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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몽골엔 동전을 쓰지 않을까요?
왜 몽골 지폐엔 다 똑같은 인물만 있을까요?
게다가 뒷면까지 같아 너무 헷갈립니다.
구분하기 쉽지 않은 몽골 화폐 소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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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투그릭 – 나무위키

중앙은행 공식휘창. 몽골의 통화. ISO 4217 코드는 MNT이며, 기호는 ₮이다. “투그릭”의 뜻은 흔히 화폐단위로 쓰는 말하는 圓(둥글 원)과 같은 둥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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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1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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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투그릭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투그릭(tögrög 또는 tugrik, 몽골어: төгрөг, tögörig) (기호: ₮; ISO 4217 부호: MNT)는 몽골의 공식 화폐이다. 1 투그릭은 역사적으로 100 “몽고”(möngö, мөнгө)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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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7/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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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화폐

몽골의화폐 … 몽골의 통화 단위는 투그릭 (Tg)이다. 2016 년 7 월 현재 공식 환율은 약 US $ 1 = 1990Tg, 한국돈 1000 원에 약 1700Tg정도 이다. 투그릭 (Tg)은 지폐는 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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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jp.juulchin.com

Date Published: 9/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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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원 → 몽골 투그릭 환율. KRW/MNT 환전 – Wise

Wise 환율계산기로 1000 KRW → MNT 변환을 하세요. 이전 환율 그래프 또는 실시간 대한민국 원 / 대한민국 원 환율을 분석하고 무료 환율 알림을 이메일로 직접 받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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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ise.com

Date Published: 8/1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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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여행] 몽골로 돈은 얼마 가져가야 하나요? – 네이버 블로그

몽골 #몽골여행 #몽골여행사 #몽골리아세븐데이즈 #몽골돈 #투그릭 #몽골화폐 #mongolia #몽골여행비용 #몽골물가. 2017년 1월 06일 몽골 환율 기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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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9/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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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베노몽골] 몽골의 머니는 뭐니? (몽골 화폐) : 그린티처스

먼저, 자세한 이야기를 해드리기 전에 몽골의 화폐단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시작해볼까요? 몽골의 화폐단위는 “투그륵”입니다. 금일(5월4일)기준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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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greenteachers.kr

Date Published: 4/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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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화폐 종류(투그릭) – 환율왕

몽골화폐는 ‘투그릭’이라는 화폐를 · 유일하게 동전이 없고 지폐만 사용하는 나라입니다. · 그래서인지 지폐종류는 1투그릭부터 10,000투그릭 · 아주 다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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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oney-king.tistory.com

Date Published: 8/3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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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이션④…지폐 남발로 무너진 몽골제국 – 아틀라스뉴스

몽골제국은 인류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건설했다. 이 제국은 또한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지폐를 공용화폐로 사용했다. 그러나 몽골의 지폐남발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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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atlasnews.co.kr

Date Published: 8/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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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화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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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몽골 화폐

  • Author: 몽골사는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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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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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투그릭(tögrög 또는 tugrik, 몽골어: төгрөг, tögörig) (기호: ₮; ISO 4217 부호: MNT)는 몽골의 공식 화폐이다. 1 투그릭은 역사적으로 100 “몽고”(möngö, мөнгө)로 나뉘었다.

몽골 투그릭은 동아시아 국가 통화 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 다음으로 액면 가치가 가장 낮은 화폐이다. 2021년 1월 13일 환율 기준으로 1투그릭 = 0.38원이며 1달러는 2,829.49투그릭에 해당한다.

역사 [ 편집 ]

투그릭은 1925년 12월 9일에 1 소련 루블과 같은 비율로 도입이 되었는데[1], 1 루블 또는 1 투그릭은 은(銀) 18그램과 같았다. 투그릭은 몽골 달러와 다른 통화들을 대체했고 1928년 4월 1일에 유일한 합법적인 통화가 되었다.

