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더드 오일 | [석유공사] 석유조상, 록펠러가 만든 석유왕국 / 재미있는 석유이야기 12화 8794 명이 이 답변을 좋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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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공사 #석유이야기 #록펠러
미국계 메이저 석유회사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인물, ‘록펠러’를 아시나요?
록펠러는 1870년 스탠다드 오일을 설립하고, 과거 한때 미국 석유산업을 90% 장악한 인물인데요.
과연 그는 어떻게 미국의 큰 석유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을까요.
그리고, 그 영광은 얼마나 계속 이어졌을까요.
석유업계에서는 조상으로 통하는 록펠러.
그의 인생역전 스토리를 재미있는 석유이야기에서 만나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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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공사 블로그 ▶ https://blog.naver.com/knoc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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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더드 오일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스탠더드 오일은 회사가 독점하기 위해 인정 사정없이 진로방해, 가격 인하 등을 통해 신경쟁회사들과 다른 경쟁회사들을 망하게 하거나 인수를 했다. 후에 스탠더드 오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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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5/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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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슨모빌 – 나무위키

이 중에서 스탠더드 오일 지주회사였던 뉴저지 스탠더드 오일 회사(Standard Oil Company of New Jersey)가 엑슨의 전신, 뉴욕 스탠더드 오일 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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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5/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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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회사 – 스탠더드 오일(Standard Oil) – 네이버 블로그

석유회사 – 스탠더드 오일(Standard Oil). 지금까지 여러 개의 포스팅에서 구멍 뚫는 지루한 이야기를 전개해 왔는데, 이번에는 좀 각도를 달리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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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6/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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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스트 – 시사경제용어사전

트러스트라는 용어의 유래는 1879년에 석유재벌 록펠러(Rockerfeller)의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Standard Oil Trust)에서 유래되었다. 당시 그는 트러스트 증권(신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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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moef.go.kr

Date Published: 6/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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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사 美석유기업 쪼갠 反독점법 뒤엔 이익집단 검은 속내 …

이것이 반(反)트러스트법(반독점법)이 적용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례 가운데 하나인 미국 정부 대 스탠더드 오일(US v. Standard Oil of New Jersey)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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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gsg.hankyung.com

Date Published: 6/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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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반독점법, 1890년 제정된 ‘셔먼법’이 시초…스탠더드오일은 …

그래서 여러 정유회사가 스탠더드오일에 주식을 신탁하는 트러스트(기업연합) 방식으로 덩치를 키워 미국 석유 시장의 88%를 차지했다. 그 과정에서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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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edaily.com

Date Published: 12/2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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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펠러는 반독점 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 자유기업원

1899년 스탠더드 오일은 미국 석유의 90%를 정제하며 아주 높은 시장 점유율 수치를 기록했다. 이후 경쟁사들이 꾸준히 노력하여 시장 점유율을 빼앗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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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fe.org

Date Published: 2/1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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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공사] 석유조상, 록펠러가 만든 석유왕국 / 재미있는 석유이야기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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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스탠더드 오일

  • Author: 한국석유공사 Korea National Oil Corpo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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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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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스탠더드 오일 정유소(1899년)

스탠더드 오일(Standard Oil)은 석유의 생산, 운송, 정제, 마케팅 분야에서 다른 회사들에 비해 월등한 영향력을 가진 회사였다. 스탠더드 오일은 1870년 존 D. 록펠러가 동업자들과 함께 오하이오주의 클리블랜드에서 설립하였다. 1890년 기준으로 스탠더드오일은 미국 내 88%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였다. 록펠러는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를 설립하여 미국 내 모든 자회사를 통제하였는데 1890년에 오하이오주 법원이 셔먼법 위반을 이유를 이를 해산시키자 록펠러는 회사의 다른 주 회사 주식의 소유를 허용하는 법을 제정한 뉴저지 주로 본거지를 이전하였다. 뉴저지 스탠더드 오일은 미국 전역에 퍼져 있던 스탠더드 오일 그룹 41개사의 지주회사격인 회사였다.[1] 1911년에 미국의 반트러스트법(반독점법) 위반으로 인해 저지스탠더드오일(엑슨), 캘리포니아스탠더드오일(셰브런), 뉴욕스탠더드오일(모빌) 등 34개의 독립회사로 해체되었다.(→1911년 이후의 역사에 대해서는 엑슨모빌 참조)

이 회사는 1911년 미국 대법원의 판결에 의해 분리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형 다국적 기업들 가운데 하나였다. 창업자와 대표이사인 존 록펠러(John D. Rockefeller)는 이 회사를 통해 억만장자가 되었고, 근대 미국 역사상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되었지만 스탠더드 오일이 자신의 경쟁사에게 비도덕적인 행동을 은밀히 했다는 주장도 있었다. 석유 왕 록펠러로 불리는 이 사람은 미국 역사상 논쟁의 중심에서 가장 냉혹한 사람으로 평가 받는 사람 중 하나이기도 하다. 스탠더드 오일은 회사가 독점하기 위해 인정 사정없이 진로방해, 가격 인하 등을 통해 신경쟁회사들과 다른 경쟁회사들을 망하게 하거나 인수를 했다. 후에 스탠더드 오일은 대법원 판결을 받고 많은 회사로 분리되는데 이 회사 중 엑슨과 모빌이 역대 최대합병으로 인해 엑슨모빌로 이름이 바뀐다.

