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라이트 | [시냇가 책방]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1 (톰라이트) 69 개의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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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가 책방]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1 (톰라이트)
1부배경 설정. 1장. 잘 차려 입었는데 갈 곳이 없다?
2장. 낙원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다?
3. 역사적 배경에서 살펴본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희망
4. 부활절의 특이한 이야기
모호한 내새관과 그릇된 종말론으로 혼란에 빠진 오늘날을 위해 ‘죽음과 ‘부활’의 관념을 대담하고 시원하게 밝혀내고 있다.
이 책은 기독교가 제시하는 궁극적 미래의 희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구원, 부활, 영생에 대해 다루고 있다. 아울러 지금의 세상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도록 인도한다. 성경적 내세관과 종말론을 깨달아 지금의 삶에 부활 신앙을 접목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을 위해 저술된 것이다.
이 동영상은 저작권에 대하여 출판사 IVP의 허락을 받아 제작하였습니다.
BGM: 잔잔한 은혜가 머무는 CCM by 크리스챤 B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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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컬러스 토머스 라이트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니컬러스 토머스 라이트 혹은 톰 라이트(영어: Nicholas Thomas Wright, 약칭 N. T. Wright) 주교(1948년 12월 1일~ )는 영국 성공회 주교 겸 기독교 신약성서 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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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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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라이트(Nicholas Thomas Wright) | 작가 & 작품 – 교보문고

작가소개.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교회에 주신 탁월한 성경교사인 톰 라이트는 C. S. 루이스, J. I. 패커, 존 스토트, 알리스터 맥그래스 등 세계적인 복음주의 지도자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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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yobobook.co.kr

Date Published: 1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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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소금] 화해의 신학자, 톰 라이트 글 최현만 – 두란노서원

필자는 톰 라이트의 신학을 ‘화해’라는 단어로 규정하고 싶다. 라이트는 화해가 십자가의 핵심 의미이자 바울 신학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그는 십자가의 의미를 설명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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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duranno.com

Date Published: 1/23/2021

View: 8914

[작가] 톰 라이트 – Nicholas Thomas Wright, NT Wright – YES24

지난 수십 년 동안 ‘기독교의 기원과 하나님에 관한 탐구’라는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신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역사적 예수 탐구와 바울 신학 분야의 선두 주자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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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yes24.com

Date Published: 3/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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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P 톰라이트 저서 세트(전10권) | 갓피플몰

톰 라이트 | IVP | 탁월한 저술가 톰 라이트가 안내하는 기독교의 모든 것! 기독교가 사람들의 갈망이나 의문에 진정한 답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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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all.godpeople.com

Date Published: 8/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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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라이트: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 – 공부하는 세무사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 – 톰 라이트 지음, 양혜원 옮김/IVP 서문 1부 배경 설정 1. 잘 차려 입었는데 갈 곳이 없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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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ootax.co.kr

Date Published: 6/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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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라이트 – 알라딘

톰 라이트. 신간 알림 신청. 영국 모페트 태생으로 옥스퍼드 대학교의 엑스터 칼리지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옥스퍼드 위클리프 홀에서 성공회 사목(Anglic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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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aladin.co.kr

Date Published: 9/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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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라이트의 ‘칭의’ 이해 심각한 문제점 지녀” < 교단

톰 라이트는 영국 성공회 덜햄의 감독으로 많은 사람들에 의해 차기 켄터베리 대주교로 점쳐지는 인물이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은 신학자들과 신학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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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goodnews1.com

Date Published: 10/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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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냇가 책방]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1 (톰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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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톰 라이트

  • Author: 시냇가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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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9. 2.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ewRSyxVDDwA

니컬러스 토머스 라이트

톰 라이트

니컬러스 토머스 라이트 혹은 톰 라이트(영어: Nicholas Thomas Wright, 약칭 N. T. Wright) 주교(1948년 12월 1일~ )는 영국 성공회 주교 겸 기독교 신약성서 학자이다. E. P. 샌더스 그리고 제임스 던과 더불어 바울에 대한 새관점 학파의 주도적 학자이다.

경력 [ 편집 ]

영국 모페스(Morpeth) 태생으로 옥스퍼드 대학교의 엑스터 칼리지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1971년부터 1975년까지 세계성공회대학협의회(CUAC) 가맹학교인 옥스퍼드 위클리프 홀에서 성공회 사목(Anglican ministry)을 공부했다. 성공회 리치필드 주교좌 대성당(Lichfield Cathedral)에서 사목했으며,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맥길대학교에서 신약성서학을 가르쳤다. 2003년 영국 성공회 더함교구 주교(Bishop of Durham in the Church of England)으로 선출되었다. 2010년 9월[1]부터 더함 교구의 주교(Bishop of Durham)를 사임했고, 현재 영국 스코틀랜드 소재 세인트 앤드류스 대학교 (University St. Andrews)에서 신약성경학과 초기 기독교 역사(New Testament and Early Christianity) 분야의 교수로 있다.

신학 [ 편집 ]

그는 신약 분야에서 방대하고 도발적인 저작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일류 학자다. 전공분야는 역사적 예수와 바울신학이다.

역사적 예수 분야에서는 비판적 실재론을 방법론으로 사용해 소위 ‘제 3의 질문'(Third Quest for the Historical Jesus)에 속하는 연구를 수행했고, 바울 신학 분야에서는 E. P. 샌더스, 제임스 던과 함께 소위 ‘바울에 관한 새관점'(the New Perspective on Paul)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신학의 주요한 내용은 ‘기독교의 기원과 하나님에 대한 질문(Christian Origin and the Question of God)’이라는 5권짜리 시리즈에 잘 드러나 있다.

비판 [ 편집 ]

그의 신학 중 특히 ‘바울에 관한 새관점’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따르는 이들도 많지만 비판하는 이들도 많다.

특히 그가 이신칭의에 대해 다룬 내용들은 전통적인 칭의개념을 따르는 이들(특히 개혁주의자들)에 의해 큰 비판을 받고 있다. 그의 비판자들은 톰 라이트가 《바울의 복음을 말하다》에서 개신교의 전통적인 교리인 이신칭의를 부정하고 이신칭의가 바울의 진정한 의도를 왜곡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칭의가 바울 복음의 핵심이 아니다”고까지 주장했다고 지적한다.[2] 이런 맥락에서 톰 라이트를 비판하는 책은 여러권 출판되었는데 대표적인 신학자들의 책으로는 존 파이퍼의 《칭의논쟁》, 박영돈 교수의 《톰 라이트의 칭의론 다시읽기》가 있고, 그 외에도 몇권의 책이 있다. 육군사관학교 법학과 교수를 역임한 임덕규 목사는 《개혁교회를 무너뜨리는 톰 라이트》라는 책에서 “톰 라이트는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를 부정하고,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라는 단어보다는 ‘하나님의 나라’라든지 선행이나, 공로로 대치하려 하는데 그 중심에 선 사람이 톰 라이트”라며 “그는 속죄의 복음을 승리의 선언으로 바꾸고 그리스도 의의 전가를 부인함으로 결국 인간의 공로주의 신앙으로 나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톰 라이트가 “그리스도 복음에서 피라는 말 대신에 하나님 나라로 대신하려는 사이비 주장 때문에 세계 교회는 무서운 시험에 처해 있다”고 주장했다.[3] 또한 그의 새 관점 칭의론은 종교개혁자들의 칭의론과 비교했을 때, 종말에 있을 행위심판에 대한 주장 때문에 ‘행위구원론적’이며 ‘반(半)펠라기우스주의’(Semi Pelagianism)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4]

하지만 톰 라이트에 대한 비판 뿐 아니라 옹호 의견도 많다. 톰 라이트의 신학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응답에 관해서는 《예수, 바울,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책을 참고할 수 있다.

같이 보기 [ 편집 ]

저서 [ 편집 ]

《 Simply Christian: Why Christianity Makes Sense 》- 한국어판은 《톰 라이트와 함께 하는 기독교여행》(IVP)로 번역되었다.