그러나 2018년 8월 현재 몽골 투그릭은 대한민국 원 보다 그 가치가 낮다. 1 몽골 투그릭이 0.44 대한민국 원과 같은 금액일 정도로 몽골 투그릭의 가치는 매우 낮다. 그 때문에 몽골 투그릭의 하위 단위 화폐인 몽고(Möngö) 동전은 낮은 가치로 인해, 화폐로서 더 이상 유통되지 않고 있다. 동전들은 관광객들에게 팔렸고 현재는 골동품과 수집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동전 [ 편집 ]

몽골 투그릭 동전의 체계는 소비에트 연방 루블과 두드러진 유사점이 있었다. 소비에트 연방 루블 동전은 1, 2, 3, 5, 10, 15, 20, 50 코페이카, 1 루블로 구성되었었고, 투그릭 동전은 3 몽고 동전만 빠진 1, 2, 5, 10, 15, 20, 50 몽고(möngö), 1 투그릭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유사점은 1992년에 몽골인민공화국이 끝나고 인플레이션이 급등했을 때 없어졌다.

현재의 동전 [9] 그림 가치 규격 설명 첫 주조 날짜 앞면 뒷면 지름 두께 무게 성분 테투리 앞면 뒷면 [10] [11] 20 투그릭 17.5 mm 1.5 mm 0.78 g 알루미늄 톱니 가치 소욤보 1994년 [12] [13] 50 투그릭 23 mm 1.8 mm 1.68 g [14] [15] 100 투그릭 22 mm 1.5 mm 3.84 g 백동 가치, 잔라이식 사원 [16] [17] 200 투그릭 25 mm 1.7 mm 6.2 g 가치, 총독부 [18] [19] 500 투그릭 22 mm 1.7 mm 4.1 g Smooth 가치, 소욤보 담딘 수흐바타르 2001년

지폐 [ 편집 ]

동전과 같이 투그릭 지폐 또한 몽골인민공화국 시기 동안에 소련 루블과 매우 유사했었다. 유사점은 색상 테마, 전반적인 디자인, 그리고(1, 2, 5, 10, 25, 50, 100 투그릭에서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다면) 지폐 종류의 순서를 포함한다. 각 가치마다의 색상은 다음과 같다.

1 투그릭 : 갈색

2 투그릭 : 녹색

5 투그릭 : 파란색

10 투그릭 : 녹색

20 투그릭 : 빨간색

25 투그릭 : 라일락색

50 투그릭 : 녹색

100 투그릭 : 갈색

모든 지폐들은 소비에트 연방에서 인쇄되었다. 그러나 현대의 투그릭은 일반적으로 영국에서 인쇄된다.

몽골인민공화국 시기의 지폐 [20] 그림 시리즈 앞면 뒷면 리콜 날짜 무가치해진 날 문자 사용된 달력 주목 [21] 1925년 소욤보, 가치 가치 1940년 1966년 몽골 문자 기원전 3 투그릭 대신에 녹색 2 투그릭 [22] 1939년 소욤보, 수흐바타르 가치 1955년 1966년 기원전과 몽골력 29년 갈색 25 투그릭 1941년 국장, 수흐바타르 ? ? 둘다 기원전과 몽골력 31년 [23] 1955 1966 1966 키릴 문자 기원전 앞면은 파란색, 뒷면에는 갈색인 25 투그릭 [24] 1966년 국장, 1 투그릭을 제외하고는 수흐바타르 가치 (1-25 투그릭), 총독부 (50, 100 투그릭) — — 둘다 1981년, 1983년 산업 관련 테마인 20 투그릭을 제외한 나머지는 위와 같음 25 투그릭 대신에 녹색 20 투그릭

1993년 시리즈 [25] 그림1 가치 크기 색 설명 발행 날짜2 주목 앞면 뒷면 앞면 뒷면 워터마크 10 몽고 45 × 90 mm 분홍색 소욤보, 궁술 궁술 — 1993년 유통에서 매우 드물다. 수집가들 중에서 넘칠 정도로 많다. 20 몽고 45 × 90 mm 노란색/갈색 소욤보, 레슬링 레슬링 50 몽고 45 × 90 mm 녹색/청록색 소욤보, 승마 승마 [26] [27] 1 투그릭 115 × 57 mm 노란색/갈색 사자 소욤보 칭기즈 칸 [28] [29] 5 투그릭 120 × 60 mm 주황색 수흐바타르, 소욤보 산악 경관과 말들이 풀을 먹는 모습 어디든지 드물게 사용되나 은행에서는 사용된다. 10 투그릭 125 × 61 mm 녹색 1993, 2002, 2005, 2007, 2009, 2011, 2013, 2014, 20173 일반적으로 가장 적게 사용되는 지폐이다. 20 투그릭 130 × 65 mm 붉으스름한 자주색 50 투그릭 135 × 66 mm 갈색 1993, 2000, 2008, 2013, 2014, 2016,3 2019 100 투그릭 140 × 68 mm 보라색 [30] [31] 500 투그릭 145 × 70 mm 녹색 칭기즈 칸, 소욤보 움직이고 있는 몽골 유르트(이동식 원형 텐트) 1993년, 1997년

