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딘스키 몬드리안 | 몬드리안이 대각선을 그리지 않은 이유 답을 믿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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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리안은 왜 대각선을 긋지 않았을까? / 예술가의 이유
차가운 추상회화의 아버지 피에트 몬드리안
그의 초기작 부터 사선 논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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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강 추상미술 칸딘스키와 몬드리안 3

현대 미술사에서는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을 추상회화의 선구자로 서술하고 있다. 4. .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의 주요 문헌. △. 칸딘스키 (Kandinsky, Wassily: 186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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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artnstudy.com

Date Published: 5/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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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추상과 차가운 추상, 추상미술의 강자는? – 기고/컬럼 | 뉴스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와 피트 몬드리안(Piet Monrian, 1872~1944). 두 사람은 500년 동안 형태가 주도해온 미술사에 의문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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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orea.kr

Date Published: 10/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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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리안이 대각선을 그리지 않은 이유
몬드리안이 대각선을 그리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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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읽어주는 여자, 황정빈]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의 추상 작업의 유사점과 차이

황-적-청(Yellow-Red-Blue) –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출처-WikiArt

Place de la Concorde –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출처-WikiArt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는 러시아에서 태어난 프랑스 화가, 판화 제작자이자 예술 이론가이다. 피카소, 마티스와 비교되며 20세기의 중요한 예술가로 현대 추상회화의 선구자라 평가된다.표현주의적 경향이 짙어지면서 그의 추상 회화는 ‘드라마틱 시대’(1920~1924), 건축적 구성을 가진 ‘컴포지션 시대’(1920~1924), ‘원의 시대’(1925~1928), ‘구체 예술’의 시대로 나뉘게 된다.라는 그의 말처럼 구체적 대상을 표현하는 것에 연연하는 것이 아닌, 선명하고 밝은 색채로 음악적이고 역동적인 추상표현을 만들어냈다. 그의 작품들은 색채와 선, 면 등 순수한 조형요소만으로 작가의 감정을 표현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동을 준다.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은 네덜란드의 화가로 자연주의적 수법을 사용하여 풍경, 정물 등을 그렸으나, 마티스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후에 추상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는 신조형주의(Neo Plasticism)를 창도하며 20세기 조형이론에 깊은 영향을 준 추상회화의 대표적 인물이다.몬드리안은 수직선과 수평선의 구조 원리를 두어 원색의 정방형, 장방형의 배치로 질서와 균현을 이룬다. 그의 작품에서 그의 관심사였던 도시의 건축물이 연상된다.칸딘스키는 관념을 자유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확산시켰기 때문에 ‘따뜻한 추상’이라고 불리고, 몬드리안은 이야기를 줄여 함축하는 ‘환원’의 과정을 거쳐 ‘차가운 추상’이라고 불린다.둘 다 자신만의 추상적인 시각 언어로 사상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유사하지만,칸딘스키는 ‘확산’이라는 측면에 주목했고, 몬드리안은 ‘환원’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황정빈 파르트 문화예술전문지 에디터][ⓒ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칸딘스키,몬드리안 부터 프란츠 클라인까지_현대미술에서 그림보는 시각을 바꾼 추상화가들

오늘은 그림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꾼 7명의 추상 예술가들을 소개합니다. 바실리 칸딘스키, 피에트 몬드리안,잭슨폴록,클리포드 스틸 ,프란츠 클라인, 마크 로스코, 힐마 아프 클린트 입니다.

오늘날 추상화는 현대미술운동에 포함된 핵심 양식으간주되고 있고 20세기 화가들에게 가장 흥미로운 분야였으며 끊임없이 개척되고 있고 혁신적인 많은 화가들에의해 추상적인 장르는 모더니즘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현대미술의 촉매제로서 추상화는 전통예술의 ‘규칙’을 거부하였고. 추상 화가들은 비유적이고 표현적인 묘사에 집중하기보다는 색채, 구성, 감정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예술가들은 완성된 작품에만 집중하는 대신에 그 과정에서 중요성을 부여했는데. 화가의 설명이 그림값을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화가의 개념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주요 인물들을 탐구하며, 그들의 독특한 스타일, 다른 접근 방식, 추상 예술에 대한 지속적인 기여에 특히 관심을 가져보겠습니다. 전통 틀을 깬다는것, 자신만의 세계를 추구하고 표현한다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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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오늘날, 러시아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가 추상적인 장르의 지배적인 선구자로 유명합니다. 칸딘스키의 실천은 “내면의 필요성”에 의해 좌우되었는데, 이것은 예술가들이 “인정”하고 ‘인정되지 않은’ 형태를 요구하면서, 그 시대의 가르침과 욕망에 귀를 기울이지 않도록” 요구했던 개념입니다. 이 전위적이고 혁신적인 접근법은 기하학적 형태, 부유선, 그리고 활기찬 색상에 대한 조형적 형태를 예고하는 구성으로 절정에 달했습니다.

