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 내전 상황 | 잊혀진 예멘 내전…\”유아 40만명 아사 위기, 종말론적 상황\” 225 개의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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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시리아 내전 소식 전해드리고 있는데, 참상이 알려지지 않고 있는 곳들도 많습니다. 예멘도 그런 곳 가운데 한 곳인데요. 예멘인구 대부분에 대해 긴급 구호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합니다.
이지은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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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내전 – 나무위키:대문

때문에 미국은 후티를 도울 수도 없고 알 카에다나 남예멘 분리주의 세력을 지원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질 우려가 많은 상황이다. 결국 후티가 쿠데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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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5/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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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떻게 예멘의 ‘인도적 위기’를 악화시켰나

유엔(UN)은 예멘의 상황을 ‘세계 최악의 인도적 위기’로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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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bc.com

Date Published: 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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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내전, 종식인가 연장인가 – 한국일보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예멘 분쟁 특사’ 팀 렌더킹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오만 방문 길에 나섰다. 렌더킹 특사의 임명 소식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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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ankookilbo.com

Date Published: 4/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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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내전 ‘정치적 해결’ 희망

미국 정부의 견해를 반영하는 논평입니다. 최근 중동 예멘 내전 사태가 정치적 해결책을 찾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멘 내전은 7년전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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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editorials.voa.gov

Date Published: 3/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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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예멘 내전 7년간 37만명 숨져”…인구의 1.2% – 연합뉴스

UNDP는 예멘 인구의 약 80%가 인도주의적 위기에 처했으며 상황은 계속 악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관련뉴스. 예멘 후티 반군 “사우디 도시·아람코 공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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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yna.co.kr

Date Published: 6/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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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내전 (2015년~현재)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예멘 내전은 최고 정치회의 및 후티 세력과 하디 정부 및 남부 과도위원회 간의 대립 전쟁이다. 남부의 분리주의자들과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를 추종하는 아덴 기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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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9/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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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을 가다]60년 내전에 신음하는 예멘, 인구 절반 이상 …

1963년 이집트가 북예멘 내전에 참전했을 때 이집트 … … 예멘 내전 장기화로 37만 명이 희생된 상황에서 미국산 무기의 주요 수입국인 사우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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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donga.com

Date Published: 7/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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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내전의 현황과 전망

지난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의 시아파 반군을 공습하면서 예멘의 내전에 개입했다. … 내전으로 인한 피해 규모는 어느 정도이며, 피해 상황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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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emerics.org:446

Date Published: 4/2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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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섭의 정치학-끝나지 않는 예멘 내전 : 권력 공유와 … – 법률저널

이 나라가 시리아보다 인도적 재난이 심각한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예멘의 심란한 상황이 권력 공유(power share)와 권력 집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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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lec.co.kr

Date Published: 9/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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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예멘 내전…\
잊혀진 예멘 내전…\”유아 40만명 아사 위기, 종말론적 상황\”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예멘 내전 상황

  • Author: JTBC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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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8.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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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내전, 종식인가 연장인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예멘 분쟁 특사’ 팀 렌더킹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오만 방문 길에 나섰다. 렌더킹 특사의 임명 소식은 올해 2월 5일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발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예멘 전쟁은 종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4년 9월 내전으로 시작된 예멘 전쟁은 이듬해 3월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를 주축으로 한 지역 패권국들이 ‘아랍동맹’의 이름으로 개입하고, 이란과 미국까지 간섭하면서 국제 분쟁으로 비화했다. 미국은 아랍동맹, 특히 사우디를 노골적으로 지원하며 ‘이란 견제’라는 미국의 대 중동 전략을 숨기지 않았다. 사우디의 예멘 공습에 필요한 연료와 정밀 타격기를 제공하고, 민감한 정보도 공유하는 등 말 그대로 무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6년여의 예멘 전쟁 기간 발생한 사망자 13만명은 대부분 사우디 주도 아랍동맹의 폭격에 의한 것이다. 공습 대부분은 장례식, 병원 등의 민간인 구역과 시설을 강타했다. 특히 전체 사망자 중 4분의1이 어린이들이었다.

10년 넘게 예멘에는 “인도주의적 위기”라는 수사가 꼬리표처럼 따라 다녔다. 1월 출범한 바이든 행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노선을 뒤집고 예멘 분쟁 종식을 중요한 외교정책 목록에 올려놓은 건 분명해 보인다. 특사 발표 하루 전인 2월 4일에도 바이든 대통령은 “더 이상 예멘 전쟁에 개입한 사우디를 공격적으로 지원하지 않겠다”면서 “다만 사우디의 주권, 영토 수호는 돕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미 행정부가 2월 16일 예멘 북부의 무장세력인 ‘안사르 알라(후티반군)’를 외국 테러리스트 명단에서 삭제하면서 협상과 분쟁 종식 화두가 급격히 수면 위로 부상했다. 이런 맥락에서 미 예멘 특사의 오만 방문은 분쟁 종식을 위한 협상 기반 다지기 행보로 풀이됐다. 이란도 나름대로 4월 28일 자바드 자리프 외무장관이 오만에서 모하메드 압둘 알 후티 후티반군 대변인을 만나는 등 예멘 사태의 국면 변화에 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2월부터 일련의 외교적 해법을 방해하는 사건이 지속되고 있다. 바로 북부 마리브에서 고조되고 있는 후티반군과 예멘 정부군 간 교전이다. 사우디에 망명 중인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예멘 대통령은 후티반군이 거의 장악한 북부에서 유일하게 통치권을 유지하는 이 지역을 반군에 내주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방어하고 있다. 예멘 전문가들은 마리브 전투와 종전 협상이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고 본다. 후티반군은 2월 8일부터 마리브 공세에 나섰는데, 이는 추후 평화 협상 과정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공고히 다지려는 의도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마리브는 석유 자원의 보고이자 정유시설까지 갖춰 봉쇄에 직면한 후티반군이 확실히 탐낼 만한 지역이다.