2000년3, 2003년4 1000 투그릭 ( myangan ) 150 × 72 mm 파란색 1993, 1997, 2003, 2007, 2011, 2013

20034 5000 투그릭 ( tavan myangan ) 150 × 72 mm 분홍색/자주색 “Drinking Fountain” at Genghis Khan’s court 1994, 2003, 2013, 20184 10,000 투그릭 ( arvan myangan ) 150 × 72 mm 주황색 1995, 2002, 2009, 20144 [32] [33] 20,000 투그릭 ( horin myangan ) 151 × 72 mm 라임색과 자주색 9개의 기(旗) 2006, 2009, 2013,4 2019

주목 [ 편집 ]

그림은 각 지폐의 초기 변동을 나타낸다. 2003년까지의 발행 날짜가 나열되어 있다. 10 투그릭의 2005년 판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10 투그릭이 2005년 판의 유일한 지폐였는지 아닌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저액권(10 ~ 500 투그릭)은 2000년에 발행했고 이후 전체 지폐에 선 무늬 색을 언더프린트(underprint, 지폐나 우표 뒷면에 선전의 용도로 찍혀 있는 문자나 기호) 처리 했는데, 이전판은 진한 하얀색에 가까운 색을 가졌다. 하지만 규칙에 대한 한 가지 예외는 500 투그릭의 2000년 판이다. 고액권(500 ~ 10,000 투그릭)은 2002년에 발행했고 이후 위조 방지 장치로 개선으로서 앞면 하단 오른쪽에 패치를 했는데, 이전에는 2개의 최고액권(5000, 10,000 투그릭)에만 있었다. 새로운 패치는 또한 1990년대에 있는 것들보다 더 정교하다. 2개의 최고액권(5000, 10,000 투그릭)은 또한 그들의 소욤보 기호가 홀로그램으로 업그레이드한 것을 가졌다.

갤러리 [ 편집 ]

같이 보기 [ 편집 ]

참조 [ 편집 ]

외부 링크 [ 편집 ]

Banknotes of Mongolia, Bank of Mongolia

Website at the Bank of Mongolia with history of Mongolian currency and pictures of tögrög

대한민국 원 → 몽골 투그릭 환율. KRW/MNT 환전

불공정한 환율에 주의하세요. 종종 은행과 기존의 공급업체는 실제 환율보다 높게 표시하여, 추가적인 수수료를 부과합니다. 스마트한 기술을 갖춘 Wise는 언제든 훨씬 더 효율적이고, 더 좋은 환율을 제공합니다.

[몽골여행] 몽골로 돈은 얼마 가져가야 하나요?

질문2. 환전을 우리나라에서 할 수 있나요?

우리나라에서 환전은 외환은행 본점에서 가능합니다.

하지만 환율상 미리 투그릭으로 환전을 하는 것보다 한화 그대로 가져가서

몽골에서 환전하는 것이 환율적으로 가장 좋습니다.

참고로 화폐 단위는 5만 원권이나 달러론 100달러 같은 큰 단위가 좋으며,

빳빳한 새 돈으로 챙겨가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마세요~

몽골 화폐 종류(투그릭)

안녕하세요 몽골 화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몽골화폐는 ‘ 투그릭’이라는 화폐 를 사용하며

유일하게 동전이 없고 지폐만 사용하는 나라 입니다.

그래서인지 지폐종류는 1투그릭부터 10,000투그릭 까지

아주 다양하고 많은 지폐 종류가 있습니다.

몽골 투그릭 화폐?

투그릭 지폐입니다.

