의 시간을 국민에게 강요하는 것으로, 헌법에 규정된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근본적인 비판이 있다. 연호 결정과정에 아베 총리가 깊숙이 개입했고, 연호 결정을 새 일왕에게 보고하는 과정에서는 일본회의 등 우익 정치집단의 의향에 따라 일정을 조정하는 등 아베 총리의 행동이 일왕의 정치행위를 금지한 헌법에 위배되었다는 문제제기도 있다.들뜬 모습의 아베 총리에 대해 일본 국민 가운데 경계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새 일왕이 즉위하자마자 5월 3일의 헌법기념일에 즈음해서 낸 아베 총리의 메시지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해마다 5월 3일에 일본의 주요 언론들은 개헌과 관련한 여론조사를 내놓는다. 올해도 어김없이 주요 신문들이 개헌 여론을 발표한 가운데, 이 개헌 찬성 50%, 반대 46%라는 결과를 내보냈다. 은 보다 더 구체적으로 헌법 9조 개정 여부를 물었는데 개정에 반대하는 여론이 64%로, 찬성 여론 28%를 압도했다. 의 경우 개헌 기운이 고조되지 않았다는 여론이 72%나 된다는 사실도 강조했다. 두 여론조사 모두 작년에 비해 개헌에 조금 더 차가워진 국민의 시선을 반영하고 있었다.헌법과 관련해서 새 일왕 나루히토의 의지도 표명되었다. 그가 즉위식에서 “헌법에 따라 일본 및 일본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책무를 다할 것을 다짐한다”고 표명한 데 대해, 상왕 아키히토에 비해 헌법 수호 의지가 약했다는 평가가 있다. 그러나 아키히토 전 일왕의 헌법 수호 의지는 30년 전 일본이 본격적인 보통국가화를 시작하기 전에 나온 것이다. 자위대의 헌법 명기를 주장하는 내각이 들어서 있는 지금 상황에서 나루히토 일왕이 ‘헌법에 따른 책무 이행’을 강조하고, 나아가 상왕이 보여준 상징적인 모습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고 언급한 부분은 현행 평화헌법 수호 의지를 완곡하게 피력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일본 국민 사이에서 헌법 개정 열기가 식어가고 있고 새 일왕이 상왕에 이어 헌법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중에, 현행 평화헌법 기념일인 5월 3일 아베 총리는 개헌세력의 집회에 개헌 의지를 다지는 비디오 메시지를 보냈다.이런 아베 총리의 태도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한 것은 다름 아닌 레이와의 고안자로 알려진 나카니시 스스무(中西進)였다. 연호가 결정되는 과정에 아베 총리가 개입하여, 연호 역사상 처음으로 중국 고전이 아닌 일본 고전 (万葉集)의 한 구절을 따서 레이와로 결정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 때문에 레이와에는 국수주의 냄새가 스멀스멀 풍기고 있다.그런데 바로 그 고안자인 일본 고전문학자 나카니시가 레이와에서 평화주의를 강조하는 모습이 알려졌다. 이후 일본의 새 연호 레이와는 아베 총리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에서 일본 국민의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나카니시는 과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의 개헌 행보에 대한 평가를 묻는 기자에게 ‘국가와 국가 사이가 조화로운 상태를 평화’라고 부른다면서 새 연호에 평화의 기원을 담았다고 했다. 이는 아베 총리가 레이와의 뜻을 ‘아름다운 조화’라고 풀면서 아베 자신의 책 를 그 위에 겹치려는 데 대한 은근한 비판이었다.나아가 나카니시는 ‘조화’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 타국에 대한 폭력 행사라면서, 레이와에 어울리는 일본이 되기 위해 과거 한반도에 무력으로 밀고 들어간 역사를 반성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피력했다.그런 의미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레이와의 개막에 즈음해서 “퇴위한 아키히토 천황과 마찬가지로 전쟁의 아픔을 기억하면서 평화를 위한 굳건한 행보를 이어나가기를 희망한다”고 전한 것이나, 이낙연 총리가 한일관계를 중시했던 아키히토 ‘천황’에 대해 감사를 전하고 레이와 시대에 한일 양국이 미래를 함께 준비하는 새로운 우호협력관계를 구축하기 바란다는 기대를 표명한 것은 좋았다.그러나 그러한 기대 표명과는 달리 한일관계 현실은 녹록지 않다. 거의 모든 한일관계 전문가들이 현재를 1965년 국교 정상화 이래 최악의 상태로 보면서, 개선의 가능성을 찾지 못한 채 더 악화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문제는 한일관계 그 자체보다도, 한일관계가 꼬일 대로 꼬여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한일관계가 새로운 시대에 진입하지 못하는데 한반도 평화가 홀로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한일관계의 ‘1965년 문제’ 풀이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지속가능성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고 있다.주지하는 바대로 1965년의 한일기본조약에서는 1910년에 이르는 대한제국과 일본 사이의 협약과 조약들이 ‘불법’으로 체결되었다는 사실을 확정하지 못했다. 따라서 ‘불법 행위에 대한 배상’을 확보하지 못하고, 재산 등 민사상의 권리에 대해서만 청구권협정으로 따로 처리했다.다만 기본조약에서 이들 협약과 조약은 ‘이미’ 무효가 되었다는 사실만을 확인했는데, ‘이미’가 가리키는 시점을 두고 한국에서는 당초부터 무효였으며 따라서 식민지 지배가 불법이었다고 주장하는 반면, 일본에서는 과거의 협약과 조약이 양국의 합의에 따라 체결되어 식민지 지배도 합법적으로 실시되었으나 사후에 무효가 되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아, 각자 편의적으로 해석해 온 것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한·일 사이에서 과거사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등장하는 1965년 청구권협정도 이 기본조약의 한계 위에서 체결된 것이다. 청구권협정은 1조에서 일본이 한국에 대해 유무상의 경제협력을 실시하며, 2조에서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되었음을 양국이 확인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여기에서 1조와 2조의 관계가 문제다.