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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주의 – 나무위키
17세기 후반 유럽에서 처음 주창되어 18세기에 확산되었는데, 바뤼흐 스피노자, 데이비드 흄, 존 로크, 에드워드 기번, 볼테르, 장 자크 루소, 드니 …
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3/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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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주의(啓蒙主義)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흔히 ‘계몽사상’이라 지칭하기도 하나 계몽주의라고 할 때는 운동의 성격을 강조하거나 또는 17, 18세기 유럽의 계몽사상과 아울러 그 이후 다른 지역에서 전개된 계몽 …
Source: encykorea.aks.ac.kr
Date Published: 1/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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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시대는 세속화된 시대였나 – 프레시안
일반적으로 계몽사상은 유럽인들이 종교에서 벗어나 세속적인 사고를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주장된다. 기독교의 종교적 독단으로부터 사람들을 …
Source: www.pressian.com
Date Published: 12/2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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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의 시대 – YES24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탐사하는 한국 근대성의 기원, 그 첫번째 권은 ‘근대적 시공간’과 ‘민족’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살펴보는 책이다.
Source: www.yes24.com
Date Published: 1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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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계몽의 시대 – 알라딘
잃어버린 계몽의 시대 중앙아시아의 황금기, 아랍 정복부터 티무르 시대까지. S. 프레더릭 스타 (지은이), 이은정 (옮긴이) 길(도서출판) 2021-05-20.
Source: www.aladin.co.kr
Date Published: 12/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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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의 시대 – 인터파크도서
계몽의 시대. 사상의 전통과 가치. 서동은 저 소소의책 2022.03.16. 판매지수 96. 할인가. 14,400 원 정가16,000원 10%↓할인.
Source: book.interpark.com
Date Published: 12/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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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의 시대(우리가 사는 세계)서동은 | 소소의책 – 교보문고
그것이 바로 계몽의 시대를 연 출발점이었다. 이 책은 17~18세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려 한 계몽사상가들의 생각과 업적, …
Source: www.kyobobook.co.kr
Date Published: 5/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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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계몽 시대
- Author: Gongbu Na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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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15. 10. 28.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vDXhRAbhKco
흔히 ‘계몽사상’이라 지칭하기도 하나 계몽주의라고 할 때는 운동의 성격을 강조하거나 또는 17, 18세기 유럽의 계몽사상과 아울러 그 이후 다른 지역에서 전개된 계몽의 성격을 띤 사상운동을 지칭하는, 보다 포괄적인 개념이다.
계몽주의의 사상적 기반은 17세기의 합리주의와 로크(Locke,J.)의 철학 및 정치사상·자연법, 그리고 뉴턴(Newton,I.)의 기계론적 우주관이었다. 계몽주의자들은 철학자가 아니라 보급자 또는 평론가들이었다. 그들은 일반인들이 접할 수 없었던 저작들을 읽고 대중에게 전달되도록 그 내용을 풀어 설명하였다.
문인·자유기고가·저널리스트로서 그들은 사회악을 비판하고 개혁을 주장하는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였고, 이러한 사조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발히 전개되다가 뒤에는 유럽 여러 나라에 전파되었다.
계몽사상가들의 주장들은 한편으로는 18세기 러시아의 여제 예카테리나,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5세(Joseph),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Friedrich) 등 계몽전제군주들에게 온건한 개혁수단의 근거로 수용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일반민중의 저항정신을 각성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계몽사상가들은 결코 권위와 전통에 대한 저항으로서 혁명을 주장하지는 않았으나, 일반민중은 혁명의 합리화를 계몽사상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러므로 계몽사상은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 나라의 계몽주의는 계몽사상·애국계몽운동·계몽주의문학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우선 사상적인 측면에서 볼 때 그것은 서양철학의 수용과 전개라는 시각에서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유길준(兪吉濬)은 합리적 자유주의 정신 위에서 실리를 추구한 현실주의자이며, 구습을 타파하고 서양의 선진문명을 받아들이기를 열렬히 주장한 공리주의적 계몽주의자였다. 그는 스펜서(Spencer,H.)의 진화론을 소개하였고, 철학을 ‘공용(貢用)의 학’이라고 보았는데, 이는 당시 일본과 미국에서 유행하였던 프랑스 계몽사상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 것으로 간주된다.
한편, 서재필(徐載弼)은 우리 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계몽사상가로 불리는 인물이다. 그는 「독립신문」이나 강연을 통하여, 자유·평등·권리의 중요성과 실용적인 학문, 법치주의론을 전파하였으며, 그의 이러한 노력은 개화운동을 대중적인 시민운동의 차원으로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다.