각주 [ 편집 ]

석유회사 – 스탠더드 오일(Standard Oil)

석유회사 – 스탠더드 오일(Standard Oil)

지금까지 여러 개의 포스팅에서 구멍 뚫는 지루한 이야기를 전개해 왔는데, 이번에는 좀 각도를 달리해서 전세계의 내 놓으라 하는 대형 석유회사 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즉, 석유회사의 간단한 역사라 할 수 있겠죠.

이 이야기는 몇 개로 나눠서 포스트할 예정인데, 가장 먼저 우리가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던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에 대한 이야기부터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존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Standard Oil Company) 탄생

석유가 산업으로서 시초가 되는 것은 앞서 포스팅 했던 “왜 원유의 단위는 배럴일까”에서 말씀 드렸던 1859년 미국 펜실바니아주 오일 크리크(Oil Creek)에서 에드원 드레이크(Edwin Drake)의 원유 굴착 성공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특히, 석유를 원료로 사용하는 내연기관(internal combustion engine)의 발명은 석유의 중요성을 급 부상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현재까지도 움직이는 자동차에 사용하는 엔진이 대부분 내연기관인 것을 감안하면 그때부터 지금까지 석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내연기관의 중요하고 간단한 몇 가지 역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연기관은 연료의 화학에너지를 기계적 에너지로 변환하는 열기관을 말합니다. 연료가 공기중의 산소와 결합하여 연소, 산화하여 열을 발생시키고, 이 열이 공기를 가열시켜 압력을 높이고, 고압 가스는 피스톤을 밀어 슬라이더 크랭크 기구로 회전동력을 얻게 되고, 이 회전력은 변속, 동력전달 장치를 거쳐 바퀴에 추진력을 보내게 되는 것 입니다.

원유가 본격적으로 공급되기 전에는 주로 광유, 석탄가스, 화약 등이 내연기관의 연료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다 1859년 석유생산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게 됨에 따라 1860년 벨기에 태생의 프랑스 발명가 에티에네 르느와르(Etienne Lenoir)가 석유를 원료로 사용하는 첫 번째 상업적 연소 엔진을 발명하게 됩니다. 비록 4.5kw에 5% 효율기관이었지만 최초의 대량생산 엔진이었습니다.

1864년 독일의 니콜라우스 오토(Nikolaus Otto)와 오이겐 랑겐(Eugen Langen)은 오늘날 엔진의 시초가 된 일종의 4사이클 가스기관 엔진을 발명하고, 그 엔진을 개선하여 1867년 파리박람회(1867 Paris World Exhibition)에 출품을 하여 대상(Grand Prize)을 받게 됩니다. 효율도 11%로 개선됩니다.

르느와르의 가스엔진 오토와 랑겐의 엔진

1876년 니콜라우스 오토는 고틀리프 다임러(Gottlieb Daimler), 빌헬름 마이바흐(Wilhelm Maybach)와 함께 훨씬 개선된 오토 행정(Otto cycle)이라 일컫는 4행정 기관을 발명하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이 발명은 독일 법원에서 특허로 인정을 하지 않게 되어, 4행정 실린더 방식의 내연기관은 전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1879년 그 유명한 자동자 회사 벤츠의 설립자인 카를 벤츠(Karl Benz)는 오토, 다임러, 마이바흐의 엔진을 참조하여 독자적인 2행정 기관을 발명하여 특허를 획득하고, 이를 보완하여 4행정 기관을 발명하여 최초의 자동차에 적용하게 됩니다.

1892년에는 독일의 루돌프 디젤(Rudolf Diesel)이 그 유명한 디젤 엔진을 개발하여 그 이듬해에 특허를 취득하게 됩니다. 석유를 원료로 하는 디젤엔진은 1897년에 발명하게 됩니다.

미국의 헨리 포드(Henry Ford)는 1903년 포드 자동차를 설립하면서 지속적인 자체모델을 제작해 오다, 1908년에 Ford Model T를 생산하게 됩니다. 그 전까지 자동차는 2,000~3,000달러의 고가품이라 일반 서민들은 엄두도 내지 못했는데, 이를 850달러에 출시했으니깐 가히 자동차의 대중화를 이끌었다고 할 수 있겠죠. 1920년대에는 오히려 가격을 300달러(현 시세 기준 약 3,300달러, 350만원)까지 내려 자동차와 석유의 수요를 폭발적으로 늘린 셈이 된 것 입니다.