추상화 대표 추상미술화 추상화 작가: 바실리 칸딘스키

[미술 산책] 추상미술의 선구자, 칸딘스키와 몬드리안

*바실리 칸딘스키 ‘노랑, 빨강, 파랑’ [그림 출처=wikipedia]

무엇을 그렸는지 이해하기 힘든 그림이 있다. 도형과 직선, 곡선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이 그림은 어떻게 보면 어린아이가 마구 휘갈긴 낙서 같기도 하다. 한눈에 이해되지 않는 ‘추상미술’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와 ‘피트 몬드리안’은 세상을 조형적인 요소들로 나타내려는 추상미술의 선구자였다. 교과서에도 이들의 작품이 빈번히 등장할 만큼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두 사람의 작품을 감상하며 추상미술의 세계를 들여다 보자.

-이 기사는 <나침반> 7월호 ‘인문 다이제스트’에 8p분량으로 실린 내용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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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조형 요소로 세상을 표현하는, 추상미술

추상미술(Abstract Art)이란 나무나 꽃, 자동차, 건물, 인물과 같이 구체적인 형태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점이나 선, 면, 색처럼 순수한 조형 요소로 표현하는 미술을 말한다. 20세기, 추상미술은 다양한 실험으로 수많은 미술 사조들이 폭발하듯 등장한 바로 그때 탄생했다.

촉망받던 법학자가 붓을 들게 된 이유

*바실리 칸딘스키(1866~1944) [사진 출처=rbth.com]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는 1866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러시아 화가다. 그는 원래 대학에서 법과 경제를 배웠지만 1895년, 클로드 모네의 ‘건초더미’라는 작품을 본 후 깊은 영감을 받아 본격적으로 미술을 시작했다.

칸딘스키는 처음에 모네의 그림을 보고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모네는 건초더미와 풍경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관적인 인상을 화폭에 옮겨 그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미술 사조를 인상주의라고 한다.

*클로드 모네 ‘건초더미’ 시리즈 [그림 출처=wikipedia]

제목을 보고 나서야 그림의 정체를 알아챈 칸딘스키는 놀라움과 함께 이를 알아보지 못한 자신에 대해 화가 났다. 그리고 섬세하게 빛을 표현한 붓터치와 색감은 그의 뇌리에 깊게 박혔다. 이 경험을 계기로 비로소 그는 화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무제’ [그림 출처=wikipedia]

거꾸로 놓인 그림에서 탄생한 추상미술

*’즉흥’ [그림 출처=wikipedia]

칸딘스키를 ‘추상미술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가 바로 새로운 미술 사조인 추상주의를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야외에서 스케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칸딘스키는 처음 보는 아름다운 그림 한 점을 발견한다.

밝게 빛나는 색채와 반점으로만 이루어져 무엇을 그렸는지 전혀 알아볼 수 없는 특이한 작품이었다. 한참을 바라보던 칸딘스키는 그 그림이 자신이 그린 그림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것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바로 그 순간, 칸딘스키는 사물을 정교하게 묘사하지 않아도 선이나 색채만으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것이 바로 추상미술의 시작이

었던 셈이다. 이때부터 그의 손 끝에서 본격적인 추상미술 작품이 탄생하게 된다. 그는 음악에도 매료돼 음의 높낮이나 악기마다 다른 음색을 색채로 표현하

는 방법을 연구하기도 했다.