》- 한국어판은 《톰 라이트와 함께 하는 기독교여행》(IVP)로 번역되었다. 《예수》(원제: The Original Jesus )(살림출판사)

)(살림출판사) 《 The Challenge of Jesus 》(한국성서유니온선교회에서 《Jesus코드》로 역간하였다.)

》(한국성서유니온선교회에서 《Jesus코드》로 역간하였다.) 《 Who Was Jesus 》

》 《 Evil and the Justice of God 》-IVP에서《악의 문제와 하나님의 정의》로 역간하였다.

》-IVP에서《악의 문제와 하나님의 정의》로 역간하였다. 《 The New Testament for Everyone 》

》 《 The Climax of the Covenant: Christ and the Law in Pauline Theology 》. Fortress Press, 1991.

》. Fortress Press, 1991. 《 Following Jesus: Biblical Reflections on Discipleship 》. Wm. B. Eerdmans, 1997 / SPCK, 1994 – 한국어판은 <<나를 따르라>>(살림출판사)로 번역되었다.

》. Wm. B. Eerdmans, 1997 / SPCK, 1994 – 한국어판은 <<나를 따르라>>(살림출판사)로 번역되었다. 《 What Saint Paul Really Said: Was Paul of Tarsus the Real Founder of Christianity? 》 Wm. B. Eerdmans, 1997.

》 Wm. B. Eerdmans, 1997. 《 The Challenge of Jesus: Rediscovering Who Jesus Was and Is 》. Hardcover ed. InterVarsity Pr., 1999 / SPCK, 2000

》. Hardcover ed. InterVarsity Pr., 1999 / SPCK, 2000 《 The Resurrection of Jesus: John Dominic Crossan and N.T. Wright in Dialogue. 》 Ed. Robert B. Stewart. Paperback ed. Augsburg Fortress, Pub., 2005 / SPCK 2006

》 Ed. Robert B. Stewart. Paperback ed. Augsburg Fortress, Pub., 2005 / SPCK 2006 《 Paul: Fresh Perspective .》 Fortress Press, 2005 co-edition SPCK, 2005

.》 Fortress Press, 2005 co-edition SPCK, 2005 《 The Last Word: Beyond the Bible Wars to a New Understanding of the Authority of Scripture 》. Harper SanFrancisco, 2005.

》. Harper SanFrancisco, 2005. 《 The New Testament and the People of God: Christian Origins and the Question of God. 》Augsburg Fortress, 1992.

》Augsburg Fortress, 1992. 《Jesus and the Victory of God: Christian Origins and the Question of God》, Volume 2. Augsburg Fortress, 1996.

– 한국어판은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크리스챤 다이제스트)로 역간되었다.

《The Resurrection of the Son of God.》 Augsburg Fortress, 2003. -한국어판은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크리스챤 다이제스트)로 역간되었다.

주석시리즈 [ 편집 ]

《 Matthew for Everyone, Part 1: Chapters 1-15. 》 2nd ed. Vol. 1. SPCK and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4.

》 2nd ed. Vol. 1. SPCK and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4. 《 Matthew for Everyone, Part 2: Chapters 16-28. 》 2nd ed. Vol. 2. SPCK and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4.

》 2nd ed. Vol. 2. SPCK and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4. 《Mark for Everyone.》 2nd ed. SPCK and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4.

《Luke for Everyone.》 2nd ed. SPCK and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4.

《John for Everyone, Part 1: Chapters 1-10.》 Paperback ed. SPCK and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4.

《John for Everyone, Part 2: Chapters 11-21.》 2nd ed. SPCK and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4.

《Paul for Everyone: 1 Corinthians.》 2nd ed. SPCK, 2004.

《 Paul for Everyone: 2 Corinthians. 》 2nd ed. SPCK, 2004.

》 2nd ed. SPCK, 2004. 《 Paul for Everyone: the Pastoral Letters. 》 2nd ed. SPCK, 2004.

》 2nd ed. SPCK, 2004. 《 Paul for Everyone, the Prison Letters: Ephesians, Philipians, Colossians and Philemon. 》 2nd ed. SPCK and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4.

》 2nd ed. SPCK and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4. 《Hebrews for Everyone.》 2nd ed. SPCK, 2004.

톰 라이트(Nicholas Thomas Wright)

작가소개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교회에 주신 탁월한 성경교사인 톰 라이트는 C. S. 루이스, J. I. 패커, 존 스토트, 알리스터 맥그래스 등 세계적인 복음주의 지도자들을 배출한 영국 교회가 자랑스러워 하는 복음주의 지도자요 신학자이다. 그는 현재 스코틀랜드에 있는 세인트 앤드류스(St.Andrews)대학에서 신약과 초기기독교학(New Testament and Early Christianity) 학과장 및 연구교수(Research Professor)로 있다. 라이트의 저서를 읽어보면, 그가 쓴 글의 주요 목적이 전통적인 복음주의 진영의 주장을 그대로 설파하는 게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자유주의 신학과 로마 가톨릭의 많은 요소에 대하여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동시에 복음주의에 대해서도 성경 본문을 정당하게 다루는 데 실패했다고 비판한다. 라이트가 특별히 비판하는 점은, 복음주의가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 교리를 교회와 성례전을 배제하고 개인의 내적인 신앙경험과 동일시해 버리려는 경향, 그리고 내적인 믿음을 외적인 행위와 대립시키려는 경향이다. 그는 복음주의가 바울의 칭의 교리를 너무나 쉽게 실존주의와 낭만주의가 제공한 렌즈를 대고 읽어왔다고 주장한다. 라이트는 ‘바울의 새 관점’, ‘제3의 역사적 예수 연구’, ‘교회 일치 운동’ 등의 주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와 관련해서 상당히 많은 저서 집필과 강연을 했는데, 학술과 대중 양쪽의 요구를 십분 충족시키는 저서들을 출간하는데 뛰어난 역량을 지닌 몇 안 되는 저자이다. 대표 저서로는 여섯 권으로 출간할 예정인 ‘기독교의 기원과 하나님에 관한 질문'(Christian Origins and the Question of God) 시리즈가 있다. 이 시리즈는 현재 ‘신약 성서와 하나님의 백성’,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이상 크리스챤다이제스트 역간) 이렇게 3권이 출간되었다. 이외에도 ‘예수’, ‘나를 따르라’, ‘내 주님 걸으신 그 길'(이상 살림출판사 역간), ‘지저스 코드'(성서유니온선교회 역간), ‘예수의 의미'(한국기독교연구소 역간), ‘그리스도인의 미덕’ (포이에마 역간), ‘톰 라이트와 함께 하는 기독교여행’, ‘악의 문제와 하나님의 정의’,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의 나라’, 톰 라이트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린 에브리원 신약주석시리즈인 ‘모든 사람을 위한 마태복음 1.2’, ‘모든 사람을 위한 로마서 1.2’, ‘모든 사람을 위한 마가복음'(이상 IVP 역간), ‘톰 라이트, 예배를 말하다'(에클레시아북스 역간) 등이 있다.

[빛과소금] 화해의 신학자, 톰 라이트_글 최현만

‘청어람ARMC’ 양희송 대표는 ‘톰 라이트 읽기를 위한 지도’라는 글에서 “존(John Stott)의 시대”가 가고 “톰(Tom Wright)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는 “영국 복음주의에”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한국에서도 톰 라이트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현재 진행형이다. 2001년부터 학술서 중심으로 한국에 조금씩 번역되던 그의 책은 2008년을 기점으로 대폭 증가했고, 현재 한국에 번역된 그의 책은 50여 권에 이른다. 이제는 영어로 그의 책이 출간되는 족족 2, 3년 내로 대부분 번역되고 있으며, ‘모든 사람을 위한 주석 시리즈’는 평신도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주석의 대명사가 되었다. 반면 라이트를 향한 의심의 눈길도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2010년에 이미 그의 독특한 ‘칭의론’을 비판하는 학회들이 열렸으며, 이후로도 그를 비판하는 기사나 논문, 단행본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그를 ‘개신교에 들어온 트로이 목마’에 비유하는 독설까지 들린다. 이처럼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톰 라이트의 신학은 어떤 내용인가?