포드사의 모델T

어쨌든 내연기관의 연료로 석유가 사용하게 되면서 국가안보에 필수적인 전략물자로 부상하게 되고 석유의 역할이 국가 간 정치경제적 핵심영역으로 부상하면서 많은 분쟁과 부딪힘이 있게 됩니다.

석유를 확보할 수 있는 시추 기술이 생기자, 여기저기에 석유가 있을 곳으로 예상되는 장소에 저마다 시추 작업이 일어나고, 석유시추와 정제하는 중소 규모의 회사들이 급속도로 많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난립에 1870년에 생겨난 회사가 바로 그 유명한 존 D. 록펠러(John D. Rockefeller)가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설립한 스탠더드 오일(Standard Oil)이었습니다. 1890년 기준으로 스탠더드 오일은 미국 내 88%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였습니다. 석유채굴 사업이 붐을 이루던 시점에 록펠러는 석유채굴이 아닌 석유정제사업과 석유를 운반하는 철도사업에 투자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습니다.

존 D. 록펠러 클리브랜드의 스탠더드 오일 정유회사(1897년)

록펠러는 그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아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 그 아버지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나중에 의사를 사칭하고 가짜 약을 팔던 사기꾼 – 사업적으로 무자비하고 경쟁자를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박살냈던 것으로 유명합니다. 스탠더드 오일 이전에 파트너 2명과 함께 시작한 회사에서도 사업확장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 명을 젖히는 과정은 유명한 일화 입니다. 그의 나이가 단지 26세때의 일이죠.

석유 사업을 시작한 이때까지만 해도, 록펠러는 자기의 회사가 얼마만큼 성장할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비전이 없었습니다. 존 록펠러 바로 아래 동생인 윌리엄 록펠러는 형의 석유사업을 보고 자신도 뉴욕에서 동일한 사업을 하며 꽤 규모를 키운 뒤에 형의 회사에 인수되는 방식으로 합병을 해주면서, 형에게 든든한 자금줄이 되어 줍니다.

그는 석유채굴보단 정제업이 유망하고 독점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소규모 정유회사들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인수하게 됩니다. 또한, 석유는 수송이 가장 중요한 시스템이라고 보고 원유 수송에 필수적인 철도에 손아귀를 뻗치기 시작하여, 철도회사와 밀실 담합을 통해 그 악명 높은 리베이트 시스템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록펠러는 철도업계에 일정하고 높은 수준의 수송량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고, 이것을 바탕으로 록펠러는 리베이트 계약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얻기 시작합니다. 이로 인하여 많은 중소규모의 정유회사들이 감당하지 못하고 하나씩 문을 닫거나 록펠러에게 갖다 바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다섯 개의 회사를 사들여 1870년, 록펠러는 100만 달러의 자본금을 가친 스탠더드 오일을 창설하게 됩니다.

스탠더드 오일 컴파니(1870년~1911년)와 셔먼 반트러스트 법

록펠러는 이로 인한 파산회사들을 거의 공짜로 인수해 생산성이 낮은 회사는 문을 닫아 버리고 괜찮은 회사는 합병하는 수법을 계속하였고, 결과적으로 스탠더드오일은 미국정유시장의 90%를 컨트롤하는 독점기업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중소회사들이 파산하고 가정이 파괴되며 노동자들은 탄압을 받게 됩니다. 록펠러는 경찰 등 공권력도 매수해 이에 저항하는 노동자, 경쟁업체들을 무자비한 방법과 물리적 힘을 동원해 진압했고, 심지어는, 비사(秘史)에 의하면 기관총으로 노동자들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고도 합니다.

본인은 막대한 부를 거머쥐고도 일하는 직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을 하고 봉급도 박하기로도 유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직원들이 항의하면 무자비한 진압만이 돌아왔을 뿐입니다. 1904년 이다 타벨이라는 여기자가 스탠더드오일의 부정한 모습을 담아서 폭로를 했는데, 이에 대해 록펠러는 이에 대한 개선을 선택하지 않고 기부와 사회환원 활동으로 여론의 환심을 사려고 했습니다.

록펠러는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를 설립하여 미국 내 모든 자회사를 통제하는 구조를 만들며, 40여개의 회사를 통합하여 그의 왕국을 건설하게 됩니다.