일본 정부는 서로 관계없는 내용이 병기되어 있을 뿐이라는 입장이며, 한국 정부는 1조의 행위에 따라 2조의 결과가 되었다는 해석을 취하고 있다. 즉 일본 정부는 애초에 금전을 지불할 어떠한 의무도 존재하지 않지만 일본이 한국의 독립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경제협력을 실시함으로써 한국이 더 이상 청구권을 주장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해석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 정부는 청구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 정부가 경제협력을 실시했다는 해석을 취하고 있다.일본이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따라 지불한 10억 엔을 법적 배상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것도, 강제징용 노동자에 대한 대법원 판결을 ‘국제법 위반에 해당하는 폭거’라고 비난하는 것도 모두 ‘1965년 문제’에 기인한다. 결국 ‘1965년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는 한 한국에서 새로운 100년으로 진입하는 것도, 일본에서 레이와를 새로운 시대로 맞이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그러면 ‘1965년 문제’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1965년에 이르는 역사에 더해 1965년 이후의 역사를 동시에 이해할 필요가 있다, 1990년대 탈냉전과 함께 한국에서는 시민사회가 성장하여 오래 방치되어 왔던 미완의 역사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 첫 포문은 두말할 것도 없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였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한국 시민운동의 고양에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에 해결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이에 일본이 호응하면서 일본의 역사 인식이 차츰 개선되는 듯 했다.1993년의 고노담화, 1995년의 무라야마담화, 1998년의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거치면서 일본은 한국에 대한 식민지 지배 사실을 인정하고, 그로 인해 한국 국민에게 끼친 고통과 손해에 대해 사죄와 반성을 표명했다. 그리고 2010년 한국병합 100년을 반성하는 간 나오토 담화를 통해, 1910년 조약이 ‘한국인의 의사에 반해 체결되었다’는 사실과 강제성을 처음으로 인정했다.이러한 역사 인식의 발전에 동반해서 일본은 1965년에 미완에 그친 과제들에 대해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비록 법적 책임이 아니라 도의적 책임을 인정한 데 불과한 것이긴 하지만, 사할린 동포의 귀국사업과 한국인 피폭자에 대한 지원도 했다. 이렇게 1965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양국 정부와 시민사회가 함께 노력해 온 과정이 있었다. 이를 이해하고 그 노력들을 수용하면 한일관계를 둘러싼 비관주의도 함께 극복할 수 있다.먼저 우리 정부가 지혜와 용기를 내야 한다. 냉엄한 국제정치 현실 속에서 정의의 원칙을 지켜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과거 정부는 늘 외교의 현실에 타협하고 말았다. 이제 이번 정부가 용기를 내야 한다. 두 방면으로 용기를 내야 한다. 일본에 대해서는 정의의 원칙을 더욱 강력히 제기하고 문제를 극복하는 데 함께 노력하자고 설득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 국민에 대해서는 냉엄한 국제정치 현실 속에서 더 나은 미래로 가기 위한 길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그리하여 일본 정부는 1910년 조약의 강제성과 불법성을 명확히 기록하고,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더 이상의 배상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명기하는 새로운 역사선언의 채택을 제안한다. 이는 한·일 양국 정부가 그 동안 쌓아온 노력을 서로 인정하는 것으로 추가 노력 없이 이를 추인할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한·일 사이에 이러한 내용의 새로운 역사선언이 필요한 것은 다가올 북·일 국교정상화가 한·일 간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아베 총리는 레이와 시대가 열리자마자 북·일정상회담에 의욕을 보이고 있다. 레이와라는 새로운 시대를 상징할 정치적 업적이 아무것도 없다는 게 이유가 될 수 있다. 북·일 수교 교섭은 2002년의 북·일공동선언에 기초해서 전개될 것이다.거기에는 북·일 국교정상화에 따라 일본이 북한에 경제협력을 실시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1965년 문제’의 북·일관계 버전이다. 북한과 일본은 한·일의 새로운 역사선언을 징검다리로 삼아 이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남북한과 일본은 두 양자 선언을 하나로 통합해서 식민지 문제와 관련한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를 총괄하여 진정으로 새로운 시대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임정 수립 100주년의 해에 새로운 100년을 맞이하는 한국과 헤이세이에서 레이와로 넘어가는 일본이 함께 새 시대로 진입하는 입구에 아직도 ‘1965년 문제’가 버티고 있다.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노동자 문제가 제기된 지금이 이를 해결할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한·일 양국 정부가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이라는 대의를 위해 용기를 발휘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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