차가운 추상의 선구자

*피트 몬드리안(1872년~1944년)[사진 출처=britannica.com]

칸딘스키를 이야기할 때 늘 쌍벽을 이루며 함께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1872년 네덜란드에서 탄생한 화가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이다.

몬드리안은 칸딘스키와 함께 20세기 추상미술을 이끈 인물로, 한편으로는 칸딘스키와 완전히 다른 방식의 추상 미술을 보여주었다.

보통 칸딘스키의 작품을 ‘뜨거운 추상’, 몬드리안의 작품을 ‘차가운 추상’이라 부른다.

미술을 막 시작한 초기, 몬드리안은 주로 자연주의적인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피카소와 브라크 같은 입체파 미술가들의 그림을 본 후, 그는 새로운 자극을 받아 사물을 이리저리 뜯어보는 조형적인 탐구에 몰입하게 된다.

곧게 뻗은 직선의 절제된 아름다움

*몬드리안 ‘빨강, 파랑, 그리고 노랑의 구성’ [그림 출처=wikipedia]

몬드리안은 세상의 본질을 수직선과 수평선으로 보았다. 푸르게 무성한 나뭇잎보다는 하늘로 솟구치듯 높이 뻗친 나무의 수직적인 힘에 더 큰 의미를 두고, 바다의 물결과 푸른빛보다 마치 하늘과 바다에 자를 대고 가른 듯한 수평선에 더 큰 매력을 느꼈다.

그는 수직선, 수평선 외의 대각선, 곡선, 원 등의 요소는 자연의 외적인 모습만 따라 그리는 것이라고 여겼다. 점차 검은색의 수평선과 삼원색의 수직선을 통해 최대한 절제된 아름다움을 표현한 그는 이렇게 미술계에 새로운 충격을 안겨주게 된다.

*브로드웨이 우기부기

[그림 출처=moma.org]

몬드리안도 칸딘스키처럼 음악과 친했을까. 그렇다. 재즈 음악을 매우 좋아했던 몬드리안은 기계음을 사용하는 미래주의 음악에도 크게 매료돼 있었다.

기계음은 인공적이라 누구나 똑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작품 중 ‘브로드웨이 우기부기’가 음악과 미술의 만남을 표현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에듀진 기사 URL: http://www.eduj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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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침반> 7월호 해당 페이지 안내

‘뜨거운’ 칸딘스키 vs ‘차가운’ 몬드리안…추상화도 극과 극

바우하우스 이야기 〈47〉

1990년 10월 3일, 독일이 통일되었다. 정치적·경제적 통합에 모든 이들의 이목이 쏠려있을 때, 뜬금없이 ‘심리적 장벽’의 문제를 제기한 이가 있었다. 동독의 심리학자 한스 요아힘 마츠(77)다. 억압적 사회구조는 개개인의 심리에 어떠한 방식으로든 흔적을 남기게 되어 있다. 수십 년간 사회주의정권하에 살았던 동독 주민들에게는 ‘감정 정체’라는 집단적 정서장애가 존재한다고 마츠는 주장했다.

예술은 내적 필연성서 출발

칸딘스키의 추상화 깊은 울림 몬드리안은 ‘직선만이 객관적’

초록색 놓고 평온·혐오 엇갈려

‘감정 정체’의 가장 큰 문제는 소통 불가능에 있다. 소통은 정서의 자연스러운 표현과 이를 서로 흉내 내며 공유하는 과정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동독인들의 ‘감정 정체’라는 집단적 정서장애는 통일 후에도 동·서독 간에 ‘심리적 장벽’이라는 또 다른 견고한 장벽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마츠는 예언했다(한반도가 통일된다면 ‘심리적 장벽’의 문제는 독일의 경우보다 훨씬 더 심각한 양상을 보일 것이다. 단언컨대, 한반도의 ‘심리적 통합’은 분단의 정서적 상처를 경험한 이들이 죄다 사라진 다음에야 가능하다).