여기서 잠깐

트러스트(trust)란 굳이 한국말로 번역하자면 신탁(信託)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트러스트란 개별 기업의 소유권은 그대로 남겨두는 대신 경영권을 하나로 통합하는 기업조직 형태를 말합니다. 기업 통합의 수단으로 나타난 방식인데, 한국의 재벌은 모든 계열사가 재벌 것이기 때문에 재벌경영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 당시, 록펠러의 이와 같은 수법은 다른 기업들에도 모방되었습니다. 맥코믹 농기구회사, 아메리카 연초회사, 아메리카 제당회사 등은 농기구•설탕•담배 등의 시장을 거의 장악하다시피 했습니다. 이런 독점이 심화되자 남부와 서부의 몇몇 주들은 독점을 규제하려고 하였으나 대부분의 주들은 오히려 독점과 합병을 장려했습니다. 세금수입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독점으로 인한 피해는 중소기업뿐 아니라 소비자에게 당연히 영향을 미쳤습니다. 독점에 의한 피해가 확산되면서 여기저기서 저항이 일어났습니다. 심지어 중소기업과 소비자들은 1884년 반독점 정당을 만들기도 했고, 출판업자들도 독점에 반대하는 운동에 뛰어 들었습니다. 그 한 예가 1879년 헨리 조지(Henry George, 1839. 9. 2 – 1897. 10. 29)는 ‘진보와 가난(Progress and Poverty)’이라는 책을 출판, 부의 불균등 분배를 신랄하게 비판하게 됩니다. 농민•노동자 단체들도 독점방지 운동에 참여하게 됩니다.

록펠러 일가는 상상을 초월하는 부자가 되었지만, 독점의 폐해는 서민들을 삶을 처참하게 짓밟게 됩니다. 더구나, 록펠러를 따라서 다른 기업들도 독점에 재미를 붙여가면서 부익부 빈익빈이 급속도로 퍼져버리게 됩니다. – 역사는 반복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19세기말/20세기초 상황과 현 상황이 오버랩 되는 것은 저 만의 생각이 아닐 것입니다. 이 당시가 자본이 극대화된 자유주의 경제체제라면, 현상황도 유사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라 할 수 있겠죠.

그 당시 독점의 폐해를 풍자한 Joseph Keppler의 카툰 “The Bosses of the Senate”

상원의원의 보스는 재벌들이란 의미인데, 마치 오늘날의 한국을 나타내는 듯 합니다.

독점 기업을 처단하지 않으면, 국가 자체도 기업들의 입김에 좌지우지 되는 지경까지 이르자 1890년 오하이오주 상원의원인 존 셔먼(John Sherman, 1823. 5. 10 – 1900. 10. 22)은 “정치체제로서 군주를 원하지 않듯 경제체제로서의 독점을 원치 않는다”는 셔먼 반트러스트법(Sherman Antitrust Act)을 제정하여, 트러스트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록펠러를 압박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록펠러는, 셔먼 반트러스트법 위반이 인정되어 1899년 트러스트는 해산하였지만, 다른 회사 주식의 소유를 허용하는 법을 제정한 뉴저지 주로 본거지를 이전하여 트러스트는 버리고 소위 홀딩컴퍼니라고 하는 지주회사 체제를 도입하여 이를 피해가게 됩니다. 즉, 뉴져지 스탠더드 오일 하나의 지주회사가 나머지 40개의 회사를 통제할 수 있을 만큼의 주식을 소요하도록 하여 셔먼 반트러스트법을 비껴가게 한 것 입니다. 또한, 산업독점뿐만 아니라, J.P모건이나 오거스트 벨몬트와 같은 금융 독점가들도 급속히 부상하게 되면서 오히려 독점은 더 지속되고 강화가 됩니다.

존 셔먼 상원의원/국무장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록펠러와 루스벨트 대통령의 충돌

미국 29대 대통령이었던 윌리엄 매킨리(William McKinley, Jr., 1843. 1. 29 – 1901. 9. 14)의 총격사망으로 취임한지 6개월 만에 부통령이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Theodore Roosevelt. Jr. 1858. 10. 27 – 1919. 1. 6)가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되면서, 지루한 록펠러와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내정 면에서는 혁신주의를 내걸고 소수 기업의 독과점 철폐, 철도 운영의 국가 통제, 재벌과 노조 간 중재 및 국가의 적극 개입, 노동자 보호입법과 동시에 폭력적 노조에 대한 강력 대응, 자원보존 등의 정책을 펼치게 됩니다. 공화당원임에도 불구하고 개혁적인 조치를 취했기에 당내에 엄청난 적을 만들면서도 자신의 정책을 펼치게 됩니다.