하지만 명분과 속내가 어떻든 마리브 전투는 예멘의 인도주의적 위기를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지난달 중순엔 하루 동안 무려 90명이 넘는 사상자가 나오기도 했다. 사우디 언론 아랍뉴스는 4일 “2월 이후 마리브 전투로 인한 양측 희생자가 수천 명에 이른다”고 전하기도 했다.

민간인 피해 확대도 불 보듯 뻔하다. 6년 전 예멘 내전이 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마리브 인구는 2만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예멘 사무소에 따르면 현재 예멘 전체 400만 피란민의 절반인 200만명이 이 지역에 머물고 있다. 물리적 폭력에 노출된 건 물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 보건 위기에도 취약할 수밖에 없는 환경인 셈이다. 실제 2월 유니세프와 세계보건기구(WHO) 등 유엔 기구들은 예멘의 5세 미만 어린이 230만명이 ‘심각한 영양실조’에 놓여 있고, 이중 40만명은 긴급 대처를 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이 지원하고, 사우디가 주도한 장기 봉쇄 여파다.

마리브 전투로 인한 인권 참사가 가중되면 예멘의 위기는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예멘 정부 발표를 보면 2월 27일 하루에만 후티반군은 마리브를 향해 10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렇게 날아간 미사일은 민간인과 군 시설을 구분해 폭격하지 않는다. ‘예멘 데이터 프로젝트’가 집계한 2월 한 달 간 사우디ㆍUAE 주도 아랍동맹의 공습 절반도 마리브에 집중됐다. 국내 피란민 50%가 모여 있는 인구밀집 지역을 볼모로 예멘 전쟁의 두 당사자 그룹이 무차별적인 군사 작전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다. 3월 22일 사우디 측은 후티반군에 ‘유엔 감시’를 조건으로 휴전을 제의했다. 하지만 후티반군은 단칼에 거부했다. 대신 반군이 통치하는 호데이다항과 수도 사나공항의 봉쇄를 해제하고, 조건 없이 물자 유입을 허용하라는 역제안을 내놨다.

현재 후티반군 수중에 있는 호데이다항은 익히 알려진 대로 식량과 기본물자의 80%가 들고 나는 예멘의 생명줄과도 같은 곳이다. 미 CNN방송은 3월 10일 르포기사를 통해 연료가 없어 멈춰 선 식량 수송 차량들이 항구 인근에 일렬로 세워진 모습을 보도하기도 했다. OCHA 측은 2월 내내 호데이다항을 통한 연료 수입이 전무했다고 밝혔다. 때문에 호데이다 봉쇄는 후티반군이 원유 보고인 마리브를 필사적으로 탈환하려는 군사 행동의 좋은 명분이 되고 있다. 2018년 사우디와 UAE가 개시한 호데이다 전투, 그리고 2021년 현재 진행 중인 마리브 전투 모두 이해관계에 매몰된 이기주의가 인도주의 위기로 이어진 비극으로 기록될 것이다.

암울한 징조는 또 있다. 사우디의 예멘 전쟁 지원을 중단하겠다던 바이든 행정부가 4월 UAE에 230억달러어치 무기 수출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무기 제공은 예멘 분쟁 종식 논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이다. 물론 해당 거래가 ‘트럼프의 유산’이긴 하다. 미 상ㆍ하원이 거래 반대 결의안을 통과시킬 정도로 반발이 거셌던 사안이다. 바이든 대통령도 취임 후 줄곧 UAE 무기 수출 건을 고심했지만, 결국 계약을 승인했다. 국제인권단체 엠네스티 인터내셔널 미국지부는 성명을 통해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의 무기 거래를 유지하면서 무고한 예멘 시민들이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됐다”며 “국제사회 인권 수호에 헌신하겠다는 바이든 대통령의 약속과 배치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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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예멘 내전 7년간 37만명 숨져”…인구의 1.2%

“영양실조·질병 등 부수적 인명피해가 60% 차지”

전쟁으로 집을 잃은 예멘 피란민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두바이=연합뉴스) 이승민 특파원 = 유엔개발계획(UNDP)은 2015년 초부터 본격화한 예멘 내전이 7년째 이어지면서 사망자가 올해 연말까지 37만7천명에 달할 것이라고 24일(현지시간) 예상했다.

이 추정치대로라면 약 3천만인 예멘 인구의 1.2% 정도가 내전 과정에서 사망하게 되는 셈이다.