촘촘한 감시체제로 주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한 사회주의 동독에서 주민들은 내면의 정서적 경험을 외면하며 억압하는 방식으로 순응했다는 것이다. 정서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외면한 것이다. 동독 주민의 ‘감정 정체’는 동독의 정신 의료체제, 가족제도를 통해 은밀하게 강화되었다고 마츠는 고발했다. 마츠의 예언대로 동·서독간의 ‘심리적 장벽’은 통일 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사실 ‘감정 정체’는 그리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비슷한 개념이 이미 70년대 이후 서구사회에서도 논의되고 있었다. 미국의 정신의학자 피터 시프너스(1920~2008)는 불안과 같은 심리적 증상이 신체적 반응으로 나타나는 ‘정신신체장애’를 연구하던 중, 이 증상을 지닌 환자들에게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72년 그는 정서를 인지하는 능력, 정서적 경험과 신체감각을 구별하는 능력, 그리고 정서적 경험을 상징적으로 표상하는 능력에 장애가 있는 상태를 일컬어 ‘감정표현불능증’이라 이름 붙였다.

‘감정표현불능증’은 대인관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 자신의 정서적 경험을 인지하지 못하면 타인의 정서적 경험 또한 유추할 수 없다. 공감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의사소통에서 공감 능력의 부재는 치명적이다. 아무리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상대방의 정서적 상태를 공유할 수 없다면 진정한 의미의 의사소통은 일어날 수 없다.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타인의 정서표현을 흉내 내는 ‘거울뉴런’을 가지고 태어나는 이유는 ‘정서 공유’가 의사소통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정서 공유에 기초한 상호주관적 의사소통이 어려워진 것은 전통적 공동체가 해체되고 대량생산, 대량소비에 기초한 물질주의가 대세가 된 산업사회의 보편적 현상이기도 하다(감각적 정서 공유가 어려워진 21세기 네트워크사회에서 이 소통 불가능 현상은 극한 형태로 치닫고 있다. 가장 발달된 네트워크 사회인 한국에서의 양극화된 정치적 갈등 양상이나 트럼프의 트위터로 야기된 저 황당한 미국의 상황을 보라. 감각적 정서 공유의 부재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가장 큰 문제가 될 것이다).

동독인들, 소통 불능의 ‘감정 정체’ 겪어

산업사회로의 급속한 이행이 진행되던 20세기 초반, 의사소통행위의 가장 극적인 형태인 예술에서 감정이 가지는 기능과 역할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앞서 주장한 이가 있었다. "예술은 내면의 깊은 정서적 경험의 표현”이라고 주장한 바실리 칸딘스키다. 1911년 출판된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와 ‘청기사연감’에 수록된 글에서 칸딘스키는 “회화는 외부대상의 모방이 아닌 ‘내적 필연성’에서 나와야 한다”고 반복해 주장한다.

‘내적 필연성’이란 예술가의 감정을 뜻한다. 예술가 내면의 감정에서 비롯된 예술작품은 관람자에게도 유사한 감정을 일으킨다. 예술 작품을 매개로 예술가와 관람자가 동일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면, 그 예술 작품은 성공한 것이다. 이때, 그 작품이 사실주의적이든 극도의 추상적 작품이든, 그 형식은 어떠해도 좋다는 것이 칸딘스키의 주장이다.

‘내적 필연성’의 예술을 주장하는 칸딘스키의 추상주의는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거울뉴런’을 통한 정서 공유의 의사소통 이론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칸딘스키가 위대한 거다. 추상회화를 주장한 이는 칸딘스키 말고도 많다. 그러나 감정과 추상의 관계를 이렇게 깊게 파고든 이는 없다.

예술 작품은 예술가의 정서적 경험, 즉 내적 필연성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칸딘스키의 주장은 앞서 설명한 세기말의 ‘빈 모더니즘’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비합리적 존재’인 인간의 발견, 그리고 ‘자기분석’이라는 방법론을 통한 ‘자아의 재편집’이라는 빈 모더니즘의 성과는 알로이스 리글(1858~1905)의 ‘예술 욕구’개념과 빌헬름 보링거(1881~1965)의 책 『추상과 감정이입』을 거쳐 칸딘스키의 ‘내적 필연성’으로 이어졌다.