그는 독점의 폐해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잊혀져 가던 셔먼 반트러스트법을 더 강화하여 부활시키게 됩니다. 또한, 1903년 법무부내에 독점금지국을 설립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미 자본을 통하여 권력까지도 확보한 록펠러는 그렇게 호락호락 당하지 않았고, 그 당시 상ž하원을 장악하고 있던 공화당 의원들도 록펠러의 편에 서있었기에 루스벨트 대통령은 스탠더드 오일을 함부로 건들지 못하게 됩니다. 또한 선출된 권력이 아닌 승계된 권력이란 한계 때문에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죠.

재선에 성공한 루스벨트 대통령은 제30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되고, 1906년 스탠더드 오일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였고, 록펠러 또한 엄청난 돈을 뿌려가면서 반격을 하게 됩니다.

루스벨트의 반독점법을 피하기 위하여, 록펠러는 스탠더드 오일 사의 미국의 주마다 있는 지점을 쪼개 새로운 법인을 만들고, 규제가 강한 뉴욕주보다, 맨하탄에서 가깝고 규제도 상대적으로 약한 뉴저지주의 스탠더드 오일사를 지주회사로 전환하며 어떻게든 발악을 해보려고 했으나, 결국 1911년 스탠더드 오일은 미국연방대법원의 독점금지법으로 인해 해산 명령을 받게 되며 34개의 독립 회사로 분리가 됩니다.

록펠러의 회사들은 저지스탠더드오일(엑슨, Exxon), 캘리포니아스탠더드오일(셰브런, Chevron), 뉴욕스탠더드오일(모빌, Mobile) 등 34개의 독립회사로 해체됩니다. 이렇게 석유회사들이 해체되자 유럽계 석유회사들은 쾌재를 부르게 되었고, 일부 분리된 스탠더드 오일사를 인수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다시 결합 인수 합병 등의 다양한 절차를 통하여 슈퍼메이저로 재탄생 하게 되게 됩니다.

특히, 1999년 들어서 엑슨이 모빌사를 인수하며 엑슨-모빌이 되자 일각에서는 스탠더드 오일을 힘겹게 분리시켰더니 또 다시 뭉치고 있다며 규제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최고재판소의 해산 명령을 받았지만, 쪼개진 회사들의 지분은 대부분 그의 소유였고, 오히려 이러한 해체는 회사의 평가로 인식이 되고 투기까지 겹쳐져서 주식 값이 30%나 치솟게 되어 록펠러는 가만히 앉아서 자산을 30%나 불리는 횡재를 하게 되고, 1913년 록펠러의 자산은 9억 달러에 이르게 되어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됩니다.

주식의 대부분은 그의 소유였고 현재 세계 최대 석유 기업인 엑슨모빌도 그가 세운 스탠더드 오일이 그 기원이기에 아직까지도 엑슨모빌과 셰브런을 그 후손이 실질적으로 지배한다는 그럴듯한 음모론이 있지만,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은 없습니다.

트러스트는(Trust)는 시장지배를 목적으로 동일한 생산단계에 속한 기업들이 하나의 자본에 결합되는 것을 의미한다. 일종의 기업합병이라 할 수 있다. 트러스트라는 용어의 유래는 1879년에 석유재벌 록펠러(Rockerfeller)의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Standard Oil Trust)에서 유래되었다. 당시 그는 트러스트 증권(신탁증권)을 교부해주는 조건으로 40여 개 석유회사의 의결권이 있는 주식이 소수의 수탁자에게 위탁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수탁자는 이 석유회사들의 경영관리 등을 통일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되었고 석유제품에 대한 독점적 지배를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독점의 피해로 미국에서 이후 독점금지법을 제정하였는데, 이러한 법을 영문으로 Anti-Trust Law라고 쓴다.

등록일 2020-11-03.

[세계 경제사] 美석유기업 쪼갠 反독점법 뒤엔 이익집단 ‘검은 속내’ 있었다

세계경제를 바꾼 사건들 (42) 反트러스트법의 탄생

美 법원 “독점의 의도 있다”

스탠더드오일 분할·해산 명령

하지만 논란 있었던 1930년대가

석유 생산 늘고 가격도 싸

기술혁신 뒤처진 이익집단

1890년대 법안제정 앞장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email protected]

스탠더드 오일이 소위 ‘독점화’를 시도하던 시기에 정유된 석유의 생산량은 줄어들지 않았으며 오히려 늘어났다. 이를 반영해 1869년 갤런당 30센트였던 유가(油價)는 반독점 소송이 진행 중이던 1910년 갤런당 6센트로 크게 떨어졌다. 대법원은 소비자들에게 피해가 있었다는 이유가 아니라 스탠더드 오일이 합병을 통해 시장을 독점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이유로 스탠더드 오일의 분할·해체를 명령했다.