AFP통신에 따르면 UNDP는 보고서에서 “전쟁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숨진 사람이 15만명 가량이고 나머지 60%는 영양실조·질병 등 간접적인 영향으로 사망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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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사망자의 70%가 5세 이하의 어린이이고, 올해 통계에 따르면 9분마다 어린이 1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런 추세라면 2030년까지 사망자가 130만명에 이르고 920만명이 영양실조를 겪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UNDP는 예멘 인구의 약 80%가 인도주의적 위기에 처했으며 상황은 계속 악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엔은 올해 초부터 정부군과 반군이 격전을 벌이는 중부 마리브주에서 지난 9월부터 주민 4만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고 전했다.

정부군이 장악한 마리브주는 최빈국 예멘의 경제적 생명줄인 원유와 천연가스가 생산되는 핵심 지역이다.

예멘 내전은 2014년 촉발된 이후 이란과 사우디의 대리전 양상으로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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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내전 (2015년~현재)

예멘 내전은 최고 정치회의 및 후티 세력과 하디 정부 및 남부 과도위원회 간의 대립 전쟁이다.[45] 남부의 분리주의자들과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를 추종하는 아덴 기반 세력이 후티 및 최고 정치회의 의장인 마흐디 알마스하트의 병력과 충돌하고 있다.[46][47] 알카에다 아라비아 반도 지부와 ISIL 또한 공격을 이어나가고 있으며 알카에다 아라비아 반도 지부는 사우디 아라비아와 연결된 내륙 일부 및 해안 일대를 장악하고 있다. 3월 22일 후티 군의 공세가 시작되었다.[48] 3월 25일까지 타이즈 주와 모카, 라히즈 등이 후티 군에게 함락되었고, 그들은 아덴 외곽지역까지 진격하여 하디 정부를 위협했다.[49] 3월 25일 하디는 예멘을 떠나 도피했다.[50][51] 같은 날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끄는 연합군이 군사 작전을 개시하여 옛 예멘 정권을 복구하기 위해 공습을 시작했으며 미국은 정보 및 병참 지원을 해 주기 시작했다.[52] 4월 7일까지 약 310명이 아덴에서 죽었다.[53][54][55]

배경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후티 쿠데타 입니다.

9월 21일에는 후티 반군이 사나를 장악했다. 이후, 후티 반군과 정부군, 후티 반군과 알카에다 사이의 충돌이 잇다르고 있다.[56]

2015년 1월 20일, 반군이 대통령 관저를 공격하고 대통령궁을 장악했다. 정보장관 나디아 알사카프에 따르면 대통령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는 대통령궁 내부에서 30분 동안 거대한 포격을 받았지만, 경비원의 보호에 따라 무사히 다치지 않고 보호받았다고 말했다. 대통령 경호원은 하디 대통령이 안전하게 떠날 수 있음을 보장받은 이후 항복했다.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이 반란으로 일어난 사건에 대해 긴급 회의를 진행했다.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은 예멘에서 “상황 악화”를 우려하고 적대적 행위를 중단하기 위해 모든 측면에서 노력할 것을 촉구했다.[57][58] 1월 22일, 대통령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와 총리 칼레드 바하흐는 의회에 사임을 내고 어떠한 보도도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59][60]

2월 6일, 후티는 임시 헌법을 발표하며 의회를 해산하고 551명으로 된 새 의회를 구성하며, 151명의 대통령 위원회를 설치해 2년간 정부 역할을 맡게 하겠다고 밝혔다. [61]

사우디아라비아 군사 개입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연합군의 예멘 개입 입니다.

2015년 3월 26일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모로코 등의 국가가 공습에 참여했다. 알아라비야 방송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번 작전에 전투기 100대를 동원했고 지상군 15만 명도 파병키로 했다고 보도했다. 이 공습으로 수도 사나 북부의 알다일라미 공군기지의 활주로가 폭격을 받았고, 사나 남부의 무기고도 공격받았다.[62]

알카에다의 지속적인 반란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샤브와 주 공세 입니다.

부족 소식통에 따르면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지부의 지휘관 야세르 알 마로우의 집 근처에서 폭발이 일어났다고 했다. 예멘군은 사망한 3명의 군인을 확인할 수 있었고 두명은 예멘인 그리고 한명은 사우디아라비아인이라고 밝혔다.그 집은 심각하게 폭파됐지만 그때 그 집에 그 지휘관이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2014년 8월초에 벌어진 격전으로 12명의 예멘 군인과 9명의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지부 군인이 사망했다.[63][64] 예멘 내전이 진행되고 있는 2015년 중반에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지부는 예멘군을 도시에서 축출하고 하반을 완전히 점령하였다. 2015년 4월 17일에 미국의 공습으로 2명의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지부 군인이 사망하였다.[65] 2016년 3월 3일에 미국의 무인 정찰기 공습이후에 4명의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지부 군인이 사망하였다.[66] 2016년 2월 1일에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지부는 조금의 레지스탕스나 예멘군없이 아잔을 점령하였다. 2016년 3월 3일에 미국이 무인 정찰기로 공습하면서 아잔의 변두리에 있는 검문소에서 일하는 4명의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지부 군인이 사망하였다.[67] 2016년 4월 25일에 예멘군과 아랍에미리트군은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지부가 마을에서 퇴각하는 덕분에 전투없이 아잔에 들어왔다.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지부가 퇴각하기전에 미국이 무인 정찰기로 공습하면서 8명 이상의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 지부 군인이 사망하였다.[68][69]