톰 라이트를 규정하는 키워드 ‘화해’

필자는 톰 라이트의 신학을 ‘화해’라는 단어로 규정하고 싶다. 라이트는 화해가 십자가의 핵심 의미이자 바울 신학의 정수라고 생각한다. 그는 십자가의 의미를 설명할 때, 십자가의 세로 막대는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를 상징하고 가로 막대는 갈라진 인류의 화해를 상징한다고 자주 이야기한다. 또한 그는 바울 신학을 집대성한 「바울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서두에서 바울 서신 중 가장 짧은 빌레몬서를 자세하게 설명하며 화해를 전면에 내세운다. 빌레몬서는 주인 빌레몬과 도망간 노예 오네시모 사이에서 화해의 중재자로 나서는 바울의 모습을 그리는데, 라이트는 화해가 단순한 미덕을 넘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에서 핵심적인 요소라고 주장한다. 라이트는 화해를 신약의 중심 요소이면서 그리스도인의 핵심 덕목으로 보았는데, 나아가 자기 자신도 화해의 사역으로 부름 받았다고 느꼈다.

역사와 신학의 화해

라이트는 신학적인 면에서 자신을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사이의 중재자로 생각한다. 하나님의 초자연적 개입을 배제하고 성경을 철저히 인간의 글로 해석하는 자유주의를 대변하는 단어가 ‘역사’라면,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로 보고 교리를 강조하는 보수주의를 대변하는 단어는 ‘신학’이다. 자유주의의 눈에 보수주의는 신학을 지키느라 역사를 쫓아낸 고집불통이고, 보수주의의 눈에 자유주의는 역사를 신봉하느라 신학을 불구로 만든 불한당이다. 서로의 입장을 고집하며 반목하다 보니 대화 자체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실정이다. 라이트는 이런 상황에서 화해의 중재자로 나선다. 성경에 접근하는 양측의 전제 자체가 다르다 보니, 먼저 양쪽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성경 해석론을 제시한다. 그것이 소위 ‘비판적 실재론’이다. 그리고 그 해석론에 기초해서 1세기의 세계관에 대한 두터운 묘사를 시도하고, 그 내용을 배경으로 신약을 설명해 나간다. 그렇게 독자적인 길을 가면서 양쪽 진영을 향해 함께 이야기해 보자고 손짓한다. 중매는 잘 서면 술이 석 잔, 잘못하면 뺨이 세 대라는데, 현재의 라이트는 뺨을 맞는 형국이다. 라이트의 중매를 따라 양쪽이 대화를 시도하기보다는, 중매자의 방법론이나 신학에서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면들을 공격하기 바쁘다. 그래도 라이트는 서로 대화를 하자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끈질기게 이야기한다.

땅과 하늘의 화해

자유주의는 ‘땅’을 중요시한다. 하늘로 대변되는 하나님의 개입을 배제하고 인간의 노력으로 정의롭고 아름다운 사회를 이루고 싶어 한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인류가 따라야 할 ‘본보기’다. 보수주의는 ‘하늘’을 중요시한다. 죽음 이후의 구원이 가장 중요하다. 하늘나라, 천국이 우리의 본향이다. 땅에서의 선한 삶도 의미 있지만, 땅은 결국 없어지고 말 속세에 불과하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해결해서 천국행을 가능케 하신 분이다. 이처럼 땅과 하늘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라이트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주기도문을 중요시한다. 이 기도는 예수님이 하늘로 대변되는 하나님의 통치를 이 땅에 구현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며, 교회도 하늘과 땅을 통일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성령의 힘을 입어 펼쳐나가는 기관이다. 라이트는 ‘사회 복음’과 ‘개인 구원’의 대립을 끝내고 서로를 아우르는 총체적인 복음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한다.

행위와 믿음의 화해

이 문제는 행위와 믿음의 대립과도 이어져 있다. 천국을 중요시하는 사람에게는 천국행을 보장해 주는 ‘믿음’이 최우선이지만, 이상 사회를 꿈꾸는 사람에게는 정의와 평화를 가져오는 ‘행위’가 없는 신학은 말잔치에 불과하다. 그동안 개신교는 개인 구원의 수단이라는 관점에서 ‘행위’와 ‘믿음’을 대립시켜 왔다.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소위 ‘이신칭의’ 교리가 이 대립의 중심에 있다. 그런데 라이트는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에 나오는 이신칭의 관련 핵심 본문의 의미를 다르게 이해한다. 그 본문들은 개인 구원의 수단으로서 믿음과 행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으로 시작된 새 시대를 대변하는 ‘믿음’과 그전의 옛 경륜을 대변하는 ‘율법의 행위’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갈라디아서의 경우는 ‘믿음’을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로 구성되는 하나님의 새 시대의 일원이 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할례 등 ‘율법의 행위’를 추구함으로써 유대인이 되려는 것은 이제 종막을 고한 옛 시대로 회귀하려는 반(反)복음적인 시도라고 경고한다.

라이트는 이렇게 ‘행위’와 ‘믿음’의 그릇된 이분법을 해체하고, ‘언약’이라는 관점에서 ‘행위’와 ‘믿음’을 화해시킨다. ‘믿음’에는 ‘신실함’이란 의미도 있는데, 언약의 틀 안에서 믿음은 언약의 설립자이신 하나님과 언약 자체를 신뢰하면서 그 언약을 신실하게 준수하려는 태도와 실제 행위를 포함한다. 바울도 갈라디아서에서 중요한 것은 사랑으로 ‘일하는’(행위를 하는) ‘믿음’뿐이라고 말한다(갈 5:6). 그리고 이 대목에서 행위의 주체성이 제자리를 찾는다. 그리스도인의 행위는 믿음이 좋으면 저절로 따라오는 결과이거나 하나님 없이 의미를 만들어 내려는 인간의 시도로 보였다. 하지만 바울은 중요한 것은 ‘일하는 믿음’뿐이라며 행위와 믿음을 한 세트로 본다. 또한 이런 행위들이 인간 편에서의 독자적인 시도가 아닌 ‘성령의 열매’라고 말한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하나님이 하시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고 내가 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우리가 하나님 뜻을 이루어간다. 이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에 맺어진 언약의 관계적인 성격인데, ‘이심전심’이라는 표현으로 어느 정도 이런 의미를 담을 수 있을 듯하다.

삶과 신앙의 화해

그렇게 그리스도인의 행위가 중요하다면, 하나님의 계획에서 우리의 행위는 어떤 의미일까? 라이트는 먼저 하나님의 창조 계획의 관점에서 대답한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자신의 대리 통치자로 임명하셨다. 인간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그들 자신이 누리고 그들 안에서 구현하며 세상 안에 확장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행위여야 했다. 하지만 인간의 행위는 하나님의 뜻을 반역하는 방향으로 나타났고 인류와 세상은 엉망이 되었다. 중간의 이스라엘 이야기를 건너뛰고 이야기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셨던 참된 인간의 행위를 구현한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리고 사랑과 순종으로 대변되는 예수님의 행위를 교회가 본받아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해 나간다. 그것이 교회의 행위가 가진 의미다.

또한, 라이트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신다”(엡 3:10)는 본문으로 행위의 또 다른 의미를 설명한다. 세상에는 하나님께 반역하는 권세들이 아직 남아 활동하며, 이들은 정치, 경제, 문화 등 인간의 일상에 영향을 미친다. 지금은 이런 권세들에게 맞서 하나님의 통치가 만유 안에 충만해져 가는 기간인데, 그 통로요 수단이 바로 교회다. 교회가 살아가는 방식, 즉 십자가를 지고 선으로 악을 이기며 화해와 일치의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삶 그 자체가 세상 권세들의 정체를 드러내고 그들을 무너뜨리는 수단이다. 그렇게 교회는 하늘의 통치를 땅에 수립해 나가는 전초기지가 된다.