보시다싶이 1투그릭 부터 10,000투그릭까지

종류가 아주 많습니다.

현재는 2만투그릭도 생겼다고 하는데요.

지폐 특징 으로 볼 수있는건

모두 앞면에 인물이 있고 뒷면에는 몽골의 배경

모습 을 나타낸것으로 보입니다.

5000투그릭과 1000투그릭 인데요.

앞면에 나와있는 인물은 징기스칸으로

이는 수많은 고난 속에서도 세계 최대의 제국을

몽골 대제국을 건설한 인물 로 유명한 위인입니다.

몽골의 제 1대왕이기도 하며

그분의 위대한 업적과 경영 철학 을 담은

영화나 책 이 정말 많습니다.

또한 지폐의 뒷면을 보시면

마치 전쟁때 모습과 흡사한 게르를 이동하는 그림 이 있습니다.

어쩌면 왕의 게르가 아닐까 추측됩니다.

왜냐하면 주변의 게르는 작은반면

지폐속의 게르는 아주 크고 화려한편에 속합니다.

대부분의 다른 지폐 뒷면에는

동일한 게르를 옮기는 장면 이나

말이 초원에서 풀을뜯는

몽골에서 흔히 볼 수있는 모습 이 담아져있습니다.

실제로 1투그릭도 잘 사용되지않아서

조만간 없어질 수있다고 합니다.

1투그릭의 뒷면을 보시면

우리나라 해태와 비슷한 동물 이 있는걸 볼 수있습니다.

게다가 몽골돈을 큰돈부터 작은돈까지

쭉 나열해보면

돈의 단위가 작아질 수록 점점 크기도 작아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몽골 화폐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인플레이션④…지폐 남발로 무너진 몽골제국

은을 지급보증수단으로 했으나, 후에 신화폐 발행, 통화증발로 무력화

몽골제국은 인류역사상 가장 큰 제국을 건설했다. 이 제국은 또한 인류역사상 처음으로 지폐를 공용화폐로 사용했다. 그러나 몽골의 지폐남발은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야기했고, 제국을 멸망에 이르게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중국에서 최초로 지폐를 사용한 나라는 여진족의 금(金)나라였다. 여진족은 동화(銅貨)를 기본통화로 했는데, 북송(北宋)을 멸망시키고 화북지방을 점령한 후 구리가 절대 부족해 1142년에 처음으로 지폐를 발행했다. 지폐의 보증수단은 비단이었다.

이어 금 4대 황제 해릉왕(海陵王. 재위 1150~1161)의 시기에 교초(交鈔)라는 지폐를 발행했다.

금나라는 은화를 동시에 발행했다. 금의 은화로는 승안보화(承安寶貨)와 무게를 달아 가격을 정하는 말발굽형 원보은(元寶銀)이 있다. 이와 별도로 동화도 발행했다.

금(金)나라의 말발굽형 칭량화폐인 원보은 /위키피디아

금나라 지폐는 10종류였다. 작은 단위는 100, 200, 300, 500, 700 문(文)의 5가지가 있었고, 큰 단위는 1, 2, 3, 5, 10 관(貫) 짜리 5종류가 있었다. 지폐를 동화로 교환할 때 1관당 15문의 수수료를 지불했다.

금의 교초는 처음에 유통기간이 7년으로 정해진 어음 형태였으나, 1189년에 유통기한에 폐지되고 영구 통화가 되었다. 일종의 통화팽창을 시도한 것이다.

금나라가 수시로 남송(南宋)과 교전하고 북쪽의 몽골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지폐가 남발되었고, 말기에는 1,000관 짜리 지폐도 발행되었다. 1214년 무렵엔 심각한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해, 화폐개혁 차원에 새로운 지폐인 보천(寶泉)을 발행했으나, 유통시장에서 거부되었다. 사람들은 지폐와 은을 교환하지 않았고, 과도한 지폐남발은 금나라 멸만의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금나라는 1234년에 몽골에 멸망했다.

한편 남송시기에 쓰촨(四川) 지방에서 회자(會子)라는 지폐가 통용되었으나, 지역 통화로 국한되었다.