1911년 미국 대법원은 미국 전역의 스탠더드 오일 회사에 분할·해산을 명령했고 그 결과 스탠더드 오일은 30여개의 개별 회사로 분할·해체됐다. 이것이 반(反)트러스트법(반독점법)이 적용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례 가운데 하나인 미국 정부 대 스탠더드 오일(US v. Standard Oil of New Jersey)의 법정 분쟁이었다.이에 대해 가장 흔히 듣게 되는 설명은 이렇다. 스탠더드 오일이 가격을 일부러 낮춰 경쟁사들을 시장에서 몰아냄으로써 그 시장의 독점사업자가 됐고, 그런 다음 생산량을 줄여 종전에 비해 훨씬 높은 가격을 받음으로써 (과거의 손실을 만회하고도 남을) 폭리를 취한 데 대해 정부가 반트러스트법인 셔먼법을 적용해 처벌했다는 것이다과연 그런 것일까? 이 분야를 평생 연구한 도미니크 T 아르멘타노 교수는 이런 통설이 사실과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스탠더드 오일은 석유산업 전체는 물론이고 정유업에서도 독점체제를 구축한 적이 없었다. 약탈적 가격책정의 구체적 증거는 전혀 없다.전문적으로 반트러스트법을 연구하는 경제학자들은 반트러스트법이 실제로는 생산을 제한하고 미국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켰다는 것이 일반적임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지 않은 여타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1984년 미국의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약 83%가 “반트러스트법은 시장지배력을 줄이기 위해 현재보다 더 강력하게 적용돼야 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아르멘타노는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것은 가장 흔히 듣는 설명에 수세대의 경제학자들이 호도돼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스탠더드 오일의 분할을 명령한 대법원의 결정은 1890년 제정된 셔먼법에 근거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셔먼법은 어떻게 제정된 것일까. 이 문제를 집중 연구한 후 이익집단의 로비 결과라고 결론을 내린 토머스 딜로렌조의 설명은 이렇다. 1880년대 말은 경제적 격변이 있던 시기였다. 기술이 발전하고, 철도와 운하를 이용한 운송체계가 발달하면서 운송비가 크게 절감됐으며 기술적 발전도 진전돼 대규모 생산의 이점이 크게 부각됐다. 1880년대 말은 미국이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급격히 변모하던 시기였다. 1810년 농업인구가 비농업인구에 비해 4배 많았지만 1840년에 와서는 1.6배 정도 많았고, 1880년에는 농업인구와 비농업인구 숫자가 거의 같게 된다. 이런 급격한 변화가 있었지만, 자본과 노동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 자체는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고 한다.다만 이런 변화를 미처 따라가지 못한 개인이나 집단들은 불만이었고 이들이 국가의 힘을 이용하고자 했으며, 그 결과 1890년에 셔먼법이 만들어졌다. 미국 51차 의회 개회 중에 트러스트로 인해 독점화됐다고 주장된 산업 가운데 사실 여부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가 있는 산업으로는 소금 석유 아연 철 석탄 납 술 마(麻) 등 17개이지만 2개를 제외하고는 모든 산업에서, 1880년에서 셔먼법이 제정된 해인 1890년 사이에 생산이 늘어났다.이 산업들에서 셔먼법이 제정되기 이전 10년 동안 국민소득의 증가 속도보다 더 빠르게 생산이 증대했다. 이는 가격도 상대적으로 다른 재화에 비해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산업들과 관련된 불만들이 셔먼법이라 불리는 반트러스트법이 제정된 배경이 된 것이다.당시 설탕 트러스트와 석유 트러스트가 가장 공격을 많이 받았지만, 실제로 가격을 많이 내린 품목들이었다고 한다. 의회에서 셔먼법의 통과 여부를 둔 논쟁을 보면 트러스트에 반대하는 의원들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윌리엄 메이슨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트러스트들은 제품을 더 저렴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유가가 배럴당 1센트로 떨어졌다고 해도 이 나라 사람들에게 트러스트가 행한 것들, 즉 정직한 사람들을 그들의 사업에서 몰아낸 것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딜로렌조는 셔먼법은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명분과 달리 가격을 낮춰, 즉 가격경쟁을 통해 더 많은 소비자로부터 자신의 제품이 선택되도록 하려는 행위 자체를 금지하고자 한 법이라고 본다.이런 의심도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그렇게 가격을 내려서 경쟁자가 없어지면 다시 소비자들에게 엄청나게 비싼 가격을 받고자 하는 의도는 없었는지 혹은 그렇게 하지는 않았는지. 실제 현실 세계에서 그런 사례가 발견된 적은 없다. 그리고 경제이론은 왜 그런 사례가 발견되기 어려운지 설명하고 있다. 생산량을 줄여 소비자들이 매우 높은 가격에 사도록 하려는 순간, 새로운 시장진입이 법으로 금지돼 있지 않은 한, 새로운 기업이 등장한다는 것이다.딜로렌조는 아주 흥미로운 추론을 하고 있다. 1890년 10월1일자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보도했다. ‘선거 캠페인에 기부한 사람들의 관세 법안이 이제 대통령의 사인을 기다리고 있다.’ 정치시장에서의 선거기부금이 관세율을 올려 기부자들의 국내시장을 보호해주는 법안과 일종의 거래가 됐는데, 셔먼법 제정은 이런 관세율 인상 법안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 이 관세인상 법안이 잘 보이지 않게 했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이는 제임스 뷰캐넌, 고든 털록 등의 선도로 시작된 공공선택 경제학의 결론과 잘 부합하는 설명이 아닐 수 없다.김이석 < 시장경제제도 연구소장 >