현세와 내세의 화해

이렇게 이야기하니 라이트는 너무 현세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죽어서 천국에 가는 구원관을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걸 보니 내세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가? 보통 그리스도인들은 내세를 ‘죽음 이후의 삶’으로 이해하지만, 라이트는 성경이 말하는 내세가 ‘죽음 이후의 삶 이후의 삶’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람이 죽으면 바로 부활하여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중간 상태에 있게 되며, 마지막 때가 되어야 비로소 육체를 입고 부활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더 중요한 점은 마지막 때에 사람이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땅으로 내려온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바로 요한계시록 21장이 묘사하는 마지막 날의 모습이다. 땅이 소멸하고 폐기되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생명과 영광이 땅을 가득 채운다. 하나님의 창조가 그렇게 완성된다. 요약하면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에서 부활한 육체를 입고 사는 것이다.

내세를 이렇게 이해한다면, 현재 우리의 삶은 어떤 의미인가? 라이트는 부활에 관한 가장 자세한 해설인 고린도전서 15장을 마무리하는 바울의 권면을 자주 언급한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 부활의 소망을 가진 이들은 현세의 삶이 어떤 식으로든 내세에서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믿고 주님의 일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라이트는 이렇게 비유한다. 하나님이 거대한 성당을 설계하고 지도하시는 분이라면, 그리스도인은 지어질 성당의 모습을 감히 상상도 못한 채 어디인지도 모를 구석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조그만 일을 해 나간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성당이 완공되면, 그들은 완성된 성당의 아름다움에 놀라고 자신의 적은 노력이 성당의 완성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알고 감격할 것이다.

성경의 이야기를 살라

지금까지 화해라는 키워드로 톰 라이트의 신학을 살펴보았다. 이전의 신학과 사상이 온갖 이분법으로 나뉘어 반목하고 있었기에, 그의 신학이 화해를 추구해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이러한 통합적인 신학을 내세운 진정한 토대는 성경이 들려주는 거대한 이야기다. 성경은 창조 때에 시작되어 종말을 향해 나아가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나님의 창조는 인간의 타락으로 위기를 맞았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해 구출 작전을 시작하셨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왕 같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창조 계획을 원래 목적대로 이끌어가야 했다. 하지만 해결사 역할을 해야 했던 이스라엘도 병균에 감염되고 말았고, 하나님의 계획은 다시 한 번 위기에 처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오셔서 이스라엘이 실패했던 사명을 이루셨고 역사의 새로운 막을 열어젖히셨다. 교회는 예수님의 사역과 사명을 이어받아 시행하고 완수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리스도인을 규정하는 것은 바로 이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시간표상에서 하나님의 계획과 교회의 역할을 이해하고 세상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구현해 나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소명이다. 라이트는 말한다. “지금 펼쳐지고 있는 이 하나님의 이야기에서 방관자가 되지 말라. 하나님은 당신이 이 이야기에 참여하기를 원하신다.”

최현만은 20대 중반에 톰 라이트를 접하고 하나님 나라에 관한 그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그의 저서를 번역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 일하면서 번역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번역서로 「톰 라이트, 칭의를 말하다」, 「톰 라이트 바울의 복음을 말하다」, 「톰 라이트 예배를 말하다」 등이 있다.

톰 라이트(Nicholas Thomas Wright, N. T. Wright)

영국 모페트 태생으로 옥스퍼드 대학교의 엑스터 칼리지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옥스퍼드 위클리프 홀에서 성공회 사목(Anglican ministry)을 공부했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맥길 대학교에서 신약성서학을 가르쳤고, 영국 더럼의 주교를 역임하였으며 2010년 주교직 사임 후 영국 스코틀랜드의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에서 교수로 신약성서학과 초기 기독교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참사회원 신학자(Canon Theologian)로도 활동했던 그는, 학문적 저술과 대중적 저술 모두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기독교의 기원과 하나님에 관한 탐구’라는 연구 프로젝트를 통해 신학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역사적 예수 탐구와 바울 신학 분야의 선두 주자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21세기의 C. S. 루이스’라고도 불리며 가장 주목받는 변증가로 자리 잡았다. 대중 독자들을 위해 집필한 ‘에브리원 주석 시리즈’(New Testament for Everyone)에서는 세계적 수준의 학문적 역량을 편안하게 풀어 낸 신약성경 해설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타고난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는 진정한 인간이 되기 위함이고, 그것은 예배를 통해 그리고 넓은 의미의 선교를 통해 이루어진다. 아울러 그것은 예수를 따르는 것을 통해 이룰 수 있다. ” 그리스도인의 미덕 2011-03-09

톰 라이트: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 나라

서문

1부 배경 설정

1. 잘 차려 입었는데 갈 곳이 없다?

2. 낙원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다?

3. 역사적 배경에서 살펴본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희망

4. 부활절의 특이한 이야기

2부 하나님의 미래 계획

5. 우주의 미래: 진보인가, 절망인가?

6. 이 세상이 기다리고 있는 것

7. 예수님, 천국, 새 창조

8. 그분이 나타나실 때

9. 심판하러 오시는 예수님

10. 우리 몸의 구속

11. 연옥, 낙원, 지옥

3부 희망의 실천: 부활과 교회의 사명

12. 구원을 다시 생각하다: 하늘, 땅 그리고 하나님 나라

13. 하나님 나라를 위한 건설

14. 사명을 위한 교회의 재구성(1): 성경적 근거

15. 사명을 위한 교회의 재구성(2): 미래를 살다

부록: 두 종류의 부활절 설교

1부 배경 설정

1. 잘 차려 입었는데 갈 곳이 없다?

20 이 책은 종종 완전히 별개로 다루어져 온, 그러나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내가 열렬하게 믿는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첫 번째는 “기독교의 궁극적인 희망은 무엇인가?”이다. 두번째는 “현재 세계 안에서의 변화, 구출, 변혁,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떤 희망이 있는가?”이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주된 대답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기독교의 희망을 “천국행” 혹은 본질적으로 이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구원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이 두 질문은 서로 상관이 없어 보일 수밖에 없다.

20 “기독교의 희망”이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 즉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는 희망이라면, 그리고 그 희망이 나사렛 예수 안에서 이미 실현이 되었다면, 이 두 질문을 서로 연결시킬 이유는 충분하고도 남는다.

21 비기독교 세계, 특히 현대 서구의 비기독교 세계는 자신들이 무엇을 믿어야 할지 혼란스러워 하고 있을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혼란을 느낀다. 사람들은 종종 그리스도인들이 그저 가장 일반적인 의미의 ‘죽음 이후의 삶’을 신봉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며, 부활, 심판, 예수님의 재림 등과 같은 좀 더 특수한 개념들이 서로 어떻게 맞물리고 해석이 되는지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

41 내가 아는 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통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를 아예 모른다는 놀라운 사실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떠한 형태의 ‘생존’도 직설적으로 부인하는 것과 대립되는 의미로서 죽음 이후의 삶을 믿는다고 생각하며, 따라서 어떠한 종류든지 죽음 이후의 삶은 기독교적인 것과 상당히 비슷한 종류일 거라고 생각한다.

41 대부분의 현대 서구 사람들은 ‘죽음 이후의 삶’이라는 일반적인 개념 안에도 다양한 차이가 있을 수 있고 그리하여 여러 개념를 이 하나님과 세상에 대한 믿음에 매우 중요한 차이를 가져오며,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매우 중요한 차이를 낳는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2. 낙원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다?

49 전통적으로 우리는 기독교가 구원받은 혹은 복받은 사람들이 가게 될 위에 있는 천국과 악하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이 가게 될 아래에 있는 지옥에 대해 가르친다고 생각해 왔다. 지금도 여전히 교회 안팎의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교회의 공식적 입장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거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52 오늘날 교회의 모습은 내가 생각하기에 몇 가지 것들의 혼란스런 조합이다. 또 한편으로는 과거의 천국-지옥 관점이 공격을 받은 까닭에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지옥을 전혀 믿으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 세기 동안 나타난 역설적인 현상은 지옥을 부인하는 자세가 확고해지면서 역으로 천국에 대한 확신은 약해졌다는 것이다.