중국 진저우 한 공원의 야율초재 상 /위키피디아

금나라에서 관료로 일했던 요(遼)나라 출신 야율초재(耶律楚材)는 징기스칸의 눈에 들어 몽골에서도 재무담당 관료로 일했다. 야율초재는 금나라에서 사용하던 지폐를 활용할 것을 건의해 몽골 2대 황제 오고타이(태종) 시기인 1236년에 최초로 지폐 교초(交鈔)를 발행했다. 몽골이 지폐를 사용한 것은 금나라와 마찬가지로 구리가 모자라 동화를 주조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야율초재는 금에서 지폐유통이 실패한 것을 거울 삼아 발행량을 조절할 것을 건의했고, 몽골은 1만정(錠)에 한정해 지폐를 발행했다. 이 물량은 50만관에 해당한다. 오고타이 시기엔 중앙정부가 발행하는 지폐와 지방의 몽골족, 한족 제후들이 별도로 지폐를 발행해 지폐가 통일되지 않았다.

몽골의 원(元)나라가 지폐를 통일한 것은 5대 황제 쿠빌라이(세조) 때였다. 1260년 7월, 쿠빌라이는 제로통행중통원보교초(諸路通行中統元寶交鈔) 7만3,000정(365만관)을 발행해 전국적으로 유통했다. 이를 줄여 중통초(中統鈔)라 했다.

중통초는 은과 교환되었다. 이때부터 중국에서 기준통화가 구리에서 은으로 전환된다. 교환비율은 중통보 2관이 은 1냥(兩)이었다. 쿠빌라이 초기엔 금 왕조의 전철을 받지 않기 위해 지폐와 은의 철저한 교환비율을 지켰고, 지폐 발행액만큼 은을 확보했다. 아울러 원 조정은 구지폐의 유통을 금하고, 새 지폐로 교환토록 했다. 모든 세금은 중통초로 내도록 했고, 지폐를 거래하지 않거나 위조하는 자에겐 사형에 처하는 엄격한 제도를 만들었다.

중국의 전국적인 지폐 통용은 유럽과 미국보다 앞섰다. 미국에서 처음 지폐가 도입된 것은 1692년, 프랑스에선 1712년, 영국에선 나폴레옹 전쟁시기인 19세기초였다. 중국에선 원나라 시절인 13세기에 지폐 통용을 시도한 것이다.

원나라는 지폐 인쇄를 위해 수도 연경(燕京, 베이징)에 조폐창을 두었다.

중통초 /Guan Hanhui, Mao Jie

1270년대에 접어들면서 쿠빌라이는 양쯔강 이남의 한족정권 남송을 공략했다. 1275년, 원 조정은 남송의 회자를 중통초로 교환해주었다. 교환비율은 회자 50관에 중통초 1관이었다. 양쯔강 하류를 점령한 후 원나라는 남송의 동화 3관을 중통초 1관으로 교환해 주었다. 점령지의 통화를 원나라 지폐로 통일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윈난(雲南) 지방에선 조개화폐가 사용되었는데, 원 조정은 윈난의 조개통화 20수오를 1,5관의 중통초로 교환해 주며 산간 오지에도 지폐를 권장했다.

원조는 또 물가 안정을 위해 대규모 식량창고를 각 지역에 설치해 흉년과 풍년에 맞춰 식량수급을 조절했다. 쿠빌라이 초기에 이런 노력 덕분에 지폐는 안정적으로 유통되었다.

몽골 5대 황제 쿠빌라이 칸 /위키피디아

남송과의 전쟁이 격화하면서 원조정은 은화를 전비로 사용하게 되었다. 1276년에 원 조정이 보유한 은은 전쟁 목적으로만 사용하도록 강제했는데, 이는 시중에 지폐와 교환해줄 은이 모자라게 되었음 의미한다. 보유 은이 감소함에 따라 신규지폐 발행을 줄일 수밖에 없었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쿠빌라이는 1260년에서 1273년까지 수만 정의 지폐를 추가로 찍어 냈다.

이후 1274~1286년 사이에 원은 1,350만정의 지폐를 발행했다. 지폐가치가 하락하면서 원 조정은 은과 지폐의 교환비율을 고정시키는 법령을 제정하며 지폐의 안정을 유도했지만, 사람들은 은을 지폐와 교환하지 않았다.