美 반독점법, 1890년 제정된 ‘셔먼법’이 시초…스탠더드오일은 34개社로 분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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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반(反)독점법의 역사는 ‘반독점의 대헌장’으로 불리는 지난 1890년 ‘셔먼법’에서 시작한다. 우월적 시장지위 남용, 담합, 각종 제휴 등을 통해 경쟁을 제한하거나 회피하는 행위는 불법이라는 게 이 법의 기본정신이다. 이후 1914년 셔먼법을 보완하는 크레이턴법과 연방무역위원회법이 잇따라 발효됐다.반독점법에 의해 거대 기업이 쪼개진 대표적 사례는 1911년 미 연방대법원의 스탠더드오일 분할 명령이다.스탠더드오일 창업자 존 데이비슨 록펠러는 단순한 사업보다는 독점에서 얻은 이익이 훨씬 크다는 것을 일찌감치 간파했다. 그래서 여러 정유회사가 스탠더드오일에 주식을 신탁하는 트러스트(기업연합) 방식으로 덩치를 키워 미국 석유 시장의 88%를 차지했다.그 과정에서 연합을 거부하는 정유소는 덤핑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무자비하게 망하게 했다. 미국 철도 업계의 가장 큰 화주라는 입장을 활용해 경쟁자에게 차별적인 운송료를 적용하도 했다. 이런 식으로 록펠러는 ‘석유왕’이자 미국 역사상 가장 부유한 인물이 됐다.이렇게 큰 회사가 작은 회사를 망하게 하고 경쟁을 회피하는 일이 생기자 존 셔먼 상원의원이 반독점법을 발의했고 1911년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스탠더드오일은 34개 회사로 분할하게 된다. 34개 회사가 각자 경쟁하라는 의미다. 이렇게 태어난 회사들이 엑손, 모빌, 셰브런 등이다. 그해 미국 담배 시장의 90%를 차지하던 아메리칸타바코도 16개 회사로 쪼개졌다.1920년대에는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의 US스틸이 셔먼법의 타깃이 됐다. 미국 철강의 3분의2를 장악했지만 연방대법원이 “덩치가 크다고 다 독점은 아니다”라고 판결해 위기를 모면했다.1942년에는 미국 방송산업을 독점했던 NBC가 강제 분할됐고 1984년에는 미국 통신 업계를 독점했던 AT&T도 지역 사업별 7개의 ‘베이비벨’로 쪼개졌다.기술기업들의 반독점 문제가 부각된 것은 1980년대 이후다. IBM은 13년간 조사와 재판을 받은 끝에 1982년 법무부의 고소 취하로 사건이 끝났고 인텔에 대한 반경쟁행위 조사는 1999년 인텔과의 타협으로 결말이 났다.마이크로소프트(MS)는 인터넷익스플로러를 윈도 제품에 기본 탑재해 독점 문제를 일으켰다가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면 법 적용을 면제해주는 ‘반독점면제’ 제도를 활용해 빠져나갔다. 전자상거래 아마존의 경우도 “싸게 파는 것은 소비자의 이익을 해하지 않는다”는 논리로 반독점 이슈에 대응하고 있다.현재 실리콘밸리 신흥 테크기업들은 기발한 사업모델과 독보적 기술을 통해 ‘시장을 독차지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풍토다. 동종 업계의 유망 기업은 크기 전에 인수해 싹을 자르기도 한다. 본질적인 사업경쟁력뿐 아니라 경쟁 자체를 제거하는 것 또한 상당수 기술기업의 주요 목표다./맹준호기자 [email protected]

록펠러는 반독점 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Lawrence W. Reed / 2021-06-25 / 조회: 4,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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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장경제에 대한 여러 오해 가운데 하나는 “자유방임”이 독점을 장려한다는 믿음이다. 대중에게 친숙한 자본주의 치하에서 대기업은 규모가 작은 기업을 인수합병하여 몸집을 키워 나가고, 제일의 기업이 될 때까지 경쟁을 계속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일화 중 하나가 1800년대 후반 John D. Rockefeller의 스탠더드 오일 일화이다. 1899년 스탠더드 오일은 미국 석유의 90%를 정제하며 아주 높은 시장 점유율 수치를 기록했다. 이후 경쟁사들이 꾸준히 노력하여 시장 점유율을 빼앗아 갔지만, 스탠더드 오일의 높은 시장 점유율은 “산업 문어발”이라는 낙인과 몇 가지 오해를 야기했다.