53 연옥이란 말하자면, 죽을 때도 우리는 여전히 창조자를 만날 준비가 덜되어있을 것이기 때문에 빛을 향해 성장해가는 정화의 시기가 필요한 것이라는 주장에서 비롯된 개념이다. (오늘날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죄의 일소’라든가 그 외에 다른 불편한 것들을 강조하는 표현보다는 ‘정화’라든가 빛을 향해 성장해 간다는 식의 표현을 선호하는 경향이있다) 많은 사람들이 만인구원설을 받아들이고 있는데, 이것은 모든 사람이 하나 님의 사랑에 굴복할 때까지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는 자들에게 믿음을 선택할 기회를 계속해서 주실 것이라는 생각이다.

68 내가 생각하기에는 종교가 육체를 비롯한 창조질서 전반을 플라톤주의식으로 비하하면서 그것을 이 땅의 헛된 그림자로 간주하고, 죽을 때는 그 모든 것을 기쁘게 두고 떠날 것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을 때 바로 그렇게 되는 것 같다. 곧 풀려날거라면 왜 굳이 현재의 감옥 상태를 개선하려 하겠는가? 곧 낭떠러지 아래로 내동댕이쳐질 기계에 기름칠을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이것이 바로 ‘구원’이 현재의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진심으로 믿는 일부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 오늘날까지 미치고 있는 영향이다.

3. 역사적 배경에서 살펴본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희망

78 기독교의 복음은 그 사건을 가장 상세하게 기록한 문서가 생기기 약 50년 전에 일어났고 또 그 기록들마저도 모두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 어떤 사건을, 그 사건이 없으면 아예 복음 자체가 없었을 핵심적인 사실로 단언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 같은 기록의 불일치 때문에 그 첫 번째 부활절에 무슨 일이 정말로 일어나기나 한 것인지 의심이 생긴다고도 했다.

78 네 개의 복음서에는, 그리고 아울러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에는 비트겐슈타인의 부지깽이와 관련된 여러 가지 이야기에 필적 할만한 1세기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이제 나의 질문이 명쾌해졌다. 그 사건은 어떤 사건이었는가? 도대체 부활절 아침에 그 무덤은 어떤 식으로 비어있었단 말인가?

80 빈 무덤과 육체의 부활을 입증하는 혹은 그것을 반증하는 역사적인 근거를 댈 수 있는가, 아니면 그것은 언제나 믿거나 말거나의 문제가 될 것 인가? 역사는 어느 정도까지 해답을 줄 수 있으며, 거기에서 믿음의 역할은 무엇인가? 또 그 둘은 서로 어떻게 작용하는가? 문제는 단지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는가이며, 지금 이 시점에서는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이 의문의 대상이 된다.

82 고대세계에서는 ‘부활’이라는 단어를 헬라어나 라틴어, 그에 상응하는 다른 언어로도 죽음 이후의 삶을 의미하는 단어로 쓴 적이 없다. ‘부활’은 ‘죽음 이후의 삶’이 어떠한 형태로 존재하건간에 그것이 있고 난 이후에 오는 새로운 육체적 삶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모든 이교도들이 그랬던 것처럼) 부활을 부인하기 위해서든 (일부 유대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부활을 지지하기 위해서든 고대인들이 부활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는 그것을 두 단계로 보았는데, 육체적 죽음이라고 하는 중간 단계의 시기가 먼저 오고 그 이후에 새로운 육체적 생명을 의미하는 부활이 있다고 보았다.

83 부활은 죽음 직후에 사람들이 들어가는 상태를 극적으로 혹은 생생하게 표현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죽음 이후에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 일어날 수 있는 ━ 비록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지만 ━ 일을 의미했다. 이와 같은 부활의 의미는 후기 기독교가 2세기의 영지주의와 결합하기 이전까지 고대 세계 안에서 변하지 않고 머물러 있었다. 대부분의 고대인들은 죽음 이후의 삶을 믿었다. 어떤 사람들은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복잡하고 매혹적인 신앙들을 발전시켰는데, 우리는 이제 막 그에 대해 언급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러나 유대교와 기독교를 (그리고 비록 그 연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지만 혹 조로아스터교 정도까지) 제외하고는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없었다.

83 부활은 육체를 의미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계속해서 강조해야 하는데, 많은 현대의 글들이 계속해서 부활이라는 단어를 대중적인 의미의 죽음 이후의 삶과 같은 뜻의 단어로 쓰면서 사람들을 크게 오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90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미래가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는 신앙을 확고하게 갖고 있었다. 첫 번째는 죽음과 (어떠한 형태이건간에) 그 직후의 상태로 머무는 단계이고 두 번째는 새롭게 재창조된 세상에서 새로운 육체를 가지고 사는 단계다.

96 부활절이 있기 이전 1세기 유대인들은 그 누구도 ‘부활’이 하나님 나라가 드디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임하는 갑작스런 사건의 일부로서, 하나님의 백성 모두에게 혹은 인류 전체에 일어나는 광범위한 사건 이외에 다른 모습을 지닐 것이라고는 생각 지 못했다.

96 우리가 언제나 기억해야 하는 사실은, ‘부활’은 천국에 가는 것을 의미하거나 혹은 죽음을 면하는 것을 의미하거나 혹은 차후에 영광스럽고도 존귀하게 존재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의 죽음 이후에 다시 육체의 삶으로 돌아 오는 것’을 의미했다는 점이다.

96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변모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할 때까지는 그 사건에 대해서 언급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을 때 (우리가 조금 전에 살펴 보았던 것처럼) 제자들이 이상하게 여기고 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아해했던 것이다. 부활을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 전체가 태어나는 사건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생애의 한 부분으로 이야기하게 되는 그러한 부활이 무엇인지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100 바울 이전에 확립된 초기 신경(creed)의 단편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아주 일찍부터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부활 때문에 예수님이 참된 메시아라고 단언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곁가지의 이야기이지만 중요한 이야기로서 부활이 없다면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은 사실을 설명하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4. 부활절의 특이한 이야기

111 그 몸은 (말하자면) 십자가에서 죽은 그 몸의 재료들이 다 사용된 육체다. 그래서 그 무덤은 비어 있었다. 그러나 또한 그 몸은 잠긴 문도 통과해 다니고, 사람들이 늘 알아 보는 것도 아니고, 마지막에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공간과 인간의 공간을 나누는 것이라고 대개 생각했던 얇은 막을 통과해 하나님의 공간, 즉 ‘천국’으로 사라져 버린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전례가 없는 이야기다.

116 한편으로는 그 만남이 있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빈 무덤이 반드시 그러한 신앙이 생겨난 이유와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기록된 이유를 설명 할 수 있다. 그 두 가지 중 어느 것도 하나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 그러나 두 가지를 같이 모아 놓으면 초기 기독교 신앙의 발생이 완전하게 그리고 일관되게 설명된다.

125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다른 곳에서도 때때로 일어나는 어떤 사건의 한 사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자명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점을 자주 간과한다. 그들이 그 사건을 언젠가는 다른 모든 사람에게 일어날 일의 첫 번째 사례, 보증 사례로 보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미래에 일어날 일의 유추로서 지금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129 인생에서 우리가 내리는 가장 중요한 결정들은 후기 계몽주의의 왼쪽 뇌의 합리성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세계를 단순히 관찰하는 것에만 의존하는 순수한 인간의 이성으로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 진리를 논증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129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각할 수 있는 지성을 주셨다. 이러한 질문은 적절하게 제기되어 온 질문이다. 기독교는 역사에 호소하고 역사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134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신앙은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것 그리고 우리가 과학이라고 부르는 것을 초월하지만 또한 포함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믿음은 모든 역사와 과학을 거절하는 맹목적 신앙이 아니다. 혹은 역사와 과학 모두와 단절된 채 전적으로 다른 영역 안에 존재하는 신앙도 아니다.