결국 쿠빌라이는 시장의 압력에 굴복했다. 그는 1287년에 중통초를 평가절하한 지원통행보초(至元通行寶鈔, 지원초)를 발행했다. 조정은 중통초를 지원초와 5대1 교환비율로 회수했다. 그리곤 지원초 1관에 은 1냥(兩)으로 고정시켰다. 중통초의 통화가치가 새 통화의 발행으로 60% 절하된 것이다.

원 조정의 씀씀이도 컸다. 황제는 황실과 지방 제후들에게 막대한 양의 하사금을 내려 통치자금으로 활용했다. 전쟁비용과 황제의 하사금은 지폐 발행을 확대시켰다. 쿠빌라이 말기인 1292년, 원의 예산은 297만8,305 냥(은)이었는데, 그해 10월에 지출이 363만8,543냥으로 66만냥의 결손이 발생했다.

1294년 쿠빌라이가 사망한후 후임 황제들의 정권유지비는 더 불어났다. 재정 적자는 눈덩이처럼 커졌고, 그 공백은 지폐발행으로 메워졌다.

7대황제 시기인 1309년엔 신화폐 지대은초(至大銀鈔)를 발행해 구화폐와 또다시 5대1로 교환했다. 잠시 안정책이 취해지기도 했지만, 말기 들어 다시 통화절하 조치가 취해졌다. 1350년에 지정교초(至正交鈔)가 발행되어 앞서의 통화는 다시 5대1 교환비율로 회수되었다.

금 값을 기준으로 물가를 환산할 때, 원나라 말기인 1355년의 상품 가격은 초기에 비해 267배 올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폐의 단위 기준으로 쌀값은 250배, 은은 400배, 동화는 800배나 상승했다. 그만큼 지폐 값이 폭락한 것이다.

은이 부족한 상황에서 지폐를 남발하면서 원은 은 대신에 소금을 지불보증 수단으로 삼게 되었다. 결국 지폐는 무용지물이 되었고, 원나라는 1356년에 지폐(교초) 제도를 폐지했다. 그후 10년 조금 지나 1368년에 몽골 조정은 한족정권(명)에 쫓겨 몽골고원으로 도주했다.

중국 원나라 지폐인 至元寳鈔 인쇄 원판과 인쇄본 /위키피디아

원나라 교초는 뽕나무 껍질로 섬유 모양으로 만든 내피에 아교를 섞어 얇게 펴서 세로로 자르고, 동판화로 인쇄해 황제의 옥새를 날인해 발행되었다. 중통초는 황제의 권위를 나타내는 용이나 동전의 도안, 액면가, 발행소, 발행소의 관리 이름, 제조소, 그리고 위조하는 자는 참살한다는 경고 문구가 인쇄되었다. 이러한 교초 제작 형식은 후세 국가의 지폐에도 영향을 끼쳤다. 중통초의 크기는 272×188mm, 지원교초의 크기는 300×222mm로 정해져 있었다.

원나라 지폐는 중세 유럽이나 이슬람 세계로부터 온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13세기 말 베네치아 출신의 여행자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피렌체 출신의 상인 프란체스코 발두치 페골로티(Francesco Balducci Pegolotti)가 1330년대 무렵에 편찬한 ‘통상지남’(Practica della mercatura), 이슬람 여행가인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 등에서 교초가 언급되었다.

이란 지방의 몽골 정권인 일 칸국에서도 1294년에 챠브(鈔)를 발행했는데, 이는 서아시아 최초의 지폐였다. 일 칸국의 지폐에는 한자도 인쇄되었다. 챠브는 제대로 정착하지 못해 발행 두달반에 회수되었다.

원 왕조가 멸망시킨 명(明) 왕조는 초기에 구리 부족으로 대명보초(大明宝鈔)라는 지폐를 발행했다. 그러나 명조는 보초를 국내용 통화로 정하고 동화를 교역용 화폐로 사용하다가 은본위제로 돌아서게 된다.

<참고자료>

Wikipedia(일본어판), 交鈔

Wikipedia, Jiaochao

Guan Hanhui, Mao Jie, The Silver Standard, Warfare and Inflation: The Mechanism of Paper Money in Yuan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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