또 전병훈(全秉薰)은 『정신철학통편』에서 직접 루소(Rousseau,J.J.)·몽테스키외(Montesquieu)·칸트(Kant,I.) 등과 같은 인물들을 소개하였다. 그러나 사상적인 측면에서 볼 때 우리 나라의 계몽주의는 현실인식과 관련되어 그 이론이 크게 심화되었다든가, 다른 학문분야에 영향력을 끼친 점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우리 나라에서는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된 뒤, 일제로부터 침탈당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애국계몽운동이 전개되었다. 민족산업을 육성하여 자립적인 경제부강을 이룩하려는 산업개발운동, 민족의식을 높여 자주독립의 기반을 조성하려는 언론운동·국민교육운동 등이 애국계몽운동의 중심을 이루었다.
보호국체제 아래에서 애국계몽운동은 정치운동으로서의 성격이 약화되고 사회운동 중심으로 전개된 것이 특징이다. 개항 이후 일제를 비롯한 외국자본이 밀려오자, 이에 대항하면서 민족자본을 육성하려는 노력이 전개되었으나 정부의 지원능력이 미약하여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애국계몽운동은 신문발행을 통한 언론운동의 성격을 띠고 전개되기도 하였다. 「황성신문」·「대한매일신보」·「제국신문」·「만세보」·「대한민보」 등이 간행되어 국민계몽과 애국심의 고취에 큰 구실을 담당하였다. 양기탁(梁起鐸)·신채호(申采浩)·박은식(朴殷植)·장지연(張志淵) 등은 일제의 침략상을 폭로하고 사설을 통하여 전국적인 계몽운동을 펼쳤다.
한편, 국민교육운동의 성과도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갑오경장 이후 정부가 근대교육을 보급시키기 위하여 관립학교를 전국에 걸쳐 설립하였으나, 보호국체제 아래서는 정상적인 민족교육기관으로 성장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식한 민간유지들이 사립학교를 설립하여 민족교육을 확대시켜나갔다.
특히, 기독교 계열의 학교 수가 크게 증가하였다. 한글에 대한 연구도 주시경(周時經) 등에 의하여 본격화되어 국문연구소가 설치되고, 한글소설·한글신문이 간행되어 한글이 점차 보급되어 나갔다. 역사서적을 간행하여 애국사상을 고취시키려는 시도도 있었다.
한편, 『을지문덕전』·『강감찬전』·『이순신전』 등 외적의 침입을 물리친 우리 나라 영웅들의 전기와, 외국에서 애국운동과 혁명운동을 전개한 인물들의 전기인 『이태리건국삼걸전 伊太利建國三傑傳』·『워싱톤전 華盛頓傳』·『피터대제 彼得大帝』 등이 출판되어 국민들에게 읽힘으로써 독립의지와 역사의식이 고양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애국계몽운동은 그 성과에도 불구하고 오랜 전제지배체제 아래에서 국민 개개인의 인권이나 창의력,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애국심이 성장할 여건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많은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계몽주의문학은 18, 19세기의 실학파(實學派)에게까지 소급하여 살필 수 있겠으나, 1900년대에서 1910년대까지 뚜렷한 모습을 드러냈다고 하는 견해가 일반화되어 있다.
그런데 그 기간에는 의식과 문화의 근대화를 기본적인 노선으로 삼으면서 이와 함께 일제의 침략에 맞서 국권을 수호하는 것이 또한 긴요한 과제였으므로, 이 두 가지 과제를 어떻게 연결시키는가 하는 데 따라 계몽주의문학이 두 가지로 나타났다.
신채호·박은식·장지연 등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첫번째의 계몽주의문학은 근대화를 통하여 국권을 수호하자는 것을 기본노선으로 삼았다.
흔히, 애국계몽운동이라고 일컬어지는 운동을 언론과 출판을 통하여 전개하면서, 성리학적인 명분론에서 벗어나 민족의 위기를 바로 깨닫고 개혁과 구국의 의지를 가다듬자고 하였다.
주동자들은 한문학에 대하여 깊은 소양을 가지고 있었으나, 새 시대의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국한혼용문(國漢混用文)을 기본문체로 택하여 광범위한 독자를 끌어들이며, 민족사에 대한 재인식을 근거로 당대의 문제를 다루어 민족적 각성을 촉구하고자 하였다.
그렇게 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긴요한 장르는 역사적 영웅의 행위를 찬양하는 전기였으며, 신채호의 『을지문덕』 등이 그 좋은 예이다.
구국의 영웅에 대한 소재를 밖에서도 구하여 박은식은 『서사건국지 瑞士建國誌』를, 장지연은 『애국부인전』을 내놓았다.
이와 함께, 가사의 형식을 개조하여 친일과 매국 책동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노래를 신문을 통해서 다수 발표하여 전통의 현대적 계승을 위한 방향을 제시하였다.
첫번째 단계의 계몽주의문학이 1910년 식민지화와 더불어 직접적인 탄압의 대상이 되자 이와는 다른 두 번째 단계의 운동이 확대되었는데, 그 주동자는 최남선(崔南善)과 이광수(李光洙)였다.
