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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 브런치

과학과 뉴에이지 열풍에 사라진 마법사 | 현대인들은 마법사 하면 동화속 판타지에 나오는 상상속의 인물이라고 … 실제 ‘마법사’ 라는 종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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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4/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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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 – 나무위키:대문

재미있는 사실은 실제 중세에 마법사라는 직업이 존재했다. 물론 진짜 마법을 부린 건 아니고 남들보다 어떤한 이유로 지혜나 지식이 높아 이를 통해 아픈자에겐 약을 처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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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4/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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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실존 마법사들 [1] – 네이버 블로그

역사 속 실존 마법사들 [1] … 창세인의 마법 공방 Chapter. … 영화의 시대는 실제 임호테프가 활동했던 제 3왕조보다 1000년도 더 뒤인 제 19왕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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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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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가지 기괴한 마법의 역사

해리 포터: 마법의 역사에서 소개할 이야기를 연구하고, 전시품을 고르고, … 중세의 여러 동물 우화집(실제 및 상상의 동물에 관한 백과사전)에서 불사조의 생태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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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8/1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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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우 “비밀 마법 학교 실제 있어… 한국서 나만 가고 이은결은 …

마술사 최현우가 한국 최초로 마술학교 ‘호그와트’ 출신이라고 밝혔다. 최현우는 지난 1일 방송된 MBC 에브리원 예능 프로그램 ‘비디오스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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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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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게임을위한 마술 지팡이. 마법사 주문 – Google Play 앱

마술 게임을 위한 마술 지팡이: 불덩이 또는 실제 전기 구슬의 마법과 같은 모든 종류의 마법을 알고 있는 마법사 학교의 암흑 마법사가 되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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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0/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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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도 믿기 힘든 카메라에 찍힌 초능력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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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실제 마법사

  • Author: Miss테리의 미스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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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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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현대인들은 마법사 하면 동화속 판타지에 나오는 상상속의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마법사라면 반지의 제왕의 ‘간달프’ 나 ‘해리포터’ 식의 과장된 마법사들을 연상하곤 하지만 실제 과거 인간종 중에서 (현대의 눈속임 쑈를 하는 엔터텐인먼트 마술사 개념이 아닌.) 실제 ‘마법사’ 라는 종이 있었다.

과거 마법사들은 현대인들이 생각하듯, 선과악으로 나누어 용을 부리고 불을쏘는 존재가 아닌 정신세계의 길잡이로 제자들을 끌어주는 스승으로서 그리고 대중들에게 인생을 조언해주는 것이 마법사들의 역활이었다. (물론,고대에는 흑마술로 어둠의 마법사도 존재했다고 한다.) 현대와서 마법사들의 마법은 과학자들의 물리학에 그 자리를 내주게 돼었는데 고대의 마법사들은 아무런 과학 지식없이 정신세계만으로 현대 물리학이 추구하는 ‘양자역학 ‘ 이나 ‘평행우주’ 같은 지식을 보유하였으며 그 가르침을 제자들에게 전파 하였다.(비록 표현은 달라도 핵심은 같다.)

마법사들의 명맥이 끊어지게 된것은 그리 오랜 과거가 아니다. 급속도로 팽창되기 시작한 산업혁명 물질문명의 홍수속에서 서서히 설자리를 잃어 갔으며 홍보매체를 무기로 물밀듯 밀려오는 종교, 뉴에이지 사상에 밀려 사람들은 마법사들을 잊기 시작하였다.

정신세계를 탐구하는 사람들은 종교 아니면 외부 존재로부터 가르침을 받는다는 상업적인 채널러(서양의 무당)에 유행처럼 몰려들었고 극소수 제자들 사이에만 전수되던 마법사들의 가르침은 점차 인간종 사이에서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다.

이들의 존재는 마지막 그들의 제자들이 남긴 가르침만이 근근히 전해져 오는데 고대 부터 이어져온 선배 마법사로 부터 마법의 비밀을 전수해온 인디언 마법사 ‘돈 후앙’이 대표적 인물이다. 돈 후앙은 스스로를 마법사라고 칭하였으며 다른 인물들은 요기 내지는 구루 등으로도 불리운다.