[글로벌 현장을 가다]60년 내전에 신음하는 예멘, 인구 절반 이상 식량난 고통

지난해 11월 말 예멘 수도 사나에서 한 후티 반군이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연합군에 미국이 지원하는 것을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해 총을 들어올리고 있다. 2014년 9월 시작된 예멘 내전은 지난달 후티 반군이 아랍에미리트(UAE) 선박을 나포하고, 수도인 아부다비를 공습하는 등 UAE에 초강수를 두면서 더 큰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사나=AP 뉴시스

황성호 카이로 특파원

내부 갈등서 탄생한 후티

반군, 文 머물던 두바이 공습

이집트 수도 카이로 인근의 신도시 헬리오폴리스의 중심부를 관통하는 ‘나빌와카드’ 거리. 1963년 북예멘 내전에 참가했다 숨진 이집트 군인의 이름을 땄다. 내전으로 얼룩진 근현대사를 보유한 예멘은 2014년부터 각각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를 등에 업은 시아파 반군 후티와 정부군의 교전으로 고통받고 있다. 헬리오폴리스=황성호 특파원 [email protected]

늘어나는 피해

약 60년이 흐른 지금도 예멘은 내전 중이다. 1990년 북예멘과 남예멘이 통일을 이뤘음에도 고질적인 남북 갈등이 여전한 가운데 2014년부터는 시아파 후티 반군과 정부군이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다. 특히 후티와 정부군은 각각 시아파 맹주 이란, 수니파 맹주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받고 있어 이란과 사우디의 대리전 성격 또한 강하다. 양측 모두 중동 전체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절대 예멘에서 물러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후티는 지난달에만 수니파 아랍에미리트(UAE)에 세 차례 미사일 공격을 가하며 ‘세계의 화약고’ 중동의 긴장을 더 고조시키고 있다.후티의 등장 배경에는 예멘의 복잡한 근현대사가 있다. 중세부터 북부 산악지대에는 시아파, 남부 평야지대에는 수니파가 주로 거주했다. 또 수도 사나가 있는 북예멘은 1918년까지 오스만튀르크가, 석해균 선장 사태로 친숙한 항구도시 아덴이 있는 남예멘은 1967년까지 영국이 지배했다. 이후 북예멘은 무타와킬 왕국을 거쳐 공화제를 채택한 반면 남예멘은 공산 정권을 수립해 1990년 통일 후에도 이념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북부가 남부에 비해 가난한 것 또한 양측 갈등을 부추겼다. 특히 낙후된 사다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시아파 분파 ‘자이디’파가 많았다. 북예멘은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와 국경을 맞댄 데다 예멘 인구 약 3100만 명의 57%가 수니파여서 자이디파의 불안감이 상당했다.이에 1994년 자이디 성직자의 아들 후세인 알후티(1959∼2004)와 형제들이 ‘수니파 침투를 막자’며 청년 단체를 조직한 것이 후티의 기원이다. 후티는 가난에 지친 젊은층을 규합해 빠르게 세를 불렸다. 특히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자 반미, 반정부를 외치며 본격적인 무력 투쟁에 나섰다. 또 ‘미국에 죽음을! 이스라엘에 죽음을! 유대인에게 저주를! 이슬람에 승리를!’ 같은 공격적인 슬로건을 채택하며 존재감을 각인시켰다. 후세인이 2004년 정부군과의 교전으로 숨진 후 동생 압둘말리크(40)가 후티를 이끌고 있다.후티는 중동의 민주화 시위 ‘아랍의 봄’이 발발한 2011년 국제 정세의 전면에 등장했다. 이 사태로 북예멘 주도의 남북통일을 이끌었으며 1978년부터 33년간 집권한 알리 압둘라 살레 당시 대통령이 실각했다.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 새 대통령은 집권 초만 해도 “사다 등 일부 지역에서 후티의 관할권을 인정하겠다”고 했다.하디 정권이 변심하자 분노한 후티 또한 이란을 끌어들인다. 이란을 업은 후티는 2014년 9월 사나를 장악하고 하디 대통령을 몰아냈다. 그러자 2015년 3월 사우디 또한 UAE, 바레인 등 수니파 국가를 규합해 후티와 맞섰다. 이 와중에 이슬람국가(IS), 알카에다 아라비아지부 등 무장단체 또한 난립하고 남예멘만의 독립을 주장하는 남부 분리주의 운동까지 득세해 예멘 전체가 아비규환에 빠졌다.사우디에 우호적이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퇴임 직전인 지난해 1월 후티를 테러 단체로 지정했다. 그러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이 조치를 철회했다. 취임 전부터 이란 핵합의 복원을 외교 정책의 주요 과제로 내세웠던 바이든 행정부로선 이란을 자극하지 않을 조치가 필요했다. 예멘 내전 장기화로 37만 명이 희생된 상황에서 미국산 무기의 주요 수입국인 사우디가 후티는 물론 민간인까지 공격한다는 미국 내 비판 여론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2018년 8월 사우디군이 사다 지역의 통학버스를 공격해 약 50명의 학생이 숨졌다.이런 바이든 행정부의 태도는 내전 판세에도 큰 변화를 가져 왔다. 후티는 지난해 2월부터 정부군이 장악한 원유 산지 마리브주를 집중 공격했다. 후티는 한때 주도(州都) 마리브시의 20km 앞까지 전진하며 정부군을 압박했다. 이에 정부군과 수니파 연합군 또한 마리브 수호를 위해 병력과 물자를 대폭 늘렸다. 1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매주 많게는 수백 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정도로 마리브 공방전이 치열한 상태다.후티는 올 들어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에만 세 차례 UAE를 공격했다. 지난달 3일 후티는 홍해를 지나던 UAE 선박 ‘라와비’호를 나포했다. 같은 달 17일에는 미사일과 무인기(드론)를 통해 UAE 양대 도시 아부다비와 두바이를 공습했다. 당시 중동을 순방 중이던 문재인 대통령이 머물던 두바이에서는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으나 수도 아부다비에서는 3명의 사망자와 6명의 부상자가 나왔다.격분한 UAE 또한 후티가 점령하고 있는 사나에 대대적인 공습을 가했다. 수니파 연합군은 지난달 말 하루 50, 60회의 대규모 공습을 가했다. 후티 또한 이츠하크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이 아부다비에 머물던 지난달 31일 아부다비를 또 미사일로 공격했다. 후티는 UAE가 경제 활성화 등을 위해 이스라엘과 손잡는 것 또한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끝나지 않는 내전은 빈곤, 불평등, 인권 같은 고질적 문제를 더 키웠다. 2018년 국제통화기금(IMF) 기준 예멘의 1인당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불과 925달러(약 111만 원)로 세계 177위다. 인구의 절반이 넘는 1700만 명이 식량난을 겪고 있고, 200만 명의 어린이는 급성 영양실조로 치료가 시급하다.성인 1명당 평균 3정의 총기를 보유할 정도로 치안 역시 불안하고 부족국가의 특성이 강해 사실상 상당수 주민들이 중세 시대에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성 격차 지수 또한 세계 144개국 중 꼴찌이며 문맹률 또한 50%가 넘는다. 국제사회의 지원 또한 먼저 내전이 발발한 시리아에 집중됐다. 미 외교매체 포린폴리시(FP) 등이 예멘 내전을 ‘세계 최악의 인도주의적 재앙’이라고 지적한 이유다.단기간 내 사태 해결 또한 쉽지 않아 보인다. 권력 분할에 대한 후티와 정부군의 이견이 큰 데다 사우디와 이란의 대립 또한 여전하다. 특히 양측은 후티의 근거지 사다 지역이 사우디 남부와 맞닿아 있다는 이유로 “절대 예멘에서 먼저 물러날 수 없다”는 완강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황성호 카이로 특파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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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의 시아파 반군을 공습하면서 예멘의 내전에 개입했다. 예멘 내전은 표면적으로는 쿠데타를 일으킨 반군과 국제적 인정을 받는 정부군의 전투로 보여진다. 그러나 사우디와 이란의 대리전이라는 정치적 의미가 부여되면서 1년이 지났지만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위와 관련하여, Middle East Studies, Grand Valley State University의 Gamal Gasim 부교수에게 예멘 내전의 현황과 전망에 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Q1. 예멘 내전이 발생하게 된 배경과 현황은 무엇인가?