이들은 민족의 수난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지 않고 문학표현의 근대화를 기본과제로 삼았다. 또한 민족의 전통을 계승하는 것보다는 서양 또는 일본 근대문학의 전례를 이식하는 것이 더욱 긴요한 방법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최남선은 신체시(新體詩)를 시험하고, 이광수는 「무정 無情」 등의 새로운 소설을 마련하였다.
구시대의 속박에서 벗어난 젊은이가 감정의 자유로운 발산을 주장하며, 문명개화가 이룩될 미래에 대하여 낙관적인 기대를 가져 마땅하다는 생각을 언문일치의 국문문체로 나타내었다.
이렇게 하여 전통적 가치를 부정하는 충격을 일으켰으나, 그 노선이 민족해방의 의지와 어긋났으며 지적으로 성숙되지 않은 단순논리에 의거하고 있었으므로, 1919년 이후의 문학운동이 등장하자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한편에서는 식민지적 현실의 인식과 비판이 강조될 때, 이광수는 민족의 정신개조가 선행과제라면서 「민족개조론 民族改造論」을 내놓아 더욱 궁지에 몰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두 단계의 계몽주의문학은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작가는 시대의 선각자이고 민족의 지도자라고 하였다. 문학은 독자의 정신적인 각성을 촉구하는 것을 사명으로 한다고 하였다.
작가는 문학창작의 예술적인 과업을 담당해야 한다거나, 현실인식과 민중생활에서의 문제발견을 위하여 자기비판을 앞세워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자, 계몽주의문학은 설득력을 잃었다. 어느 쪽이든지 문학창작방법의 개척을 축적하지 못한 것도 공통적인 한계이다.
계몽시대는 세속화된 시대였나
▲ 리스본 대지진 (1755년)으로 도시인구 23만명 중 6~10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 얀센 (Cornelius Jansenius, 1585~1638), 벨기에 루뱅 대학 교수. 얀센주의를 만들었다.
▲ 돌바흐(Baron d’Holbach, 1723~1789), 유럽에서 최초로 스스로를 무신론자로 일컫은 사람 중의 한 명이다.
▲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 2세 (Friedrich Wilhelm II, 1744~1797)
일반적으로 계몽사상은 유럽인들이 종교에서 벗어나 세속적인 사고를 만드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주장된다. 기독교의 종교적 독단으로부터 사람들을 해방시킴으로써 보다 자유롭고 인간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사실 많은 지도적인 계몽사상가들이 -특히 영국과 프랑스에서- 기독교 신학의 불합리성과 교회의 부패를 통박하고 비판했다. 따라서 그런 글들만을 읽으며 그런 인상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실제로 유럽인들은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종교 문제로 심각한 고뇌를 겪었다. 각 나라에서 카톨릭과 신교 사이에 치열한 다툼이 벌어졌고 대량학살 사건들도 일어났다. 또 17세기에 들어와서는 30년 전쟁 같은 국제적인 전쟁으로 번지기도 했다. 이런 피비린내 나는 싸움과 공포 속에서 그들은 과연 신이란 무엇인지 기독교는 무엇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1755년에는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대지진이 일어났다. 도시가 거의 파괴되고 수만명의 사망자가 났다. 사람들은 이 비극적 사건과 관련해 악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만약 신이 이런 악을 예비하였다면 그 신은 어떤 신인가 하는 것이다.그래서 그들은 악의 문제를 해결하고 그것을 이성적인 종교나 은혜로운 신의 가능성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숙고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신정론(神正論)과 관련된 논의이다. 이렇게 17, 18세기의 일부 지식인들이 신의 존재와 권능에 대해 회의를 느낀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그들을 기독교에서 벗어나게 할 정도는 아니었다.종교의 세속화를 주장하는 또 다른 논거는 이신론(理信論: deism)의 존재이다. 이신론은 초월적이며 계시적인 신을 거부한다. 신을 이 우주의 창조주로 인정은 하되 그 후의 운행에는 관계를 하지 않는 존재로 본다. 마치 시계를 만들어냈으나 그 후 시계의 작동에는 관계 하지 않는 시계공의 역할과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이다.따라서 이신론자들은 예수의 부활 같은 것을 믿지 않았고 또 카톨릭에서 이야기하는 기적 같은 많은 초자연적 현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는 무신론 내지 범신론과 가까웠으므로 기독교인들이 기존 교회의 권위를 무너뜨릴지도 모를 이신론에 대해 많은 두려움을 품었을 것은 당연하다.그래서 이미 16세기부터 그런 두려움이 나타난다. 1654년에는 프랑스의 독실한 카톨릭 신자인 장 필로라는 사람이, 카톨릭 개혁가인 얀센 등 7명이 프랑스의 카톨릭을 파괴하고 그것을 이신론으로 대치하기 위해 1621년에 비밀모임을 가졌다고 주장한 일도 있다. 이신론자들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이다.17세기 말의 프랑스 위그노인 삐에르 벨은 그의 시대가 ‘자유사상가들과 이신론자로 가득 차있다’고 말하고 있다. 영국에서도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국교회 목사들이 이신론 운동의 존재를 점점 확신한 것 같고 이탈리아 등 다른 유럽 지역에서도 이에 대한 두려움이 나타난다.그러므로 이신론자들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정말 그렇게 두려움을 느낄 만 했는지는 의심스럽다. 그것이 하나의 커다란 세력이나 운동으로 성장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또 일관된 이론체계를 발전시킨 것도 아니다. 