이들에 대한 행적을 우리가 알수있는것은 기록에 의존할수 밖에 없는데 막연히 한두사람의 불확실한 증언에 의존하는것이 아닌 실제 이들에 대한 1890년대 쓰여진 서양 탐험대의 밀착취재 여행기 베어드 T. 스폴딩이 발표한 ‘히말라야 성자들의 삶과 가르침 -초인생활 (Life and teaching of the masters of the far east) 은 서양에서 큰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 저자 스폴딩을 포함한 11명의 미국인들은 1894년부터 1897년까지 3년6개월간 이들을 히말라야에서 밀착취재 하면서 자신들이 목격한 이들의 공중부양,물질창조, 유체이탈, 원격이동, 부활과 치유등을 상세히 기록하게 된다.이 책에서는 실제 미래 물질문명 사회에 대한 예언들과 후에 밝혀진 양자역학적 지식들에 관한 이야기들도 적혀있다. 탐험대중 3명은 3년6개월의 취재를 마친후 이들과 같이 되기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며 그들을 찾아 다시길을 떠났다고 알려지며 스폴딩은 죽기전까지 강연등을 통해 자신의 경험담을 전파하였다. 그가 집필한 책은 기존 죄의식을 바탕으로 한 기독교의 관점을 바꾸는 뉴에이지 열풍의 시초가 되었으며 인도를 영적 신비의 성지로 전세계인들에게 각인되게 만드는 역활을 했다.

티벳의 대표적 마법사 (티벳의 경우는 ‘성자’ 라는 표현으로 불리운다.)밀라레빠의 경우도 그가 지은 노랫말을 비롯 많은 기록들이 남아있어 흔적을 찾기가 어렵진 않다.

밀라레빠는 처음엔 개인의 복수를 위해 흑마술을 배웠다가 잘못을 깨닫고 보다 깊은 깨달음을 위해 정진하였는데 그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을 본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 하였다고 한다. 비교적 현대적 시기에 알려진 인디언 마법사 돈 후앙의 가르침은 제자였던 카를로스 카스타네다안 학자에 의해 기록이 남아있게 된다.

이 마법사들의 특징은 절대 대중들에 모습을 보이지 않은채 은둔하며 한두명 직계 제자들에게만 자신의 가르침을 전수하였단 점이다. 이점이 이들 마법사들을 대중에게서 완전히 사라지게 한 요소인데 그 사이 대중들은 엔터테이너 구루를 자처하는 ‘오쇼 라즈니쉬’ 의 말장난 스타일에 열광하였고 인스턴트 명상이 대대적으로 유행하게 되면서 실제 우주의 비밀을 제자들에게만 전수하던 마법사들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만다. 대중들이 보기엔 멸종됐다고 봐도 과언 아닌데 그 사이 대중을 끌어모으는데 목적을 둔 종교 뉴에이지 영성 지도자들이 우후죽순 단체를 이끌고 나서면서 영성계는 서로간 ‘수준’차를 가리는 난장판이 되게 된다.그리고 ,그런 원숭이들의 난장판을 비꼬는 일본의 철학자 무묘앙 에오가 내뱉은 독설 ‘에오이즘’ 사상까지 등장하기에 이른다..(한국에서도 한 노인의 증언을 바탕으로 하는 ‘단’ 열풍이 불어 많은 단체가 생겨났다.)

많은 추종자를 거느린 어둠의 타오(Tao 우리말로 ‘도’)에오이즘의 핵심은 마냥 뺑뺑이만 돌리는 우주에 대한 독설과 생명의 무가치함, 모든 영성인들에 대한 조롱으로 ‘어떻게 하면 최대한 독자들을 자살로 몰고갈수있나’를 목적으로 삼는다고 ‘에오가 본 얼간이들’ 이란 저서에서 밝히고 있다. 에오가 보는 관점에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들(붓다,예수,달마등..) 포함 , 모든 영성인들의 행위는 우주의 먹이사슬에 놀아나는 두발달린 원숭이들의 우스꽝스런 짓일뿐인데 정신세계를 탐구하는 사람중에 기존의 가르침에 만족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사상을 궁극의 ‘도’사상으로 추종하고 있다. (반면, 그의 사상에 극도의 혐오감을 보이는 부류가 대부분이다.)에오는 그 스스로 젊은 나이에 자살함으로써 그가 설파한 에오이즘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에오이즘은 이후, 전세계를 열광시킨 워쇼스키 남매의 3부작 영화 ‘매트릭스’ 의 사상과도 일치한다.)

마법사의 종말 시대

고대의 마법사들의 세계를 우리는 우리가 알수있는 마지막 마법사 ‘돈 후앙’ 의 제자 카를로스 카스테네다(1925~1998 페루태생 미국인 인류학 박사)가 남긴 기록을 통해 대략 알게되는데 (총11권의 저서로 집필한 그의 기록은 17개국에 번역돼어 8백만부가 팔려나갔다.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만큼 그의 증언이 연대별로 모순이 있고 허구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그들은 현대 과학이 이제서야 의문을 갖기시작한 평행우주를 넘나드는 법을 알았고 인간의 육체가 하나의 환영이란것을 가르켰다.