예술양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양식이란 그 시대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욕구, 즉 자신의 욕구에 맞게 세계를 해석하려는 ‘예술 욕구’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리글의 주장이다. 따라서 아무리 사소하고, 빈약해 보이는 예술 작품도 그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 주체가 자신이 처한 상황과 관계 맺는 고유한 방식이 예술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리글의 ‘예술 욕구’ 개념으로부터 예술의 주관적, 심리적 해석이 본격 시작된다. 보링거는 ‘예술 욕구’를 다시 ‘감정이입 충동’과 ‘추상 충동’으로 구분했고, 칸딘스키는 보링거의 ‘추상 충동’을 ‘내적 필연성’이라는 예술가 개인의 정서적 경험으로 구체화했다. 기존 회화기법을 기초부터 흔들어버리는 ‘표현주의’라는 독일 특유의 강력한 심리주의적 흐름도 칸딘스키의 추상회화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이때부터 비로소 예술가의 주체적 내면세계가 예술적 창조의 출발점으로 여겨지게 된다. 예술가들을 억누르고 있는 형식으로부터의 자유는 덤으로 얻어졌다(지금이야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상을 얼마나 똑같이 그릴 수 있는가의 ‘기교’가 예술성의 척도였던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주장이다). 이른바 ‘창조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칸딘스키와 같은 시기에 등장한 몬드리안의 추상화다. 같은 추상을 추구하지만, 이 둘은 서로 극과 극이다. 흔히들 몬드리안의 시도를 ‘차가운 추상’, 칸딘스키의 경우를 ‘뜨거운 추상’으로 표현한다. 애매하다. 칸딘스키는 ‘정서적, 감정적 추상’, 몬드리안은 ‘인지적, 이성적 추상’이라고 부르는 것이 보다 분명하다.

몬드리안은 칸딘스키와 마찬가지로 ‘대상의 재현’이라는 전통적 회화관을 거부한다. 그는 회화의 구성요소를 최대한 단순화했다. 수직과 수평의 직선, 그리고 그 직선의 관계인 직각만으로 형태를 추구했다. 선은 항상 직각으로 만나야 한다. 그래야 질서 잡힌, 조화로운 조형이 되기 때문이다. 곡선은 물론, 방향이 애매한 사선도 거부한다.

괴테 색채론, 칸딘스키보다 100년 앞서

직선만이 모든 사물의 핵심이고, 객관적이며 보편적이다. 몬드리안은 직선으로 이뤄진 기하학적 도형의 편집을 통해 개별성을 초월한 보편성의 추상회화를 추구했다. 당연히 각 개인의 독특한 정서적 경험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이성적 질서의 구현이 몬드리안이 추구한 추상의 목표다. 그는 색채의 사용 또한 빨강·파랑·노랑의 삼원색과 흰색·회색·검은색의 기본적인 무채색으로 제한했다. 자연의 초록색은 거의 혐오했다. 무질서하고 변하기 때문이다. 몬드리안의 추상은 변치 않는,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 질서의 구현, 즉 이성의 최고치를 구현하려는 시도였다.

칸딘스키의 추상은 정반대 편에 있다. 내적 필연성의 표현에 적합하다면 어떤 형태라도 가능하다. 주로 곡선을 많이 사용했지만, 그렇다고 기하학적 도형을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형식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칸딘스키의 책에는 형태보다는 색채에 관한 서술이 훨씬 더 많다. 색에 대한 칸딘스키의 지극히 주관적이며 감정적인 설명을 한번 읽어보자.

“밝은 푸른색은 플루트와, 어두운 푸른색은 첼로와 유사하며, 짙은 색조는 콘트라베이스의 경이로운 음향과 유사하다. 그리고 깊고 장중한 형식을 갖춘 푸른색의 음향은 파이프오르간의 저음과 비교할 수 있다. 노랑은 예민해지기 쉬우나, 강렬하게 심화해 침잠할 수는 없다. 반면에 파랑은 예민해지기 어렵고 강렬하게 상승할 수도 없다. 정반대로 다른 이 두색을 혼합해 이상적인 균형을 얻은 것이 초록색이다…완전한 초록색은 존재하는 모든 색 중에 가장 평온한 색이다.” (칸딘스키/권영필역, 『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 90~91쪽, 열화당)

몬드리안이 그렇게 괴로워했던 초록색이 칸딘스키에게는 참으로 평온한 색이었다. 위의 인용에서 볼 수 있듯 칸딘스키의 추상, 특히 그의 색채론은 참으로 심리학적이다. 전쟁 동안 러시아에 머물던 칸딘스키가 독일로 돌아와 22년 바이마르 바우하우스의 선생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바이마르는 괴테의 도시였고, 괴테는 그 누구보다도 탁월한 색채이론가였기 때문이다. 뉴턴의 광학이론에 기초한 객관적 색채론과 대립되는 괴테의 색채론은 칸딘스키 그것보다 백여 년 앞선 탁월한 색채심리학이었다.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뜨거운 추상과 차가운 추상, 추상미술의 강자는?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와 피트 몬드리안(Piet Monrian, 1872~1944).