134 자신이 작업하고 있는 패러다임에 맞지 않는 무엇인가가 나타났거나 이런 저런 방법을 다 시도해 보았는데도 해결되지 않을 때 선택할 수 있는 과학적 방법 한 가치는 바로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그 때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것을 다 배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큰 전체 안에 그것을 포함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그것이 바로 도마가 받은 도전이다. 도마가 역사적·과학적 앎을 초월하면서도 포함하는 믿음의 인식론을 대변한다면, 바울은 희망의 인식론을 대변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36 반복해서 말하지만 부활은 현 세계 안에서 일어난 매우 독특한 사건이 아니다 (비록 그러한 면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부활은 원칙적으로 예수님과 함께 탄생하게 되는 새로운 창조세계의 결정적 사건이다 우리가 이 새로운 세상에 들어가는 것은 둘째치고 그것을 잠깐보기만 하려해도 우리에게는 다른 종류의 앎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를 새로운 방식으로 참여시키는 객관적 자세로 연구하는 유사 과학 연구의 냉정한 평가만이 아니라 전 인격적으로 참여하고 개입하는 인식론이 필요하다.

2부 하나님의 미래 계획

5. 우주의 미래: 진보인가, 절망인가?

147 인간의 프로젝트가 그리고 이 우주의 프로젝트가 계속해서 자라고 발전할 수 있고 실제로 그러할 것이며, 그 결과 인간이 무한히 개선되면서 유토피아를 향해 갈 것이라고 하는 생각은 르네상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18 세기 유럽의 계몽주의가 그러한 생각의 결정적인 견인차가 되었다.

151 진보의 신화가 갖는 진짜 문제는, 내가 조금 전에 암시한 것처럼 그것이 악의 문제를 다룰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다룬다’는 말을 할 때는 그저 지적으로만 다루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악을 다루는 것을 의미한다. 그 신화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심각한 악의 문제를 다룰 수가 없다.

152 진보의 신화는 세 가지 이유에서 악의 문제를 다룰 수 없다. 첫째, 악을 막을 수가 없다. 만약에 진화가 우리에게 히로시마와 강제 노동 수용소를 주었다면 진화를 좋다고만 할 수는 없다.

153 둘째, 만약 진보가 결국 우리를 유토피아로 데려간다 하더라도 지금까지 이 세상에 일어난 모든 악의 도덕적 문제는 다뤄지지 않는다.

153 만약 우리가 테야르드 샤르댕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그 모든 것의 과정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자신의 왕국을 이루는 과정에서 고통받은 사람들의 뼈와 재 위에다가 그 왕국을 세우는 신은 도대체 어떤 종류의 신이란 말인가?

154 세 번째로 진보의 신화는 악 자체의 성질과 힘을 과소평가하기 때문에 십자가의 핵심적 중요성을 보지 못한다. 십자가는 약에 대한 하나님의 부정인데 그 부정 다음에는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긍정이 열린다.

6. 이 세상이 기다리고 있는 것

164 악은 피조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세계를 만드신 하나님 대신에 그 자연 세계의 어떤 부분들을 경배하고 예배하는 반항적 우상 숭배에 있다. 그 결과 이 우주가 엉망이 되었다. 인간은 하나님을 대리해서 지혜롭게 창조계를 다스리는 대신에 창조주를 무시하고 하나님보다 요구가 덜한 어떤 것, 그들에게 권력이나 쾌락이라는 단기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줄 어떤 것을 예배하려고 한다.

165 구속의 요점은 있는 것을 폐기하고 새로운 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노예로 속박된 것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성경은 악이 물질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반항에 있다고 분석하기 때문에, 인간과 이 세상이 속박되어 있는 원인 역시 악이 형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165 노예됨의 상태는 바로 죄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구속이란 궁극적으로 영이나 혼의 선함만이 아니라 새로운 육체를 입은 삶도 포함 할 수밖에 없다.

177 빌립보서 3장에서처럼, 우리가 천국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천국이 이 땅으로 내려온다. 실제로 교회 자체가 천국의 예루살렘이 이 땅으로 내려온다. 이러한 관점은 온갖 종류의 영지주의, 즉 이 세상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것.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것, 하늘과 땅이 분리되는 것을 최종적 목표로 보는 모든 세계관들을 궁극적으로 거절한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주기도문에 대한 최종적 응답이다.

7. 예수님, 천국, 새 창조

185 왜 승천은 현대 서구 교회에서 그토록 어렵고 인기 없는 교리가 되었는가? 그 이유는 합리주의적 회의주의가 그것을 비웃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이유는 승천이 우리에게 이 우주 전체가 어떻게 구성되었는가에 대해 다르게 생각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고, 또한 우리가 교회와 구원에 대해 다르게 생각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186 하늘과 땅은 공간이나 물질의 동일 연속체 안에 있는 두 개의 다른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한 창조에 속한 서로 다른 두 개의 영역이다. 그리고 하늘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하늘은 땅과 접하고 있기 때문에 하늘에 있는 존재는 동시에 땅의 그 어느 곳에서도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승천이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으러 지구상의 특정 지점으로 여행하지 않아도 그분을 만날 수 있고 그 분께 접근할 수 있다는 뜻이다. 둘째, 하늘은 말하자면 땅의 통제실이다. 그곳은 최고 경영자의 사무실이며 지시가 내려지는 곳이다.

193 승천을 통해 우리가 정확하게 이해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간과 우리의 공간 ━ 다시 말해서 하늘과 땅 ━ 은 비록 매우 다르지만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하늘’에 대한 논의는 단지 우리 자신의 영적인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은유적인 방법이 아니다. 하나님의 공간과 우리의 공간은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서로 맞물려 있고 교차하는데, 심지어 그 두 개가 각각 구분되는 정체성과 역할을 유지하는 동안에도 마찬가지로 서로 맞물려 있고 교차한다.

9. 심판하러 오시는 예수님

227 믿음에 의한 칭의는 하나님이 이 세상을 심판하시게 될 미래의 판결을 예견하면서 현재에 일어나는 일이다. 복음을 믿으면 그 사람은 자신의 부모가 누구이건간에 이미 하나님의 가족이며, 예수님의 죽음 때문에 죄를 용서 받았고, 미래에는 바울이 말한대로 “이제 결코 정죄함이 없는”(롬8:1) 상태가 된다고 하나님은 미리 선언하셨다.

227 바울에게는 현재 시점의 믿음에 의한 칭의와 미래 시점의 행위에 따른 심판 사이에 아무런 충돌이 없었다. 그 두 가지는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에게 의존해 있다.

10. 우리 몸의 구속

255 ‘불멸의 육체’를 믿는 이러한 신앙과 불멸의 영혼을 믿는 신앙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225 왜 우리에게 새로운 육체가 주어지는가? 초기 그리스도인들에 의하면, 새로운 육체의 목적은 하나님의 새로운 세계를 지혜롭게 다스리는 것이라고 한다.

257 부활은 언제 일어날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죽으면 곧바로 부활의 상태로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기는 매우 어렵다고 생각한다. 바울은 만약 그리스도가 첫 열매라면 그 분께 속한 사람들은 “그분이 오실 때에” 부활할 것이라고 말하는 그 사건은 분명히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265 내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부활은 미래에 일어날 일이다. 이것이 바로, 죽으면 모든 순간이 현재인 영원으로 넘어가게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제외한 가톨릭과 개신교 동구와 서구의 모든 주류 정통 신학자들의 공식적인 관점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특히 구속받은 자들의 궁극적인 목적지를 나타내는 말로 ‘천국’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비록 중세와 그 이후의 경건주의에 의해 그 용법이 크게 대중화되기는 했지만 본의를 심각하게 오도하는 것이며 기독교적 희망에 전혀 합당하지 않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266 궁극적인 목적지는 죽음 이후의 ‘천국행’이 아니라 육체가 부활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죽음 이후의 천국행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면, 이것은 두 단계의 과정 중에서 훨씬 덜 중요한 첫 번째 단계의 과정을 의미하는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부활은 ‘죽음 이후의 삶’이 아니라 ‘죽음 이후의 삶 이후의 삶’이다.

268 나는 연옥이 어떤 장소, 시간 혹은 상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쨌거나 그것은 성경적인 근거가 없는 후대에 시구에서 도입 한 것이었고, 그것의 소외 신학적인 근거들도 이제는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뛰어난 로마 가톨릭 신학자들 자신에 의해 의문시되고 있다.