▲ 예멘은 지난 1990년 5월 22일 남북이 통일된 이후 정치적 불안과 갈등을 겪어왔다. 1993년에 있었던 첫 자유 총선(free Parliamentary election) 직후, 1994년에 살레(Saleh) 정권과 예멘 사회당 사이에 내란이 발생했다. 내란은 약 2개월 이후 끝이 났지만, 내란의 여파는 예멘의 정치와 경제에 향후 20년 동안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1990년대 초, 북부 예멘에 후티(Houthis)라고 불리우는 소규모 조직이 등장했고, 이 조직은 10년 이후 무장단체로 성장했다. 살레 정권은 2004년부터 2011년 사이에 후티와 다섯 차례의 내전을 벌였다. 하지만, 살레 대통령이 2012년 걸프 이니셔티브(Gulf Initiative)의 결정에 의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그는 이슬람당, 이슬라(Islah)과 같이 예멘인들의 폭동을 담당하는 정치 세력들을 공공의 적(common enemy)으로 내세워 과거에 적이었던 후티와 위험한 동맹을 맺었다. 후티와 살레 전 대통령의 동맹은 압드라보 만수르 하디(Abdu Rabbu Mansour Hadi) 대통령 정부의 기반을 약화시켰다. 후티-살레 동맹은 후티가 2014년 9월 21일 예멘의 수도인 사나(Sana’a)에 진입하게 될 때까지, 예멘의 도시를 하나하나 함께 장악해갔다. 하디(Hadi) 대통령은 아덴으로 피신했다가 오만과 사우디아라비아로 가기 이전에 후티-살레에 잡혀 자택 감금을 당하기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새 국왕 살만 빈 압둘(Salman ben Saud)은, 살레 전 대통령과 후티의 동맹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직접적인 위협을 줄 수 있다고 여겼다. 살만 국왕은 하디 대통령이 지원을 요청해 오자,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후티-살레 군을 공습하도록 지시했고 일부 아랍군의 합류에 힘입어, 아덴과 그 외에 지역에서 후티를 쫓아냈다. 그러나 수도인 사나를 포함한 예멘의 북부지역은 아직도 후티의 통제 하에 있다.