사람들마다 견해가 조금씩 다르다.이신론자로 널리 알려진 사람들은 영국의 존 톨랜드, 마튜 틴달, 앤토니 콜린스와 프랑스의 볼테르, 몽테스키외, 디드로 같은 사람들이다. 이 외에 사료에서 찾을 수 있는 사람들을 몽땅 합쳐 보아야 20명이 채 안된다. 무신론자는 더 적어서 7명 정도이다. 그러니 이 적은 숫자의 사람들이 기독교를 파괴하는 운동을 일으켰다는 것은 별로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이다. 이신론의 존재를 터무니없이 과장하고 있는 것이다.현대 서양역사가들도 이신론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그래서 이신론자들의 수가 매우 많았던 것처럼 주장한다. 이렇게 이신론이 중요하게 취급된 것은 이신론이 근대성의 지표라고 할 세속성을 강화시켰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사료에 기초하지 않은 근거 없는 주장에 불과하다.계몽사상가들은 종교적 관용을 부르짖었고 그래서 서양에서 종교의 자유를 가져오는 데 크게 공헌한 것으로 주장된다. 1762년에 ‘관용론’을 써서 상당한 영향을 미친 볼테르 같은 사람이 특히 부각되는 이유이다.볼테르가 그 글을 쓴 것은 칼라 사건 때문이다. 1761년에 프랑스 남부 툴루스의 위그노파인 칼라라는 포목상인의 집에서 맏아들이 목을 매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아마 자살을 한 것 같으나 당시에는 아들이 카톨릭으로 개종하려 하자 아버지가 그것을 막기 위해 죽였다는 소문이 파다했다.이때는 위그노가 탄압을 받을 때이므로 칼라는 무죄를 주장했으나 법정은 확실한 증거도 없이 그에게 사형을 언도했다. 그는 사지가 찢긴 다음 시체까지 불태워지는 참혹한 형벌을 받았다.볼테르는 이 사건을 가족 사이의 유대까지 파괴할 정도로 심각한 카톨릭의 종교적 아집의 결과로 보았다. 그래서 여론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관용론’을 쓴 것이다. 정부는 그 팜플렛을 배포하는 사람들을 탄압했으나 결국 1787년에 관용칙령을 통해 위그노파에게 일부 시민적 권리를 허용했다. 그래서 볼테르가 신앙의 자유, 나아가 양심의 자유를 가져온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 것이다.그러나 종교적 관용 문제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사실 그것은 한편에서 종교개혁과 그에 따른 참혹한 종교전쟁에 대한 반성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정치, 사회적 여러 문제들과 얽혀 있다.잉글랜드에서는 명예혁명 후인 1689년에 이미 상당한 정도로 종교적 관용을 허용했다. 프러시아에서도 프리드리히 2세가 즉위한 1740년에 상당한 정도의 종교적 관용을 허용했다. 특히 프러시아 같이 종교적 분열이 심한 나라에서는 국가통합을 위해 반드시 종교적 관용이 필요했다. 왕과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국가에 충성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또 경제발전을 위해 다른 나라에서 추방된 신교도 이민자들을 받아들이려고 종교적 관용을 허용한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종교적 관용의 실천은 단순한 계몽사상가들의 업적이 아니다. 군주들의 정치, 사회적인 판단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게다가 볼테르는 다른 기독교 종파에 대해서는 관용을 주장했으나 유대교에 대해서는 전연 다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계몽사상기의 가장 열렬한 반유대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관용의 사도’라는 그의 명성에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그러면 18세기 사람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 살았을까. 일부 사람들이 주장하는 대로 종교를 떠나서 완전히 세속적인 삶을 살았을까. 계몽사상 시기를 이성 대 종교의 대립으로 보는 생각은 계몽사상이 반교회주의의 기초 위에서 기독교인들에게 이성에 대한 호소를 폭 넓게 함으로써 신앙의 수준이 떨어지고 경건성도 약화되었다고 보는 데서 비롯하는 것이다.그러나 이런 주장은 오늘날 잘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이 시기에는 일부 세속화 경향과 함께 그 반대 경향도 함께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선 대부분의 계몽사상가들이 기독교를 신봉했으며 종교를 부정하지 않았다. 일부 무신론자나 이신론자들이 있었으나 이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또 세속화를 이야기하려면 정부나 사회의 기준이 세속화 되어야 하나 별로 그렇지 않았다. 신앙의 수준도 과거보다 별로 낮아졌다고 보기 어렵다.실제로 18세기에 한 편에서 새로운 종교적 열정이 불붙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발전한 카톨릭의 분파인 얀센주의, 독일에서 발전한 경건주의, 잉글랜드에서 발전한 메소디즘(감리교파)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모두 새롭게 초월적 신앙을 강조하는 종파들이다. 특히 독일의 경건주의는 17세기의 30년 전쟁이 가져다 준 참화를 신의 벌로 생각하고 이를 회개하려는 가운데 발전한 것이다.또 일반 민중들의 대부분은 아직도 상당 부분 무지몽매함과 미신에 묶여 살았다. 18세기 초까지도 마녀사냥이 행해지는 곳이 있었고 교회에서도 공공연하게 악마추방을 위해 엑조시즘(악마추방 시술)을 행했다. 이 시대의 유럽 사회는 결코 사람들이 종교성이나 미신을 떠나 이성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생각한 시기가 아니었다.그러니 얼마 안 되는 계몽사상가들이 마치 세속화에 큰 역할을 하여 일거에 세상이 바뀐 것처럼 생각해서 안 될 것은 당연하다. 물론 18세기에 세속화를 위한 모든 주된 논의가 나타난 것은 사실이나 세속화는 그 후 오랜 시간이 걸린 느린 과정이다.