269 바울은 이 본문과 또 다른 본문에서 사실 연옥의 기능을 해야 하는 것은 현재의 삶이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사후의 어떤 상태가 아니라 바로 현재의 고난이 우리가 영광스런 미래에 도달하기 위해 지나가야 하는 계곡이다.

270 우리를 떠나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본질적으로 같은 상태, 즉 복된 안식의 상태에 있다는 관점이다. 그 상태를 때로는 ‘잠으로 설명하기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무의식의 상태를 의미한다고 생각서는 안된다.

275 모든 교회는 궁극적인 미래의 문제뿐만 아니라 죽음 직후에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서도 마땅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기독교 전통 안에서 참으로 중요한 논쟁거리가 되었던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어느 정도 숙고하지 않으면 우리의 논의는 빈약할 것이고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는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새 창조 안에 있는 궁극적 부활에 대한 희망을 붙잡고, 그 외에 ‘죽음 이후’의 질문들에 대한 우리의 모든 사고와 논의를 그 관점에 따라서 재정리하는 것이다.

278 우리는 마지막까지도 하나님을 거절하고 그러한 거절이 인증을 받게 되는 사람들이 정말로 있을지를 알기 위해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참조 할 수가 없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흔적은 예수님이 1세기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정상적인 인식을 그대로 가지고 계셨다는 것 밖에는 보여주지 않는다.

279 이 모든 것이 이 주제에 대한 논의를 미혹시킨 두 종류의 교조주의에 대한 경고가 되어야 할 것이다. 즉 누가 지옥에 가고 누가 가지 않는지를 정확하게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교조주의와 지옥이란 곳은 없다고 절대적으로 확신하며 혹시 있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텅 비게 될 것이라고 믿는 만인구원론자의 교조주의에 대한 경고가 되어야 한다.

280 심판 ━ 선하고 지지해야 하고 정당성을 입증 받아야 하는 것은 이런 것이고 악하고 정죄 받아야 하는 것은 저런 것이라는 주권적 선언 ━ 은 혼동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다.

280 문제는 너무나 오랫동안 모든 것을 용납하는 안이함에 기대어 살아온 신학, 맥도날드 햄버거만큼이나 경계가 없는 포용성을 가지고 살아온 신학이 이제는 심각하게 무력해진 나머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말로 하고 글로 썼던 강도 높은 심판은 둘째 치고 최소한의 사회적 문화적 심판마저도 감행할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284 죽은 후에는 자기 자신들의 선택에 의해 결국 한때는 인간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존재, 신의 형상을 더 이상 지니고 있지 않은 피조물이 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선한 세상, 아직은 완전히 꺼지지 않은 깜빡이는 불꽃처럼 선함이 남아있는 세상에서 그들이 지니고 살았던 몸은 죽음과 동시에 희망의 가능성뿐만 아니라 동정받을 가능성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288 “내가 죽은 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라는 문제는 수세기에 걸쳐 신학적 전통이 제기했던 주요하고 중심적이고 뼈대가 되는 질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약성경이 그것의 뿌리가 되는 구약성경과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는 바는 온 세상 우주 전체를 위한 하나님의 구출과 재창조의 목적에 대한 것이다. 개별 인간의 운명은 그러한 맥락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290 즉 하나님이 어떤 인간들을 천국으로 데려가실 것이고 어떻게 그 일을 하실 것인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을 통해서 자신의 창조계를 구속하시고 회복하실 것인지 그리고 모든 것의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그 과정의 일부로서 인간들도 구원하실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우리가 이와 같이 수정된 질문의 관점에서 로마서와 계시록 그리고 나머지 신약성경을 읽는다면 생각할 거리가 참으로 많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3부 희망의 실천: 부활과 교회의 사명

12. 구원을 다시 생각하다: 하늘, 땅 그리고 하나님 나라

295 물론 이생의 수고 후에는 반식이 약속되어 있고,’천국’이라는 단어가 비록 모호하기는 하지만 그 ‘안식’이 일어나는 장소를 표현하는 적절한 단어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안식의 시기는 이 땅이 겪게 될 어떤 매우 다른 일의 서곡일 뿐이다. 그 통치가 일어나게 될 장소는 바로 땅, 회복된 땅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2부에서 살펴본 것처럼 신약성경이 자주 언급하는 내용은 예수님이 있는 곳에 우리가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있는 곳에 예수님이 오시는 것이다.

299 어떤 사람들은 ‘전도’를 영원한 내세를 위해서 영혼을 구원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어떤 사람들은 ‘선교’를 ‘현재의 세상에서 정의, 평화 그리고 희망을 위해서 일하는 것’으로 이해하며 구태의연하게 분리하곤 한다.

301 그러나 어느 종파건 ‘성경적 그리스도인’을 포함한 대부분의 서구 그리스도인들은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다. 이것은 참으로 심각한 상태이며, 대중적인 가르침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전례, 공공기도, 찬송가와 온갖 종류의 설교에 의해 강화된다.

13. 하나님 나라를 위한 건설

337 당신은 뭐라고 말하겠는가? 당신은 어떤 형식으로든 이미 시작된 종말론을 설득하려고 들 것이다. 즉 성령의 새로운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에 순종하여 현재의 삶에 근본적인 태도의 변화를 가져와야 마땅하며, 비록 우리가 그 때가 오기 전에는 결코 완전하고 온전해지지 않을 것이지만 앞으로 올 삶을 예견하며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14. 사명을 위한 교회의 재구성(1): 성경적 근거

376 예수님의 부활에서 시작된 혁명적인 새로운 세상, 즉 죄와 죽은 자 가운데서 승리하신 예수님이 주님으로 통치하는 세상은 세례를 통해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는 사람들을 최전선의 전진기지로 삼고 있다. 예수님의 부활과 온 세상의 회복, 그 중간 단계에서 인간의 회복이 있다. 바로 여러분과 나 자신이 지금 여기에서 순종의 삶을 통해 회복되는 것이다!

15. 사명을 위한 교회의 재구성(2): 미래를 살다

402 기독교적 희망의 근본적인 왜곡은 현재의 세상을 그대로 내버려 둠으로써 악이 아무런 저지도 받지 않고 활동할 수 있게 하는 정적주의에 있다.

402 이 지점에서 교회는 타협하지 않으면서 협력하고 이원론에 빠지지 않으면 서 대립할 줄 아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 바깥 세상에서 이미 좋은 일들이 행해지고 있고 우리는 거기에 반드시 참여해야 하자만, 복음을 거스르는 행동을 하도록 요청받을 수도 있는 지점을 늘 경계해야 한다.

411 예수님의 부활과 새롭게 만들어진 세상에 대한 약속은 우리에게 성만찬을 새롭게 이해할 수있는 존재론적이고 인식론적인, 무엇보다도 종말론적인 틀을 제공해준다. 현재를 사는 우리를 지탱시켜 주기 위해서 하나님의 미래로부터 오는 희망을 박탈하지 말자. 하나님의 새로운 사상이 시작되었다. 그것이 현재의 세상 안으로 뚫고 들어오는 것을 우리가 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기독교적 삶에 동력을 주는 토대를 부인하는 것이다.

부록: 두 종류의 부활절 설교

435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의 새로운 프로젝트의 시작이다. 이 땅에서 사람들을 데리고 하늘로 올라가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하늘의 생명으로 이 땅을 식민화하는 프로젝트다. 그것이 결국 주기도문의 요점이 아니던가.

니컬러스 토머스 라이트

톰 라이트

니컬러스 토머스 라이트 혹은 톰 라이트(영어: Nicholas Thomas Wright, 약칭 N. T. Wright) 주교(1948년 12월 1일~ )는 영국 성공회 주교 겸 기독교 신약성서 학자이다. E. P. 샌더스 그리고 제임스 던과 더불어 바울에 대한 새관점 학파의 주도적 학자이다.