Q2. 예멘에서 내전이 장기화 된 이유는 무엇인가?

▲ 현재의 전쟁이 1년 이상 지속된 데에는 다양한 요인들이 있다. 첫째, 전쟁에서 연합군을 이끌었던 사우디아라비아의 군사작전이 실패했다. 사우디 연합군은, 수도 사나와 같은 주요 거점을 장악할 수 있도록 지상군을 적절하게 투입해야 했으나, 공군에만 과도하게 의존하였다. 둘째, 친(親)하디 대통령의 예멘군 재편성 과정이 극히 느렸으며 수적으로도 부족했다. 살레 전 대통령은 대통령 시절 당시 자신을 충성스럽게 보좌하던 특수부대원들이, 그의 해임 이후에도 그의 아들인 아마드 알리 살레의 휘하에서 수년간 활동해왔으며, 이 병력에 대한 실권은 여전히 자신이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예멘 대통령의 재임 기간을 “Dancing over the heads of snakes”로 표현하기도 했던 알리 살레는, 예멘에서 어떤 세력이 실권을 쥐고 있는지 극히 잘 이해하고 있었고, 지난 30년간 자신에게 충성하는 세력들과의 두터운 관계를 구축해왔다. 그러나 하디 대통령은 이러한 기술이 부족했다. 그는 본인을 지지하는 세력과의 관계구축을 위해 어떠한 정치적 자본도 투자하지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개입하지 않았다면 하디 대통령은 살해당했거나 추방되었을 것이다.

Q3. 내전으로 인한 피해 규모는 어느 정도이며, 피해 상황은 어떠한가?

▲ 내전이 발생하기 이전부터 예멘은 매우 빈곤한 아랍국가 중 하나였다. 비록 내전이 종결되지 않아 정확한 피해규모를 집계하기는 어렵지만, 내전으로 인한 피해의 규모는 상당할 것으로 파악된다. 세계 보건 기구(WHO)는 예멘의 인도주의적 위기로 인해 이미 34,000명의 피해자가 발생했으며, 이 중, 사망자 5,955명, 부상자 28,111명으로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발표했다. 내전에 따른 경제적인 영향 역시 상당히 부정적인 상황이다. 더불어, 사우디 연합이 예멘을 대상으로 경제적 제재를 가하여, 예멘 현지 중소기업들의 폐업 및 통화 가치 하락 등 (미국 $1=250 YR, 암시장에서는 290 YR)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정황들은 예멘의 내부경제 악화를 뚜렷이 보여주고 있다. 중소기업들의 폐업 등으로 인하여 예멘의 실업률은 내전 발생 이전보다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회복을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예멘이 이번 사건을 통해 입은 피해 중에서도 막대한 노력으로 가장 먼저 회복되어야 할 부분은, 너무 훼손되어버려 그 피해 규모조차 파악할 수 없게 되어버린 예멘의 사회적 기본 구조이다.

Q4. 예멘 내전에 대한 국제사회의 입장은 어떠한가?

▲ 국제사회는 남아있는 아랍의 봄 국가들이 모범으로 삼기를 바라면서, 걸프 이니셔티브(Gulf Initiatives)으로 알려진 걸프 국가들의 중개로, “2012 세력 전이 협력(power transition agreement)”을 열었다. 후티가 2014년 9월 21일 예멘의 수도 사나를 장악하기 전에 걸프 이니셔티브에 가입했던 예멘 전쟁 참전국들이 모두 국제회담에 참가하였다. 미국은 예멘이 아라비아 반도에 있는 알-카에다(AQAP: Al-Qaeda in the Arabian Peninsula)의 지배권에 포함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알카에다의 아라비아반도 지부는 2011년 예멘에서 일어난 폭동과정에서 발생한 정치적 혼란을 틈타 남부 예멘의 정치에 개입했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은, 이번 예멘에서 일어나는 전쟁이 평화적 해결방법 없이 계속 지연되기만 한다면, 알-카에다 척결을 위한 아라비아반도 지부와의 싸움에 대한 그들의 노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러시아 측은 (정확하지 않지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있는 하디 대통령을 지원하고 있다. 예멘의 수도인 사나에 있는 러시아 대사관은 아직도 운영 중이며, 러시아 외교관들은 후티-살레 동맹의 간부들과 가까이 지내고 있다. 수단, 아랍에미리트 등의 아랍국가들은 사우디 연합에 가입하고 있다.