두 사람은 500년 동안 형태가 주도해온 미술사에 의문을 던지며 형태가 없는 그림도 감상대상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화가들이다.

세잔과 고흐, 마티스와 블라맹크, 피카소와 브라크 등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활동한 화가들도 대상의 재현에 의구심을 품었지만, 대상자체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칸딘스키와 몬드리안은 캔버스에서 대상을 없애고, 선과 색만으로도 그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흔히 뜨거운 추상과 차가운 추상으로 대별되는 두 사람은 옛날 방식과 회화의 개념 해체, 신지학의 새로운 철학을 삶과 예술에 적용 등의 공통점을 지녔다. 그러나 작품스타일(특히 음악과 미술을 연계한 시도)에서는 지극히 대조적이었다.

◇ 우연한 탄생, 그리고 직관

칸딘스키의 추상은 서양미술사란 나무의 줄기에서 자라난 것은 아니다. 그의 추상은 미술사의 틀거지에서 벗어난 신종으로 우연한 산물이다.

‘어느 날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자신의 작업실에서 아름다운 광채를 발산하는 그림을 보고 황홀함에 빠졌는데, 알고 보니 거꾸로 놓인 자신의 그림이었다.’는 추상미술의 탄생배경은 유명한 일화이다.

이 우연한 체험을 통해 형태를 버리고 선과 색만으로 이루어진 그림도 감상대상이 될 수 있음을 시도한 것이 추상화의 출발점이 되었다.

칸딘스키<최초의 추상화> 1910년, 종이에 수채화

칸딘스키는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 물음을 시작했고, 결국 색만으로도 얼마든지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그릴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한 믿음을 예술작품으로 표출하기 위해 끌어들인 것이 음악이다.

색을 음악적 요소와 연결했다. 어린 시절부터 소리를 들으며 색을 연상하고, 색을 보면 소리를 연상하는 감각을 미술작품에 도입했다. 그리하여 음악을 회화로 표현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색채는 건반이고, 눈은 망치다. 영혼은 많은 줄을 가진 피아노다. 예술가란 그 건반을 이것저것 두들겨 목적에 부합시켜 사람들의 영혼을 진동시키는 사람이다.”는 말은 칸딘스키의 유명한 어록이다.

이는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음악적 선율이 담긴 색으로 전달할 수 있으며, 화가는 그 음악적 선율의 색을 조율하여 아름다운 연주를 이끄는 지휘자로 여긴 것이다.

실제 칸딘스키는 12음계의 창시자인 쇤베르크의 추종자였고, 바그너의 열렬한 팬이었다. “나는 바그너의 음악을 들으면서 내가 좋아하는 모든 색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을 보았다.”라며 바그너의 <로엔그린>을 들으며 황혼이 물들어가는 자연 풍경을 떠올릴 정도였다.

이런 경험을 종합할 때 칸딘스키에게 추상화는 각자 음색이 다른 악기들이 만나 연주하는 교향합주인 셈이다. 심벌즈, 피아노, 바이올린, 트럼펫, 드럼 등 온갖 악기들이 소리 내는 음악의 현장이다.

칸딘스키 <즉흥>, <인상>, <구성> 시리즈

궁극에 칸딘스키의 추상화는 본능에 충실한 내적 감정의 직관적 분출이다. <즉흥>, <인상>, <구성>으로 이어지는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마치 곡을 연주하듯 색, 점, 선, 면 등 내적소리를 전달하는 회화의 기본요소로 타자와 소통을 꾀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행위는 ‘내부의 명령’으로 간주했고, 예술은 ‘내부의 명령’ 없이는 나오지 않는다고 여겼다.