경력 [ 편집 ]

영국 모페스(Morpeth) 태생으로 옥스퍼드 대학교의 엑스터 칼리지에서 신학을 공부했으며, 1971년부터 1975년까지 세계성공회대학협의회(CUAC) 가맹학교인 옥스퍼드 위클리프 홀에서 성공회 사목(Anglican ministry)을 공부했다. 성공회 리치필드 주교좌 대성당(Lichfield Cathedral)에서 사목했으며,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맥길대학교에서 신약성서학을 가르쳤다. 2003년 영국 성공회 더함교구 주교(Bishop of Durham in the Church of England)으로 선출되었다. 2010년 9월[1]부터 더함 교구의 주교(Bishop of Durham)를 사임했고, 현재 영국 스코틀랜드 소재 세인트 앤드류스 대학교 (University St. Andrews)에서 신약성경학과 초기 기독교 역사(New Testament and Early Christianity) 분야의 교수로 있다.

신학 [ 편집 ]

그는 신약 분야에서 방대하고 도발적인 저작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일류 학자다. 전공분야는 역사적 예수와 바울신학이다.

역사적 예수 분야에서는 비판적 실재론을 방법론으로 사용해 소위 ‘제 3의 질문'(Third Quest for the Historical Jesus)에 속하는 연구를 수행했고, 바울 신학 분야에서는 E. P. 샌더스, 제임스 던과 함께 소위 ‘바울에 관한 새관점'(the New Perspective on Paul)을 이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신학의 주요한 내용은 ‘기독교의 기원과 하나님에 대한 질문(Christian Origin and the Question of God)’이라는 5권짜리 시리즈에 잘 드러나 있다.

비판 [ 편집 ]

그의 신학 중 특히 ‘바울에 관한 새관점’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따르는 이들도 많지만 비판하는 이들도 많다.

특히 그가 이신칭의에 대해 다룬 내용들은 전통적인 칭의개념을 따르는 이들(특히 개혁주의자들)에 의해 큰 비판을 받고 있다. 그의 비판자들은 톰 라이트가 《바울의 복음을 말하다》에서 개신교의 전통적인 교리인 이신칭의를 부정하고 이신칭의가 바울의 진정한 의도를 왜곡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칭의가 바울 복음의 핵심이 아니다”고까지 주장했다고 지적한다.[2] 이런 맥락에서 톰 라이트를 비판하는 책은 여러권 출판되었는데 대표적인 신학자들의 책으로는 존 파이퍼의 《칭의논쟁》, 박영돈 교수의 《톰 라이트의 칭의론 다시읽기》가 있고, 그 외에도 몇권의 책이 있다. 육군사관학교 법학과 교수를 역임한 임덕규 목사는 《개혁교회를 무너뜨리는 톰 라이트》라는 책에서 “톰 라이트는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를 부정하고,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라는 단어보다는 ‘하나님의 나라’라든지 선행이나, 공로로 대치하려 하는데 그 중심에 선 사람이 톰 라이트”라며 “그는 속죄의 복음을 승리의 선언으로 바꾸고 그리스도 의의 전가를 부인함으로 결국 인간의 공로주의 신앙으로 나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톰 라이트가 “그리스도 복음에서 피라는 말 대신에 하나님 나라로 대신하려는 사이비 주장 때문에 세계 교회는 무서운 시험에 처해 있다”고 주장했다.[3] 또한 그의 새 관점 칭의론은 종교개혁자들의 칭의론과 비교했을 때, 종말에 있을 행위심판에 대한 주장 때문에 ‘행위구원론적’이며 ‘반(半)펠라기우스주의’(Semi Pelagianism)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4]

하지만 톰 라이트에 대한 비판 뿐 아니라 옹호 의견도 많다. 톰 라이트의 신학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응답에 관해서는 《예수, 바울,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책을 참고할 수 있다.

같이 보기 [ 편집 ]

저서 [ 편집 ]

《 Simply Christian: Why Christianity Makes Sense 》- 한국어판은 《톰 라이트와 함께 하는 기독교여행》(IVP)로 번역되었다.

》- 한국어판은 《톰 라이트와 함께 하는 기독교여행》(IVP)로 번역되었다. 《예수》(원제: The Original Jesus )(살림출판사)

)(살림출판사) 《 The Challenge of Jesus 》(한국성서유니온선교회에서 《Jesus코드》로 역간하였다.)

》(한국성서유니온선교회에서 《Jesus코드》로 역간하였다.) 《 Who Was Jesus 》

》 《 Evil and the Justice of God 》-IVP에서《악의 문제와 하나님의 정의》로 역간하였다.

》-IVP에서《악의 문제와 하나님의 정의》로 역간하였다. 《 The New Testament for Everyone 》

》 《 The Climax of the Covenant: Christ and the Law in Pauline Theology 》. Fortress Press, 1991.

》. Fortress Press, 1991. 《 Following Jesus: Biblical Reflections on Discipleship 》. Wm. B. Eerdmans, 1997 / SPCK, 1994 – 한국어판은 <<나를 따르라>>(살림출판사)로 번역되었다.

》. Wm. B. Eerdmans, 1997 / SPCK, 1994 – 한국어판은 <<나를 따르라>>(살림출판사)로 번역되었다. 《 What Saint Paul Really Said: Was Paul of Tarsus the Real Founder of Christianity? 》 Wm. B. Eerdmans, 1997.

》 Wm. B. Eerdmans, 1997. 《 The Challenge of Jesus: Rediscovering Who Jesus Was and Is 》. Hardcover ed. InterVarsity Pr., 1999 / SPCK, 2000

》. Hardcover ed. InterVarsity Pr., 1999 / SPCK, 2000 《 The Resurrection of Jesus: John Dominic Crossan and N.T. Wright in Dialogue. 》 Ed. Robert B. Stewart. Paperback ed. Augsburg Fortress, Pub., 2005 / SPCK 2006

》 Ed. Robert B. Stewart. Paperback ed. Augsburg Fortress, Pub., 2005 / SPCK 2006 《 Paul: Fresh Perspective .》 Fortress Press, 2005 co-edition SPCK, 2005

.》 Fortress Press, 2005 co-edition SPCK, 2005 《 The Last Word: Beyond the Bible Wars to a New Understanding of the Authority of Scripture 》. Harper SanFrancisco, 2005.

》. Harper SanFrancisco, 2005. 《 The New Testament and the People of God: Christian Origins and the Question of God. 》Augsburg Fortress, 1992.

》Augsburg Fortress, 1992. 《Jesus and the Victory of God: Christian Origins and the Question of God》, Volume 2. Augsburg Fortress, 1996.

– 한국어판은 《예수와 하나님의 승리》(크리스챤 다이제스트)로 역간되었다.

《The Resurrection of the Son of God.》 Augsburg Fortress, 2003. -한국어판은 《하나님의 아들의 부활》(크리스챤 다이제스트)로 역간되었다.

주석시리즈 [ 편집 ]

《 Matthew for Everyone, Part 1: Chapters 1-15. 》 2nd ed. Vol. 1. SPCK and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4.

》 2nd ed. Vol. 1. SPCK and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4. 《 Matthew for Everyone, Part 2: Chapters 16-28. 》 2nd ed. Vol. 2. SPCK and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4.

》 2nd ed. Vol. 2. SPCK and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4. 《Mark for Everyone.》 2nd ed. SPCK and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4.

《Luke for Everyone.》 2nd ed. SPCK and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4.

《John for Everyone, Part 1: Chapters 1-10.》 Paperback ed. SPCK and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4.

《John for Everyone, Part 2: Chapters 11-21.》 2nd ed. SPCK and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4.

《Paul for Everyone: 1 Corinthians.》 2nd ed. SPCK, 2004.

《 Paul for Everyone: 2 Corinthians. 》 2nd ed. SPCK, 2004.

》 2nd ed. SPCK, 2004. 《 Paul for Everyone: the Pastoral Letters. 》 2nd ed. SPCK, 2004.

》 2nd ed. SPCK, 2004. 《 Paul for Everyone, the Prison Letters: Ephesians, Philipians, Colossians and Philemon. 》 2nd ed. SPCK and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4.

》 2nd ed. SPCK and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4. 《Hebrews for Everyone.》 2nd ed. SPCK,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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