Q5. 예멘의 내전에 대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간 패권 경쟁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필자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실제로 많은 사람이 예멘 전쟁은 지역적 강국인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 발생한 패권 다툼이라고 생각한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에 침투한 이후, 이란은 사담 후세인 이후의 중동에서 지역 강국이 되려고 노력해왔다. 이란은 시아(Shi’a)파라고 일컬어지는 소수집단을 통해 지역을 지배하였다. 이란의 이러한 노력은 성공적이었고, 현재까지 레바논, 이라크, 시리아와 같은 국가들을 장악하고 있다. 예멘에서 활동하는 다수의 후티의 간부들은 주로 이란에서 종교적인 교육을 받았다. 후티-살레 동맹 덕분에 이란 정부는 (전례 없이) 홍해(Red Sea)와 바브엘만데브(Bab Al-Mandeb) 해협 사이를 드나들 수 있게 되어 후티-살레를 두둔하려 한다. 하지만, 사우디 정부는 예멘을 항상 자신들의 속국이라고 여기고 있으며, 예멘이 전략적인 가치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수니(Sunni)파의 입지가 강한 사우디 정부와 시아(Shi’a)파의 대표로 간주 되는 이란 정부의 이념이 상이하기 때문에, 이번 예멘전쟁에서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개입은, 전쟁을 통해 새롭게 정립될 예멘의 정계에 새롭고 흥미로운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현재 예멘 내전은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전쟁의 대리전쟁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사우디 연합이 예멘에서 얻은 군사적인 승리는 이란의 시아(Shi’a)이념 선전의 패배로 간주되기도 한다.

Q6. 앞으로 예멘의 내전과 관련한 평화회담은 어떻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하는가?

▲ 예멘은 군사적인 충돌 발생 시 평화적으로 협상을 진행하고 해결해 온 오랜 역사가 있지만, 이번 전쟁에서 평화협상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최종 평화협상의 핵심은 ‘후티와 같은 군사단체를 해산하고 국가 내에 현대적이고 전문적인 정식군사기관을 설립하는 것’이 될 것이다. 후티, 히락(Hirak)운동단체, 이슬람당, 국민 전체 회의, 예멘사회당처럼 서로를 끊임없이 신뢰하지 못하는 예멘 내부의 정치세력들보다는, 차라리 막강한 힘을 가진 타국이 개입하여 평화협정을 중개하는 것이 예멘에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지 생각한다. 막강한 강대국의 긍정적인 역할이 올바르게 수행된다면, 대립 중인 각국의 군사해산과 같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고, 예멘의 도시인 타이즈의 포위 작전이 종식될 수 있으며, 예멘 수도인 사나에 정당한 정부가 설립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정치인 포로들이 해방되고, 예멘이 처한 인도주의적 위기를 해소하는 등의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UN이 예멘에서 이러한 역할을 해 내고자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활동하고 있지만, 노력에 대한 실제 성과는 기대에 비해 저조하다.

신희섭의 정치학-끝나지 않는 예멘 내전 : 권력 공유와 권력 집중의 중요성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오랜 내전으로 인구 2,600만 명 중 1,500만이 기아 상태에 놓인 것으로 추정된다. 예멘 이야기다.

예멘은 한국에 익숙하지 않은 국가다. 2018년 제주 난민사태나 통일사례 중 3대 통일사례(1990년 독일 통일사례, 1990년 예멘 통일사례, 1975년 베트남 통일사례) 정도로만 들어본 국가다. 이 나라가 시리아보다 인도적 재난이 심각한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예멘의 심란한 상황이 권력 공유(power share)와 권력 집중(concentration of power)의 중요성을 극단적으로 알려준다는 점은 더더욱 모른다.

예멘(정식명칭은 예멘 공화국)은 아라비아반도의 남서부에 있다. 영토의 면적은 52만 8,000km²로 대한민국(100,210km²)보다 5배는 더 크다. 북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접해있고 사막지대다. 홍해에는 과거 커피 무역의 대명사인 ‘모카’ 항이 있다. ‘아덴만의 여명’작전으로 유명한 ‘아덴’항을 중심으로 과거에는 중개무역을 해서 국가 번성했었다. 현재도 수에즈운하를 나와 인도양으로 연결되는 지정학적 길목에 있는 국가다. 농업 국가이나 서쪽 지역만 강수량이 풍부하고 다른 지역은 물이 부족하다. 동부와 북부의 사막지대는 기온 차가 30도나 날 정도기 때문에 농업에 유리한 자연환경은 아니다. 또한, 원유와 가스를 매장하고 있는 국가다. 물이 부족하다는 약점을 제외하면 예멘 인구 대다수가 기아 상태를 경험할 이유는 크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예멘은 2015년 후티쿠테타 이후 지금까지 내전 중이다. 게다가 이 내전에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가 가세해 국제전이 되었다. ‘수학의 정석’ 뺨따구를 날리는 ‘내전의 정석’이다.

왜 이런 지경이 되었을까! 예멘의 역사에서 남예멘과 북예멘의 분리가 중요하다. 원래 부족 국가였던 예멘은 1500년대 오스만제국에 의해 지배를 받게 된다. 그러던 중 1839년 영국이 중계무역을 위해 아덴 항구를 차지하면서 남예멘을 점령한다. 영국 때문에 예멘은 남북으로 분단된 것이다. 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 터키가 패배하자 북예멘은 독립한다. 북예멘은 시아파인 자이드파가 다수다. 자이드파는 종교 지도자인 이맘을 중심으로 정치를 운영하지만, 이 체제에 불만을 가진 공화파들의 군사쿠데타로 왕정이 붕괴한다. 1962년 군사혁명정부 수립 후 8년간 내전이 뒤따른다.