◇ 신조형주의, 수직·수평선의 만남

몬드리안이 자신의 작품세계를 대표하는 <콤포지션>시리즈를 완숙하게 표현하기 시작한 것은 1920년부터이다. 처음 네덜란드 전통미술에서 출발한 자연주의적 경향의 그림을 그렸지만, 피카소와 마티스의 입체파 그림을 본 후 새로운 조형적 탐구에 몰입했다.

그 때부터 세상의 본질을 수직선과 수평선으로 보았다. 검은색의 수평선과 삼원색의 수직선을 통한 절제된 구성(신조형주의)으로 세계미술에 몬드리안이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다.

그는 나무의 잎보다 하늘로 상승하듯 향한 나무의 수직적 힘에 더 큰 의미를 두고, 바다의 푸른빛 물결보다 바다를 가로지른 수평선에 매료되었다.

몬드리안에게 수직과 수평은 대립관계에 있는 삶의 모든 요소들(긍정과 부정, 몸과 마음, 선과 악, 음과 양 등)사이의 긴장을 나타낸다.

몬드리안,<빨강, 검정, 파랑,노랑의 마름모꼴 구성>1925년

수직선과 수평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관계가 성립되고 그 결과물로 정사각형과 직사각형이 탄생한다. 수직·수평선의 교차점은 삶의 대립적 관계들의 화합을 이끄는 완결점이자 동시에 평온함이 함축된 사각형을 만들어 내는 시작점이다.

몬드리안의 수직·수평선은 칸딘스키와 마찬가지로 음악과 깊은 연관이 있다. 그는 재즈에 심취했고, 이탈리아 미래주의 전위음악가인 루이지 루솔로를 좋아했다.

특히 기계음을 사용하는 미래주의 음악을 완벽한 소리의 결정체로 여겼다. 기계음은 자연적이지 않아 누구나 똑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작품 중 <브로드웨이 부기우기>는 음악과 미술의 만남이 절정을 이룬 대표작으로 꼽힌다. 부기우기(boogie woogie)라는 피아노 블루스의 특이한 주법(1 마디 8박자를 왼손으로 연주하면서, 동시에 오른손으로는 자유롭게 애드립하는 것)을 미술에 접목한 작품으로 노란색 긴 띠 속의 색점들이 경쾌한 리듬처럼 반복되는 것이 특징이다.

예전의 굵은 검은색 테두리대신 밝은 원색의 색점을 수직·수평선이 교차하는 지점중심으로 배치했는데, 마치 뉴욕의 반듯한 길 위에 불빛을 밝히고 솟아있는 빌딩을 내려다보는 느낌을 준다.

몬드리안<브로드웨이 부기우기>1942-43, 캔버스에 유채

수직선과 수평선의 만남을 통해 모든 것을 이루려 했던 몬드리안의 열정은 인생의 황혼기에 만난 뉴욕에서도 꺾이지 않고 이어졌다.

◇ 변방의 두 화가가 꿈꾼 ‘회화의 유토피아’

러시아(칸딘스키)와 네덜란드(몬드리안)라는 변방 출신의 두 사람이 추상미술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형식으로 유럽미술의 틀을 바꿔놓은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한 사람은 정형화되지 않은 자유로운 선과 색으로, 한 사람은 수직·수평선의 만남을 통해서 미술과 음악의 하모니를 추구했다. 음악을 선과 색으로 표현하고, 그것을 통해 음악적 선율을 음미하려 했던 칸딘스키와 다르게 인공적 기계음이야말로 정직한 소리의 완결이라고 여겼던 몬드리안의 작품세계에는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그러나 두 사람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했던 추상 세계의 목적지는 같은 곳을 향하고 있었다. 미술사에서 존재한 적이 없었던 형식으로 두 사람이 도달하고자 한 예술의 목적지는 결국 ‘회화의 유토피아’였다.

만약 그들의 꿈이 현실로 이뤄졌다면, 몬드리안의 예언처럼 우리는 예술 없이 살게 되었을지 모른다. 두 사람이 꿈꿔왔던 유토피아가 비록 그들의 그림 속에서만 존재하지만, 그들이 이루고자 했던 꿈은 또 다른 예술가의 이상향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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