현대에 이들 마법사가 설자리가 없어진 근본 이유를 살펴보면 대중들은 물질문명에 취해 영적 세계를 등한시 하고 그나마 영적인 부분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사람들 에너지를 끌어모으기 급급한 저급한 대중문화 영성단체로 몰렸기 때문인데 마법사들의 종말은 현대 인간들이 영적 세계를 진단하는 눈이 에오가 말한 두발달린 원숭이 수준으로 극히 무지하다는것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현상이다. 마법을 믿지않는 현대인들에게 마법사들은 점점 신화에 등장하는 가상의 존재로서만 남게 됐고 실제 고대시대부터 흑마법을 부리기도 했던 실제 마법사들의 명맥은 돈 후앙 이후 기록이 완전히 끊기게 된다. 마법사…그들은 정말 멸종 하였을까..

*각 인물들의 구체적 자료 시대등은 차후 조사해 수정 기필하도록 할 예정이며 일단은 말하고자 하는 핵심만 …

과거 동양에도 붓다를 비롯한 ‘사명대사’ ‘달마’ 등 고승들이 마법 (한국용어로는 도술)사였다는 설화들이 있긴 한데 그 마법의 실체에 대해 가르키거나 기록한 근거자료가 전혀 없기에 논의대상에서 제외 하기로 하며 2천년 전의 ‘예수’ 나 한국의 ‘강증산’역시 마법을 부렸다는 기록들은 있으나 마법사가 아닌 민중운동 정치가로서 각자 거대한 파벌을 형성하였고 수많은 종교적 논쟁의 대상이기에 언급하지 않도록 한다.

* 가장 근대에 기록을 남긴 위대한 마법사 ‘다스칼로스’는 이 포스팅을 작성하고 몇년후에 알게 되었으므로 이 포스팅에는 언급이 없다 .

eRa 2 – Don’t U (Audio):

역사 속 실존 마법사들 [1]

창세인의 마법 공방 Chapter. 1 – 마법의 여명 (5)

역사 속 실존 마법사들 [1]

신-레케-우닌니

(? ~ ? – BC 1300년 경으로 추정)

바빌로니아의 3번째 왕조인 카사이트 왕조(BC 1570년 ~ BC 1153년) 대의 대서기관이자 신관. 우르, 우루크, 시파르, 니푸르 그리고 바빌로니아에서 다양한 형태로 구전되어 오던 ‘길가메쉬 서사시’를 하나의 판본으로 정리한 장본인다.

궁중의 아시푸(ašipu: 고문서와 의식에 정통하고, 귀신을 쫓는 일을 하는 구마사제)였던 그는 단순히 전해져 오는 다양한 버전의 서판들을 하나로 편집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서사시에 자신의 구마사제로서의 경험과 의례를 첨가하였다. 본래 수메르에서 전승되던 길가메쉬 서사시가 길가메쉬 왕의 영웅적인 행보와 노력을 칭송하는 성격이 강하다면다면, 신-레케-우닌니의 길가메쉬 서사시는 그의 지혜와 자아실현, 그리고 죽음에 대한 관념에 보다 초점을 두고 있다.

또한 그는 수메르어로 된 서사시를 바빌로니아어로 개작하면서 amāru(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를 보는 것), idu(사제가 비밀스러운 지식을 체득하는 것), niṣirta(신들의 비밀), mānaḫu(고행) 등의 신전 용어를 사용해 길가메쉬의 성장을 구마사제의 수련에 비유하기도 했다.

임호테프

(BC 2650년 ~ BC 2600년)

– 그림 출처: http://cafe.naver.com/yugiohmaker/74095

이집트 제 3왕조(BC 2686년 ~ BC 2613년) 조세르 왕 대의 인물로, 조세르 왕의 피라미드에서 발견된 석상에서는 그를 ‘파라오의 고문, 하이집트 왕국의 회계, 상이집트 왕국의 제 2인자, 위대한 재상, 귀족, 헬리오폴리스의 대신관, 건설자, 목수, 조각가, 도예가’라는 으리으리한 문구로 묘사하고 있다.

위의 명문으로 알 수 있듯이 그는 현실 정치에서의 재상이기도 했지만, 헬리오폴리스에서 태양신 라에 대한 제사를 주재하는 대신관이기도 했다. 당시 신의 살아있는 화신이자 신들에 대한 모든 영적 활동을 주재하는 것은 바로 왕이었다는 점과, 이집트 제 3왕조가 라보다는 호루스와 세트를 더 숭배했다는 점을 볼 때, 그는 정말 이집트에서 전례가 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또한 의학, 천문학, 수학, 철학, 연금술 등 다양한 방면에 능한 뛰어난 대마법사로, 기원후 3세기 경의 이집트 역사가 마네토는 그를 칭해 ‘신의 경지에 이른 의술가이자 문필가’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이집트 최초의 피라미드인 조세르 왕의 피라미드를 세우고, 파피루스 종이를 발명한 것 역시도 그라고 알려져 있다. 후대에 와서 그는 더욱 신격화되어 크눔 신이나 프타 신과 세크메트 사이에 낳은 자식이라는 이야기가 나왔고, 이집트의 네페르툼, 토트, 심지어 그리스 시대에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 신과 동일시되기도 했다.