남예멘은 2차 대전 이후 아랍민족주의와 사회주의에 기초하여 독립했다. 1967년 독립한 예멘인민주의공화국은 아랍에서 흔치 않은 사회주의 정권이었다. 그래서 냉전기 소련의 지원을 받는다.

냉전 시대인 1972년 9월 남북 예멘은 전면전을 펼치기도 했다. 냉전이 끝나가던 1989년 11월 갑작스럽게 남과 북은 통일에 합의한다. 그리고 1990년 5월 실제 통일을 이룬다. 북예멘의 살레 대통령이 통일 예멘 정부의 대통령이 된다. 1994년 부족과 종파 간 권력 공유문제를 둘러싼 1차 내전이 발생한다. 그리고 무력을 통한 재통일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2011년 ‘아랍의 봄’이 예멘에도 왔다. 독재자 살레 대통령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고, 살레 정부의 2인자인 하디가 권력을 인수한다. 그런데 다시 문제 발생. 인구의 56%를 차지한 수니파인 하디 대통령이 권력 공유에 실패한 것이다. 군부 내의 살레 파를 제거했고, 6개 주로 구성된 정치에서 인구의 43%를 차지하는 시아파에게 단지 1개만을 배분한 것이다. 권력 공유문제를 두고, 시아파와 수니파가 분열한 것이다. 그 결과가 2015년 시아파 후티족의 쿠데타다.

남(수니파)과 북(시아파)만의 전쟁이었으면, 지금까지 내전을 이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가난한 국가에서 무엇을 가지고 싸울 수 있겠는가!

시아파 보스인 이란이 시아파 후티족 지원에 나선 것이다. 수니파 사우디아라비아를 견제하려는 지정학적 고려가 개입된 것이다. 이란이 개입하자 사우디아라비아도 9국으로 구성된 수니파 연합을 구성해 정부군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애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된 것이다.

‘사우디 vs. 이란’의 중동지역 패권경쟁이 예멘 내전에 합세하면서 사태는 복잡해졌다. 내전의 국제전화와 장기화가 된 것이다. 2019년 9월 사우디의 정유시설에 대해 후티 반군이 드론과 크루즈 미사일로 공격한 사건이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은 즉각 배후에서 이란이 공격했다고 발표했다. 이 사례는 지역 패권의 대리전이 된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알카에다의 개입은 이 상황을 점입가경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패권국가 미국은 중동에서 한발 물러서 있다. 내전 연구자인 바바라 월터(Barbara Walter)가 지적한 대로 내전 해결에는 제3자의 중재가 중요하다. 그런데 미국이 손을 뗀 이 분쟁에 강대국 누가 개입하겠는가!

문제의 핵심은 예멘 정부군이나 후티 반군 누구도 국가를 장악할 정도로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후원자인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도 이 내전을 끝낼 정도로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사용하지 못한다. 세계 패권 미국은 중국 문제가 더 중요하다. 그러니 예멘 문제를 누군가 주도해서 해결책을 찾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내전이 국제전화된 상황에서 정부군이나 후티 반군 혼자 전쟁을 종결할 수도 없다. 향후 힘의 변화를 어떻게 예상할 것인지도 복잡하다. 몇 번 시도된 휴전협정에서 확인된 상호 불신까지 겹쳐 내전의 종결은 요원해 보인다. 점차 가난한 예멘인들의 삶은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예멘 내전의 안타까움을 잠시 뒤로 하면, 이 사태에서도 함의는 있다. ‘권력 공유’와 ‘권력 집중’이라는 모순적으로 보이는 두 가지 개념에 핵심이 있다. 갑작스러운 통일 이후 시아파와 수니파 간 ‘권력 공유’를 제도적으로 이루었다면 예멘은 지금 원유를 캐고, 중개무역을 하고, 개간 사업으로 식량 생산량을 늘렸을 것이다. 합의주의(consensus model)를 사용하는 유럽 국가들처럼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의회에 인구 비율 정도의 대표를 선출하게 하는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했다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통일 초기에 지도자의 리더십이 중요할 수 있다. 하지만 1990년 통일에서 2015년 2차 내전까지 기간이 제도적인 권력분립과 배분 장치를 만들기에 아주 부족한 시간도 아니다.

반면 국가에 ‘권력 집중’도 필요하다. 권력이 집중되지 않으면 내부적인 도전을 받고, 외부세력의 개입을 용인하게 된다. 스스로 운명을 결정하기 위해서 권력이 왜 중요한지는 다시 언급할 필요조차 없다. 예멘은 매우 참담한 상황에서도 통일을 계획하는 한국에 중요한 두 가지 메시지를 전달한다.

CF. 지난 칼럼들을 좀 더 보기 편하게 보기 위해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었습니다. 주소는 blog.naver.com/heesup1990입니다. 블로그 이름은 “일상이 정치”입니다.

신희섭 정치학 박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 / 베리타스법학원전임 / 『일상이 정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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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예멘 #내전…\”유아 #40만명 #아사 #위기, #종말론적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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