계몽의 시대
출판사 리뷰
고전평론가 고미숙이 탐사하는 한국 근대성의 기원, 그 첫번째 권은 ‘근대적 시공간’과 ‘민족’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살펴보는 『계몽의 시대』다. 고미숙이 근대성을 탐사하는 이유는 “우리 삶의 비전을 탐구하려면 무엇보다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지적 기반 혹은 앎의 배치를 정확히 아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한국에서 근대적 지식의 토대가 구축되는 기원의 장인 근대계몽기로 돌아가 『독립신문』, 『대한매일신보』 등 당대의 신문자료를 통해 근대성이 생성되는 현장을 포착한다. *고미숙의 근대성 3부작은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2001), 『나비와 전사』(2006), 『이 영화를 보라』(2008)를 주제별로 ‘리메이크’ 하면서 수정ㆍ첨삭을 가한 시리즈입니다. “근대는 기차와 함께 도래했고, 마침내 세상을 기차로 만들었다! 기차는 기본적으로 세계를 균질화한다. 일직선으로 달려야 하기 때문에 그것을 가로막는 것은 산이건 강이건 모조리 관통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서로 다른 위계를 지니고 있었던 이질적인 공간들은 바로 이 직선이 가로지르는 균질적인 평면으로 변이되어야 한다. 고향이건 타향이건, 우리 땅이건 저들의 땅이건, 음기가 감도는 곳이건 ‘좌청룡 우백호’의 명당이건, 기차 앞에서 그것은 모두 하나의 평면일 뿐이다. 모든 것을 계산가능한 수량으로 환원하는 근대 자연과학의 명제를 철도는 현실에서 실현했던바, 비유컨대 “기차는 세상을 기차로 만들”(김정환, 「기차는 세상을 기차로 만들며」, 『기차에 대하여』)었던 것이다. (본문 69쪽) 근대성 3부작을 여는 『계몽의 시대: 근대적 시공간과 민족의 탄생』은 ‘기차’와 속도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근대는 기차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고미숙은 기차가 지나가는 공간에는 ‘사이 공간’이 없음을 주목한다. 엄청난 크기와 빠르기로 처음 그것을 보는 이들을 두려움과 경이로 몰아넣은 기차는 산과 산 사이를 연결할 만큼 모든 공간을 단일화한다. 전(前)근대 사회에서의 운송수단(마차, 말 등)은 필연적으로 자연에 영향을 깊이 받으며 마치 연암 박지원의 열하기행이 그러했듯 끊임없이 이질적인 공간과의 마주침을 직접적으로 겪어 가게 만든다. 그러나 기차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출발하는 곳과 목적지, 그리고 목적지에 도달하는 시간이다. 어떤 곳을 거쳐 가든 그곳은 ‘중간역’에 불과하며, 과정의 한 부분이라도 제대로 겪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기차에서 내리는 수밖에 없다(생각해 보면 우리가 상상하는 기차 여행의 낭만도 그렇게 우연히 의도하지 않은 역에 내릴 때 생겨나는 것이다). 전근대 사회에서 이질적이었던 공간에 철로가 놓여지면서 동질화되고, 목적지를 향해 산도 뚫고 강도 건너가는 기차의 저돌성은 곧 삶의 패턴이 되었다. 지금, 우리 삶에서 당연시 하는 가치들, “둘러가는 것보단 직선이 효율적이고, 그렇기에 선(善)이며”, “시간은 곧 돈”이고, 따라서 “목표에 최대한 빨리 도달하는 것”이 가장 좋은 삶이라는, 그 인식이 ‘기차’가 놓여지는 순간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졌다는 것은 자명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만큼 기차와 현대인의 삶은 닮아 보인다. 그러면, 지금 이 삶이 100여 년 전 기차와 함께 시작된 것이라면, 우리가 원한다면 이 삶에서 벗어날 방법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고미숙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가 그것을 잘 보여 준다고 말한다. 