현대 와서는 영화 ‘미이라’ 왕의 아내를 뺏고 현대에 부활해 온갖 저주를 뿌리는 사악한 인물로 묘사되기도 했으나, 영화의 시대는 실제 임호테프가 활동했던 제 3왕조보다 1000년도 더 뒤인 제 19왕조 시대로 실제 임호테프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람세스 2세

(BC 1303년~BC 1213년)

<문명5에서 이집트 문명의 군주로 등장하는 람세스 2세>

이집트 제 19왕조의 3대 파라오로 이집트의 황금기를 이끈 군주이자, 이집트 전역에 가장 많은 건축물과 자신의 석상을 남긴 자뻑왕.

본래 제사와 정치를 총괄하던 최고의 인격신이었던 파라오의 위상은 기원전 2600년인 제 4왕조 시대를 거치면서 다소 변화했다. 파라오가 제정일치의 최고 지도자임에는 변화가 없지만 제사를 포함한 영적인 의식의 많은 부분을 신관에게 이양한 것이다. 제 18왕조 시대에 와서는 그러한 신관들의 권력이 마침내 파라오를 위협할 정도가 되었다. 제 18왕조의 13대 파라오인 아크나톤은 당시에 팽배해있는 아몬 신앙과, 그것을 등에 업은 아몬 사제들의 권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이집트에서 처음으로 다신교를 금지시키고 태양신 ‘아톤’을 유일신으로 내세워 잃어버린 권력을 되찾고자 하였다. 비록 아케나톤의 사후 아톤 신은 부정되고 아몬 신앙이 부활하는 등 대혼란이 찾아왔으나, 이후 19왕조의 호렘헵이 혼란한 정국을 평정하고 새로운 파라오로 등극함으로서 파라오의 권력은 상당부분 다시 수복되었다.

람세스 2세는 이런 시대에 태어나 왕성한 대외 원정으로 자신의 위대함을 널리 과시하였다. 특히 유명한 전투는 히타이트 제국과 벌인 카데시 전투다. 신들의 이름을 딴 ‘아몬’, ‘라’, ‘푸타하’, ‘세트’의 4개 군단으로 대규모 북벌을 단행해 아시아에서 영향력을 넓혀가던 람세스는 히타이트의 첩자에게 속아 카데시 부근에서 히타이트 군에게 포위당한다. 여기서 이집트 측의 기록에선 람세스가 자신의 몸에 직접 신을 소환해 마치 반지의 제왕의 사우론 처럼 단신으로 히타이트의 대군을 쳐부쉈다고 한다.

< 아놔 람세스 강신 개사기 너프 좀요 >

물론 히타이트 측의 기록에 따르면 평범하게(?) 람세스의 원군이 도착해 양측이 한바탕 교전을 치른 끝에 무승부로 물러났을 뿐이다. 어쨌든 람세스 2세의 치적과 대규모 선전 사업으로 인해 그의 대부터 파라오의 위상은 다시끔 하늘을 찔렀다. 제 20왕조의 람세스 4세는 파라오인 자신의 무한한 건강과 대를 이은 영원한 통치를 오시리스 신에게 무려 ‘명령’할 정도… 안타깝게도 제 20왕조를 끝으로 파라오의 권력은 다시 테베의 아몬 대사제단에게로 넘어가, 이집트 왕국은 아몬 대사제단이 통치하는 상이집트와 타니스 정권이 다스리는 하이집트로 분열되었다.

베롯소스

(? ~ ? – BC 300년 경으로 추정)

신바빌로니아의 신관.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 중 한 명이자, 셀레우코스 왕조의 시조인 셀레우코스 1세의 명에 따라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역사서인 ‘바빌로니아지’ 3권을 저술했다. 수메르, 아카드, 바빌로니아로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적인 별점(신바빌로니아 왕가의 이름을 따 ‘칼데아 별점’이라고 부른다.)을 그리스에 전파해 서양 점성술의 장을 연 장본인으로도 알려져 있다. 또한 그의 기록 중에 바벨탑에 관한 내용이 있고, ‘방주가 있는 곳에 올라간 사람들이 배의 송진을 긁어 악마를 물리치는 부적으로 삼았다.’라는 글귀가 있어, 성경의 진위에 대한 그리스도교 측의 근거로 거론되기도 한다.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

Ἑρμῆς ὁ Τρισμέγιστος

(? ~ ?)