스탠더드 오일을 둘러싼 오해에 대해서 서술하기 이전에, 독점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겠다. 독점에는 이론적으로 강압적 독점과 효율적 독점, 두 가지 종류가 있으며 전자는 애덤 스미스의 주장에서 비롯한 “정부의 독점적 특권 부여”이다. 정부가 강압적인 독점을 야기하기 위해 특정 기업 외에는 사업을 방해하거나 비용을 막대하게 늘려 독점을 장려하는 것이다. 반면에, 효율적 독점 방식은 기업이 고객에게 최대한의 효용을 제공함으로써 높은 점유율을 쌓아가는 방식이다. 정부로부터 어떠한 특혜 혹은 도움을 받지 않고, 다른 기업과 자유롭게 경쟁하며 성장하는 방식이다.

록펠러의 수많은 오해 중 첫 번째는 “악독한 가격 인하”이다. 소위 “치킨 게임”이라고 일컫는 가격 경쟁은 희생자가 파산하거나 매진될 때까지 가격을 깎는 방식이다. John. S. McGee 교수는 지적 물질에 대한 록펠러의 혐의는 “논리적으로 불충분”하며 동시에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거를 거의 혹은 전혀 찾을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또한, 희생자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증언을 조사해본 결과 대부분 거짓이며, 동시에 이 사람들 중 일부는 후에 새로운 정유소를 개업했고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에 다시 도전했다.

두번째 오해는 비평가에 의한 것이며, 록펠러가 경쟁사를 시중보다 저렴한 가격에 인수 혹은 합병함으로써 그들을 억압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스탠더드 오일은 경쟁업체의 기업 판매를 강요할 법적 권한이 없었으며 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정유공장의 시세를 지불해야 했다.

록펠러에게는 시장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카르텔을 결성했다는 혐의도 존재한다. 카르텔은 담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록펠러를 비롯한 소수의 생산기업들이 상품의 가격을 시장 가격보다 높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가격을 높이기 위해 생산량을 낮추는 것을 카르텔 구성원들이 받아들인 경우이더라도 그들이 배신하는 경우 또한 생각해야 한다. 경쟁사의 고객한테 비밀리에 리베이트나 할인 등 기타 “거래”를 제공함으로써, 가격을 낮추는 동시에 시장 점유율을 높이며 많은 이익을 창출할 수 있다. 카르텔 내부의 배신 외에도, 카르텔 구성원이 아닌 경쟁자들로부터 방해를 받을 수도 있다. 경쟁사들은 카르텔에서 결정한 가격을 준수할 의무가 없으며, 실제로 카르텔이 결정한 것보다 낮은 가격을 강점으로 여긴다. 즉, 록펠러가 카르텔을 조성했다는 주장은 경제적인 원칙에 의거해서 잘못되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록펠러가 자신의 등유를 운반하는 철도 회사로부터 상당한 리베이트를 챙기며 다른 정유 회사들에 비해 불공평한 이득을 받았다는 주장이 있다. 결론적으로, 록펠러가 리베이트를 받은 것은 사실이나, 시대적인 배경을 고려하면 그때 당시 대부분의 정유사들도 철도 회사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았다. 또한, 록펠러는 석유 수송을 위해 철도가 아닌 자신의 송유관에 더 의존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즉, 당시의 리베이트는 관행이었으며 스탠더드 오일의 주 운송 수단은 송유관으로, 철도회사를 고용함으로써 오히려 경제적인 가치를 창출했다고 할 수 있다.

스탠더드 오일은 국내외로 많은 경쟁자들이 존재했으며,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인 가격으로 상품을 제공했기 때문에 높은 시장 점유율을 차지할 수 있었다. 스탠더드의 제품(등유) 가격은 꾸준히 하락했지만, 품질은 꾸준히 향상되었으며 총 생산량은 해마다 증가했다. 이는 생산량을 제한하고 가격을 올리는 악독한 독점자의 행동이 아니다.

본 내용은 아래 기사 및 칼럼 내용을 요약 번역한 내용입니다.

Lawrence W. Reed, Rockefeller’s Standard Oil Company Proved That We Needed Anti-Trust Laws to Fight Such Market Monopolies, 23 January, 2015

출처: https://fee.org/articles/41-rockefellers-standard-oil-company-proved-that-we-needed-anti-trust-laws-to-fight-such-market-monopolies

번역: 남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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