옆문을 박차고 나가는 것. 여기를 나가면 얼어 죽을 거라고들 말하지만, 거기에는 다른 생명,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다. 물론 그것이 순탄하거나 행복할 거라고 말하는 건 아니다. 다만, 지금 내가 진리로 여기는 가치가 어느 시기 어떤 문명의 도래와 함께 만들어진 것일 뿐, 불변의 진리가 아님을 안다면, 그리고 지금 이 삶의 속도가 내게 너무 힘겹다면, 그 순간 이 속도에 이 질주에 의문을 품고 그 기차에서 내려보아도 괜찮지 않겠냐고, 또 다른 가치와 또 다른 삶은 기차 철로 주변에 언제나 있었다고, 『계몽의 시대』는 한국근대기로 돌아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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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와 소소의책이 함께 기획한 교양 인문서 시리즈
지금 우리는 어떠한 세계에 살고 있을까? 인류는 오래전 지구상에 나타났지만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문명은 약 500년 전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근대 문명’이라 통칭하는, 현대 세계를 만든 획기적인 변화였다. 따라서 근대 문명을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할 것인가는 곧 ‘우리가 사는 세계’를 아는 것과 맞닿아 있다.
근대 문명은 이전 시대의 문제와 모순을 어떻게 해결하려 했을까? 근대 문명이 이룬 독특한 성취는 무엇이고, 그것들은 현대까지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인간과 세계를 탐구하는 교양 인문학의 토대로서 이 시리즈를 출간하는 동기이기도 하다.
근대 문명의 전개 과정과 맥락을 꼼꼼히 짚어내는 ‘우리가 사는 세계’ 시리즈는 지난 10여 년간 실용 학문에 치중하는 대학 교육에서 교양교육으로의 이행을 위해 설립된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와 소소의책이 함께 기획한 교양 인문서다.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에서 획기적인 변혁을 일으킨 과학혁명, 근대 계몽사상의 등장, 프랑스 혁명과 같은 정치적 격변, 산업혁명을 거치며 탄생한 자본주의, 급격한 사회 변동과 개인주의의 등장 등으로 영역을 나누어 누구나 쉽게 근대 문명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체화했다. 물론 근대 문명의 탄생 과정은 주로 16세기 이후의 서구 문명을 다루지만 19세기의 제국주의 시대에 동아시아에 미친 영향도 함께 살핀다. 또한 그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21세기 미래에 대한 전망도 세워본다. 이 시리즈는 다음과 같이 다섯 권으로 구성된다.
ㆍ과학혁명 _근대에서 제4차 산업혁명까지(근간)
ㆍ계몽의 시대 _사상의 전통과 가치
ㆍ왜 국가인가 _근대 국가와 정치혁명
ㆍ자본의 역습 _경제학적 상상과 비판
ㆍ개인의 탄생 _대도시와 시공간의 재편(근간)
계몽사상이 바꿔놓은 세계와 근대적 가치
신화적 맹신에서 이성의 빛이 세상을 비추는 시대로의 전환
이제 계몽은 교과서 또는 책에서나 볼 수 있는 낡은 단어로 여겨진다. 계몽은 17~18세기의 서양에 국한된 특수하고 일회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인류가 상상만 하던 최첨단 기술이 하나둘 구현되어가는 이 시대에는 모든 사람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서 더는 계몽이 필요 없어진 것일까?