<페르소나3에서 이오리 준페이의 각성 페르소나인 '트리스메기스토스'>

그리스의 헤르메스 신과 이집트의 토트 신이 혼합되어 형성된 반신적 존재로 본명은 헤르메스-토트이다. 별칭은 포이만드레스(Poimandrēs)이며, 라틴명은 메르큐리우스(Mercurius). 트리스메기스투스라는 칭호는 그리스어로 ‘세 번 위대하다’라는 뜻이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실존 인물은 아니며 우주의 세가지 진리인 연금술 · 점성술 · 신성 마법을 상징하는 헤르메스주의의 반신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헤르메스주의 학자들에 따르면 그는 모세와 같은 시대인 기원전 1300년 경에 실존했던 인물이며, 그의 손에 의해 헤르메스주의의 주요 경전인 42권의 책이 쓰여졌다고 한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코르푸스 헤르메티쿰(Corpus Hermeticum)’, ‘에메랄드 서판(Emerald Tablet)’, ‘카발리온(Kybalion)’이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 믿었던 ‘고대 신학(Priscatheologia)’의 계보 따르면 그의 가르침은 오르페우스, 아그라오페모스를 거쳐 피타고라스에게 전해졌으며, 다시 그의 제자인 피롤라오스에게서 플라톤으로 계승되었다고 한다. 이 기록을 그대로 믿는다면 헬레니즘 시대 이후의 모든 신비주의 사상은 물론,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파생돼 중세와 그 이후 현대까지 이어지는 모든 서양 철학은 바로 헤르메스-트리스메기스투스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헤르메스주의의 저서들은(헤르메스-트리스메기스투스가 직접 썼다고 전해지는)주로 알렉산더의 정복 이후인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3세기까지의 헬레니즘 이집트에서 발견된다. 헤르메스주의자들은 이것이 후대의 학자들이 헤르메스-트리스메기스투스의 저서들을 정리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17세기의 제네바 출신 문헌학자인 카소본은 ‘코루프스 헤르메티쿰’의 저서 17권을 정밀히 연구한 결과, 이 책들이 후기 그리스어로 기록되어 있는 점,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에서 헤르메스-트리스메기스투스에 대한 언급이 일절 없는 점, 성경의 내용과 유사한 점이 있는 점 등을 들어 헤르메스주의 저서들은 로마에서 그리스도교가 정립된 이후에 쓰여졌다고 주장하였다.

현재는 헤르메스-트리스메기스투스는 실존 인물이 아니며, 헬레니즘 이집트 시대에 이집트와 그리스의 문화가 융합되면서 발생한 혼합주의의 산물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며, 헤르메스주의 자체가 고대 이집트 신앙에 당시 유행하던 그리스 플라톤주의나 신피타고라스주의, 그노시스주의에 더해 칼데아의 신탁, 조로아스터교, 점성술, 연금술, 유대교의 카발리즘 그리고 그리스도교까지 여러 신비주의 사상이 짬뽕되어 생긴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상의 근간에는 분명 어떠한 교조적 인물이 있었을 것이다. 특히 ‘코르푸스 헤르메티쿰’은 플라톤의 대화편 처럼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와 다른 인물들의 대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어떤 시조적 인물의 존재를 짐작케 해준다. 또한 기원전 3세기 경에도 헤르메스의 이름을 딴 점성술이나 연금술의 문헌이 있어, 초기 헤르메스주의의 흐름이 최소한 기원전 3세기부터는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나라다

नारद

(? ~ ? – BC 500년 경으로 추정)

바가바타, 우파니샤드 등의 인도 문헌에 등장하는 전설 속의 인물로 고대 인도의 7선인(Devarsi) 중 한 사람. <리그 베다> 안의 여러 찬가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바가바타 푸루나의 기록에 의하면, 그는 본래 천상계의 악사인 간다르바였으나 신성 모독의 죄를 지어 다음 생에는 최하급 계급인 수드라로 환생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그는 브라만 사제들의 시중을 드는 시녀의 아들로 태어났고, 덕분에 브라만들의 영적 지식을 공유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어머니와 사별한 후 그는 수행자가 되어 근원의 진리를 찾기 위해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닌 끝에 한 명상 도중 비슈누의 형상을 보게 되었다. 마침내 깨달음을 얻은 나라다는 이후 현계와 이계를 마음대로 오가는 능력을 얻어 신들의 정보원 역할을 하였으며, 사후에는 위대한 영혼(Mahāpuruṣa)로 추앙되었다.

그에 대한 기록은 문헌마다 조금씩 달라 때로는 브라흐마의 이마에서 태어난 프라자바티의 한 사람, 카누바라 일족의 후예, 비슈누의 화신 중 하나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스리마드 바가바타에서의 그는 마하티라는 이름의 비나(인도 악기의 일종)를 들고 다니며 그 비나의 힘으로 조화를 부리는 음공 마스터로 나오기도 한다. 어찌됐건 그는 고대 인도에서 실존했다고 믿어지는 가장 유명한 성자 중 한 명이며, 그의 가르침은 이후 비야사에게 전수되어 박티 수트라(Bhakti Sūtra)를 비롯한 여러 경전의 토대가 되었다고 한다.