사실 계몽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큰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특정한 시기마다 인간 사회가 곤경에 처했을 때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개인과 공동체의 긍정적인 노력과 연관 지어 계몽의 역사를 길고 넓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계몽은 지금껏 인류의 진보를 이끌어온 원동력이었다. 우리의 현재는 계몽의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 책은 서양의 17~18세기에 등장한, 이전 시대와 달리 과학에 기초한 합리성을 내세운 계몽사상을 다룬다. 그러기 위해 우선 근대 이전 시대의 지적 전통부터 살펴본다. 세상을 수로 파악한 고대 이집트와 인도, 세상의 법칙을 자연수로 설명한 피타고라스, 우주의 질서를 구성한 플라톤, 그리고 중세의 스콜라 철학 등이다. 뒤이어 오랫동안 신학과 신앙의 언어에 짓눌려 있던 근대 사회가 어떻게 신화와 종교와 권력에서 해방되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이 만발하는 계몽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는지를 이해하기 쉽게 서술한다.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다양한 이해와 주장, 도시의 커피하우스와 살롱에서 밤낮없이 토론한 계몽사상가들의 열정, 왕정 독재를 몰아내고 시민혁명을 통한 자유와 평등의 쟁취 등을 통해 정립된 계몽사상은 이전의 세상에서는 꿈도 꾸지 못했던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계몽사상에 갇힌 시대에서 조화롭게 공존하는 시대로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계몽의 독단’이 야기한 문제와 과제
모든 지식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할까? 이런 생각은 자칫 서양 문명을 중심에 놓고 나머지 문명을 폄하하거나 무가치한 것으로 간주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한다. 인류 문명의 지식과 가치를 단순한 이분법으로 도식화하여 다른 쪽을 배제하는 일방적 관점을 갖게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서양 문명은 ‘계몽의 독단’에 빠져 다른 문명을 단지 ‘개화’의 대상으로 여기거나, 제국주의로 발전하여 다른 국가나 민족을 침략하기도 했다. 영국에 의해서 인도가, 프랑스에 의해서 아프리카 등이 식민지가 되고 후발 근대화를 빠르게 이룬 일본에 의해서 한국이 식민지를 경험하게 되었다. 서양의 근대화를 강압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과 동서양의 서로 다른 문화적 충돌로 빚어진 여러 문제는 서양의 근대적 가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결과이다. 이 책은 그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인간 의식의 변화라는 역사적 관점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서양 계몽주의자들의 사상을 중심으로 조망한다.
이 책은 서양 문명이 확립한 근대적 가치의 중요성도 논리정연하게 설명한다. 그러한 가치들이 여전히 현대 세계를 규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때로 그 가치가 왜곡되거나 정당성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언제부터인가 근대를 넘어서는 탈근대 혹은 포스트모던의 가치들이 갑자기 수용되면서 우리는 근대의 가치를 그 역사적 정당성 가운데서 배울 기회를 놓쳐버렸다. 그 결과 물질적이고 외적인 차원에서는 서양 근대의 것을 충분히 받아들이면서도 근대 문명을 가능케 한 정신적 가치는 받아들이지 않고 여전히 전통적 가치관에 갇혀 문화 지체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이 책의 목적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오늘에 이르렀으며, 현재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비판적으로 성찰하자는 것이다. 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는 E. H. 카의 역사철학적 전제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서양 근대의 비판과 수용을 내세웠던 하이데거의 해체적 사유와도 통한다. 서양의 근대가 오늘날의 우리에게 가져다준 계몽주의 전통과 근대적 가치를 비판적으로 수용할 때 우리는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근대의 민주주의와 개인주의를 수용하면서 공감과 도덕성을 회복하고 상호주관성에 바탕을 둔 공동체를 이룩해나가야 하는 지점에 서 있다. 서양 과학 중심의 세계관, 윤리학적 시선을 무시하는 첨단 과학기술, 물질적 부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세태 등을 어떻게 극복하고 해결해나갈지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모두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시대, 세계시민적 지성이 작용하는 시대로 나아가리라는 희망을 갖는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계몽의 시대 사상의 전통과 가치
‘우리가 사는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와 소소의책이 함께 기획한 교양 인문서 시리즈지금 우리는 어떠한 세계에 살고 있을까? 인류는 오래전 지구상에 나타났지만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문명은 약 500년 전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근대 문명’이라 통칭하는, 현대 세계를 만든 획기적인 변화였다. 따라서 근대 문명을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할 것인가는 곧 ‘우리가 사는 세계’를 아는 것과 맞닿아 있다.근대 문명은 이전 시대의 문제와 모순을 어떻게 해결하려 했을까? 근대 문명이 이룬 독특한 성취는 무엇이고, 그것들은 현대까지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인간과 세계를 탐구하는 교양 인문학의 토대로서 이 시리즈를 출간하는 동기이기도 하다.근대 문명의 전개 과정과 맥락을 꼼꼼히 짚어내는 ‘우리가 사는 세계’ 시리즈는 지난 10여 년간 실용 학문에 치중하는 대학 교육에서 교양교육으로의 이행을 위해 설립된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와 소소의책이 함께 기획한 교양 인문서다.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에서 획기적인 변혁을 일으킨 과학혁명, 근대 계몽사상의 등장, 프랑스 혁명과 같은 정치적 격변, 산업혁명을 거치며 탄생한 자본주의, 급격한 사회 변동과 개인주의의 등장 등으로 영역을 나누어 누구나 쉽게 근대 문명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체화했다. 물론 근대 문명의 탄생 과정은 주로 16세기 이후의 서구 문명을 다루지만 19세기의 제국주의 시대에 동아시아에 미친 영향도 함께 살핀다. 또한 그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21세기 미래에 대한 전망도 세워본다. 이 시리즈는 다음과 같이 다섯 권으로 구성된다.ㆍ과학혁명 _근대에서 제4차 산업혁명까지(근간)ㆍ계몽의 시대 _사상의 전통과 가치ㆍ왜 국가인가 _근대 국가와 정치혁명ㆍ자본의 역습 _경제학적 상상과 비판ㆍ개인의 탄생 _대도시와 시공간의 재편(근간)계몽사상이 바꿔놓은 세계와 근대적 가치신화적 맹신에서 이성의 빛이 세상을 비추는 시대로의 전환이제 계몽은 교과서 또는 책에서나 볼 수 있는 낡은 단어로 여겨진다. 계몽은 17~18세기의 서양에 국한된 특수하고 일회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인류가 상상만 하던 최첨단 기술이 하나둘 구현되어가는 이 시대에는 모든 사람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서 더는 계몽이 필요 없어진 것일까?사실 계몽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큰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특정한 시기마다 인간 사회가 곤경에 처했을 때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개인과 공동체의 긍정적인 노력과 연관 지어 계몽의 역사를 길고 넓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계몽은 지금껏 인류의 진보를 이끌어온 원동력이었다. 우리의 현재는 계몽의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이 책은 서양의 17~18세기에 등장한, 이전 시대와 달리 과학에 기초한 합리성을 내세운 계몽사상을 다룬다. 그러기 위해 우선 근대 이전 시대의 지적 전통부터 살펴본다. 세상을 수로 파악한 고대 이집트와 인도, 세상의 법칙을 자연수로 설명한 피타고라스, 우주의 질서를 구성한 플라톤, 그리고 중세의 스콜라 철학 등이다. 뒤이어 오랫동안 신학과 신앙의 언어에 짓눌려 있던 근대 사회가 어떻게 신화와 종교와 권력에서 해방되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이 만발하는 계몽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는지를 이해하기 쉽게 서술한다.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다양한 이해와 주장, 도시의 커피하우스와 살롱에서 밤낮없이 토론한 계몽사상가들의 열정, 왕정 독재를 몰아내고 시민혁명을 통한 자유와 평등의 쟁취 등을 통해 정립된 계몽사상은 이전의 세상에서는 꿈도 꾸지 못했던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냈다.계몽사상에 갇힌 시대에서 조화롭게 공존하는 시대로과학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계몽의 독단’이 야기한 문제와 과제모든 지식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할까? 이런 생각은 자칫 서양 문명을 중심에 놓고 나머지 문명을 폄하하거나 무가치한 것으로 간주해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한다. 인류 문명의 지식과 가치를 단순한 이분법으로 도식화하여 다른 쪽을 배제하는 일방적 관점을 갖게 될 수도 있다.실제로 서양 문명은 ‘계몽의 독단’에 빠져 다른 문명을 단지 ‘개화’의 대상으로 여기거나, 제국주의로 발전하여 다른 국가나 민족을 침략하기도 했다. 영국에 의해서 인도가, 프랑스에 의해서 아프리카 등이 식민지가 되고 후발 근대화를 빠르게 이룬 일본에 의해서 한국이 식민지를 경험하게 되었다. 서양의 근대화를 강압적으로 수용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과 동서양의 서로 다른 문화적 충돌로 빚어진 여러 문제는 서양의 근대적 가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결과이다. 이 책은 그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인간 의식의 변화라는 역사적 관점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서양 계몽주의자들의 사상을 중심으로 조망한다.이 책은 서양 문명이 확립한 근대적 가치의 중요성도 논리정연하게 설명한다. 그러한 가치들이 여전히 현대 세계를 규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때로 그 가치가 왜곡되거나 정당성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런데도 언제부터인가 근대를 넘어서는 탈근대 혹은 포스트모던의 가치들이 갑자기 수용되면서 우리는 근대의 가치를 그 역사적 정당성 가운데서 배울 기회를 놓쳐버렸다. 그 결과 물질적이고 외적인 차원에서는 서양 근대의 것을 충분히 받아들이면서도 근대 문명을 가능케 한 정신적 가치는 받아들이지 않고 여전히 전통적 가치관에 갇혀 문화 지체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이 책의 목적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어떤 과정을 통해서 오늘에 이르렀으며, 현재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비판적으로 성찰하자는 것이다. 이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는 E. H. 카의 역사철학적 전제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서양 근대의 비판과 수용을 내세웠던 하이데거의 해체적 사유와도 통한다. 서양의 근대가 오늘날의 우리에게 가져다준 계몽주의 전통과 근대적 가치를 비판적으로 수용할 때 우리는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근대의 민주주의와 개인주의를 수용하면서 공감과 도덕성을 회복하고 상호주관성에 바탕을 둔 공동체를 이룩해나가야 하는 지점에 서 있다. 서양 과학 중심의 세계관, 윤리학적 시선을 무시하는 첨단 과학기술, 물질적 부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세태 등을 어떻게 극복하고 해결해나갈지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올바르게 인식하고 모두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시대, 세계시민적 지성이 작용하는 시대로 나아가리라는 희망을 갖는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닫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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