파탄잘리

पतञ्जलि

(? ~ ? BC 200년 경으로 추정)

고대 인도의 위대한 현자 중 한 명으로, 힌두교의 정통 6파 중 요가 학파를 창시하였다. 요가라는 수행법 자체는 그가 탄생하기 전부터 있어왔으나, 그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하나의 학파로 만든 것은 바로 그였으며, 그가 쓴 <요가 수트라>는 라자 요가(왕의 요가)라고 불리며 <하타요가-프라디피카>, <바가바드-기타>와 함께 정통 요가의 3대 경전 중 하나로 꼽힌다.

인도 전설 속의 파탄잘리는 종종 뱀의 왕 아난타나 셰샤와 동일시되곤 하며, 그의 탄생 설화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의 어머니는 고니카라는 여인이었는데, 어느 날 두 손을 모으고 안잘리(anjali) 무드의 자세로 기도하던 중 하늘에서 그녀 앞으로 한 마리의 뱀이 떨어져 아기로 변했다. 따라서 그녀를 그 아이를 파탄잘리(Pat: 떨어지다, Anjali: 기도하는 모습)라고 이름 짓고 거두어 기르게 되었다. 파탄잘리의 생몰년에 대해선 붓다보다 약간 후의 시대인 BC 500년으로부터 AD 400년 정도까지 이견이 다양하다. 통상 BC 200년 정도를 정설로 보고 있다.

파탄잘리는 요가의 수행법을 8가지 단계로 설명하는데, 그 8 단계란 바로 금계, 권계, 아사나, 호흡법, 프라치아하라, 다라나, 디야나, 삼매이다. 금계란 요가 수행자가 지켜야 하는 5가지 계율로, 살인, 거짓말, 도둑질, 간음, 탐욕을 금하는 것이다. 권계란 요가 수행자들에게 권고되는 5가지 계율로, 정화, 만족, 고행, 독경, 염신이다. 아사나는 요가의 체위법으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요가의 고난이도 자세들은 바로 이 아사나에 속한다. 다음 단계인 요가 수트라의 호흡법을 ‘우자이 호흡’이라고 부르는데, 길게 들이쉬고, 길게 참고, 길게 내쉬는 호흡법이다. 흐라치아하라는 감각을 제어하는 것을 말하며, 다라나는 자신이 원하는 신체 부위에 정신을 집중하는 것을 말한다. 디야나는 참선, 명상을 뜻하며, 삼매는 요가의 궁극적인 경지로 깨달음의 상태를 일컫는다. 파탄잘리는 특히 약 40여 종류의 요가 체위법인 ‘아사나’를 고안함으로서 그동안 정적인 면이 강했던 요가를 역동적으로 바꾸었으며, 이러한 그의 가르침은 이후 아쉬탕가(8단계) 빈야사 요가라는 형태로 현대에까지 남아 있다.

파탄잘리는 또한 요기로서의 업적 뿐 아니라 철학자와 문법학자로서의 업적도 남겼는데, 고대 산스크리트어의 문법 주해서인 <마하바스야>가 바로 이 파탄잘리의 저서를 알려져 있다. 이 마하바스야에서 그는 언어와 그 의미의 관계는 영원불멸하다는 어상주론(語常住論)을 주장하기도 했다.

파탄잘리는 고대 인도의 현자 중에 가장 인기가 좋은 인물 중 하나이며, 현재까지도 마하리쉬라고 불리며 인도인들 사이에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다.

추연

鄒衍

(BC 305년 ~ BC 240년))

중국 전국시대의 제자백가 중 한 사람으로 음양가(陰陽家)를 창시한 인물이다. 그가 태어난 제나라는 전통적으로 미신, 주술, 신비주의적 경향이 강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기존의 음양이원론과 오행 사상을 연구한 추연은 훗날 도교 및 중국 신부주의의 근간이 되는 음양오행사상을 만들었다.

여러 나라를 전전하면서 이리 채이고 저리 채였던 공자와는 달리, 추연은 제자백가 중에서 상당히 인기가 좋았던 듯 하다. 조나라의 평원군은 걸어가면서 옷자락이 자리를 쓸 정도로 그에게 경의를 표했으며, 연나라의 소왕은 빗자루로 길을 쓸면서 그의 길을 인도하고, 갈석궁에 그를 모셔 스승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는 <추연> 49편과 <추자종시> 56편의 저서를 지었다고 전해지며, 왕조의 흥망이 오행의 덕의 운행에 달려 있다는 ‘오덕종시설’과 세계는 81주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국은 그 중 9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는 ‘적현신주설’ 등을 주장했다.

또한 그의 마법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일화로는, 한 번은 연나라의 혜왕이 그를 옥에 가둔 일이 있었는데, 추연이 하늘을 올려보며 통곡하자 여름이었는데도 서리가 내렸다는 <회남자>의 기록이 있다.

서복

徐福

(BC 255년 ~ ?)

중국 진시황 대의 유명한 방사이자 사기꾼으로 <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인물로 또다른 이름은 서불(徐巿). 서복이 태어난 기원전 3세기에는 동양판 민간 천문, 역법, 관상, 점술 기술인 방술이 널리 퍼져 있었다. 방술에는 크게 의술 분야인 경방, 성생활에 관한 방중, 그리고 불로장생에 이르는 비법을 연구하는 신선의 세 분야가 있었는데, 서복은 바로 이러한 신선 사상의 권위자였던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221년 중원의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은 죽지 않고 오래오래 자신의 제국을 다스리고 싶은 욕심에 전국 각지에 신하들을 보내 불로장생의 영약을 찾아오게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신하들이 번번히 실패하거나 도망치자, 진시황의 곁에서 그의 마법 자문(?)을 하는 궁중 방사이던 서복은 기원전 219년 진시황에게 상소를 올려 직접 불로초를 구하러 갈 것을 자원했다.

<사기> 회남형산열전에 따르면, 우선 한번 앞바다를 찍고 온 서복은 돌아와 진시황에게 다음과 같이 고했다고 한다.

“신이 바다에 나가서 커다란 해신을 만났는데, 그가 이르길 ‘진왕(秦王: 진시황을 가리킴)의 예가 박해 약을 볼 수는 있으나 취하지는 못할 것이다’라고 하며 신을 데리고 동남쪽의 봉래산으로 갔습니다. 그래서 신이 ‘마땅히 어떤 예물을 바쳐야 합니까?’라고 묻자 ‘양가집 사내아이와 계집아이, 그리고 백명의 장인이 만든 물건을 바치면 얻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진시황은 서복에게 3천의 동남동녀와 금은보화, 그리고 그것들을 실어 나를 배를 내주었다. 이 배를 타고 동쪽으로 출항한 서복은 이후 두번 다시 중국 땅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바다 밖에 있는 넓은 평원을 발견해 그곳의 왕이 되었다고도 한다.

이렇게 사서에는 희대의 사기꾼으로 기록된 서복이지만, 그의 행보가 가진 의미는 동양 3국에서 생각보다 크다. 아무래도 그의 항해 방향이 ‘동쪽’이다보니 그의 항해 자체가 고대 동아시아의 문명 교류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고, 또 그가 동쪽 땅의 왕이 되었다는 기록에 의하면 그가 한국이나 일본 문명의 시조 중 하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승에 따르면 그가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제주도이며, 서귀포라는 지명 자체가 서복이 ‘서쪽을 향해 귀로에 오른 포구’라는 의미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미야자키 현을 비롯한 여러 장소에 서복에 관한 전승이 있으며, <해동제국기>에 따르면 서복은 일본 땅에서 죽어 신으로 제사 지내졌다고 한다.

동양 3국에서 이토록 많은 관심을 받고 순탄한 말년을 보낸 서복. 어쩌면 그는 정말로 뛰어난 예지력을 가지고 진시황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선지자였을 지도…?

장도릉

張道陵

(AD 34년 ~ AD 156년)

본명은 장릉(張陵). 자는 보한(張陵). 패국 풍현 출생. 도교의 시초인 오두미도(혹은 천사도)의 창시자이다. 한나라 명제 대에 태어난 그는 본래 대학에서 오경을 배운 유학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한 말 나라가 혼란스러워지자 제자들과 함께 촉(지금의 사천성) 지방의 곡명산에 들어가 장생의 도를 연구했고, 그곳에서 득도해 24편의 도교 서적을 집필했다. 일설에 따르면 수행하고 있는 그의 앞에 어느날 노자를 비롯한 여러 신들이 내려와 그에게 ‘신출정일맹위(新出正一盟威)’의 술법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이 신출정일맹위의 술법이란 도덕적 계율이 가미된 일종의 치료법이었다.

당시의 중국에서는(중국이 아닌 많은 나라에서도 그랬지만) 병을 사귀(邪鬼: 즉 병마)의 칩입으로 인한 것으로 보았고, 약초나 기도를 통해 이를 몰아내는 것이 그 치료법이었다. 장도릉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사귀가 인간에게 칩입하는 것은 인간 자신에게 내면의 죄가 있기 때문이며, 이를 물리치기 위해선 환자 스스로가 그동안의 잘못에 대해 회개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 방법으로는 우선 삼관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서원을 써서 산신, 지신, 수신에게 바치고서, 부적으로 정화한 물을 마셔 심신을 씻어내는 ‘삼관수서(三官手書)’의 법이 있었다. 또한 그는 노자 ‘도덕경’에 주석을 달아 자신을 따르는 자들의 생활 규범으로 삼았다.

이런 그의 치료법과 권선징악적인 명쾌한 논리는 많은 민중들의 지지를 얻어 하나의 종파로까지 확대되게 되었다. 당시에는 그의 종파를 오두미도(五斗米道)라고 불렀는데, 이는 그의 문하로 들어가기 위해서 쌀 5두를 바쳐야 하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수장인 장도릉의 경칭인 ‘천사(天師)’의 이름을 따 천사도라고 불리기도 했다.

오두미도의 행보는 비슷한 시기의 방사인 장각이 만든 태평도의 행도와 대조된다. 우리에게는 삼국지에서 황건적의 수장으로 더 유명한 바로 그 장각이다. 장도릉과 비슷한 치료법을 중심으로 시작해 황건당이라는 조직을 창건해 한 제국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태평도과는 달리, 오두미도는 한중(지금의 산서성 남정현)을 중심으로 난민들을 모으며 조용히 그 교세를 확장해 갔다. 그 결과, 3대 천사인 장로 대에 와서 한중 지역에 위계 조직과 복지 시설을 갖춘 종교 국가가 건립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장로의 종교 국가에 대해 삼국지의 제갈 공명은 ‘장로의 국민들은 번창하고 있고, 나라는 부유하다.’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후에 장로는 조조에게 투항했고, 그의 근거지였던 한중은 유비에게 뺏겼지만, 그의 아들인 장성(張盛)은 강소성의 용호산에서 오두미도를 부활시켰다. 정일교(正一敎)라고 불린 이 오두미도의 후예는 당· 송 대에까지 도교의 유일한 종파였으며, 현재까지도 그 명맥을 잇고 있다. 현재 정일교는 대만 북부에 그 근거지를 두고 있으며, 64대 천사인 장원선(張源先)이 이끌고 있다.

10가지 기괴한 마법의 역사 — Google Arts & Culture

6. 가장 좋은 위석(胃石)은 염소의 위에서 발견됩니다.

론이 슬러그혼 교수의 방에서 독이 든 꿀술을 마셨을 때 해리가 론을 구하기 위해 위석을 사용한 장면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런데 위석이 대체 뭘까요? 위석은 몇몇 동물의 위 안에서 만들어지며, 소화되지 않은 섬유질이 뭉쳐진 덩어리인데 사람들은 이 덩어리에 해독 효과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위석을 중세 유럽에 처음 소개한 사람은 아랍 의사들이었으며, 왕이나 교황을 포함한 부유한 수집가들은 최고의 ‘돌’을 손에 넣기 위해 적지 않은 금액을 선뜻 내어놓곤 했습니다. 1694년 프랑스어로 처음으로 출간된 약의 완전한 역사라는 책에서는 위석의 약효는 어떤 동물에서 발견된 위석이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소의 내장에서 발견된 위석의 약효는 소위 ‘위석용 염소’로부터 나오는 위석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함께 일하는 동료 한 명이 최근에 볼리비아 라마의 위석을 손에 넣었는데 이 위석을 써 볼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최현우 “비밀 마법 학교 실제 있어… 한국서 나만 가고 이은결은 못 갔다” (비디오스타)

마술사 최현우가 한국 최초로 마술학교 ‘호그와트’ 출신이라고 밝혔다.

최현우는 지난 1일 방송된 MBC 에브리원 예능 프로그램 ‘비디오스타’의 ‘방구석 축제 특집’에 드랙 아티스트 나나영롱킴, DJ 소다, 래퍼 퀸 와사비, 프로듀서 겸 가수 박문치와 함께 게스트로 출연했다.

방송에서 진행자 김숙이 “마술사가 아니라 인증 받은 마법사라는 얘기가 있다. ‘호그와트’라는 마법 학교가 실제로 존재하나”라고 묻자 최현우는 “사실이다. 그런 학교가 있다”고 답했다.

이어 “여기서 처음 공개하는 이야긴데, 전 세계에서 몇 명 안 되는 사람이 지목을 받아서 매년 3박 4일 동안 은밀하게 모이는 집회가 있다. 서로 어떻게 마음을 읽는지, 어떤 마술을 쓰는지 등 정보를 공유한다”고 밝혔다.

최현우는 “한국에서는 나 혼자만 그곳에 갔다. 나 말고 다른 키 큰 애(이은결)는 못 갔다”고 덧붙여 폭소를 자아냈다.

또 최현우는 “마술에 대한 고정 관념이 있다. ‘새 나오냐’, ‘미녀도 나오냐’고 묻는 분들이 있다”며 “마술도 트렌드가 있다. 요즘은 마음을 읽거나,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즉석에서 빌린 물건을 쓰는 마술이 발달돼 있다”고 설명했다.

최승우 기자 [email protected]

사진=MBC ‘비디오스타’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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